Chapter 1. 인과응보因果應報
File.1
“아빠, 나 이거 사줘!”
“이거 먹고 싶니?”
“응!”
“얼마에요?”
“자, 여기 있다.”
“맛있다.”
“그럼 이제 저거 타러 갈까?”
“응.”
창문 블라인드 사이로 눈부신 빛이 새어들어 오고 있었다. 눈을 번쩍 뜬 병옥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변함없이 오늘도 악몽을 꾸고 말았다. 요 며칠 동안 괜찮았는데 결국 또 꾸고 말았다.
소파에서 일어난 병옥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자 칙칙한 어둠을 뚫고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테이블 위에는 어지럽게 놓인 소주병들과 먹다 만 오징어 다리 몇 개가 놓여 있었다.
매일 같이 두 세병의 소주를 퍼 마셔야만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정신은 피폐해져 있었다. 그 날 이후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가족, 직장 그리고 희망...... 이제 그의 삶은 오로지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 살고 있었다. 바로 복수......
벌써 6년이 흘렀다. 유일한 위안이자 삶의 원동력인 복수 하나만을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지만 아직까지도 그는 찾지 못했다. 오늘 하루도 안개가 자욱하게 낀 산길을 걷는 것 마냥 무작정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휴, 담배 좀 나가서 피워요!”
문을 열고 한 아가씨가 들어왔다. 코를 틀어막고 핀잔을 주는 그녀는 블라인드를 홱 걷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강한 햇살이 사무실 안을 환하게 메우자 어둠에 익숙해 있던 병옥은 손으로 눈을 가렸다.
“벌써 왔나?”
“어휴, 이 술병 좀 봐! 형부! 제발 술 좀 드시지 마세요!”
그녀는 검은 봉지에 빈 병을 집어넣으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병옥은 테이블을 치우는 여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금은 떠나 있는 아내의 동생, 처제였다. 발랄하고 생기 넘치는 이 여인은 현재 병옥을 도와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원래 공무원이었던 그녀는 형부인 병옥의 일을 돕기 위해 스스로 안정된 직장을 그만 두고 이곳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올해 서른 한 살인 그녀는 아직도 미혼으로 혼자 남은 장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병옥은 자신의 일을 도와주고 응원해 주는 그녀와 장모님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는 동시에 죄책감도 느끼고 있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잃어야 했던 그는 6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장가를 간 그는 예쁜 딸아이를 낳아 알콩달콩 살 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삶이 이렇게까지 나락으로 떨어질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병옥은 담배를 재떨이에 꾹 눌러 껐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시간은 어느덧 9시가 다 돼가고 있었다. 바깥은 출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하고 있었고 도로에는 크고 작은 자동차들이 쉴 새 없이 달리고 있었다.
술기운 탓인지 속은 쓰렸고 머리는 두통으로 심하게 지근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년 전 딸아이와 함께 갔던 놀이공원의 꿈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된 그 날을......
모든 것이 사라진 그 사건 이후, 6년 간 이 악물고 맨몸으로 쌓아올린 그의 성과물은 지금 조금씩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가족과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던 그 시절은 이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 그에게 남아 있는 건 지독한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고통 뿐 이었다.
“이제 일하러 가야지.”
한동안 바깥 풍경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병옥이 불쑥 말했다.
“형부, 어젯밤에나 대구에서 올라왔잖아요.”
외투를 챙겨 사무실 문을 나서려는 병옥을 처제가 제지하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대구에서 일어났던 한 청소년의 의문의 실종을 해결하는데 두 달 가까이 거의 쉬지 않고 매달렸다. 이제 40대인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탈진되어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럼 아침식사라도 하시고 가세요.”
아무 대답 없이 문고리를 잡는 병옥을 보며 애타게 말했다. 처제는 그가 너무 불쌍했다. 한 때 자신이 짝사랑했던 남자. 그가 언니와 결혼한다고 집에 찾아왔을 때 웃으며 반겼지만 2층 방에 올라가 정말 많이 울었던 자신...... 하지만 옆에서 행복하게 사는 병옥과 언니를 바라보면서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두 자매에게 듬직한 병옥은 실로 고마운 존재였다. 그런 그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누구보다 그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그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억지로 견디며 살아가는 병옥을 보는 것이 속으로 무척 괴로웠다.
“형부, 제발 몸 생각 좀 하세요! 정말......”
처제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다가 죽을 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처제의 호소에도 아무 말 없이 병옥은 문고리를 돌렸다. 문을 열고 나가면서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일하는 게 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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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 이거 사줘!”
“이거 먹고 싶니?”
“응!”
“얼마에요?”
“자, 여기 있다.”
“맛있다.”
“그럼 이제 저거 타러 갈까?”
“응.”
창문 블라인드 사이로 눈부신 빛이 새어들어 오고 있었다. 눈을 번쩍 뜬 병옥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변함없이 오늘도 악몽을 꾸고 말았다. 요 며칠 동안 괜찮았는데 결국 또 꾸고 말았다.
소파에서 일어난 병옥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자 칙칙한 어둠을 뚫고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테이블 위에는 어지럽게 놓인 소주병들과 먹다 만 오징어 다리 몇 개가 놓여 있었다.
매일 같이 두 세병의 소주를 퍼 마셔야만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정신은 피폐해져 있었다. 그 날 이후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가족, 직장 그리고 희망...... 이제 그의 삶은 오로지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 살고 있었다. 바로 복수......
벌써 6년이 흘렀다. 유일한 위안이자 삶의 원동력인 복수 하나만을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지만 아직까지도 그는 찾지 못했다. 오늘 하루도 안개가 자욱하게 낀 산길을 걷는 것 마냥 무작정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휴, 담배 좀 나가서 피워요!”
문을 열고 한 아가씨가 들어왔다. 코를 틀어막고 핀잔을 주는 그녀는 블라인드를 홱 걷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강한 햇살이 사무실 안을 환하게 메우자 어둠에 익숙해 있던 병옥은 손으로 눈을 가렸다.
“벌써 왔나?”
“어휴, 이 술병 좀 봐! 형부! 제발 술 좀 드시지 마세요!”
그녀는 검은 봉지에 빈 병을 집어넣으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병옥은 테이블을 치우는 여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금은 떠나 있는 아내의 동생, 처제였다. 발랄하고 생기 넘치는 이 여인은 현재 병옥을 도와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원래 공무원이었던 그녀는 형부인 병옥의 일을 돕기 위해 스스로 안정된 직장을 그만 두고 이곳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올해 서른 한 살인 그녀는 아직도 미혼으로 혼자 남은 장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병옥은 자신의 일을 도와주고 응원해 주는 그녀와 장모님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는 동시에 죄책감도 느끼고 있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잃어야 했던 그는 6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장가를 간 그는 예쁜 딸아이를 낳아 알콩달콩 살 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삶이 이렇게까지 나락으로 떨어질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병옥은 담배를 재떨이에 꾹 눌러 껐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시간은 어느덧 9시가 다 돼가고 있었다. 바깥은 출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하고 있었고 도로에는 크고 작은 자동차들이 쉴 새 없이 달리고 있었다.
술기운 탓인지 속은 쓰렸고 머리는 두통으로 심하게 지근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년 전 딸아이와 함께 갔던 놀이공원의 꿈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된 그 날을......
모든 것이 사라진 그 사건 이후, 6년 간 이 악물고 맨몸으로 쌓아올린 그의 성과물은 지금 조금씩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가족과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던 그 시절은 이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 그에게 남아 있는 건 지독한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고통 뿐 이었다.
“이제 일하러 가야지.”
한동안 바깥 풍경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병옥이 불쑥 말했다.
“형부, 어젯밤에나 대구에서 올라왔잖아요.”
외투를 챙겨 사무실 문을 나서려는 병옥을 처제가 제지하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대구에서 일어났던 한 청소년의 의문의 실종을 해결하는데 두 달 가까이 거의 쉬지 않고 매달렸다. 이제 40대인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탈진되어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럼 아침식사라도 하시고 가세요.”
아무 대답 없이 문고리를 잡는 병옥을 보며 애타게 말했다. 처제는 그가 너무 불쌍했다. 한 때 자신이 짝사랑했던 남자. 그가 언니와 결혼한다고 집에 찾아왔을 때 웃으며 반겼지만 2층 방에 올라가 정말 많이 울었던 자신...... 하지만 옆에서 행복하게 사는 병옥과 언니를 바라보면서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두 자매에게 듬직한 병옥은 실로 고마운 존재였다. 그런 그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누구보다 그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그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억지로 견디며 살아가는 병옥을 보는 것이 속으로 무척 괴로웠다.
“형부, 제발 몸 생각 좀 하세요! 정말......”
처제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다가 죽을 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처제의 호소에도 아무 말 없이 병옥은 문고리를 돌렸다. 문을 열고 나가면서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일하는 게 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