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장편 1987 - 4

2010.11.22 00:0311.22

4

내 방의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절대로. 난 어둠 속에 잠드는 걸 두려워한다.

불빛이 없으면 난 꿈을 꾼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 지독히 나쁜 꿈들이다. 난 언제부터인가 깊게 잠들지 못하고 설익은 수면에 익숙하다. 깊게 잠들면, 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다. 악몽을 꾸고 난 다음 불빛이 없으면, 난 자살을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날 밤, 난 꿈을 꾸었다.
그건 내가 첫 전투를 나갈 때의 꿈이었다. 난 손에 경찰서에서 훔쳐낸 칼빈 소총을 쥐고 있고 떨리는 손으로 탄약을 건네받고 있다. 탄약을 건네준 사람은 우리 학교 국사 선생이다. 그는 왼쪽 눈을 붕대로 감고 있고 그 붕대 안에서는 피가 배어나오고 있다. 내가 꿈에서 묻는다.

‘꼭 싸워야 하나요? 그냥 군인들이 하라는 대로 하면 안 될까요?’

국사가 내 손을 쥐며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혁명은 피를 먹고 자란다.’
‘그건 대답이 아니에요.’
‘파시스트와의 전투에서 용서란 없다.’
‘제가 묻는 건 그런 게 아니잖아요?’

갑자기 총소리가 난다. 국사 선생의 머리가 팍, 하며 터진다. 튀어나온 안구가 내 머리에 부딪친다. 국사 선생의 남아있는 입술이 말한다.

‘잊지 마라. 우린 죽어서도 혁명의 승리를 기다린다. 그건 너희가 이루어야 할 몫이다.’

난 탄약을 칼빈 소총에 끼워 넣는다. 저기 멀리서 군인들이 다가오는 게 보인다. 난 조준을 한다. 탕. 총알이 군인을 향해 날아간다. 맞지 않는다. 탕. 맞지 않는다. 탕. 난 계속해서 쏘지만 군인들은 상관없이 다가온다. 더 이상 총알이 나가지 않는다. 난 울기 시작한다. 용서를 구한다. 얼굴이 까맣게 칠해진 군인들이 서서히 다가온다. 칼을 들고 내 손가락을 자른다. 내 발가락을 자른다. 조금씩, 조금씩 난 작아져간다. 내 성기를 자른다. 내 고환을 자른다. 내 배를 가르고 창자를 꺼내기 시작한다. 난 계속 구걸한다. 용서를, 용서를.
그러다가 장면이 바뀐다. 광주다. 내 앞에 나의 상관이 서있다. 그리고 그 옆에 꼬마여자애가 눈가리개를 하고 앉아있다. 아이의 손에는 무전기가 들려있고 그 무전기는 아이의 손에 테이프로 감겨있다. 상관이 말한다.

‘인민의 적. 괴뢰 파시스트에게 몸을 판 더러운 씨발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런 거잖아요? 살기 위해, 먹기 위해.’
‘괴뢰들의 간첩. 혁명군에게 성병을 옮기고 정보를 캐내 괴뢰와 내통한 인민의 해충.’
‘그 무전기는 작동도 되지 않는 다고요. 제발, 제발.’
‘즉결처분. 인민의 이름으로.’
‘그만.’

난 상관에게 총을 쏜다. 상관은 사라진다. 난 아이의 눈가리개를 벗겨낸다. 아이는 나를 보며 웃는다. 아이의 눈가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아이는 자신의 눈알을 뽑아내서 저글링을 하기 시작한다. 눈알이 아이의 손바닥에 내려앉을 때마다 핏자국이 남는다. 난 비명을 지른다.

난 꿈에서 깨어난다. 사우나에 있는 것처럼 온 몸이 땀으로 젖어있다. 꿈이다. 난 안도한다. 그런데, 내가 깨어난 이곳이 어쩐지 낯설다. 여긴 내가 잠들었던 곳이 아니다. 여긴 무언가, 좀 더 어둡고, 좀 더 음산하고, 좀 더 응축된 어딘가이다. 소리가 들린다. 스피커 소리다.

“일어나셨습니까?”

난 소리가 나는 쪽을 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 방의 크기가 얼마인지도 보이지 않는다.

“누구야?”
“놀라셨군요. 이해합니다. 워낙에 급작스럽게 진행된 일이라서.”
“여긴 어디야?”
“긴장하지 마십시오. 그래봐야 기지 안의 어딘가입니다. 일단 숨을 좀 돌리고 나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난 이마의 땀을 훔치며 공간 안을 살펴본다. 내가 잠든 사이 날 이곳에 가져다 놓은 것 같다. 자세한 건 모르겠다. 이제 들어보면 알겠지.

“저흰 남조선 혁명군 군사위원회 소속 제7분과입니다. 제7분과가 무슨 일 하는 곳인지는 아시죠?”

알고 있다. 거긴 일종의 정탐부대지. 혁명군 내에 스파이를 색출하고 정부군 안에 정보요원을 박아서 정보를 캐오는, 일종의 정보부서.

“내가 스파이로 고발된 거요?”
“그렇게 생각되십니까? 하긴 저희가 그런 쪽으로 좀 악명이 높기는 하지요. 이해합니다.”
“그럼 뭐요?”
“보고서에 쓰인 대로 성격이 급하시군요. 좋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어제 김 상좌에게서 어떤 얘기를 들으신 걸로 압니다.”
“결국 그거군. 들은 것도 죄가 되는 건가?”
“너무 빨리 가십니다. 좀 천천히 가십시오. 들으신 건 확실하십니까?”
“그렇소.”
“알겠습니다.”

스피커 뒤로 누군가와 대화를 소리가 들린다. 감이 멀어서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다.

“얘기를 들으시니 어떻습니까?”
“하, 지금 내 소감을 묻는 건가?”
“그렇습니다.”
“행복해서 죽을 지경이오.”
“재미있는 분이시군요.”
“너무 행복해서 오늘 자살을 할까, 아니면 내일 할까, 고민 중이오. 당신들은 어떻소?”
“저희야 그런 걸 가질 자격이 없지요. 소감 같은 건 저희 윗분들이 느끼시는 거고 저흰 그저 보고를 드리고 명령을 받을 뿐입니다.”
“그럼 내 소감은 왜 묻는 거지?”
“일종의 심리테스트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십시오.”
“날 여기 처박은 이유나 빨리 말해.”  

순간 스피커가 꺼진다. 정적. 귀를 솜으로 막은 듯한 날카로운 정적이 흐른다. 저 사람들은 어제 내가 주인장하고 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런 이야기는 충분히 교수형감이다. 주인장은 이미 체포되었을 것이다. 이미 처형이 집행되었을 지도 모르지. 다시 스피커가 켜진다.

“김 상좌는 죽었소?”
“예? 왜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지금 이 상황, 내가 어제 김 상좌하고 한 얘기 때문이잖아? 그럼 김 상좌가 무사할 리가 없을 텐데.”
“김 상좌님이 그런 얘기를 드린 건, 저희가 시켰기 때문입니다. 일을 시켜놓고 죽이면 좀 이상하지요.”

뭐?

“긴 설명은 드릴 필요가 없을 것 같고, 사실 이렇게 소좌님을 모신 건 부탁이 있어서입니다.”
“부탁? 명령이 아니고?”
“부탁입니다. 그러니까 공식적인 명령은 아닙니다. 공식적인 명령이 될 수가 없지요, 이런 일은.”

무슨 소리야?

“어제 얘기를 들어서 아시겠지만 북은 이미 전두환 장군과 휴전협상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이 되면 구체적인 내용까지 발표가 될 겁니다. 남조선 혁명군은 자체적인 무장해제를 하고 북으로 소환될 겁니다. 북에서는 이미 우리 혁명군이 잠시 머물면서 사상재무장을 받을 수 있는 수용소까지 물색해 놓은 상태입니다.”

수용소. 수용소로 가는 구나.

“물론 북에서는 잠깐이라고 할 겁니다. 하지만 저희가 입수한 정보로는 최단기간이 5년, 장기기간의 경우 제한이 없습니다. 수용소장이 사상적 완결성을 인정하기 전에는 아무도 그 수용소를 나오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혁명군 상층부부터 말단 소총수까지, 모조리 다. 아시겠지만 이건 매우 치욕적인 상황입니다. 우리 혁명군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래서? 집단 자살이라고 할 거요?”
“그러기엔 너무 화가 나있는 상태지요. 우린 다른 계획을 구상했습니다.”

계획? 구상?

“전두환을 암살하기로 한 겁니다.”

스피커의 소리가 잠시 멈춘다. 난 소리가 나는 쪽을 응시한다. 저 스피커 뒤의 사람은 지금 나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말에 대한 반응을 기다리는 것이다. 비웃어야 할까? 아니면 어이가 없어야 할까? 욕을 퍼부어야 할까? 스피커에서 작은 잡음이 들려온다. 굉장히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다.

“전두환을 죽인다?”
“맞습니다.”
“갑자기 왜 이런 계획이 나온 거지?”
“괴뢰 정부에서 자기들의 수괴가 암살된 판국에 휴전을 하기에는 어려울 것입니다. 부산에 모여 있는 극우 파쇼들이 입을 모아 전쟁을 선동할 거고 그럼 북도 어쩔 수 없이 교전 상태를 유지해야 할 겁니다. 이 계획은 아직 혁명군 수뇌부도 모르고 있습니다. 오로지 7분과에서 단독으로 구성하는 작전입니다.”
“북에서 우리의 의도를 모를까?”
“우리 혁명군은 협상 과정에 대한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전투 행위를 한 것으로 보고를 할 것입니다. 어차피 휴전이 물 건너가면 북도 우리가 필요할 겁니다. 그럼 우리에게 행동을 취하기가 힘들죠. 성공여부가 중요합니다. 성공하고 나면 뒷 상황은 저절로 흘러가게 됩니다.”

저절로 휴전은 깨어지고 저절로 전쟁이 이어지는 상황. 그래서 전두환을 죽인다. 전두환을. 미친 얘기다.

“미쳤어.”
“보기 나름입니다.”
“전두환을 죽이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전쟁이 계속 될 겁니다.”
“계속 될 거야. 영원히. 저 쪽이나 이 쪽, 둘 중에 하나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래서요?”
“10년, 아니 20년 동안 전쟁을 하게 될 거야.”
“그럴 지도 모르죠.”
“그러고 나면 이 땅에 뭐가 남을 것 같아? 아무 것도 없어.”
“이미 이 땅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재건이 필요할 겁니다. 1987년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재건. 50년, 아니 100년이 걸릴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해야 하고 결국 해낼 겁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압도적인 승리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휴전은, 그 압도적인 승리를 가로막는 덫일 뿐입니다. 달콤해 보이지만, 결국 우리들의 혀를 자르게 될 날카로운 덫.”

침묵. 긴 침묵. 그리고 난 다시 말을 한다.

“어떻게?”
“어떻게 죽이냐는 말씀입니까?”
“그래, 어떻게.”
“그 부분은 좀 설명이 필요할 겁니다. 일단 소좌님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여태껏 10년 동안 혁명군 아무도 못했던 일이 이제 와서 가능하다는 소리요? 그럼 왜 그 전에는 못했지?”
“절박한 사유가 없었지요. 이제는 있습니다. 남조선 혁명전위 자체의 생존이 달린 문제니까요.”
“차라리 평양 주석궁을 폭파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게 오히려 접근하기는 훨씬 수월할 텐데. 북의 주석이 죽어도 휴전은 물 건너가잖아.”
“그 부분에 대해서도 협의를 했습니다만, 기각됐습니다.”
“왜?”
“마지막 남은 혁명의 보루를 희생시킬 수는 없다는 거죠.”
“혁명에 대한 양심 때문에 못 하겠다?”
“비슷합니다.”
“웃기고 있네.”

침묵.

“생각할 시간이 있나?”
“없습니다. 지금 결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침묵.

“내가 몇 번째지?”
“중요한 사항입니까?”
“그냥 묻는 거야.”
“궁금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여섯 번째 지원자입니다. 그냥 참고삼아 말씀드리자면 네 번째 지원자는 가짜로 동의를 하고 나서 북에 이 내용을 알리려 했습니다. 위성 중계시스템으로 평양과 교신을 시도했지요. 하지만 우리 7분과도 그렇게 무능하지는 않습니다. 교신 전에 체포, 처형되었습니다.”

요컨대 선택은 둘 중에 하나라는 이야기다. 받아들이든지, 처형당하든지. 선택? 이게 선택이 될 수 있을까?

“하겠소.”
“감사합니다. 구체적인 방안은 1주일 후에 브리핑될 겁니다. 그 때까지는,”
“그 때까지는?”
“모쪼록 편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스피커의 소리가 꺼진다. 희미하던 불빛도 꺼지고 암흑이 시작된다.

“안 돼, 안 돼, 불 끄지 마. 어서 불 켜, 이 개새끼들아.”

난 소리친다. 그 소리가 방 안을 울린다. 난 입을 다물고 이를 지그시 깨문다.
전두환을 죽여라. 그래서 전쟁을 이어나간다. 난 머릿속으로 이야기와 이야기들, 사건과 사건을 연결시킨다. 잘 되지 않는다. 잘 될 리가 없다. 하지만 해 나간다. 난 모든 정보를 내 머리 안에서 정리시킨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한다. 난 공포를 몰아내려 노력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아니 그러면 그럴수록 내 머리 안의 공포는 점점 커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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