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중편 스치듯 인연 <5>

2011.01.03 20:5001.03


2010.08.24

진형은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렇다. 그런데 연애에 있어서는 단점이 꽤나 있는 것 같다. 그걸 단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나도 그와 비슷한 점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특징을 단점이라고 꼬집어 말하고 싶다. 분명히 문제가 있다. 진형의 단점을 이야기하는 건 내 단점을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난 풋내기였던 거다.

진형씨도 연애에 있어 그런 편인 것 같다.


진형이 내 문자에 답을 안 하고 있다. 카페에서 작업 할 건데 시간되면 들르라는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다. 여기 이 카페는 진형이 연습실에서 일을 하러가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길에 있다. 문자에 대한 답도 없고 이 길을 지나가지도 않고 있다. 며칠을 기다려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싶다. 애가 타지만 안달하진 않기로 한다. 늦더위가 가고 이제 찬바람이 분다. 적당히 비도 내리고 좋다.

진형이 어쩌면 나에게 마음을 닫아 버린 것 같아 불안하기만 하다. 수 만 가지 생각에 사로잡히긴 싫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만 몇 천 가지 생각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다간 골로 가는 수가 있다. 진형에게 전화를 건다.

“어!”

“아, 깜짝이야.”

신호음 한 번이 채 울리지도 않았는데 전화를 받는다.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란 소리를 낸다.

“어, 왜? 지금 바빠!”

“어. 그... 그래. 아, 알겠어.”

“왜?”

“어. 아니 혹시 내 문자 봤어?”

“어, 나 머리하고 연습하느라고 못 봤어.”

“어. 그래. 알겠어......”

“어~.”

나한테 마음을 닫았구나. 진형의 목소리는 너무 밝았다.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밝은 건 이제는 너랑 상관없어졌기 때문이야. 이제 상관없었으면 좋겠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순식간에 전화통화가 이루어졌다. 정신이 많이 없었다.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중얼중얼 혼잣말을 해댔다.

집에 도착해서는 절대로 전화기를 붙들고 있지 말아야지. 헛된 기대하다가 혼자 수 만 가지 생각에 휩싸이지 말아야지. 이러다가 어쩌면 연락이 올 수도 있긴 할 텐데. 주 말까진 좀 기다려볼까. 아니, 이렇게 끝나고 말건가. 그래. 여기까지 한 것도 나에겐 좋은 경험이었고 진형이 내게 준 것들이 많아 고마워. 일이 끝나는 시간에 전화가 올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기대하진 말자. 자자.



2010.08.25

연락은 없었다. 아무래도 정말 여기까지 인가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차라리 낫다. 기대하지 말자. 모든 건 시간이 해결 해 줄 테니까. 이렇게 생각해도 초조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이렇게라도 생각해서 그 초조함을 덜어줘야지. 정말 여기까지일까. 연락이 올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진형과 이렇게 끝이라고 해도 다음에 만나는 사람, 새로운 사람들한테는 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진형한테 했던 실수들, 그 전에 해왔던 실수들을 반복하고 싶진 않다.


2010.08.30

25일 밤, 진형을 만났다. 그리고 26일 저녁엔 문자도 주고받았다.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진형과 함께 있을 수 있었다. ‘만나니 좋다’ 그 날 저녁, 진형에게 문자를 보냈다. 진형은 한 동안 연락하지 않을 거라는 답장을 전해 온다. 입시가 한 달 밖에 남지 않은데다가 집중할 시기인 것 같다고 한다. 예전에 나라면 상대의 의견을 존중해주기 위해 연락을 끊자는 말에 아주 따뜻하게 그러자고 수긍해줬을 것이다.  

그러나 뒤틀린 배려는 이제 하지 않을 거다.

‘계속 만나고 싶어’, ‘너를 통해 알게 된 것들이 많아. 그래서 연락하고 싶어’, ‘너가 일 하는 곳에 가면 너를 만날 수 있을 거고 그러면 연락을 끊을 수 없게 되는 거잖아’ 여러 통의 문자로 진형의 마음을 되돌려 놓고 싶다. 붙들고 싶다. 답이 없다.

답장이 오지 않을 것 같아 숨을 고른다. 그때, 문자가 도착한다.

‘부탁할게. 입시 끝나면 연락할게. 한 달 밖에 안 남았어’

이제 난 뭐라고 말 할 수 있는 거지? 알겠다고. 기다리겠다고 그렇게밖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진형이 나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믿으면서 한 달을 보낼 거다.


25일,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몇 명의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있던 중이라 그 근방의 친구들과도 연락을 안 하게 됐었는데 한 달 만에 친구를 만난다. 희한하게도 친구는 내가 진형을 만나면서 알 게 된 것들과 비슷한 앎이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가 얼마나 상처받은 영혼이었는지, 얼마나 주변 사람들을 배제시키며 살아왔는지 알게 된 것이다. 이 깨달음의 시기가 이리도 비슷하다니 하며 놀라워하고 기뻐하고 한편으론 갑갑해했다. 이런 대화를 하면서는 진형씨가 계속 생각이 났다. 지금도 생각이 난다. 그런데 이제 한 달 간 만날 수도 연락할 수도 없으니 이런 글을 쓰는 게 안 내킨다. 진형씨를 당분간 잊고 있어야 한 달 간 바르게 마음을 다스리고 있을 수 있다.

상처 치유도 안됐으면서 상처 받은 적 없는 사람인 양 행세하다가 오히려 상처 받은 걸 없었던 일로 만들어버리기 급급했고 또 반면에 나와 같은 상처가 있다는 것이 확인된 사람이 아니면 만날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 꽉 막힌 사람이 바로 나였다. 거의 십년 동안 사귄 친구들은 나와 비슷하게 가족으로부터나 자신이 속한 그룹에서 분리된 경험을 가진 이들이었다. 비정상으로 낙인찍혀 지내다가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고 결코 우리가 비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서로에 대한 지지와 사랑이 커져갔다. 그게 긍정적으로 작용한 점이 크지만 밖을 향해서는 꾸준히 담을 쌓고 있었던 거다.

자기 상처를 드러내지 못해서 안달 난 사람을 보면 질겁한다. 분명 그런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긴 하다. 비밀을 하나 씩 서로 털어 놓으며 친구가 되는 미국영화의 한 에피소드의 그 인물들은 이상하진 않지만 여전히 나약한 인간상이었다. 거부당한 기억, 상처가 있었다는 것조차 소위 시원하게 넘겨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그런데 사랑은 모르겠고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만 있으려다보니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관계에 대한 이상한 이상향과 낯선 상대에 대한 단정 짓기를 그만둬야 했다. 벗어 날 필요가 있다.

내 얘기를 하지 않는 게 상대를 배려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배려를 하다 보니 나도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들어줄 거란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고 점점 혼자인 것이 편해졌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어느 새 서로 기대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해졌다. 그런 물살을 누구하나 거스르기 힘들었다. 상대에게 힘들단 얘기를 하는 건 배려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안일해 보이는 것이다. 친구에게 어떤 기대를 하는 사람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이상주의자가 되는 것이고 상대를 지치게 하면서 결국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진형이 나에게 마지막으로 화를 내고 이틀 뒤, 내가 스미마셍을 남발하는 일본인처럼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고 그제야 그렇게 산 세월을 세어 봤다. 그리고 그렇게 된 이유를 생각해봤다.

진형, 내 얘기 좀 들어줄래? 내가 준 DVD는 어떻게 봤을까?

진형은 한 달 동안 날 안보고 지낼 수 있을까? 아니, 그 사이에 연락이 올 것 같다.


오랜 대화를 마치고 친구에게 진형이란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사람 때문에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진형 생각이 더 많이 났다. 나에게 화가 나 있는 진형에게 연락을 해보고 싶었다. 문자를 보내려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난 뒤에야 문자를 보낼 수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고 있고 너를 통해서 관계에 대한 생각이 변하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답장을 기대를 하면 안 되는 거였다.

“너 전화 온다.”

“내꺼 아니야.”

내 휴대전화가 진동한다. 진형이다.

“왜 우리 술집 안 오고 다른 데 있어?”


친구와 함께 진형이 일하고 있는 술집에 갔다. 진형이 일을 마치고 나서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함께 놀았다. 함께 있는 내내 진형은 장난스럽게 계속 나를 구박하고 나무랐다. 애정 없는 말 같지 않았다. 다음 날 진형은 한 달간 연락하지 않겠다고 했다.



2010.08.31

헉! 새벽 다섯 시에 전화기가 진동한다. 헉! 진형이다!

놀라서 정신없이 휴대전화를 집는다. 꽂혀있던 이어폰을 뽑아버린다.

“여보세요?”

끊긴다.

전화를 하자마자 괜히 걸었단 생각 때문에 전화를 끊은 걸까? 다시 내가 걸어 볼까? 내가 전화를 걸었다가 오히려 진형이 부담스러워하면서 전화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역시 내가 보고 싶었던 것 같긴 한데 왜 그냥 끊어 버렸을까?

잠이 다 달아났지만 생각에 잠기기만을 바라는 사람처럼 새벽 내내 그러고 있을 순 없어서 잠을 청했다.


새벽 여섯시, 전화 벨소리! 진형이다!

“여보세요?”

“어.”

“어!”

“내 전화에 깼지?”

“아니야, 좀 깨어 있었어.”

“아니잖아. 내가 전화해서 깨운 거잖아.”

“아니야. 좀 깨어있었어.”

“아까...... 내가 전화했을 때 전화 안 받았잖아.”

“아니야. 받았는데 너가 끊어서.”

“아닌데, 너가 끊었어. 그래서 난 너가 자고 있어서 끊은 줄 알았는데.”

“아, 그래?”

“응.”

“안녕? 반가워.”

“흣, 그래. 반가워.”

“전화 잘 했어.”

“아, 술 마시고 지금 약간 취해서......”

술을 마셨건 어쨌건 반가운 전화이긴 하다. 언니는 부모님 집에 내려가 있다고 한다. 밖에서 친구랑 술 마시다가 한 잔 더 하고 싶어서 맥주 캔을 사들고 집에 왔다고 한다.

“원래 전화하면 안 되는데.”

“왜 안 돼. 잘 했어.”

진형은 망설이다가 묻는다.

“너한테 난 어떤 사람이야?”

그리고 또 질문한다.

“근데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 해도 될까?”

“안 될 게 뭐가 있어. 해.”

그런데 진형은 망설이기만 하고 말을 하지 못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자기 집으로 오지 않겠냐는 말을 주저하며 내뱉는다.

“그래. 갈게.”

“이렇게 술 취해서 사람 부르는 거 좀 아닌 것 같고 술 깨고 나서 자책할 것 같애.”

“난 괜찮은데 너가 자책할까봐 못 가겠다. 어떻게 할까? 술 취해서 오라고 했던 것도 기억  못하고 그러는 거 아니야?”

“아니야. 술에 취하긴 해도 기억 안 나도록 마시지는 못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진형은 몇 번 더 망설인다. 그러더니 결국 하려던 말을 하지 못하고 오라는 말만 내뱉었다.


새벽 여섯시, 찬 물에 오들오들 떨며 재빨리 몸을 닦아내고 무슨 옷을 입을지 아주 잠깐 많은 고민을 하다가 거지같은 옷을 하나 골라 입는다. 이 시간이면 버스가 다니고 돈도 없으니 택시를 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고 걸리는 시간도 매 한가지일 테지만 아무렴 택시가 빠르고 진형의 집에 얼른 닿고 싶은 마음을 담기엔 택시가 버스보단 낫지 않겠는가. 택시를 잡아탄다.

젖은 머리칼이 새벽 찬 바람에 날리는 기분도 좋고 양화대교 너머의 뿌연 공기 사이사이에 회색의 도시 건물들도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왜냐면 그 뿌연 것들 때문에 노랗고 빛나는 해가 좀 더 아름답고 청초해 보인다. 이제 곧 도착이다. 진형은 내가 도착하면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다가 날 껴안아 줄까? 바닥에 있는 매트리스는 치워놓고 자연스레 한 침대에 눕게 될까? 그리고 전화로 하지 못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줄까? 며칠 동안 우리가 연락하지 않았던 게 이상하지 않은가? 이렇게 서로를 보고 싶어 하고 있지 않은가?


택시에서 내려 전화를 건다.

“여기 참기름 집 앞이야. 어떻게 가면 되지? 응. 골목으로 들어가서 좌회전, 우회전. 응. 모르면 다시 전화할게.”

다세대 주택가에서 진형의 집을 기억해내서 찾아가는 건 쉽지 않다. 두 번 정도 통화를 더 하고 나서야 겨우 진형의 집을 찾는다. 진형이 옥상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를 따라 진형의 옥상 집에 도달한다. 옥상에서 나를 부르던 진형은 어느 새 방에 들어가 누워 있고 나더러 문을 잠그고 들어오란다.

“토하고 나서 술 다 깼어. 진짜 왔네?”

장난스런 진형이다.

“왜 왔어?”

그런데 계속해서 해대는 말은 장난이 아니다. 전화 속 연인은 온데간데없다. 이러쿵저러쿵 투덜대기 시작한다.

“나 자야 돼. 잘 거야. 아, 왜 왔어. 가.”

화장실로 가려고 일어나는데 진형이 이번만큼은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 같다. 투덜거리려다 실수로 자기 마음을 말해 버리고 만 것이다.

“요즘에 내가 연락안하니까 심심했지?”


화장실에 다녀오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진형이 잠들어 있다. 진형의 품에 파고들까도 했다가 그건 아닌 것 같아 침대 위로 올라가 잠을 청한다. 조금은 시끄러운 옆 집 사람 때문에 뒤척이긴 했지만 빛이 차단되는 집에서 달콤하게 잠이 든다. 자는 동안 꿈을 네다섯 개 정도 꾸었다. 하나 기억에 남는 꿈은 진형의 집에 있었는데 진형의 무서운 레즈비언 친구들이 나를 때리러 온 꿈이었다.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는데 내가 움직이는 소리에 진형이 파닥 거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너 언제 와 있었냐?”

전화 속 연인은 온데간데없다. 투덜거리는 것을 시작했고 그 다음으론 자기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그러나 정작 나에게 하려고 하던 얘기는 없었다.

“내가 원래 전화로 너한테 무슨 말 한다고 했었지?”

“응. 무슨 말 하려고 했는데?”

대답이 없다. 한 참을 TV에 빠진 척 하고 있다.

진형이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 나에게 할 말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전화 통화에서 진형은 분명히 만나서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말을 하려다 말고 나에게 오라고 했었다. 그런데 직접 만난 진형은 우리가 과연 그런 통화를 하기나 했었는지를 의심하게끔 만들었다. 나에게 너무나 심하게 굴고 있다. 나에게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 사과하고 싶은 마음보다 나에게 심하게 말하는 것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앞선다. 계속 가라고 하질 않나. 진형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기나 했었는지 새까맣게 잊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한데 나 정말 자야하는데 내가 너한테 오라고 하기도 했고 가라고 하기도 미안하지만 자고 연습하러 가야 되서. 너가 있으니까 잠도 못 자겠고.”  

또 내가 무슨 생각이 모자라서 진형의 깊은 뜻을 못 알아주고 있는 걸까? 진형이 왜 이러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다.


쫓기 듯 집을 나서는데 진형은 누워서 뒹굴 거리며 자책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내가 새벽에 전화하면 받지 마.”

“몰라.”

“알았어. 내가 전화 안 할게.”

신발을 다 신고 돌아선다.

“아, 내가 되게 미안하다. 오라고 해놓고는.”

오라고 한 것 때문에 미안해하는 게 더 이상하다. 새벽에 그렇게 달려간 거에 대해서 미안해 할 건 없다. 나도 보고 싶었고 진형도 분명히 그랬던 것 같다. 다만 정작 집에 도착했을 때 전화 통화 했던 사람이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맞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홀대하고 냉대한 그것에 대해서 미안해했음 좋겠다. 그런데 일부러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미안한 내색을 하지 않고 오라고 해서 미안하다는 말, 술 취해서 오라고  한다고 정말 오느냐는 말만 반복한다. 내 표정을 제어하기 힘들어 지기 시작한다.

나가려고 하는데 젠장, 문이 열리지도 않는다.

“어? 너 내가 어제 문 잠그라고 했을 때 어떤 거 잠갔어?”

“어? 기억 안나. 안 잠겨서 못 잠갔던 것 같은데.”

“큰일 났다. 이거 잠근 것 같은데?”

쿵쿵 거리며 문을 열려는 사투가 벌어진다. 이런 해프닝 때문에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한 서운함이 모두 사그라질 수 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문이 열리지 않아 어이없다는 듯 서로 껄껄 웃으며 문이 고쳐질 때까지 서로 다정히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문이 열린다.

“나 갈게.”

서운하다. 진형의 집 골목을 벗어난다. 전화기가 진동한다.

진형은 자기의 사과를 받아달라고 했다. 내가 자처해서 간 거기 때문에 오라고 한 것에 대해서 미안해하지 말라고 한다. 조금은 차갑게 응대했다.

“미안해. 오라고 해서.”

“뭐 어쩔 수 없지. 이미 그런 일이 일어난 거고. 미안해하지 마. 자야 된다며. 자.”

“어쩔 수 없긴 없지. 그런데 어쩔 수 없다고 다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어? 그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해버리고 말면 가만히 두면 뭐가 되겠어? 어? 아, 아니야. 아, 나 지금 술 덜 깨서 횡설수설 한다. 근데 어쩔 수 없긴 하지.”

“그래. 암튼, 내가 자처해서 간 거니까. 그냥 자렴.”

“사과하는 거야. 미안해. 내 사과를 받아줘.”

“싫어.”

“알겠어.”

“아! 아니야. 알겠어.”

“알겠다고.”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알겠어.”

“아... 그래. 알겠어. 자.”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렇게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진형의 마음이 뭔지도 모르겠고 이제는 서운한 마음이 진형을 보고 싶어 하던 마음보다 커져 버렸다. 또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는 걸까? 어렵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456 장편 추적追跡 - Chapter 1. 인과응보因果應報 [File 9] 최현진 2011.06.12 0
455 장편 추적追跡 - Chapter 1. 인과응보因果應報 [File 8] 최현진 2011.05.29 0
454 장편 추적追跡 - Chapter 1. 인과응보因果應報 [File 7] 최현진 2011.05.29 0
453 장편 추적追跡 - Chapter 1. 인과응보因果應報 [File 6] 최현진 2011.02.13 0
452 장편 추적追跡 - Chapter 1. 인과응보因果應報 [File 5] 최현진 2011.02.13 0
451 장편 With 7 -01- 湛燐 2011.02.05 0
450 중편 스치듯 인연 <6> 김유리 2011.01.03 0
중편 스치듯 인연 <5> 김유리 2011.01.03 0
448 중편 스치듯 인연 <4> 김유리 2011.01.03 0
447 중편 스치듯 인연 <3> 김유리 2011.01.03 0
446 중편 스치듯 인연 <2> 김유리 2011.01.03 0
445 중편 스치듯 인연 <1> 김유리 2011.01.03 0
444 장편 추적追跡 - Chapter 1. 인과응보因果應報 [File 4] 최현진 2010.12.25 0
443 장편 추적追跡 - Chapter 1. 인과응보因果應報 [File 3] 최현진 2010.12.25 0
442 장편 추적追跡 - Chapter 1. 인과응보因果應報 [File 2] 최현진 2010.12.19 0
441 장편 추적追跡 - Chapter 1. 인과응보因果應報 [File 1] 최현진 2010.12.19 0
440 장편 1987 - 5 최창열 2010.11.22 0
439 장편 1987 - 4 최창열 2010.11.22 0
438 장편 1987 - 3 최창열 2010.11.22 0
437 장편 1987 - 2 최창열 2010.11.2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