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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실종된 여자 아이의 이름은 박은영이었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인 은영이는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놀다가, 오후 4시 경에 학교를 떠났다고 친구들이 증언했다. 하지만 불과 4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집에 은영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은영이의 부모는 대전역 근처에서 꽤 잘 나가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가 모두 식당일에 매진하고 있는 터라 자연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은영이는 평소 때처럼 학교에서 놀다가 빈 집으로 혼자 돌아가던 길이었다.



은영이를 위해 남편보다 일찍 귀가한 은영이의 엄마는 오후 7시가 다 돼가는 데도 아이가 돌아오지 않자 무슨 큰일을 당하지 않았나 싶어 걱정스러운 마음에 은영이의 친구들에게 은영이의 소식을 물었지만, 모두들 은영이가 오후 4시경에 집으로 돌아갔다는 얘기뿐이었다.



결국 다음 날까지도 은영이는 돌아오지 않았고 서둘러 은영이의 부모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냈다. 각종 흉악한 범죄가 판치는 세상인지라 딸아이에게 무슨 끔찍한 일이 생기지 않았나 하는 걱정에 은영이의 부모는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한 채 딸아이의 사진이 담긴 실종 전단지를 여기 저기서 나눠주며 딸아이의 행방을 찾는데 온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은영이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했다. 경찰이 여론을 의식하여 전담 수사팀을 구성해, 적극적으로 은영이의 실종사건을 해결하는데 전력을 기울였으나 허사였고, 지금은 바람 빠진 풍선마냥 흐지부지 맥이 빠져 시간만 때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병옥은 은영이의 부모를 만나기 위해 대전역으로 차를 몰고 있었다. 풍족한 삶은 아니었으나, 귀여운 외동딸을 애지중지 키우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던 이 평범한 가족의 소박한 행복은 딸아이의 실종과 함께 깨진 거울처럼 산산조각 나 버리고 말았다.



은영이의 엄마는 제대로 쉬지도 못한데다 끼니도 거른 채 딸아이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탈진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였다. 아이의 아빠는 생업도 포기한 채 아이의 사진이 담긴 전단지를 나누어주며 딸아이의 행방을 찾는데 온힘을 다하고 있었다.



이렇게 부모가 딸아이를 찾기 위해 매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마냥 생뚱맞은 박제천의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악재는 항상 겹쳐 온다 했던가. 평소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남편의 친형인 박제천의 자살은 가뜩이나 정신적으로 힘든 두 사람에게 감당하기 힘든 된서리였다.



병옥은 차를 운전하면서 김 형사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은영이 가족의 안타까운 상황을 자세히 전해 들었다. 김 형사 역시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이번 사건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강력 범죄를 접해오면서 단련된 그의 무쇠신경도 이번 일에는 큰 연민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대전역에 거의 다 왔으니까 일단 한 번 만나봐야지.”



병옥은 마지막 말을 끝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통화를 끝냈다. 늘 그렇듯 이런 실종사건 뒤에는 크나큰 휴우증이 주변사람들을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경제적인 타격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감당하기 벅찬 정신적 고통이 큰 문제였다.



병옥 역시 딸아이의 실종과 함께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아직까지 찾지 못한 딸아이의 원수를 알아내기 위해 이 험한 일에 뛰어들었지만, 수 년 동안 보아온 것은 인간세상의 추악하고 더러운 일면 뿐이었다.



20대 초반부터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 취업해 지금껏 성실하게 살아온 병옥이었다. 갖은 구박과 질책을 받으면서도 늘 긍정적으로 살아온 그에게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한 여인이 거짓말처럼 다가왔다.



가정을 꾸리고 소중한 딸아이를 얻어 소박한 행복을 맛보며 살던 병옥의 밝았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었다. 늘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병옥은 이제 비관적이고 부정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것은 소박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만 보아 오다가, 상상하기조차 힘든 인간의 추악한 면모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주변으로부터 성실하고 착하다고 평가받았던 이가 사실은 8년 간 10대 초반의 아이들을 잡아다 추악한 짓을 일삼고 끝내 모두 살해했다. 그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자에게 무려 7명의 청소년들이 희생당했다.



“씨발, 안 걸릴 수 있었는데......”



얼마 전, 대구에서 발생했던 한 청소년의 실종사건의 범인이 병옥과 형사들에게 붙잡히고 나서 히죽 웃으며 중얼거리던 말이다. 이 말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형사 한 명이 그를 두들겨 패버렸다.



해가 지날수록 접하는 범죄의 수위는 상상하기 두려울 만큼 올라갔다.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병옥은 자신이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다는 후회를 늘 해왔다. 특히 3년 전 보았던 검은 시장이라는 곳은 영화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곳이었다. 설마 실제로도 그런 곳이 있는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만약 은영이가 정말 이곳으로 끌려간 것이라면 병옥은 대체 아이의 부모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제 딸아입니다. 보시면 꼭 여기로 연락주세요. 제발 부탁합니다.”



대전역 광장 중앙 근처에서 한 남자가 손에 들린 전단지 뭉치에서 한 장 한 장 전단지를 꺼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호소하고 있었다. 주자창에 차를 세우고 내린 병옥이 먼발치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깔깔거리며 웃는 한 쌍의 남녀가 은영이 아빠에게서 받은 전단지를 보지도 않고 바닥에 휙 내버리며 병옥의 앞을 홱 지나갔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신나게 웃으며 떠들어 대는 그들의 뒷모습을 찢어질 듯 노려보는 병옥의 눈빛이 분노로 이글이글 거렸다.



병옥은 길거리 여기저기에 버려진 전단지 한 장을 집어 들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 아이의 얼굴에는 누군가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안 보이는 데나 가서 버리지......”



수척한 얼굴을 한 채 전단지를 굽실거리며 나누어 주고 있는 은영이 아빠의 모습에서 자신의 참담했던 오래 전 과거가 아른아른 거렸다. 나의 고통은 나의 고통일 뿐......



언론과 인터넷에서 이번 은영이의 실종사건을 화두로 삼아 무능력한 경찰 수사팀을 비난하고 있었다. 그것만 보면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은영이를 애타게 찾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의 모습은 꼭 그렇지 않았다. 실제로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무관심하다.



은영이의 얼굴에 찍힌 발자국에서 비정한 현실의 냉기가 폐부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자신도 오래전 이런 냉정한 현실에 절망하며 괴로워했던 지난 시절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나락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지금 이 일을 시작한 것이었다.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저 아이의 아빠에게 과연 병옥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얼마 전에 해결했던 한 청소년의 실종사건 역시 그 부모에게 크나큰 고통만 안겨준 채 마무리 되었다.



이런 끔찍한 결과를 수없이 보아온 병옥이기에 이일을 하면 할수록 실종자의 부모를 만나는 것이 점점 괴롭고 힘들어졌다.



그 자리에서 병옥은 30분 동안 멍하니 선 채 전단지를 나누어 주고 있는 은영이의 아빠를 바라보다가 결국 등을 돌렸다. 김 형사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은영이의 가족이 죽은 박제천에게 얼마나 많은 신세를 져왔는지 알게 되었다.



만약 박제천이 그들과 손을 잡고 지금까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추잡한 짓을 해왔으며, 게다가 그들의 손아귀에 은영이가 붙잡혀 있는 상황이라면 병옥은 은영이 가족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줄 슬픈 진실을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을까......



병옥은 오랜 고민 끝에 지금은 은영이의 아빠를 만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속으로 결정했다. 수 년 간 이일을 해오며 수없이 많은 실종사건을 접했지만, 제대로 해결된 사건은 열에 두 세 개정도였다. 게다가 결과가 참담한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지금 은영이의 아빠와 만나더라도 제대로 건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보다 이 바닥에서 약간이나마 쌓아올린 그의 보잘 것 없는 명성이 은영이 가족에게 헛된 희망을 주게 될까봐 두려웠다.



대전역까지 차를 몰고 오면서도 신경 쓰이는 이 불편한 고민 때문에 가족과의 만남을 망설였다. 먼발치에서 전단지를 나누어 주면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호소하고 있는 은영이의 아빠를 지켜보면서 좀 더 희망적인 내용물을 갖고 찾아오는 것이 그나마 나을 것 같아, 결국 병옥은 자신의 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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