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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재 원점으로 돌아가

2020.10.09 00:5610.09

원점으로 돌아가

해망재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지라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 - 출애굽기 11:5~6

“하나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바로는 아홉 가지 재앙을 겪고도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지 않을 것을요. 그래서 하나님은, 가장 소중하고 가장 존엄한 것을, 자식을 빼앗아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해 여름, 나는 옆집 언니를 따라 언니가 다니던 교회의 여름 성경학교에 갔다. 집은 시끄러웠다. 엄마는 뒤늦게 내 동생을 임신했는데, 친할머니에게 들키면 또 죽는다며 숨기고 숨기다가 발각이 났다. 할머니가 나타나 막았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엄마는 또 친할머니에게 끌려갈 뻔 했다. 이번에도 딸이랬다고, 친할머니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엄마의 배를 걷어찼고, 엄마는 그대로 앓아누웠다.

할머니는 최씨네 핏줄은 전부 꼴도 보기 싫다며, 앉은 자리에 풀도 안 날 독한 놈들이라 역정을 냈다. 나도 최씨인데, 할머니 근처에 얼쩡거리다가는 혼이 날 것 같았다. 마침 옆집 아주머니가, 언니와 함께 여름 성경학교에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외할머니께 물어봐 주셨다. 그냥 빈둥거리는 것 보다는 교회에 가서 간식을 먹고, 성경 말씀을 듣다가 오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았다. 막상 교회에 가 보니 옆집 언니는 물론이고, 우리 반 애들도 몇 명 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장자는 아버지의 재산과 권위를 물려받는 존재였고, 짐승의 첫 번째 새끼는 제사의 제물로 쓰이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애굽에게, 그 장자들을 죽여 혈통을 끊어버리는 재앙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때 같이 놀았던 친구들 이름은 지금도 가물가물하다. 흰 장미와 백합꽃이 어땠더라는 노래도 어렴풋이 생각날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아홉 번이나 재앙을 내려도 굴하지 않던 애굽 사람들이, 집안의 첫째들이 죽어 나가자 다들 항복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놓아 주었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때때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사람들이 그렇게 자식을 소중히 여긴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처음 얻은 자식을 소중히 여긴다면, 어째서 내 위의 언니들은 줄줄이 죽어야 했을까 싶어서.

***

할머니는 무당이었다. 친할머니는 할머니가 무당이라고 엄마를 미워했고, 할머니는 친할머니가 엄마를 못살게 구는 것을 가만 두고 보지 않았다. 엄마가 동생을 낳기 한달 전, 친할머니는 화장실에 가셨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자리보전을 하고 누워서도 친할머니는 쓸모없는 계집애나 낳을 거라면 차라리 둘 다 죽어버리라며 엄마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하지만 엄마는 죽지 않았다. 동생도 무사했다. 내 위로 언니 여럿, 내 밑으로 여동생 둘을 더 죽이고 태어난 동생은, 남자애였다. 할머니는 그렇게나 손자를 보고 싶어 했지만, 엄마는 몸이 아프고, 백일도 안 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것은 무리라며 반신불수가 된 친할머니에게 결코 동생을 보여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엄마가 독하다고 수군거렸지만, 엄마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었다.

“그 귀한 손자, 버선발로 뻥 하고 걷어찬 사람이 누군데.”
“아니, 그래도 그렇지...”
“나 못 가. 지금 일어나서 집 앞도 못 나가는 거 뻔히 보면서 그래. 그때 그렇게 넘어지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내가 반병신이 되어서 허리도 못 펴고 누워 있겠어?”

친할머니는 동생이 백일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다. 손자를 보고 싶다며 눈이 붓도록 울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엄마와 아빠가 친할머니 장례를 치르러 가신 사이, 우리 집에 와 계셨던 할머니는 내게 슬며시 말씀하셨다. 

“속이 좀 시원하더냐?”
“뭐가요.”
“네 할마씨가 네 엄마에게 그리 못된 짓만 골라 했는데, 이렇게 뒈져버리니 속 시원하지 않느냔 말이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할머니는요, 나도 싫어해요?”
“응?”
“할머니는 최씨 핏줄은 꼴도 보기 싫댔잖아요.”
“계집아이가 무슨 최씨 핏줄이야. 네 아바이 말이다.”

나는 할머니가, 나는 최씨도 아니라는 듯이 말씀을 하셔서 마음이 상했는데, 할머니는 남의 속도 모르고 빙그레 웃었다. 

“마음같아서야 죽여버려도 시원치 않았지만, 그래도 네 할마씨도 불쌍한 사람 아니냐. 진짜 못 된 것들은 따로 있는데.”
“그게 누군데요?”
“누구긴 누구겠냐. 딸네미 과부 만들 수도 없으니 칵 죽여버릴 수도 없고, 저놈의 화상을...”

사실은 누굴 두고 하는 말인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하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갓난쟁이 동생은 젖병을 물고 배가 빵빵해지도록 분유를 먹다가 잠이 들었고, 나는 그날따라 유난히 다정하고 기분이 좋아 보이던 할머니의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비밀을 하나 알려줄까.”
“에...?”
“무당이라고 좋은 일만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에 눈만 깜빡거렸다. 사실은 무당도 좋은 일을 한다는 게 더 낯설었다. 학교에서는 미신을 타파해야 한다고 했고, 교회에서는 무당은 나쁜 미신을 퍼뜨리는 사람이라고 했으며, 친할머니는 할머니를 무시하고 욕하고, 무당이 사돈이라니 동네 망신스러워서 죽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다녔으니까. 

“세상에는 억울하게 죽는 사람들이 있단다. 전쟁이 나거나, 굶주리거나. 그런 사람들은 죽어도 한이 깊이 남는 법이지. 아니, 살아 있어도 제 새끼를 빼앗긴 사람들은 또 한을 품지 않느냐. 어떤 무당들은 그런 한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법이다.”
“히익.”
“이유야 무엇이 되었든, 사람을 죽이는 일이니 좋은 일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 하지만 가끔은, 세상 살다 보면 정말 참다 참다 못해 그런 일이 필요할 때가 있지 않느냐.”

문득 나는, 할머니가 정말로 친할머니를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건강하고 기세등등하던 친할머니가 갑자기 화장실에서 풍을 맞고 쓰러지고, 그렇게 안아보고 싶어 하던 고추 달린 손자가 태어났는데도 한 번 구경도 못 하고 돌아가신 것에, 할머니가 말하는 원한이라는 게 제대로 먹힌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할머니를 꼭 끌어안았다. 할머니에게서는 독한 담배 냄새와 희미한 향 냄새가 났다. 

***

몇 년 뒤 여름, 엄마는 납량특집 드라마를 보다 말고 혼자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낙태로 죽은 태아의 원귀가, 낙태 수술 중 엄마가 혼수상태에 빠지는 바람에 겨우 죽지 않고 태어난 아이에게 들러붙어 세상에 복수를 하는 내용의 드라마였다. 
엄마는 혼자 숨어 죄인처럼 흐느끼고 있는데, 아빠는 그동안 착한 사람 역할만 하던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이 의외로 아주 도발적이고 섹시한 매력이 있다며 감탄을 했다. 보다 못해 내가, 엄마를 따라 안방 문을 열었다. 엄마는 휴지 두루마리를 끌어안고 울다가, 나를 보고 말했다. 

“너, 상욱이한테는 말 하면 안 돼.”
“엄마 드라마 보다가 우는 거?”
“아니. 그거...”

나는 엄마가 말하는 게, 내 위로, 그리고 내 밑으로 있었던, 태어나지 못한 언니와 동생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드라마를 보다가 울며 뛰어들어갈 만큼 마음에 두고 있었으면서, 엄마는 왜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 그때 엄마가, 마치 물귀신처럼 필사적으로 손을 뻗으며 나를 주저앉혔다.

“엄마가 낙태한 거, 상욱이한테 말하면 안 돼. 나중에라도, 한 20년 뒤에라도.”
“...”
“상욱이한테 말하면, 엄마 창피해서 죽어버릴 거야.”
“...”
“약속 안 해?”

나는 우물거리며, 약속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조용히 방을 나섰다. 나는 지금의 상욱이만할 때 부터, 지워버릴 뻔 한 것을 겨우 살려준 줄 알라고, 네 위로 네 밑으로 못 태어난 언니 동생들이 있었다고, 그런 말들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는데. 상욱이는 뭐가 달라서 그런 걸 알면 안 된다는 걸까. 한숨을 쉬며 방문을 닫는데,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그래도 심은하쯤 되면, 에볼라 걸려도 한번 목숨 걸고 키스해 보고 싶지 않겠냐.”

***

말띠 해에 태어난 내 동생 상욱이는 엄마의 왕자님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해에, 상욱이과 같은 나이로 태어날 뻔 했던 여자아이들은 수도 없이 낙태를 당했다. 낙태야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하나 낳아 알뜰살뜰”, “둘도 많다”는 이유로 계속 있어왔다지만, 그 해에는 얼마나 많은 여자아이들이 태어나지도 못하고 낙태를 당했는지, 신문에서도 뉴스에서도 수시로 떠들어 댈 정도였다. 말띠 여자는 팔자가 드세며, 특히 1990년은 백말띠의 해인데, 백말띠 여자들은 드세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도 했다. 그런 이야기는 그때 겨우 국민학교 1학년이였던 나와 내 친구들도 다들 알고 있었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말띠 여자를 놀리는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우리는 처음에 잠깐은 같이 웃다가, 곧 입을 다물었다. 말띠 여자는 드세다며 놀리는 건, 남자애들, 그리고 남자 어른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말띠 여자만 놀리는 것도 아니었다. 용띠도 범띠도 드세서 못 써먹는다고 했고, 돼지띠 여자는 뚱뚱하다며 놀리기도 했다. 

그런 남자들이, 가끔 심각하게 여자아이 낙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다. 

“우리 반에는 남자는 많고 여자 짝은 별로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공평하게 여자 짝과 앉을 수 있는지 의논해 봅시다.”

정작 여자인 우리들은 남자애들과 앉고 싶지 않았는데, 학급 회의에 저런 회의 주제가 수시로 올라왔다. 어차피 자기들이 아무리 애를 써 봤자. 한 반 55명 중에 여자가 스물 서너 명 밖에 안 되는 이상, 남자는 남아 돌 수 밖에 없는데도. 짝을 바꿀 때 마다 남자애들은 시끌벅적했다. 여자 짝과 앉는다고 더 친하게 지내거나 잘 해 주는 것도 아니면서, 남자들끼리 앉은 친구들은 마치 뭔가 중요한 권리를 빼앗기기라도 한 것처럼 분통을 터뜨려댔다. 그리고 상욱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자, 엄마와 아빠는 이 일을 두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남자애들이 학교에 가도, 여자 짝하고 못 앉아서 그렇게 운다는 거예요. 섭섭하다고.”
“돌아가면서 그렇게 앉는 거야 어쩔 수 없지.”
“이러다가 나중에 우리 상욱이, 컸을 때 여자애들이 부족해서 결혼하기 힘들면 어떡해요.”
“걱정 마, 여자가 부족해도 잘난 남자한테는 여자들이 줄을 서는 법이야. 우리 상욱이랑 결혼하겠다고 매달리는 여자가 많아서 고민이겠지.”
“아니, 지금 신문을 봐도 말이에요.”
“거, 쓸데없는 고민은. 그런 걸로 고민하는 건, 짜리몽땅하고 못생기고 능력 없는 남자야. 우리 최상욱이야 날 닮아 잘났을 텐데, 뭘 그런 걸로 고민을 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틀린 말이, 유쾌한 농담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려왔다. 나는 못들은 체 하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때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이기적이야. 아니, 여자애가 부족해서 남자애들이 짝도 부족하고 그런데. 대체 왜 여자애들을 안 낳고 그래.”

세상에, 난 그때까지 살면서, 그렇게까지 어처구니없는 말은 처음 들어 보았다!

어쨌든 나는, 90년대 말에서 IMF를 지나도록 논술 모의고사에 걸핏하면 낙태에 대한 찬반논란이 나온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되었다. 보통 논술 모의고사에 나오는 건 사회 문제인데, 그렇게 애지중지 낳아 기른 남자애들이 학교에 갔는데 여자 짝과 앉지 못하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게 사회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 게 아니었을까. 정작 죽은 여자애들은, 태어나지도 못하고 말할 입도 없어서 학교에서 누구와 짝이 되었는지 같은 한심하고 배부른 소리는 하지도 못했는데도. 

***

내가 대학에 들어간 2002년, 학교에서는 그야말로 자유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통금시간을 지키고, 스킨십에 보수적인 여학생은 고리타분하며 재미없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았다. 자유로워져라, 개방적이 되라는 말을 들었다. 복학생 남자 선배들과, 그들과 어울려 다니던 쿨한 선배들에게서.

하지만 어떤 선배들은 우리에게 말했다. 남자 선배를 조심하라고. 걔들이 하자는 데로 끌려다니지 말라고. 우리는 선배들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다. 2002년, 월드컵의 분위기에 휩쓸려 한껏 대담해지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와 어울려 다니던 친구 하나는, 갑자기 살이 찐다고만 생각했었다. 설마 동아리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남자 선배의 자취방에서 깨어났다고 해서, 뭔가 잘못되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하게 잘못되었다. 임신이 되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기 때문에, 달리 손을 쓸 방법도 없었다. 그렇게 동기들 몇 명이 학교에서 사라지고, 또 남자 동기나 1년 위의 남자 선배들이 도망치듯 군대로 사라지고 나서야, 우리는 선배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남자 선배를 조심해야 하는지를 알았다. 그렇게 한 해 더 나이를 먹은 우리를 보고 그들은 말했다. 싱싱하지도 않은 것들이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다고.

***

낙태가 죄가 되는 줄을, 정말로 몰랐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죽여버린 죄책감이나, 윤리나 도덕의 문제라면 모를까. 정말로 낙태를 했다는 이유로 사람이 잡혀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우리 엄마의 그 윗세대들은, 그게 무슨 피임의 한 방편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라에서 끌고 다니는 낙태 버스에서 아이를 떼었다. 아니, 나라에서 끌고 가서 낙태를 시키기도 했다. 아이를 낳는 것이 죄가 되던 시절, “둘도 많다”며 강력하게 산아제한을 하던 시절의 일이었다. 아니, 1990년대 중반 까지도, 동네 보건소에서도 무료로 낙태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땅덩이는 좁은 데 사람만 많으면 큰 재난이라고, 나라에서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를 원했으니까. 

엄마 세대의 사람들은, 아들을 낳기 위해 낙태를 했다. 아니, 시댁 사람들에게 끌려가서 낙태를 당했다. 첫째는 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둘째는 대를 이을 아들이어야 했다. 셋째 아이는 태어날 때 의료보험 적용도 되지 않아서, 비싼 돈을 주고 낳아야 하던 시절이었다. 두 번의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듯이, 태어나지 못한 딸들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다.

그런 사회에서, 낙태가 죄가 될 수 있다니. 믿기지도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낙태는 정말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죄가 되기 시작했다. 멀쩡한 나라의 수도를 하느님께 봉헌한다고 헛소리를 하던 교회 장로가 대통령 자리를 차지했을 때의 일이었다. 

“고소를 당했다고?”

입사 동기인 나래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힘들게 입사했는데, 갑자기 그만둔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 같았다. 걱정이 되어 찾아갔더니, 나래는 얼굴이 반쪽이 된 채 겁에 질려 있었다.

“아니, 낙태로 사람을 고소할 것 같으면... 지금 감옥 안 간 사람이 없겠다. 말이 돼?”
“저출산 때문에, 앞으로 낙태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한다고 그랬다.”
“누가.”
“대통령이.”
“아, 미친새끼.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원래 법이 그랬대.”
“그럼, 그동안에는 왜 내버려 둔 거래? 그동안에는 왜, 우리 태어나기 전에는 나라에서 낙태를 시키기도 했다며.”

나는 화를 냈다. 나래는 나를 보며 한숨을 쉬다가, 어느 순간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터뜨렸다. 

“경찰이 산부인과를 다 털고 다닌 건 아닐 거 아냐. 어떻게 된 거야.”
“...”
“누가 널 고발한 거야, 나래야.”

그날 밤, 나래는 흐느끼다 말다 하며 띄엄띄엄 이야기를 했다. 학교 다닐 때 실수로 임신을 했다, 남자친구에게 말했지만 낙태 비용을 주지 않아서, 빚을 지고 낙태를 했다. 그 일로 소원해졌다가 헤어졌는데, 이번에 대기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와서는 협박을 했다. 그야말로 그린 듯한 개새끼였지만, 그 새끼를 처벌할 방법은 없다고 했다. 아이는 그 새끼가 만들고 갔는데, 벌은 나래와 산부인과 의사가 받아야 한다고. 
“죽여버려도 시원치 않을 놈의 새끼.”

나는 중얼거렸다. 진심을 다해, 나래의 옛 남자친구를 증오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래의 남자친구는 자다가 죽었다. 

***

나는, 사실은 할머니가 우리 아빠를 죽여버리고 싶었던 것을 안다. 원래 엄마는, 고작 스물 두 살에 결혼할 생각은 없었다고 들었다. 아빠가 엄마를 임신시키는 바람에 하게 된 결혼이라고. 그렇게 임신을 시켜서 결혼해 놓고, 뱃속의 아이가 딸이라는 걸 알자마자 아빠는 손을 놓아버렸다. 자기 어머니가, 내 친할머니가, 엄마를 끌고 가서 아이를 떼어버리든 말든 자기는 알 바 아니라는 듯이. 

할머니가 아빠를 내버려 둔 것은, 엄마가 과부가 되어 혼자 사는 것보다는 아빠와 사는 것이 그나마 나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자란 동네에서, 젊은 과부란 동네 아저씨들이 지나가며 툭툭 추근거릴 수 있는 공공재 같은 것이었다. 점잖은 양반들의 고장입네, 말은 그럴 듯 하게 하면서 행동은 하나도 점잖지 못한 아저씨들의 목표물이 되느니, 변변치 못하다 해도 남편이라는 사람이 번듯하게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나래는 다르다. 앞날 창창하고 능력 좋은 나래가, 학교 다닐 때 사귀었던 남자에게 발목을 잡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옳지 못했다. 

“참... 사람 죽은 데 대고 이런 생각 하면 안 되는 건 아는데.”
“안 되긴 뭐가 안 돼.”

나는, 내게 할머니에게서 이어받은 그런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원한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것도. 죄를 지어선 안 된다,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 그건 상식적인 이야기였다. 나는 아무리 부당한 일을 당하고 그 원한이 깊어도, 사람이 그 선을 넘어서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정말로 참을 수 없는 일이 하나는 있는 법이다. 내게는 낙태에 대한 일들이 그랬다. 아이를 지우지 않겠다고 했다가 할머니에게 걷어차인 엄마, 남자 선배들과 친하게 지내다가 어느 순간 투명인간처럼 사라져버린 대학 동기들, 자신의 앞날을 위해 아이를 지웠다가 전 남자친구에게 고소까지 당했던 내 입사동기 나래. 그건 고등학교 때 보던 논술 기출문제처럼 낙태가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누군가가 우리들에게, 여자들에게 자기들이 하나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목적에 맞추어 여자들의 운명을, 그리고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는. 그 이기적이고 지독한 오만 때문에 벌어진 일.

“잘 뒈졌어. 그런 놈은 살 가치도 없어.”
“...아무리 그래도 말이 심하잖아.”
“너 산부인과에 그러고 누워 있을 때, 그 새끼가 찾아라도 와 봤어?”
“아니.”
“넌 보험도 안 되는 수술을 받고 피 줄줄 흘리고 있는데. 누가 너 미역국 끓여 준 사람은 있었어? 아니잖아.”
“...”
“네가 만약에 그 아이를 낳았더라도, 책임지고 양육비를 댈 생각도 없었을 거잖아. 그런 놈에게 내가 뭐라고 그래. 일찌감치 죽어서, 피해자를 더 늘리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그래야지.”

한번 말문이 터지자, 험한 말은 끝도 없이 나왔다. 내 안에 이렇게 험한 독기가 가득 차 있는 줄 몰랐다. 아니, 어쩌면 그 독기는 내 안에서 곪아 터진 마음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야곱에게는 모든 것을 주었지만 에서에게는 권리마저 빼앗았듯이, 아들에게는 무엇이든 다 주어야 하고 그 출생에는 흠집조차 있어서는 안 되지만 딸에게는 살려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라는 게 싫었다. 남자나 연장자에게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여자나 어린아이들에게는 자기들이 생사여탈권이라도 갖고 있는 듯이 구는 놈들을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21세기의 문명인이, 자기가 분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여서는 안 되는 법. 나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리고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부지런히 일하고 월급을 받아 여성단체에 보냈다. 주말에는 집회에 나가고, 자원봉사도 했다. 인터넷에서 만나게 된 청소년 미혼모들을 안전한 곳으로 연결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아주 가끔은,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그 힘을 쓰기도 했다. 그저 뇌졸중이나 심장마비로 급사하다 보니, 내가 죽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남지 않았지만, 내 힘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건 죽어야 할 사람이, 낙태를 당한 아이의 혈연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해는 갔다. 세상에는 어릴 때 아빠에게 나름 귀여움을 받고 자랐으면서도 나이 들며 자기 아빠에게 크고작은 원한을 품은 딸들이 한둘이 아닌데, 아빠나 아빠의 가족들 손에 강제로 낙태를 당한 아기의 원한은 더 강력할 수 밖에 없겠지.

나는 인터넷에서 만난 남자 때문에 임신을 하고,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가 알음알음 도움을 받아 겨우 낙태를 하고, 내 집에서 미역국을 먹고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들여다 보았다.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아이들을 꼬여다가 임신을 시켜버린 성인 남자란, 죽어도 싼 놈들이었다. 애초에 네놈들이 콘돔을 제대로 끼었으면, 아니, 애초에 미성년자와는 섹스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박혀 있었어도, 이런 사달은 처음부터 나지 않았을 것 아냐. 나는 피를 흘리고 눈물도 흘리다가 잠이 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린 나이에 봉변을 당한 이 애들의 평화를, 그리고 이 아이들을 임신하게 만든 가해자 놈들이 가급적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죽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

집 밖에서 그렇게 많은 개새끼들을 보면서, 내 집은 평화로울 거라고 믿는 것도 오만일 것이다. 파국은 집 안에서 왔고, 나는 그 오만의 대가를 제대로 치렀다. 

“누나 대체 왜 그러고 다녀? 무슨 페미니즘이니 뭐니 하면서.”

명절에 오랜만에 집에 갔더니, 그 나이를 먹고도 엄마의 왕자님인 우리 최상욱씨가 내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상욱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틀며 허허,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무슨 소리야.”
“누나 벌써 서른 일곱? 서른 여덟이잖아. 근데 결혼도 안 하고, 어디서 남자 싫어하는 이상한 여자들하고나 어울리고. 집안 망신이다, 집안 망신. 좀 똑바로 살아.”
“너보다 훨씬 잘 살아.”
“웃기시네.”

상욱은 나를 보고 피식피식 비웃었다. 

“요즘 뉴스도 안 봤어? 지금 출산률이 역대 최저라잖아. 여자들이 애를 안 낳아서 지금 사회 문제라는데. 누나는 책임감도 안 들어?”
“무슨 책임감.”
“아, 여자들이 결혼을 안 해서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잖아. 그럼 책임감을 느껴야지.”

나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대체 이 녀석은 머리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지금 90년대생 여자들이 마지막 희망이라잖아. 여자들 취직 못 하게 하고 전부 결혼하게 해야 해. 그래야 애들을 낳지. 여자들이 취직한다 공부한다 하니까, 점점 인구가 줄어들잖아. 인구가 국력이라고 그러는데, 이렇게 인구가 줄다간 중국에 먹힐 지도 모른다잖아. 누나는 나라가 망해도 상관없어? 그래도 괜찮아?”
“어.”
“누나!”
“망해도 돼. 야, 내가 결혼을 안 한 거지. 지금도 여자들은 결혼하고 애 낳고 해. 근데 성비를 봐.”
“뭘 보라고?”
“너 학교 다닐 때 여자 짝 없어서 그러던 거 봐. 이미 그때 미래가 뻔히 보였는데도, 초음파로 성별 확인하고 낙태하는 건 제대로 막지도 못하더니. 이제 와서 뭐가 어쩌고 어째? 출생률을 높이려고 해도 일단 여자가 있어야 뭐가 되지. 1990년대에 그렇게 여자애들을 낙태해 놓고서 이제 와서 여자가 결혼을 안 해서 나라가 망하긴 뭘 망해.”
“그럼 그럴수록, 더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해야지. 그렇지 않아도 여자가 부족한데, 결혼하기 싫다고 그러는 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정말 결혼하기 싫다는 여자들은 세금이라도 더 물리든가, 유치장에라도 가둬 놔야 하지 않아? 아니, 누나. 난 누나가 미혼모 그런 애들 돕는 것도 이해가 안 가. 몸 함부로 굴리다가 제 팔자 제가 조진 애들을 왜 누나가 신경을 써? 누가 보면 누나도 그런 여자인 줄 알겠다. 어? 내가 다, 누나가 걱정되어서 하는 소리인데.”

이야. 대학에 가자마자 고향을 떠나 설날과 추석 외에는 이쪽으로 고개도 안 돌리며 살아왔던 내게, 고향에서 아버지와 친가 쪽 친척들의 영향을 받으며 남성중심적인 사고방식에 푹 숙성된 이 남동생은 너무 지독한 재앙같았다. 

문득 여름 성경학교 생각이 났다. 그때, 할머니가 엄마의 배를 걷어찼던 것도. 이 새끼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자기 명령을 거역한다고 멋대로 남의 민족의, 소중한 첫째 아이들을 죽여버렸던 하나님의 이야기도, 그리고 자기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줄줄이 죽어 나갔는데도 그런 일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굴었던 아버지도. 제멋대로 여자를 임신시키고 책임지지 않던 남자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인생을 되찾기 위해 그 아이를 지운 여자를 고소하던 남자들도.

아아, 그렇구나.

법에는 우리 모두 평등하다고, 천부인권을 갖고 있다고 나와 있는데,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정말로 생사여탈권이라도 갖고 있는 줄 착각하고 했다. 그건 우리 집에서도 뻔히 벌어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너희는 모르지.

내게는 정말로 그 생사여탈권이, 너희를 죽일 힘이 있다는 것을. 

나는 눈을 감았다. 핏줄이라고 다 같은 핏줄이 아니었다. 너희가 소중히 여기는 건, 혈통을 이어갈 그놈의 아들, 아들, 아들이지. 하느님도, 나라도, 집구석에서도. 언젠가 할머니는 내게 말했다. 계집아이가 무슨 최씨 핏줄이냐고.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막연히 속이 상했지만. 지금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안다. 내가 최씨 집안 큰딸이라고 해도, 아버지도, 남동생도, 돌아가신 친할머니도, 나를 제대로 된 최씨 집안 사람이라고, 대를 이을 수 있는 자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그저 죽여 없앴어야 하는 계집아이들 중에, 운 좋게 겨우 살아남았을 뿐인 쭉정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너희에게 제대로 보여줄게. 그 재앙을. 혈통이 끊어진다는 것을. 인구가 줄어들어 큰일이라고, 몇백 년 뒤에는 이 민족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면서? 나라가 없어질지도 모르는데 여자들이 감히 제 권리를 이야기한다면서?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태어나지 못하고 죽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여자들이 마침내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낙태를 선택할 때에는 죄를 주고 벌을 내리려 하면서, 그렇게 입맛에 맞는 것만 쏙쏙 골라먹으면서 우리에게 하느님처럼 굴었던 그 죄를 물어서. 

나는 수많은, 아버지나 할머니나 친가 사람들의 손에 끌려가 낙태당한 아이들의 원혼이 내 몸으로 빨려들어왔다가, 다시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내 집에서, 그 마을에서, 그 도시에서, 그리고 이 나라 전체로, 그 원혼의 덩어리들이 잉크를 흩뿌리듯 번져나가는 것을. 그 덩어리들은 저마다 제 생부를 찾아가, 원혼 하나 당 산 목숨 하나씩을 맞바꾸듯 죽음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한 집당 그리 죽은 아이의 숫자만큼, 그 집의 남자들이 젊고 늙음을 막론하고 피를 토하며 거꾸러져 죽음을 맞을 때 까지. 그리하여 예정된 멸망을 한참 더 앞당기는 대신, 망가져 버렸던 성비를 겨우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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