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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날 수 있는 사람


1.
세영은 하늘을 날 수 있다. 세영이 비행기를 조종하는 조종사라는 것도 아니고, 높은 곳에서 낙하산을 메고 뛰어 활강하는 사람이라는 뜻도 아니다. 세영이 날아 오르는 데는 어떤 다른 도구가 필요 없다. 세영은 그냥 날 수 있다.

하늘을 나는 것을 경험하게 해 준다고 몇 푼 돈을 내고 발에 줄을 묶은 채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는 놀이도 있다. 그렇게 뛰어 내리면서 잠깐 발에 닿는 것 없이 허공에 온 몸을 던져 놓았을 때에도, 날고 있다고들 한다. 그것은 정말로 날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요금의 값으로 보통 때 할 수 없는 동작을 할 수 있다고, 그렇게 하면 신기하고 잠깐 기쁘고 기분이 좋다고,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하는 말이 하늘을 나는 것 같다는 말일 뿐이다. 그러나 세영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은 그런 것도 아니다.

세영은 마음만 먹으면 공중에 몸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 떠오르고 싶은 마음을 계속 갖고 있으면 몸은 하늘로 계속 더 솟구친다. 그 마음을 멈추면 몸은 그때부터 떨어지기 시작한다. 힘을 조금만 쓰면 더 높이 올라 가는 것과 떨어지는 것 사이에서 멈출 수도 있다. 그렇게 하면 세영의 몸은 계속 공중에 떠 있다. 약하게 떠오르는 힘을 이용하면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천천히 떨어질 수도 있다. 

하늘을 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떠들던 사기꾼들은 많았다. 그런 속임수를 쓰는 사람들을 시대순으로 늘어 놓으면 대체로 그것을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사기꾼들의 역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힘겹게 정신을 집중해서 묘한 방법으로 몸을 공중으로 띄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혹은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많은 욕망을 버리고 여러 가지 잡념들을 다스려서 힘겹게 깊은 내면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떠들기도 했다. 그런 고도의 정신적 활동의 결과로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세영이 하늘을 나는 데에는 정신의 집중도 필요 없었고, 잡념이 없는 고요한 내면의 깨달음도 필요 없었다. 세영은 어제 텔레비전에 나와서 춤을 추던 가수의 몸동작을 떠올리면서도 하늘 높이 둥둥 떠 있을 수 있었고, 사는 집 집세가 얼마나 싼 지 비싼 지 계산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높이 올라 갈 수 있었다.

온몸을 높이 띄워 올리는 데 많은 힘이 필요하지도 않고, 무슨 옷이나 복잡한 장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언제까지, 어느 높이까지라는 제약도 없다. 그저 하늘을 날고 싶으면 세영은 몸을 띄워 하늘 방향으로 올라 갈 수 있다. 발바닥 끝은 점차 땅바닥에서 떨어지고 어느 순간 온몸의 어느 한 곳도 무게에 걸리는 곳 없이 떠 있게 된다. 그러면 뼈 마디마디에 걸리던 의식하지 못하던 몸의 무게가 모두 없어진다.

그때부터는 그전까지 그 모든 살과 피의 무게가 항상 뼈에 걸려 있을 수 밖에 없었다는 일상 속에서 모르고 있었던 느낌을 의식하게 된다. 날고 있을 때에는 몸을 세우고 서 있는 동작이지만 온몸에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 마치 물속에 들어 가 있거나 편안한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듯 하다. 관절은 편안해지고 몸은 나른해진다. 마디마디에 피곤함을 느끼고 걷다가 하늘을 날 결심을 하면 그렇게 서 있으면서도 누운 것 같은 느낌으로 변한다. 두 다리로 온몸을 지탱하며 서 있다가 갑자기 편안히 잔잔한 호수 가운데에 나뭇잎처럼 떠 있는 안락한 느낌이 되는 그 기분을 세영은 무척 좋아 했다.

그리고 점차 머리 위에서 발 쪽으로 지나가는 바람을 가르면서 점점 더 하늘 높이 날 수 있다. 그러면 겨우 무릎에 걸리는 힘이 줄어든 정도로 좋아하던 아까의 자신이 한심해 진다. 하늘을 날아 가는 것은 그것보다 훨씬 더 즐겁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기분이 좋을 때 하늘을 나는 것 같다는 말을 쓴다. 예를 들어, 사랑하고 있지만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하는 지 몰라서 마음을 졸이고 말을 못하고 날마다 기다리고 밤마다 안타까워만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사람 또한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럴 때 하늘을 나는 것처럼 기분이 좋다고 한다. 그렇지만 세영의 경험으로는 정말로 하늘을 나는 것은 그 보다도 훨씬 더 기분이 좋았다.


2.
세영이 처음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병원에서 였다. 건강진단을 받으러 갔더니, 의사가 혈액 검사 결과를 보고 “어휴, 축하드립니다. 환자분은 공중부양 체질이시네요.”라고 알려 줬다.

그 정도로 멋진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세영이 지금도 가끔 혼자 해 보는 생각이었다. 웃기고 재밌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어떻게든지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알아 보는 장면은 재밌을 것 같았다. 빌딩 이쪽 꼭대기에서 길 건너 편의 빌딩 창문으로 소리 없이 날아서 가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은 날 수 있다고 말하며 놀라는 것 말고. 세영이 날아 가는 것을 눈으로 보지 않은 어떤 사람이 세영은 하늘을 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 주면 즐거울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반대로 세영도 다른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추측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실 세상에는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하늘을 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은 있는게 아닐까? 얼굴을 보고, 키나 몸무게를 짐작을 해 본다고 해서 하늘을 날 수 있는지 아닌지 알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손금이나 생년월일로 누가 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을 세영이 미리 알고 병원에 가지는 않았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 나서 길을 걷는데 몸이 자꾸 하늘로 솟구치는 바람에 병원에 갔다면, 더 간단한 이야기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선생님 어떡하죠? 제가 자꾸 날게 됐는데요.”
“일단 사진 한 번 찍어 보시고요. 수액 맞고 오늘, 내일은 우선 푹 쉬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러면 그만 날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것도 아니었다. 전혀 아니었다.

“1층에서 접수하시고요, 3층에서 대기 하시다가, 전광판에 이름 뜨시면 나오는데로 2층이나 3층으로 가시면 되거든요.”

병원 직원의 설명을 듣고 돈 내기 전에 가라는 데로, 3층으로 1층으로 갈 때에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움직였을 뿐이었다. 날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의사가 말했다.

“눈에는 이상이 없으신 것 같은데요.”
“그런데 보이는 게 확실히 좀 이상하긴 이상하거든요.”
“그러면 일단 안과 쪽은 아닌 것 같으니까. 우선 외과쪽에서 한 번 더 진찰 받아 보시면 어떨까요?”
“외과요?”
“혹시 머리 아프시다거나, 편두통 있으시다거나 그렇지 않으신가요?”
“마리가 아프긴 아픈데요. 저는 보이는 게 이상해서 그것 때문에 어지러워서 머리가 아픈 줄 알았거든요.”
“말씀하신대로 눈이 이상해서 머리가 아플 수도 있는데, 반대로 머리 문제 때문에 보이는 게 이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게 갑자기 보이는 것부터 이상하더라고요. 한 일주일전부터.”

그리고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과연 머리가 먼저 아프고 그 다음에 보이는 것이 이상했는지, 아니면 보이는 것이 이상하고 그 다음에 머리가 아팠는지 세영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세영이 처음 눈에 보이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어떤 그림을 본 날이었다.

매일 지나게 되는 건물 1층의 로비는 지나가는 행인들을 위한 통로이기도 했다. 이곳에 두 달 전부터 커다란 그림들이 붙어 있었다. 건물 주인인 회장의 자식이 운영하는 홍보 회사가 붙여 놓곤 하는 그림이었다. 그 홍보 회사는 아직 회장의 자리를 얻지 못한 회장 자식이 재미 삼아 돈을 쓰며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홍보 회사에서 새로 붙인 그림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었다.

지나가면서 얼핏 보았을 때에는 그 사람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순간을 그린 것 같아 보였다. 세영은 그림 앞으로 가까이 걸어 가 보았다. 가끔 꽤 그럴듯해 보였다. 그래서 그림 앞에는 길 가다 멈추고 그림을 보는 사람이 몇 명씩 있었다. 어떻게 그린거지, 그림이야 사진이야, 그런 말들을 몇 마디 해 보고, 가까이서 보면 물감 자국이 보여서 직접 그린 그림이라는 것을 확인하거나, 혹시 얼마짜리 그림인지 가격 표시라도 한 구석에 있는지 확인해 보고는 다시 갈 길을 갔다.

세영도 그림 속에서 떨어지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왜 떨어지는지, 무슨 이유로 떨어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퍼런 하늘이 있고, 한 가운데에 떨어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림은 정교했고 꼭 실제로 있는 모습을 그 자리로 그대로 가져 온 것처럼 모든 선과 색은 선명했다. 지금 그림을 만진다고 해봐야 종이와 물감 느낌이 날 뿐이겠지만, 만약 어떤 묘한 방법을 이용한다면, 그림 속 사람의 얼굴과 살갗에서 그 감촉과 온도까지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만 같았다.

상하좌우의 넓은 공간이 하늘 색깔로 채색되어 비어 있었다. 그 빈 공간의 가운데에 사람이 있었다. 그림 속의 사람은 짙은 회색 정장 차림이었고, 머리카락은 짙었다. 떨어지며 공기를 가르고 있어서 바람을 맞고 있었다. 표정은 놀란 것 같기도 했고, 그저 무표정한 것 같기도 했다. 얼마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지, 일부러 떨어지는 것인지 사고로 떨어지는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사람이 겁에 질려 있는지, 아니면 하늘을 가로지르는 짜릿함을 즐기고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세영은 천천히 그림 구석구석을 살펴 보면서 어떤 사실이라도 더 알아낼 수 있을까 살펴 보았다. 그렇지만 더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림 앞에서 벗어나 다시 걸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방법은 걷거나 뛰는 것 밖에 없었다. 날아 갈 수 없었다. 이상할 것은 없었다. 세영은 그림 보던 것을 멈추고 이제 잊었다고 생각하고,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그림이 있었다는 것조차 모두 잊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걸어 갔다.

그러나 그날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찾아 왔다. 세영은 그 돌아오는 길을 걷다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특별한 때는 아니었다. 보도 옆의 대로를 지나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누가 타고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얼마짜리 차인지, 훔친 것인지 사기꾼에게 산 것인지 알 길이 없는 수백만 대의 차와 다를 바 없는 차 지나가는 소리였다.

그런데 그 자동차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리다가 하늘을 볼 때, 세영은 그 사람의 흐린 상을 보았다. 그 그림 속의 사람이었다. 하늘에 그 그림 속의 사람이 다시 나타나 있었다. 하지만 떨어지는 진짜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착각하지는 않았다. 세영은 허상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왜 갑자기 눈에 그런 것이 보인지는 알 수는 없었다. 그 모습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보기 좋았다. 사람은 하늘에서 무서운 속도로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사람이 떨어지고 있는 창공과 세영이 서 있는 바닥의 거리가 가까워지지 않았다. 사람의 주변에 있는 하늘은 계속해서 물러나며 몸을 떨어지게 하고 있지만, 그 뒤와 그 앞으로 펼쳐진 세계는 분리 되어 가만히 제 자리를 지루하게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세영은 눈을 몇 번 깜빡거리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점차 그 모습이 흐려져 사라질 때까지 하늘을 보았다.

다음날 아침 자고 일어 났을 때, 다시 머리가 아팠다.

꿈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꿈 속에서 세영은 높은 곳에 서 있었고, 그 사람은 아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림 속의 그 사람이었다. 세영은 그 사람이 왜 떨어지는지 궁금해서, 고민 끝에 스스로도 떨어졌다. 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왜 떨어지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그렇지만 떨어지는 세영과 그 사람 간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세영의 아래 두 발짝 쯤 아래에서 그 사람은 영원히 떨어지고 있는 것 처럼 보였고, 세영 역시 적어도 꿈에서 깨어날 때까지 몇 시간은 떨어지고 있었다. 말을 해 보려고도 했지만, 귀에는 떨어지는 속도 때문에 생긴 바람 부는 소리만 가득히 들릴 뿐이었다. 돌이켜 보면 계속해서 정확하게 들린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꿈 속에서는 소리가 정확히 들리는 일은 없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꿈을 너무 오랫동안 생생하게 꾸었기 때문에 자고 일어 나도 푹 쉰 기분이 아니었다. 누워서 계속 시달리고 괴로워한 시간을 보냈다는 기분이 남았다. 졸리움이 가시는 가뿐함도 없고, 몸의 피로가 풀려 나간 안락함도 없었다. 머리가 유난히 아팠고, 눈을 감으면 아직 눈앞에 어른어른 떨어지는 그 사람의 모습이 보일듯했다.

그날 낮에도, 아침과 저녁 길에서도 가끔씩 이상한 모습들이 눈에 보였다. 두통은 더 심해진 것 같았다. 며칠 동안 하늘과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꿈을 꾼 것은 첫날 하룻밤 뿐이었지만, 잠을 푹 자지 못하는 것은 계속 이어졌다. 밤이 되면 머리가 아픈 것은 더 심해졌다. 그러고 보면, 잠을 푹 자며 쉰 것이 며칠 전인가 싶기도 했다. 원래 항상 이 정도로 잠이 모자란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고개를 돌렸을 때 먼 풍경에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사람이 보이는 일에도 익숙해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세영은 병원에 갔다. 시키는 대로 몇 군데를 찾아 다녔고, 여러 의사를 만나야 했다.

“그림에서 본 장면 같은 게, 길 가다가도 갑자기 딴데서 헛것 보이는 것처럼 눈에 보일 때가 있어요.”

몇 번씩 같은 말로 설명을 했다. 같은 말로 여러 의사에게 설명을 하다보니 곧 설명 하는 말이 입에 익었다. 짧고 분명한 문장으로 정확하게 오해 없이 자기 상태를 설명하는 표어를 만들어 가는 식이었다. 의사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시네요. 어떤 분들은 만화나 영화에서 귀신 나오는 장면 보고 착각해서, 자기는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갖게 됐다고 그러는 분들도 계세요. 그러면서 무당이 되어야 겠다거나 굿을 해야 겠다고 하기도 하시고요. 더 심한 경우에는 천사가 보인다고 하시면서 자기도 하늘로 가게 될 것 같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결국 그날 오후 병원에서 세영에게 내려준 진단은 뇌종양이었다.

“종양이 악성이면 위험한데요. 양성일 가능성도 적지는 않습니다.”

그 말을 듣고나서야 세영은 겁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뇌종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제대로 놀라지도 못했다.

그날 저녁에 세영은 양전자 방출 해부영상기라는 장비에 넣어졌다. 처음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던 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 와서 주사 바늘을 찔러 넣었다. 약은 방사선을 내뿜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약이 머리통 속에 퍼져 돌아 다니면서 계속해서 방사선을 뿜는다고 했다. 그렇게 나오는 방사선을 기계로 잘 살펴 보면, 의사들은 세영의 머릿속 종양이 양성인지 악성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기계 속에서 가만히 있으니 세영은 뭔가 생각할 것이 있어야 했다. 세영은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죽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운 생각도 또 같이 들었다. 머릿속을 흘러다니는 차가운 약물의 느낌이 느껴지는 것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머릿속에서 계속 차가운 것이 퍼져 나가며 움직이는 것 같았다. 방사선이 나온다는 상상 덕분에 또 그 싸한 기분 한편으로는 따뜻한 열기와 거기에서 오는 통증이 퍼지는 기분이기도 했다. 어떤 빛덩어리들이 빙빙 돌며 머릿속을 헤집어 댄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에 주사한 약이 아니라, 그전에 먹고 맞은 다른 많은 약들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머리 안에서 세탁기속 물살 같은 것이 뱅글뱅글 돌았다. 그 물살을 따라서 여러 생각도 도는 느낌이었다. 사는 것, 죽는 것, 돈, 누구에게 먼저 말할까, 어떻게 말할까 등등이 생각들이 따라서 뒤엉키는 느낌이었다. 치료 효과는 전혀 없는 약물이라는 것을 세영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머릿속이 세탁기처럼 돌아서 다시 깨끗해지고 병이 나았으면 좋겠다는 허망한 생각도 했다.

기계 바깥으로 나와서 의사에게 어떤지 물어보니, 조금 기다려야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아마 내일 한 번 더 기계에 들어가 보면 그 다음에 또 뭘 봐야할 지 알 수 있게 될 거라고 말했다.

그날 밤 세영은 잠이 오지 않았다. 살 수 있을까, 죽는 걸까, 그 생각을 계속 했다. 세영은 전화기로 인터넷에서 뇌종양을 검색해 보았다. 뇌종양에는 왜 걸리는지, 어떤 증상이면 뇌종양인지 하는 것들을 써놓은 글들을 보았다. 전화기 전자파를 많이 받았던가, 가족 중에 암에 걸린 사람들이 누가 있었던가. 세영은 하나하나 따져보면서 내 경우에는 괜찮겠지 하고 생각하다가도, 자기처럼 시작해서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 볼 때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맞는 이야기 같아서, 마음 속에서 뭔가 꼴깍꼴깍 장단이라도 맞추는 느낌이었다.

그런 글들을 한 없이 읽다 보니, 뇌종양 고민만 하고 있는 이 병원의 의사들에게 일을 맡기고 있는데, 인터넷에서 얼뜨기들이 출처도 모를 곳에서 몇 마디씩 복사해서 붙여넣기 한 글들을 읽는 것이 무슨 헛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한참만에 글 찾아 보는 것을 그만두었다가도, 가만히 있으면, 이런 저런 생각에 몸에 드는 여러 작은 감각 하나하나가 예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른쪽 다리 근육이 가만 실룩하는 것이 느껴지기도 했고, 괜히 한쪽 발목이 뻐근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런 느낌들을 하나 둘 받아 들이고 있으면, 글에서 읽은 내용이 다시 생각이 났다. “왼쪽 머리에 두통이 오면 어떻다고 했던가, 오른쪽 머리에 두통이 오면 그렇다고 했던가” 헛갈리는 것이 생각나서 결국 다시 전화기를 들고 찾아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또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읽게 되었다. 다시 잠은 깨고 정신은 또렷해지고 곧이어 온갖 종류의 상상할 수 있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상상과 그 모습 하나하나마다의 대한 두려움이 마음 속에 생겨 났다.

세영은 이러다가는 밤을 꼬박 샐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점점 더 몸 안쪽이 거칠어지고 마르는 느낌이었다. 잠을 잘 수 없어 하는 일 없이 누워 있기만 한다는 것이 짜증스럽기도 했고, 밤이 깊어 가는데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 피곤하게 느껴져 싫기도 했다. 몸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밤에 잠을 못 이루어 몸을 더 상하게 한다는 사실도 싫었다. 양성 종양이건 악성 종양이건 몸이 괴롭고 정신이 괴로워서 좋을 일은 없을 터였다.

세영은 어떻게든 잠이 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잡다한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한 가지 생각만 반복해서 하면 지루해져서 잠이 든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예전에 누가 자기는 숫자를 천부터 계속 거꾸로 세어 가다보면 잠이 든다는 말을 한 것이 떠올랐다. 세영은 숫자를 천부터 천천히 거꾸로 세어 보기 시작했다. 천, 구백구십구, 구백구십팔. 그런 숫자만 머릿속에서 생각할 뿐, 머릿속에 들어 있는 종양이나 그 종양 때문에 생길 나쁜 일들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숫자만, 줄어드는 숫자만 생각했다. 그러다보면 드디어 달콤하게 잠이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거꾸로 헤아리는 숫자가 헷갈릴 때마다 꼼꼼히 어디까지 숫자를 헤아렸는지 따지느라 정신은 맑아졌고 서서히 모여 들고 있던 마음의 평안을 흩어 버렸다. 수를 따지는 명석함을 끌어 오다 보니 졸음은 말갛게 사라졌다. 벌써 숫자를 삼백 만큼이나 거슬러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삼백을 셀 시간이면 시간이 얼마나 흐른건가. 1초에 숫자 하나씩 센다면 60초면 1분.  5분을 꼬박 아무것도 안하면서 숫자만 세면서 보낸 것이다. 이런 식이면 숫자 천을 세는 것도 금방일 것이고 그러면 17분이 지나간다. 사실 숫자 하나를 세는 데 1초는 더 넘게 걸리는만큼 20분쯤이 지나는 것인지도 보른다. 한 시간의 삼분의 일. 그 시간 동안 잠을 못이루고 숫자만 세면서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새벽3시, 4시로 잠을 잘 수 있는 남은 시간이 자꾸 줄어들면서 밤이 도망가 버린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잠을 못자고 있다는 사실이 걱정되고 점점 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시간이 길게 이어지자, 차차 주변의 온갖 것들이 정신에 들어 왔다. 덥고 건조한 실내 공기. 한쪽으로 누우면 묘하게 차가운 바람이 스며드는 창문. 째깍거리며 점점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은 시계 소리. 깊은 밤 누군가 복도를 걷는 먼 곳의 발자국 소리. 갑자기 울려퍼지는 다급한 사람들의 소리. 어딘가에서 누가 수돗물을 튼 소리. 시계가 원래 저렇게 큰 소리가 나는 기계였던가. 여기 시계가 괜히 시끄러운 것이었을까. 

새벽 네시 반이 된 것까지 세영은 시간을 확인했다. 그 뒤에 언제까지 깨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작 잠이 들 때는 어떤 수법, 어떤 방법을 쓰다가 드디어 잠을 자는데 성공한 것인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새벽에 잠이 들었을 때, 세영은 다시 그 사람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이번에도 꿈 속에서 그 사람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꿈 속에서 세영은 지금껏 시간의 흐름을 착각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알고 보니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야 세영은 모든 것을 제대로 본다. 그 사람은 실제로는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 솟구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표정이 없는 것만 같았던 얼굴에서도 그 사람의 기분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놀라운 쾌락에 빠져 있었다. 그 사람은 웃고 있었고, 즐거워 하고 있었고, 행복했다. 그 사람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리고 세영은 잠에서 깼고, 자신이 침대 위에서 떠올라 천장에 가까이 붙어 날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3.
세영은 그저 허공에 떠 있었다. 처음에는 몸을 뒤척거리다가 닿는 바닥이 없다는 것 때문에 이리저리 몸을 굴렸다. 그러다가 다리를 움직였고 손을 뻗어 보았다. 느낌이 이상했다. 딱딱한 침대의 그 불편한 바닥이 짚히지 않았다. 빈 공간의 휑한 느낌만이 손에 지나갔다. 세영은 잠깐 동안 무척 놀랐다가, 곧 어떻게 내려간다는 느낌을 느끼면서 부드럽게 다시 자리로 내려 왔다.

세영은 다시 한번 몸을 공중으로 띄워 보기로 했다. 몸을 하늘 위로 내밀고 허리와 배의 힘을 주었다. 더 힘을 주어도 그 이상 몸을 내미는 듯한 모양을 갖추기는 어려운 힘든 순간이 있지 싶었는데, 부드럽게 몸은 위로 움직였다. 세영은 날아서 천장을 향해 올라 갔다. 정말 그렇게 움직였다. 어, 이게 뭐지. 내가 지금 원래 있던 그 방에 있는 건가. 다른 무슨 이상한 비싼 장치 속에 또 들어 와 있는 건가. 숨을 쉴 수 있는 특수한 액체 속에 들어 와서 헤엄치듯이 움직이는 건가. 잠깐 혼란스러웠다. 그렇지만 몸은 편안하고 위로 떠오를 때에는 기분도 가벼웠다. 간밤에 잠을 자니, 마니 하면서 온갖 고민을 했던 것은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둥실둥실 뜨는 느낌에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다.

해가 뜬 후에는, 세영은 다시 하늘로 떠오르는 연습을 했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높이 치솟아 올라 천장에 등을 부딛히고 다시 물방울처럼 바닥으로 내려 와 보았다. 여전히 세영은 날 수가 있었다. 정말이었다. 꿈이 아니었고, 더 시끄러운 소리들이 바깥에서 들려 오고, 시계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지만, 세영은 역시 날 수가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세영은 설레는 기분이 되었다. 

세영은 우선은 계획했던 대로 의사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병원의 계단과 엘레베이터 주변에 있는 트인 공간에 오니, 세영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한 번 6층까지 날아가 보면 어떨까 싶었다. 정말 한 번 날아 볼까. 정말로? 그냥 확 한번 날아가 볼까? 한 번만? 한번 날아 본 다음에, 어떻게 된 일냐고 누가 물어 보면 그런 일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떼어 볼까? “날아요? 사람이 어떻게 하늘을 날아요?” 뭘 잘못 본 것 아니냐고, 헛것이 보이는 것 아니냐고 신경정신과 병동으로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해볼까?

가슴이 두근 거렸지만 세영은 참았다. 날아 오를까 말까 할 때에 발가락 끝에 힘이 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일단은 그냥 참기로 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으니까, 급하게 서두를 것 없이. 이번에도 그냥 엘리베이터를 타고 갔다.

그리고 그날, 의사는 세영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 양성 종양이라고 알려 주었다. 살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참 다행이구요. 그래도 6개월에 한 번씩 검사는 받으러 오시는 게 좋을 거 같고요. 이게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기 때문에 절대 무리하거나 너무 심하게 스트레스 받거나 하시면 안되고요. 일상생활은 하셔도 되는데, 그래도 절대 무리 안 가게 반쯤 요양하신다는 기분으로 지내시면서 상황을 계속 보셔야 될거에요.”

의사는 종양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세영을 해칠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두통이나 어지러움 정도의 다른 부작용들은 언제나 조금씩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최대한 종양이 커지는 것을 막으려면 약을 꾸준히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체력을 기르라고 말했다.

그날 오후 세영은 그  그림을 처음 보았던 건물에 가 보았다.

그림은 없었다. 그림이 있던 자리는 모두 커다란 LCD 화면으로 바뀌어 있었다. 화면 속에는 회사의 제품을 팔기 위해 만든 광고들이 끊임 없이 하루에 9백번씩 나오고 있었다. 드디어 회장의 자식이 회장이 되었고, 회장은 죽었다고 했다.


4.
세영은 며칠 간은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집에서 쉬었다. 날마다 운동을 할 계획을 세우고 그러면서도 지금까지보다는 훨씬 덜 무리하고, 덜 스트레스를 받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생활을 바꾸기로 했다. 삶의 목적도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행복하고, 성공하고, 부유한 삶에 접근하고,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자랑거리들을 하나 하나 늘려 가고, 그런 것들은 포기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준비와 노력들도 버리기로 했다. 어차피 전에도 그런 것에 도전하며 사는 것이 쉽지 않았고 그 때문에 힘빠지는 일도 많았다.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남들이 사는 시간만큼 살 수 있고, 그 시간 만큼 삶을 이어 간다는 것 자체에 목표를 맞췄다.

그렇게 결심하고 따져 보니 괴상한 일이었다. 며칠 간 쉬면서 세영은 삶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싶었다. 이제부터 세영은 뭘 하자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여간 살기 위해서 뭐든 한다는 식으로 살 참이었다.

길 위를 지나가는 많은 차들이, 그 차 한 대 한 대마다 필요한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이고, 그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경적도 울리고 신호도 기다리고 인도에서 걷는 사람에게 먼지와 연기도 뿜고 있다. 그런데 세영은 어디로 가기 위해서 도로 위를 움직이는 차가 아니라, 그냥 도로 위를 달리는 것 자체가 목적인 차라는 생각을 했다. 무엇을 위해서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자체가 목적이었다.

“미친 듯이 노력하면 반드시 꿈이 이루어진다” “남보다 한 시간씩만 덜 자고 일하면 꼭 여유있는 세월이 온다” “몸이 부서져라 애를 써서 해보는 일 한 가지는 인생에 경험해야 가치있는 삶이다.”

서점에서 본 책들에는 그런 말들이 표지에 씌여 있었다. 이기고 빨리 가고 돈을 버는 길들을 유혹하는 책들이라고 멸시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맞는 말로 보이기도 했다. 세영은 그렇게 살지 않기로 했으니까 아쉬워서 더 맞는 말처럼 보였다.

건물 지하에 있던 서점에서 나오니 오후 햇빛이 눈이 아프게 밝았다. 목요일이었던가, 금요일이었던가. 오후 3시 쯤이었으니 대부분 학교에 있거나 일할 시간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도 길에도 서점에도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다들 병들었다가 나아서 회복하면서 쉬는 사람들일까. 밤에 일하고 낮에 일하는 사람들일까. 일 때문에 누구를 만나러 어딘가로 가는 길에 잠깐 비는 시간 동안 서점에 들른 사람일까. 세영은 드나드는 사람들을 지켜봤지만 사연은 잘 알 수 없었다. 조용하기만할 것 같은 오후에도 사람이 많구나 싶기만 했다.

지금도 하늘을 날 수 있을까?

어떻게 몸을 움직여야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인지 잘 기억도 안났다. 그것은 평소 때의 숨 쉬는 동작과 비슷했다. 마음을 먹으면 일부러 숨을 멈출 수도 있고 크게 깊게 숨을 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보통 때 한번 씩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은 하나 하나 움직여 생각하면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은 어떻게 그렇게 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저절로 생각하지 않는 동안에도 계속 그렇게 숨이 쉬어진다. 처음 하늘로 날아 오를 때는 분명히 한숨을 쉬는 동작 마냥 뭔가를 일부러 해야 하는 것은 확실했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막연한 느낌이었다. 지금은 하늘을 난다는 동작이 잠을 자는 동안 숨을 쉬는 것 같기만 했다.

세영은 주위를 둘러 보면서 잠깐 발끝에 힘을 주고 몸을 띄우고 위로 올라간다는 듯이 힘을 주어 보았다. 발끝이 땅에 닿아 있었지만 발뒷꿈치는 바닥에서 떨어졌다. 처음에는 위태롭게 까치발을 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였다. 하지만 곧 발가락과 발목에 실리는 무게의 느낌이 없어졌다. 다시 느껴 보는 바로 그 느낌이었다. 다리뼈와 허리에 실리는 평소에 생각하고 있지 않은 온 몸의 피와 살의 무게들이 물을 따라 버리는 것처럼 슬며시 없어졌다. 아직 세영은 날 수 있었다. 세영은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영은 사람들의 눈이 뜨이는 곳을 피해서 건물 옆으로 돌아 들어 갔다. 서점이 있던 29층 건물과 그 옆에 있던 옷가게가 많이 입주한 건물 사이에 좁은 골목이 있었다. 골목 입구에 들어서면 어두운 길 저편으로 빼꼼히 건물 너머 거리의 빛이 보였다. 청소가 덜 되어 검은 얼룩이 바닥에 많이 남아 있었다. 세영은 그 건물들의 그늘로 메워져 있는 좁은 길 안으로 들어 갔다. 길 양쪽 끝에 보이는 사람들은 항상 앞을 보며 걸을 뿐, 지저분하고 어두운 작은 골목이 어떤 모습인지는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세영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곧게 뻗은 건물의 선이 멀리 하늘로 올라가면서 좁아져 사선으로 보였다. 옆 건물도 같은 기울어진 선으로 뻗어 있어서 더 좁게 보이는 파란 하늘이 보이고 그 옆을 건물 벽의 어두운 빛이 닫히는 뚜껑처럼 막고 있는 모습이었다. 세영은 어깨를 하늘 방향으로 올라가라는 듯이 힘을 주면서, 등과 허리도 공중으로 치솟아 떠오르도록 밀어 올렸다.

단숨에 세영은 한 두 발자국 정도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제 어떻게 하늘을 나는 지 온몸이 알게 된 것 같았다. 세영은 더 빨리 더 높이 하늘 위로 날았다. 멀찌감치 경쟁자들을 제치고 앞서서 걷고 있는 달리기 하는 사람이 맨 앞에 서서 1등을 할 것이 뻔하지만 더 빨리 더 기분 좋게 달리고 싶어서 더 속력을 내는 기분이었다. 빠르게 아스팔트 바닥이 발 밑에서 멀어 졌다. 높이가 달라지면서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 건물의 벽이 세영의 눈 앞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래에서 올려다 볼 때에는 몰랐던 작은 모습의 차이들을 세영은 볼 수 있었다. 9층 벽에 난 작은 흠이나 얼룩자국, 11층 벽의 긁힌 자국이나 몇 년 전에 비가 세차게 내릴 때에 어디서 흘러내려 묻은 가 싶은 페인트 자국 같은 것들이 보였다. 높이 올라 갈 수록 벽에 그런 자국들이 서로 다른 모습이 되어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길 위에서 건물 아래를 걷는 사람도, 건물의 높은 층에 있는 사람도 보지 않는 고층의 벽면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16층 높이에는 N426이라고 작게 새겨진 벽돌이 하나 보였다. 건물을 짓다가 어떤 표지를 해 놓기 위해 놓은 벽돌이지 싶었다. 처음 그 자리에 벽돌을 놓은 사람 이후에 몇 번이나 그 숫자가 사람들에게 읽혔을까 싶었다. 나는 두 번째일까. 그 사이에 외벽 청소하는 사람들이나 창문 닦느라 높은 곳에 매달린 사람들이 한 두 번 본 적이 있었을까. 세영은 생각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에는 아무도 볼 사람이 없는 곳에 그 글자는 새겨져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아침에도, 한낮에도, 깊은 밤에도 계속 그 의미도 이제는 알 수 없는 글씨가 보는 사람도 없는 자리에, 언제나 자리 잡고 있었다. 혹시 가끔 건물 위로 올라 가는 새들이 있어서 그 글자들의 새긴 자국을 본다면 그것을 알아 볼까. 

세영은 곧 더 높이 하늘로 날아 갔다. 건물의 끝이 가까워졌고, 햇빛을 가린 어둠 진 검은 부분이 아니라 형체와 색이 보였다.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하늘을 더 넓어졌다. 그냥 파란 밝은 색이기만 했던 것이 엷은 구름이 있고 볕이 들어 오는 방향이 분명한 넓은 공간으로 보였다. 바람이 점점 더 세지고 차가워 졌다. 그렇지만 머리 위를 가리고 있는 것도 같이 점차 없어져서, 햇볕은 분명히 더 강해졌다.

마침내 세영은 건물 벽을 넘어 그 보다 더 높이로 떠올랐다. 발 아래로 건물 옥상이 보였다. 아래에서 올려다 볼 때에는 네모진 각으로 딱 잘려서 말끔해 보였던 건물 꼭대기였다. 위에서 내려다 보니 그 꼭대기 옥상 바닥은 너저분해 보였다. 왜인지 초록색을 바닥에 온통 칠해 놓아서 색깔부터가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그 위로 뭐가 지나가는 지 알 수 없는 쇠로된 관들이 이리저리 오가고 있었다. 거기에 환풍장치나 냉각장치인지 싶은 툭툭 튀어 나온 기계 장치들이 있었고, 한쪽으로는 잡다한 전화용 안테나들이 회사별로 삐죽삐죽 치솟아 있었다. 알 수 없는 화물 같은 것이 천이며 비닐에 쌓여 묶인 채 한켠에 쌓여 있는 것도 있었고, 어느 쪽에는 누가 가져다 놓은 건지 버려 놓은 건지 애매한 화분이 몇 개 놓여 있었다. 그 안의 식물들은 모두 말라 죽은 것 같았다.

아래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자신의 두 발이 가장 먼저 보였다. 발 아래가 그저 뻥 뚫려 있다는 점이 아주 이상해 보였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평소에 아래 방향을 바라 보면, 발 밑으로는 더러운 흙바닥이든 말끔한 마룻바닥이건 뭔가 그 밑을 막아 놓는 것이 있었다. 하물며 고층 건물 꼭대기에 설치해 놓은 무슨 전망대인가에 갔을 때,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는 곳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도 유리에 진 얼룩이며 발자국 자잘한 흠집이 일단 눈에 들어왔던 것이 기억났다. 그 유리 바닥은 아마 꼭 지금 보는 것과 같은 하늘에 떠 있는 기분을 느껴 보라고 만들어 놓은 것일텐데, 지금 느끼는 기분과 그 유리 바닥은 그야 말로 하늘과 바닥의 차이였다.

발 밑으로는 건물의 옥상과 건물 벽의 선을 따라 까마득히 차도와 인도가 보였다. 벽이 만들어 내는 선은 이제는 반대로 땅으로 갈 수록 좁아 지고 있어서 발 아래의 경치가 작게 보였다. 빨리 달리던 자동차들도 높은 공간에서 내려 보니 시야의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까지 가는 동안에도 한참이 걸리는 것처럼 보였다. 차에서 내려 온 사람들, 건물 안으로 들어 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저 까맣고 흰 머리 꼭대기와 어깨죽지쯤의 옷색깔로 보일 뿐이었다. 다들 열심히 걷고 있고, 가끔씩 멈추는 사람들 조차도 바빠 보였다. 그렇지만 누가 좋은 옷을 입었는지,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지 알아 볼 수 없이, 그저 까맣고 희고 노란 머리카락 색깔의 점들이 움직이는 것만 보였다.

세영은 더 높이 올라 갔다. 건물 옥상이 점점 더 멀어졌다. 발 아래의 건물은 꽤 높은 편이어서, 그 높이에서 사방을 돌아 보니 아무것도 눈 앞을 막는 것이 없었다. 길 앞뒤로 늘어 서 있는 많고 많은 건물들의 옥상들이 눈에 들어 왔다. 건물 안에 들어 있는 많은 사람들과 가구들과 기계들이 있겠지만, 위에서 보니 그저 깍뚝깍뚝 하나씩 네모 구획을 차지하고 있는 옥상의 윗면만 보였다. 그 모습들은 다 지저분한 편이었다. 그렇지만 그 촘촘한 풍경은 그래도 보기 좋았다. 먼 곳까지 보였다. 강 건너 풍경까지, 강 저편 멀리 산과 산기슭의 뭔지 모를 작은 집들까지도 눈에 들어 왔다. 그 산 등성이 사이로 하늘 아래 멀리멀리를 보면 어느 세상의 무슨 땅이 있을까 흐릿하게 보일 것만 같기도 했다.

하늘을 나는 것이 기분 좋다는 생각이 숨이 가득 찰 만큼 들었다. 바람에 옷깃이 펄럭였다. 땅 위에서 걸을 때와는 다르게 찬 공기가 발 아래에서 다리를 타고도 많이 올라 왔다. 그래서 더 추웠지만, 그 추운 느낌도 공중에 떠 있다는 생각을 더 생생하게 해 주었다. 내가 이렇게 되다니, 세영은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영원히 병들고 아프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잠시 후 세영은 옥상으로 내려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앞으로 비스듬히 내려 가서 건물 옥상 쪽으로 가 보려고 했다. 그렇지만 세영은 위로 치솟는 것을 할 줄 알고, 높은 곳에서 그걸 하지 않아서 다시 아래로 떨어질 줄은 알았지만 앞뒤로 공중에서 움직일 줄은 몰랐다. 세영은 앞쪽으로 나아가면서 내려가 보려고 했지만, 몸을 이리저리 움찔움찔해 봐도 그렇게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생각 끝에 세영은 몸을 앞구르기를 하듯이 해서 앞쪽으로 넘어지듯이 움직였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것을 잠깐 멈춰서 아래로 떨어지도록 했다. 그렇게 하니 몸이 떨어지는 동안 몸이 약간 앞으로 움직이며 떨어졌다. 그런데 아주 잠깐 떨어지는 것이라도 거리는 몇 미터씩이었다. 책상이나 의자 같은 곳에 서 있다가 잘못해서 넘어져 다칠 때, 그 높이는 고작 1미터쯤이 넘는 높이다. 막연한 방향으로 어떻게 바닥에 닿을지도 모르면서 3,4미터를 떨어 지듯이 내려가는 것은 무서웠다.

그러다 보니 세영은 몇 미터쯤 내려 오다가 다시 하늘을 나는 것처럼 해서 잠깐 떨어지는 것을 멈췄다. 그렇게 해도 앞으로 내려 오는 속도는 몸에 그대로 실려 있어서 공중에 떠 있는 채로 앞으로 나아 갔다. 몸을 비틀어서 대각선으로 떨어지게 했다가 다시 몸을 멈추면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은 멈춰지지만 앞뒤로 움직이는 속도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 세영은 떨어지다가 겁이 나서 다시 조금 날고, 속도를 늦춘다고 하다가 다시 하늘로 솟아 오르고, 그런 것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러면서 볼썽사납게 10미터, 20미터쯤을 내려 왔을 것이다.

그러다가 하늘로 몸을 들어 올릴 때 몸에 힘이 잘못들어 갔던지, 상체만 위로 먼저 올라오고 하체는 나중에 올라오는 바람에 몸이 뱅글 돌기도 했다. 머리가 다리보다 갑자기 아래로 가니까 어지러워지면서 방향감각이 이상해져서 어디로 가는 것이 위로 올라 가는 것인지 잠깐 착각이 일어 났다. 몸을 가누기가 더 어려워지면서 자세는 더 이상해졌다. 몸이 빙빙 돌았다. 이대로가면 금방 옥상을 두른 난간 부분에 부딛치거나 휴대전화 기지국 안테나에 찔릴 것 같았다.

어쨌건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저리 몸을 뒤틀었다. 다시 하늘을 날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는 것인지 갑자기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원래부터가 생각대로 어떻게 해서 날아간다기 보다는, 그냥 설명하고 생각할 것 없이 몸을 날듯이 움직이는 것 뿐이었다. 그러니 뭘 생각해서 움직일 것도 없었다. 어떻게 하더라, 어떻게 하더라, 하는 사이에 몸은 점점 더 빠르게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몸은 빙빙 돌고 있었다. 세영은 어 하는 소리를 냈다.

큰일났다 싶었다. 그런데 그때 그 떨어지는 느낌이 더 거세진 덕분에 어느 쪽이 하늘 방향이고 어느 쪽이 땅 방향인지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절로 몸에 기운이 들어 갔는데, 그 덕분에 다시 하늘 쪽으로 날아가는 힘이 생겼다. 시간이 부족해서 정말로 하늘로 올라 가지는 못했다. 그 전에 옥상 바닥에 부딪혔다. 자세가 뒤집혀 있어서 어깨부터 바닥에 떨어졌다. 다행히 거의 멈춘 속도가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몸이 바닥으로 덥쳐 내리면서, 온몸에 충격이 갔다. 재빨리 굴러버린 덕택에 어디가 접질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바닥을 지나는 톡 튀어나온 물 파이프에 정강이가 눌리면서 부딛혀서 거기가 엄청나게 아팠다. 세영은 소리를 내면서 몸을 잡고 옥상 바닥에 누워 뒹굴거렸다. 높은 곳에서 바닥으로 처박힌다는 생각에 너무 놀라서 모르고 있었지만, 몇번 굴러다니는 동안 바닥의 먼지와 모래가 얼굴과 목에 묻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온몸이 욱신거리며 아픈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있다가 누운 채로 하늘을 보니, 건물 옥상인지라 더 이상 시야를 가리는 벽이 없었다. 시선 가득하게 하늘만 보였다. 세영은 하늘을 마음대로 날다가 이제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눈 앞에 보이는 하늘 풍경이 다 내가 날아다닐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신기해서 소리를 질렀다. 고개를 혼자 흔들었다. 웃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저절로 얼굴에 웃는 표정이 생겼다.

“이보세요. 괜찮아요?”

누가 멀리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팔을 짚고 몸을 일으키니 다시 파이프에 부딛힌 다리가 아팠다. 허리도 좀 아픈 것 같았다. 이쪽을 부른 사람은 황급히 옥상으로 올라 온 건물 경비였다. 경비는 세영 쪽으로 걸어 왔다. 세영은 일어나면서 옷을 털었다. 팔 다리를 움직이면서 혹시 어디 부러진 데라도 있나 살펴 봤다.

경비가 다시 말했다.

“여기 건물 옥상으로는 못 올라오게 되어 있어요. 위험해서 안되는데, 어떻게 올라 오신 거에요. 원래 여기 문이 잠겨 있는데. 문을 따고 올라왔나?”

세영은 그렇냐고 물어 보았다. 경비는 재차,

“여기는 어떻게 오셨어요?”

하고 물었다. 세영은 그냥 답답해서 한 번 올라 와 봤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빨리 그곳을 빠져 나오자 싶어 철문을 열고 계단으로 내려 왔다.

높은 데서 오래 보는 경치를 느긋하게 즐기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그렇지만 아직 얼마든지 날 수 있고, 나는 것이 무척 간단한 일이라는 것 때문에 세영은 기뻤다. 끝없이 이어지는 층계를 다다닥다다닥 지겹게 내려 가는 동안에도 지겹지도 않았고 힘들지도 않았다. 내려가는 동안 생각할 것, 느낄 감정은 온갖 것으로 많았다. 오히려 세상 모든 높은 건물들의 옥상들이 내가 마음 껏 올라가고 내려갈 수 있는 자리라는 생각 때문이지, 세영은 내려오는 계단이 친근하게 보일 정도였다.


5.
세영은 그날 밤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밤새 온갖 생각만 계속했다. 잠깐 잠이 든 짧은 순간 동안, 하늘을 날아 다니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환호하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좋아 하는 꿈도 꾸었다. 꿈인지 그냥 상상인지 어스름하게 잘 구분이 가지 않았지만, 날고 날고 또 날아서 지구 바깥으로 나아가 우주 저편으로 계속 날아 가고 있는 모습도 떠올렸다.

생각할 것은 많았다. 이걸 누구에게 말해야 할까, 누구에게 맨 먼저 말해야 할까. 누구와 함께 같이 고민하면서 앞으로 뭘 할 지 의논해 볼까. 하늘을 좀 더 잘 날 수 있도록 연습을 더 해야 할까. 얼마나 잘 날 수 있을 때까지 연습을 해야 할까. 어디에서 하늘을 날아 본다면 다른 사람들 눈에 뜨이지 않을까. 내일은 어디에서 한 번 날아볼까. 날아 오르면서 발 밑의 광경이 점점 멀어지고 눈 앞을 가리고 있던 것들이 점점 내려가서 하늘이 보이는 것이 점점 넓어지는 광경은 정말 아름다운데, 어디에 가서 그것을 보면 멋질까.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으로 돈을 벌려면,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가지 생각은 다음 생각으로 계속해서 이어졌고, 한번 신이 난 기분이 가라앉지가 않아서 생각이 이어져 나가는 것은 더 많아지기만 했다. 세영은 자신이 아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하늘을 날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혹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될 지, 뭐라고 말할 지, 상상해 보았다.

그러다 보면 하늘을 나는 기분이 어떤 것인가 싶어서, 또 자리에 누운 채로 가만히 몸을 띄워서 이부자리에서 몇 센티미터 정도로 떠올라 보았다. 세영은 일부러 공중에 떠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느끼며 즐기기 위해 팔을 등 뒤로 뻗어 몸 아래에 아무것도 받치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며 버둥거려 보기도 했다. 잠이 들 틈이 없었다. 밤이 깊어지고, 세상이 깜깜해 져서 보이는 것이 없어질 수록, 이제 내일부터 어떤 장면이 어떤 삶이 또 펼쳐질 것인지 계속해서 생각해 눈앞에 떠올려 보게 되었다.

다음날, 세영은 일찌감치 집 밖으로 나왔다. 어차피 밤새 잠을 자지 못해서 새벽녘 조금 햇빛이 드는가 마는가 싶을 때 바로 나섰다. 공기는 차가웠다. 그런데 그 차가운 공기가 닿자마자, 높은 하늘로 날아 올랐을 때 얼굴에 닿던 그 차가운 고공의 바람이 생각이 났다. 또 날아 보고 싶었다.

세영은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지 않을 골목을 찾아 다녔다. 세영이 사는 동네에는 그런 골목들이 많았다. 건조하고 찬 아침이었는데도, 어딘가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큰 길 멀리서부터 밥 짓는 냄새와 뭔가가 썩는 냄새가 조금씩 조금씩 섞여 들어서 긴 오르막을 올라 오는 동안 수천가지가 섞인 기체가 되어 도무지 무엇인지 알 수도 모를 수도 없는 냄새로 변한 것이 흐릿하게 코에 닿았다.

골목길 안 쪽에서 세영은 다시 하늘로 떠 보았다. 우선 한 두 계단도 안될 높이만큼만 세영은 떠 올랐다. 세영은 그대로 공중에 떠 있었다. 그 정도 높이로만 떠 있어도, 발 밑에 아무것도 없다는 시각과 몸 아래로도 바람이 지나간다는 촉각, 그리고 온 몸이 무게 없이 들어 올려져 있다는 기분이 분명히 들었다. 하늘 위를 보면 아직 퍼런 하늘은 멀어만 보였다. 하지만 갈라진 틈마다 파르스름한 이끼가 끼어 있는 이곳 시멘트 바닥에서는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세영은 차분히 온몸의 감각을 하나하나 돌아 보았다. 억지로 용을 써서 몸을 밀어 올리고 있다거나 힘이 들게 어디에 매달려 있는 기분은 전혀 아니었다. 몸의 무게를 힘들여 받치는 느낌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어떤 힘이 끊어져서 몸이 축 늘어져서도 풀려나서 저절로 떠올라 있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은 매번 심장이 뛰는 것을 알고 느끼지만, 이번 심장 박동 뒤에 혹시 다음 심장 박동을 뛰게 하는 법을 몸이 까먹지나 않을까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당연하고 안심되고, 튼튼하고 굳건했다.

세영은 조금 더 몸을 띄워서 한 두 뼘 정도를 더 높이 날아 올랐다. 날고 있는 동안 신경을 쓰고 날려고 하는 힘을 주는 것은 필요 했다. 그렇지만 몸을 위로 오르게 하는데, 결코 부담스러운 고통이 소요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늘 위로 나는 것은 간단했고, 아무리 높은 곳으로 올라가도 떨어질 것 처럼 당기는 힘도 느껴지지 않았고, 몸의 무게를 무엇인가 붙잡고 있다거나 어딘가가 피로해 지는 느낌도 없었다.

다만 내려갈 때 어떻게 내려갈 지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생각을 하자 걱정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영은 1미터 쯤 높이로 올라 갔다가, 다시 내려 가는 것을 연습했다. 그런데 그만 날고 내려가려고 할 때, 그때 온몸에 다시 무게가 걸리면서 진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확실히 어딘가에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겁이 나고 싫은 감각이었다. 세영은 다시 자기 키만큼의 높이 정도로 더 날아 올라 갔다가, 조금 내려 오기 위해 나는 것을 멈추었다가 바로 살짝 날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내려올 때 나는 것을 멈추었을 때의 떨어지는 느낌은 확실히 무서운 느낌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끼? 여러 번 오래 연습을 하면, 내려오는 것은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고 조금씩 떨어질 때의 겁나는 느낌도 줄어들 것 같기는 했다. 익숙해진다면 좀 더 빠르게 내려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게 그래서 될 것인가 싶었다. 연습을 해서 자꾸 하면서 배우다 보면 잘 되겠지 하는 계획에는 얼른 믿음이 가지 않았다. 불안했다. 자신이 살면서 열심히 연습했다고 해서 정말 잘 하게 되어 좋은 결과가 생긴 일이 몇 가지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젓가락질이 서툴다가 조금씩 익숙해진 기억이 희미하게 났다. 그것 말고는 또 뭐가 있을까, 초등학교 때 몇 가지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별로 통쾌한 것들이 없었다.

몇 번 낮은 허공에 떠있다가 내려오기를 반복하니까, 세영은 오히려 점점 더 답답해졌다. 빨리 다시 한 번은 멀리 멀리 날아 보고 싶었다. 오늘도 어제에 있었던 것이 그대로 있다고 다시 다짐을 받는 것처럼, 다시 한 번 높이 날고 싶었다.

세영은 어제 썼던 방법을 조금 바꾸어 활용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올라 가는 것은 잘 할 수 있지만 내려오는 것이 어렵다면, 내려오는 것은 하지 않는 방법을 택해 보는 것이다. 어제처럼 하늘 높이 날아 올라간 뒤에, 가까이에 있는 어떤 건물 옥상 같은 곳에 내려 간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하면, 멀리 긴 거리를 내려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어제는 옥상 보다 더 높은 높이로 한참 더 올라 가서, 옥상까지 내려오는 동안 좀 다쳤지만, 옥상 난간 높이 정도까지만 맞춰서 날아 올라간 뒤에 그냥 그대로 난간으로 발을 내딛고 바로 옥상으로 걸어 내려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늘로 올라 가는 재미만 느껴 보고, 내려가는 데는 아무 걱정 없이 바로 같은 높이에 있는 건물 옥상으로 넘어 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세영은 사람이 지켜 보는 곳이 없고 눈에 뜨이지 않을만한 곳이면서도 가볍게 옥상까지 올라갈 만한 건물을 찾아 보았다. 우선 골목을 돌아가며 다닥다닥 붙어 있는 2, 3층 집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집의 옥상은 그 아래에 사는 사람 중 누구 하나가 분명히 자기 집 공간으로 삼고 있는 곳이었다. 빨래대가 널려 있거나, 오징어나 곡식을 말리고 있거나, 아이의 고장 난 자전거를 보관해 둔 곳들이 많았다.

그런 곳의 옥상으로 올라 가면 눈에 뜨이기 쉬울 것 같았다. 옥상에 올라갈 때까지는 눈에 뜨이지 않는다고 해도 비집고 내려오는 길에 바로 그 아래 방에서 인기척을 느낀 사람과 마주칠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그렇게 되면 무슨 말로 둘러대면서 내려올 지 답이 궁색했다. 설득력있게 변명하지 않으면 꺼림칙한 일을 저지르고 도망가는 도둑처럼 수상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하 층에서부터 옥상 위까지 문이 돌아 가면서 수십개나 달린 집도 몇 보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다. 누런 금속과 불투명한 유리로 된 문들이 작은 공간에 많이 보였다. 자주 열리지는 않을 문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그 사이로 들키지 않고 날기가 어려워 보였다. 결정적으로 옥상 옥탑방에도 몇 평쯤 되는 방 한 칸에 부엌이 달려 있어서, 그 앞으로 내려 앉는 것은 남의 집 마당으로 뛰어드는 강도 같아 보이는 모양이었다.

세영은 한 구역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보았다. 저런 건물의 옥상이라면 옥탑방에도 사람이 사는 그런 집 보다야 더 안전해 보였다. 저런 건물이면, 저 건물의 옥상에 들어 가 보는 행동도 남의 집에 들어 가는 죄책감이 덜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렇지만 높이가 너무 높아 보였다. 저 정도로 높이 날아 가는 것은 겁이 나기도 했다. 막상 날아 보기 시작하면 별로 겁이 안날거라고 한 번 생각해 보기도 했다.

높이가 너무 높다는 데에는 다른 문제도 있었다. 다른 나지막한 건물들에 비해 이쪽은 너무 높아 따로 튀어 나와 있어 보였다. 그늘진 벽 아래에 있는 지금은 괜찮겠지만 건물 꼭대기에까지 올라 가면 주위에서 너무 잘 보일 것 같아 보였다. 건물이 매끈하고 페인트칠도 똑똑히 되어 있었다. 더 낮은 곳 골목이나 다른 집들의 창문에서 자주 올려다 보기에 좋아 보였다. 그렇다면 옥상 근처에서는 잘못해서 들킬 위험이 크다고 생각했다.

들키는 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어쩔 수 없이 들킨다면 그냥 들켜도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높이 올라 가는 것이 갑자기 이제는 무서워져서 들킬 수 있다는 핑계를 마음 속으로 떠올려서 피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러나 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일단 다시 반대쪽으로 언덕 아래길을 가면서 다른 마땅한 건물과 마땅한 옥상을 찾아 보기로 했다. 시내 한 가운데에서 겁도 없이 마음대로 날아 올랐던 것은 도대체 얼마나 들떠 있었기에 그랬던 것인가?

군데군데 조금씩 무리가 다른 집들 사이를 한 시간 쯤 돌아 다니고 나서 세영은 마침내 적당한 건물을 찾았다. 원룸텔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8층 정도의 건물이었다. 옥상에 올라 가는 것이 이상해 보이지 않을 만한 크기의 건물이었다. 옥상에 누가 가는 지 마는 지 신경 쓰는 사람도 없어 보였다.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은 지, 애초에 지금 시간에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아 보이는 건물이었다.

세영은 그 건물의 지하 주차장을 옆으로 돌아간 공터에 섰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햇빛이 덜드는 벽면을 타고 올라가는 가스 배관이 똑바로 뻗어 올라가면서 벽 주위로 가지를 차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스 배관은 벽을 타고 올라 가는 덩굴처럼 보이기도 했고, 하늘로 올라 가는 길을 표시해 주는 차선 같은 느낌으로 보이기도 했다. 똑바로 하늘을 날고 있는지, 좌우로 흔들거리거나 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저 배관과 자신의 위치를 견주어 보면 될 것 같았다.

세영은 고개를 돌려 반대쪽 건물의 창문이 모두 보이지 않도록 닫혀 있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몸을 힘껏 위로 띄워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건물 벽을 따라 날아 올랐다.

몸에서 꼭 무엇인가가 쑥 빠져 나가는 느낌으로 세영은 가볍게 위로 치솟았다. 발바닥이 땅에서 떨어지고 허공에 그대로 들려 있는 느낌이 확 들었던 높이는 2층에서 3층 사이 정도로 올라왔을 때였다. 그때 갑자기 다시 겁이 덜컥 났다. 생각처럼 안되면 어떻게 하지. 또 아까처럼 내려 가는 것이 너무 무서워지면 어떻게하지. 잘못 떨어져서 뼈가 부러지면 어쩌나. 목이 부러질 수도 있지 않을까. 잠시였지만 공중에 떠 있다는 이 동작이 결코 정상적으로 지속될 수 없는 위태로운 것으로 느껴지면서 무서워졌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계속 그대로 올라 가기로 했다. 그대로 떠 있다가는 분명히 눈에 뜨일만큼 집들이 많은 곳으로 들어 와 있었기 때문에 빨리 날아야 했다. 20미터가 채 덜 될 만큼만, 그 만큼만 더 날아 올라가면 옥상으로 가뿐하게 올라설 수 있었다. 올라 가는 것만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세영의 몸은 계속해서 공중으로 더 올라갔다. 날아 오르는 속도는 조금이지만 더 빨라진 느낌이었다. 방향이 어긋나서 벽면의 가스관이 세영의 왼쪽 어깨쪽으로 치우치게 보이기 시작했다. 세영은 똑바로 올라 가는 방향을 잡기 위해서 왼쪽으로 더 움직이기로 했다. 팔을 뻗어 벽을 짚고 몸을 약간 움직였다. 우둘투둘한 재질을 발라 놓은 벽면에 손이 닿으니 손바닥이 긁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방향은 정확하게 잡을 수 있었다.

저 아래 바닥에 내가 발을 딛고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높은 높이까지 올라 왔지만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세영은 발을 아래 위로 까닥거려서 자기가 아무것도 딛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똑똑히 느껴 보았다. 수십미터 높이에 떠 있는 허공에서는 전봇대를 위에서 내려다 보는 모습과 거기에 연결된 전설의 위쪽면이 가깝게 보였다. 어쩐지 이 높이, 이 공간의 공기는 아무도 호흡해 보지 못한 공기라는 생각에 팔을 뻗어 주위의 바람을 휘저어 보았다.

옥상 난간에 도착한 세영은 우선 손을 뻗어서 벽면에 대었다. 그리고 손을 난간에 걸쳤다. 이대로 날아가는 것을 멈추고 팔 힘만으로 매달려 난간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세영은 손으로 난간을 붙잡은 채로 하체는 그대로 날아서 하체만 들어 올렸다. 그러면 엎드린 모양으로 난간에 올라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난간에 그동안 뽀얗게 쌓여 있던 먼지가 손에 묻어 났다. 손으로 먼지를 만진 것 뿐인데도, 입에서 왜인지 먼지 같은 맛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자세가 흩트러지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건물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꼴이었다. 세영은 어쨌거나 안전하게 붙기 위해서 다리를 뻗었다. 옷 이곳저곳에 먼지가 시커멓게 묻었다.

덕택에 세영은 무사히 옥상으로 내려 올 수 있었다. 옥상 난간은 그 바닥과는 약간 거리가 있어서 옥상 바닥으로 뛰어 내릴 때 발바닥이 아팠고 손을 짚어야 하긴 했다.

그리고 나서 누군가가 발견하기 전에 세영은 옥상에서 급히 길거리로 내려 왔다. 그리고 급히 길을 돌아 섰다. 그리고 몇 발자국 더 걸었을 때, 왜 자기가 하늘을 날 때마다 점점 더 겁을 먹게 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6.
세영은 자신이 어떻게 해서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인지 이유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 왜 하늘을 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그렇다면 어느날 갑자기 하늘을 날 수 있게 된 것처럼, 어느 순간 갑자기 다시 하늘을 날 수 없게 되지 않을 까닭도 없었다.

횟집 어항 속의 물고기들에게 사료를 뿌리는 남자의 손이 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털이 난 동물의 그림자가 물에 한 번 비치고 나면, 물 위에 음식이 쏟아져 내려온다. 하늘에서 저절로 음식이 떨어졌다. 길을 가고 있는데, 어디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머리 위로 펄럭펄럭 지폐가 내려오는 일이나 다름 없다. 저절로 음식이 내려 오는 일만큼 물고기들에게 즐겁고 신나는 일도 없다.

물고기들은 음식이 내려올 때 마다 기뻐하고 다음 음식이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얼마 후 부터는 4천번 어항을 왔다갔다하고 날 때쯤이 되면 머리 위에서 음식이 쏟아 지더라, 하고 자기에게 닥친 행운을 기다리며 즐길 줄도 알게 된다. 그렇지만 그 이유를 모르면 그게 미래에 어떻게 될 지 상상할 수 없다. 언제 갑자기 먹이를 주던 그 손이 배를 따는 칼을 들고 도마로 붙잡아 갈 지 모르는 일이 된다.

세영은 자기가 하늘을 나는 일도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허공에 떠 있는 것을 알았던 그 순간도, 몸을 숨겨 가며 겨우겨우 날아 가는 연습을 했던 다른 며칠 동안에도, 세영은 계속해서 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날 수 있게 된 것에 무슨 어떤 원인이 있는 지는 모른다. 그런데도 지금껏 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번 날았던 그 즐거운 기억 때문에 계속 또 날 수 있다고 막연히 지금껏 믿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 먹이를 주는 손이 대신에 그물에 가두어 잡아 가듯이, 마음껏 하늘을 가로지르게 해 줄 것처럼 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온몸에 하늘을 나는 힘이 빠지며 수십미터의 허공에서 추락하게 되면 어쩌지?

하늘을 날게 된 짜릿한 기분과 놀라움은 여러 번 반복하는 사이에 점차 무뎌진다. 그 때문에 다른 것을 잊게 하는 흥분감이 줄어 들어든다. 그래서 점차 가지런한 정신으로 하나둘 살피게 되고 따지게 된다. 그러니까 자연히 높은 곳에 올라 와 있어서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때문에 조금씩 더 무서워진다.

처음에는 그렇게만 생각하고 세영은 연습하고 더 경험이 많아지면 공포를 극복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건물 몇 개를 더 올라가 보고, 하늘을 더 많이 날아 보면 높은 곳에 떠 있는 것도 무섭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높은 곳에서 밧줄에 매달려 작업을 하는 공사장의 기술자나, 높은 곳에 올라가 묘기를 부리는 사람들이 경험이 많아지고 경력이 길어질 수록 더 자세가 편안해지고 겁이 없어지는 것 같이 될 거라고 짐작했다. 지금 하늘을 날아 가는 흥분이 줄어 들어 익숙해지면서 무서움이 느껴지기 시작 했듯이, 반대로 그 무서움에도 익숙해져서 편안한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하늘을 날아 가는 일은 전혀 익숙해져 지루해 지는 일이 아니었다. 자연히 무서움의 이유도 그런 지겨운 주제들과는 상관이 없었다. 하늘을 날 때 세영은 여전히 처음과 똑같이 흥분했고, 온몸 구석구석 신비감이 가득 차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을 자신도 잘 알았다.

오히려 하늘을 날아 가는 일을 반복해서 할 수록, 하늘을 날고 있지 않을 때에도 그 들뜬 기분이 언제나 남아 있는 기분이 되었다. 길거리의 새들이 행인의 발길질을 피해서 푸드덕거리며 날아갈 때, 그 새들이 바닥을 종종거리며 움직이다가 갑자기 날개를 펴고 어깨 높이 키 높이를 지나 나무와 전선 위로, 날아 오른다. 세영은 그 새들의 움직임을 자기 마음처럼 느끼게 되었다. 좌우로 움직이며 가지 사이를 헤치고 하늘 위쪽의 공간을 찾아 재빠르게 움직이는 그 동작처럼 자신도 날아 본다는 감각이 머릿속에 선하게 떠올랐다.

세상을 살면서 작은 새들을 보는 일들은 흔하다. 그런데 그 새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이는 느낌을 상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뜻 없이 전깃줄 위로 올라 갔다 내려 오는 참새 한 마리조차도 날아 가는데 드는 힘과 날아 가는 방향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하늘을 날아 가는 것은 아직도 감정을 크게 흔들어 대는 일이었다.

세영이 가장 겁을 내고 있는 것은 이 모든 좋은 것이, 행운이, 행복이 갑자기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하늘을 잘 날고 있지만, 왜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는지 모르는 이상은 언제까지 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이렇게 하늘을 나는 재주가 유지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하늘을 나는 힘은 한계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녹아내리는 촛불이나 점점 줄어드는 배터리처럼 지금은 재미있게 즐기고 있지만 너무 많이 쓰다보면 곧 없어져 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내가 모르는 이유, 내가 알 수 없는 까닭이 있어서 나는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하늘을 날며 공중에 떠 있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만약 하늘을 나는 재주에 한계가 있어서 하늘을 나는 것은 5시간 치 밖에 못한다면, 그것을 미리 알기라도 할 수 있다면 좋을 거라고 세영은 생각했다. 그러면 아껴둬야지. 정말로 답답한 순간, 앞으로 가장 슬픈 시절을 당했을 때 10분, 20분이라도 날아 볼 수 있도록 아껴둬야지. 

이후 세영은 며칠 동안 몰래 날아 다니는 연습을 계속했다. 그러다 보니 정말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역시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장비와 돈을 많이 갖춘 어떤 연구 기관 같은 곳에서 조사하게 하는 것 뿐이지 싶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하늘을 날 수 있는 원리를 알아 내면, 그 원리에 밝은 학자들이 이제 다른 소방관과 응급구조요원들도 하늘을 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면 그 기술로 날아 오른 진짜 영웅들이 고층 빌딩에 갇힌 사람들이 구조할 것이다. 중력을 극복하는 기술이라면 비행기나 우주선을 만드는데도 도움이 되겠지.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이론의 뿌리가 바뀌게 될 지도 모른다.

결국 세영은 적어도 언제인가, 나중에, 늙어서는, 적어도 죽기 전에는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을 널리 알려야 겠다고 다짐했다. 실험을 위해서 갇혀 있는 생쥐처럼 어딘가에 붙잡힌 채로 결코 보통 사람이 기대하는 행복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언제인가 다른 미련이 없어지는 시기가 온다면 기꺼이 스스로 실험 재료가 되어야겠다고 세영은 다짐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그냥 그렇게 희생하고 싶지는 않았다. 세영은 빨리 해결하고 싶은  절박한 삶의 많은 문제들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 중 몇 가지는 한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저 막막하게만 여겨지는 문제이기도 했다. 누가 들어도 고민거리인 이야기들이었고, 다른 사람이 쉽게 해결할 방법을 알려 주며 위로해 줄 수 있는 고민이 아니었다. 거기에 더하여, 막연히 꿈꾸어 보던 좋은 인생, 누구라도 좋다고 생각할 행복한 인생에 대한 욕심도 여전히 갖고 있었다.

하늘 위에 뜬 채로 온 몸을 공중에 띄우고 있는 동안, 세영은 그런 것들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보다 훨씬 더 못한 가짜 속임수로 많은 돈을 벌고 떠받들고 추종하는 사람들까지 거느리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나는 구구한 거짓말 한 마디 없이 눈 앞에서 날아갈 수 있는데, 분명히 무엇인가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은 하늘을 날 수 있는 힘을 최대한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검소한 행복관이기도 했다.

세영은 사람들을 모아서 그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고, 진리를 알려다 준다고 하다가, 심심할 때 마다 불쑥불쑥 날아 올라 놀래켜 주면서, 무리를 이끌고 세력을 만들어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그런것은 막상 실제로 해내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금세 결론을 내렸다. 당장 자기 자신에 대한 일도 제대로 풀지 못해 쩔쩔 매고 있는데, 구원이나 진리에 대해 떠들어 보라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나는 말도 없었다. 그런 말로 다른 사람들이 떠받들어 준다고 해봐야 그게 그렇게 기분 좋을 것 같지도 않았다.

세영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을 만큼 신기한 마술을 하는 마술사가 되어 돈을 벌고, 명예를 얻는다는 상상을 해 보았다. 천으로 사람을 가린다거나, 펑하고 피어오르는 연기로 눈을 잠깐 가린 뒤에 하늘에 떠 오른 것처럼 흉내를 내는 여러 가지 마술을 하는 사람들이 기억났다. 그런 마술사들에 비하면 세영은 훨씬 더 깨끗하고 더 충격적인 연기를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장면들을 소문 낼 수 있으면, 분명히 평균적인 조무래기 마술사들보다야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쪽은 그나마 조금 더 나은 계획 같았다.

그렇지만 그래도 정말 크게 성공할만한 재능이 자신에게 있는 지 세영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웃는 표정과 진지한 표정을 바꾸어 가며 마술을 재밌게 꾸미는 그런 재주를 자신이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세영은 이게 그나마 돈을 벌고 지금 자기 인생을 구출할 방법이다 싶어서 한동안 마술에 대해서 조사를 했다. 조사를 해 볼 수록, 마술은 기술이라기 보다는 예술인 것 같았다. 멋지고 신비롭게 공연을 치장하는 재주가 마술에서 가장 중요해 보였다. 세영의 적성이나 장기와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관객들의 마음을 휘어잡고 뒤흔드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아 보였다. 자유롭게 어디까지나 하늘을 날 수 있는 재주를 이미 훌륭하게 갖고 있다는 것과 비교해 보면, 다른 실력을 지금부터 조금씩 연습해 나가는 것은 멀고 먼 일처럼 느껴졌다.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는데, 도대체 이것으로 뭘 해야 하나. 그 답을 결정짓는 일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는 동안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다. 다른 고민거리, 예전부터 있었던 걱정거리들이 다시 삶을 괴롭게 할 때마다, 분명한 형체도 없이 울컥 뭐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아니, 나는 하늘을 날 수 있는데, 지금 이런 일 때문에 갑갑하게 묶여 있어야 하는가, 그런 생각이 들면 혼자 화를 내기도 했다. 화를 내는 일이 예전보다 잦아지고, 신경이 예민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세영은 얼마 전까지 항상 가슴을 갑갑하게 했던 일들을 생각했다. 갑작스럽게 이유 없이 그저 벌어진 불행한 일들과, 오래 전부터 스물스물 자리 잡아서 아무리 고민해 봐도 풀릴 길이 없었던 문제들도 생각했다. 그런 일들을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따져 보면 하나가 해결된다고 해서 좋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고 나면 그것 때문에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겨날 것이 뻔했다.

그럴 때마다, 더 열심히 하늘을 날았다. 그러면서 하늘을 날아 가는 일에 분명히 무슨 대답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확신에 빠졌다. 괴로움과 실패와 낙망에 붙들린 그 모든 일들을 해결할 방법이, 하늘을 날아 가는 일에서 나올 것 같다고, 이것만 어떻게 잘되면, 이 일만 어떻게 풀리면 모든 게 다 한꺼번에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세영은 생각했다.

긴 시간이 걸렸다. 그렇지만 세영은 할 수 있는 선에서 거기에 가장 가까운 방법을 결국 찾아냈다.


7.
12월 17일이 세영이 처음 코치 앞에서 뛰었던 날이었다. 1주일 전에 한 번 실패를 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더 걱정도 되고, 그만큼 더 떨리기도 했다.

원래는 1주일 전에 찾아냈던 다른 코치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세영은 생각했다. 그 코치는 한번 실패한 상태였고 부업으로 벌인 새우 요리 가게가 망해서 절망감도 더 큰 상태였다. 세영은 그 코치는 무엇인지 희망적인 것을 발견하면 거기에 금방 집착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얼굴과 소속을 알아 내고, 그 사람을 발견하기 위해 선수촌에서 이틀 동안 기다렸다. 곧 세영은 집으로 돌아 가는 그 사람을 발견했고, 그 사람을 뒤따라 가서 그의 집과 습관을 알아 냈다.

세영은 그가 저녁마다 한 번씩 동네 놀이터 옆에 있는 산책로에 나온다는 것을 알아 냈다. 그곳에서 그는 길을 따라서 가볍게 한 바퀴를 뛰었다. 산책로에 나오는 시간은 일정했다. 그가 나오는 시간에는 산책로에 사람이 많은 편도 아니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세영은 그의 집을 발견한 바로 그 다음날 도전해 보기로 했다.

기다렸던 시간에서 오히려 몇십초 정도 일찍 그는 산책로에 나섰다. 멀찍이서 그의 얼굴이 보였다. 항상 열심히 몸을 관리해서 얼굴도 몸도 나이 보다는 훨씬 젊어 보였다. 그렇지만 햇빛을 많이 받아서였는지, 얼굴에만은 늙은 기색이 보였다. 그 늙은 얼굴에는 좌절한 사람의 표정이 뚜렷이 남아 있었다.

그가 세영 앞으로 가까이 왔을 때, 세영은 제자리 뛰기를 연습하며 운동을 하는 동네 주민인 척 했다. 그리고 그가 주변을 지나가기 직전에 맨손체조를 하다가 공중으로 뛰어 오르는 운동을 했다. 그리고 세영은 뛰어 오른 직후에 아주 살짝 공중으로 날아 올랐다. 자연스럽게 공중으로 뛰어 오르는 동작의 한 부분으로 보일 정도로 자연스럽게 날아 오르는 정도를 조정했다. 그렇게 해서 세영은 그냥 제자리에서 팔짝 뛰었다가 내려오는 것인냥 움직이면서도, 날 수 있는 힘을 이용해서 무척 높이 솟았다. 세영은 어제 저녁 집에서 연습했던 대로, 국내 높이 뛰기 기록 보다는 높고 세계 기록 보다는 낮은 높이가 되도록 잘 맞추어 살짝 날았다가 내려 왔다.

세영은 내려와서 자기 앞을 지나간 그의 눈치를 보았다. 그는 국가대표 육상팀에서 높이 뛰기를 담당하고 있는 코치들 중 한 명이었고, 그 중에서 잡다한 다른 작은 희망에 매달릴만큼 절박한 사람이었다.

세영은 공중으로 폴짝 뛰는 자신을 보고 그가 놀라기를 바랬다. 길가에서 본 그냥 동네 사람인데, 제자리에서 뛰는 높이가 어마어마한 사람이 있다고 그가 놀라기를 기대했다. 그러면 그가 세영을 높이 뛰기 선수로 뽑고 같이 성공할 꿈을 꿀 것을 기대했다. 세영은 하늘로 조금씩 날면서 높이 뛰기 기록을 세워서 그의 꿈을 이루어 줄 것이다. 그리고 세영 자신은 최고의 육상 선수가 된다.

그렇지만 그는 세영을 제대로 쳐다 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세영은 그가 뛰어갔다가 오는 길에 다시 뛰어 오르면서 사실은 살짝 날아 올랐다. 그가 보기를 바랬지만 그는 또 지나쳤다. 그 다음날 한 번 더 도전하기도 했지만 그는 여전히 세영을 쳐다 보지 않았다. 그는 동네 운동하는 길에서 천재 육상 선수를 발견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세영의 계획만 아니었다면 그는 정확히 맞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매일 저녁 동네 산책로를 뛰면서 그는 망한 부업과 그 부업 때문에 생긴 빚에 대해서 떠올리며 괴로워하고 있었을 뿐, 폴짝 거리며 그의 눈에 들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세영은 지나가는 그를 불러 세우고, “사실은 제가 높이 뛰기에 엄청나게 재능이 있습니다”하고 말을 걸면서 제자로 삼아 달라고 아예 말을 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자연스럽게 코치의 눈에 드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게 계획대로 되는 일이었다. 계획하고 상상한 대로 일이 하나하나 잘 풀려서 결국 처음 기대했던 것들을 모두 얻게 되는 것이 세영의 목표였다. 세영은 차라리 다른 육상팀 코치의 눈에 뜨일 다른 기회를 찾아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세영이 만난 사람이 지금 세영의 코치였다. 그는 처음 보았던 국가대표팀의 코치와 나이는 같은 사람이었지만 그 보다는 더 젊어 보이는 사람이었고, 덜 절망한 사람이었다. 그는 저녁이 아니라 아침에 동네 편의점에 나오는 길에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고, 그 밝은 아침에 살을 빼거나 혈압을 낮추려고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마어마한 높이로 뛰어 오르는 세영을 발견했다.

“운동 하시는 분이세요?”

그가 말을 걸었고, 세영은 준비한 대로 대답했다. 원래 세영이 사는 집은 여기에서 한참 먼 곳이었는데, 왜 여기서 제자리 뛰기 운동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는 부분은 약간 설득력이 없게 들렸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그 어떤 사람들 보다도 높게 뛰어 오르는 사람을 보고 이미 욕망에 사로 잡힌 상태였다. 새로운 기록, 승리의 기쁨, 유명해지는 즐거움, 돈을 버는 재미, 미워했던 놈들에게 성공을 뽐내는 행복감, 세영을 만난 그 때부터 그는 그런 상상에 빠졌다.

세영은 그 다음 주부터, 그의 지도를 받으며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루에 두 시간씩, 다른 일을 하면서 빈 시간을 내어 하는 정도였다. 그는 달리는 연습을 시키고 뛰어 오르는 연습을 시키고 시간과 높이를 쟀다. 세영은 매번 뛰어오를 때 마다 어떨 때는 조금 놀라울 정도로, 어떨 때는 충분히 믿을만한 정도로 바꾸어 가면서 약간씩 날아 올랐다. 그는 놀라운 높이를 볼 때마다 즐거워 했다. 심지어 생각만큼 높이 뛰지 않았을 때에도 그는 기뻐할 거리를 찾아 냈다.

“나랑 같이 조금만 훈련하면, 항상 아까처럼 높이 뛸 수 있을 거야.”

그는 점점 더 훈련에 시간을 늘리자고 세영을 설득했고, 세영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조절하면서 그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세영은 그가 시키는 연습을 대부분 잘 해냈다. 그가 트랙을 달리게 하면, 세영은 몸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만 아주 살짝 몸을 날게 했다. 몸의 무게가 다리에 걸리지 않으면, 훨씬 더 빨리 뛸 수 있었고, 오래 달려도 힘은 훨씬 더 덜들었다. 세영은 다른 높이 뛰기 선수들이 평소에 뛰는 것을 보고 그 사람들 보다 너무 과하지 않을 정도로만 뛰는 것을 보여 주었다. 윗몸 일으키기나 철봉이나 평행봉을 이용한 운동을 할 때에는, 누운 채로 몸의 상체만 슬쩍 날아 오르게 하거나, 매달린 채로 몸을 날게 만들어서 몸에 걸리는 무게를 없앴다. 그런 방법으로 세영은 제법 열심히 연습하는 사람인 것처럼 행세했다.

하늘을 날아 가는 것과 상관이 없는 운동 중에는 몸이 힘든 것도 있었다. 무거운 것을 밀거나 당기는 운동은 다른 사람들처럼 진짜 힘을 쓰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운동은 힘들었다. 육상 선수들이 하는 운동을 따라 가자니 세영은 버거웠다. 그래도 참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훈련을 계속하면서 점점 체형이 바뀌고 근육이 변해 가는 것이 어느 정도 눈에 뜨여야, 의심스럽지 않아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밖에도 육상 선수가 되는 일에는 다른 골칫거리들이 있었다. 원래 해야 하던 일들의 비중을 점점 줄이면서 운동 선수로 삶을 바꿔 가기 위해 자잘하게 해치워야 하는 일들 중에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것들이 있었다. 삶이 바뀌면서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는 일, 갑자기 돈을 빌리거나 이사를 가야 하는 일,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을 일부러 만나야만 하는 일들도 끊임 없이 이어졌다. 코치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나 팀 운영에 엮여 있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 중에도 피곤한 것들이 많았다. 운동하는 사람들, 운동하는 사람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관습이나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서, 오해를 사거나 미움 받는 일들도 종종 있었다.

다만 그 전의 삶에서 겪었던 비슷한 일들에 비해 세영은 이런 모든 일들을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해낼 수 있었다. 어쩐지 이 모든 일들이 한바탕 놀고 지나 가는 연극인 것 같았다. 그래서 정말로 서글퍼지거나, 암담해질 만큼 화가 나는 때가 없었다. 그러니 사람을 대하는 데도 부담이 없어지고 일에서도 쾌활해지기 쉬웠다.

힘들었지만 버텨내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기록을 잴 때 높이 뛰어 오르면서 조금 날면서, 주변 사람들이 기뻐하는 소리를 듣고 놀라는 표정을 보는 일은 즐거웠다. 대단하다고 칭찬을 듣는 일과 이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해 주면서 승리하는 날을 기다리는 것도 설레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8.
처음으로 출전한 공식 대회에서 세영은 바로 세계 기록을 세웠다. 처음 시도할 때에 다른 선수들을 모두 꺾을 수 있을만큼 날았고, 두번째 시도할 때에는 그 자리에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놀랄 만큼의 높이가 되도록 날았다. 훈련을 하면서 끝없이 연습했던 것이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아주 조금만 살짝 날아 가는 것은 조정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이를 너무 높지 않게 조절하는 것은 이제 익숙해져서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는데, 다리를 박차고 몸을 움직이고 몸이 높아졌다가 낮아지는 그 부드러운 과정에서 관성을 흐트리지 않는 곡선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세세한 움직임을 조절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힘을 짜내며 애를 써서 몸을 띄우는 다른 선수들과는 다른 이유로 세영은 떨렸고 간절했다. 몸이 가장 높이 치솟은 순간 하늘을 날아 오르면서 조금 더 몸을 밀어 올릴 때에, 세영은 그 동작이 깔끔한 모양으로 완성되기를 기도했다. 이것저것 조마조마하게 따지며 조절하는 것이 골치 아파서 에라 모르겠다 확 저 하늘 위로 날아 버릴까 하는 마음도 생겼다. 그건 참아야 했다. 기록 보다 5센티 미터쯤을 더 높이 올라 간다면, 대단한 천재요, 훌륭한 인간 승리라고 사람들이 칭송하겠지만, 50미터 쯤 높이 올라 간다면 괴상한 현상이 일어 났다면서 다들 자기를 사냥하려고 올테니까.

첫번째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다음부터는 좀 더 일이 쉬워졌다. 세영은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훈련을 하겠다고 더 뚜렷하게 주장할 수 있었다. 코치는 자기가 잘 훈련시켰기 때문에 세영이 좋은 성적을 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지만, 세영 또한 그 보다는 자기 자신만이 그 이유라는 것을 진심으로 잘 알고 있었다. 코치는 약간은 서운해 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무렵 그 바닥에서 급작스럽게 성공한 운동 선수들이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고 나서면서 약간 거만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기 때문에, 세영과 코치는 잘 타협할 수 있었다.

세영은 무거운 것을 당기는 운동을 좀 더 줄이고, 대신에 산을 혼자 뛰어 올라 가는 훈련을 많이 하겠다고 했다. 하늘을 날아 가는 것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세영이 점점 더 유명해지면 유명해질 수록, 예전처럼 함부로 하늘을 날 수는 없었다. 세영을 알아 보고 따라 오려는 사람들이 늘어 났고, 기자나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 숨어서 세영을 보고 있기도 했다.

결국 세영은 높이 하늘을 나는 일을 멈추기로 했다. 동료들이나, 갑자기 세영에게 많은 관심을 갖는 치졸한 친지들의 눈에 몇 번 들킬 뻔한 아찔한 일을 겪고 나서는, 세영은 방 안에서 혼자 공중에 조금 떠 있는다거나, 살짝 몇 센티미터 정도 공중에 떠 있는 일도 최소한으로 줄이기로 했다.

그렇게 되니, 하늘을 날 수 있는 순간은 높이 뛰기 기록을 재면서 공중으로 떠오르는 그 순간 뿐이었다. 그때 만큼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게 잠깐이기는 했지만 세영은 하늘로 날아 올랐다. 잠깐 몇 초 올라갔다가 내려오지만, 그것만 해도 즐거웠다. 

세영은 유난히 자주 뛰어 오르는 연습을 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경기장에서 눈에 뜨이지 않을 정도의 교묘한 높이로 살짝 날았다가 내려오는 순간이 되면, 모두가 지켜 보는 앞에서 자기 혼자 비밀을 만들었다가 그 많은 사람의 눈앞에서 모조리 다시 되찾아 챙기는 것 같았다. 그 기분도 좋았다. 위대한 육상 선수, 역사를 바꾼 선수라고 환호하는 함성이나, 굉장한 사람이라고 치켜 세우는 열렬한 칭송도 즐거웠다.

기록을 세우고, 메달을 따고, 다를 동경하는 다른 선수들이나 세영과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다른 유명 인사를 만나는 일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행사에 참석해서 얼굴을 한 번 내밀어 주면 좋겠다고 부탁하는 단체나 정치인들도 계속해서 늘어 났다. 유명해지고 찾는 사람이 많을 때 바짝 잘 챙겨서 속을 차려야지, 한번 관심이 흩어지기 시작하면 다들 등을 돌릴거라고 충고해 주는 사람들도 많이 다가 왔다. 그렇지만 세영은 얼마든지 더 좋은 기록을 세울 자신이 있었다. 세영은 세계 어떤 선수도 넘볼 수 없는 높이이지만, 아주 괴상해 보이지는 않을 만한 높이를 정해 놓고 있었다. 적어도 그 높이까지는 계속해서 화제를 만들고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선수가 된 세영에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생각만큼 운동이 잘 되지 않아 고민하고 있다는 다른 선수들이 질문해 왔을 때 대답하는 것은 난감한 일이었다.

“갑자기 이제 여기가 끝이고 너무 운동하기가 싫고 그럴 때 있잖아요. 그럴 때 어떻게하세요? 역시 계속 연습하는 것 밖에 방법에 없겠죠?”

세영은 정직하게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그러자니 결국 그 선수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뭔지를 짐작해서 어정쩡한 말투로 대답해 주는 수 밖에 없었다. “연습 열심히 하라고” “너무 괴로워하지 말라고”. 혹은 다른 선수에게는 “정말 이게 아니라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또 다른 도전을 하면 된다고” “지금 실패한다고 다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그때그때 다른 이야기로 맞춰 주었다. “선수처럼 되고 싶은 많은 어린 육상 꿈나무들에게 한마디 해 주시죠”라면서 텔레비전 아나운서가 물어 볼 때는 난감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 일 수록 방송국에서 정해주는 답변이 따로 있어서 그걸 그대로 읽기만 하면 되었다. “우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균형있게 운동을 하고 균형있게 생활하는 게 중요합니다. 게임에 너무 빠지면 안되고요.”

그에 비하면 광고 촬영하는 일은 고민거리도 아니었다. 세영은 무릎 관절을 튼튼하게 해 준다는 음료 광고나 달릴 때 좋아 보인다는 옷 광고도 찍었고, 집중력을 키워 준다는 약이나 항상 활력을 돋게 해 준다는 인삼 광고를 찍기도 했다.

“집중력이 있어야 연습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고 경기도 잘 할 수 있습니다.”
“무릎 관절의 튼튼한 힘으로 저는 세상에서 가장 높이 뛸 수 있습니다.”

그런 말들을 하거나, 그런 말들을 하는 것과 다름 없는 영상을 보여 주었다. 그 중에 어느 것 하나 헛소리가 아닌 것이 없었지만, “광고란 게 다 이런 것 아니겠어”라고 소속사 사장은 즐거워하며 말했다. 소속사 사장의 그 목소리에는 그 사람의 평소 말투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정도의 진솔함이 있어서, 세영까지도 걱정 없이 안심하게 되었다.

이제 너무 높이 날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게 되었다. 세영은 높이 뛰기를 하는 다른 선수들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따라할 수 있었다. 애초부터 세영이 연습 하던 것은 더 높이 뛰는 기술이나 힘을 이끌어 내는 방법이 아니라, 동작의 자연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런 점에서 세영이 연습하고 있었던 것은 육상이 아니라 체조나 무용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이제는 그 동작이 몸에 완전히 익어서 일부러 의식하며 흉내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세영은 과거의 다른 위대한 운동 선수들이 성공하고 유명해지고 전성기를 지나서 은퇴하는 흐름을 그대로 따라해서 그럴듯해 보일 정도로 기록을 조절해 나갔다. 가끔 일부러 실패하고 패배해서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그러면 “광고 찍고 TV 나오면서 돈 좀 벌더니, 배가 불러서 연습을 게을리 해서 이제 운동을 안하게 되었다”든가, “저게 어쩔 수 없는 한국식 훈련의 한계다”라면서 세영을 욕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 세영은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오히려 재미있고 즐거웠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 멋지게 다시 세계 신기록을 세워서 세영은 사람들을 더 신나고 감격하게 만들었다. 세영은 일부러 감격하여 기뻐하는 동작을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보여 주었다. 가짜 연기로 보이지 않을까 처음에는 걱정도 했다. 그렇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안타까워 하는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니, 세영도 저절로 그런 감정을 필요한 만큼 보여 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세영에게 관심을 가질 수록 점점 더 멋대로 몸이 뜨지 않도록 엄격하게 하늘을 날아 가는 정도를 제한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뛰어 오르고 위로 솟는 몸을 볼 때 사람들이 후련할 정도로 날아 가는 속도도 정확히 맞추었다. 정밀 분석을 위해 촬영하는 카메라와 세계 최고 선수의 동작을 분석하는 갖가지 측정 기기들에게도 너무 이상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했다. 세영은 그 정도로 자연스럽게 조금만 날아 가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 애쓴 만큼 세영은 언제나 그렇게 아주 조금만 날아 가도록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노력하면 언제나 그 이상으로 보답이 되어 돌아 왔다. 세영은 유명해졌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세영을 떠받드는 사람도, 세영을 질투하거나 시기하는 사람도 더욱 늘어 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돈도,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일들을 다 해치우기에 넉넉할 만큼 벌 수 있었다. 보기 싫은 사람을 더 이상 보지 않고, 보고 싶은 사람을 자주 보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돈이었다.

어떤 것도 모자란 것이 없었다.

놀라운 명예와 풍족한 부를 누리는 사람들에게 감춰져 있을 것으로 은근히 기대하게 되는 어두운 부도덕한 일이나, 갑작스러운 불명예조차도 없었다. 세영은 자기 힘으로 공중으로 치솟았고, 그 덕택으로 이 모든 것을 얻었다. 그 모든 단계마다 항상 조심하고 누가 보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 모습이 되도록 언제나 자기 모습을 가다듬었다. 어디에서나 모범적인 성공한 사람으로 세영의 이야기를 했다. 세영은 그 이야기가 부끄럽지 않도록 남을 돕기도 했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말, 좋은 모습을 보여 주려고 했다. 그런만큼 더 많은 일들이 꿈처럼 풀려나가, 더 좋은 일들이 벌어졌다.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이 이끌고 온 그 많은 유혹에 떨어지지 않고 조심조심 가장 좋은 길을 찾아 헤쳐 나왔기 때문에 그 모든 행복이 이루어졌다고 세영은 생각했다. 세 가지 소원을 들어 주는 악마와 거래를 하다가 결국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던 옛 우화 속의 주인공들과는 다르게 자신은 어떤 함정에도 빠지지 않았음을 돌아 보았다. 생각할 수록 유쾌해서 세영은 더 뿌듯했다.

내가 들은 이야기에서 중요한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정말로 할 가치가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10.
저녁에 일반 시민들을 위한 힉스 입자에 관한 강연이 있었다. 세영은 거기에 갔다가 돌아 왔다. 그때까지도 세영은 힉스 입자나 중력에 관한 강연이 있으면 꼬박꼬박 찾아 가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강연을 들으면, 가끔은 자신이 하늘을 날 수 있는 이유는 혹시 이런 것 아닐까 싶은 느낌이 들어서 흥미를 느낄 때가 있었다. 종종 세영은 강연이 끝나고 연사를 만나서 궁금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혹시 이런 식으로 중력을 없애거나 공중으로 뭔가가 떠오르게 될 수도 있지 않겠냐고 물어 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물리학 강연에 관심이 많은 육상 선수로 세영은 이야기 거리가 된 일도 있었다. 어떤 한심한 기자는 세영이 작용, 반작용, 힘, 가속과 같은 역학 원리를 잘 익히고 있기 때문에 그걸 응용해서 좋은 높이 뛰기 기록을 세우는 거라고 멋대로 상상해서, 다들 공부 열심히하라고 훈계하는 글을 쓴 적이 있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 오는 길은 깊은 밤이었다. 멀리 건물 불빛들이 보였고, 하늘에 가득 번지는 도시의 전기 빛에도 살아 남은 밝은 별 몇 개가 보였다. 세영은 언제 한 번쯤 본 것 같은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다가, 혹시 더 고민해야 할 일이 뭐가 있는지, 뭔가 중요한 일인데 잊고 있는 것이 있는 지, 깜빡했다가 나중에 알고 허둥대며 식은 땀을 흘릴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그런 것은 없었다. 그런 일 때문에 걱정이 생기지 않은 지 벌써 한참 되었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이제 슬슬 은퇴할까,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세영은 그 생각을 잠깐했다. 그렇지만 아직 계획해 놓은 시간은 한참 남아 있었다. 은퇴하는 시기는 좀 더 기다리는 것이 맞았다. 집까지 걸어 가려면 언덕 위로 가는 길을 걸어 가야 했다. 언덕 방향으로 올라 가면서 세영은 전화를 걸었다. 차를 갖고 와서 나를 데려다 달라고 말할 참이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 번 더 전화를 걸었는데 또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세영은 무슨 일이길래 내가 돌아갈 시간이 되었는데 전화를 안 받나 싶어 혼자 잠깐 짜증을 부렸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도 세영은 걸어 갔고, 걸어 가다 보니 점차 다른 생각이 몰려와 짜증은 사라졌다.

오른쪽에 보이던 건물 하나가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건물 꼭대기 층의 전등이 꺼졌다. 세영은 언덕 꼭대기에 왔다는 것을 알았다.

문득 다시 밤하늘과 그 아래 건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밤하늘은 불빛을 반사하고 있어서 검지도 않고 붉지도 푸르지도 않은 이상한 색이 되어 있었다. 그런 색이면서도 어두운 하늘이라는 느낌은 땅 아래로 한없이 내려 오고 있었다. 그때, 세영은 마침 지금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영은 다시 주위를 둘러 보았다. 정말 이쪽을 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늘은 어둡기만 하여 끝없이 떨어지는 무서운 구덩이처럼 뻥 뚫려 있었다. 세영은 마치 그것과 싸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겁낼 것 없다고 다짐했다. 갑자기 다시 가슴이 뛰었다.

세영은 하늘을 올려다 보고 두 다리로 땅을 박차고 올라 섰다. 저 하늘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 가운데로 솟아 올라가 보겠다는 마음이 치밀었다. 다시 얼굴 위에서 발 아래까지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과 들린 발 아래에 펼쳐지는 오싹한 먼 땅 아래 광경을 보고 싶었다. 세영은 공중으로 뛰었다.

그러나 세영은 그대로 다시 땅으로 떨어졌다. 세영이 뛴 높이는 스스로 세운 세계 기록을 십 센티미터는 가뿐히 뛰어 넘을 높이였다. 세영이 마지막 목표로 삼고 있던 높이였다. 그렇지만 세영은 거기에서 떨어져 버렸다. 세영은 허둥거리면서 다시 하늘로 올라 가기 위해 또 뛰었다. 마찬가지였다. 그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가 없었다. 오히려 처음 힘껏 뛰었던 것보다는 더 낮은 높이였다.

세영은 또다시 뛰어 올라 갔다. 하늘로 올라 갈 수가 없었다. 몇 번씩 반복했지만, 그대로 다시 떨어졌다. 세영의 얼굴은 지금껏 자기가 지금껏 살면서 보았던 사람 중에 가장 애처로운 표정과 똑같은 표정으로 변해갔다.

세영은 그동안 높이 뛰기 하는 흉내를 내면서, 눈에 뜨이지 않을 정도로 조금만 날아가려고 애쓰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하다가 그대로 몸이 굳어져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더 이상 어떻게 해서 하늘을 날아 올라 갈 수 있는지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퇴화해서 없어진 감각기관으로 들리지 않는 말을 들으려는 것처럼, 어떻게 해서 전에는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세영은 길게 달려서 도움닫기를 한 뒤에 발이 땅으로 영영 떨어지지 않기를 기원하며 뛰기도 했고, 호흡이 안정될때까지 충분히 쉬었다가 다시 한 번 뛰어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해도 뛰었다가 그대로 떨어질 뿐이었다. 그동안 언제나 열심히 연습해서 결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높이 뛰어 올랐다가 내려 오는 것을 익혔던 것처럼, 꼭 그대로만 움직일 수 있을 뿐이었다.

세영은 다른 생각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계속 달리고 뛰기만을 반복했다. 밤하늘은 변함이 없이 그대로 어둡게 가만히 있기만 했고, 올려다 볼 때마다 그것은 점점 더 멀어지는 것만 같아 보였다. 숨이 차고 땀이 눈 앞으로 흐를 때에 세영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본다. 세영은 마침내 아무렇게나 어쩌다 보면 한번은 되리라는 심정으로 계속해서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계속 하늘을 향해 뛰고 또 뛰어 보았다.

마침 거기까지 따라 온 어느 기자가 세영을 발견했다. 발작하는 것처럼 뛰고 또 뛰는 그 모습을 보고, 밤에도 저렇게 신들린 듯이 열심히 연습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좋은 결과를 얻고 또 위대한 선수가 되었다고 소중한 깨우침을 얻은 듯이 감격적인 기사를 내일 쓸 것이다.

세영은 지치는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발목이 접질러지는 지, 잘못 떨어져서 자빠져 구르는 지도 생각하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 땅을 박찼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날고 싶어.

 

- 2015년, 가양동에서
 

댓글 4
  • No Profile
    윤새턴 20.12.01 02:10 댓글

    능력을 절제한 끝에 병 속의 벼룩이 되느냐, 능력을 남용해 파멸하느냐 사이의 선택은 매우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생애에 한 번쯤은 해볼 기회가 있다면 좋겠군요. 잘 읽었습니다.

  • 윤새턴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20.12.01 08:04 댓글

    좀 길고 방만한 글 아닌가 싶어 갑갑했는데, 이렇게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말 마무리 잘 하십시오!

  • No Profile
    단서련 20.12.01 08:33 댓글

    Chapter 4 읽는데, 주인공이 연습하다가 안테나에 찔릴까봐 심장이 엄청 쫄깃해졌어요. 아슬아슬. 재밌게 잘 읽었어요!

  • 단서련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20.12.01 12:24 댓글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좋은 글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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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시티 절류(折柳): 버드나무를 꺾다2 2020.11.01
pena 위화(衛華)3 2020.11.01
곽재식 이상한 녹정 이야기8 2020.10.31
해망재 원점으로 돌아가 2020.10.09
엄길윤 정신강탈자2 2020.10.01
노말시티 탈피 2020.10.01
곽재식 내 텅빈 마음이 있는 곳에2 2020.09.30
노말시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 2020.09.01
전삼혜 지정석 크리티컬 슈퍼스타 2020.09.01
아이 고쿠라에서 J를 202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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