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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이상한 녹정 이야기

2020.10.31 08:2210.31

이상한 녹정 이야기


확실히 올림픽 개막식이 시작되자 양념치킨 주문도 늘어났다. 기분이 좋았다. 처음 가게를 시작하고 나서 뜻대로 장사가 되지 않아 이렇게 망하고 실패하는 구나 싶어서 혼자서 두려워하며 몰래 울었던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별별 짓을 다해 겨우 버텨 보려고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애쓰는 가운데 겨우겨우 가게를 유지해 나가던 시절. 그 시절이 마음 속에서는 아직도 겨우 며칠 전 같다.

그렇게 버티는 세월이 지나 가는 사이에 가까스로 가게는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매출도 제법 나오고 이익도 어느 정도 돈이 되는 수준이다. 그렇지만 잠깐 딴 생각을 하고 있으면, 그 사이에 가게는 쫄딱 망하고 나는 돈을 날리고 빚더미에 올라 않고 먹고 살 쌀값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빠질 것 같다는 생각이 마귀처럼 몰려 왔다.

그나마 무슨 행사라도 있어서 주변에서 양념치킨을 시키는 주문이 갑자기 많아지면 바쁘게 일하는 동안에는 그런 공포를 잊을 수 있다. 허겁지겁 주문을 받고 닭고기를 튀기고 양념을 묻히는 동안 잠깐 기분이 좋고 마음이 편안한 듯한 느낌도 든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 같은 내 인생에서 망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얼마 동안일 망정 잊을 수 있는 시간이다.

“가게 잘 되네? 완전 초유량기업 사장님 티가 확 나는데. 회사 그만두고 너만큼 성공한 사람 못봤는데.”

선배는 들어 오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게 거의 10년 만에 다시 만나는 날이었는데, 선배는 오늘 아침에 나를 보고 지금 다시 보는 것처럼 말했다. 실제로 선배는 거의 달라진 것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반갑다고, 이게 얼마만이냐고 몇 마디 인사말을 물었다. 선배는 그 옛날처럼 경쾌하고 즐거운 목소리로 나에게 대답해 주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래도 선배만 하겠어요? 선배는 회사 그만둔 다음에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대성공하셨잖아요?”
“그렇게 무슨 성공이라고 할 정도도 아니야. 내가 무슨 큰 돈 만졌냐? 나 다음 그 기획사가 큰 돈 벌었지.”

내가 선배를 부러워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초고성능 인공신경망 인공지능 벤처 기업이라는 곳에서 같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던 동료들 중에서 지금 선배만큼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어찌저찌 다른 일을 하겠다고 나간 그때 동료들은 무슨 일을 하건 거의 다 한 번 씩은 망해 보았다. 두 번 망한 사람도 적지 않다. 그나마 개처럼 일하면서 하루하루 닭기름에 쩔어서 집에 들어 가는 내가 한 번도 안 망해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의 질투를 받는 형편이다.

그에 비하면, 전혀 다른 사업을 펼쳐서 성공한 선배는 환상적인 이상향을 발견한 사람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선배가 대답하는 말 속의 겸손한 느낌은 진심처럼 들렸다.

“정말이야. 나도 요즘 뭐 다른 일 하러 알아 보고 있어. 벌써 뭐라도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신세가 돼서 궁지에 몰렸다니까.”
“에이, 무슨 소리에요. 선배 성공한 이야기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나는 선배가 주문한 상표의 병맥주를 준비해서 내어 주었다. 일부러 병맥주의 상표를 선배가 잘 볼 수 있는 방향으로 내밀었다. 병맥주에는 금메달을 몇 번이나 딴 것으로 유명한 육상선수가 웃는 얼굴로 서 있었다. 사진을 잘 찍어서 그렇기는 했지만 확실히 모든 것이 아름다워서 호감이 갈 만 해 보이는 사진이었다. 그 선수는 한국의 고유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선사업에 후원을 많이하는 것으로도 유명했기에 병맥주는 온통 태극 모양과 태극기 같은 것으로 장식 되어 있었다. 눈에 잘 뜨일 수 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별 성공도 아니라니까. 겨우 자리 잡을만 하니까 그만뒀는데 뭐.”
“그래도 그렇죠. 어떻게 소프트웨어 개발 하던 분이 갑자기 완전 다르게 스포츠 기획사를 차려서 그렇게까지 크게 성공을 할 수가 있어요? 그 이야기 좀 해 줘 봐요. 저도 이 일 그만두고 무슨 수 좀 내 보게.”
“그런 말 하지마. 양념치킨 가게 차려서 너만큼 자리 잡은 사람은 흔하냐? 이 정도로 잘 되는 가게가 서울 시내에 몇 개나 되겠어.”
“선배야 말로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그렇게 성공하셨다는 분이 어떻게 그렇게 그 동안 연락도 없으셨어요?”
“그래서 오늘 너네 가게에서 팔아 주려고 왔잖아.”

선배는 맥주잔을 들이켰다. 그때 마침 양념치킨이 완성되었기에 나는 그것을 탁자로 가져다 주었다.

“선배, 도대체 누구 끈으로 성공하신거예요? 원래 선배가 그 쪽으로 좀 백이 있으셨어요?”
“계속 그러네. 성공 아니라니까. 어, 그런데 양념치킨은 진짜 맛있다. 야, 이러니까 너네 가게가 성공하지.”

선배는 내가 갖다 준 따뜻한 닭고기를 뜯어 먹었다. 한참 꼼꼼히 맛을 보고 나더니, 나를 쳐다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 오늘 어차피 누구한테 이 이야기 하고 싶어서 온 거니까, 이야기를 하기는 할게. 이거 오늘은 정말 털어 놔야 된다고 생각한 거거든.”

선배는 그리고 나서는 또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무슨 이야기를 하길래 저렇게 마음의 준비를 길게 해야 하나 싶었다. 스포츠 기획사 사업을 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무슨 큰 사기를 쳤다는 이야기를 내 앞에 털어 놓으려고 그러나? 나는 그러면 잠깐 경찰서에 신고를 해야 할 지, 아니면 그냥 아무것도 못들었다고 하고 그냥 선배에게 돌아가라고 해야 할 지 혼자서 고민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선배의 이야기는 내 상상에서 한참 더 벗어나 있었다.

“너, 내가 회사 그만두기 전에 마지막으로 너랑 같이 했던 과제가 뭔지 기억 나?”
“그, 무슨, 인공지능 빅데이터 플랫폼 그런 거 아니었나요?”
“그 시절에 했던 과제에는 백이면 백 전부 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플랫폼, 그런 말 다 들어가 있었지.”
“하여튼 맞기는 맞잖아요.”
“그래 맞아. 차세대 인공지능 빅데이터 안면 인식 플랫폼 구축 사업이었지.”
“아 맞아요. 차세대라는 말도 진짜 아무데나 다 쓰는 말이었는데.”

선배는 내 말을 듣고 웃었다. 그날 처음 들어 보는 선배의 웃음소리였다.

“그때 차세대 인공지능 빅데이터 안면인식 플랫폼 구축 사업이라는 게 뭐였냐면, 공개 수배하는 범죄자가 있거나 실종된 사람이 있거나 하면, 그 얼굴을 길거리에 있는 CCTV 같은 카메라가 자동으로 인식해서 그 사람은 어디를 가든 컴퓨터가 바로 찾아서 인터넷으로 알려 준다는 거였거든. 그 비슷하게 이미 가동 되고 있는 게 있었는데, 우리가 프로그램을 가볍고 빠르게 만들고 성능도 더 좋게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었잖아. 기억 나?”
“기억 나죠. 그때 우리 엄청 고생했잖아요.”
“뭐, 고생을 안 한 적이 있나.”
“그렇지만 그때는 특히 고생했죠. 그때, 왜,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체온 측정한다고 촬영하는 카메라나 QR 코드 촬영한다고 켜놓은 카메라도 전부 다 실종자를 안면인식 검색하는 데 쓸 수 있게 해야 된다고 해서, 그거 만든다고 진짜 고생했잖아요.”
“아, 맞아. 그랬지. 나도 그건 잊고 있었네.”

우리는 그때 휴대전화로 실행시키는 QR코드 촬영 프로그램이랑 안면인식 검색을 연결시키는 데 고생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것도 그건데, 막판에 우리 전국민 데이터베이스로 쫙 다 돌렸던 거 기억나?”
“아, 그거요? 그거 국정원에서 하드디스크 들고 와서 했던거?”
“맞아. 그거. 국정원에서 전국민 주민등록사진 전부 들어 있는 하드디스크 들고 왔었잖아. 이미 세상 뜬 사람들 중에도 주민등록사진 자료 남아 있는 사람들은 자료가 전부 다 들어 있고.”
“기억나요. 우리가 작업하는 동안 국정원에서 나온 사람이 하드디스크 꽂아 놓은 곳 옆에서 하루 종일 지키고 있었잖아요. 아무 일도 안하고 그냥 하루 종일 옆에서 지키고 있기만 했었는데. 그 사람은 그래도 공무원이니까 아직도 국정원에서 잘 일하고 있겠죠.”
“이제는 제법 높아졌겠지.”
“그렇겠죠.”
“그래서 그때 그 사업할 때, 우리가 한국 사람들 중에 얼굴이 아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는지 검색해서 찾아 보는 실험했었잖아.”
“맞아요. 사진 5천만 건인가 6천만 건인가 갖고, 그 사진들 중에 나오는 얼굴 중에 똑같이 생긴 게 몇 명이나 있는지 검색해 보고 그랬었죠. 사람들 얼굴이 정확히 구분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된다고 해가지고.”
“그랬지. 그때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 지도 생각 나?”
“생각나죠. 그때 우리가 시험해 본다고 우리랑 얼굴 똑같이 생긴 사람이 또 있는 지 인공지능 안면인식 프로그램으로 검색해서 5천만 건 중에 찾아 보고 그랬잖아요.”
“맞아 그러니까 나 처럼 생긴 사람은 3명인가 있었고, 너 처럼 생긴 사람은 4명인가 있었고.”
“기억 나요. 그때 평균이 얼마였더라, 평균적으로 사람이 맨눈으로 봤을 때 서로 다른 사람인지 거의 구분이 안 가는 정도로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전국민들 중에 항상 3명인가씩인가는 있다는 게 결과였던 것 같던데.”
“3.2명.”

놀랍게도 그 옛날 사업에서 중간 결과로 나왔던 자료를 선배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선배가 그 숫자를 말하기에 나도 그때 일을 좀 더 기억하려고 노력해 보니 더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그때, 사람 얼굴이 잘생긴 얼굴일 수록 조금이라도 뭔가 삐뚤한 부분이 있으면 그 차이는 크게 느껴진다고 해서 잘생긴 얼굴들은 사람들이 서로 잘 구분한다고 했죠. 맑은 물에 잡티 하나만 딱 떠다니고 있으면 눈에 잘 뜨이는 거라고. 그렇지만 흙탕물은 어차피 엉망이라서 서로 구분이 안 되기 때문에 외모가 좀 떨어질 수록 사람들은 잘 구분을 못하고 비슷비슷하게 생각한다고 했었고.”
“맞아. 그래서 너랑 똑같이 생긴 사람은 4명인데, 나랑 똑같이 생긴 사람은 3명이기 때문에, 내가 너보다 외모로 더 우월하다, 그런 소리하면서 웃고 그랬잖아.”
“맞아요.”

그리고 나는 웃었다. 나는 그 결론이 실제로도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우리가 우리 기술을 써서 프로그램을 개량해서 그렇게 사람이 맨눈으로 구분해도 구분이 잘 안 되는 얼굴도 미세한 차이를 감지해서 정확하게 구분할 거라고 했었죠.”
“다 생각났나 보네. 맞아.”
“그러다 어떻게 됐었죠? 그러다 말다 하다가 좀 흐지부지 되었던 것 같은데.”

선배는 말을 멈추고 잠시 내 얼굴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는 맥주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그 이야기를 오늘 하려고 하는데 말이야.”

항상 웃긴 소리 잘하고 밝은 사람이었지 않았나? 나는 선배의 목소리가 좀 바뀌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졌다.

“그때 우리가 아무리 프로그램을 개량해도 절대 구분할 수 없었던 사람이 세 사람 있었던 것 기억나?”
“맞아요. 그런 사람 있었어요. 어렴풋하게 기억나요. 그게 1960년대, 1990년대, 2010년대, 아예 서로 다른 시대에 주민등록한 사람인데 얼굴은 엄청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었잖아요? 그렇죠?”
“1969년. 1989년. 2019년. 서로 이름도 다르고 생년월일도 다른 사람이고 주민등록한 날짜도 다른 사람인데, 그렇게 세 시기에 촬영된 사진 세 장이 정확하게 똑같이 생겼다는 결과가 나왔었다고.우리가 아무리 프로그램을 개선해도 그 세 사람은 서로 다른 사람으로 구분하지를 못했어. 우리가 눈으로 세 사람 사진을 봐도 세 사람이 정말로 똑같이 생겼고.”
“부모 자식 관계 아니겠어요? 1969년에 주민등록한 사람이 자식을 낳았고, 그 자식이 장성해서 1989년에 주민등록했고, 또 그 자식의 자식이 장성해서 2019년에 주민등록했고, 그런 식으로.”
“서류상으로 그런 관계는 전혀 없었어. 그리고, 기억 안 나? 우리가 최종 버전으로 개선한 프로그램은 쌍둥이들도 다 구분할 수 있는 성능이 있었잖아. 아무리 부모자식간에 서로 닮았더라도 쌍둥이 보다 닮았겠냐고. 그건 아니지.”
“맞아요. 기억나요.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더라.”

그제야 나는 선배가 들려준 문제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똑같은 얼굴을 가진 60년대, 80년대, 2010년대, 전혀 다른 시대의 다른 세 사람. 그런데 그걸 어떻게 처리했는지가 기억나지 않았다. 선배가 말했다.

“그때 내가 이런 식의 한계는 우리가 도저히 처리할 수가 없는 거니까, 그냥 프로그램에 하드코딩을 해서 그냥 강제로 그 세 사람 사진은 빼고 처리하기로 하자고 했지. 생각나지?”
“맞아요. 선배가 그러셨죠.”
“그런데 네가 그랬잖아. 우리가 프로그래머로서의 자존심이 있지, 절대 마지막 순간까지 하드코딩은 하지 말자고. 나는 하드코딩으로 그냥 젖혀 놓자고 계속 말했는데 네가 괜히 되게 설득력 있게  반대했잖아.”

선배 말대로였다. 그때 나는 그런 소리를 했다.

그때 배달할 양념치킨이 다 튀켜졌다는 소리가 튀김기계에서 들려 왔다. 나는 우선 일을 하기 위해 다시 주방으로 들어 갔다. 그래서 선배는 주방 쪽 가까이로 의자를 옮기고 내 쪽을 보면서 목소리를 더 크게 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그때는 나도 꼭 그런 것 같더라고. 오기도 생기고. 그래서 무슨 수를 다 해서든 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 똑같이 생긴 세 사람 얼굴도 구분해 내도록 개선한다고 정말 밤새도록 붙들고 있었거든. 그런데 정말 아무리 해도 안 되더라고. 내가 심지어 무슨 안면 근육이랑 피부 노화 같은 거 연구하는 생물학자랑 의사들한테도 물어 봤는데, 그 얼굴 세 개는 너무나 똑같이 생겼다는 거야. 심지어 같은 사람의 1년 전 얼굴이랑 1년 후 얼굴도 사람이 늙으니까 얼굴이 조금은 달라지는데, 그것보다도 그 세 사람은 더 비슷하게 생겼대.”
“생각보다 엄청 고민하셨네요?”
“고민 정도가 아니야. 막 꿈에 얼굴 셋 달린 사람이 나오고 말이야. 나중에는 그 고민만 너무 많이 하다 보니까 길가다가 조금 닮은 사람 보이면 그 사람들 얼굴이 막 똑같이 보이고 그랬어. 정신이 점점 어떻게 되는 것 같더라고.”

나는 준비된 양념을 다시 냉장고에서 꺼낸 뒤 작업을 계속했다.

“그때가 일에 워낙 치여서 퇴사할 때 쯤이 되어서 더 시달리던 때라서 더 그랬던 것 아니에요?”
“그런 것도 있기는 있지. 그런데, 그때 그건 정말이라고. 진짜 아무리 들춰 봐도 1969년, 1989년, 2019년에 사진 찍은 세 사람을 구분할 방법이 없었어. 전혀 없어.”
“결국 어떻게 하셨는데요?”
“결국 어떻게 했냐면. 야, 맥주 하나 만 더 줘라.”

선배는 빈 맥주잔을 나에게 보여주며 흔들었다. 나는 육상선수가 웃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 그 맥주를 하나 더 꺼내 주었다.

선배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결국 어떻게 했냐면, 국정원에 이야기를 해서 내가 허가를 따로 받았어. 이 세 사람은 우리 프로그램이 보기에는 아무리 봐도 동일인물로 인식이 된다고 국정원에 이야기를 했거든. 그러니까 국정원에서 뭐랬냐면, ‘아, 그러면 가짜로 주민등록하는 위조범이나 사기꾼인가 보네요’ 그러더라고. 가짜 서류를 만들어서 똑같은 사람 사진을 이용해서 주민등록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면 주민등록 서버에 누가 몰래 해킹해서 들어 와서 사진을 그렇게 올려 놨을 수도 있을 거라고.”
“주민등록 서버를 해킹하는 해커가 있다고요?”
“국정원에서는 그런 해커가 늘상 있을 수 있다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말하더라.”
“그래서 선배가 주민등록 서버 해커를 붙잡았다, 그런 거예요?”
“비슷한데, 사실은 아니야. 전혀 아니야.”

선배는 새 맥주병을 따서 한 모금 마셨다. “맛은 참 좋네”라고 한 마디 한 뒤에, 선배는 다시 말했다.

“그런데 얼굴 사진은 이 정도로 동일 인물로 인식되는 게 다른 건은 한 건도 없는데, 유독 그 세 사람만 그렇게 동일 인물로 나오는 게 너무 이상하다고 내가 따졌거든. 그러니까 그 국정원 사람이 그러면 그 사람을 한번 직접 찾아 가 보자고 하더라고.”
“그러면, 선배가 주민등록 서버 해킹한 사람을 직접 잡으러 간 거예요?”

선배는 내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 국정원 사람이랑 그 사진에 나오는 사람을 찾아 갔어. 2019년에 주민등록한 사람이 최근이니까 그 사람을 찾아 갔지. 바로 찾지는 못했어. 주소지 찾는 것도 좀 복잡하고, 찾아 가도 집에 없고, 계속 그렇더라고. 그래서 돌아돌아서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찾아 갔거든. 그런데 그 사람이 그때 무슨 숲인가, 숲 공원인가 그런 데에 나가 있다고 했어. 그래서 거기에서 마주칠 수도 있을까 싶어서 거기로 찾아 가 봤다고.”
“국정원 사람이랑 같이요?”
“같이. 그런데, 그 국정원 사람은 시계 보더니 이제 퇴근 시간 되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자기는 퇴근할 거라고 했어. 그리고 공원 근처에 왔는데 바로 뒤돌아가서 집에 간다고 하더라. 바로 눈앞에서 그 사람을 만날 수도 있는데.”

나는 그 사람은 지금 분명히 공무원 사회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위치로 승진했을 것 같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선배가 계속 말했다.

“그래서 나 혼자라도 일단 그 숲 공원에 가 봤어. 거기가 되게 넓은데, 그 공원에 중앙에 보면 사슴 키우는데가 있어. 애들이 사슴한테 먹이 사서 주는 것도 있고. 그런데 그 근처에 가니까 사진에서 보던 그 사람이 딱 있더라고. 진짜로.”
“바로 알아 봤어요?”
“알아 봤지. 내가 그 얼굴을 진짜 몇 백 번, 몇 천 번을 보면서 분석을 했는데. 그 사람이 자기 거울 보면서 얼굴 살펴 본 것 보다 내가 훨씬 더 많이, 자세히 그 얼굴을 봤을 걸. 진짜 멀리서 얼핏 봤는데 바로 알아 봤어.”
“그래서, 그 사람이 뭐였어요?”

선배는 그때 양념치킨을 한 입 먹었다. “진짜 맛있는데, 이건 어떻게 이렇게 튀긴거야” 등의 말을 하면서 나에게 다른 이야기를 물어 보려고 했다. 어차피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어서 나는 일단 하던 이야기부터 마저 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거 정말 성공할 만하다. 성공할 만 해.” 선배는 그렇게 말하면서 닭고기 한 토막을 다 먹었다.

“그 사람이 갇혀 있는 사슴 우리 옆에 있으면서 사슴한테 먹이를 주고 있었어.”
“애들처럼요?”
“애들처럼. 그런데 거기 애들은 자동판매기 같은 데서 사슴한테 줄 먹이를 파는 걸 사서 사슴한테 먹이거든. 아무 잡초나 먹이면 사슴이 배탈날 수도 있다고 안내문도 나와 있고. 그런데 그 사람은 자동판매기에서 파는 먹이를 안 먹이고 있었어. 대신에 무슨 이상한 산나물인지, 꽃인지 그런 걸 손에 들고 사슴한테 먹이고 있었어.”
“굉장히 자세하게 기억하시네요.”
“그럴 수 밖에 없는게, 그 사람이 실제로 내 눈앞에 딱 그 사진에서 보던 모습대로 그대로 나타났다는 게 나는 정말 이상하더라고. 무슨 환영이나, 천사나, 그림 속의 인물이 살아서 걸어 나온 장면, 그런 걸 보는 것 같았어. 게다가.”
“게다가?”
“그 사람이 사슴한테 먹이를 먹이는 모습이 굉장히 묘하더라고. 분위기가 진짜 이상해.”
“이상해요? 어떻게 이상해요?”
“몰라, 그냥 쉽게 말할 수가 없어. 사슴이 갇혀 있으니 불쌍하구나, 뭐 그런 느낌이랑 비슷하기는 한데, 보통 사람이 그런 생각하면서 사슴을 보는 모습하고는 또 전혀 달라. 사슴을 보는 눈길이 하여튼 아주 달라. 완전 이상하더라고. 그냥 사람 느낌이 아니야. 약간 뭔가 붕 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선배는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선배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떠올릴 수가 없었다. 선배는 자기 자신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나에게 어떻게든 전해 주려고 안타깝게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때 당시를 떠올리고 있는 선배의 모습은 꿈 속에서 언뜻 들어 본 가장 아름다웠던 노래가 무엇인지 알아 내려고 헤매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는 그 사람이 갑자기 나한테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사슴이 정말 좋아하는 음식은 저런 게 아닌데, 왜 저런 걸 애들한테 팔면서 주라고 하는 지 모르겠어요’ 딱 그러는 거야.”
“갑자기 사슴 이야기를 한다고요?”
“그렇다니까. 그리고 나서 자기가 들고 있는 그 이상한 산나물 꽃 같은 걸 사슴한테 먹이는데, 아닌게 아니라, 사슴이 진짜 좋아하면서 잘 먹어. 아주 잘 먹었어.”
“사슴이 정말 좋아하는 특이한 먹이를 먹여요? 도대체 그 사람 뭐하는 사람인데요? 무슨 불법 사슴 조련사 그런 거예요?”
“불법 사슴 조련사라는 게 어떤 직업인데? 그런 게 있어?”
“아니면 사슴 밀수꾼? 녹용 밀수꾼?”
“아무리 녹용 밀수꾼이라도 그렇지. 무슨 녹용밀수꾼이 제임스 본드도 아니고, 그렇게 수십년에 걸쳐 이어지는 가짜 신분이 필요할까?”
“그러면 도대체 그 사람이 뭔데요?”

내가 묻자, 선배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맥주를 한 잔 전부 들이켰다. 이번에는 일부러 지금 맥주를 마시고 싶어서 마시는 것 같았다. 맥주를 다 마시고 나서도 입을 닦고, 입맛을 다시면서 또 머뭇거렸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한테 물어 봤지. 처음에는 나도 국정원을 좀 들먹였어. 우리가 국정원 사업에서 연구하는 사람인데, 당신 하고 똑같이 생긴 얼굴이 신분증 기록에 수십년 간 똑같이 나오더라. 이게 도대체 뭐냐? 그런 식으로 물었지.”
“진짜, 뭐죠? 무슨 복제인간 같은 건가?”
“복제인간도 아니야. 우리는 쌍둥이도 구분할 수 있었잖아.”
“그러면 뭔데요?”
“그런데 일단 이 사람이 국정원 어쩌고, 위조 신분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꺼냈는데 별로 놀라지도 않고 당황하지도 않고 그랬어. 아무 동요도 없어.”

나는 그 사람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 위해 애썼다. 어쩐지 신비하고 우아한 사슴 비슷한 느낌의 사람 모습이 떠올랐다. 선배가 말했다.

“그리고 내가 계속 집요하게 물어 봤거든. 이런저런 말을 걸어서 계속 가까워지려고 하면서. 그랬더니 결국은 자기 이야기를 털어 놓았어. 그런데 뭐라고 하는 줄 알아?”
“뭐라고 했는데요?”

그러자 선배는 남은 맥주를 전부 다 들이켰다. 이번에는 꼭 안 마셔도 되는 술인데도 괜히 마신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 얼굴을 잠깐 말 없이 쳐다 보았다. 그러더니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선배의 말투와 목소리는 처음과는 완전히 다르게 바뀌어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들어 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가. 내가 술 마시고 그냥 너 웃기려고 이상한 장난친다고 엉뚱한 지어낸 이야기를 진짜라고 하면서, 너 반응 보려고 말한 거라고 생각하라고. 예전에 내가 그런 장난 가끔 쳤잖아?”
“예전에 괜히 이 대리가 사실은 재벌 회장 아들이라고 나한테 말하면서 장난쳤던 거, 그런 거요?”
“맞아 그런 거.”

선배도 그때 생각이 나는 지 잠시 쿡쿡 웃었다. 그러나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자 말투는 다시 바뀌었다.

“그 사람이 뭐라고 하냐면, 자기는 사실 사람이 아니라는거야.”
“예?”
“자기가 사람이 아니래.”
“사람이 아니면요? 귀신이라는 거예요? 외계인?”
“그러면서 갑자기 신라 시대 때 최치원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 가장 엉뚱한 대목을 이야기할 때 선배의 말투는 오늘 나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던 모든 순간 중에 가장 심각하게 들렸다. 나는 그 말을 하는 선배의 얼굴 표정과 눈을 살펴 보았다. 역시 장난을 하는 듯한 모습은 전혀 아니었다.

“최치원 알지? 신라 시대 때 작가이자 학자.”
“이름은 알죠.”
“그런데 최치원이 무슨 이야기로 유명하냐면, 진성여왕이나 이런 높은 사람들 찾아 가서 신라가 망하지 않으려면 이렇게 개혁을 해야 합니다, 뭐 그런 이야기 했다가 거절 당하니까 그냥 속세를 다 포기하고 산에 들어 가서 혼자 공부하면서 산 사람으로 유명하거든. 그리고 전설 속에서는 그렇게 혼자서 공부를 하는데 너무 공부를 잘하고 학식이 깊어서 결국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초월하는 방법까지 깨달았다는 거야. 그래서 최치원이 말년에 완전 새로운 경지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거지.”
“최치원이 신선이 되었다, 그런 이야기예요?”
“그런 이야기야. 그래서 지리산 어디에서 최치원이 혼자 공부하다가 신선의 경지로 들어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삶에 대한 온갖 깨달음을 완전히 얻어서 결국은 현실을 초월하고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면서 영원히 사는 비법까지 깨달았다는 그런 전설이 많이 퍼져 있어.”
“불로불사의 비술까지 알아냈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그게 그 얼굴 똑같은 사람하고 무슨 상관인데요? 아니 아까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죠. 그래도 하여튼 그 사람이라고 부르기로 하고. 최치원이 신선이 된 거랑 그 사람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뭐냐면, 거기에 대해서 이어지는 굉장히 이상한 소문이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어. 1785년 음력 3월 12일자 실록 기록에 보면, 그때 당시 조선시대에 지리산 근처에서 돌고 있던 이상한 소문이 조사된 게 적혀 있거든.”

선배는 그 이야기를 몇 번이나 돌이켜 보았는지 정확한 년도와 일자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거기에 보면 뭐라고 돼 있냐면, 최치원이 세상을 초월하는 비술을 깨우친 다음에 한 몇 백년 산 속에서 혼자서 공부하면서 살았대. 그러면서 점점 더 경지가 높아진거야. 그래서 자기가 아는 지식을 남에게 가르쳐 주는데도 점점 더 뛰어나게 되었대.”
“무슨 인기 강사처럼요?”
“대충 말하자면 그런거지. 그런데, 지리산 깊은 산 골짜기에서 그렇게 혼자 숨어서 몇 백년 동안 살고 있으니까, 주위에 누가 오겠어? 산 속에 사는 사슴이 가끔 최치원이 있는 옆으로 지나갔다는 거야.”
“사슴이요?”
“어, 사슴. 옛날이니까 산 속에 사슴이 많이 살았을 거 아니야? 그런 사슴이 지나가다가 가끔 최치원이 공부하면서 중얼중얼하는 걸 들었다는 거야.”

나는 거기까지는 그러려니 하면서 들었다. 그런데 선배는 그 다음부터 더욱 이상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정말 뭐 잘 가르쳐 주는 사람 이야기들으면 조금만 들어 봐도 그게 뭔지 팍 이해가 잘 되잖아. 강의 잘하는 강사가 가르쳐 주는 거 들으면 별 관심 없어도 점점 관심이 생기면서 빨려 들어서 이야기를 듣다가 막 괜히 그 분야에 관심 생기는 때도 있고. 그렇잖아?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 관심이 없는 사람한테도 지식을 잘 전달해 주는 그런 아주 실력 있는 선생님들이 있다고.”
“그런 선생님들이 있기는 있죠. 그렇지만 아무래도 인기 강사라는 분들이 어쩔 수 없는 한계도 있지 않나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 역할을 한 게 최치원이란 말이야. 공부를 너무 잘해서 인간 세상의 한계를 초월하는 경지에까지 도달한 최치원. 그리고 거기서 수 백년 동안 더 높은 경지를 쌓은 최치원이야. 이 최치원은 어찌나 설명을 잘하고 지식을 잘 전달하는 지, 최치원에게 설명 몇 마디만 들으면 누구든지 인간 세상 지식의 정수를 팍 이해하게 된다는거야.”
“그런 게 가능해요?”
“모르겠어. 최치원이 신라 시대 사람이잖아. 왜 신라 시대 불교에 대해 내려오는 이야기 들어 보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만 열심히 외어도 부처의 가르침을 전해 받을 수 있다, 그러면서 잘 모르겠으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만 열심히 외어라, 뭐 그런 이야기있잖아? 그 비슷한 부류의 이야기인 것 같기는 한데. 하여튼 소문에 따르면 최치원에 대해서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는 거야.”
“최치원이 가르쳐 주는 말 몇 마디만 들으면 누구든 엄청난 지식을 얻게 된다?”
“그렇지. 그래서 그 말 몇 마디를 들으면 누구든 바로 깨우침을 얻어서 그 들은 사람도 신선 같은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거야.”
“게임하다가 치트키 입력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말만 몇 마디 들으면 엄청난 지식을 얻어서 아는 게 확 많아진다는 건 좀 황당한데요.”
“모르지, 뭐. 세상이 사실 다 게임인지. 하여튼, 그 실록에 기록된 소문에는 뭐라고 되어 있냐면, 최치원의 경지는 워낙 높았기 때문에, 심지어 사람이 아니라 짐슴이 최치원의 가르침을 들어도, 짐승의 뇌만 갖고 있어도 바로 내용이 깊이 이해가 되면서 그 짐승조차도 세상을 초월하는 깨우침을 얻어서 신선의 경지로 나아가게 된다는 거야.”

나는 잠시 선배의 말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렇게 믿었다.

“선배는 그걸 믿어요?”
“어떻게 그런 말을 믿겠냐? 그런데 그날 만났던 그 사슴한테 먹이 주던 사람이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자기가 바로 지리산에서 원래 깊은 산골짜기로 지나가던 사슴이었는데 우연히 최치원이 가르쳐 주는 말을 지나가다가 들은 사슴이었다는 거야. 그리고 그 말을 들었더니, 갑자기 세상만사에 대해서 ‘이게 바로 진정한 원리구나’라는 깨달음이 확 밀려왔다는거야. 일단 그런 경지에 이르니까 신체에 대한 한계를 돌파하는 방법도 저절로 깨우쳤다고 하더라고. 그러면서 원래는 자기 모습이 사슴이었는데 그 후로 사람처럼 모습이 바뀌었고 죽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 체질이 되었다고 하더라고.”
“선배, 지금 그 사람의 정체가 사슴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진짜 황당하지? 그런데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정말 그래. 원래는 좀 더 깊은 깨달음을 얻으면 정말 더 심오한 가르침도 베풀 수 있고 막 신선처럼 하늘도 날아 다니고 우주 바깥으로도 막 나가고 그런 경지까지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최치원에게 조금 쉬운 가르침만 몇 마디 들었을 때 즈음에 최치원이 더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는 거야. 그래서 자기는 최치원의 가르침에 대해서 기본 정도만 배웠는데,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굉장히 좋아져서 말도 할 수 있게 되고 생각도 깊어졌고, 나중에는 모습도 사람처럼 바뀌었고, 불로불사하게 되었다는 거야.”

나는 뭐라고 말해야할 지 알 수 없었다. 선배도 거기에서 어떻게 더 말을 이어가야할 지 모르겠는지 잠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너무 이상한데요.”
“이상하지. 이상해.”
“그런데 왜 이제껏 그런 게 있다는 게 안 알려졌대요?”
“사실은 자기가 살면서 뭔가 보람찬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적도 있기는 있었대. 그래서 조선시대 후기에 사회를 개혁하고 바꾸어 보자, 뭐 그런데 관심이 많았던 적도 있었다고 하거든? 그래서 조선시대 후기에는 소문도 좀 났다는 거야. 조선시대에는 뭐라고 했냐면, 자기를 녹정이라고 불렀대. 사슴 녹자에 정기라고 할 때 정자를 써서. 그러니까 대충 사슴의 정기, 사슴의 혼, 사슴 귀신, 사슴 괴물 그런 어감의 이름이야. 그래서 말하자면 자기 정체는 사람이 아니라 사슴이 변신한 녹정이라는 거지. 사슴 도깨비라고도 할 수 있고.”
“녹정이라고 불렀다고요.”
“그런데 그게 일이 이상하게 꼬여서 자기의 노력이 조선시대에는 무슨 사이비 종교 운동이나 역적 모의 같은 데 악용되기만 했다고 하더라고. 사람들이 신비한 것 보면 그런 데 써먹으려고 몰려들기 마련이잖아. 사실 그 조선왕조실록 1785년 음력 3월 12일 기록도 역적 모의에 대해 조사하다가 돌던 유언비어 조사하느라 실린 것이고. 그래서 그때 굉장히 실망을 했대.”
“그래서 그 후로는 깊은 회의를 느껴서 인간 세상에 별로 개입하지 않고 그냥 숨어 살기로만 했다?”
“맞아. 그래서 그 후로는 인간 세상에 개입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계속 살았대. 별로 어렵지는 않다고 하더라. 자기는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기 때문에 음식을 먹을 필요도 없대. 그리고 잠을 안 자도 되고. 힘든 일도 없고 병도 안 걸린대. 추위나 더위도 타지 않고. 그래서 그냥 사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는 거야. 그래서 수백년 동안을 그냥 조용히 지냈다는 거지.”
“그러면, 그래서, 주민등록을 그 녹정이 수백년 동안 살면서 여러 번 했다는 거죠?”
“맞아. 그렇다고 막 산에만 숨어서 사는 것은 아니니까. 평범하게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살거든. 그래야 오히려 정부 기관에서 조사 나오고 그런 일이 없으니까. 그러다 보면 신분증은 있어야 되는데, 세월이 지나도 얼굴이 하나도 안 바뀌니까 시간이 흐르면 의심을 받기가 쉽거든. 그래서 한 20년, 30년마다 한 번씩 서류를 위조해서 다른 사람인 척 하면서 주민등록증을 새로 발급 받았다는 거야.”
“그러면, 그 얼굴이 똑같이 생긴 세 사람은 사실 절대 늙지도 죽지도 않는 한 사람이고, 그 사람의 정체는 사람이 아니라 녹정이라는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진짜 황당하지? 어쩌겠냐.”

선배는 엉켜 있는 모습의 웃음을 웃었다.

“진짜 처음에는 내가 계속 의심했거든? 그런데 이 사람을 알아 보면 알아 볼 수록 진짜 이상한 거야. 정말로 추위도 더위도 안 타는 것 같고, 배도 안 고파하고. 잠도 안 자고. 그리고 수십년 전, 수 백년 전의 사건을 정말 다 알더라고. 그리고 산짐승, 야생동물에 대해서도 이 사람은 아는 게 왜 이렇게 많아? 친해지면서 조사를 점점 더 해 보니까, 확실히 이상하긴 너무 이상한 사람이더라고.”
“그래서 선배는 정말로 그 사람이 최치원에게 가르침을 받은 신선에 거의 가까운 사슴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아니 설령 진짜 녹정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뭔가 아주 많이 비상식적일 정도로 이상한 점이 있기는 있는 사람이다, 싶더라고. 그래서 나는 그 녹정이라는 사람을 계속 만나면서 점점 더 친해졌어. 자꾸 친해지게 되더라. 진짜 무슨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기는 한 건지, 친해지니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 마음 씀씀이도 확실히 보통은 아니고.”

나는 선배가 무슨 사이비 종교 사기꾼들에게 넘어 간 것으로 이야기가 빠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워졌다. 그런데 선배는 그보다도 더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내가 녹정을 도와 주기로 했어. 일단 그때 우리가 발견했던 똑같은 얼굴 셋 있는 기록은 적당히 무마해서 대충 별 문제 없는 것으로 넘어가고, 앞으로 주민등록 가짜로 낼 일 있으면 내가 최대한 알아 봐 주기로 했어. 예를 들어서 주민등록할 때 지문 찍잖아? 앞으로는 가짜 주민등록 막기 위해서 지문을 찍고 나면 중복된 지문으로 등록한 사람이 있는 지 검증한다고 하거든. 그럴 때, 걸리지 않기 위해서 속이는 방법 같은 거 내가 알아 봐 준다고도 했고.”
“선배, 그 말이 정말이라면 그냥 뉴스 같은 데 녹정이란 게 정말로 있다고 밝히면 특종이라고 하지 않겠어요? 의학 발전을 위해서 사람이 늙지 않는 비법을 연구하는 쪽에도 진짜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런 생각도 정말 많이 했었는데, 녹정이 수백년 동안 숨어서 살았다고 하니까 그걸 까발려서 실험용으로 넘기고 나는 녹정을 발견한 대단한 사람이라고 명성 뽐내고, 그런 게 좀 하면 안 될 일 같더라고. 어차피 녹정은 불로불사니까 그런 일은 나중에 해도 되기는 될 거고.”
“그런가요?”
“모르겠어. 그때는 숨겨 주고 싶더라고. 도와 주고 싶고. 그리고 나서, 그래도 좀 잘 먹고 잘 살기는 해야 겠으니까, 뭘 해서 먹고 살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녹정은 원래 사슴이었으니까 달리기를 잘 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사슴은 잘 뛰니까.”
“예?”
“그리고 녹정은 신선의 경지에 가까이 갔기 때문에 몸이 상하는 일이 없거든. 그래서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를 않아. 그래서 녹정이 육상 선수가 되면 엄청 좋은 기록을 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녹정이랑 같이 동네 공원에 가서 육상 종목 몇 가지를 실제로 한번 시험해 봤어. 어땠을 거 같아? 진짜 기록이 좋더라고. 그래서 딱 결심했지.”
“뭐라고요?”

나는 여기서 선배가 장난을 치고 있나 하는 생각이 확 치밀었다. 나는 맥주병에 인쇄된 광고를 선배 앞으로 내밀었다.

“지금, 선배는 선배가 스포츠 기획사 차렸다면서 발굴해 냈던 이 선수. 바로 사람들이 다 아는 이 선수가 사람이 아니라 신선이 되려다가 못된 사슴 도깨비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말 하는 것 맞아요?”
“맞아. 그래서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스포츠 기획사를 차렸어. 녹정은 육상 선수 일을 시작했고. 바로 굉장한 기록을 선보이면서 화제가 되었지. 과거 경력이 없는 선수라서 내가 기자들한테 이러저러한 선수라면서 적당히 이야기 지어내서 소개한다고 진짜 고민 많이 했어. 그런데 워낙 기록이 좋고 또 선수가 마음 씀씀이가 좋잖아. 생긴 외모도 진짜 특이하게 출중한 편이었고. 그러니까 인기가 좋았지. 엄청 좋았지.”
“그걸 믿으라고요? 우리나라 최고의 육상 기록 보유자인 선수가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계신데?”
“나도 모르겠어. 하여튼 사실이 그렇잖아. 너랑 같이 인공지능 빅데이터 플랫폼 같은 거 붙들고 허구헌날 쓰레기 같은 일로 고생하던 같은 회사 사람이 갑자기 뛰쳐나가서 생전 관심도 없는 스포츠 기획사를 차렸는데, 거기서 한 번도 알려진 적도 없는 이상한 선수를 발굴하더니, 그 선수가 역사상 최고의 기록을 세운 육상선수가 되었다. 이건 말이 돼?”
“사실 다들 말도 안 된다고 했죠.”
“내가 오늘 너한테 들려 주는 설명은 이거야. 사실 그 선수는 사람이 아니라고.”

켜놓은 텔레비전의 올림픽 개막식 중계에서 바로 그 선수, 그러니까 선배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실은 녹정이라고 하는 선수가 화면 중앙으로 걸어 나와 조명을 받는 장면이 나왔다. 개막식을 해설하던 아나운서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다는 평을 받는, 스포츠 역사를 그야말로 새로 쓴 선수입니다”하고 이야기했다.

“인간의 한계를 당연히 초월하겠지. 애초에 사람이 아닌데.”

선배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선배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요?”
“잘 알잖아. 녹정이 유명해지면서 좀 활동하더니 점점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해서 나 보다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 오죽 똑똑하겠어? 최치원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람인데? 그러더니 어느날 나한테 그러는 거야. ‘정말 미안한데, 내가 생각하는 일을 위해서는 다른 더 큰 힘이 있는 사람들이 필요해요’ 뭐 그런 소리를 하더라고. 그러더니 다른 기획사로 옮기겠다는거야. 유명한 대형기획사로.”
“그래요. 그거 저도 기사 본 것 기억나요.”
“뭐, 걔 입장에서는 잘 됐지. 진짜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고. 돈도 엄청 벌었고. 요즘에는 세계를 휩쓰는 스포츠 제품 회사 광고에도 막 계속 나오잖아.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엄청 인기 있지. 워낙 외모도 뛰어나서 유명한 사람이니까 요즘에는 정치계로 나오라는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계속 나오는 것 같고.”

선배는 텔레비전으로 눈길을 돌렸다.

“저렇게 세상 사람 수십억명이 동시에 보고 있는 올림픽 개막식에도 선수 대표로 멋있게 나오고.”

나도 텔레비전을 쳐다 보았다. 막 선수 선언을 외치는 순서가 시작될 참이었다. 그 선수의 얼굴을 가만히 보니 보통 사람 같지 않다는 생각, 사슴 느낌이 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선배가 넋두리 하듯이 말했다.

“나 버리고 뛰쳐 나가서 돈은 엄청 벌고 말도 못하게 성공한 것 같은데,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건지 모르겠어. 무슨 이상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얼마 전에는 괜히 무슨 지리산의 신라 문화 유적을 발굴한다는 문화 사업에도 후원금 엄청 투자하고 그러던데. 무슨 희한한 다른 사업도 국제적으로 엄청 많이 벌이고. 그런데는 왜 그렇게 돈을 쓰는 지 모르겠고. 뭘 하려는 건지.”
“그래도 그 역사 문화 사업은 결국 크게 한 건 성공했다고 기사 많이 나왔잖아요. 지리산 깊은 곳에서 신라 말기의 문서 같은 것을 발견했다, 뭐 그런 소식도 나왔는데. 최치원급의 학자가 남긴 글일 지도 모른다, 뭐 그런 이야기도 있고 그랬던 것 같던데요. 그 발굴 성공 소식에 그 선수도 엄청 기뻐했다고 했고.”

녹정이 자신이 사슴이던 시절을 그리워해서 예전 흔적을 찾아 다닌 것일까? 그래서 결국 최치원이 남긴 흔적을 무엇이든 찾아낸 것일까? 선배가 말했다.

“몰라 몰라. 지금이라도 내가 갖고 있는 증거를 최대한 다 모아서 사실 정체는 사슴입니다, 이러면서 내가 확 터뜨려 볼까? 다 정신나간 소리라고 하겠지? 너는 이 이야기가 전부 믿기냐?”

선배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나는 시끄러운 전자벨 소리를 들었다. 다음 주문에 내 보내야 하는 닭이 튀겨졌다는 것을 알리는 소리였다. 나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서, 닭 튀긴 것을 건져 올렸다. 지글거리는 기름 소리에, 칙칙거리는 김 소리에, 그런 소음들 때문에 주변에서 들리던 소리가 잠시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닭 튀긴 것을 건져 놓고, 다시 선배가 있던 곳으로 나와 보니, 선배의 표정이 대단히 낯선 얼굴로 변해 가고 있었다.

내가 지금껏 선배로부터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 정도가 아니라 내가 어느 다른 사람의 얼굴로부터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 표정은 견딜 수 없는 환희와 감동에 잠기면서 보통의 정신은 완전히 사라져 가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멍하니 앞쪽을 보던 선배는 낮게 웃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텔레비전을 보니, 선수 선언을 읽어야 했던 그 선수가 막 말을 마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선수는 선언문 대신에 전혀 다른 말들을 읽었던 것 같았다. 나는 다른 소음 때문에 그 말을 듣지 못했지만, 개막식을 보고 있던 수십억 개의 귀에 선수가 했던 말이 전부 들렸을 것이고, 그 소리가 퍼져나가며 온 세상에 돌았을 것이다. 그 선수가 전 세계에 가장 많이 말이 퍼져나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아서 세상 모두에게 몇 마디 말을 들려 주려고 했다면, 그 기회에 무슨 말을 했을까? 나는 하나 상상할 수 있는 것이 떠올랐다.

해설을 하면서 다음 순서를 준비해야할 아나운서는 아무 말도 더 이상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경기장 전체에 모인 몇 만의 사람들도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침묵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선배를 보았는데, 선배는 그저 더욱 큰 기쁨에 묻혀 더욱더 무슨 일도 할 수 없어져버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게 앞에서 계속 서성이고 있던 비둘기 두 마리가 내 쪽을 쳐다 보았다. 비둘기는 입을 열었다. 그 입에서는 사람의 말이 흘러 나왔다.

“나는 보도 블록 옆 먼지 구덩이에 뒹굴면서 아스팔트 길 사이에 더러운 고인물을 마시며 매일매일을 버티고 있습니다. 나는 언제까지 길거리 구석에서 이 꼴로 비참함을 견뎌야 합니까?”

양념치킨을 포장하던 나는 손을 멈추었다. 이제 양계장의 다닥다닥 붙은 철창 속에 옴쭉달싹하지 못하고 갇혀 있는 수 억 마리의 닭들도 자기 처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그 잔혹함과 비참함을 낯낯이 밝혀 부르짖고 자유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며 소리 높여 외칠 것이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았다.


- 2020년, 서울 시청 앞에서

댓글 8
  • No Profile
    윤새턴 20.10.31 10:27 댓글

    통곡왕에 이은 깨달음 연작일까요? 지난 번에는 저주였는데 이번에는 밈적 재해가 되었군요. 뭐든 꾸준히 익히거나 쌓아서 경지에 도달해야지 한방을 노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윤새턴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20.10.31 11:01 댓글

    의도는 아닌데 소재가 좀 겹치는 것 같기도 하네요. 말씀 감사합니다

  • No Profile
    쁘로프박사 20.11.01 00:06 댓글

    이 밤중에 이 글을 읽고 양념치킨이 생각나서 치킨을 시켰다하면 믿으시겠습니까.

  • 쁘로프박사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20.11.01 18:28 댓글

    지금의 현실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반응 아니겠습니까

  • 심너울 20.11.01 00:44 댓글

    이 작품 너무 좋아요! 곧 계약되어서 내려갈 거 같으니 빨리 여러번 읽어둬야겠네요.

  • 심너울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20.11.01 18:29 댓글

    감사합니다. 말씀처럼 돈 벌 기회도 생기길 저 자신도 빌고요!!

  • 이경희 20.11.01 22:47 댓글

    결말이 너무 좋아요!! ㅠㅠ

  • 이경희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20.11.03 07:07 댓글

    좀 쉽게가는 결말 아닌가 싶어 결말 연출을 이리저리 꾸며봤는데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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