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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a 유령도시의 서점 by pena

2020.07.01 01:22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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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괴이한 거울

유령도시의 서점

pena

 

◐◐

여긴 유령도시야. 

여러 번 옮겨다녔지만 이렇게 살풍경하고 영혼 없는 곳은 처음이야. 다들 이곳에 살고 있지 않아. 서울 옆에 붙어 살고 있거나 지나가는 것뿐. 

그래서 이곳의 어둠은 더 뻔뻔해. 혐오는 더 당당해.

도와줄 이가 필요해. 이대로 놔두면 원혼이 쌓이다 인간에게까지 퍼져 갈 거야.

 

 

◆◆◆

그런 곳에 책방이 있을 줄은 몰랐다. 아마 그 고양이가 아니었으면 계속 몰랐을 거다. 

그게 나았을 텐데.

동네에 예쁜 고양이 두 마리가 꼭 붙어 다녔다. 형제처럼 꼭 닮은 얼룩 고양이. 길고양이지만 순하고 사람을 좋아했다. 아파트단지와 빌라에 살며 학교를 오가던 주변 아이들이 지나가다 먹을 것도 주고, 들어 올려 안기도 했다. 먹을 것이 든 봉지를 든 애들에게는 고양이들이 먼저 다가가기도 했다. 쉴 곳이 마련되었고, 깨끗한 물을 갈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 고양이들은 길고양이가 아니라 우리 동네가 다 같이 키우는 고양이 같았다.

그러다 한 마리가 시체로 발견됐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개를 제어하지 않아서 물려 죽은 거라고, 개에게 입마개를 하라고 한바탕 안내문이 붙었다.

하지만 딱히 믿음이 가진 않았다. 여기는 자기들이 편한 대로 일하는 경향이 있어서.

겉보기에는 멀쩡한 아파트 단지다. 서울에서 조금 떨어졌지만, 출퇴근은 할 수 있는 위성도시. 위치가 괜찮고 땅이 넓어서 속속 아파트와 빌라와 타운하우스가 들어오고 대중교통이 늘어나고 있는 도시.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아파트 단지 근처에는 상가도 있고, 학교도 있고, 조금 걸어야 하지만 전철도 있다. 그런데 반대쪽에는 차들이 마구 지나가는 국도가 있고, 그 옆으로 황무지와 산이 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울과 농촌이 갈리는 느낌. 그곳들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다.

서울에서는 놀이터 시간 제한을 하려고 했다가 반대에 부딪치고 SNS에서 욕도 먹던데, 우리 동네에서는 그냥 바로 공고가 붙었다. 이제부터 밤 8시 이후로는 놀이터를 이용하지 말라는 거다. 얼마 후에는 그나마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작은 도서관도 시간 제한이 생겼다. 사서가 퇴근하고 난 후의 시간에 기물 파손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감독할 사람을 두는 게 아니라 문을 닫아버리고, 시간을 제한했다. 이쯤에서 난 이 동네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여긴 어른들만 사람인 동네다.

달라진 일상에 적응하며 몇 달이 지나는 동안, 나머지 한 고양이도 보이지 않았다. 시체가 발견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도 없었다. 고양이 형제가 있던 그 길을 지나다니던 아이들은 거기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간다. 누군가 데려간 거면 얼마나 좋을까. 죽은 아이한테는 미안하지만, 남은 아이라도 행복할 수 있게.

그런데 딱 한 달 만에 그 고양이를 보았다. 국도 건너편에서.

원래 고양이가 예쁨을 받던 길목에서 그렇게 먼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길 하나 차이로 도시와 시골이 되는 그곳에 하필 서 있다니. 게다가 내 주위 애들은 정말 아무것도 못 본 듯이 아파트 쪽으로 꾸역꾸역 걸어가고 있었다. 원래 동네에서 사랑받는 고양이들일 때에는 오히려 내가 그렇게 했었는데. 그냥 눈에나 담고 말았는데.

나도 모르게 길을 건너서 고양이 옆으로 갔다.

머리와 꼬리는 회색 줄무늬가 그려졌지만 몸은 하얀 그 고양이는 어딘가를 보느라 내가 다가와도 몰랐다. 옆에 앉으니 그제야 고개를 돌려 바라보며 애옹거렸다. 그리고 내 다리에 머리를 부볐다.

왠지 뭉클했다. 같이 다니던 아이가 죽어서 사람을 무서워하게 된 것 아닐까, 그래서 숨은 건가 생각했는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털도 윤기가 흘렀고, 몸도 너무 배만 나오거나 빼짝 마르지 않고 날렵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예전 그대로 스스럼없이 몸을 부비며 애교를 부렸다. 그게 너무 다행스럽기도 하고, 뒤늦게 계탄 기분도 들기도 했다. 예전엔 항상 누군가 안고 있어서 더 귀찮게 하기 싫어서 안고 싶은데도 꾹 참았단 말이다.

“왜 여기 있어, 야옹아? 응?”

손에 착 달라붙는 동그란 머리와 부드러운 목덜미를 쓰담쓰담하다가 대담하게 들어올려 안아보았다. 역시 안기는 데 달인, 아니 달묘인 아이답게 폭 기대오는데 다시금 가슴속이 뭉클하고 심지어 감동적이었다. 따끈한 체온, 부드러운 털, 미끄러질 듯 기묘한 몸의 감각. 이래서 고양이 고양이 하는구나.

다음 순간 고양이가 액체처럼 몸에서 스륵 빠져나가더니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그 불가능한 움직임에 놀라고, 고양이가 내 품에서 뛰쳐나갔다는 사실 자체에 절망하고 좌절했다. 그렇게 싫었니, 저절로 눈물이 맺히려는데 고양이가 울음소리를 냈다. 무슨 뜻이지? 고양이 말은 당연히 모르지만, 앞으로 걸어가다가 뒤를 보며 울음소리를 낸 걸 보면, 따라오라는 뜻이 아닐까.

그 해석이 맞았는지, 내가 따라가는 걸 확인하자 고양이는 앞을 보며 멈추지 않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신기한 다리 움직임, 살랑거리는 꼬리만 보며 쫓아가다가 어느새 어딘가에 도착했는지 멈춘 엉덩이를 보고 정신을 차렸다. 고양이가 다시 울음소리를 내더니 앞에 있는 문을 긁었다.

그제야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국도 확장 공사 때문에 무너진 집, 새로 빌라 또는 건물을 짓는 공사장이 진도별로 널려 있었다. 제대로 된 건물은 고양이가 찾아온 이곳뿐인 걸로 보였다.

완성된 건물이란 의미에서 ‘제대로 된’ 건물이지, 이 건물도 이상하기는 했다. 처음에는 성당인 줄 알았다. 뾰족한 지붕이 몇 개가 겹쳐져 있고, 사면에 탑처럼 보이는 것도 꽂혀 있고, 모서리에는 그 날개 달린 못생긴 괴물들도 앉아 있었다. 너무 생생해서 처음엔 진짜 뭔가 앉아 있나 싶고,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돌로 만든 것도 아니고 플라스틱 같은 걸로 보였다. 문도 거창하게 성당문이나 판타지 영화에서 나오는 비밀문처럼 타원형이었는데, 위에 반원은 그냥 장식이고 실제로는 평범하게 네모난 문인 것 같았다. 아주 튼튼하고 두꺼워 보이는 나무 문, 그것도 양쪽으로 열리는 문이라는 게 또 성당 문처럼 보여서 정말 평범한 문인 건 또 아니었다. 문은 높은 곳에 있어서 그 앞으로 고풍스러운 계단이 있었다. 대리석 비슷하게 생긴 돌계단과 복잡한 문양이 그려진 난간이 영화에서 본 대저택 느낌이었다. 그렇게 높은 곳에 있었지만, 그렇다고 1층이나 지하에 뭐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창문이 없이 꽉 막힌 벽돌층이었다. 앞에는 주차장 선이 그어진 아스팔트 마당이 있었는데 거기만 이 동네의 평범한 풍경이었다.

나는 간판 같은 것을 찾아보려고 여기저기 둘러보았으나, 찾지를 못했다. 조금 둘러보는데 고양이가 문을 긁으며 격렬하게 야옹거리는 바람에 잘 찾아보지도 못했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반사적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한 손으로 문 한쪽의 손잡이를 잡아서 밀어야 겨우 밀리는, 정말 묵직한 문이었다. 어떻게 된 문인지 몰라도 열쇠구멍이나 잠금장치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걸 신기해할 새도 없이 고양이가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도 고양이 뒤를 따라서 한번 들어가보았다. 도무지 뭐 하는 곳인지 알 수가 없어 너무 궁금했다.

안은 마치 미녀와 야수에서 야수가 벨에게 선물한 서재 같았다. 아니, 그 서재의 아주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버전. 아주 높은 천장까지 책장이 가득 차 있고, 고풍스러운 1인용 의자가 두 개 있었다. 옆에는 작은 탁자와 발 받침대까지 갖춰져 있었다. 한눈에 다 볼 수가 없었던 게, 조명이 군데군데 촛불밖에 없었다. 설마 진짜 촛불은 아니겠지, 했는데 다행히 촛대 모양 조명기구였다. 그래, 진짜 촛불이면 이 많은 책들이 다 타버릴지도 모르잖아.

조금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한글책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알아볼 수 있는 단어는 Magic, Sorcery, Rune, Fairy……. 아예 읽을 수 없는 글자들도 많았다. 하나같이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아주 무거워 보이는 커다란 책이었다.

“고양아? 저, 실례합니다. 고양이가 여기로 들어와서요…….”

사실 들여보내준 건 나지만, 어디까지나 고양이 때문에 들어온 척 소리를 내봤다. 어쨌든 문이 열려 있던 걸 보면,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해서였는데, 과연 구석에 커다란 사람 그림자 같은 것이 보였다. 조심조심 가까이 다가가면서, 너무 크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뭔가 어두운 와중에 너무 반짝였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니, 사람이 아니라 갑옷상이었다. 눈도 보이지 않게 얼굴을 덮고 손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금속판으로 싸맨, 중세 느낌 나는 갑옷이 마치 사람처럼 서서 손에 긴 검까지 들고 있었다. 서재에 두기엔 거한 장식품 아닌가. 아니면 여기에 벽난로도 있나? 다시금 예의상 고양이를 부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양아?”

왠지 멀리에서, 벽 너머로 들리듯 애옹 소리가 들렸고, 갑자기 불길이 화르륵 솟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뒤로 펄쩍 뛰었다. 정말로 중앙에 벽난로가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는 불이 꺼져 있어서 안 보였던 것 같은데?

“저기, 계세요?”

벽난로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지도 않았는데? 이것도 다른 조명처럼 가짜 불길인가? 그렇게 생각하기엔 정말 열기가…….

다음 순간, 벽난로 앞에 사람이 서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어디선가 갑자기 생겨난 걸까? 불을 등지고 실루엣만 보였지만 키가 큰 남자인 걸로 보였다. 여전히 빛을 등져서 알아볼 수 없는 얼굴로 그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손님? 괜찮으십니까?”

아주 동굴 같은 저음의 남자 목소리였다.

“죄송해요, 여기가 문이 열려 있어서…… 고양이가……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왜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남자가 다가올수록 공포가 더해갔다. 잘못했단 말도 나중에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좀처럼 가시지 않는 어둠, 점점 더 코에 끼치는 피비린내, 한순간에 몸을 지배하는 냉기, 뿜어져 나오는 입김.

아주 가까이 와서야 남자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너, 손님이 아니구나? 어떻게 들어왔지?”

어둠 속에서 조명이 켜지듯 갑자기 눈앞에 남자의 얼굴이 다가왔다. 검은 머리에 희디흰 얼굴, 붉은 눈동자, 으르렁거리듯 일그러진 입술 사이로 삐져나온 송곳니.

흡혈귀.

머리에 그 단어가 떠오르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마구 뛰어나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잠시 후에도 나중에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내가 기억하는 다음 장면은 아주 멀리에서 그 건물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 대로를 지나서 어떻게 거기까지 왔는지, 기억은 안 났지만 그제야 안전한 기분이 들었다.

그 육중한 문이 열려서 다시 도망가야 한다는 마음에 몸이 움직였다. 그러나 팔 하나가 나와서 고양이를 내려놓는 걸 보고 멈췄다. 고양이는 내려서자마자 다시 들어가려고 했지만, 코앞에서 문이 닫혀버렸다. 고양이는 뒷발로 몸을 일으켜 문을 다시 박박 긁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렸다. 나도 몸을 돌렸다.

왠지 모르지만 그 멀리서 고양이가 날 보는 것 같았다.

 

 

◐◐

말을 하지 않고 상대를 의도대로 움직이기란 너무 어려워. 하지만 말을 한다고 해서 쉬워지진 않으니까,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지.

걱정이다. 아직 제가 누군지도 모르는 저 어린것을 어쩐다.

 

 

◆◆◆

“성처럼 생긴 데 알아? 저기 버스정류장 건너편에.”

그 말을 듣더니 희영이는 바로 답했다.

“아, 거기. 책방이잖아.”

“그게 파는 책이었어?”

금세 희영이의 절친인 가현이 끼어들었다. 둘 다 예쁘고 밝고 착한 애들이지만, 가현이는 너무 발랄하고 까불어서 좀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나서면서도 나는 못 본 척 무시한다는 게 정말 못됐다. 착한 건 남들 앞에서만이고.

“거기 귀신 들린 데라고, 가지 말라던데.”

이번엔 저쪽에서 걸어오던 세연이 끼어들었다. 다들 그 책방처럼 보이지 않는 책방에 할 말이 많은 모양이다.

“귀신 들려?”

“딱 봐도 귀신의 집처럼 생겼잖아.”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좀 덜 조잡하긴 한데. 귀신의 집은 어딜 가도 일단 가짜 티가 팍팍 나니까.

“밖에만 그럴 수도 있잖아.”

“들어가면 더 이상하대. 책은 많은데 어둡고, 이상한 갑옷 있는데 자꾸 방향을 바꾸고....”

“대박. 진짜?”

“야, 거기서 책을 뽑았더니, 막 꺄아아아악 소리 들리면서, 피가 났대잖아!”

“야이, 놀랬잖아!”

가현이가 놀란 토끼눈으로 버럭 소리를 지르니, 놀리기 좋아하는 애들이 하나하나 주워섬기는데 정말 별 이야기가 다 나왔다. 그 안에 있는 책들은 죽은 사람이 소장한 것들로만 모은 거래, 밤에 그 안에서 책을 보고 있는 귀신을 본 애도 있대, 그 귀신이 원래 그 책의 주인이래, 아니 거기에서 책을 훔쳤다가 죽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귀신이라던데.... 등등, 등등.

하지만 나는 그게 다 그냥 틀린 말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책방 주인장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주인장이든 아니든 흡혈귀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에 합류한 보라의 말은 조금 맞는 것 같았다.

“거기 주인이 유명한 마법사라던데? 의뢰를 받아준대.”

‘너 손님이 아니구나.’

그 흡혈귀의 스산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크고 무거운, 도저히 이 한국에서 살 사람이 많을 것 같지 않은 이상한 책들도 기억났다.

“와, 뭘?”

“좋은 일은 아닐 것 같지 않냐? 누구 죽여달라거나, 성적을 떨어뜨려달라거나....”

“시발, 무서워. 야 니네 거기 가지 마.”

다시 또 가현이가 발끈했고, 다들 웃으며 가현이를 놀리며 귀여워했다.

“그러게 무서운 이야기 약하면서 왜 시작했어?”

“나도 몰라. 왜 나왔더라?”

희영이까지 그렇게 말하며 애들과 무리지어 집 쪽으로 갔다. 나 혼자 남았다.

항상 이렇다. 애들은 내 말에 대답하지만, ‘내게’ 대답하지는 않는다. 그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결론짓고 자기들끼리 갈 뿐이다.

아예 처음부터 내 말이 들리지도 않는 척하는 게 낫겠어. 투명인간 취급할 거면, 아예 아무 희망도 주지 말란 말이야.

 

 

◐◐

― 싫다.

왜 그렇게 말을 안 듣는 거냐? 여기서 저 어린것을 멈출 수 있는 건 너뿐이야.

― 나는 조용하게 살려고 여기까지 온 거다.

그건 벌써 텄어. 쟤를 그대로 놔두면, 그다음 희생자가 나온다고. 그리고 점점 물들어서, 너도 살 수 없게 될걸.

― 과장하는군.

과장인지 아닌지는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면 알 노릇 아냐?

― 좋다. 그러면 한번 보기나 하겠다.

그거면 돼.

 

 

◆◆◆

며칠 후에 또 고양이가 죽었다는 벽보가 아파트 입구와 엘리베이터에 붙었다. 이번엔 사람 짓인 것 같다고, 경찰에 의뢰할 거라고 했다. 벽보 앞에서 나이 든 사람들은 “이러면 눈치채고 도망가는 거 아냐?” “젊은 사람일 텐데.” “요즘 애들 정말 무섭다니까.” 따위 말을 했고, 애들은 벽보를 거의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날은 비가 와서 나는 나가지 않고 아파트에 머물러 있었다. 빗방울이 맺혀서 떨어질 때의 그 느낌이 싫고, 어두운 것도 싫었다. 천둥번개가 치는 날엔 더 싫었다. 잠시 번개가 치면서 어두운 세상이 밝아지는데, 밝아진 그 순간이 더욱 무서운 느낌이 들어서 싫었다. 맞다, 마치 어둠에 가려져 있던 그 흡혈귀의 얼굴이 눈앞에서 갑자기 나타났던 때처럼.

하지만 그날 다시 고양이를 보고 말았다. 그날 따라 계단 창문에서 밖을 내다보고 싶더니만 그렇게 딱 보일 줄은 몰랐다. 그때 나를 다시 보고, 다시 그 무서운 곳으로 들여보내달라고 할까 봐 달아났었는데, 비를 쫄딱 맞으며 바깥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보자니 좀 불쌍했다. 그리고 미안하기도 했다. 죽었다는 고양이가 아니라서 다행스럽고 반갑기도 했다. 역시 품에 안겨들었던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서 그런지, 금세 또 그 모습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런데 비옷을 입고 거기로 다가가는 사람이 보였다. 고양이는 어디에 정신이 팔렸는지, 가만히 딴 곳을 보며 앉아 있었다. 나도 별 생각없이 보고 있다가, 갑자기 그 비옷 입은 사람 손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을 봤다.

“고양아!!! 피해!! 도망가!!!!”

순간 나도 모르게 냅다 소리를 질렀다. 고양이는 털을 세우더니 휙 하고 몸을 날려 어딘가로 사라졌다. 비옷 입은 남자는 쫓아가다가 포기하고 돌아섰다.

나는 그 남자가 이쪽으로 올까봐 겁나서 몸을 숙였다. 그리고 다시 빼꼼 내다보니 정말로 남자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최대한 숨으려고 했지만, 어디 갈 데가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에 들어가야 하나? 저기에 타고 올라오고 있으면? 지금이라도 집으로 들어갈까?

그런데 너무 공포에 사로잡혀서 그런 건지 집이 생각이 나질 않았다. 몇 호였지? 열쇠였나? 비밀번호? 카드였나?

바로 앞집이라도 들여보내달라고 할까? 하지만 소리가 들릴 텐데, 그러면 듣고서 쫓아올 텐데. 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결국 타조처럼 계단에 널부러져 있는 짐들 뒤로 숨었다. 가까운 층에서 엘리베이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축축한 물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터벅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몸을 크게 써서 움직이는, 펄럭이며 물 떨어지는 소리가 같은 자리를 맴돌다 조금 멀어졌다.

방향을 잘못 잡고 가는 듯해서 안심하려는 찰나, 갑자기 발소리가 빨라졌다! 가까워졌다! 내가 몸을 숨긴 상자들이 날아가며 발길질하는 남자가 보였다.

비옷 후드 안으로 비닐캡을 눌러쓴 얼굴이, 그 안으로 잔인하게 빛나는 눈이 나를 똑바로 보았다. 나는 떨지조차 못한 채 주저앉았다. 그 남자의 손에 쥔 것이, 짧지만 날카로운 칼이 내 눈에 와서 박히는 것 같았다. 남자가 내리치기만 하면, 정말로 눈에 박힐지도 모른다.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남자가 돌아섰다.

그대로 계단을 뛰어서 내려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인지 몰라 아직도 벌벌 떨며 앉아 있는데, 엘리베이터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숨은 짐더미 옆집 사는 사람인 듯, 이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차가운 복도 바닥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

정말 생각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인간이란 어째서 선의로 한 일이면 결과도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말의 문제점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아니라고 해서 그 문제가 없지도 않아서 정말 문제야.

하지만 다행히 인간이 아닌 것은 말을 할 수 있지.

이번에도 말을 듣지 않으면 말로 끝내지 않을 거야.

 

 

◆◆◆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집에 들어가 밥을 먹고 잠을 잤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나는 이렇게 흐릿한 게 언제부터였는지를 짚어본다. 그러다가 오히려 내 집이 어디인지, 내 가족이 누구인지, 심지어 내가 누구인지까지 흐릿해진다.

이상하다. 정상이 아니다.

과거가 모조리 흐릿해져가는 느낌 속에 뚜렷이 보이는 건 다시 그 고양이뿐이다.

그런데 그 고양이가 맞나? 왠지 검은 부분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예전엔 머리 말고는 거의 하얬던 것 같은데.

어쩔 수 없다고 자신을 몰아붙여 고양이를 쫓아갔다. 흐릿한 대로 사라질 수는 없으니까, 어디에 말해도 미친 사람 취급받을 테니까, 어차피 내가 말해도 다들 내 말만 듣고 나를 보지는 않으니까, 뭘 하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남은 길은 고양이뿐이었다.

그리고 마법사일지도 모르는 그 흡혈귀.

그 사람이라면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않을까? 의뢰비로 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진 건 또다시 고양이가 그 책방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번보다 더 두려운 마음으로, 그리고 조금은 기대감을 갖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전처럼 어둡고 음습했다. 그리고 냄새가 났다. 느끼자마자 코를 쥘 수밖에 없는 엄청난 썩은내, 비린내, 피 냄새 같은 것이 한꺼번에 확 끼쳐왔다. 눈앞에 벌레가 한 마리 날아갔다. 그리고 그 옆으로 벌레들이 더 보였다.

그쪽에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벌레들이 많이 보이는 곳으로 조금 더 발을 내디뎠다. 아주 조금. 냄새도, 벌레도 너무 심했고 무서워서 그 이상은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게 뭔지 보기엔 충분했다.

둥그런 원이 겹쳐져 있고, 그 안에 복잡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원 바깥에 진짜 초인지 지저분하게 촛농이 내려앉은 초들이 불을 밝히고 있었고, 문양 중앙에는... 벌레로 덮인 덩어리가 있었다.

다리가 네 개 달리고 머리가 하나, 꼬리가 하나.

딱 고양이만 한…… 덩어리.

고양이.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빛이라곤 들어오지 않는, 촛불만이 밝히던 그 안에 무언가 빛이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바람이 일었다. 땅이 흔들렸다.

촛불이 꺼졌고, 어둠이 덮였다. 그 안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벌레에 덮인, 허물어져가는 덩어리가 천천히 제 다리를 짚어 일어섰다.

내 쪽을 향했고, 입을 벌렸다.

― 기다리라.

귀가 아닌 곳으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시금 비명을 질렀다. 온 세상이 떠나가라, 부서져라 소리를 질렀다.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소리를 지르며, 내 주위 모든 게 무너져내리는 것을 느꼈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밖이었다. 다시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에 밖으로 뛰쳐나온 모양이다. 나는 책방 문 앞에 서 있었고, 아직 들어가지 않은 것처럼 바깥이 아니라 안을 향해 서 있었다.

냄새도 소리도 바깥 공기에 사라졌지만, 벌써 밤이었다. 들어갈 때는 아직 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사이에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

그런데 정말 해가 뜬 동안에 들어갔었나?

고양이의 모습과 그 안에 있던 끔찍한 것들 말고는 기억이 흐릿했다.

막막해서 주저앉고 싶었지만, 아직도 그 책방 앞이었으므로 어디로든 피해야 했다. 나는 일단 앞으로 무작정 걸음을 내디뎠다.

그때 문이 열리는 끼익 소리가 났다. 나는 구르다시피 계단을 내려갔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뛰어야 한다고 본능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력하고 유혹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벌레로 뒤덮인 고양이의 입에서 났던, 귀로 들리는 게 아닌 그 소리.

― 기다리라. 이리로 오라.

고개가 돌아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억지로 억지로 몸 전체가 그쪽으로 돌아섰고, 그 남자가 문밖으로 반쯤 몸을 내민 모습을 보았다. 밤이니까 나올 수 있는 걸까? 그 허연 얼굴로 내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 들어오라.

그가 긴 손톱을 기른 손을 내밀어 손짓했다. 내 발이 끌려가듯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 번도 당한 적 없는 일이지만, 자석에 끌려가는 철가루가 된 느낌이 들었다. 디딘 발조차 금방이라도 떠서 그쪽으로 날아갈 것 같았다.

정말 모든 힘을 모아 소리쳤다.

“싫어!”

다시금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고, 나는 잠시 의식을 잃었다.

 

 

◐◐

― 생각보다 여러 영과 원이 뭉쳤더군.

벌써 그렇게 되었어? 할 수 없지. 자기 정체를 알게 된 다음에 어떻게 변하는지를 봐서 직접 잡으러 가자.

― …….

싫어? 네가 놓친 탓이잖아.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 이렇게 될 줄 알고 한번 보라고 권한 게지?

너무 금방 알아채니 재미가 없네. 본점에서 곧 서약서를 받으러 올 거야.

― 빌어먹을 짐승 녀석.

한 번만 봐준다, 짐승이라고 하는 거.

 

 

◆◆◆

눈을 떴을 때에는 독서실에서 집으로 가는 아이들 사이에 있었다. 항상 붙어 다니는 희영이와 가현이, 세연이였다. 원래 이 무리에는 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안 보였다.

조금 안심이 됐다. 어쨌든 사람들, 내 친구들 사이에 있으니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을 것 같았다.

얘들이 날 친구라고 생각하진 않는 것 같지만 말이다.

“아, 추워. 뭔 날씨가 이래? 아까 덥지 않았냐?”

항상 먼저 투덜대는 가현이가 말했다. 나는 그냥 얌전히 그 애들 뒤에서 발맞춰 걸었다. 세연이가 말했다.

“이게 다 기후 때문인가? 그래도 하루에 여름에서 겨울은 심하다.”

“기후가 아니라 이상기후.”

나는 중얼거렸다.

“맞다, 이상기후! 그 말이 안 떠올랐어.”

“혼자서 뭐래.”

“뭐가 혼자서야? 네가 가르쳐줬잖아?”

희영의 말에 세연이 정말 의아하단 듯이 말했다. 가현이 빽 소리를 질렀다.

“뭐야! 무섭게!”

“난 아무 말 안 했어.”

희영이가 말하면서 내가 있는 곳을 건너다봤다. 지난번에도 그렇고 너무한 거 아냐?

“내가 말했어! 나! 나 좀 봐!”

크게 말하니까 희영이, 세연이, 가현이가 모두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너도 지금 그 소리 들었어?”

“바람 소리 아냐? 고양이 소리나?”

“바람 안 불잖아. 야, 고양이 소리인가 봐.”

“아냐, 사람 말소리 같지 않았어?”

“니네 정말 너무하다!”

정말 참다참다 소리를 질렀다. 많은 것이 흐릿하고 기억이 멀어진 가운데에도 또렷이 기억나는 것들이 친구에게 무시당한 기억이라니, 쌓였던 분노가 올올이 일어났다.

“그냥 너랑 놀기 싫다고 해! 아예 처음부터 답도 하지 말든지! 차라리 그게 낫겠다! 뭐하는 거야, 나 갖고 놀아? 재밌냐? 재밌냐고!”

말을 하면 할수록 몸속에서 불길이 이는 것 같았다. 점점 목소리가 커지고, 거칠어지고, 온몸이 타오르듯 뜨거웠다. 주위의 어둠이 더 짙어지는 것 같았다.

“야, 저거, 저거 봐!”

가현이가 덜덜 떨면서 길을 가리켰다. 가로등 아래로 길게 뻗은 그림자들이 너울대고 있었다.

“뛰, 뛰, 뛰어!”

누군지 몰라도 비명을 올리며 그렇게 소리 질렀고, 무거운 가방을 멘 채로 애들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가려고 했다. 끝까지 쫓아가서 따지고, 얼굴을 하나하나 마주한 채로 대답을 받아내고 싶었다. 답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쪼개서라도…… 입부터 찢어 그 쓸모없는 혀를 가르고, 목구멍을 잘라, 내장을 뽑아서 그때에도 나를 무시하는지 물어…….

애옹.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 멈췄다. 설마.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 고양이가 가로등 아래에 새초롬히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워서 그림자가 졌는지 온몸이 새카매 보였다. 그래서 그저 반짝이는 것으로밖에 식별할 수 없는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마치 얼음물을 버킷으로 맞은 것처럼 아프게 번쩍 정신이 들었다.

고양이의 눈길을 피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애들은 이미 멀어졌고, 집은 여전히 기억나지 않으니 밤을 지낼 곳은 학교뿐이다. 학교가 가까운 게 이런 때에는 그나마 다행인 것 같다.

 

 

◐◐

준비해, 모기.

― 죽고 싶은가.

나더러 짐승이라고 한 거 퉁쳐줄게.

 

 

◆◆◆

밤의 학교는 교실 안 말고는 가본 기억이 없다. 그렇지만 교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뭔가 익숙했다. 나는 여기를 많이 다녔다.

운동장까지는 그럴 수도 있지. 교실에서 나가면 어차피 운동장 가로, 또는 가로질러야 집에 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었다. 나는 구석구석 학교의 어둠에 익숙했다. 그곳에서 시간을 오래 보냈다. 그곳이 내 쉼터였고, 은신처였다. 집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곳이 내 집이었다.

학교에서 집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거야, 고등학생이 그렇지. 학교거나 학원이거나.

그러나 다시 생각해봐도 집에 대한 기억은 없고 학교의 기억만이 생생했다. 그림자가 일렁이는 복도, 창문 밖으로 축축한 흙, 빼곡히 심어둔 이름 모를 꽃에서 떨어진 물방울, 비가 오면 흘러드는 축축한 기운.

보통 학교에 대한 기억이 이렇나?

학교 안의 기억이 아니라 학교 밖, 그것도 무언가 땅 또는 땅 밑에 관한 기억과 감각만이 자꾸 기억나고 생각났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지렁이였나.

그때 후드를 눌러쓴 키 큰 남자처럼 보이는 윤곽이 운동장 안으로 들어섰다. 왠지 모르지만 나는 그걸 느끼고 그쪽을 돌아보았다. 가로등 불빛에 후드 안에 쓴 캡모자 챙이 그림자 지며 얼굴이 시커멓게 보였다. 그러나 또 왠지 모르지만 나는 그게 지난번 고양이에게 칼을 들고 다가가던 남자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아주 먼 곳에 있었는데도.

그것을 알아챈 순간 온몸이 올올이 일어나듯 공포가 일어났다. 마치 내 몸이 연기가 되어 날려가고 싶은 것처럼 흔들렸다. 하지만 내 발로 걸어서 피할 만한 힘은 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가만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도록 가만히 서서, 입으로 터져나오려는 비명을 참는 게 고작이었다.

그 남자는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고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통화 중인 것 같았고, 그 때문인지 내 쪽으로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가만히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오히려 시선을 끌 것 같았다.

“그놈의 고양이가 살아 있는 게 이상하잖아.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그년 얼굴도 본 것 같아. 야, 시발, 네 일 아니라고 막말한다? 죽인 애들이 살아 있다는데 내가 안 미쳐? ... 어, 잘 묻었다니까. 네가 그러라며. 시발 네가 다 가르쳐줬잖아, 난 하라는 대로만 했는데 시발 이제 와서 왜 발 빼, 죽고 싶냐?”

저런 말을, 밖에서 막 해도 되나? 정말 내가 안 보이나?

“아니 썅, 진짜 봤다니까. 그것도 지 살던 데도 아니고 우리 동네에 있더라고. 고양이더러 달아나라고 그러데, 또 죽을라고.”

‘또’ 죽을라고? 왠지 가슴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지만, 애써 부정하려 했다.

“쫌 이상하긴 했는데, 그거, 그건가? 너무 쉽게 잘려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네 말대로 다 했는데 시체 나오면, 네가 죽는 거야. 존나, 다 했다고.”

시체.

갑자기 조각나 있던 이미지들이 연결되는 것 같았다. 뭉텅이 진 기억, 진실, 피와 비명으로 가득한 주마등.

그 기억 속에는 사람도, 고양이도 섞여 있었다.

이 사람이구나.

나는 이 사람에게 죽었구나.

그래서 내가 안 보이는구나.

그래서 지난번에 내 앞에서 돌아간 거구나.

그래서 애들이 내 말을 이상하게 들은 듯 듣지 못한 거구나. 난 산 사람이 아니니까.

거듭되는 깨달음이 피처럼 온몸을 돌았다. 그 피의 이름은 분노였다. 분노로 온몸이 일어서는 듯했고, 사실은 물리적 실체 하나 없었던 나는 정말로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저 길어지는 그림자가 내 반영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팔을 뻗어보았다. 그림자가 그 남자에게로 뻗어갔다. 남자도 뭔가 느꼈는지, 걸음을 멈추고 내 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바닥을 보더니 뒤로 물러섰다.

어딜 가.

더욱 뻗어서 그놈의 턱을 잡았다. 실체감이 있었다. 촉감.

수염 자국으로 거칠하고 때묻고 땀으로 약간 끈적한 기분 나쁜 피부를 손으로 틀어쥐는 감각이 생생하다. 아직 먼 곳에 있는데 공포에 휩싸여 흡뜨는 그 눈이 바로 앞에 있는 듯 보인다.

뭐하러 이렇게 먼 곳에서 있지? 가까이에서 보자. 그럴 수 있잖아. 그래도 되잖아?

분노와 함께 고양된 감정은 아마도 즐거움인 것 같았다. 통쾌함. 쾌감. 내가 인간이 아니고 죽었다는 것에 충격받기도 전에 전해져온 깨달음.

나는 저걸 죽일 수 있어. 복수할 수 있어. 내 입맛대로. 잔인하게. 아프게. 내가 당한 것처럼. 아니, 내가 당한 것보다 더 아무렇게나.

마음속의 말들이 폭력으로 바뀌어 들어갔는지, 남자의 몰골이 아주 보기 좋게 변해갔다.

사람이란 거, 인간이란 거 되게 연약하구나. 별거 아니구나? 조금 물컹하고 좀 더 단단하지만 찢어 발길 수 있는 종잇조각 같은 거구나? 네가 이걸 느끼고 싶어서 고양이를 잡고 여자를 잡고 그랬던 거구나?

입안에서 침이 도는 느낌이었다. 비릿하지만 당기는 맛이 느껴졌는데, 그게 복수의 맛이란 걸 알았다. 어쩌면 폭력의 맛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더 크게 느끼고자 입을 머리 뒤까지 열어 남자를 삼키려던 순간, 또 그 소리가 들렸다.

애옹.

그 소리에는 전처럼 정신을 차리게 하는 느낌이 묻어 있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이 사람 탈을 쓴 사람 같지도 않은 걸 통째로 삼켜서 뼈째로 씹고 뼈 속과 사이를 채운 살과 액체들을 짜내버리고 싶었다. 절로 입에서 군침이 돌았다.

― 거기서 멈추는 게 좋다.

이번엔 또 뭐야? 정말 귀찮아 죽겠어! 생각하면서 고개를 돌리니, 서점 주인 흡혈귀였다. 서점 안에 있던 커다랗고 무거워 보이는 책을 한 손에 들고 시커먼 옷을 입고 어둠 속에 서 있으니 허연 얼굴만 동동 뜬 듯이 보였다. 마치 저승사자 같았다.

본능적인 두려움이 끼쳐 와 남자를 놓고 물러나는데, 흡혈귀가 책을 펼쳤다. 이미 눈뜨고 못봐줄 몰골이었던 남자가 채 내뱉지 못한 비명을 목구멍에서 흘리며 책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아, 안 돼. 나도 저렇게 되는 건가?

조금 전에 끼쳐왔던 두려움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두려워져서 나는 도망가려고 했다. 도망가려고 하니 저절로 네 발로 기게 되었고, 어느새 자라난 발톱으로 땅을 긁고 있었다. 그러나 노력을 해도 안간힘을 써도 뒤쪽에서 강력한 힘이 나를 잡아끌었다.

나는 결국 흙을 움켜쥔 채로 떠올라 끌려갔다.

이제 어딘가에 갇히겠지. 책 속에 갇힌다는 건, 그 안의 등장인물이 된다는 건지, 책장에 눌려 압화가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다 무섭다.

그러나 차갑고 메마른 손이 내 몸을 잡았고, 나는 눈을 들어 아주 커다래진 흡혈귀를 올려다보았다. 그 사람이 커진 게 아니라 내가 작아졌다는 것을 조금 후에야 알았다. 그 손이 목덜미를 쓰다듬었고 나는 울었다.

애오옹.

“착하지.”

안 착하면 죽일 것 같은 흡혈귀의 말치고는 다정했다. 나는 일단은 그 손에 얌전히 안겼다. 계속해서 나를 찾아왔던, 지금은 정말로 새까만 그 고양이가 앞장선 가운데, 흡혈귀는 자신의 서점으로 날 데리고 갔다.

가면서 손만큼이나 메마른 목소리로 흡혈귀가 속삭였다.

“너 때문에 내가 무슨 서약을 하는지 아느냐? 이 구역의 원혼들을 돌보고 정화하는 귀찮은 직책을 너 때문에 맡았단 말이다.”

어쩌라고. 난 모른 척 기지개나 켰다.

“고양이 모습 되자마자 이러는군. 널 반드시 사람으로 정화해야겠다.”

그러긴 힘들걸. 내 속에 뭉쳐 있는 사람의 불행한 과거들을 떠올리며 나는 비웃었다. 하지만 기대가 되기도 했다. 왜 그런 일을 한다는 건지는 고사하고 누군지도 모르고 사람도 아닌 존재에게 안겨 가면서도 도망가지 않을 만큼.

멀리 서점 간판에 불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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