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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고쿠라에서 J를

2020.08.31 23:4408.31

고쿠라에서 J를

아이

 

 

1

 

고태원이 J를 다시 본 건 한 달 전이었다.

 

손님은 커다란 여행 가방을 힘겹게 들고 편의점 문을 열었다.

스키니진에 하늘색 운동화, 초록색 반팔 티셔츠 차림이었다. 베이지색 볼캡을 푹 눌러써서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등에는 백팩까지 메고서.

-오늘 여행 떠나는구나. 부러워.

고태원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카운터 옆에 있는 유리 너머로 버스정류장 쪽을 보았다.

편의점 앞 버스정류장에서는 인천으로 가는 공항버스도 탈 수 있었다. 그래서 여행 가방을 든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씩 편의점으로 들어와 교통카드를 충전하거나 음료수를 샀다.

손님은 여행 가방을 문 앞에 놓고는 워크인 냉장고 쪽으로 가서 토레타 하나를 꺼내 카운터로 가지고 왔다. 그리고 손에 든 스핑크스 문양이 새져진 천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스핑크스 문양이 새겨진 천 지갑.

고태원은 그 지갑을 보면서 ‘이 손님 혹시 J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도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면서.

J와는 직장 동료였다. 하지만 근무하는 도시가 서로 달라서 만난 적이 없다가, 고태원이 3개월 동안 대구에 있는 본사에서 근무를 하게 되는 바람에 알게 되었다.

고태원이 본사 3층 사무실에 들어설 때 J는 바닥 한쪽에 주저앉아 수백 장은 되어 보이는 사진을 정리하는 데 열중이었다. 고태원이 들어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근무하는 고태원이라고 합니다. 김홍원 부장님 좀 뵈려고요.”

고태원의 말에 그제야 J가 고개를 들었다.

“네? 아, 아 고태원님. 얘기 들었어요. 오늘부터 한동안 대구에서 근무하시게 됐다고요. 반갑습니다.”

J가 벌떡 일어나서 고태원을 반겼다. 일어날 때 무릎에 있던 사진 수백 장이 우수수 떨어졌고.

사진기자였던 J는 술을 좋아했다. 여행도 즐기고 영화 보는 것도 즐겼지만, 그건 전부 술 마시면서 상대와 나눌 대화 때문에 즐기는 것뿐이었다. 그러니까 술 마시며 나룰 대화 거리를 위해 여행을 다니고 영화를 보는 것뿐이었다. J는 술 마시면서 주로 여행 얘기와 영화 얘기뿐이었으니까.

고태원과 둘이서 처음 술을 마시면서도 J는 여행 얘기만 했다.

“지난번에는 이집트에 갔다 왔어요. 패키지여행으로요. 일정 짤 시간이 없었거든요. 이집트 하면 피라미드잖아요. 그런데 피라미드 주변에 호객꾼들이 그렇게 많다고 하더라고요. 낙타 옆에서 사진 찍어준다고 하면서 돈 받고, 피라미드 관람할 수 있는 티켓 끊어주겠다고 하면서 돈 받고. 관광객들이 워낙 많으니까 그럴 거예요. 아무튼 그래서 조금 걱정되기도 해서 그냥 맘 편하게 패키지로 갔어요. 주제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투어였지요. 피라미드가 정말 얼마나 큰 줄 아세요? 산이라고 해도 믿겠더라고요. 관광객들을 위해 내부에 계단을 만들었어요. 계단이 길고 가팔라서 다리가 얼마나 아픈지 몰라요. 피라미드 주변에는 좌판 펼쳐놓고 기념품 파는 상인들이 많아요. 파피루스 책갈피도 팔고, 피라미드 문양이 인쇄된 컵받침도 팔고, 미라 모양 열쇠고리도 팔고, 그리고 이거 천으로 만든 스핑크스 문양 지갑이요. 이런 것도 팔아요. 처음에는 미라 모양 열쇠고리를 사려고 했어요. 그런데 좌판 상인이 자꾸 이 지갑을 추천하잖아요. 그래서 마지못해 샀는데, 사고 나서 보니까 마음에 들더라고요. 괜찮지 않아요? 뭔가 되게 이국적이죠?”

직장 동료들은 J를 불편해했다. 다들 J와 있으면 슬퍼진다고 했다. 사무실에서든 촬영지에서든 J는 절대 먼저 말을 꺼내는 법이 없다. 상대가 먼저 말을 걸어야 비로소 몇 마디 대구한다. 그러지 않을 땐 아무 말도 안 한다. 촬영 다닐 때도 누가 말을 걸지 않으면 사진만 찍는다. 그러다 퇴근하고 나서 동료들과 술을 마실 때가 되어서야 말을 좀 많이 하는 편인데, 그것도 오직 영화 얘기나 여행 얘기만 한다. 물론 상대가 먼저 말을 걸어주어야 하고.

3개월 뒤 고태원은 다시 서울로 왔다.

서울로 온 뒤로 고태원이 몇 번 대구에 가기도 했고 J가 서울에 갈 때도 있었다. 그렇게 몇 번 만나서 술을 마셨지만, 다시 서울로 온 뒤 1년이 채 안 돼서 고태원이 이직을 하는 바람에 둘은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다. 그때가 벌써 5년 전이었다.

“지갑이 예뻐요. 굉장히 이국적이네요.”

잠시 J와의 추억이 떠오르는 바람에 고태원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고는 놀라서 부랴부랴 사과를 했다.

“죄송해요. 제가 손님한테 괜한 말을….”

그제야 손님은 고개를 들어 고태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고태원도 손님의 얼굴을 보았고.

5초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둘이 동시에 풋 하고 웃었다.

“태원님 맞죠? 설마 이 지갑 기억하고 방금 그 얘기 하신 거였어요? 지갑이 예쁘다는 말?”

“정말로 J님이시네요. 뭐 이런 일이 다 있죠?”

“그러게요. 정말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죠? 왜 태원님이 여기에 계시는 거예요?”

고태원은 이직한 곳에서도 3년 정도 근무하다 퇴사했다. 그리고 1년 전부터 이곳 신림동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기 편의점 운영한 지 1년 정도 됐어요. J님이야말로 왜 서울에 계세요? 대구에 계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J는 잠시 손목에 찬 시계를 보았다.

“저도 거기 신문사 그만 둔 지 좀 됐어요. 그리고 바로 서울 올라왔고요. 누가 서울에 있는 잡지사를 소개해 줬거든요.”

“그러셨어요? 그럼 지금 잡지사 촬영 때문에 외국으로 출장이라도 가시나 봐요?”

고태원의 말에 J가 고개를 가만히 저었다.

“아니에요. 잡지사도 몇 달 전에 그만 뒀어요. 사진기자한테 자꾸 스튜디오 페인트칠만 시키잖아요.”

그러면서 J는 풋 하고 웃었다.

고태원은 방금 J가 한 말이 별로 웃기지 않았다. 하지만 J가 웃는 바람에 별 수 없이 따라 웃었다.

“하루는 페인트칠을 하고 나서 집에 가는데요, 샌들 사이로 보이는 발가락에 페인트가 묻어 있잖아요. 그걸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페인트칠을 하려고 서울에 온 건 아닌데. 물론 페인트칠 하는 걸 안 좋게 얘기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전 사진을 찍으러 그 잡지사에 들어갔던 거라서요.”

“네, J님은 사진 전공하셨잖아요. 그럼 지금은 그냥 개인적으로 여행 가시는 거예요? 하긴 J님은 여행을 좋아하셨어요.”

고태원의 말에 J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손목에 찬 시계를 보면서 고태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죄송해요. 공항버스 올 시간이 돼서요. 계산 부탁드려요.”

“네.”

고태원은 J에게서 카드를 받았다. 그리고 결재를 한 뒤 카드를 건네면서 물었다.

“이번엔 어디로 가세요? 이집트는 아닐 거고.”

고태원의 물음에 J는 말없이 카드를 받아 스핑크스 천 지갑에 넣었다.

“일주일 정도 떠나시는 거예요?”

고태원이 다시 한번 물었다. 지금 헤어지면 J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다. J가 두 번 다시 이 편의점에 들어올 일은 없을 거라는 걸 알았다.

J는 늘 사람들과 거리를 둔다. 직장 동료들과 밥을 먹으러 갈 때도 항상 맨 끝자리에 앉는다. 먼저 말을 거는 법도 없고, 크게 웃는 법도 없다. 같이 어울려 술을 마시고 나서 친해졌다는 생각에 다음 날 음료수라도 건네면, J는 조용히 음료수만 마신다. 사회생활에 적합한 성격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진 정리 같은 지루한 일은 늘 J 몫이었고, 스튜디오 페인트칠도 같은 맥락으로 J가 떠맡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고태원은 그런 J가 좋았다. 둘이 있으면 상대를 슬프게 할 정도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 J가 좋았다.

“일본에 가려고요. 여행이라기보다 실은 1년 정도 작은 스튜디오에서 사진 일을 하게 됐어요.”

J가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J의 말에 고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 어디요?”

고태원의 그 말에 J가 고태원을 쳐다보았다. 꽤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고태원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건 J도 알고 있었다. 상대방을 불편하게만 만드는 자신을 왜 좋아할까! J는 그런 생각뿐이었다.

“고쿠라라는 도시예요. 기타큐슈 쪽에 있는 작은 도시.”

 

 

2

 

“아니, 계속 그렇게 버스정류장만 쳐다보고 계실 거예요? 그러지 말고 그냥 여행 삼아 일본에 한번 다녀오시라니까요? 편의점이야 아르바이트 하는 친구들한테 얘기해서 연장 근무 좀 해달라고 하면 되고요.”

옆 건물 이디야 커피숍 사장이 편의점에 들어오면서 고태원에게 또 일본 얘기를 꺼냈다.

고태원은 그를 이 사장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커 사장이라고 불렀는데, 본인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이 사장으로 부르게 됐다. 이디야 커피숍 사장은 고태원을 편 사장이라고 불렀고.

고태원과 이 사장은 가끔 함께 퇴근할 때가 있다. 고태원은 밤 11시에 야간 아르바이트생과 교대를 하는데, 마침 커피숍도 손님이 일찍 끊겨 11시 전에 마감까지 다 마치면 이 사장이 일부러 편의점에 들러 고태원과 함께 퇴근을 했다.

이 사장은 차를 갖고 다니지 않는다. 커피숍에서 집까지 요금 3만 원이 넘는 거리를 매번 하루에 두 번 택시를 타고 다닌다. 그래서 고태원의 차를 함께 탈 때도 있고, 고태원이 차를 안 갖고 온 날은 함께 전철을 타기도 한다.

그렇게 고태원은 보름 전에도 함께 전철을 탔다가 이 사장에게 J 얘기를 했다. 할 생각은 없었는데, 요즘 왜 그렇게 편의점 안에서 유리 너머로 버스정류장만 쳐다보고 있냐는 이 사장의 물음에 마치 홀리듯 J 얘기를 해버렸다.

“그래서, 연락처도 안 물어보고 그냥 그렇게 헤어졌다고요?”

“네. 어차피 물어봐도 안 알려줬을 거예요. J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대구에서 지낼 때도 연락처 몇 번 물어봤는데 안 알려줬거든요.”

“편 사장님도 참 연애하기 힘들겠어요. 안 알려준다고 포기해 버리다니.”

고태원이 보기에 이 사장은 모태 솔로처럼 보였다. 한여름에도 청색 코르덴바지 아니면 갈색 코르덴바지에 회색 체크무늬 긴팔 남방만 입는다. 남방을 바지 안으로 넣고서, 바지를 거의 배꼽 위까지 추켜올려 입는다. 신발은 보기에도 숨이 막힐 것처럼 투박해 보이는 갈색 랜드로바만 신고. 게다가 남녀 불문하고 타인과 얘기할 때는 훈련소에 입대한 신병이 마치 사단장 앞에라도 서 있는 모양새다. 그러면서 헤어스타일은 군 장교처럼 짧은 상고머리에 이대팔 가르마로 정교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모태 솔로처럼 보여서 고태원은 이 사장을 좋아하지만.

그래서 이 사장의 말에 고태원은 ‘그건 이 사장님이 하실 얘기가 아닌 것 같아요’라는 말이 식도까지 차올랐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고태원의 말을 들은 뒤로 이 사장은 틈만 나면 고태원에게 버스정류장만 쳐다보지 말고 당장 일본에라도 가보라고 성화였다.

지금도 밤 11시가 되려면 아직 30분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편의점으로 들어오면서 일본 얘기를 꺼낸 것이었다.

“일본에 간다고 해서 뭐 뾰족한 수가 있겠어요?”

이 사장의 말에 고태원은 힘없이 대구했다. 일본에 간다고 해서, J가 있는 고쿠라에 간다고 해서 J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5년 만에 여기 편의점에서 우연히 만난 걸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건 제가 볼 때 운명이에요.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니 그 운명을 계속 이어나가 보자는 거죠. 고쿠라 거기 안 넓어요. 기타큐슈 시에 속한 작은 도시예요. 한 3박 4일 일정 잡아서 그냥 도시를 돌아다녀 보세요. 편의점에도 들어가고 식당에도 들어가고 전철도 타보고 버스도 타보고 쇼핑센터에도 가보고요. 그렇게 돌아다녀 보세요. 3박 4일 동안이요. 운명을 믿어보세요.”

이 사장은 마치 길거리에서 영혼이 맑아 보인다며 접근하는 사람들 같은 말을 했다.

게다가 저런 터무니없는 얘기를 저렇게 군기 바짝 든 자세로 얘기하다니, 고태원은 이 사장이 모태 솔로가 맞을 거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에이, 그래도 그렇지, 이게 무슨 삼류 영화도 아니고, 무작정 그렇게 그 낯선 도시에 가서 길거리를 배회한다고 해서, 설마 제가 J를 만나겠어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에이.”

“그러니까 그게 운명이라는 거죠. 그 운명에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는 전적으로 편 사장님 몫이고요.”

“운명은요 무슨. 아무튼 그건 말도 안 돼요. 무작정 일본 가서 길거리 배회하다가 마침 편의점이 눈에 띄어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토레타 같은 이온음료를 고르고 있는 J와 마주친다! 에이,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에요.”

 

 

3

 

숙소는 고쿠라역 근처에 잡았다. 기타큐슈 시 고쿠라기타(北) 구가 있고 고쿠라미나미(南) 구가 있지만, 고태원은 3박 4일 동안 고쿠라기타 구만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이 사장이 말하기를 고쿠라라고 하면 보통은 고쿠라기타 구를 뜻한다고 해서였다. 물론 3박 4일 동안 고쿠라기타 구를 다 돌아다니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기타큐슈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오자마자 한국과는 다른 느낌으로 전달되는 공기가 밀려왔다. 적어도 3, 4도 더 따뜻한 공기였다.

고태원은 곧장 공항 밖으로 나가서 왼쪽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고쿠라역 버스센터로 가는 공항버스가 벌써 와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에 올라타서 빈자리에 앉자마자 고태원은 한숨부터 쉬었다.

-진짜로 와버렸네. 기타큐슈, 여기까지 진짜로 왔어. 정말로 고쿠라에 왔어.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인지 모르겠어.

공항버스는 한 시간도 안 돼서 고쿠라역 버스센터에 도착했다.

고태원은 버스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뒤쪽으로 꽤나 큰 고쿠라역 건물이 보였고, 칠팔 층짜리 건물들이 즐비했고, 쭉쭉 뻗은 왕복 4차선과 6차선 도로로 차들이 쌩쌩 달렸다.

고쿠라는 넓은 도시였다. 고태원은 처음부터 이 사장의 운명 어쩌고 하는 얘기를 믿은 것부터가 어리석었다고 자신을 질책했다. 정교해 보이는 군 장교 헤어스타일에 현혹당해 이 사장의 말을 신뢰한 자신을 한없이 질책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고태원은 이미 삼류도 아닌 사류 영화 속 주인공처럼 고쿠라에 와버렸다.

고태원은 질책을 그만 두고 휴대폰을 꺼내 구글맵에 들어갔다. 그리고 숙소인 ‘니시테츠 인 고쿠라’를 검색해서, 그쪽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중에 날이 더워 편의점에 들어가서 음료수라도 하나 살까 싶었지만, 호텔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계속 걸었다.

그렇게 20분 정도 걸었을까, 좁은 골목 끝에 11층짜리 자주색 건물이 보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체크인 시간을 물으니 오후 3시부터 가능하다기에 고태원은 배낭을 프런트에 맡기고 호텔을 나왔다. 그리고 골목을 빠져나와 아까 들어가려다 말았던 편의점으로 가서 토레타를 하나 샀다. 시간은 오전 10시가 조금 넘었다.

“삼촌, 일본 어디 가는데?”

집에서는 하루 종일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고2짜리 여자 조카애가 고태원이 3박 4일 동안 일본에 간다는 말을 듣고 식탁에 앉아서 대뜸 그렇게 물었다.

“고쿠라라고 있어. 기타큐슈 시에 있는 작은 도시. 작아서 운명적인 만남을 기대해 볼 수 있는 도시래.”

“뭔 소리야, 그게?”

“그런 게 있어. 삼촌도 잘은 몰라. 일단 가봐야지.”

시한폭탄과도 같은 고2짜리 여자 조카애는 고태원과 잠깐 얘기를 나누는 동안 휴대폰으로 고쿠라를 검색했다.

“아, 고쿠라! 기타큐슈 시에 있는 도시가 맞네. 음, 여기에도 돈키호테가 있고, 오오, 아루아루 시티가 있구먼. 덕후들의 성지! 삼촌 혹시 아루아루 시티 때문에 고쿠라에 가는 건 아니지?”

“그게 뭐하는 데냐?”

“그냥 만화 캐릭터들 다 모아놓은 곳이지. 피규어도 많고, 만화책도 아주 저렴하게 팔고, 코스프레 숍도 있지.”

“잘 알고 있구나?”

“응, 말 나온 김에 아루아루 시티 한번 가봐. 그리고 돈키호테에도 가보고. 돈키호테는 잡화 할인점이야. 의약품 빼고는 없는 게 없지. 필요한 건 거기에서 다 사면 되지.”

“잘 알고 있구나?”

고태원은 조카가 한 말이 생각나서 휴대폰으로 다시 구글맵에 들어가 돈키호테 고쿠라를 검색했다. 걸어서 30분 정도 걸어가면 될 것 같았다.

고태원은 다시 골목으로 들어가 호텔까지 갔다. 그리고 호텔을 지나 좁은 사거리에서 직진했다. 유료주차장을 지나 100m 좀 더 가자 왕복 4차선 큰 길이 나왔다. 아사카 거리였다.

아사카 거리에서 우측으로 갔다. 10분 정도를 걸었더니 왼쪽으로 길 건너 노란색 간판이 인상적인 라멘집이 보였다. 생각해 보니 고태원은 오늘 비행기 타기 전에 공항에서 먹은 빵 하나가 전부였다. 갑자기 허기가 졌다.

마침 앞에 횡단보도가 있어서 길을 건넜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라멘집은 문을 안 열었다. 영업시간은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영업시간이 꽤나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고태원은 하는 수 없이 돈키호테 쪽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짧은 횡단보도를 건너자 훼미리마트 편의점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으로 8층짜리 하얀색 건물이 보였다.

건물 1층은 ‘ART & BLUE STUDIO’.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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