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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석 크리티컬 슈퍼스타

전삼혜

 

1. 아주 단단하니 살아야 한다

시외버스터미널 대기실, 큼직한 캐리어 두 개를 옆에 놓은 아이 옆에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귀찮음이 얼굴에 역력한 단발머리 여자아이 옆에서 할머니는 연신 손을 잡고 중얼거렸다.
“단단하니 살아야 한다. 니가 오래 못 살 거라 점쟁이가 그래서 이름도 바를 정에 돌 석자 정석이로 지었는데, 혼자 멀리 보내 함미가 어찌 살까 모르겠다. 하이고. 부모라곤 돈 벌러 외국 간다고 소식도 없고. 애가 고등학교 간다고 하는데 얼굴도 안 비추고. 하이고.”
정석은 ‘안 들린다’를 속으로 중얼거리며 천장에 달린 구식 티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할머니가 이름 이야기를 시작하면 이십 분은 걸리는데, 버스가 그 안에 올라나. 손을 슬쩍 빼자 할머니가 손목을 움켜쥐었다.
“니 내 얘기 안 듣제. 정석아. 응? 기숙사 밥 준다니 잘 챙겨 먹고, 주말마다 전화 걸어라. 알제.”
“함미, 쪽팔리다. 내가 얼라도 아니고.”
정석은 툴툴거리며 잡힌 손목을 잡아뺐다.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정석이 일어서자 할머니는 정석의 귀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니, 알제.”
“뭐를 또.”
정석이 캐리어 손잡이를 손에 쥐자 할머니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다리몽둥이 부러졌다는 연락 오면, 그때는 고등학교고 뭐고 없다. 산에서 못 내려오는 거다. 니, 나하고 지장 찍었다.”
정석은 어깨를 움츠렸다. 잡힌 귀가 아프기도 했지만 시뻘건 지장이 찍힌 종이가 눈앞에 선했다. 함미, 뭔 각서를 받아 왔나. 됐고 찍어라. 다섯 살부터 정석을 살펴 온 동네 의사가 보는 앞에서 정석은 붉은 인주에 손가락을 눌렀다. 나 지정석은 고등학교에서 한 번이라도 다리를 다칠 시 학업을 포기하고 할머니랑 살겠습니다. 할머니가 귀를 놓아주자 정석은 캐리어를 끌고 버스 줄에 섰다. 줄 중간중간에 정석 또래의 아이들이 보였다. 
초등학교가 분교 하나, 중학교도 분교 하나인 마을이었다. 고등학교부터는 다른 시에 다녀야 했다. 산촌이라는 게 그런 데가 한둘이 아니니 좀 큰 고등학교마다 기숙사가 하나씩 있었다. 정석은 꾸벅꾸벅 졸다가 잠이 들었다. 고등학교에 도착하면 깨우겠지. ‘학생들 내려!’ 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눈을 떠 보니 정석이 입학할 한울고등학교에 도착했다. 입가를 손등으로 훔치며 내린 정석 앞에 ‘한울고등학교 신입생을 환영합니다’ 라는 현수막이 교문 위로 나풀거리고 있었다. 크긴 크구마. 정석은 앞서 걸어가는 몇 명의 캐리어 부대 뒤를 졸졸 따라갔다.
“여학생은 진리관이에요. 2인 1실인데, 아직 도착 안 한 학생들이 있으니 며칠은 혼자 써야 할지도 몰라요. 바로 뒤 산에서 새나 벌레 날아와도 너무 놀라지 말고. 알러지나 주의 사항 서류 더 없죠?”
“없어요.”
건강한 게 장점이지. 정석은 1학년이 맨 윗 층이라는 설명을 듣고 501호 열쇠를 받아들었다. 높은 층이라. 낮은 층보다야 낫겠지. 산짐승하고 산새야 익숙하고. 그러나 정석은 기숙사 정문에 들어서 ‘엘리베이터 수리중’이라는 팻말을 마주하고, 할머니와의 약속을 깨 버리면 안 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함미가 다리몽둥이 부러뜨리지 말랬지, 뛰지 말라고는 안 했는데...”

정석은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나? 아직 2월이라 학생들이 입학하지 않은 탓에 기숙사 주위에는 사람이 없었다. 정석은 조심스럽게 건물 뒤로 돌아가 나무들 사이로 숨었다. 맨 꼭대기 층이 저 정도 높이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정석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무릎을 굽혔다가, 쭉 펴며 뛰어올랐다.
“무리네.”
다음 순간 정석은 3층 높이 언저리쯤 되는 나뭇가지 위에 올라서 있었다.
“두 번 뛰면 안 될라나. 아니다. 캐리어 들고는 이만큼도 못 뛰지.”
그리고 여기서 더 뛰었다간 내 다리몽둥이는 진짜 부러질 거고.
정석은 한숨을 푹 쉬고 나무를 껴안았다. 아, 올라갈 때는 3층 높이까지 점프가 되면서 내려올 때는 위치에너지를 그대로 받는다니 너무 불공평한 능력이야. 둘 다 되든지, 둘 다 안 되든지. 정석은 얼굴을 찡그리며 옷에 붙은 나무껍질을 떼어냈다. 이것도 문제야.
“무슨 가시나 옷이 가슴팍부터 걸레짝이여!”
내가 엄청 혼났지. 함미. 내가 뛰어내리면 다리가 부러지고, 나무 타고 내려오면 껴안고 내려와야 하니 옷이 찢기는데 어쩌겠나. 나도 아이언맨처럼 가슴팍에다 뭐 딴딴한 거 하나 붙이고 싶다. 캐리어에 있는 옷 중에 나무 탈 때 입을 만한 게 뭐 있더라. 정석은 캐리어를 챙겨 5층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며 고민했다.
요컨대, 안 뛸 생각은 요만큼도 없다는 이야기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중에서도 가장 윗집. 또래는 한 명도 없었다. 할머니 일하는 걸 따라가는 것도 하루이틀이었다. 낫이며 사다리 같은 위험한 물건이 많은 곳에서는 애를 데리고 오지 말라 하니, 별 수 있나. 집에서 놀아야지. 정석은 집에 있던 낡은 만화책이나 무협 소설을 읽으며 빈둥거렸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돌아온 할머니는 계단에 앉아 질질 울고 있던 정석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달려왔다.
“아가, 정석이 왜 우나. 벌에 쏘였나?”
“함미... 나 다리 아프다.”
반바지 아래 드러난 다리가 부어 있었다. 이걸 어쩌나. 날이 밝는 대로 할머니는 차를 몰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는 눈물콧물 질질 흘리는 정석의 다리를 진찰해 보고 말했다.
“금이 간 것 같지는 않은데, 어디서 굴러떨어졌나 보네요.”
“하이고. 나는 다리몽댕이라도 부러진 줄 알고. 감사합니다. 차 빼 올게 정석이 니는 여기서 기다리라.”
할머니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나가자 정석은 기다리란 말도 무색하게 진료실 밖으로 쪼르르 잘려나갔다. 다리가 아직 부었는데, 안 아픈가. 장년의 의사는 진료실을 잠시 비워 두고 정석의 뒤를 쫓았다. 정석은 날래게 병원 뒷마당으로 향했다. 의사가 뒷마당으로 들어서자, 정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뒷마당 중앙에 옛날부터 있던 늙은 나무 한 그루 뿐이었다.
“정석아?”
의사가 두리번거리자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네에?”
세상에나.
의사는 위를 올려다보고 허겁지겁 주변을 살폈다. 2층은 되어보일 높이의 가지에 정석이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애가 저러다가 떨어지면 큰일인데. 정석은 다리를 까닥거리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거, 거기서 뭐 하냐. 퍼뜩 내려와라.”
“네에.”
정석은 가장 빠른 방법으로 땅에 내려왔다.
“읏차!‘
“아이고 이놈아!”
뛰어내렸다는 소리다. 의사는 정석이 병원에 올 때마다 그 때 오른 혈압이 아직도 안 내려간다며 잔소리를 했다. 다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높은 가지에서 발부터 착지한 아이가 무사할 기 없다는 생각에 의사는 정석을 안아들었다.
“선샘미. 나 하나도 안 아픈데.”
“거긴 어떻게 올라갔냐! 내가 분명히 바로 따라 왔는데. 아이고. 엑스레이 찍어야겠다.”
“아니이. 안 아픈데요. 내려봐봐요.”
정석이 옷을 잡아당기며 채근하자 의사는 반신반의하며 정석을 내려주었다. 정석은 씨익 웃더니 나무 앞으로 가 훌쩍 뛰어올랐다.
다음 순간, 정석은 아까 그 가지 위에 태연하게 서 있었다.
“함미네 집 책에서 봤어요. 하루에 옥수수 싹을 이백 번씩 넘으면 나중엔 하늘을 날고 그런다드마. 해 봤더니 하늘은 못 날아도 이건 되데요! 어라... 샘미?”
정말 그 때는 기절하는 줄 알았지. 의사가 뒷목을 잡고 쓰러지기 직전에 정석의 할머니가 나타났다. 정석의 할머니도 기겁하는 표정을 짓더니 정석이 다시 뛰어내리자 벼락같이 달려가 등짝을 내리쳤다.
“니가 고양이여, 청설모여! 어딜 겁도 없이 올라다녀!”
할머니. 지금 겁이 문제가 아닙니다. 의사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꾹 누르며 둘을 다시 진찰실로 데려갔다.
“정석아. 사람은 하늘을 못 난다. 옥수수 싹을 이백 번이 아니라 오백 번을 넘어도 안 돼.”
“그래요? 난 내가 백 번만 넘어서 이런가 했는데.”
“집에 가면 그놈의 책들을 싹 불태워야지 원.”

한 달 간의 관찰 끝에 의사가 내린 결론은 ‘큰 문제는 없음’ 이었다. 점프력뿐만 아니라 다리의 회복 속도도 보통의 몇 배는 좋아서 간단한 염좌 정도는 하루면 낫는 체질이었다. 하지만 몸이 계속 자라도 다리의 회복 속도가 유지될지는 미지수. 게다가 낫는 게 빠를수록 큰 문제가 있었다.
“정석아. 니가 빨리 낫는다는 거는, 부러진 뼈도 빨리 붙는다는 거야. 그런데 뼈가 뚝 부러졌다가 잘못 붙으면, 그때는 양쪽 다리 길이가 달라지거나 다리를 못 쓰게 될 수도 있다.”
이해를 못 하는 정석에게 순간접착제로 나무젓가락을 삐뚤게 붙여 가며 설명을 거듭하자 정석은 ‘앞으로는 뛰어올라가도 천천히 내려오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어린이들은 늘 눈앞의 이익에 홀려 약속을 잊기 마련이라, 서너 번 정도는 다리가 부러졌다. 마지막 한 번은 정석이 부러진 걸 숨기다가 기어코 뼈가 어긋나 붙기 직전까지 가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병원비도 병원비고, 엑스레이 결과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걸 어떻게 진료기록에 남기란 말인가. 힘 조절하는 걸 익혀서 ‘그냥 뛰기’와 ‘높이 뛰기’를 구분하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정석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무사히 마치기까지 할머니와 의사, 간호사 일동이 함께 늙는 기분을 견뎌야 했다. 정석의 키가 크고 몸무게가 느는 만큼 회복속도가 더뎌지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의사는 할머니에게 ‘운동선수를 시키라’고 넌지시 권해 보기도 했지만, 저 천둥벌거숭이를 어디 약장수가 잡아 가면 잡아갔지 어떻게 운동을 시키냐는 말로 할머니는 딱 잘라 거절했다. 사실 늘 노심초사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온갖 게 다 티비에 나오는 마당에, 누가 애를 찍어서 방송국에 제보라도 하면 어쩌나. 유명해져 봤자 인생 하나도 편할 게 없고 사람은 자고로 분수에 맞게 먹고 사는 게 최고라는 게 할머니의 지론이었다.
덕분에 정석은 방송국의 눈도, 약장수의 눈도 피해 무사히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2. 뒷산의 도원결의

남학생 기숙사 자유관 7층, 707호 조태연은 한숨을 쉬고 있었다. 입학식까지는 열흘이 남아 있었고 2인 1실 룸메이트는 입학에 맞춰 들어올 모양이었다. 제발 그 자식은 아니어야 할 텐데. 누군가 7층 복도를 돌아다니는 것 같을 때마다 태연은 흠칫흠칫 놀랐다. 그 미친놈이랑 같은 방 되면 난 자퇴해야 돼. 진짜로. 조태연은 베게에 얼굴을 파묻었다. 같은 동네 놈이랑 한 학교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정말로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제발 기숙사 말고 하숙집 가라. 입학식까지는 때 되면 주는 밥 먹고 통금 시간에 점호하는 것만 빼면 할 일이 없었다. 태연은 방문을 꼭 잠근 걸 확인하고 주머니 안에서 주사위 두 개를 꺼내 위로 던져 올렸다.
주사위가 공중에서 멈췄다. 
하나, 둘, 셋. 속으로 3초를 세자 주사위는 땅으로 떨어졌다.
정말 별것도 아닌 능력이었다. 중학교 때 오락실에서 꼼수 쓸 때나 유용할 줄 알았다. 그래서 중학교 내내 별명이 크리티컬이었다. 격투게임에서 지기 직전이면 귀신같이 필살기를 쓴다고. 아주 짧은 순간 상대 조이스틱을 안 움직이게 하면 그만이니까. 그냥 그 정도만 하려고 했다.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선에서.
“내 인생 왜 이러냐.”
주사위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태연은 몸을 일으켰다. 뒷산 산책이나 나갈 생각이었다. 산길을 걸으면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멈추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그 날, 조태연은 나뭇잎보다 훨씬 무거운 걸 멈춰야 했다.

진리관 501호의 강윤아는 뒷산 바위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답답해 하고 있었다. 윤아의 앞에서는 어미고양이가 호소하듯 울고 있었다. 윤아의 귀에는 그 뜻이 고스란히 들렸다. 애기가 위험해. 도와 줘. 도와 줘. 고양이 말을 알아듣는다는 건 윤아의 비밀이었다. 알아듣기는 해도 고양이가 알아듣게 말을 할 수가 없으니 일방통행이었다. 뭘 어떻게 도와달라는 거야. 난 못 해. 못 한다고. 고개를 세차게 저었지만 어미고양이는 요지부동이었다. 말을 다 알아듣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듯이.
“나도 엄마 있어. 도와달라고 해도 다 도와줄 수 있는 거 아니야.” 
윤아는 서글프게 중얼거렸다. 고양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윤아가 감당할 수도 없는 위험인지 아닌지 판단할 줄도 몰랐다. 네 아이를 괴롭히는 게 무서운 사람이거나 그러면 어떡해. 그러면 나도 다친다구. 하지만 어미고양이는 더 소리높여 울었다. 아이고. 이러다 기숙사 사람 다 나오겠네.
“알았어. 알았어.”
따라가 보기만 할게. 윤아가 몸을 일으키자 고양이는 빠르게 산을 가로질렀다. 야트막한 산이라고 해도 통통한 윤아에겐 힘겨운 스피드였다. 부모님은 작은 슈퍼에서 팔다 남은 먹을거리를 버리기 아깝다며 집으로 자주 가져왔다. 먹성 좋을 때는 그게 좋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남은 음식들이 고스란히 살이 되었다. 기숙사 가면 남은 거 안 먹어도 되니까 살 빠질 줄 알았는데, 며칠로는 어림도 없네. 헉헉거리며 겨우내 쌓인 나뭇가지와 반쯤 썩은 낙엽을 밟으며 윤아는 앞으로 나아갔다.

정석은 나무 위에서 새끼고양이 한 마리를 안아들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어째서 나는 고양이를 구하겠다고 2단 점프를 한 거냐. 목청이 터져라 울던 고양이는 정석이 한 번에 뛰기에는 높은 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중간에 다른 가지에 한 번 올라갔다가 뛰면 넉넉히 고양이에게 닿겠다 싶어, 정석은 그렇게 했다. 중간 가지가 정석이 뛰는 순간 뚝 부러져버릴 걸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시도도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과학을 좀 더 열심히 배울 걸 그랬나. 정석은 품에 매달려 제법 편안해 보이는 고양이를 멍하니 쓰다듬었다. 나무 줄기를 혼자 타고 내려가려면 어떻게든 할 수야 있겠지만, 고양이를 데리고 나무를 탈 자신은 없었다. 음. 이걸 어쩌면 좋나. 룸메이트가 있긴 했지만 이런 일로 전화를 하고 싶진 않았다. 좀 더 버텨 볼까나. 얘가 잠이 들면 주머니에 넣고 내려갈 수도 있고. 한 뼘짜리 고양이가 여긴 어쩌다 올라왔냐. 정석은 하늘을 보고 중얼거렸다. 함미, 나 좀 살리라.

태연은 고양이가 바락바락 우는 소리를 듣고 그 쪽으로 향했다. 산이래야 깊은 산도 아니니 길을 잃을 것 같지는 않았다. 산짐승이면 어쩌지 싶으면서도 태연은 계속 걸음을 옮겼다. 중간부터 뚝, 소리가 멈췄다. 아기 고양이 같던데 어미가 데려갔나. 태연이 걸음을 반대로 돌리려 할 때, 이번에는 제법 큰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어미인가? 그런데 왜 울지? 소리는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가는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태연은 주사위를 한번 꾹 쥐어 보고 속도를 높였다. 고라니 정도면 3초는 멈출 수 있겠지.

어미고양이는 윤아에게 빨리 좀 오라며 울었다. 윤아는 헉헉 숨을 몰아쉬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2월에 땀 날 일을 하다니, 세상에나. 강윤아 고생한다. 어미고양이는 한 쪽을 바라보고 길게 울었다. 저기야. 윤아는 그 말을 듣고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 듯 갔다.

정석은 이제 ‘다리 말고 다른 데가 부러져도 내려간다고 했나?’ 라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
나무 왼쪽 아래에서 당황스러운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휴대폰 라이트 빛이 정석을 비추었다. 고양이는 눈이 부신 듯 정석의 등 쪽으로 돌아가 발톱으로 붙었다. 얌마, 니가 그리로 가면 나보고 어쩌라고. 정석은 라이트를 끄라는 뜻으로 휘휘 손짓을 했다. 

나무 위에 여자애가 있었다.
고양이 소리였는데?
태연은 위로 휴대폰 라이트를 비추었다. 여자애였다. 체육복 같은 걸 위아래로 걸친. 여자애는 손을 휘저었다. 알았어. 나도 너 발견했어. 태연은 응답하듯 휴대폰 라이트를 흔들었다.

“사람이야?”
윤아는 나무 위의 커다란 그림자를 보고 멈춰섰다. 어미고양이도 ‘저깄어’ 라고 길게 울었다. 쟤가 고양이를 해친 거구나. 윤아는 주변에 굴러다니던 돌멩이 하나를 쥐었다. 던지고 튀면 되지. 던지기 전, 윤아는 어미고양이 쪽으로 혀를 찼다.
“야, 이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내가 슈퍼 과자 훔치는 애들 잡느라 돌멩이 던지다 소프트볼 투수까지 한 실력이야. 이 정도면 쟤도 찔끔하겠지. 윤아는 투구폼을 잡고 엄지손가락만한 돌멩이를 나무 위 그림자를 향해 던졌다. 돌은 다리에 맞았다.

다리에 돌이 날아와 맞았다. 정석은 반사적으로 몸을 숙여 다리를 살폈다.
“저쪽에선 라이트를 비추더니, 이쪽에선 웬 짱돌이 날아와? 너네 찠냐?”
다리를 보려는데 왜 몸이 이렇게 기울지. 잠시 생각하다 정석은 깨달았다. 아, 나 나무 위에 있었지. 망했다. 속절없이 정석의 몸은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정석은 눈을 질끈 감고 기도했다.
다리 대신 팔이 부러지는 게 낫겠어요. 등에 고양이도 있잖아요.
그리고 신은 팔다리 둘 다 부러지지 않는 자비를 베푸셨다.

“윽.”
갑자기 무거운 물체를 정지시킨 태연에게 온 과부하를 제물 삼아.
어찌어찌 버틸 수 있는 무게였다. 지면에 닿기 전에 딱 3초만 멈추면 덜 다치겠지. 태연은 온 정신을 여자애에게 집중시켰다. 덜컥, 공기의 흐름이 한 곳에만 멈추는 게 느껴졌다. 잠시 후 태연이 힘을 빼자 여자애의 고함소리가 짜랑짜랑하게 울려퍼졌다.

“야, 둘 다 나와! 웬 미친놈들이 남의 기숙사 뒷산에서 하이빔에 돌팔매야!”

하이빔 아닌데. 근데 너 괜찮냐. 태연이 다가섰다.
어둠 속에서 총알같이 어미고양이를 향해 날아오는 아기고양이를 보며 윤아가 주춤주춤 나섰다.
태연의 노력으로 추락 후 충격이 대폭 줄어든 정석이 씩씩거리며 휴대폰 라이트를 켜 좌우를 비추었다.
“어, 너, 정석이야?”
얼씨구, 나한테 짱돌 던진 게 내 룸메라니. 정석은 어이가 없어서 허어, 하고 웃었다.
“저기, 제대로 멈춘 거 맞지? 많이 안 다쳤지?”
주춤주춤 다가오는 남자애가 하나. 그러고보니 떨어지다 중간에 확 멈췄는데, 얘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정석은 라이트를 태연 쪽으로 비췄다. 태연이 겁을 먹은 듯 주춤거렸다.
그리고 저쪽 아래에서 휴대폰이 아니라 제대로 된 라이트 빛이 날아들었다.
“기숙사 학생들이야? 거기서 뭐해!”
씨, 경비 떴잖아! 소리는 지가 질러 놓고 정석은 있는 대로 신경질을 냈다. 그리고 아직 굳어 있는 태연과 자기보다 키는 작지만 족히 오 키로는 더 나갈 윤아를 잡아끌고 몸을 날렸다. 산에서 복숭아 따고 사과 상자 나르는 알바 하면서 다진 노동근육아, 일해라! 정석이 낮은 바위 두어 개를 훌쩍 뛰어넘어 몸을 날렸다. 경비원의 라이트가 다시 닿기 전에 정석과 둘은 제법 큰 바위 뒤에 숨을 수 있었다.
“정석아, 헥, 여기서, 뭐...”
“나인 줄 모르고 던진 건 맞냐? 아니, 그 전에 너 어떻게 찾아왔냐?”
“나, 난 왜 끌고 왔... 콜록콜록.”
“너, 아까 나한테 뭐 했냐? 떨어지기 전에 멈췄는데.”
정석이 쏘아보자 태연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누가 노려보기만 해도 작아지는 건 질색인데. 이게 다 그 미친 놈 떄문이야. 정말 싫어. 짜증 나. 태연은 용기를 다 모아 받아쳤다.
“너, 뭐, 천하장사 같은 거야? 우릴 들고 어떻게 뛴 거야? 나무엔 어떻게 올라갔어?”
이상했다. 중간에 잡을 곳도 마땅치 않던 나무. 그 위에 올라간 것 치곤 너무 태연하던 여자애.
정석은 뒷머리를 긁었다.
“함미가 떠들고 다니지 말라 했는데, 몸이 방정이여.”
“야, 근데 우리 어떻게 내려가?”
해가 일찍 지는 겨울에 산이라 금세 추위가 찾아왔다. 덜덜 떨며 윤아가 묻자 정석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러게. 도망치다 보니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태연은 협상 카드를 내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길 찾을 수 있어.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건지 나중에 설명해줘. 너랑 너 둘 다. 그러면 데려다줄게.”
빨리 안 내려가서 비상 점호라도 걸리면 골치아팠다. 정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윤아도 이를 딱딱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연은 길눈이 밝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휴대폰 라이트로 발 아래를 비추며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뒷산의 도원결의였지. 정석은 누군가 셋이 친해진 계기를 물어보면 그렇게 대답했다.
복숭아잎 하나 날리지 않는 2월의 뒷산이었지만.

 


3. 귀신보다 싫은 사람

기숙사는 달랐지만 셋은 모두 1학년 3반이었다. 반의 삼분지 일 정도는 기숙사고, 나머지 중 몇은 또 시내 하숙집에 살았고, 대부분은 집에서 통학했다. 삼월의 추위가 가시고 봄날이 되자 아이들의 경계심도 노곤노곤해졌다. 서로가 어디에서 학교를 다니건 상관없이 어울려 얘기를 했다. 
“기숙사 방에 가 보면 안 돼?”
“들어갈 때 경비선생님이 체크해. 친구 데려오려면 주말만 될 걸?”
“에이, 내가 주말에 학교를 왜 와. 안 가.”
입을 뾰루퉁하게 내미는 희연의 행동에 정석과 윤아는 낄낄 웃었다. 키 크고 단단하게 생긴 정석과 작고 통통한 윤아가 룸메라는 것은 반의 재밌는 이야깃거리였다. 정석이나 윤아의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지만.
희연은 의자 아래로 다리를 주무르며 투덜거렸다.
“기숙사에 귀신 나온다며. 나 괴담 되게 좋아하는데.”
“그런 게 나와?”
정석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나도 들었어. 3층에 2학년 살잖아. 3층 창문을 새벽에 누가 툭, 툭, 툭 두드리고 지나간대.”
“5층도 그랬어? 난 한 번도 못 들었는데.”
정석이 묻자 윤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랬다고도 하는데, 너나 나나 한번 잠들면 알람 울리기 전엔 절대 안 깨잖아. 우린 창문 밖에서 드럼을 쳐도 모를 걸?”
“하긴 그러네.”
정석은 뒷자리에 엎드린 태연을 쿡쿡 찔렀다.
“남자 기숙사에도 나와?”
“몰라...”
고개를 든 태연의 눈 아래 시커멓게 그늘이 져 있었다. 
“니가 더 귀신 같다. 잠 못 자?”
“어... 요새 좀...”
태연은 얼버무리며 다시 고개를 파묻었다. 윤아가 혀를 찼다.
“잠 못 자면 상추 많이 먹어, 호두도 먹고. 편의점보다 시내에 그, 농협이 더 싸. 주말에 좀 사다 줘?”
슈퍼 집 딸내미였던 전적답게 윤아는 어디엔 뭐가 좋다더라 하는 생활정보에 빠삭했다. 가격 정보도 물론. 기숙사에서 주말에 간식을 싸게 사려면 일단 윤아에게 묻는 게 먼저였다. 윤아는 자기네 슈퍼 매상 오르는 것도 아닌데 자기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멋쩍어했다. 
“됐어.”
태연은 엎드린 채 대답했다.

기숙사 귀신.
그게 뭔지 태연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되도록 자기가 생각하는 그게 아니길 바랬다. 그 미친 놈이 자기를 괴롭히려면 굳이 여자 기숙사 창문을 두드릴 필요가 없었다. 남자 기숙사 창문만 두드렸겠지. 자유관 7층은 ‘사내놈들이 쪽팔리게 그런 걸로 떠들어대냐’는 사감의 지시 때문에 아이들이 말을 안 할 뿐, 똑같은 일에 시달리고 있었다. 태연의 룸메이트도 머리만 대면 잠들어버리는 체질이지만 태연은 아니었다. 게다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톡, 톡, 톡이 아니라 명확히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타다다다닥, 타닥, 타다닥. 5, 2, 3.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어서 태연은 더 머리가 아팠다.

제발 나 좀 조용히 살게 해 줘.
그건 내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이 학교에 입학했다는 소문은 없었다. 모든 반을 돌았지만 그 놈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애마저 없었다. 그런데 밤마다 왜 와서 괴롭히는 거야. 차라리 귀신인 게 낫겠어. 태연은 진저리를 쳤다.
귀신일 리는 없었다. 살아 있으니까. 단지 특이한 능력이 있을 뿐이었다. 태연이 물체를 잠시 멈추고, 정석이 턱없이 높이 뛰고, 윤아가 고양이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그 놈은 가벼운 물체들을 자유자재로 손대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나뭇가지나 가벼운 돌이 두드리는 거라면 그 놈의 장난일 터였다.

아주 나를 말려죽이려는 건가.
아마 그럴 것 같았다.
돌로든 주먹으로든 때리고 싶었으면 애진작에 두들겨 팼겠지.

태연은 그 놈이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기를 빌었다.

태연의 소망과 반대로, 귀신 소동은 조용히 꾸준하게 계속되었다. 기숙사 창 밖에 널어둔 수건이 밤 사이 전부 날아가 높은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날도 있었다. 경비교사가 순찰을 밤마다 돌자 잠잠해졌다가, 순찰을 그만두자 다시 시작되었다. 스트레스로 자살한 학생이라느니, 터를 잘못 잡았다느니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소문이 사라진 건 뒷산에 사는 너구리가 발견되면서였다.
새벽에 견디다 못한 3학년이 창문을 벌컥 열고 ‘고3한테 무슨 짓이냐, 개새끼야! 귀신이고 뭐고 나 대학 가야 된다!’고 외쳤더니 산 중턱에서 붉은 빛들이 번뜩였다고 한다. 소리를 지른 학생이 재빨리 핸드폰 플래시를 터트려 파노라마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에는 너구리 떼가 기숙사 쪽을 쳐다보다가 후다닥 도망가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너구리가 호기심이 많아.”
아침 조회 시간에 ‘뒷산에 덫을 놓겠다’는 말이 나온 이후, 새벽은 조용해졌다.
그 대신 태연의 앞으로 직접, 귀신보다 더 싫은 그 놈이 찾아왔다.

“조태연 자는데.”
점심시간, 엎드려 비몽사몽하던 와중에, 태연은 정석이 누군가에게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다.
“에이, 잠깐만 깨울게. 나 얘랑 같은 중학교 나왔어.”
목소리를 들은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다음 순간 태연의 고개가 강제로 들어올려졌다. 손으로 들어올린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질끈 감았던 눈을 억지로 뜨자 죽어도 보기 싫던 얼굴이 그 앞에 있었다. 옆 학교 교복을 입고.
“조태연, 오랜만이다?”
입이 열리지 않았다.
이세진은 싱글싱글 웃으며 조태연의 어깨를 툭툭 쳤다.
“우리 학교 오늘 일찍 끝났거든. 너 이 학교 들어갔다며. 딴 애들 보는 김에 너 좀 보려고 왔지.”
“...”
태연이 이를 악물자 이세진이 씩 웃으며 말했다.
“와, 몰랐는데 우리 학교 옥상에서 너네 학교 다 보이더라고. 중간에 작은 산 하나만 넘으면 바로 와.”
이 새끼구나.
이 새끼 맞구나.
“친구들하곤 잘 지내?”
개새끼야. 너 때문에 잘 못 지내.
몸이 굳어서 아무 말도 못 하는 태연의 앞을 윤아의 손이 가로막았다.
“조태연 아픈 거 같은데, 그만 가지? 친구면 나중에 만나고. 우리 점심시간 다 끝나가.”
“그래? 아쉽다. 그럼 밖에서 한번 보자.”
이세진은 엎드리려는 태연의 팔 아래로 작게 접은 쪽지 한 장을 밀어넣었다.
“폰 번호 바꿨어. 이리로 연락해.”
할까 보냐. 
태연은 이세진이 나가자마자 그 종이를 집어던지려다 멈췄다.
저 새끼가 나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좀 알아야겠어.
“너 진짜 아파 보인다.”
윤아가 종이를 펴는 태연의 손이 벌벌 떨리는 것을 보고 중얼거렸다.
태연은 종이 안에 인쇄된 인터넷 신문 기사를 보고, 그대로 책상 위에 엎드렸다.

작년 5월 23일의 기사였다. 아주 작게 실린 지역 신문 단신. ‘상가 창틀에 물건 놓지 말아야’ 모 중학교 앞 상가에서 떨어진 화분이 학생을 덮치는 사고가 일어나 양궁부 2학년 학생 한 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기사.
학생의 이름은 이세정. 기사엔 실리지 않았지만 태연은 그 전과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세진과 세정, 태연까지 셋이 편의점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태연이 튀어나온 아스팔트에 걸려 몸이 비틀거렸다. 
“아, 좀 기다리라고!”
“싫거든?”
몸을 바로잡는 사이를 기다리지 않고 세진과 세정이 웃으며 앞서 가고 있었다. 그때 상가 건물 창틀에 위태롭게 얹혀 있던 머리 크기 화분이 떨어졌다.
그 찰나가 5분처럼 길었다.
상가 쪽으로 걷던 세정의 어깨로 떨어지던 화분. 화분이 세정의 어깨에 닿기 전, 심어져 있던 화초가 먼저 허공으로 뜯겨나가던 일. 중심을 바로잡지 못하던 태연이 한발 늦게 화분을 멈췄지만, 이미 화분이 세정의 어깨를 내려친 뒤였다. 화분은 세정의 가슴께에서 잠시 멈췄다가 땅으로 떨어졌다. 세정이 어깨를 감싸고 쓰러졌다. 그보다 느리게, 뽑혀나간 화초가 땅으로 떨어졌다.
세진의 능력은 알고 있었다. 세진이 먼저 태연에게 자신의 능력을 자랑했으니까.
태연의 능력도 세진이 알고 있었다. 조이스틱 꼼수를 처음 알아챈 게 세진이었으니까.
세진의 동생이었던, 국가대표 양궁 선수가 꿈이던 2학년 이세정만 다쳤다. 쇄골 골절. 체전 유망주는 물 건너갔고, 아예 양궁을 그만둬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냥 그것뿐이었는데.
세진이 세정을 많이 아끼긴 했다. 한 살 터울 남매가 그렇게 붙어 다니는 건 학교에서 유일했으니까. 세정의 대회 일정이며 사소한 간식까지 다 챙기는 세진은 학교에 소문난 ‘매니저’ 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겨우 1초만 빨랐으면 되는 게 아니었냐고. 세진은 태연에게 말했다.
세진의 능력은 끽해야 책 몇 권 움직이는 게 전부였지만, 태연은 중학생 사내놈이 무식하게 꺾어대는 조이스틱을 멈출 수 있을 만큼 강했으니까. 계단에서 뛰어내리는 세정과 세진을 번갈아 멈추는 놀이를 자주 했으니까.
겨우 1초라고 해도.
나보고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체전에 못 나가게 된 세정이 이제 대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펑펑 우는 앞에서, 세진은 태연을 노려보았고, 태연은 발끝만 보았다.
세진은 그 이후 노골적으로 태연을 괴롭혔다. 태연이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지옥 같았다. 세진은 태연보다 키도 크고 힘도 셌고, 친구도 많았다. 세진이 ‘마음에 안 든다’ ‘찐따 같다’는 이유를 대는 것만으로 태연을 괴롭히는 것이 정당화되었다. 태연의 친구들도 같이 괴롭힘에 시달려 하나 둘 태연에게서 멀어졌다.
모른 척 졸업해서 다른 학교로 가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태연은 속이 메슥거렸다.
내가 뭘 어떻게 하길 원해?

 


4. 너 대신 네 친구

태연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고작 산 하나 너머에 있는 세진이 언제 다시 또 자신을 찾아올지 몰라 속이 조여들었다. 덩달아 답답한 건 윤아와 정석이었다. 셋은 휴일이면 산책 겸 뒷산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뒷산의 낮은 지대는 학생들의 운동 구간이기도 했다.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학생들은 드물었다. 별로 볼거리도 없고, 안전 때문에 곳곳에 감시 카메라까지 달린 산. 데이트를 하려고 해도 밖으로 나가서 하지 축축하고 벌레 많은 뒷산이랴. 바위에 걸터앉은 정석이 태연에게 물었다.
“너 걔한테 돈 빌렸냐?”
무슨 소리야. 태연이 들고 온 음료수를 마시며 대꾸했다. 정석은 다시 물었다.
“지난번에 니 친군지 뭔지 왔다 갔잖아. 다른 학교 애. 그 다음부터 너 되게 똥 마려운 강아지 같다.”
“너는 꼭 말을 해도...”
태연이 투덜거리며 음료수 뚜껑을 닫았다. 사실이긴 했지만 비유가 그게 뭐냐.
“걔 너랑 친하냐?”
정석이 웃음기를 거두고 물었다. 태연은 꿀꺽, 침을 삼켰다.
“...왜.”
정석이 긴장 풀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별 건 아니고, 나 윤아랑 시내 나갔을 때 걔 봤거든. 너랑 친구 아니냐고 물어보던데.”
태연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보곤 여친이냐고 물어보던데.”
윤아가 옆으로 다가온 고양이의 턱을 긁어주며 웃었다. 2월에 윤아에게 새끼를 찾아달라던 고양이였다. 그 사이 또 새끼를 뱄는지 배가 잔뜩 부풀어 있었다. 태연의 표정을 본 윤아는 피식 웃었다.
“아니라고 했으니 걱정 마.”
무슨 속셈일까. 정말로.
윤아는 천가방을 집어들고 바위에서 일어났다.
“태연이 너 먼저 내려갈래? 우린 얘랑 얘기 좀 더 하고 갈게.”
얘라는 건 고양이겠지.
“뭔 얘기를 하려고.”
태연이 부루퉁하게 물었다.
“새끼 낳을 것 같잖아. 애 낳을 만한 자리도 봐 주고, 방석이랑 사료 같은 것 좀 깔아주고 가게.”
“산후조리원이냐.”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지.”
윤아가 천가방 안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애들 산책로에서 좀 벗어난 데서, 안전하게 몸 풀게 도와줄 거야. 약한 짐승 괴롭히는 것들은 어디나 있더라고.”
태연은 손을 흔들어 보이고 먼저 산을 내려왔다. 해가 떠 있는 동안이면 둘도 알아서 길을 찾아 내려오겠지. 윤아는 고양이 말을 알아듣고, 정석은 제 한 몸은 물론이고 윤아까지 지킬 만한 애니 자신은 없는 게 나으리라 생각했다.
자유관 경비 교사에게 꾸벅 인사를 하다가, 태연은 문득 생각했다.
내가 없는 게 낫다고?
이상하다. 이 감각, 예전에도 느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도 아주 어둡게.
“신경과민이야.”
휴일이니 잠이나 자야겠다. 태연은 잊어버리려 애썼다.

그 다음 한 주 내내 윤아는 틈만 나면 뒷산으로 올라갔다. 감시 카메라도 피하고, 애들도 피할 곳에 자리를 만들어 줬다며 뿌듯해 했다. 시내 마트에서 고양이 캔도 왕창 쓸어 왔다고 했다. 정석은 자기 용돈도 고양이 산후조리에 털렸다며 울상이었다.
“우리 함미가 고양이 먹이라고 용돈 줬냐고.”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지. 뒷산에 쥐가 들끓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냐. 태연은 매점 빵을 건네주며 위로했다. 그 주 금요일, 윤아는 퀭해진 눈으로 히죽히죽 웃으며 태연에게 브이 자를 그려 보였다.
“새끼 낳았다.”
“어, 봤어? 사진은?”
태연이 사진이라도 보여달라고 하자 윤아는 코웃음을 쳤다.
“짐승이 새끼 낳으면 얼마나 예민한데. 나도 못 봤어. 말만 해 주고 후다닥 갈 길 가더라.”
그렇단 말이지. 태연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행이네.
잘 됐어.
어미고양이가 새끼를 직접 보여주진 않아도 윤아가 가져다주는 음식은 먹으러 오는지, 윤아는 사나흘에 한 번씩 새끼고양이 얘기를 전해 주었다. 애들도 한 달쯤 지나면 돌아다닐 수 있을 거야. 그때 가서 보면 되지. 용돈만 뜯기고 새끼고양이 꼬리도 못 봤다며 시무룩해하는 정석의 등을 툭툭 두들기며 윤아는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야, 저출산 시대에 큰 일 했다 쳐라.”
“인간이냐, 고양이지? 너 고양이들 젖 떼면 중성화 시킬 거라며.”
“개체수 조절을 해야 되잖아!”
잘도 싸우네.
이세진은 포기한 걸까. 태연은 더위가 강해지는 운동장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그러면 좋겠는데.
5. 폭력은 가장 약한 자에게

오산이었다.
몆 주 후, 태연은 눈이 새빨개진 채 울고 있는 윤아를 보고 탄식했다. 밤새 울었는지 정석의 눈 밑도 어두침침했다. 게다가 하복 소매 아래로 드러난 윤아 팔의 상처. 태연은 죄책감에 어떻게 된 거냐 묻지도 못하고 우물거렸다. 이건 전부 내 탓이야. 윤아는 울 만큼 울었는지 코밑을 훔쳤다.
“고양이 집, 부서졌어.”
윤아가 이를 으드득 갈았다.
“아직 젖도 안 뗀 애들이 있는 집에 돌을 던져? 어떤 미친 놈인지 잡히면 내 손에 죽는다.”
“팔은 왜 그래.”
태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윤아는 딱지가 앉은 팔을 흘끗 쳐다보았다.
“고양이 집 보러 갔는데, 어디서 돌이 날아오더라고. 고양이는 다 피한 것 같은데.”
당분간은 겁을 먹었으니 나타나지 않을 거라며 윤아는 툴툴거렸다.
“인간이 왜 그러냐. 왜 고양이를 괴롭혀. 걔네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아냐.
고양이가 아니라.
태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빠져도 된다’는 생각과 함께 올라오던 스멀스멀한 어둠이 무엇인지 알아버렸다. 중학교 3학년, 세진은 태연뿐만 아니라 태연과 함께 다니던 아이들까지 괴롭혔다. 태연의 곁에 아무도 남지 않도록. 폭력과 더불어 외로움까지 얹어주려고. 아이들의 수군거림까지 듣게 하려고. 그걸 더 일찍 기억했어야 했다. 세진이 자신만 괴롭히지 않으리라는 걸. 태연이 아픈 것 같다며 앞을 막아선 윤아. 시내에서 친구냐고 물어봤다고 했지. 그건 인사가 아니라 타겟을 확인한 거였다.
왜 대체 이렇게까지.
태연은 주춤주춤 말을 꺼냈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윤아 너랑, 고양이들까지 괴롭힘을 당한 거야.”
“무슨 소리야?”
아. 결국 이렇게 되나. 윤아의 날선 목소리에 태연은 크게 숨을 들이키고 고백했다.
“이세진도 초능력자야.”

내가 걔한테 미움을 사서 그래. 걔 동생이 나 때문에 다쳤거든. 산 뒤가 걔네 학교야. 산 위에 서면 네가 어디 있는지 보였을 거야. 네가 고양이를 찾아가는 것도. 이세진도 가벼운 돌멩이 정도는 날릴 수 있어. 안 보이면 망원경이라도 썼겠지. 미리 말을 안 해서 미안해. 네가 다칠 줄은...

“정말로 몰랐어.”
나도 잊고 있었어. 너무 힘든 일이라.
텅 비어버린 것 같은 마음으로 태연은 눈을 감았다.
“생각보다 완전 개찌질이네!”
정석의 호통이 텅 빈 교실에 울렸다. 태연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아. 나 개찌질이야.”
“아, 너 말고! 그 새끼 이름 뭐야?”
“이세진?”
얼떨떨하게 태연이 대답하자 윤아가 창문을 확 열어젖히고 소리쳤다.
“이세진 이 개찌질아! 상한 양파 훔쳐먹고 식중독으로 앓다 죽을 새끼!”
슈퍼 딸이라더니 욕 한번 실생활 밀착형으로 하네. 정석이 앉아 있는 태연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그 새끼 뭐야? 화분이 떨어진 게 화분을 거기 놓은 사람 탓이지, 네 탓이냐? 어? 네가 없었으면 지구 중력을 저주했을 거야? 그건 화풀이지! 1년도 넘은 일을 찌질하게 끌고 와서 윤아까지 괴롭히는 건 찌질하단 말로도 모자라고!”
“뭔 시들어빠진 오이 같은 새끼가!”
정석과 윤아의 욕 콤비네이션에 태연은 오히려 얼떨떨해졌다. 속사포처럼 생활 밀착형 욕설을 쏟아부은 둘이 씩씩대다가 태연을 향했다.
“조태연, 하나만 확인하자.”
머리 하나는 더 작은 윤아가 태연의 눈을 올려다보았다.
“이세진 말고 걔 동생이, 이세정이 너 원망했냐? 네가 잘못해서 자기가 다쳤대?”
“그건, 그건 아니지만.”

이세정은 단 한마디도 태연을 원망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태연과 세진의 초능력을 알면서도, 자기 꿈이 날아간 걸 슬퍼하고 우울해해하면서도 태연의 탓은 한 적이 없었다.

“당연하지! 네 잘못이 아니니까!”
윤아가 주먹으로 태연의 명치를 훅, 올려쳤다.
정석만큼은 아니지만 단단한 펀치였다.
“투수가 사람을 패면 쓰냐.”
정석이 워워 소리를 내며 윤아를 뒤로 끌어당겼다.
윤아가 분을 못 이겨 바닥을 발로 굴렀다.
“네가 잘못했으면 이세정이 말을 했겠지! 이세진은, 그냥 널 괴롭힌 거잖아! 자기 힘이 약해서 동생을 못 도와준 게 아니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는 거잖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한 대씩 맞은 정수리와 명치 말고도 목구멍이 울컥 뜨거워졌다.
“진짜 개 찐따새끼. 야, 걔네 학교에 꼰지를까? 이거 학교폭력 아니냐?”
“참아라. 윤아야. 그러다가 태연이부터 초능력 소년으로 ‘세상에 이런일이’ 출연한다.”
“난 평화롭게 살고 싶어...”
농담을 섞은 태연의 말에 셋이 피식 웃었다.

태연은 자유관 707호 침대에서 뒤척였다. 세진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막상 세정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 번도 고민해본 적 없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당연히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다. 원망스러울 거라고. 그 일 이후로 연락 한 번 해 본 적이 없었다. 같은 학교니까 그래도 마주쳤을 텐데. 마주쳤을 때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자신이 먼저 도망친 것 같았다. 정말로 정말로 세정이 자신을 원망하는데, 말할 수조차 없어서, 세진에게 자신을 괴롭혀달라 부탁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고 해도.
윤아와 고양이들이 돌을 맞고 보금자리를 빼앗길 이유는 없었다.
정석이 한 말이 떠올랐다.
“넌 어떻게 할래?”
복수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복수하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다. 윤아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나한테 돌을 던진 게 걔가 맞는지 정확히 모르잖아. 확인을 해야 따지지. 모든 건 심증이었다. 아귀가 잘 들어맞지만 진실이라 단언할 수도 없는 심증. 그렇다면 이 모든 걸 정확하게 아는 건 누구일까. 감시카메라에도 닿지 않는 곳에 보금자리를 꾸린 고양이에게 물어봐야 할까.
고양이에게 물어본다고?
“고양이!”
태연이 벌떡 일어났다. 룸메이트가 미쳤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있다. 증언할 수 있는 존재가.
그 존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도 있다.
태연은 오랜만에 푹 잠들었다.

 


6. 바늘 도둑은 처벌받지 않으니까

태연이 ‘증언을 들을 수 있다’며 둘에게 말을 꺼냈을 때, 둘의 반응은 의외로 미적지근했다. 정석은 ‘멀리서 돌을 던졌으면 고양이도 못 봤을 거다’ 라고 했고 윤아는 ‘고양이는 사람의 인상착의를 서술할 수 없다’고 했다. 게다가 집을 잃은 고양이는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사료를 뿌려주면 다음날 사라져 있으니 먹었구나 할 뿐 윤아에게도 다가오지 않는다고 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타격을 받은 고양이를 찾아내서 증언을 해 달라고 하는 건 영 못 할 짓이었다. 숨은 고양이를 인간이 어떻게 찾나. 태연은 모처럼 달콤하게 잔 밤이 다시 멀어지는 것 같았다.
“인상착의를... 몰라?”
“고양이가 무슨 카메라야? 키 백칠십에 무슨 교복 무슨 명찰 단 사람이 돌 던졌어, 이렇게 말하는 줄 알아?”
윤아가 책상에 올라앉아 발을 까딱거렸다.
“난 고양이 통신기가 아니야. 고양이가 하는 말을 알아만 듣는 거고, 고양이가 사람이 쓰는 말을 전부 알지도 못해. 만약에 고양이가 그렇게 말을 할 줄 알았으면 내가-”
윤아가 입을 다물었다.
둘이 침묵을 지키자 윤아가 조그맣게 말을 이었다.
“동네 고양이 괴롭히는 놈들을... 다 내 손으로 패버렸겠지.”
“학교나 경찰서에 신고하는 게 아니라?”
정석이 묻자 윤아가 정석의 옆구리에 펀치를 날렸다. 기습 공격을 당한 정석이 허우적거리다 요란하게 넘어졌다. 윤아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고양이 괴롭힌 걸 사진으로 찍어서 학교에 가져가도 눈도 깜빡 안 하더라!”
그 정도냐. 정석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윤아는 분통이 터진다며 가슴을 쾅쾅 쳤다.
“슈퍼에서 과자 훔치는 거? 고양이 괴롭히는 거? 동네 개 발로 차는 거? 다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 않냐, 애들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 좋게 좋게 넘어가래!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며, 바늘 도둑은 도둑도 아닌 줄 알아. 진짜!”
“심한데. 하긴 나도 동네 나무 뛰어오르다 들켰을 때 함미가 안 혼냈으면 지금쯤 인신매매단에 팔려갔을 거다.”
“넌 할머니 얘기 할 때만 혀가 짧아지더라. 함미가 뭐야.”
“버릇이라 그래. 어머니 아버지 함미야.”
정석과 윤아가 주거니받거니 투닥거리는 동안 태연은 고민했다. 정말 방법이 없나? 고양이가 도와줘, 배고파, 아파 정도만 말한다니. 아니, 애초에 고양이가 하는 말을 윤아가 알아듣는다는 걸 누가 믿겠어. 알리고 싶은 사실도 아니고.
그러다가 태연은 2월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윤아야, 이번에 다친 어미고양이가 2월에 너보고 도와달라고 한 그 고양이지?”
정석과 윤아가 태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응. 그러니까, 보자... 2월에 정석이가 나무에 올라간 그 때? 그 새끼고양이가... 촌수가... 이번에 집 박살난 애기들한테 형제지.”
“걔가 혹시 알고 있지 않을까?”
“고양이가 인상착의를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니까?”
“물어나 보자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는데 앉아 있으면 답답하잖아. 태연의 설득에 둘이 넘어가 셋이 함께 뒷산을 헤매게 되었다.
독립한 고양이는 어미와 다른 영역에서 지낸다. 그건 셋이 찾아야 할 고양이가 뒷산에 있는지 없는지도 불확실하단 이야기였다. 찾는다고 방송을 할 수도 없고, 이걸 어쩌나. 뒷산을 휘젓고 다니다 지친 셋이 헉헉거리며 주저앉았다. 여름 초입에 이게 무슨 꼴이야. 정석이 땀 흐르는 이마를 손등으로 닦으며 궁시렁거렸다.
“고양이 말을 배우든 해야지 진짜.”
“고양이한테 야옹, 해 봐라. 알아듣나.”
“어릴 때 많이 해 봤지. 저게 뭐라는 거야 하는 표정으로 보고 가던데.”
정석이 제법 그럴싸하게 고양이 흉내를 냈다. 와아웅, 미야아아. 고양이 대신 산비둘기가 푸드덕 날아올랐다.
“비슷하긴 한 거 같은데...”
제일 체력부족인 태연은 거의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아, 죽을 거 같네. 진짜 어디서 고양이 하나 데려올까. 비척비척 일어서며 ‘이게 대체 뭘 하는 건가’ 라는 상념에 빠지기 직전, 정석의 목소리가 태연의 머리를 때렸다.
“유튜브 보면 사람 말 하는 고양이도 많잖아.”
태연이 고양이를 떠올렸을 때처럼 바닥에서 튕기듯 일어났다.
“그거야! 고양이 유튜브!”

“...너 지금 날 아주 학대하기로 작정을 했나 본데.”
태연의 아이디어를 들은 윤아는 이마를 짚었다. 말인즉슨, 지금 가장 필요한 고양이 언어는 ‘이리와’와 ‘괴롭힌 사람 봤어?’ 인데 윤아는 알아듣기는 해도 말하기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대한민국 영어교육의 현주소 같군. 그래서 태연이 주장하는 방법은 유튜브에서 고양이 소리가 나오는 영상을 찾은 다음에, ‘이리와’를 말하는 고양이 영상을 틀어보자는 거였다. 윤아는 기겁했다. 유튜브에 고양이 영상이 수억 개는 될 테고, 그걸 다 들어보고 ‘이리와’를 구별하라고? 너 무슨 타자 칠 줄 아니까 소설 쓰라는 얘기를 하냐? 태연은 애걸복걸 빌다시피 했다. 검색어만 잘 찾으면 오늘 하루 내로 찾을 수 있을 거다. 후보를 최대한 좁힐 테니 한번만 해 보자. 이 이상 뒷산을 헤매면 내가 기절할 거 같다. 마지막 부분에서 정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만 찾으면 내가 들고 뛰어다니면 되잖아. 체력이 내가 제일 좋으니까.”
“몸만 쓰시겠다 이거죠.”
“너넨 몸도 못 쓰잖아. 첫날에 내가 너네 둘을 들고 뛰었어.”
열렬한 설득 끝에 윤아가 두 손을 들었다. 조건이 붙었다. 절대 스무 개 이상의 영상을 보지 않겠다는 거였다. 후보를 추리는 건 태연이 맡기로 했다. 집에서 고양이를 길렀으면 좀 도움이 되었을까. 태연은 밤 시간을 이용해 이어폰을 끄고 고양이 영상의 바다를 헤엄쳐 다녔다. 좀 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주먹만한 산소통 하나 지고 마리아나 해구를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몇백 개의 동영상을 보고 그 중 후보를 추리다가 태연은 쩝, 입맛을 다셨다.
“그 고양이를 만난다 치고, 설득할 때도 고양이 음성은 필요할 것 같은데.”
대사 두 개만 더 골라 달라고 하면 윤아가 또 때리려나.
“까짓거 몸으로 때우자.”
빌라면 빌고 밥을 사라면 사고 노예가 되라면 되겠어요.
태연은 밤을 새다시피 해 영상 사십 개를 더 추렸다.

윤아는 태연이 저장해 온 유튜브 동영상 목록이 스무 개가 아니라 예순 개인 걸 보자마자, 태연의 휴대폰을 바닥에 패대기치려고 했다. 
“죽을래? 응? 너부터 내 손에 맞아 볼래?”
“뭐든지 다 할게! 진짜로! 방학 때까지!”
태연이 방어자세를 취하며 말하자 윤아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너 지금 각서 써라.”
태연이 노트에다 ‘나 조태연은 방학 때까지 강윤아가 시키는 대로 뭐든 하겠음’ 이라고 휘갈겨 적는 동안 정석이 낄낄거렸다. 
“우리 함미 생각나네. 각서가 최고지.”
“시끄러워. 넌 증인이야.”
“네에. 네에.”
정석은 웃음기를 입에 물고 태연을 보았다.
“적극적이네. 만약에 우리가 아무것도 못 해도 넌 윤아한테 잡히는 건데?”“뭐라도 해내얍죠.”
마음만큼은 이미 충실한 종이 된 태연이 대답했다.
“처음엔 그냥 다 자기 탓이라고 하더니.”
윤아가 한숨과 웃음을 섞어 말하자 태연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그렇게 됐네.”
억울하다는 걸, 너네 덕분에 알았어.
난 그 동안 당연히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당한 게 화풀이였다고 너네가 말해서.
그래서 화가 났어.
뭐라도 하고 싶었어. 


 
7. 당신의 개고생에 건배

‘이리와’, ‘도와줘’, ‘따라해’ 세 마디 고양이 말을 편집한 동영상이 만들어졌다. 주변 소음도 지워서, 음성만 추출한, 아주 깔끔한 동영상. 편집은 태연이 했다. 이 무리에서 정석이는 몸을 쓰고, 윤아는 머리와 주먹을 쓰고, 나는 고생 바가지를 쓰는구나. 태연은 자기가 번 매라고 생각하며 동영상 파일을 정석에게 건넸다.
“이걸 가지고 뒷산을 돌아다니면 돼.”
난 이제 방으로 가서 좀 자게 해 줘. 쓰러지기 직전의 태연이 중얼거렸다. 윤아와 정석이 동영상을 재생해 보더니 엄지를 내밀었다. 
“장하다 조태연.”
너무 졸려서 눈앞이 뒤집힐 지경이야. 태연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
“응. 어어. 응.”
그래도 무슨 말을 하는지는 끝까지 들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은 탓에 정신을 차려 보자, 태연은 정석의 등 위에 짐짝처럼 얹혀 산을 오르고 있었다.
“야아... 사람이 인정머리가 있지...”
항의할 기운조차 남지 않은 태연이었다. 정석은 콧노래를 부르며 산길을 올랐다. 윤아가 까치발을 세워 태연의 눈 앞에 얼굴을 들이대고 웃었다.
“업고 가면 되지? 라고 했잖아.”
“너네 가끔 싫어.”
“효과를 보러 가는 거야. 참아라.”
정석의 등 승차감이 생각보다 좋았기 때문에 태연은 참기로 했다. 농사일 했다더니 등이 참 탄탄하네. 산 중턱, CCTV가 없는 곳에 이르자 정석은 허리에 두르고 있던 체육복 윗도리를 땅에 깔고 태연을 내려놓았다. 아주 공주님 취급이구나. 아이고, 감사해라.
“동영상 틀게.”
윤아는 주머니에서 블루투스 스피커를 꺼냈다. 와우, 사람 목소리 동영상에서 안 잘라냈으면 큰일 났겠는데. 기숙사 뒷산에 외국인 목소리가 블루투스 스피커로 울려퍼지면 좀 그렇지. 윤아가 휴대폰을 들고, 정석이 스피커를 들고 훌쩍 높은 나뭇가지 위로 뛰어올랐다.
‘이리와’를 편집한 동영상 사운드가 뒷산에 퍼졌다.

뒷산에 고양이가 최소 여섯 마리가 산다는 사실을 알았다.

“저 삼색이가 그때 정석이한테 달라붙은 애, 이 줄무늬가 얼마 전에 새끼 낳은 애. 고등어는 삼색이 형제고, 턱시도는... 넌 뭐냐? 이쪽 흰발이도 삼색이 형제고, 코에 점 있는 애는 새끼 낳은 애 형제래.”
야옹야옹야옹야옹. 여섯 마리의 범야옹 대잔치를 들은 윤아가 바닥에 가계도를 그리며 설명했다. 대충 말하자면 엄마 이모 형제 이웃이 다 모인 거구나. 
“이 산에 성묘만 여섯이라니. 싹 중성화 해야겠는데.”
이맛살을 찌푸리는 윤아를 보고 나무에서 내려온 정석이 한탄했다.
“쟤네가 사람 말을 몰라서 다행이다.”
사람 말 알아듣는 초능력 고양이 같은 건 없겠지. 당사자들 모아 놓고 니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수술을 해버리겠다니, 슬픈 현실이야. 흘끗 태연을 보니 무릎을 껴안고 졸고 있었다. 엄청 피곤했던 모양이네. 정석은 꽤나 가벼웠던 태연의 무게를 떠올리며 ‘안 깨면 들고 내려가자’는 생각을 했다.
“그 다음. ‘도와줘’ 틀게.”
마침 당사자가 앞에 있으니, 윤아는 ‘도와줘’를 한 번 틀고 자신을, 또 한 번 틀고는 줄무늬 어미고양이를 가리켰다. 나랑 얘 좀 도와줘. 그런 뜻이었다. 줄무늬가 서글프게 울었다. 고양이들 사이에서 또 웅냥냥냥 범야옹 대잔치가 열렸다. 정석은 윤아를 돌아보았다. 윤아는 가만히 듣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기, 다쳤어, 도와줘, 알았어.”
줄무늬가 윤아의 다리에 몸을 문지르고 울었다. 고양이들끼리 또 몇 마디가 오가더니 삼색이가 앞으로 나와서 줄무늬 고양이와 야옹거렸다.
“못 알아들으니까 답답하다.”
태연이 깰까 곁눈질로 흘끔거리며 정석이 중얼거렸다. 
“알아들어도 답답해. 뉘앙스만 들리거든.”
다리에 비비적대며 대화를 나누는 고양이들을 방해할까 봐 윤아가 작게 대답했다.
아, 다리 간지러. 윤아가 소리 죽여 속삭이다 입을 다물었다.
줄무늬가 윤아를 올려다보며 길게 울었다.
“이 상한 갈치 같은 놈이.”
윤아가 험악하게 구겨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정석은 답답했다. 아, 이래서 외국어를 하든 외계어를 하든 해야지.

서로 합의를 본 건지 줄무늬와 삼색이만 남고 다른 고양이들은 흩어졌다. 태연은 덥지도 않은지 계속 졸고 있었다. 윤아가 표정을 굳히고 정석에게 설명했다.
“돌을 던진 게 누군지 삼색이도 봤대. 봄에도 가끔 와서 돌 던지던 사람이래. 그 갈치 같은 새끼가 평소에도 고양이들 괴롭혔나 봐.”
“허어.”
정석도 탄식했다. 함미가 약한 것들 괴롭히면 못 쓴다 했는데. 
“쫓아가서, 공격했어. 다쳤어?”
삼색이는 둘의 생각보다도 훨씬 용감하고 날쌘 고양이었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 놈이 겁도 양심도 없었거나. 고양이들에게 돌을 던질 때 삼색이가 그 놈을 공격했고, 그 놈이 다쳤다고, 윤아가 통역해 주었다. 
“그럼 보면 알 수 있을까?”
“아마도. 고양이는 해코지한 사람은 잘 기억해.”
정석은 웅크리고 앉아 동영상을 틀었다.
도와줘.
삼색이가 갸웃하자 정석은 자신을 가리키고 윤아를, 졸고 있는 태연을 가리키며 동영상을 반복 재생했다.
얘들하고 날 도와줘.
도와줘.
우리도 돕고 싶은 사람이 있어.
우리도 널 도울게.
삼색이는 한참 동안 소리와 손짓을 따라 눈을 굴리더니 길게 울었다. 
“알았대.”
삼색이가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윤아와 정석은 뒤를 따랐다. 삼색이는 발톱 자국이 선명한 나무 아래로 가서 짧게 울었다. 먀.
“여기, 라는데?”
“아. 이건 내가 알겠다.”
정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내 놀이터니까 나랑 놀고 싶으면 여기로 와. 라는 거네. 우리 동네 고양이들하고 똑같다.”
“그런가.”
정석은 휴대폰으로 나무, 주변, GPS 위치를 촬영해서 기록했다. 앞으로 만나러 오는 건 아마 내가 되겠지. 몸 쓰는 건 나라고 했으니까.
윤아랑 태연이가 좀 쉴 수 있게 해야 할 텐데.
“이제 얘들한테 어떻게 도움을 받을지 고민을... 해야 된다 이거지...”
함미, 나 좀 도와주소.
정석은 정말로 함미에게 조언을 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우리, 태연이 놓고 오지 않았나?”
“아, 맞다!”

 

 

8. 인간이나 짐승이나 다를 것 없느니라

정석은 그 주 주말 집으로 내려갔다. 할머니는 뭐 하러 왔냐면서도 감자, 옥수수, 메밀전병 등으로 정석에게 앉으면 먹이고 앉으면 먹이는 애정을 베풀었다. 할머니 앞에서 배고프다는 소리 하면 큰일나지. 정석은 한 손에 감자를 들고 한 손에는 옥수수를 들고 우물거리며 어쩐지 쉬는 시간마다 매점을 가고 싶더라니 그건 다 학교 급식이 양이 적은 탓이라고 생각했다.
"함미,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정석이 입 안에 든 감자를 삼키며 말했다. 할머니는 '고등학교까지 간 놈이 함미한테 물을 게 있냐' 면서도 정석의 말을 들었다.
"울 학교에 고양이 말을 알아듣는 애가 있다."
"그러냐."
할머니는 삶은 감자를 숟가락으로 으깨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좀 진지하게 들으면 안 되나?"
"구 척을 뛰는 장군 손녀를 가졌는데 괭이 말 알아듣는 애가 뭐 어때서."
"그러네."
정석은 감자 하나를 더 집었다.
"근데, 우리 학교 뒷산에 고양이가 있는데, 누가 돌을 던졌다더라."
"웜메, 썩을 것."
할머니가 감자를 으깨는 속도가 조금 빨라진 듯 했다.
"돌 던진 놈을 고양이가 알아볼 수 있을까?"
정석의 질문에 할머니는 코웃음을 쳤다.
"니는 짐승이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 모른다."

거기부터 할머니가 어릴 때 키우던 백구며, 동네 아이들에게 시달림을 당해서 아이만 봐도 숨는 이웃집 또리, 은혜 갚은 너구리, 밭 철조망에 몇 번 찔리면 근처에도 안 오는 산짐승들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졌다. 요약을 하자면, 동물들의 기억력은 뛰어나가는 거였다. 특히 생존과 관계된 일에 관해서는.

"걔네는 오로지 사는 게 일이다. 사는 데 필요한 기억이라면 또렷하지."
"그렇구나."
"인간이 오히려 머리가 나빠. 한 잘못을 또 하고 또 하거든."
그 말을 하면서 할머니는 주걱으로 정석의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왜!"
"벌레 붙었다."
그 주걱으로 감자를 계속 으깨는 걸 보면 핑계 같은데. 정석은 감자를 내려놓고 탁상에 턱을 얹었다.
"그 나쁜 놈이 고양이도 해치고, 새끼 낳은 고양이 집도 다 부숴놨는데, 뭐 어떻게 벌을 받게 할 수가 없다. 학교는 그런 거 신경도 안 쓰니까."
그렇지, 라며 할머니는 혀를 찼다. 서리도 도둑질이고 동물 해코지도 생명을 경시하는 건데 애들이 못 하면 학교에서라도 단디 가르쳐야지. 그걸 다들 안 해. 할머니는 다 으깬 감자를 한켠으로 밀어놓고 삶은 계란 바구니를 앞으로 끌어놓았다.
"어떻게 하지."
달걀 자르는 도구로 계란을 꾹꾹 눌러 자르던 할머니가 정석을 보았다.
"정석아. 단단하니 살라고 한 건, 마음도 단단히 살라는 말이다. 너는 지금 고양이를 해쳤다고 네가 힘을 쓸 생각이냐?"
정석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모르겠다. 고양이는... 너무 작고, 사람이 발로 차면 다치잖아. 그런데 내가 고양이 대신 사람을 때리고 싶은 건 아니다. 어쩌면 좋을까."
할머니는 손을 뻗어 정석의 볼에 얹었다.
"그럼 고양이가 알아서 하게 해야지."
"고양이가 그렇게 하게, 돕고 싶은 거다."
할머니는 손으로 정석의 볼을 톡톡 쳤다.
"그럼 고양이를 그 놈 앞으로 데려가라. 그 다음은 고양이가 알아서 할 거다. 고양이가 화를 내든 아무 것도 안 하든, 그건 고양이의 몫이다."
정석은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고양이가 무서워서 줄행랑이라도 치면 어쩌나."
"그건 그 고양이의 몫이지."
정석의 볼을 한 번 꼬집은 할머니가 손을 거둬들였다.
"돕는다는 건 상대가 원하는 판단을 하게 하는 거다. 고양이가 내뺀다고 해도 너는 받아들여야지."
고양이 뜻대로.
"헌데 집고양이가 아니라 들고양이냐. 그러면 사람 앞까지 가기도 힘들겠다. 산 넘고 물 건너 거기 김서방 계쇼, 하는 게 고양이한텐 천릿길이야."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찼다.
"정석이 니가 도울 건 그거다. 고양이가 안전하게 그 썩을 놈 앞까지 가게 해라."
"어떻게?"
"그건 니가 알아서 해야지. 함미도 고양이 말을 모르고, 너도 모르니."

정석이 감자를 다 먹고 배불러 드러누웠다. 배 터지겠다. 할머니가 정석에게 베개를 발로 밀어주며 말했다.

"말로 못 하면 계속 반복하고 반복해라. 사람도 처음 뭘 배울 땐 다 몸을 쓴다. 너는 몸 쓰다가 구척을 뛰었는데, 고양이 하나 설득을 못 시킬까."

그건 맞는 말이다.

하룻밤을 자고 기숙사로 돌아와보니 윤아도 태연도 집에 가 있었다. 많이 지친 모양이었다. 마침 월요일도 공휴일이니 이틀쯤 푹 쉬는 것도 좋겠지. 정석은 윤아가 챙겨 놓은 간식 몇 개를 들고 삼색이가 있던 장소로 갔다.
동영상을 틀어야 하나, 바위를 타 넘으며 고민하던 정석은 나무 밑을 보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네 마리의 고양이가 정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삼색이, 흰발, 코점이, 고등어. 이야. 외국인들 사이에 둘러싸인 이 상황 어찌합니까. 정석은 간식을 좀 더 많이 들고 올 걸 그랬다고 생각하며 나무 아래 주저앉았다.
진심은 통하고, 훈련은 반복이다.
어떻게든 될 것이다.

원래 정석은 나름대로의 작전을 세웠다. 원래는 한 마리만 이세진 앞에 데려갈 생각이었고, 한 마리와 친해져서 자신을 따라와도 된다고 믿게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네 마리가 야옹 야옹 난리를 피우는 걸 보아하니 넷 모두 같이 가자는 소리인 것 같았다. 윤아를 따라다니며 늘어난 고양이 언어 이해도로는 그랬다. 쉴새 없이 자신에게 번갈아 부비적거리고, 부비적거리는 녀석을 밀어내고 앞에서 야옹거리는 건 아무래도 그런 거겠지.
이렇게 된 거, 좀 요란하게 해 볼까.
정석은 주머니에 한 마리쯤 숨기는 작전을 포기하고 자신의 능력과 결합한 작전을 새롭게 세웠다.
“너희들, 내 팔에 한번 올라타 볼래?”

말로 설득해서 한 번에 알아들으면 얼마나 좋으랴. 정석의 말을 처음부터 고양이들이 이해하지는 않았다. 정석은 고향에서 개를 훈련시키던 걸 떠올렸다. 때리는 건 빼고, 잘하면 보상. 보상과 반복. 정석은 앉은 채 한 팔을 쭉 펴고 팔에 간식 하나를 놓았다. 그리고 삼색이의 앞발을 잡았다.
“아오!”
할퀴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인간이 덥석 자기 신체 일부를 잡는데 화나지 않을 동물은 별로 없겠지. 정석은 삼색이에게 사과했다. 이번에는 팔 앞에서 손가락을 이리저리 놀리다가 팔 위로 폴짝 올라앉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간식을 먹는 시늉. 열 번쯤 하니 고등어가 주춤주춤 나와서 정석의 쭉 편 팔 위로 뛰어올라 간식을 먹었다. 허, 중심 되게 잘 잡네. 정석은 고등어에게 간식 한 조각을 더 주었다.
다음은 삼색이, 그 다음은 흰발, 마지막으로 코점이. 차례차례 올라오기까지는 한 시간 반 만에 성공했다. 팔이 아프기도 하고 고양이들의 발톱에 본의 아닌 공격도 당했지만 이게 어디냐. 다음으로 정석은 팔에 간식을 하나, 또 하나 놓았다. 두 마리가 동시에 올라와 주렴. 나 팔 떨어진다. 정석의 간절한 바람이 먹힌 것 같았다. 먼저 고등어가 뛰어올라 먹는 걸 보더니 코점이가 같이 뛰어올랐다. 
함미, 날 키울 때 엄청 힘들었겠다.
새삼스레 효도해야겠다고 정석은 굳게 다짐했다.
그 다음으로는 팔에 고양이를 올린 채 살짝 일어났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쯔쯔쯔쯔쯔. 안심하라는 소리를 계속 중얼거리며 어정쩡하게 숙인 자세를 유지하자 두 마리는 발톱을 세게 움직이면서도 가만히 있었다. 
다섯 시간 경과 후, 정석은 양 팔에 네 마리의 고양이를 올리고 낮은 비행기 자세로 걸어다닐 수 있게 되었다.
고양이 밥이 아니라 내 밥을 챙겨왔어야 하는데. 가져온 간식을 다 탕진하자 고양이들도 집중력이 떨어졌는지 나무 밑에서 굴러다니고 싸우고 난리였다. 정석은 ‘밥 먹고 올게’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고 허리야, 기지개를 쭉 펴는데 고양이 네 마리가 두 팔에 올라탔다.
“먀아아아옹!”
내려가.
나 기숙사 갈 거야.
정석은 자신의 팔이 철봉으로 인식된 것 같아 슬쩍 한숨을 쉬었다.
최종 목표를 이틀 내로 완수할 수 있을까.

월요일 저녁, 기숙사로 돌아온 윤아는 목 어깨 팔이 모두 고양이 발톱자국 투성이인 정석을 보고 기겁해서 약을 가지고 덤벼들었다.
“대체 뭘 한 거야! 네가 무슨 캣닢이야?”
“아. 약 바르지 마. 아직 바르지 마.”
정석이 침대 위로 도망가며 몸을 웅크렸다.
“이번 주 토요일이면 최종병기가 탄생할 것 같아.”
“뭐든 좋으니까, 너 교실 갈 때 할 변명이나 생각해.” 
아차.
대체 뭐라고 변명하지.
여름 감기라며 정석은 가디건을 껴 입어 팔을 가렸다. 억지로 기침도 했다. 정석은 추가로 등에 땀띠를 얻었다.

토요일 아침, 의기양양한 정석과 함께 산으로 올라간 윤아와 태연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정석은 두 팔에 고양이 네 마리를 얹고 점프를 하고 있었다.
“내가 말렸어야 하는데.”
“우리 체력으론 말리기 힘들지.”
윤아가 먼저 영혼 없이 반성했고, 태연이 고개를 저었다.
“왜! 멋지지 않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 닮지 않았냐?”
저 신성모독을 어디서부터 고쳐줘야 정신을 차릴까. 나중에 정석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예수님이 승천하는 장면을 말한 거라고 해명했다. 등짝을 각각 세 대씩 총 여섯 대 얻어맞은 후의 일이었다.
정말로 그렇게 보이긴 했다.

 


9. 복수는 캣셀프

전송 버튼만 누르면 되는데. 태연은 계속 망설였다. 손끝이 떨렸다. 고양이들을 세진과 만나게 하려면 태연이 세진과 만나야 했다. 만나서 얘기 좀 하자. 그 문장을 휴대폰에 작성한 뒤 태연은 계속 갈등했다. 보내도 될까. 보내야 할까. 정석과 윤아는 아무 말 없이 태연을 보고 있었다. 차라리 누가 이걸 가져가서 전송 버튼을 눌러주면 좋겠는데. 하지만 둘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만은 아니었다. 스턴트 배우와 대본을 만드는 것은 둘의 몫이었지만 큐 사인을 날리는 것은 태연의 몫이었다. 태연은 그간 자신이 얼마나 세진을 두려워하고 있었는지를 새삼 느꼈다.
눈을 꾹 감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셋은 모여서 기다렸다. 답장이 오고, 만날 장소를 정하기까지. 휴일의 오후 뒷산 꼭대기. 세진의 학교와 태연의 학교가 모두 보이는 곳. 세진은 그러자고 했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두려워하기엔 너무 많은 일을 저질러 버린 후였다.
지금 포기하면 고양이들과 보낸 시간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게 너무나 아까웠다. 

휴일, 해가 뉘엿뉘엿한 오후, 세진은 체육복을 입고 산 위에 섰다. 돌 던지면 맞을 거리에 태연과 가방을 멘 작은 여자애 서 있었다. 세진은 같잖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자신은 철저했다. 사람 눈에 걸릴 짓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왜 보자고 했어?”
세진은 웃으며 태연에게 물었다. 태연은 꿀꺽 침을 삼켰다. 대화를 하는 것은 중학교 졸업 이후 처음이었다. 지난번 세진이 교실로 찾아왔을 때 자신은 아무 말도 못 했다. 태연은 떨리는 목소리를 입 밖으로 밀어냈다.
“고양이 괴롭힌 거, 너야?”
세진은 정말로 소리내어 웃고 싶었다. 고작 그런 이유라니. 맞으면 어쩔 거고, 아니면 어쩔 건가. 
“증거 없이 사람 잡네.”
통통하고 키 작은 여자애 팔뚝의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저게 저기 맞았네. 세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사람이 다친 게 아니라 고양이부터 들이대는 걸 보면 아직도 태연은 멍청한 겁쟁이였다.
“증거는 있어.”
여자애가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태연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얘도 초능력이 있어.”
두 번째 말에 세진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초능력? 뭘까, 완전기억능력? 투시? 생각하지 못한 변수였지만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대단한 초능력이라면 겁이 많은 태연은 자신을 불러낼 필요도 없었을 테니.

윤아는 크로스백의 덮개를 열고, 츳츳 달래는 소리를 내며 어미고양이를 안아들었다. 고양이들도 무슨 작전을 짠 건지, 어미고양이는 오늘 오전 셋이 찾아갔을 때 한사코 윤아의 다리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데려가, 데려가. 윤아는 그 뜻을 알아들었지만 덥석 데려가기도 어려웠다. 새끼를 낳은 지 오래되지 않아 폭력을 당한 고양이다. 몸이 온전할까. 하지만 윤아가 준비물을 담아 온 크로스백을 비우고 열어 보이자마자 어미고양이는 그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고양이를 어떻게 이겨.”
추가 증인이 생겨버렸다.

윤아의 품에 안긴 어미고양이는 세진을 보고 강하게 하악거렸다. 윤아가 꽉 잡지 않으면 튀어나가 세진의 얼굴이라도 잡아뜯을 기세였다. 윤아가 가만 있으라고 달래는 걸 보자 세진은 살짝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말은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만, 저 애의 초능력이 고양이를 맘대로 조종하는 거면 어쩌란 말인가. 금방이라도 자신에게 고양이를 던지는 게 아닐까. 세진은 바닥에서 적당한 돌멩이를 골라 떠오르게 했다. 공격 의사를 드러내는 세진을 보며 윤아는 고양이를 다시 가방에 들어가게 했다.
“네 능력은 뭔데?”
세진이 묻자 윤아는 한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세진의 눈이 윤아의 손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윤아가 짧게 내뱉었다.
“이거야.”

사방에서 야옹, 야옹, 미야아, 먀아아, 냐아, 미야아아아.... 고양이가 열댓 마리는 몰려있는 듯한 소리가 작게 퍼지다가, 점점 커졌다.
세진은 이번에는 진심으로 위험하다고 느꼈다.
보이지 않는 고양이 한 마리라면 돌을 던져 위협하겠지만, 고양이가 이렇게 많으면 손쓸 도리가 없었다.

정석은 가지 위에 숨어서 블루투스 스피커 세 대의 서라운드 사운드를 감상했다. 어깨 위의 고양이들이 어리둥절한 듯 꼼질거렸다. 이 산에 사는 고양이가 그렇게 많을 리가 있나. 이건 순전히 과학 기술이었다. 휴대폰이 정석, 윤아, 태연 것까지 총 세 대. 거기에 출력부가 두 개인 스피커를 연결하면 총 여섯 개의 소리나는 장치를 만들 수 있었다. 윤아가 손을 튕긴 순간, 윤아와 태연과 정석은 타이밍을 맞춰 고양이 소리가 녹음된 동영상을 하나씩 재생했다. 그 결과 여섯 방향에서 서라운드 고양이 입체 음방이 실행되었다. 소리는 작았다가 점점 크게. 아이디어는 정석이 냈고, 음향 편집은 태연이 했다. 물론 어떤 동영상을 틀지는 윤아가 정했다. 주변 고양이들이 혹시라도 피해를 입으면 안 되니까. 통역하자면 ‘시끄러’ ‘저리가’ ‘귀찮아’라는 언어였지만, 세진의 귀에는 위협적으로 들릴 터였다.
지은 죄가 있다면.
실제로도 저리 가! 귀찮아! 시끄러워!는 어느 정도 위협의 소리가 맞긴 했다.
“쩔어.”
자신의 턴이 될 때까지 기다리며 정석은 마음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세진이 돌을 떨어뜨렸다. 태연은 그게 세진이 긴장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집중력이 필요한 일을 할 수 없을 상태가 된 거다. 세진은 곧 돌멩이 하나를 다시 떠올려 손에 쥐었다.
야옹. 미야. 먀아아아. 원망이 가득한 고양이들의 비명이 주변으로 점점 다가왔다. 낭패였다. 한편으로는 짜증스러웠다. 고작 고양이 따위가. 고작 조태연 따위가. 고작 저 여자애 따위가. 원한이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에 세진은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가 턱, 발목이 잡혔다. 이번엔 정말 비명을 지를 뻔했다. 힘껏 걷어차려고 해도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다리에 힘을 두고 뒤로 물러서려는 순간, 발을 붙잡던 힘이 사라졌다. 세진은 뒤로 넘어졌다.
“뭐 해.”
조태연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새끼. 
긴장해서 태연이 꽤 무거운 물체를 멈출 수 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세진은 일어나 와락 태연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찐따새끼가.
친구도 다 뺏기고 혼자 놀던 찌질이가.
이세정이 너 때문에 다쳤는데.
멱살을 잡힌 태연은 무표정하게 세진을 올려다보았다.

“이세정 때문이지?”
태연은 이제는 한결 가라앉은 마음으로 물었다.
이세정과 이세진이라는 이름만 떠올려도 마음이 술렁이던 순간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세정이 자신을 싫어한다면, 그것만이라도 세정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전화든, 문자든, 무엇이든.
“이세정이 나 괴롭히래?”
이세정, 정말 내가 괴롭기를 원해? 이세진이 그러길 바래?
그렇다면 받아들일게.
하지만 그건 나에 대한 공격만이야.

고양이들은 잘못이 없어.

세진은 대답 대신 태연의 멱살을 놓고 명치에 주먹에 꽂았다.
컥, 꼴사나운 소리를 내며 태연이 쓰러졌다. 뜻밖에도 여자애는 고양이를 다시 안고 가만히 서 있었다. 주변에 가득찼던 고양이 소리는 어느새 멈춰 있었다. 하아악, 고양이 한 마리의 위협적인 소리 뿐. 태연은 웅크린 채 말했다.

“이세정이 시킨 거 아니네.”

당연히.
세정은 울면서도 말했다. 오빠, 죄책감 갖지 마. 그 상가가 잘못한 거야. 나 치료비 다 거기서 물어 줬잖아. 오빠도, 태연 오빠도 잘못한 거 없어. 태연 오빠 요새 나 보면 도망다니더라. 미안해서 가까이 가지도 못 하겠어. 만나면 좀 전해 줘. 나 괜찮다고. 양궁은 못하겠지만... 나 양궁 진짜 좋아했는데. 이번 체전 진짜 나가고 싶었는데. 메달 따고 싶었는데. 
계속 울면서도 전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태연이 3초만 빨리 상황을 캐치했다면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 거였다.
아니면 멍청하게 발을 헛디디지 않았다면.
화분 주인은 병실까지 찾아와 사과했고 치료비도 냈다. 재활훈련 비용도 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내 무력함은 누가 보상해 주나.
그걸 보상할 수 있는 길은 태연을 괴롭히는 것 하나뿐이었다.
찐따같이. 싫으면 대들어야지. 
대들지도 못했잖아.
너 때문이야.
내가 괴로운 건.

세진은 쓰러진 태연을 노려보다 뒤돌아섰다. 가자. 가 버리자. 저깟 건 잊어버리자. 재미없어. 발을 움직이려는데 자꾸만 발이 멈췄다. 겨우 3초짜리 힘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고. 세진은 계속 짜증을 내며 다리를 움직였다. 3초. 잠시 쉬고 또 3초. 또 3초. 멍청한 새끼. 돌이라도 맞아야 제정신을 차릴 건가. 아예 힘도 못 쓰게 밟혀야 정신을 차릴까. 세진은 다시 태연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아예 기절시켜 줘?”
빈정거림과 짜증을 담은 목소리가 세진의 잇새로 튀어나왔다.
“여기 CCTV 없어. 너 하나 밟아도 그만이야. 아니면 저 여자애까지 맞아야 정신 차릴래?”
뜻밖에도, 태연은 웃고 있었다.
아주 미세하게.

“가고 싶으면 가. 난 할 만큼 했어.”
아파서 눈앞이 빙글빙글 돌고 구역질이 나는데 어쩐지 웃고 싶었다.

“저 애가 맞구나.”
윤아는 어미고양이의 귀 뒤를 긁어주었다. 쟤야. 쟤야. 쟤야. 야옹거리며 어미고양이가 발버둥치고 있었다. 하지만 안 돼. 너는 지금 아프잖아.
“그거면 됐어.”
태연의 얼굴 앞에서 땅을 걷어차 흙을 뿌리고 걸어가는 세진의 뒷모습을 보며 윤아가 말했다.
“정석아, 그쪽으로 간다.”

“조태연 맞아 죽는 거 아냐?”
통화용 스피커로 상황을 듣고 있던 정석은 걱정되어 죽을 맛이었다. 윤아가 지시할 때까지 가만히 있어야 하지만 뛰어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된다. 적어도 이 고양이들이 저 놈을 볼 수 있게 참아야 했다.
“그쪽으로 간다.”
윤아의 차분한 목소리가 분노를 담고 들려왔다.
저 멀리서, 산길을 헉헉거리며 걷는 놈이 보였다.
생각 같아서는 저 놈을 들고 높은 나뭇가지에 걸쳐 놓고 싶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나는 뛰어오르는 것도 뛰어내리는 것도 두렵지 않으니까. 하지만 저 놈은 무섭겠지. 남에게 없는 힘을 남을 괴롭히는 데 쓰는 것은 너무나도 쉽다.
정석을 붙잡은 네 마리의 고양이만 아니라면.
여기는 길 한중간에 홀로 선 잎 무성한 나무 위. 걷다가 지쳐 쉬기 딱 좋은 장소. 등을 기대며 씨발, 미친을 연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들이 고개를 빼어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야옹거렸다. 가르르릉, 하악, 위협하는 소리를 냈다.
“그렇구나.”
그 뒤로 윤아가 빠르게 세진을 따라잡는 모습이 보였다.

“이세진, 서!”
세진은 비오듯 흐르는 땀을 닦았다. 조태연만 패는 게 아니라 쟤도 팼어야 됐어. 같잖게 어디서 명령질이야. 세진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폈다.
“섰다. 됐냐?”
“응.”
윤아는 튀어나가려는 어미고양이를 꼭 끌어안고 대답했다.
“나한테 돌 던진 것도 너야?”
“씨발, 나야. 됐냐?
다 집어치우고 쟤도 패버리자.
엿같아.
그래서 네가 어쩔 건데.
“확인 끝!”
윤아가 소리치며 손을 위로 치켜들었다.
“씨발, 미친년이!”
또 고양이 새끼들 끌어모으려고? 그 전에 치면 돼. 세진이 윤아의 손을 향해 돌을 날렸다.
그리고 그 돌이 허공에서 정지했다.
허리도 제대로 못 펴는 태연이 윤아의 뒤에 섰다.
정석은 그 소동 틈에 아주 조용히 나무 아래에 내려섰다.
“준비 됐어?”
네 마리 고양이가 정석이 쭉 편 두 팔 위에 자리를 잡았다.

“뒤를 봐.”
세진의 뒤에 정석이 다가온 것을 확인한 윤아가 말했다.

뒤를 보라니.
그래, 봐 주마.
세진은 뒤돌았다.

나무 그림자가 길어지는 저녁, 역광을 받아 얼굴도 안 보이는 그림자. 쭉 두 팔을 편 채 그 그림자가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뭐야, 저 미친 건! 세진이 황급히 눈을 가늘게 뜨며 눈 위에 손으로 챙을 만들었다. 그러자 세진의 눈에 보인 건, 악몽 같은 광경이었다.

3미터는 될 높이에, 단발머리 여자가, 양 팔에 고양이를 얹고 허공에 정지해 있었다.

“얘들아, 맘대로 해!”

여자의 목소리가 쨍하게 퍼지자, 양 팔에 앉아 있던 고양이들이 허공에서 뛰어내려 세진에게 달려들었다.

윤아는 나중에 말했다. 정석아, 널 십자가에 매달아 버리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았을까?
태연도 나중에 말했다. 3초 플러스 3초 연타 훈련 하다가 나 돌아버리는 줄 알았어.
정석은 발목에 반깁스를 한 채 대꾸했다. 정지를 시켜 줄거면 제대로 시켜 주지, 내 발목 어쩔 건데.

고양이들은 정말 하고 싶은 마음껏 세진을 공격했다.
그 방식은 평화롭다면 평화롭고, 위협적이라면 위협적이었다.
발톱으로 얼굴과 팔다리를 긁을 수도 있었을 텐데.
고양이들은 세진이 일어나지 못하게 목 위와 가슴 위에 올라타고, 두 마리가 끊임없이 세진의 귀 옆에서 소리를 질렀다.
정석과 태연, 윤아도 귀를 틀어막을 정도였다.
윤아가 귀를 틀어막느라 놓친 어미고양이가 가서 고양이들을 혼내지 않았더라면, 온 동네에 범야옹 대잔치가 울려퍼질 뻔 했다.
어미고양이는 세진의 코를 한 대 앞발로 야무지게 후려치더니 고양이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가자.”
윤아가 태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석이 다친 거 같은데.”
“뭐야, 제대로 정지 안 시켰어?”
“저렇게 높이 뛸 줄 알았나... 땅 바로 위에서 멈추려고 했는데, 낙하속도가 너무 빠르잖아.”
태연은 비틀거리며 정석에게 다가갔다.
“지정석, 괜찮아?”
“발목 삔 거 같다. 조태연, 너 방학 때까지 내 심부름도 해라.”
정석이 얼굴을 찡그리며 한쪽 다리에만 힘을 싣고 일어났다.
“내려가자.”

우린 할 만큼 했다.
고양이들도 할 만큼 했다.
오늘 이렇게 당하고도 다시 누군가를 괴롭힌다면, 그건 지능의 문제겠지.
그리고 고양이보다 더 강력한 누군가에게 언젠가 응징을 당하겠지.

설령 그렇지 않고 뻔뻔하게 잘 산다고 해도 상관없다.
악당의 뒷얘기 따위 별로 궁금하지 않아.

 


10. 지정석 크리티컬 슈퍼스타

정석은 발목을 인대가 늘어났고 고향 병원으로 호출되어 사흘간 입웠했다. 학교로 달려와 정석을 차에 태운 건 할머니였다. 정석은 할머니에게 발목 빼고 여러 곳을 맞았다. 뼈가 부러진 게 아니라 인대가 늘어난 거니까 고등학교는 다니게 해 달라며 뻔뻔하게 구는 정석 앞에서, 윤아와 태연은 자신들이 과연 저 바보를 변호해 줘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머리 어깨 무릎 발 빼고 어깨 어깨 허벅지. 신들린 젬배 연주자처럼 정석을 리드미컬하게 두드린 할머니는 정석의 침대 옆에 앉아 코웃음을 쳤다.
“그래, 이겼나.”
정석은 바나나를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몰라. 나는 안 싸웠다. 고양이가 다 알아서 했지.”
짜악, 정석의 허벅지에 할머니 손바닥이 한번 더 내리꽂혔다.
“자알했다. 잘 했어.”
“함미, 작작 때리라. 친구들도 다 있는데.”
정석이 ‘친구’라 부르자 할머니는 윤아와 태연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너네도 고생했다. 이 망아지 같은 애랑 같이 있어줘서 고맙고.”
할머니는 병실을 나가며 윤아의 귀에 소근거렸다.
“고양이들은 괜찮나.”
윤아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네.”

“그런데 왜 여기 병원까지 와? 학교 있는 데선 안 돼?”
“내가 이 병원 선생님에겐 좋은 스터디 케이스라고, 꼭 오라 하드라. 십년 넘게 다닌 데라.”
“십년 넘게 사고를 쳤구나.”
킥킥 웃던 정석이 할머니가 놓고 간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야, 이거 보자. 우리 이거 꼭 같이 봐야 돼.”
“뭔데?”
정석은 가방을 뒤져서 휴대용 블루레이 플레이어를 꺼내 노트북에 연결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테드 닐리님이 얼마나 쩌는 지저스인지 너네도 알아야 한다.”

정석이 혼자 입원한 병실 불을 껐고, 노트북 화면이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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