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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시티 접근 한계선

2020.07.01 00:0007.01

접근 한계선

노말시티

 

오늘 동민의 하루는 7시 15분에 알레르기 방지 섬유 처리가 된 미리안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걸어간 뒤 네오듀란트 치약을 덴탈플러스 칫솔에 짜내 이를 닦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양치와 샤워를 포함해 33분 동안 욕실에서 총 12.4 리터의 물을 사용했으며 세 대의 카메라와 유량, 가속도, 온도, 압력 등을 측정하는 수많은 센서들로 측정된 이 모든 과정의 정보가 수치화되어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되었다.

필요하다면 동민은 샤워 도중 겨드랑이를 닦기 위해 몇 번이나 비누칠했는지에 대한 답도 얻을 수 있다. 물론 그 정보는 동민뿐 아니라 앞집에 사는 한세영이나 지구 반대편의 카를로스에게도 오픈되어 있다. 바디 워시를 만드는 회사는 각 개인의 비누칠 횟수는 물론 지역별, 연령별, 체형별 통계 수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여 제품 생산에 반영한다.

동민이 구독하고 있는 바디 워시는 맨워스 제품인데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최적화된 모델이 동민의 사용량을 체크하여 자동으로 배송된다. 제품의 질이나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동민은 언제든지 구독을 끊거나 아니면 해당 제품의 광고에 대해 걸어 놓았던 잠금을 해제할 수 있다. 쏟아지는 광고와 제안 중 원하는 제품을 선택하면 즉시 해당 제품의 구독이 시작되고 맨워스 제품의 구독은 중지된다. 원한다면 구독이 아니라 일회성 구매도 가능하다.

그렇게 일일이 모든 생활용품을 고르고 선택하는 일은 사실 꽤 번거로워서 대부분은 묶음 구성이 되어 있는 토탈 솔루션을 이용한다. 간편한 데다 추가 할인까지 받을 수 있고 원한다면 몇 가지 상품을 교체할 수 있는 옵션도 제공하니 어지간히 까다롭지 않은 사람이라면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동민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동민은 단 하나의 옵션 교체도 하지 않고 어떤 옵션이 있는지 확인조차 귀찮아하며 원 구성 그대로의 토탈 솔루션을 쓴다.

동민이 쓰는 솔루션은 유명 배우인 정수현이 모델이다. 정수현이 실제로 쓰는 제품들로 구성이 되어 있고 정수현이 다른 제품을 사용하면 즉시 그에 맞게 구성이 변경되는 동기화 옵션도 적용되어 있다. 물론 이용 약관에는 동일한 제품 혹은 그와 유사한 대체품이라고 적혀 있지만 동민을 비롯한 어떤 구독자도 그걸 신경 쓰지 않는다.

진짜 정수현이 쓰는 제품은 동민에게는 너무 비싼 고급품일 거라는 사실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간단한 검색을 통해 앞집의 한세영이나 지구 반대편의 카를로스가 어떤 바디 워시를 쓰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정수현이 어떤 제품을 쓰고 겨드랑이에 몇 번 비누칠하는지도 알아낼 수 있지만 굳이 그런 짓을 할 사람은 거의 없다.

동민이 솔루션에 지불하는 가격에는 정수현과 같은 제품을 쓰고 있다는 환상을 유지해 주는 비용도 포함되어 있다. 동민 자신의 만족과 남들에 대한 과시에 유용한 환상이다. 돈을 지불하고 구매한 환상을 스스로 깨버리는 건 어리석고 한심한 짓이다. 정수현이 어떤 바디 워시를 쓰는지가 모두에게 오픈되듯이 동민이 정수현의 바디 워시를 검색한다면 그 기록 역시 모두에게 오픈된다. 굳이 자신의 한심함을 전시할 이유는 없다.

정수현의 토탈 솔루션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동민은 거울 앞에서 마치 자신이 정수현이 된 듯 흐뭇하게 턱선을 쓸어내려 본다. 그리고 자신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정수현의 솔루션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한다. 내세울 장점이 아니라면 차라리 평범한 게 낫다. 장점만 골라서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쁘지가 않다. 아무래도 좋은 것에 아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무난하게 맞춰 주는 게 토탈 솔루션의 장점이다.

시리얼과 비타민 음료로 구성된 아침 식사도 오늘 입고 나갈 옷도 모두 솔루션에 포함된 그대로다. 동민의 체형과 건강 상태가 정수현과 같지 않으니 그에 맞게 세부 옵션이 조정되었을 테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동민이 정수현이라는 무난한 모델을 선택했고 동민이 사용하는 제품들이 솔루션 업체의 검증을 거쳤으며 그러니 이 모든 과정에는 특별히 흠잡을 곳이 없다는 게 중요하다.

출근하기 위해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그런 동민의 안도감에 경고가 울린다. 얼마 전 앞집에 이사 온 한세영이라는 사람이 설정해 놓은 접근 주의 경고다.

이제는 더 이상 개인 정보라는 개념이 없는 세상이다. 모든 정보는 오픈되어 있고 누구나 원하는 정보를 마음껏 검색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정보를 보는 것만으로는 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없으니까. 동민이 원한다면 세영의 집에 설치된 카메라에 접근해 세영이 온종일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자세로 잠을 자며 샤워할 때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지켜봐도 상관없다. 그 자체로는 세영에게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으니까.

세영에 대한 모든 정보는 이미 공개되어 있으니 동민이 세영의 정보를 긁어모아 악의적으로 편집한다고 해도 거짓이라는 게 바로 들통난다. 그렇게 편집된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순간 인공지능에 의해 의심 정보라는 딱지가 붙는다. 결국 남는 건 동민이 세영을 모함하려 했다는 사실 뿐이다.

아무런 짓도 하지 않고 그저 세영의 정보를 지켜보기만 해도 마찬가지다. 동민이 세영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모두에게 공개된다. 세영이 설정해 놓았다면 알림도 받을 수 있다. 만일 동민이 세영을 지켜볼 만한 타당한 이유가 없었다면 동민에게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을 게 뻔하다.

정보 그 자체로는 사람을 해칠 수 없다는 게 정보 공개 시대의 핵심이다. 정보는 더 이상 사유 재산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며 무기도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제공되는 공공재다.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건 물리적인 위협뿐이다. 그래서 더욱 철저하게 접근 금지 기술이 적용된다.

누군가를 접근 금지 대상으로 설정하는데 특별한 이유는 필요 없다. 그냥 그 사람과 물리적으로 접촉하고 싶지 않다는 선언이다. 원한다면 전 세계 모든 사람을 접근 금지 대상으로 설정할 수도 있고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도 간혹 있다.

접근 금지 대상으로 설정하면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알림이 전송된다. 그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상대방에게 다가가면 감시 대상이 된다. 처음에는 황색 경고가 뜨지만 거리를 급격히 줄이면 적색 경고가 뜨며 주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시끄러운 경고음이 울린다. 적색 경고가 뜨면 즉시 그 자리에서 행동을 멈추고 경보가 해제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만일 그 상황에서 더 접근하려 시도하면 흑색 경보가 뜨며 카메라만큼이나 곳곳에 설치된 가스 분사기에서 일시적인 마비를 유도하는 가스가 분사된다. 다른 사람에게 흉악한 민폐를 끼치는 동시에 부끄러운 기록이 영원히 남는 일이다.

이는 접근 금지를 신청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신청한 사람에게도 금지 대상을 적극적으로 피할 의무가 있는 만큼 아무렇게나 남발할 이유는 없다. 그러니 동민은 세영이 자신에게 접근 금지를 신청한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그냥 이웃과 만나기 싫은 사람이겠지. 처음엔 그렇게 넘기려 했고 사실 그게 가장 무난하다. 원래부터 서로 모르는 사이였던 세영과 앞으로도 계속 부딪히지 않는 사이가 된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다.

동민은 맞은편으로 보이는 세영의 현관에 최대한 접근하지 않도록 복도에서 코너를 돌아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현관 앞으로 바짝 다가가지만 않는다면야 적색 경고가 뜰 일은 없겠지만 그냥 그렇게 했다. 어쩌면 세영이 자신의 동선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동민이 이렇게 조심스러운 사람이라는 걸 알면 오해를 풀고 번거로운 접근 금지 신청을 취소할 수도 있으니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두 층 정도 아래로 내려가자 접근 금지 경고는 해제됐다. 동민은 움츠러들었던 가슴과 어깨를 조금 폈다. 만일 내가 정수현이었어도 세영은 접근 금지 신청을 했을까. 동민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영이 동민에게 접근 금지 신청을 한 유일한 사람은 아니다. 특정한 사람만 금지하는 게 아니라 아예 모든 사람을 금지해 버린 뒤 접근해도 좋은 몇몇만 해제하는 방식으로 리스트를 관리하는 사람도 있다.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30대 남성과 같은 방식으로 필터를 걸어서 일괄 금지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금지당하는 건 기분이 나쁠 이유도 없고 이유를 궁금해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동민은 세영이 자신을 콕 집어 금지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세영이 앞집으로 이사 온 건 한 달 전이었다. 이사 일주일 전에 세영의 신상 정보가 동민을 비롯한 이웃에게 전송되었다. 접근 금지가 필요하면 미리 신청하라는 뜻이다. 동민은 제공된 기본 정보에 더해 세영에 대한 몇 가지를 더 검색해 보았다. 취침 시간을 비롯한 생활 패턴은 어떤지. 소음이나 냄새에 과도하게 민감하진 않은지. 혹시 동민이 아는 이웃들과의 연관 관계가 있는지. 접근 금지를 남발하는 성향은 아닌지 등. 새로운 이웃을 맞이할 때 누구나 검색해 보는 평범한 수준의 정보다.

동민이 세영의 정보를 검색해 본 다음 날. 세영이 동민의 정보를 검색했다는 알림이 들어왔다. 동민이 검색해 본 정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방대한 리스트였다. 직장이나 친구 관계는 물론 구독하고 있는 솔루션이나 좋아하는 음악, 취미 활동, 평소의 동선 등이 모두 망라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세영은 동민에 대해 접근 금지를 신청했다.

뜻밖의 조치에 동민은 세영의 검색 기록을 검색해 보았다. 세영은 동민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이웃에 대해 광범위한 정보를 검색했다. 그리고서 동민 한 명에 대해서만 접근 금지를 신청했다. 납득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모든 정보가 공개되는 세상이지만 사람의 마음만큼은 수치화되지도 공개되지도 않는다. 세영이 동민을 차단했다는 사실은 명백하지만 왜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다. 직접 말해주지 않는 이상 타인의 마음에 관심을 두지도 지레짐작하지도 말아야 하는 세상이다. 직장 동료인 희철의 의견도 그랬다.

"그거 좀 불쾌할 수도 있는데. 알지?"

"이유 없이 차단했다고 해서 불쾌할 것까진 없지."

"아니. 앞집 사람 말고 너 말야. 네 행동이 불쾌하다고. 나야 괜찮지만. 잘 모르는 사람은 이상하게 볼지도. 너 좀. 그런 면이 있어."

누군가가 나를 차단했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면 된다. 그러는 게 무난하다는 걸 동민도 알고 있었고 그렇게 보이려 노력했다. 세영의 과거에 대해 자세히 검색하지도 접근 금지 경고가 떴을 때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영상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희철은 그런 게 더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그 사람을 신경 쓰는 게 문제가 아니고. 신경이 쓰이면 써야지. 근데 넌 신경 쓰면서도 신경 안 쓰는 척하잖아. 마음을 속이려 하니까. 좀 뭐랄까. 음흉해 보일 수도 있겠지. 정보를 숨기는 데는 의도가 있는 법이니까."

"그 사람이 날 차단한 게 그래서라고?"

"그야 모르지. 궁금하면 물어보면 되잖아."

"메시지까지 차단됐으니까."

"아. 그렇구나."

접근 금지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물리적인 접촉만을 금지할 수도 있고 온오프라인의 모든 접촉을 금지할 수도 있다. 다만 상대방이 내 정보에 접근하는 걸 막을 수는 없다. 정보 공개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져야 하는 원칙이니까. 온라인 접촉을 금지하면 상대방이 내게 메시지를 보낼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메시지를 보내는 건 자유지만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도 꺼 놓고 리스트에서도 숨기는 방식이다. 내가 상대방이 보낸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검색해야만 그 메시지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온라인 접촉을 차단해 놓으면 우연히 의도치 않게 상대방에 대한 정보와 접하는 걸 막을 수 있다. 한세영은 동민을 온오프라인 모두에서 차단해 버렸다.

"그렇다니까. 그건 좀 심한 거 아냐?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차단은 개인의 자유야. 취향이고. 잘못한 사람에게 내리는 벌이 아니라고. 자신이 살고 싶은 세상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구성할 뿐이지. 동민이 넌 그냥 그 사람이 원하는 세상에서 제외된 거야. 이사 오기 전에도 그랬고 이사 온 후에도 그런 거지. 달라진 게 없잖아."

희철의 말대로 세영이라는 사람은 동민을 자신의 세상에서 지웠고 그건 세영의 자유다. 동민은 세영을 동민의 세상에서 지울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세영의 세상에 강압적으로 뛰어들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니 세영에 대한 정보를 샅샅이 뒤지고 세영을 온종일 관찰한다 해도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런 당연한 일은 하지 않고 세영에 대해 계속 신경을 쓰고 있는 게 이상해 보인다는 게 희철의 설명이었다. 결국 희철이 물었다.

"너 그 사람 좋아하냐?"

"뭔 소리야?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그러니까 넌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거 아냐? 너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은 거고. 혹시 나중에라도 그 사람이 싫어할 만한 행동은 안 하려는 거고. 그 사람 인생에 개입하고 싶어 하는 의도가 너무 빤히 보이잖아. 그럼 둘 중 하나지. 그 사람을 좋아하거나 아님 끔찍이 싫어하거나."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럼 그냥 신경 꺼. 그러니까. 그 사람 정보를 검색하든 일상을 관찰하든 허공에 메시지를 날리든 맘대로 하라고. 그 사람 인생에 뛰어들려고 하지 말고."

되새겨 볼수록 희철의 말은 정확했다. 동민은 세영의 삶에 개입하고 싶었다. 세영의 생각을 바꾸고 싶었다. 동민을 차단한 이유를 듣고 그 오해를 풀고 싶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아무렇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세영에게 직접 물어볼 수는 없었다. 세영의 삶에 강제로 뛰어들기는 싫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며칠째 고민하는 동민을 보며 희철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 진짜 왜 이렇게 구식이야. 그냥 네 삶이나 신경 써.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살든 말든. 너 거기서 한 걸음만 삐끗하면 바로 범죄야. 옆에서 보는 내가 다 불안하다 정말."

모든 정보가 공개되면서도 서로에 대한 간섭은 철저히 금지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동민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논리로만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차라리 개인의 정보가 보호되던 옛날이 낫다 싶었다. 그때라고 해서 세상이 논리적이지는 않았지만. 애초부터 세상을 논리로 판단하려는 시도 자체가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희철은 언제나 감각적으로 세상의 트렌드를 읽어냈다. 희철은 자신의 선택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해도 많은 사람이 무난하다고 여기는 답을 직관적으로 골라내는 재주가 있다. 뭐가 좋을까 고민하는 게 부담스럽고 자신이 없어 토탈 솔루션을 이용하는 동민과는 달리 희철은 제품을 하나하나 직접 고르면서도 항상 그럴듯한 조합을 만들어낸다. 희철이 좀 더 유명한 사람이었다면 동민은 희철을 모델로 한 솔루션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희철이 이상하다고 하니 동민이 세영에게 느끼는 감정이 정상이 아닌 건 사실이겠지.

"그런 데 말야. 내가 그 사람에게 좀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잘못은 아니잖아."

"당연히 아니지. 생각과 감정에는 잘못이 없어. 항상 잘못은 행동에 있지."

"마음을 속이려 하지 말라며. 그럼 그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라는 거 아냐?"

"옮겨. 적법한 선에서."

"법에만 안 걸리면 된다는 거야?"

"법에만 안 걸리면 위법은 아니지."

"그게 무슨 당연한 소리야?"

"너 지금 나한테 법률 상담하는 거야 아니면 진짜 연애 상담을 하는 거야? 그거부터 확실히 해."

일단 법률은 아니고 그렇다고 연애도 아니다. 동민이 느끼는 건 뭔지 모를 불편한 감정이었고 뭐가 됐든 일단 그 느낌을 떨쳐내고 싶었다.

"그냥. 앞집 사람이 자꾸 마음에 걸리기는 하는데. 그냥 내버려 두기는 영 불편하고. 근데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이상한 짓이 아닌지. 그걸 모르겠어서. 넌 그런 거 잘 알잖아."

"에휴. 담백하게 가. 담백하게. 네가 원하는 걸 하라고. 상대방이 원하는 걸 고민하지 말고. 만일 네 행동이 선을 넘었다면 그쪽에서 알아서 차단하겠지."

"이미 접근 금지 상태라니까. 온오프라인 다."

"아 그랬지. 그럼 뭐... 뭘 해도 상관없겠네."

"뭘 해도 상관없다고?"

"그래. 그 사람에게는 넌 이미 세상에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네가 뭘 해도 상관없는 거지. 맘대로 해. 마음 가는 대로."

희철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동민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동민은 일부러 극단적인 예를 들었다.

"그럼 말야. 만일 내가 그 사람 현관 앞에 계속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 어떤데. 황색 경고가 뜬 상태에서. 그럼 그 사람이 집 밖으로 못 나오게 되잖아."

"바보냐? 그건 접근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행위잖아. 그러고 앉아 있으면 인공지능이 판단해서 적색 경고로 바꿨다가 그래도 버티고 있으면 마취 가스를 쏘겠지."

"그럼... 내가 그 사람에게 일 분에 한 개씩 계속 메시지 폭탄을 보내면?"

"상관없지. 어차피 그 사람에게는 보이지도 않을 텐데. 일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내가 그 사람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행적을 샅샅이 뒤지면?"

"상관없지."

"그 사람 위치 추적하면서 온종일 영상으로 뭐 하는지 지켜보면?"

"상관없지. 근데 너 그렇게 할 일이 없냐?"

희철은 한숨을 쉬며 안주머니에서 작은 스크린 하나를 꺼냈다. 몇 번 조작하니 영상이 하나 떴다. 누군가의 집이었다. 어떤 사람이 소파에 기대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동민도 아는 얼굴이었다. 고민서라는 유명 연예인이었다.

"차라리 이런 걸 봐. 나 요즘 이거 보는 맛에 산다."

"이 사람을? 영상으로 계속 지켜본다고? 네가 보고 있다는 게 기록이 될 텐데? 알림도 갈 거 아냐."

"당연히 알림이 가지. 이 사람은 누군가 자신의 영상을 보면 자동으로 접근 금지 신청을 하도록 설정해 놨어."

"뭐? 그럼 너도 접근 금지 상태야?"

"응. 물론."

"그건 영상을 보지 말라는 뜻이잖아. 기분 나쁘다는 거 아냐?"

"아 진짜 답답하네. 너 이렇게 감이 없어서 어떻게 현대 사회를 살아가냐? 모든 정보는 공개되고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어. 그건 인간의 기본 권리라고. 당연히 고민서의 영상도 공개고 열람도 자유지."

"그런데 접근 금지 신청을 했다며."

"그건 고민서의 자유지. 그리고. 그게 더더욱 영상은 마음껏 봐도 된다는 뜻이야."

"어째서?"

"동민아. 동민아. 잘 들어봐."

희철은 답답하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고는 동민의 어깨를 꼭 감싸 안으며 말했다.

"경계선을 긋는 데는 두 가지 의미가 있어. 하나는 절대 넘어오지 말라는 뜻이지. 다른 하나는 뭐겠어?"

"글쎄... 접근하지 말라는 뜻?"

"이런. 그건 절대 넘어오지 말라는 거에 포함되지 당연히. 경계선이 없는 상태에서는 어디까지 다가가도 되는지 불분명하잖아. 그치? 그런데 경계선을 긋는 순간 그게 분명해지는 거야. 여기까진 와도 되지만 그 너머로는 오지 말라는 뜻이지. 알겠어? 경계선을 긋는 다른 하나의 의미는 경계선 전까지는 와도 된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접근 한계선이기도 하고 접근 허용선이기도 한 거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동민에게 희철이 다시 설명했다.

"그러니까 고민서가 자신의 영상을 본 사람들에게 일일이 접근 금지 신청을 하는 건 이런 의미야. 접근하지만 않으면 자신의 영상은 얼마든지 지켜봐도 된다는 거지. 다시 말하면 영상을 보는 것까지만 하고 더 이상 접근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고. 네가 내 영상을 보는 것에 대해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쓸데없이 추측하고 짐작하지 말라는 거야. 알겠어?"

쓸데없이 추측하고 짐작하지 말아라. 희철은 그 말을 할 때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세영의 의도를 추측하고 짐작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세영은 동민에게 접근 금지 신청을 했으니 그건 말 그대로 접근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동민을 차단한 세영의 의도는 굳이 알 필요가 없다. 어차피 모르는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모를 사람이고.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추측하고 짐작하는 건 동민의 자유다. 그걸 위해 세영의 정보를 검색하고 영상을 지켜보는 것도 상관없다. 다만 그런 추측과 짐작을 행동으로 옮기지만 않으면 된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동민은 그냥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신경이 쓰이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굳이 세영에 대해 더 알아내려 하지도 않기로 했다. 집에서 나올 때마다 뜨는 황색 경보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사라지는 경보니까. 동민의 행동에 아무런 제약도 가하지 않으니까. 신경 쓰지만 않으면. 그런데 며칠 후 동민에게 알림이 전달되었다. 누군가 동민의 정보를 검색해 보았다는 알림이었다.

세영이었다. 검색한 정보는 지난번만큼이나 방대했다. 변화가 있을 리 없는 과거에 대한 정보는 빠지고 대신 현재 상태에 대한 정보가 그만큼 추가되었다. 동민의 영상을 지켜본 기록도 있었다. 거실, 욕실, 사무실은 물론 출퇴근 경로의 영상도 포함해서. 그렇게 방대한 정보를 검색해 본 뒤 세영은 접근 금지를 풀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영은 동민의 어딘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혹시나 그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변했을까 검색을 해 보고 변하지 않아서 그대로 접근 금지를 유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철이라면 또 쓸데없이 추측하고 짐작한다고 하겠지만 동민은 그런 생각을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세영이 어떤 사람인지 조사해 보면 어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접근 금지를 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세영의 정보를 검색하는 건 동민의 자유다. 그런데도 동민은 세영에 대해 알아보는 걸 자제했다. 왠지 그렇게 하면 영원히 접근 금지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세영은 동민을 이렇게 자세히 지켜보고 있는데. 희철의 말이 생각났다. 세영이 동민에게 설정한 접근 금지는 말 그대로 접근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건 반대로 접근 외에 다른 건 해도 된다는 뜻 아닐까. 세영의 정보를 굳이 검색하지 않으려는 동민의 태도가 오히려 수상하고 이상해 보일지도 모른다.

세영이 가장 먼저 검색해 본 동민의 정보는 어떤 솔루션을 쓰고 있는지였다. 세영이 이사 오기 전부터 지금까지 동민은 쭉 정수현을 모델로 한 토탈 솔루션을 구독하고 있었다. 혹시 그게 문제일까. 솔루션에 포함된 워시 제품에서 나는 향을 유난히 싫어하는 게 아닐까.

동민은 검색 창에 세영이 어떤 솔루션을 쓰고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입력하고 한동안 고민하다가 검색 버튼을 눌렀다. 망설인 시간이 무색하게 결과는 바로 나왔다. 세영은 고민서를 모델로 한 토탈 솔루션을 쓰고 있었다. 고민서 역시 정수현과 마찬가지로 무난하기로 유명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모델이었다. 조정한 옵션도 거의 없었다. 고민서의 솔루션을 쓸 정도로 무난한 사람이 정수현의 솔루션을 싫어한다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 동민은 자기도 모르게 영상을 검색했다. 세영이 아닌 고민서의 영상이었다.

고민서는 지금 요리를 하고 있었다. 고민서가 쓰고 있는 재료와 조리 도구, 입고 있는 옷과 헤어스타일에 대한 부가 정보가 쉴 새 없이 깜박였다. 광고 옵션을 끄자 그제야 고민서가 요리를 하는 모습만이 조용히 영상에 남았다. 프라이팬에 올려진 재료를 나무젓가락으로 뒤적이며 볶고 있는 모습은 그냥 평범한 보통 사람의 영상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영상을 검색한 것과 거의 동시에 알림이 하나 들어왔다. 고민서가 동민에게 접근 금지 신청을 했다는 알림이었다. 그 알림을 받고 나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더 편해졌다. 희철의 설명을 들었기 때문일까. 영상을 보는 행동을 허락받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고민서는 동민과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다. 접근 금지로 그게 더욱 확실해졌다. 서로 다른 평행 우주에 사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저 정보만을 공유하며.

세영의 영상을 지켜봐도 괜찮지 않을까. 요리한 음식을 식탁으로 가져와 맛있게 먹고 있는 고민서의 영상을 지켜보며 동민은 세영이 신청한 접근 금지에도 그런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민과 세영은 서로 다른 우주로 분리되었다. 정보만이 전달되는 우주. 서로의 삶에 간섭할 수 없는 우주. 그런 생각을 할 때 알림이 하나 더 들어왔다.

세영이었다. 세영이 또다시 동민의 정보를 검색했다. 이번에 검색한 정보는 특이했다. 세영은 동민이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내지는 않았는지를 검색했다.

온오프라인의 모든 접근을 금지해도 메시지를 보내는 건 상관없다. 다만 그 메시지는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고 데이터의 바다에 잠겨있을 뿐이다. 그렇게 잠겨있는 데이터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검색을 해야 비로소 떠오른다. 동민이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바다에 잠기도록 설정한 세영은 이번에는 일부러 그런 메시지를 건져 올리려 시도한 것이다.

대체 이유가 뭘까. 동민은 떠나는 배를 잡으려는 듯 다급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김동민] 왜 절 차단하셨나요.

그 뒤로 며칠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세영이 동민의 메시지를 검색했다는 알림은 들어오지 않았고 당연히 답장도 없었다. 동민은 여전히 차단된 상태였다. 세영의 현관 앞을 지날 때 뜨는 황색 경보는 여전했다. 동민의 질문은 또다시 바닷속에 잠겨 버린 셈이었다.

동민은 희철처럼 심심할 때 고민서의 영상을 지켜보는 버릇이 생겼다. 고민서와 접근 금지 상태였지만 황색 경보가 뜨는 일은 없었다. 동선이 겹치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동민은 고민서가 정말로 다른 우주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민은 고민서를 마치 영화 속의 가상 인물을 보듯 지켜보았다.

어쩌면 고민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 아닐까. 솔루션을 팔기 위해 만들어 낸 가상 인물은 아닐까. 눈앞에서 너무도 생생하게 펼쳐지는 고민서의 삶을 보면서도 동민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에 비해 한세영의 존재감은 너무도 생생했다. 세영은 동민의 앞집에 살고 있다. 인접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같은 우주에 살고 있다. 동민이 하는 어떤 행동이 세영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세영의 정보를 검색하는 것만으로도 세영의 삶에 어느 정도는 개입하게 된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그건 당연했다. 세영은 접근 금지 신청과 몇 번의 정보 검색으로 동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까. 그게 세영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결과는 그랬다. 동민은 세영과 관련된 그 어떤 행동도 섣불리 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렇게 며칠이 더 흐른 뒤 마침내 세영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동민이 보냈던 메시지를 확인했다는 알림이 뜨고 몇 분 뒤였다.

[한세영] 동민 씨가 궁금해서요.

동민은 세영이 또다시 자신의 우주로 떠나 버릴까 서둘러 메시지를 적었다.

[김동민] 궁금한데 왜 차단을...

거기까지 적었던 동민은 다시 문장을 지웠다. 다가오는 것도 멀어지는 것도 세영의 자유다. 억지로 붙잡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러기 싫었다. 충분히 생각해서 천천히 답을 보내고 싶었다. 세영의 메시지를 한동안 곱씹던 동민이 마침내 다시 문장을 적었다.

[김동민] 저도 세영 씨가 궁금해요.

전송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는 세영이 바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세영은 동민을 온라인에서도 차단한 상태니 동민이 메시지를 보냈다는 알림도 뜨지 않는다. 동민이 보낸 메시지가 있는지 계속 새로고침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세영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한세영] 좋아요.

좋아요. 동민의 심장이 살짝 두근댔다. 뭐가 좋은 걸까. 생각하는 사이 두 번째 메시지가 도착했다.

[한세영] 동민 씨도 절 온라인에서 차단하세요.

오프라인 차단은 한 쪽이 신청하면 다른 쪽도 자동으로 차단된다. 실제로 만나는 일을 어느 한쪽만 할 수는 없는 거니까. 반면 온라인 차단은 개별적으로 설정 가능하다. 내가 누군가를 차단하면 그 사람과 관련된 어떤 메시지나 알림도 받지 않게 되지만 그 사람은 나와 관련된 알림을 계속 받을 수 있다. 나의 세상에서는 그 사람을 지워도 그 사람의 세상에서는 내가 남아 있는 게 온라인에서는 가능하다.

세영은 온오프라인 모두 동민을 차단했지만 동민은 자동 적용된 오프라인 차단을 제외하고는 온라인은 그대로 내버려 둔 상태였다. 그래서 세영이 동민의 정보를 검색하거나 메시지를 보내면 알림을 받을 수 있었다. 세영은 그걸 차단하라는 거였다.

두근대던 가슴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거였나. 동민은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동시에 바로 답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물론 세영은 온라인의 저편에서 계속 새로고침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세영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세영이 스스로 내린 선택이며 그만두고 싶다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 어쩌면 세영은 그런 식의 관계를 동민과 맺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지 그만두는.

말하자면 세영의 차단은 접근 한계선이었다. 이 선은 넘어오지 말라는 의미. 그리고 이 선까지는 와도 된다는 의미.

동민은 세영에게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대신 세영의 요청대로 세영을 온라인에서 차단했다.

온라인에서 서로를 차단했다고 해서 둘의 세계가 완전히 분리되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분리된 상태지만 원한다면 언제든지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모두 집 앞에 있는 카페인 스테이션에서 커피를 마셨다고 하자. 두 사람은 접근 금지 상태이기 때문에 같은 시간에 같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수는 없다. 서로 다른 날에 혹은 다른 시간에 각자 커피를 마시는 건 가능하다.

만일 동민이 스테이션에서 커피를 마신 사람들의 리스트를 검색한다면 세영의 이름은 뜨지 않는다. 온라인에서 차단하면 기본 제공되는 모든 정보에서 상대방이 삭제된다. 의도치 않게 상대방의 정보를 만나는 불쾌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동민이 세영을 지목하여 스테이션에서 커피를 마신 시간을 검색한다면 해당 정보가 출력된다. 동민이 의도적으로 세영에 대해 검색한다면 그 정보는 검색된다. 세영이 원하든 원치 않든 상관없다. 세영은 자신의 세계에 동민의 정보가 흘러 들어오는 건 막을 수 있지만 자신의 정보가 동민의 세계에 흘러 들어가는 건 막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의 세계에 억지로 개입할 수 없다.

서로를 완전히 차단하면 둘의 세계는 분리된다. 원하지 않는다면 두 사람은 온라인에서건 오프라인에서건 부딪힐 일이 없다. 완전히 다른 우주를 살아가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영원히 끊어지는 건 아니다.

동민이 원한다면 동민은 세영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그 메시지는 세영의 세계로 건너가지 않고 두 세계 사이의 빈틈에 머문다. 세영이 의도적으로 확인하지 않는다면 메시지는 영원히 그 틈에 잠긴다.

세영이 원하면 어느 땐가 그 틈을 확인해 동민의 메시지를 건져낼 수 있다. 그리고 세영도 두 세계 사이에 자신의 메시지를 던져 놓는다. 동민은 세영이 자신의 메시지를 읽었다는 사실도 답장을 보냈다는 사실도 모른다. 어느 날엔가 동민이 일부러 확인해 본다면 세영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겠지만.

원하지 않을 때는 완벽하게 분리되는 세계. 원할 때만 만나는 세계. 그 만남으로 서로의 세상이 흔들리겠지만 그 흔들림은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는 관계. 상대방이 나에게 의지하지 않고 온전히 혼자 감당할 걸 알기에. 그렇게 혼자 감당하고 싶어 한다는 걸 분명히 알기 때문에 더 확실히 내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할 수 있는 관계.

그런 식의 관계가 가능할까. 놀랍게도 가능했다. 그리고 더욱 놀랍게도 동민과 세영은 서로를 사랑했다.

동민은 세영에 대한 모든 정보를 검색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그렇게 검색하기를 세영이 원한다는 걸 알았다. 세영에 대한 정보 하나하나가 동민의 세계로 건너올 때마다 동민은 흐뭇하고 짜릿하고 행복했다. 동민은 자신의 세계가 조금씩 세영의 정보로 채워지는 걸 느꼈다. 이제 동민은 세영의 정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그리고 동시에 동민은 세영의 정보는 세영의 존재와 다르다는 걸 분명하게 알았다. 세영의 존재는 여전히 동민과 분리된 채 세영의 세계에 있다. 그 존재가 어느 날 동민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동민은 받아들였다. 세영의 정보가 오로지 동민에게만 귀속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것도 이해했다. 동민은 자신의 세계로 건너온 세영의 정보를 그 자체로 사랑하는 법을 익혔다.

온종일 세영의 영상만을 지켜본 적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요리하고 밥 먹고 산책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일하고 쉬고 다시 밤에 잠드는 걸 보았다. 세영의 손짓 하나 내쉬는 숨결 하나 솜털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때로는 세영도 그렇게 동민의 영상을 본다는 걸 알았다. 가끔 그러고 싶으면 동민은 세영이 자신의 정보를 검색했는지 확인했다. 실망할 때도 있고 뿌듯할 때도 있었지만 그 감정을 혼자서 감당하는 법을 익혔다.

둘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어느 날 뜻이 맞았던 두 사람은 온종일 서로 메시지를 보냈다. 쉴 새 없이 새로고침을 반복하며 상대방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고 둘 사이의 공간에 새로운 메시지를 던져 넣었다. 쌓이고 비워지기를 반복하는 메시지 하나하나가 너무 달콤해 견딜 수가 없었다. 둘은 어느 한쪽의 사정이 허락하지 않을 때까지 긴 대화를 나누었다.

가끔은 며칠 동안 메시지가 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메시지가 아니라도 세영의 정보는 끊임없이 동민에게 건너왔다. 그것만으로도 동민은 만족할 수 있다. 세영과의 접근 금지가 유지되고 있다는 게 오히려 동민을 안심시켰다.

세영과 동민 사이의 접근 한계선은 어느 때보다 분명했다. 둘 사이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통과할 수 없는 단단한 유리 벽이 있었다. 그렇기에 둘은 더더욱 안심하고 그 한계선에 바짝 달라붙었다.

가끔 그 벽을 뚫고 상대방의 세계로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솔직하게 말했다. 동민도 세영도 가끔 그런 의미의 메시지를 던졌다. 그리고 그걸 말했다는 거로 만족했다.

두 사람이 둘 사이에 있는 벽을 완전히 치워버리는데 동의할 수도 있지 않을까. 동민은 그걸 원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랬다. 세영도 마찬가지였다. 그 벽이 서로의 관계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걸 두 사람 모두 알았다.

어느 날 세영이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

[한세영] 우리 만나요.

[김동민] 설마.

[한세영] 당연히 아니죠.

[김동민] 그럼 어떻게요?

[한세영] 접근 금지를 안 푼다고 만날 수 없는 건 아니잖아요?

[김동민] 만나면 경보가 울리겠죠.

[한세영] 네.

[김동민] 적색 경보로 바뀔 거고.

[한세영] 네.

[김동민] 마취 가스가 뿌려질 거예요.

[한세영] 네.

[김동민] 그리고 접근 금지를 위반했다는 게 우리 기록에 영원히 남겠죠.

[한세영] 네.

[김동민] 좋아요.

[한세영] 지금 당장?

[김동민] 아뇨. 30분 뒤에.

[김동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그래도 좋으면.

[한세영] 좋아요.

동민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욕실로 뛰어들었다. 세영이 알고 있는 바디 워시로 몸을 씻고 샴푸로 머리를 감았다. 아마도 세영이 영상에서 자주 보았을 옷을 챙겨입고 정확히 30분이 지났을 때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세영의 현관문도 열렸다. 동시에 황색 경보가 떴다.

두 사람은 머뭇거리지 않고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비상 상황으로 인지한 인공지능이 적색 경보를 패스하고 바로 흑색 경보를 띄웠다. 동민과 세영이 서로의 입술을 겹쳤을 때는 이미 마취 가스가 뿌려진 뒤였다.

동민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시야를 잃은 건지 눈을 감은 건지 판단되지 않았다. 세영의 팔이 단단히 감고 있는 등의 감각이 조금씩 밋밋해졌다. 그래도 입술의 따뜻함과 촉촉함과 달콤함을 느낄 여유는 있었다. 동민과 세영은 다급하게 서로의 혀를 휘감았다.

세영의 혀가 뻣뻣해지는 걸 느끼며 동민은 안타까운 동시에 안도했다. 세영의 제안은 꽤나 멋있었다. 이 짧은 만남에 대한 기억이 동민의 세계에 아주 오래도록 남아 떠올릴 때마다 짜릿한 만족감을 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너무 자주하기는 힘들겠다고도 생각했다.

아무래도 세영과는 앞으로도 계속 접근 한계선에 바짝 붙어 서로를 바라보겠다고 생각한 것을 마지막으로 동민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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