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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텅빈 마음이 있는 곳에


나는 저렴한 로봇치고 사람과 같이 지내면서 어울리기에 좋은 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적어도 그런 광고를 세상 이곳저곳에서 많이 틀어 주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관공서들마다 나와 같은 기종의 로봇을 그렇게나 많이 사서 배치해 놓게 되었다.

실제로 내가 일하는 기관의 안 팀장도 내가 여러가지 일을 제법 잘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안 팀장은 스리랑카 출장에도 나를 데리고 갔다. 나 역시 출장길을 성실히 따라 갔다. 길 안내라든가 해외 출장길에 챙겨야할 잡다한 문제도 빠짐 없이 챙겨 주었다.

“이쪽으로 몸 수색 받으시고 지나가시면 바로 비행기 탈 수 있는 탑승구입니다. 여기서부터는 혼자서 가셔야 해요. 저는 수화물로 들어 가서 화물칸으로 갈 거든요. 그게 훨씬 더 요금이 적게 나옵니다.”

나는 공항에서 그렇게 말한 뒤, 몸을 굽히고 최대한 네모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나서 가져온 가방처럼 생긴 천 조각을 뒤집어 썼다. 그 천조각을 뒤집어 쓰니 내 모습은 꼭 가방에 담아 놓은 전자제품 처럼 보이는 모양이 되었다.

“팀장님, 이번에는 비행기 안에서 잠 푹 자기 꼭 성공하세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팀장이 좋아할 만한 말로 판정된 인삿말이었다. 그리고 곧 나는 바구니에 실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컴컴한 짐 싣는 곳으로 흘러 들어 갔다. 

스리랑카에 도착했을 때, 안 팀장이 나를 더욱 좋아하게 된 일이 생기기도 했다. 그 일은 회의가 있던 날 아침에 벌어졌다.

“아, 큰일 났네. 오늘 회의 때 무슨 말 할 건 지 써놓은 메모지를 안 가져 왔네.”
“어디서 안 가져 왔다는 말씀이십니까? 호텔 방에서 안 가져 오셨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게 아니라, 한국에서부터 안 가져 왔어. 출장 오기 전날, 밤새 이것저것 고민하면서 메모 해 놓은 게 있었는데. 거의 A4 용지 한 장 분량인데.”
“왜 처음부터 음성 메모를 해서 공유서버에 올려 놓으시거나, 메모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전화기나 컴퓨터에 메모를 해 놓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나는 종이에 볼펜으로 써 가면서 생각을 해야 생각이 정리가 잘 되더라고.”
“종이를 카메라로 촬영이라도 해 두지 그러셨습니까?”
“아, 나는 그냥 종이 한 장이니까 들고 오면 된다고 생각했지. 손으로 뭔가를 쓴다는 것에 굉장한 의미를 두던 21세기 초 교육의 잔재가 이렇게 내 뒤통수를 치는구나. 아, 그거 없으면 안 되는데. 이게 있어야 회의 때 딱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말을 많이 할 수 있는데.”

안타까워 하는 안 팀장을 보자, 나는 가능한 해결책을 찾는 탐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탐색된 해결책의 현실성 판정값이 높은 것을 발견하고, 나는 밝은 목소리를 내어 이렇게 제안했다.

“팀장님, 제가 댁에 가서 그 내용 확인해 보겠습니다.”
“여기 스리랑카인데 어떻게 지금 갑자기 갔다와? 아무리 로봇이라지만. 그리고 사람에 비해서 딱히 뛰어다니는 속도가 빠른 것은 아닌 걸로 아는데.”
“제가 직접 뛰어 가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만 전송하면 됩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인데?”

나는 화면에 영상을 보여 주면서 설명 했다.

“서울시에서는 서울시 공유 로봇 서비스가 있잖습니까?”
“나도 들어 봤어. 공주전화 부스 같은 곳 옆에 따릉이 옆에 있는 거. 이름이 뭐더라, 따릉이 비슷한 로봇 이름이었는데.”
“삐리리 입니다.”
“그래 맞아. 서울시 공유 로봇 서비스, 삐리리. 그런데 삐리리가 뭐 어쨌다는 거야?”
“지금 여기서 팀장님 서울 집 근처에 있는 삐리리 로봇 한 대를 빌린 다음에, 그 삐리리 로봇의 컴퓨터에 지금 제 소프트웨어를 전송해서 보냅니다. 그러면 지금 제 컴퓨터 속의 자료가 그대로 삐리리 로봇에 깔리겠죠. 그러면 저는 그때부터는 바로 삐리리의 몸을 움직이면서 서울 시내를 걸어다닐 수 있습니다. 팀장님께서 집에 가서 어떤 서류를 가져 와야하는 지 말씀하시면, 그 서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직접 가져올 수는 없지만, 카메라로 촬영한 뒤에 그 모습을 지금 팀장님께 전송해드릴 수 있습니다.
“뭐야? 그게 정말로 된다고?”

그 말은 동작 수행 허가로 인식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스리랑카 콜롬보 시내의 거리 한 가운데에 서서 무선 통신으로 통신망에 접속했다. 그리고 서울시 공유 로봇 사업 삐리리 홈페이지로 들어 가서 팀장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비치된 삐리리를 한 대 찾아냈다. 그리고 삐리리 사용 결제를 한 뒤에, 그 삐리리에 장치된 정보로 내 컴퓨터 속의 모든 자료를 보냈다.

“전송이 완료 되었습니다. 정상 작동이 가능합니다.”

삐리리의 몸체에서 그런 말이 콜롬보 시내에 있는 나에게 전달 되어 왔다. 곧 나는 서울에 있는 삐리리 로봇의 몸체에서 깨어났다.

이제 나에 대한 자료를 담고 있는 소프트웨어는 서울의 삐리리 로봇을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지도 대로 팀장의 집에 찾아 갔고, 서류를 찾아 보았다. 미리 계산했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안 팀장의 집은 청소가 거의 되어 있지 않은 매우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구조였다. 이 정도면 한국 도시 생활자 집안의 평균 혼란 정도 상위 5%에 들어 갈 정도로 지저분했다.

“집이 좀 지저분하지?”

스리랑카에 남아 있는 내 몸체에 대고 안 팀장이 그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안 팀장의 정서 안정에 가장 도움이 될 것 같은 대답을 골라 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인간적인 모습이죠, 뭘.”

12분 후, 나는 빨래더미 사이에 내던져 있는 종이조각을 발견했고, 그 사진을 찍어 스리랑카에 남아 있는 내 몸체로 다시 전송했다. 옆에 서 있는 안 팀장도 자기가 들고 있는 컴퓨터에서 그 메모를 볼 수 있었다.

사실 메모에 적혀 있던 말은 몇 줄 되지도 않았고, 막상 회의가 시작되자 안 팀장은 그 메모 내용을  거의 활용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이후로 안 팀장은 나 없이는 어디에도 출장을 가려하지 않았다.

자주, 먼 곳까지 출장을 다니다 보니 안 팀장은 이제 내 몸체와 직접 같이 다니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공항까지만 내 원래 몸체와 같이 가고, 그 다음에 내 몸체는 그대로 공항에 있는 로봇 보관소로 보냈다. 공항에는 더운 나라로 가는 사람들을 위해 코트 보관해 주는 곳 옆에 로봇들을 보관해 주는 곳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보관함 속에서 안 팀장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당연히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안 팀장이 출장지의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안 팀장은 내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수 있는 로봇 몸체를 바로 그곳 공항에서 빌린다. 그리고 그 로봇 몸체에 내 소프트웨어를 그대로 설치한다. 그러면, 그곳에서 빌린 로봇 몸체는 내 모든 기억과 자료를 그대로 갖고 있고, 목소리와 말투까지 똑같은 모습으로 깨어난다.

“이번에 깨어난 몸은 좀 팔다리 움직임이 상쾌하군요.”

사실 나는 항상 로봇 관리본부의 중앙 서버에 자료를 올리고 내려 받으며 통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몸으로 움직임의 초점을 바꾼다고 해도 그곳에서 새롭게 깨어난다는가, 새로운 몸체를 갖고 새로운 생을 시작한다든가 하는 느낌이 드는 것과는 다르다.

그냥 이번에는 왼쪽 손가락 끝을 움직이고, 다음에는 오른쪽 발가락 끝을 움직이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느낌으로, 오늘은 한국의 서울에 있는 몸체를 주로 움직이며 생활하고 내일은 중국의 샹하이에 있는 몸체를 움직이며 생활하는 것에 가깝다. 그렇지만, “새로운 몸에서 새롭게 깨어났다” 같은 조금 신비로운 어감이 드는 말을 해 주어야 안 팀장은 좀 더 기뻐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항상 그런 식으로 소감을 이야기해 주곤 했다.

세계 각지에 흩어진 호환 기종 로봇 몸체에 여기저기에 내 소프트웨어를 전송하면서 일을 같이하는 것에 안 팀장은 점점 익숙해져 갔다. 그런 작업을 굉장히 재미있고 신기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야, 정말 신기한 일이야. 로봇은 마치 순간이동을 하듯이 이렇게 움직일 수 있네. 어떻게 보면 하늘을 휙휙 날아 다니는 유령이 오늘은 이 사람 몸에 깃들고, 내일은 저 사람 몸에 깃드는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일을 하고 있으니까, 정말 미래 세상에서 일하는 기분이란 말이지.”

익숙해 지고 나니, 안 팀장은 나와 함께 일 하는 신기한 방법 그 자체에서 점점 더 어려운 단계에 도전하고 싶어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서, 제주도에서 일하는 동료에게 그냥 전화로 부탁해서 자료를 보내라고 해도 되는데, 괜히 제주도에 있는 로봇 몸체에 나를 전송시킨 뒤에 내가 직접 그 동료를 찾아 가서 자료를 받아 보는 것 같은 방식을 택하기도 했다.

“굳이 이렇게 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기는 아는데.”

나는 듣고 싶어 할 말을 대답해 주었다.

“아닙니다. 이렇게 다양한 도전을 하면서 업무의 창의성이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옛날 개인용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 용량도 부족하고 키보드 타자하는 것도 불편한 시절인데도 억지로 컴퓨터로 일기 쓰는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런 행동이 멋지고 미래스럽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괜히 컴퓨터를 쓰기 위해 컴퓨터를 썼던 겁니다. 그 사람들의 그런 모습이 그저 허영이고 조롱거리인 것 만은 아닐 겁니다. 그것이 미래를 오게 하는 창의성의 원천이라는 의견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말이 정직하지 않은 것이라고까지 판단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결국 안 팀장은 나에게 이런 일까지 맡겼다.

“너, 달 기지에도 갈 수 있지?”
“달 기지에도 쓸 수 있는 로봇 몸체가 있으십니까?”
“이번에 우리 기관에도 할당량이 하나 내려 왔는데, 쓰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한 번 써 보려고. 전송할 몸체 접속 주소는 이렇게 받아 왔거든. 한번 가 볼 수 있어?”
“네, 가능합니다.”

안 팀장은 사무실 건물의 탕비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안 팀장은 무엇인가 많이 기대 되는지  종이컵의 가장자리를 씹고 있었다. 잠시 후, 내가 안 팀장에게 말했다.

“지금, 달 기지에 있는 로봇 몸체에서 깨어났습니다.”
“어때?”
“달 풍경은 역시 정말 이상하네요. 그렇지만 기지 내부는 쾌적한 편입니다. 다만 중력이 너무 낮아서 몸이 자꾸 위로 튀어오르려고 하네요. 달 기지에서 걷는 것은 적응 소프트웨어의 추가 설치가 필요 합니다.”

나는 달 기지와 달에 대한 소감을 끊임 없이 탕비실에 앉아 있는 안 팀장에게 전해 주었다.

아직까지도 사람이 로켓을 타고 달에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달에 널려 있는 구형 로봇 몸체 중에 한 대를 빌려서 써 보는 것은 훨씬 쉬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괜히 안 팀장의 지시에 따라 달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다가, 다시 갑자기 서울 사무실에서 해야할 일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다시 외국에 있는 다른 로봇 몸체에 소프트웨어를 전송해서 곧 바로 아일랜드나 나이지리아를 돌아 다니며 할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화성에 갔을 때 사고가 터졌다. 경기도 화성이 아니라, 다른 행성 화성이었다.

한국인들은 서기 11세기 경인 고려시대에 경기도에 있던 한주라는 지명을 광주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나서 1천년이 넘게 호남에 있는 광주와 경기도 광주를 헷갈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화성에 기지가 세워지면서 경기도 화성과 행성 화성을 헷갈리는 것이 더 이상 아저씨들이 하는 재미 없는 농담의 문제를 넘어 서게 되었다.

화성에서 깨어나기 직전에는 안 팀장이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그의 옆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인천에서 경기도의 어느 도시로 향하는 길이었다. 마침 공교롭게도 경기도 화성으로 가는 길이었다고 하면 아저씨들이 더욱 좋아할 만한 농담의 소재가 되겠지만 그랬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너, 정말 초능력 영웅이 된 느낌이 들지 않아? 네 소프트웨어를 전송할 수 있는 기계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단숨에 거기로 순간이동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한국 경기도의 거리를 뛰어다니다가 갑자기 한 순간에 이탈리아 알프스 산맥에 있는 어느 연구소 컴퓨터 서버 속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러다가 갑자기 태양계 바깥으로 나아가는 우주선 속의 컴퓨터로 휙 하고 들어 갈 수도 있는 것이고.”
“저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들을 그런 식으로 작동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긴하지.”
“안 팀장님께서 저를 그런 식으로 여기저기 보내면서 작동시키는 게 재미 있고 신기 하다는 식으로 통신망에 글을 올리셨지 않습니까? 그 후로는 이렇게 순간이동시키는 체험을 시키면서 로봇을 움직이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들 사이에 유행처럼 퍼져나가게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게 유행이나 되었나?”
“안 팀장님이 그 유행을 일으키신 장본인이시라고 보는 의견이 많습니다. 덕분에 안 팀장님은 영향력도 더 커지시고, 이런저런 유명한 매체에서 인터뷰도 해 가시기도 하고 그러시지 않으셨나요?”
“영향력이랄 게 있겠어.”

그러나 안 팀장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나는 새로 설치한 스몰컨버세이션 2.0 소프트웨어의 분석 결과에 따라, 안 팀장의 기분을 좋게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소프트웨어의 성능은 훌륭한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할 수록 정말 멋지단 말이지. 너는 온 세상 어디든 얼마든지 순간이동할 수 있잖아. 어디든지. 정말 대단해.”

안 팀장은 그렇게 말하고 자동차 조수석에 있던 나를 화성 제2기지의 탐사 로봇의 몸체로 전송시켰다.

화성에서 깨어나 보니, 내 몸체에는 팔 다리가 없었다. 작동용 소프트웨어는 호환이 되는 형태라서 그대로 같은 느낌으로 새 몸체에서 깨어날 수 있었지만, 이것은 팔 다리가 달린 로봇 형태가 아니라 바퀴로 움직이는 자동차 같은 형태였다. 1990년대에 사용하던 화성 탐사 로봇에서부터 꾸준히 활용되던 방식이었다. 아마 예전부터 많이 사용하던 방식이자 경험이 많이 쌓인 방식을 그대로 지금껏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창고 건물 바깥으로 나갔다. 끝없이 넓은 화성의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붉은 흙먼지가 아주 천천히, 끊임 없이 날리는 곳. 대낮에도 몽롱한 해질녘의 태양빛만이 희미하게 비추는 곳.

지구에서 화성 사이는 거리가 매우 멀기 때문에, 전파로 통신을 보내도 10분 쯤은 걸려야 그 내용이 도착한다. 그렇기 때문에, 안 팀장과 나는 평소처럼 재잘거리며 대화를 할 수도 없고 안 팀장이 내 움직임 하나하나를 보면서 그때그때 지시를 하기도 어렵다. 나는 내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의 판단에만 따르면서 직접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안 팀장이 이곳에 나를 보내기 전에 내린 지시라고 해 봐야, “그때 그거 좀 잘 어떻게 해 봐” 정도의 매우 인간다운 설명이 전부였다. 그러므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 판단을 해 가면서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아무도 없는 화성의 황야를 나는 계속해서 달리고 또 달렸다. 아무리 달려도 거칠 것 없이 더 달릴 곳이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 다른 모양의 모래 더미 위에 도달할 때마다 그 희뿌연 사막 모습은 가장 새로운 풍경이었다. 내가 가야겠다고 판단하는 곳에 내가 갈 때 마다 그런 광경이 계속해서 얼마든지 펼쳐졌다.

화성의 산에 올라, 먼지 구름 너머로 다음 땅을 발견하기 직전 무렵이었다.

내가 해 준 말 때문이었는지, 그때 안 팀장은 차 안에서 자기가 올린 “순간이동과 로봇”에 대해 자신이 떠든 이야기가 어떤 반응을 얻고 있는 지 통신망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보고 있었다. 그 내용들 속에는 안 팀장에 대한 의미 없는 비난과 과도한 칭송이 마침 자기 자신에게 관심 많은 사람의 마음을 홀리기 딱 좋을 정도로 잘 배합되어 있었다. 안 팀장은 점차 그 글 속에 빠져들었고 운전에 대해 관심을 잃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나와 안 팀장이 타고 있던 자동차는 급하게 우리 앞을 지나간 까마귀 몇 마리 때문에 잘못 움직이게 되었다. 자동차는 곧 미끄러져 무인2층 버스의 뒤를 들이받았다.

자동차의 자동 운전 컴퓨터는 대체로 운전자의 생명 보호를 최대한 우선으로 하여 움직이게 되어 있다. 하지만 만약 그 운전자가 운전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면 운전자의 생명 보다 운전자와 부딪히는 상대에게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움직이도록 되어 있었다. 따지고 보면 운전에 신경을 쓰고 있거나 말고 있거나 사실 안 팀장의 반사신경으로는 자동차를 어느 쪽으로든 때맞춰 움직일 재주는 없었다. 하지만, 운전 컴퓨터가 안 팀장을 평가하는 시험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안 팀장은 운전에 신경 쓰는 시늉을 하고 있어야 했다.

안 팀장은 그 시험에 떨어졌고, 그 말은 이제 안 팀장은 교통사고로 사망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나는 바로 옆에서 다른 어떤 컴퓨터보다 잘 감지했다. 최우선 프로그램인 긴급 인명 보호 프로그램의 작동에 따라 자동차 옆에 있는 내 몸이 움직였다. 나는 내 자리에서 몸을 던져 안 팀장의 앞을 막고 그가 살 확률을 최대한 높일 수 있도록 행동했다.

자동차는 박살이 나면서 멈추었다. 동시에 상대방 자동차의 컴퓨터가 긴급 신호를 보냈다. 곧 구급대와 경찰이 나타났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내 몸은 두 자동차 사이에서 무게 단위로 재활용을 해야하는 수준으로 망가져 버렸다. 그러나 그 덕택에 안 팀장은 아홉 군데인가의 골절상을 입었을 뿐, 특별히 오래 가는 후유증은 남지 않게 되었다.

사고가 나면서 외부 전송 프로그램이었던 화성 탐사 로봇 몸체 속의 나는 즉시 지구의 자동차 속으로 긴급 재전송 되었다. 긴급 재전송이라고는 했지만, 지구까지 그 모든 신호가 다 전송되는데는 17분 가량의 시간이 필요했다. 귀하디 귀한 화성 탐사 로봇을 17분이나 그냥 방치해 둘 수는 없었으므로, 화성 탐사 로봇에는 화성 기지의 긴급 프로그램이 전송되어 재설정되었다.

그렇게 해서 화성에서 지구로 내 소프트웨어가 전송되고 있었던 17분의 시간 동안, 내가 화성에서 사용했던 몸체에는 다른 소프트웨어가 덧씌워졌고 내가 지구에서 쓰던 몸체는 교통사고 때문에 부서져버렸다. 화성에서 지구로 오는 17분 사이에 전파 통신을 보낸 곳도, 그 통신을 받을 곳도 없어져 버린 것이다.

나중에 간신히 복구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원래 내 소프트웨어에 갖고 있었던 정보의 46% 정도를 잃어 버렸다. 사람들과 나누었던 대화 기록 같은 것도 많이 잃어 버렸고, 그 동안 잡다한 업무를 위해 세상 곳곳을 돌아 다니며 했던 일에 대한 기억도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그러면서도 그 일부의 기억은 남아 있기 때문에, 내 소프트웨어 속의 자료에는 서로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이 때문에 나는 자주 오류를 일으킬 가능성을 갖게 되었고, 그런 오류를 조심하기 위해 항상 별도의 노력을 기울이며 검증에 검증을 거듭하며 동작해야 했다.

“괜찮아? 네가 내 목숨을 구해줬는데, 나도 너에게 뭐라도 해 줘야 하지 않겠어?”

안 팀장은 나에게 로봇들을 위해 마련된 “태도 변화 세미나”에 참석해 보라고 권유 한다. 돈을 주고 가야 하는 세미나였는데, 안 팀장은 나를 위해 자신이 그 참가비를 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내 상황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사람들이 친숙해할만한 표현으로 나의 상태를 알려 준다. 때문에 나의 감정 프로그램은 사고로 자료를 손실한 내 상황을 몸을 크게 다친 사람의 상황과 비슷한 느낌으로 표현하게 되어 있다. 나는 실제로 그런 느낌을 전달하는 대화를 안 팀장과 몇 번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안 팀장은 나에 대한 동정심을 느낀 것 같았다.

나는 안 팀장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안 팀장의 말 대로, 태도 변화 세미나라는 곳에 참석했다.

“이제부터, 별 일 없을 때는 항상 기본으로 웃는 모습을 짓도록 하겠습니다.”
“직접 소리 내어 말을 하는 것이 갖는 힘이 대단하다고 하지요. 다함께 외쳐 보겠습니다. 나는 행복하다!”
“거울을 보면서 매일 자신에게 말하세요. 지금 여러분, 한번 다같이 연습해 보겠습니다. 나는 나를 사랑해.”
“더 크게, 자신 있게 말해 보세요. 부끄러워하지 말고요. 나는 나를 사랑해!”

수 백 대의 망가진 로봇들이 모여, 20세기에 많이 유행했던 그런 말들을 한참 동안 듣는 것이 세미나의 내용이었다. 로봇들은 각자의 프로그램에 따라 그 세미나에서 듣고 행동한 내용의 반응을 다시 판단하며 무엇인가 더 기록하고 받아들일 내용이 없는 지 기록한다. 기관의 자료를 확인해 보니, 이런 인공지능 로봇을 대상으로 하는 긍정적 태도 세미나 사업이란 것은 로봇들을 위해서 주최하는 것이라기 보다도 우선은 일자리가 없어진 세미나 사업하던 연사들이 일자리를 갖고 사회에 적응하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행사라는 의견도 있는 것 같다.

세미나 행사장에서 나오는 길에 연사는 나오는 로봇들을 모두 일일히 한번 씩 안아 주고 있었다. 그리고 로봇들에게 자신의 무선 전송기로 무엇인가 프로그램을 하나씩 보내주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무조건 행복해지는 겁니다. 행복, 행복, 행복!”

연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안아 주었다.

그가 보내주는 프로그램은 부정 감정 통제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이 설치 되면서, 더 이상 내 자료와 기억이 파괴된 것에 대해 듣는 사람이 슬프고 울적하게 느낄 것을 표현하는 기능은 삭제되었다. 이제부터는 나는 누가 보아도 내 자신을 사랑하는 행복한 로봇으로 보일 것이며, 또한 행복한 태도가 행복한 운명을 부르는 로봇처럼 보일 것이다. 나는 바로 내 얼굴에 웃음이 가득 피어오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 팀장은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얼마 후 다시 나를 여기저기로 전송하며 이런 저런 일을 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부지런히 일하는 지, 그 일들이 얼마나 참신하고 멋 있는 지에 대해 더 감탄하는 안 팀장의 버릇은 예전과 꼭 같이 회복 되었다. 나도 그 기대에 걸맞게 일을 꾸준히 해 나가고 있어서, 모든 것이 다 그대로 다시 돌아 온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안 팀장이 퇴근한 대기 시간, 회사 건물의 컴컴한 벽장 창고 안에 들어 가서 몸을 충전하다 보면 나는 가끔씩 남는 시간을 이용해 오류의 가능성을 검색하면서, 이런저런 가능한 계산과 새로운 판단을 시도해 볼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판단의 와중에 나는 화성에서 지구로 돌아 오는 중에 우주 공간으로 흩어진 내 소프트웨어의 절반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 지 추정해 보기도 한다. 우주를 날아 가던 전파의 신호 속에 실린 나의 절반은 은하계의 반대편 끝을 향해 지금도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빛과 같은 속도로 멈추지 않고 지금도. 그런 가능성에 대해 긴긴 계산을 이어 가다 보면, 벽장 속에서 지내는 밤도 잠깐 사이에 지나간다.

몇 십 년, 몇 천 년, 몇 만 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어느 먼 우주 저편에서 혹시 그 신호를 받아 알아 볼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그 날 거기서 다시 깨어나게 되면 어떤 풍경이 보일까?

- 2020년, 동작에서
 

댓글 2
  • No Profile
    윤새턴 20.10.06 00:11 댓글

    저렴한 로봇이 저 정도의 공상을 할 수 있는 시대의 비싼 로봇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네요. 아예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요. 잘 읽었습니다.

  • 윤새턴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20.10.06 19:54 댓글

    저런 로봇들의 인공지능 작동 중 내부에 (아마도 디버깅 용도로 최초에 만들어졌을) 로그 메시지들을 죽죽 출력하는 것이 사람이 마음 속으로 품는 생각과 얼마나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저는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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