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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경 문어

2020.08.01 00:0008.01

문어

정도경

 

"그걸 대체 왜 먹었습니까?"  

"아니 그냥, 잠결에 이렇게 보니까 이쪽으로 오고 있어서..." 

"그렇다고 뭔지도 모르고 그걸 먹어요?" 

"뭔지도 모르긴요, 문어잖아요…” 

“무슨 근거로 그게 문어라고 확신했습니까? 잠결이었다면서요?”

“그냥, 딱 보니까 문어같이 생겼던데..." 

"그렇다고 그걸 먹습니까? 대학교 건물 복도에 문어가 돌아다니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 안 해 봤어요?" 

"아니 그러니까 계속 말씀드렸잖아요, 잠결에 이렇게 보니까 문어 같았다고...." 

벌써 한 시간째 똑같은 대화가 되풀이되고 있었다. 어쩌면 두 시간째인지도 모른다. 잡혀왔을 때 제일 먼저 소지품부터 다 뺏겼기 때문에 시계도 없고 핸드폰도 없고 심지어 나는 안경도 뺏겼다. 그래서 나는 눈앞도 잘 안 보이는 상태에서 위원장님하고 흐릿한 검은 덩어리처럼 보이는 정장 입은 사람이 똑같은 대화를 계속해서 되풀이하는 것을 옆에서 초점 없는 근시안으로 멀거니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안 그래도 초점 안 맞는 눈에서 점점 더 영혼이 빠져나가고 있는 와중에 위원장님이 자기도 의도하지 않은 폭탄을 던졌다.  

"근데 그 문어가 한 마리가 아니더라고요. 최소 두 마리고 안에 또 뭐가 들었던데..." 

"뭐라고요?"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이 긴장했다. 정확히 말하면 얼굴이 안 보이니까 실제로 긴장했는지 확신하긴 좀 힘들지만 목소리는 명확하게 날카로워졌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에?”

위원장님이 불분명하게 되물었다.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그걸 어떻게 아셨냐고요? 한 마리인지 두 마리인지?”

“먹어봤으니까 알죠…”

위원장님이 우물우물 대답했다. 

“한 놈은 싱싱하지만 엄청나게 질기고 다른 한 놈은 물렁물렁하니 맛이 갔던데요… 그런데 안에 이상하게 딱딱한 게 들어 있고…”

“어떻게 했습니까?”

“에?”

위원장님이 또 되물었다. 안경을 쓰지 않았는데도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의 표정이 짜증으로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위원장님은 일부러 자꾸 되묻는 것이 틀림없었다.

“안에 딱딱한 게 들어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거 어떻게 하셨냐고요?”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이 거의 비명 지르듯이 물었다. 위원장님이 다시 우물우물 대답했다.

“먹다 말았죠, 딱딱한데….”

“그럼 그거 지금 어디 있습니까?”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이 물었다. 

“모르죠, 먹다 말았는데….”

“먹다 말고 어떻게 했냐고요?”

“아니 그러니까 먹다 말아서….”

다시 같은 대화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견디지 못하고 내가 모기만한 소리로 끼어들었다.

“그거 제가 치웠는데요…”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의 시선이 돌연히 나에게 향했다. 위원장님도 덩달아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는 흠칫 놀랐다. 마치 내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것 같았다. 

“치웠다니? 버렸습니까?”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이 불길하게 냉정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뇨… 음식물 쓰레기니까 따로 버리려고… 냄비 가져다가…. 그랬는데…. 하필 그 때 다들 오셔가지구…”

나는 횡설수설 웅얼거렸다. 여기서 “다들”은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을 포함한 정부 요원들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그러나 그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으므로 나는 손가락으로 방 안을 모호하게 가리켰다.

“그 냄비 지금 어딨습니까?”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농성천막 안에… 아마 그대로 있을 거예요… 누구 다른 사람이 치우지 않았으면….”

내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이 벽에 붙은 이중거울을 손으로 톡톡 두드렸다. 전화기를 꺼냈다. 어딘가에 전화해서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속삭이며 문 쪽으로 걸어갔다. 내가 일어서려 하자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은 전화하다 말고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며 위협적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안경을 안 썼지만 그 적대적인 몸짓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얼른 도로 앉았다.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이 방을 나갔다. 나는 위원장님과 취조실 안에 단둘이 남았다. 

“진짜로 그건 왜 드셨어요?”

한참 정적이 흐른 뒤에 내가 물었다. 

“선생님까지 왜 그래요, 몇 번이나 대답했는데….”

위원장님이 우물우물 말했다.

“말했잖아요, 자다가 배가 고파서 깼는데… 나한테 오고 있었다고….”

일반적으로 새벽에 대학교 본관 건물 복도에서 문어, 혹은 문어처럼 생긴 어떤 것이 자기한테 다가오고 있으면 잡아서 끓여먹을 생각은 보통 잘 안 하지 않냐고 나도 묻고 싶었으나 위원장님이 정체 불명의 검은 정장 사람들을 약올리려고 느물거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당황한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그냥 입 다물고 조용히 있었다. 그리하여 취조실 안에 침묵이 흘렀고 배고픈 위원장님의 뱃속에서 들려오는 꼬르륵 소리만이 간간이 정적을 깨뜨렸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우리는 농성을 하고 있었다. 고등교육법 개정안, 일명 강사법이라고 하는 것이 제정되었고, 예상대로 대량해고 사태가 일어났고, 짤려서 열받은 선생님들이 대거 노조에 가입했기 때문에 우리 노조는 잠시 부흥기를 맞이한 것 같았지만 그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잘 모르겠고, 고등교육법 시행령과 대학 강사제도 운영매뉴얼에 따라 공개채용을 실시한다고 발표한 학교들 중에서 몇몇은 불분명한 채용기준을 제시하며 예전에 하던 대로 학과에서 내정한 자기 사람들을 꽂아넣고 자격을 갖춘 타학교 출신, 타과 출신 강사들을 밀어내려 했고, 강사를 많이 자르고 적게 뽑았기 때문에 강사들이 주로 담당하던 교양과목은 숫자가 대거 줄어들었고, 그리하여 학생들은 수강신청을 할 수 없어서 담당 강사와 담당 학과에 수강정원 증원을 요청하고 그래도 여전히 수강신청이 안 되니까 교양수업 대신 타학과의 1학년이나 2학년 전공수업을 신청하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인문계나 외국어문계 학과에서 개설한 수업들의 수강 정원이 갑자기 늘어났으며 그 중 전공 기초 과목을 절반 이상 타과 학생들이 채웠고, 그래서 강의실이 터져나가고 수업의 질은 떨어지고 강사의 업무량은 폭증했고, 한 학기쯤 시행령과 운영매뉴얼에 따라 공개채용과 임기 보장 등의 규정을 지키는 시늉을 하던 대학들은 강사법 제정 이후 몇 달 지나고 나니까 그렇게까지 법규정을 꼼꼼하게 지키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슬금슬금 자체 규정을 정하거나 학과 내규를 들먹이면서 이전의 주먹구구식으로 연줄과 인맥에 의존하여 쉽게 쓰고 쉽게 버리던 강사 채용방식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던 와중에 모 대학교가 강사법 시행에 관한 협약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기들 멋대로 강사 임용 규정을 제정해서 노조가 대학본관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돌입했으며 나는 해당 분회 소속은 아니지만 집중투쟁 기간이라고 해서 지원하러 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땡볕에 땀범벅이 되어 기자회견을 하고 구호를 외치고 총장실 앞에 가서 성명서를 전달하려 했으나 총장은 오늘 출근하지 않았다며 사무처 사람들이 나와서 우리를 총장실에서 멀리 떨어진 소회의실에 밀어넣으려고 해서 말다툼이 벌어졌고 경비회사 직원이 달랑 한 명 등장하여 불안한 표정으로 뒤에서 왔다갔다 하기 시작했고 위원장님이 우리는 총장을 만나러 왔으니 소회의실에는 들어갈 수 없다며 총장실 문 앞 복도에 주저앉았고 그래서 우리는 기자회견하고 나서 본관 앞에 늘어놓았던 현수막과 피켓을 전부 들고 올라가서 총장실 앞 복도에 눌러앉았고 세 시간 동안 그렇게 총장실 앞 복도에서 모기와 싸우며 구호를 외치고 궁상맞게 피켓에 기대 앉아 있는 사진을 찍어서 여기저기 인터넷 사이트와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올렸고 그 와중에 사무국장님이 아이스크림을 사왔고 위원장님이 혼자서 세 개 먹었고 다시 구호를 외치고 사무처 사람들하고 말다툼을 했고 경비회사 직원은 별 일 없을 것 같아 보였는지 슬그머니 사라졌고 그런 뒤에야 위원장님과 수석부위원장님과 사무국장님과 분회장님이 총장실에 들어가서 성명서를 전달했고 그리하여 우리는 3층에서 철수해서 1층으로 내려와서 저녁을 먹고 파업과 투쟁에 관한 영화를 보고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쳤고 그런 뒤에 대충 해산하고 다들 집에 갔고 그리하여 밤이 되자 위원장님 혼자서 농성천막을 지켰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벌써 반 년째 위원장님 집에도 못 가고 밤에 덥고 모기 많고 바닥도 딱딱하고 불편한 농성천막에서 지내면서 거의 혼자서 농성장을 지키다시피 하고 있어서 나는 밤이 되면 집에 가면서 언제나 위원장님한테 미안했다. 그랬다가 새벽에 선전전 준비하려고 나와 보면 위원장님은 밤새 술 마시고 곯아떨어져 있었고 천막 안에는 술 냄새가 진동을 했고 그러면 나는 술병과 맥주깡통과 안주 부스러기를 치우면서 위원장님한테 별로 안 미안해지곤 했다. 그리고 아침 여덟 시가 되면 같이 투쟁하는 대학노조가 와서 여러 가지 노래를 틀었는데 그 중에는 김광석의 “일어나”가 있었고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 보는 거야~”라는 후렴구가 기운차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위원장님이 술 냄새 가득한 농성천막 안에서 드르렁 코 골면서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는 과연 투쟁이라는 게 본래 이런 것인지 심히 회의가 들곤 하였다. 

그러나 달리 방법은 없었다. 강사는 학교의 천민이었다. 학생 수가 폭증하고 수입이 줄어들고 처우가 나빠져도 짤리지 않고 남아 있다는 사실을 고마워하라는 것이 학교측의 태도였다. 강사들이 사용하던 공동연구실 세 곳 중에 두 곳이 폐쇄되고 순식간에 리모델링을 하더니 강의실과 사무실로 용도가 바뀌었고 남은 공동연구실에는 이전에 컴퓨터가 다섯 대, 프린터가 두 대 있었는데 방학이 지나고 나니 컴퓨터 세 대와 프린터 한 대가 사라져 버렸다. 강사실의 책상과 의자도 몇 개가 사라졌고 강사실에서 매주 마주치던 선생님들도 어느 샌가 사라졌다. 

나는 그렇게 사라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나의 천직이었다. 학생은 선생이 없어도 스스로 배우고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학생이다. 그러나 선생은 학생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학생들을 사랑했고 강단을 사랑했고 교육의 가치를 진심으로 믿었다. 그것이 내 존재의 의미였다. 그러므로 싸워보지도 않고 학교가 원하는 대로 조용히 사라져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침마다 술 냄새 가득한 농성천막에 가서 술병을 치우고 사무국장님한테 전화하고 위원장님을 깨우고 피켓을 내다 놓고 구호를 외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준 뒤에 뒷정리는 사무국장님한테 맡기고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달려가서 다른 학교로 수업하러 가곤 했다. 그리고 나는 아직까지 짤리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그랬는데 위원장님이 문어를 먹어버린 것이다. 

그것도 한 마리처럼 보이는 두 마리를 말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아침에 평소처럼 농성천막에 갔더니 술 냄새와 함께 가스버너 위에 먹다 만 라면이 시큼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국물은 화장실에 가서 따라내고 남은 건더기는 나중에 따로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천막으로 돌아오는데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나타나서 앞을 막았다. 처음에 나는 농성천막을 철거하러 온 학교 직원들인 줄 알고 곧바로 전화기부터 꺼내들었다. 농성천막 철거하러 사람들이 오면 절대로 대들지 말고 위원장님은 들려 나가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동영상 찍어두기로 이미 얘기가 돼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 검은 정장 입은 사람들은 천막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맨발에 쓰레빠 신고 머리가 헝클어진, 어떻게 봐도 방금 자다 깬 것이 명백한 위원장님과 함께 검은 차를 타고 어딘지 모를 검은 빌딩에 끌려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위원장님은 어김없이 지독한 술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차 안에서 멀미를 했다.

그러니까 검은 빌딩에 도착했을 때쯤 내가 그 남은 문어가 든 냄비를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위원장님의 술 냄새에 쓸려서 이미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땅바닥에 그냥 내려놓고 왔었나? 끌려오기 전에 천막 안에 갖다 뒀던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그냥 멀미가 나서 토할 것만 같았다. 검은 정장 사람들 엿먹으라고 그냥 토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나 자신의 사회적 위신과 체면을 생각해서 참았다.

뭐 어찌 됐든 냄비는 농성천막 주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끓인 문어가 살아나서 도망치지 않았다면 검은 정장 입은 사람들이 지금쯤 찾아냈을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창문 없는 방에 멀거니 앉아서 위원장님을 쳐다보고 있었다. 또 다시 위원장님의 뱃속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질긴 놈이 그래도 싱싱해서 맛은 괜찮았는데.”

위원장님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써 놓으면 위원장님이 굉장히 한심한 사람 같은데 물론 가끔 가다 한심한 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꼭 언제나 한심한 건 아니었다. 위원장님은 노조 활동 경력이 길고 투쟁 경험이 많고 치열하고 노련하고 냉철하고 단단한 사람이었고 나는 처음 본 순간부터 위원장님을 신뢰했다. 전쟁의 기본은 피아 구분이고 그런 관점에서 위원장님은 완전한 나의 아군이었다. 학교측이 나를 몰상식하게 대하거나 강사로서 일하다가 부당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하소연하면 위원장님은 언제나 내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었고 현실적인 의견을 신중하게 제시했다. 그래서 나는 위원장님의 제안을 대부분 따랐고 위원장님이 부르면 어디든 갔다. 내가 일하는 학교에는 노조의 분회가 없었고 그래서 나는 본조에 직접 가입해 있었으므로 나는 말하자면 위원장님에게 소속되어 있는 셈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느끼기에 위원장님이 나의 노조였다. 그래서 농성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아침에 일찍 와주면 좋겠다는 위원장님의 말에 즉각 동의했다.

그리하여 나는 매일 아침 술병을 치우고 농성천막을 환기하여 술 냄새 빼는 일을 주로 하게 되었고 위원장님은 나나 사무국장님이 깨우면 비틀비틀 일어나서 씻으러 갔다가 초췌한 얼굴로 돌아와서 선전전에 참여하고는 내가 수업 들어갈 때쯤 아침 먹으러 또 비틀비틀 사라지곤 했다. 그래서 나는 저 위원장님이 계속 저렇게 매일같이 밤새 마셔대다가는 단체협상 타결되기 전에 술병나서 구급차에 실려가는 게 아닐까 아침마다 걱정했다. 그러나 오후에 농성장에 들러보면 위원장님은 아침에는 다 죽어가다가도 밥 먹고 나면 갑자기 반짝 살아나서 나한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나의 노조는 대학 강사들의 노조이고 조합원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학교 선생님이다. 그러므로 위원장님도 선생님이고 그러므로 기본적인 대화의 방식은 강의였다. 그래서 나는 다른 노조들은 다 지부 아니면 지회라고 하던데 왜 우리 노조는 분회라고 하는지 질문했다가 우리 노조의 역사에 대해서 장장 두 시간 동안 특강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위원장님의 강의가 다 끝난 뒤에 나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다시 물었다.

“그래서 왜 분회인데요?”

“글쎄요.”

위원장님이 잠시 생각한 뒤에 대답했다.

“사람 수가 적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렇다. 우리는 매우 작은 노조였다. 그것이 정답이었다. 

그러나 그 간단한 답을 알아내기 위해서 두 시간 동안 강의를 들어야 했던 것을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위원장님은 아직 술 냄새가 약간 남아있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투쟁도 잘 하고 행진도 잘 하고 깃발도 잘 들고 위압적인 체격과 우렁찬 목소리와 인상적인 외모를 가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위원장님은 농성천막 안에 가스버너를 갖다두고 함께 농성하는 우리들에게 차도 끓여주고 코코아도 끓여주고 라면도 끓여주었고 더운 날에는 팥빙수도 사주고 아이스크림도 사주었다. 그러면서 위원장님은 노조에 일어났던 여러 가지 사건들에 대해서, 자신이 겪어온 삶과 투쟁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위원장님은 자기 편에게 한없이 다정하고 소탈한 사람이었고 함께 있으면 나는 자상한 선생님과 함께 있는 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업 시간에 설명을 너무 많이 해서 항상 쉬는 시간까지 다 잡아먹지만 그래도 학생을 대하는 마음만은 언제나 진심인, 뭐 그런 선생님 말이다.

그리고 문어가 나타났던 것이다.

 

검은 빌딩에서 풀려나서 농성천막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은 저녁이었다. 농성장에 아무도 없고 천막은 홀랑 뒤집혀 있었다. 땅바닥에 농성장 집기와 비품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지만 가스버너와 냄비는 사라지고 없었다. 

“버너는 왜 가져갔어? 이 나쁜 새키들이…”

위원장님이 분노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지금 버너가 문제가 아니었다.

“보강을 해야 될 텐데.”

나는 난장판이 된 천막을 바라보며 망연히 중얼거렸다. 사실은 내가 소리내어 중얼거리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도 못했다. 검은 빌딩 안에 갇혀 있느라고 나는 하루종일 수업을 하지 못했다. 수업만 못 한 게 아니라 휴강공지도 보강신청도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아무 예고도 없이 학생들한테 알려주지도 못하고 보강 일정도 못 잡고 그냥 수업을 빼먹은 것은 평생 처음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대체 그 사람들 누구예요?”

내가 조그만 목소리로 소심하게 분노했다. 

“연행을 할 때 하더라도 자기들 누구인지 신분부터 밝히고 무슨 일인지 말을 해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지금이 군부독재 시절도 아닌데 사람을 이렇게 마음대로 끌고 가서 잡아두는 법이 어디 있어요?”

예고도 없이 휴강했다가 강의평가 점수가 떨어져서 혹시 다음 학기에 짤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되기 시작해서 나는 더더욱 화가 났다. 소청심사를 청구해야 하나? 사유에 뭐라고 써야 하지? 문어 때문에 휴강했다고? 내가 먹은 것도 아닌데? 지하철은 연착되면 확인서 써주던데 검은 정장 사람들도 연행 및 취조 확인서 같은 거 써 주나? 문어 때문에 연행됐다고?

“경찰은 아닌 것 같던데…”

위원장님이 불분명하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경찰이었으면 자기 신분을 밝혔을 거예요. 그보다는 정보부 쪽 같던데….”

“정보부요?”

내가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 

“국가정보원이나 뭐 그런 거 말씀이세요?”

국정원 요원들이 검은 정장 입고 들이닥쳐서 사람을 잡아가는 건 드라마에나 나오는 장면인 줄 알았다. 그런데 문어가 국가 안보하고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나의 위원장님은 대체 얼마나 굉장한 문어를 끓여 먹은 것이란 말인가?

그러나 위원장님은 이미 전화기를 꺼내들고 사무국장님한테 전화해서 열띠게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위원장님을 버려두고 천막을 정리하기 위해서 들어갔다. 쓰러진 천막은 내가 혼자 일으켜 세울 수 없고 나중에 사무국장님 오시면 다른 선생님들이랑 같이 고쳐 세워야 할 테니까 나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여기저기 흩어진 농성장 살림살이부터 쓸어모으기 시작했다. 

뭔가 뒤에서 내 등을 툭툭 쳤다. 

“사무국장님 오신대요?”

나는 당연히 위원장님이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물으며 일어서서 돌아보았다.

문어였다. 거대한 문어가 다리로 나를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 지구-생물체는-항복하라.

문어가 말했다. 아니 ‘문어가 말했다’는 이 문장은 상식적으로 굉장히 이상하지만 하여간 그 당시 나는 문어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문어가 말하는 걸 듣다니 내가 정신이 이상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같이 했다. 애초에 대학교 건물 안에 복도를 꽉 채우는 크기의 거대 문어가 등장해서 빨판투성이 다리를 굼실거리며 나에게 말을 거는 사건이 내 평생에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 지구-생물체는-항복하라.

문어가 다시 말했다. 그와 동시에 아무 것도 없이 그냥 전체가 하얗고 맨질맨질하게 보이던 문어 대가리의 가운데 부분 일부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새까맣고 커다란 외눈이 문어 대가리를 한 바퀴 돌아 서서히 움직여서 위아래로 떨리며 세밀하게 초점을 맞추더니 정면으로 나를 향했다.

- 지구-생물체는-항복하라.

이 시점에서 사실 나는 웃고 싶었다. 그러니까 사람이 너무 충격을 받아서 약간 실성하면 넋을 잃고 웃는 그런 거 말이다. 그러나 복도를 가득 채운 비린내가 견딜 수 없이 지독했고 무엇보다도 문어의 새까만 외눈이 하얗고 매끈한 대가리 표면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아서 나를 향했다가 위아래로 떨며 초점을 맞추던 모습이 너무나 그로테스크해서 나는 웃어야 할지 토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웃으면서 구역질하면서 쳐다보는 사이에 문어는 다시 네 번째로 같은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 지구-생물체는-항

까지 말했을 때 둔탁한 소리가 비린내를 뚫고 복도를 울렸다. 문어의 눈이 다시 빙글 돌아갔다. 그리고 문어는 쓰러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뻣뻣이 서 있던 대가리가 이상하게 비정상적으로 많아 보이는 다리들 사이로 푹 꺼졌다.

“문어 대가리가 말이 많아.”

위원장님이 전화기를 치켜들고 말했다. 그리고 치켜든 전화기를 흘끗 쳐다보았다. 액정 화면을 가로질러 화려하게 금이 간 것을 보고 위원장님은 아깝다는 듯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약정 아직 안 끝났는데… 그렇지만 월척을 잡았으니까.”

그리고 위원장님은 전화기를 바지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으며 나를 바라보고 물었다.

“문어회 먹어요?”

“네?”

나는 여전히 넋나간 웃는 표정이 고정되어버린 얼굴로 구역질을 참으면서 되물었다. 그러나 위원장님은 나의 대답을 듣지 않고 이미 문어 해체 작업에 돌입해 있었다. 

“어디 보자… 머리 안쪽을 이렇게 뒤집어서… 먹물 주머니를 떼어 내고… 선생님 거기 어디 가위 있어요? 저기 있네. 가위 이리 주세요.”

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위원장님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서 가위를 가져왔다. 위원장님은 전화기에 맞아 기절한 문어의 머리 안쪽을 뒤집어 가위로 자르고 내장을 잡아당겨 꺼내기 시작했다. 그 서슬에 먹물 주머니가 터져서 검은 액체가 대량으로 흘러나왔다. 위원장님은 신경 쓰지 않았다. 신나게 혼자서 중얼거리며 문어 해체 작업을 속행했다.

“먹물은 씻으면 되고… 다 꺼내서… 이제 가져가서 물에다 씻고....” 

그리고 갑자기 위원장님이 고개를 들고 나에게 말했다.

“이거 눈하고 이빨 떼기 전에 물에 씻어야 되는데 좀 도와주실래요?”

나는 위원장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너무 커서 그래요.”

위원장님은 대학교 복도에 나타난 거대 문어를 기절시켜 해체하는 것이 마치 일상다반사인 양 평범한 어조로 설명했다.

“화장실 앞까지만 같이 들어주면 내가 씻어다가 적당히 잘라서 오늘 저녁에 삶아서 문어숙회 해줄게요. 버너는 사무국장보고 하나 더 가져오라고 하면 되니까….”

“드신다구요?”

내가 지구 생물체의 항복을 요구하던 거대 문어의 힘없이 늘어진 다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걸요?”

“생물 문어 이렇게 큰 거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요?”

위원장님이 말했다. 

“자, 그쪽 잡아서 들어주세요. 하나, 둘, 셋.”

나는 얼떨결에 위원장님이 시키는 대로 문어 다리를 들었다. 먹물이 흘러나와 복도를 적셨다. 검고 비린내나는 액체가 발에 묻을까 봐 나는 질색하며 옆으로 피했다. 위원장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화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엉겁결에 따라가다가 나는 먹물 속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잠깐만요, 위원장님.”

내가 신나게 문어를 들고 화장실로 가려는 위원장님을 불렀다.

“여기 뭐가 있어요.”

나는 문어 다리를 내려놓았다. 먹물 속에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넣었다. 먹물의 감촉은 나의 불길한 예상대로 찐득했고 예상과는 달리 뜨뜻했다.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감촉이지만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안에 있는 빛나는 물체는 단단했다. 

“이게 뭐죠?”

내가 문어 먹물 속의 빛나는 물건을 집어올리며 말했다.

“그거 도로 내려놓으십시오.”

뒤에서 누군가 조용히 명령했다.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였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이 나에게 고갯짓을 했다.

“내려놓고 물러 서세요.”

위원장님과 나와 문어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위원장님이 몹시 실망한 얼굴로 문어를 내려놓았다. 나도 먹물 속에서 발견한 단단하고 빛나는 물체를 도로 문어 먹물 속에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물러섰다.

“가시죠.”

아침에 안경을 뺏기고 취조실에 갇혀 있을 때는 흐릿한 검은 덩어리처럼 보이던 사람이 위원장님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또요?”

내가 소심하게 항의했다. 검은 덩어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포기하고 걸음을 옮겼다.

위원장님도 검은 정장 입은 사람들을 따라서 몇 걸음 가다가 멈춰 서더니 아쉬운 듯 문어를 돌아보며 뭔가 말하려 했다. 그러나 검은 정장 입은 사람들이 문어를 둘러싸는 모습을 보고는 도로 입을 다물고 시무룩하게 걷기 시작했다. 나는 위원장님과 함께 또 다시 검은 차에 탔고, 이번에는 나와 위원장님의 손에 묻은 지독한 비린내 때문에 멀미를 했다

 

이후에 일어난 일들은 별로 길게 쓸 가치가 없다. 나는 새벽까지 취조실에 붙잡혀 있으면서 또 다시 검은 덩어리와 위원장님이 어긋나는 대화를 한없이 되풀이하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아야 했다. 거대 문어의 정체도 모르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왜 왔는지도 모르고 그러나 삶아서 먹으려고 했다는 위원장님의 답변을 검은 덩어리는 절대로 믿어주려 하지 않았다. 나는 먹물 속에 들어 있던 빛나는 단단한 물체가 어디에 쓰는 무슨 물건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수백 번 되풀이해서 설명해야 했다. 위원장님이 문어를 해체했고, 먹물주머니가 터졌고, 문어를 씻으려고 화장실로 옮기려다가 먹물 안에서 빛나는 물체를 발견했을 뿐이라고 나는 몇 번이나 반복해서 진술했다. 그러면 검은 덩어리는 위원장님한테 문어를 왜 해체했는지 물었고, 어째서 먹으려 했는지 물었고, 문어가 어디서 왔는지 왜 하필 다른 곳도 아닌 우리 노조 농성장에 접근했는지 물었고, 위원장님은 싱싱한 문어 구하기가 얼마나 힘드는지 아냐며 노조 위원장이 아니라 횟집 사장님 같은 발언을 되풀이했고, 검은 덩어리는 무슨 목적으로 문어를 먹으려고 했는지 물었고, 위원장님은 문어회의 맛있음을 강력히 장황하게 설파했고, 검은 덩어리는 대화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목표물을 바꿔서 나에게 먹물 속에서 빛나는 물체를 찾아낸 경위에 대해 다시 물었고…. 다람쥐 쳇바퀴는 뭐 대략 그런 식으로 돌아갔고, 그리하여 새벽에 검은 빌딩에서 풀려나서 검은 차에 실려 나와 다시 농성장에 떨구어졌을 때는 나와 위원장님은 서로 다른 이유로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검은 차에서 내려서 본관에 들어서자마자 위원장님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문어부터 찾았다. 그러나 복도는 깨끗했다. 먹물도 비린내도 흔적조차 없었다. 

“그 사람들이 가져갔을 거예요.”

내가 반쯤은 위로하는 말투로, 반쯤은 위원장님을 단념시키기 위해서 말했다. 

“그렇겠죠?”

위원장님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크고 싱싱한 놈 정말 오랜만에 봤는데….”

그러면 전에도 그만한 크기의 거대 문어를 보신 적이 있다는 얘기인지, 역사학 전공자가 문어 해체는 대체 어디서 배웠는지 묻고 싶었지만 날이 밝아왔고 나는 이틀이나 예고 없이 휴강할 수는 없었으므로 뒷일은 사무국장님한테 맡기고 서둘러 수업하러 갔다.

 

이후로 위원장님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노조 활동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기관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문어에 대한 질문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나도 문어 해체의 현장에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위원장님이 검은 차에 실려갈 때 세트로 함께 실려가서 또 다시 엇나가는 대화를 하염없이 강제로 지켜보았다. 

한편 그러는 사이에 수석부위원장님과 사무국장님이 전해준 학교측 상황은 또 그 나름대로 기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학교가 외계 생물체를 몰래 숨겨놓고 연구하고 있었다는 소문이 퍼졌고, 천문우주학과와 생물학과 교수들이 모두 국정원에 불려갔다는 이야기도 떠돌았으며, 이과대 건물이 실제로 한동안 폐쇄되었고 그 뒤에도 시시때때로 휴강공지나 실험실 폐쇄 공지가 나붙는 걸 보니 아주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총장이 CIA에 납치되어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소식이 대단히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나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교는 어째서인지 서둘러 우리 노조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고 전격 합의를 해 버렸다. 합의서에 서명하던 날에 이사장과 함께 총장도 현장에 있었으니까 CIA에 끌려가서 행방불명되었다는 소문은 거짓말이 분명했지만 이사장도 총장도 초췌한 얼굴에 눈이 퀭한 것이 학교에서 뭔가 내놓고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는 교육부 감사를 받게 되었고 그러자 총장과 이사장과 교무처장과 총무처장이 동시에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했고 아무도 총장의 공석을 메우려 하지 않았고 감사가 계속 진행된 결과 이듬해에 학교는 부실대학으로 지정되어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그로 인하여 전공 기초과목들이 대거 사라지거나 변경되었고 절대평가이던 과목들이 전부 상대평가로 바뀌었고 폐강 기준 인원이 상향조정되었고 학과 조교 처우가 급격히 나빠졌고 그래서 총학생회와 우리 노조와 직원들 노조인 대학노조가 다같이 농성에 돌입했고 이번에는 사무국장님이 밤에 집에 갈 때 가스버너를 챙겨서 가지고 갔다가 아침에 가지고 왔는데 지난번에 뺏긴 가스버너와 냄비를 돌려받지 못한데다가 앞으로는 농성장 지키는 사람이 밤중에 아무 거나 끓여먹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해야겠다고 잠정적으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위원장님은 문어 때문에 여기저기 정부기관에 불려다니느라 바빴다. 이제 검은 정장 사람들이 빛나는 물체가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밝혀낸 듯하여 나를 빼고 위원장님만 불려다니는 경우가 점점 많아져서 위원장님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그 와중에 노조의 다른 분회들은 모두 단체협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모 국립대 분회장님이 식사 자리에서 살짝 해준 뒷이야기에 따르면 우리 노조가 “잘못 건드리면 학교 하나 날려버릴 수 있는” 집단으로 소문이 났다고 했다. 문어하고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지만 말을 잘못 꺼냈다간 또 그 검은 덩어리들이 어디선가 나타나서 또 차멀미를 하면서 끌려가서 또 다음날 수업을 공치게 될 것 같아서 나는 열심히 밥과 반찬을 입안에 욱여넣고 문어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위원장님은 임기가 다 끝나고 새 위원장이 선출되었을 때에도 문어 때문에 불려다니며 시달리느라 퇴임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이후로 사무국장님과 분회장님이 이제는 전 위원장이 된 위원장님의 행방을 걱정할 때면 나는 속으로 문어를 떠올리며 내가 여기서 입을 열면 우리 모두 끌려가서 위원장님을 만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의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어서 매번 망설이다가 그냥 가만히 있곤 했다.

 

위원장님을 다시 만난 것은 위원장님의 임기가 끝나고도 장장 일 년이나 지난 뒤였다. 처음 보는 지역번호가 붙은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왔고 나는 모르는 번호임에도 어쩐지 그 검은 덩어리들일 것이라고 직감했으며 받을까 말까 했지만 또 강제로 끌려가면서 멀미하기는 싫어서 전화를 받았고 역시나 수화기 저편의 목소리는 그 때의 그 검은 덩어리가 틀림없었다. 

“몇 가지 서류에 서명만 해 주시면 됩니다.”

검은 덩어리가 왠지 불길하게 들리는 차분하고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면 다 끝날 겁니다.”

그래서 나는 서명을 하러 갔다. 그리고 그곳에 위원장님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또 다시 어긋나는 대화를 한없이 강제로 지켜보아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검은 덩어리가 말한 대로 몇 가지 서류에 서명하고 나니 그것으로 진짜 끝이었다. 나와 위원장님은 차례로 풀려나서 검은 빌딩 밖으로 차를 타지 않고 걸어 나왔다. 검은 차에 실려다니며 멀미할 때는 몰랐는데 검은 빌딩에는 조그만 철제 대문이 달린 정문이 있었고 철제 대문 옆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해양정보과’라는 낡은 현판이 붙어 있었다. 

“밥 먹을래요?”

정문 밖으로 나와서 현판을 지나 검은 덩어리들의 밀실을 떠나서 문명 세계로 돌아왔을 때 위원장님이 물었다. 그 질문을 들은 순간 나는 강렬한 허기를 느꼈다.

“네.”

내가 대답했다. 

그래서 우리는 밥 먹으러 갔다.

 

“그러니까 진짜 외계 생물이 맞긴 맞나봐요. 그 저기, 옛날 공상과학 소설에 나오는 문어 외계인 말이에요. 공상과학 소설 알아요?”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이제는 전 위원장님이 된 위원장님이 낮은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나는 공상과학이 아니고 과학소설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랬다가는 위원장님이 공상이라는 단어의 어원과 서유럽 역사에서 과학의 발전과정과 중산층 계급의 성장에 따른 대중문화의 확산에 대해 강의하기 시작할 것이 뻔했으므로 꾹 참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총장이 개인사업자하고 몰래 거래를 해서 들여왔는데 그게 국제협약 위반이라서 문제가 된 거예요.”

외계생물을 거래하는 사업자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외계생물 거래에 대한 국제협약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그런 사업자가 그런 국제협약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도 나는 생전 처음 알았다. 그리고 분명히 아까 우리가 서명한 서류에 이런 얘기를 ‘해양정보과’의 검은 빌딩 바깥에서 입 밖에 내어 말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던 것 같았지만 위원장님은 내가 질문할 기회를 주지 않고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빠르게 말을 이었다.

“처음에 라면에 넣어서 먹다가 버린 그 문어는 사실 진짜 생물체가 아니고 우리가 봤던 그 큰 문어 외계인이 만든 복제문어였는데 문어 외계인들이 그 안에 또 뭔가 다른 복제 생물체를 넣어서 지구에 대한 정보를 빼내가려고 했나봐요. 그랬는데 중간에 통신이 끊어지니까 원본이 나선 거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서 복제문어와의 통신을 끊은 장본인을 찾아온 거라면 외계문어가 상당히 똑똑하다고 나는 생각했으나 이 시점에서 음식이 나왔기 때문에 대화는 잠시 중단되었다. 위원장님은 산더미처럼 쌓인 미나리와 청경채가 끓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주의 깊게 버너의 불을 조절하면서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다시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해양정보과 사람들이, 사실은 우리가 실질적으로 지구를 구한 거니까 상이라도 줘야 되는데 워낙 기밀인데다가 혹시 총장하고 한 패인가 싶어서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신중하게 조사하다 보니까 이렇게 됐다고, 미안하다고 그러더라구요.”

아니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거든 나도 있는 자리에서 같이 사과할 것이지 왜 위원장님한테만 사과한단 말인가? 차멀미에 시달리고 강제로 수업 휴강하고 검은 덩어리와 위원장님의 엇나가는 대화를 한없이 지켜봐야 했던 고통의 시간들이 떠올라서 나는 분노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해양정보과가 대체 뭐 하는 곳인데요?”

내가 민원이라도 넣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물었다.

“그런 부서는 없어요.”

위원장님이 웬일로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국자를 들어 청경채와 미나리를 조심스럽게 뒤적였다.

“이거 다 익었어요. 드세요.”

위원장님은 나의 개인 접시를 가져다가 음식을 덜기 시작했다. 청경채와 미나리를 걷어내자 그 밑에서 맑은 국물 속에 발갛게 익어가는 문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위원장님은 가위를 집어들고 능숙하게 문어 다리를 잘랐다. 육수 속의 문어를 바라보면서 해양정보과와 빼앗긴 라면냄비와 검은 빌딩과 농성천막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나는 어쩐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되어 버렸다.

“저 선생님 좋아해요.”

내가 말했다. 위원장님은 시선을 들지도 않고 그대로 문어를 자르면서 대답했다.

“저도 선생님 좋아합니다. 문어 드세요.”

또 다시 대화가 엇나가고 있었다. 위원장님에게는 나보다 문어가 중요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서 가스버너 위의 냄비 너머로 위원장님에게 얼굴을 최대한 들이대고 다시 말했다.

“선생님 좋아한다는 말, 진짜 진심이에요.”

그리고 나는 자리에 도로 앉았다. 

이후로 어색한 침묵 속에 문어를 먹으면서 나는 이것으로 완전히 차인 게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해야 할 말을 했으므로 후회는 없었다. 위원장님을 만나지 못하는 동안 어렴풋이 느끼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다시 얼굴을 보았을 때 확실히 깨달았고 이제 위원장님은 임기가 끝났기 때문에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나를 다시 만나주기는 할지 알 수 없었으므로 나는 말해야만 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 위원장님은 다른 일정이 있다며 가 버렸고 나는 혼자서 집에 돌아오면서 이제 평생 문어는 다시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결심했다. 

 

외계문어에 관한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노조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고 아마 앞으로도 오랫동안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외계문어로 학교를 “날려버렸던” 노조의 약발은 오래 가지 못했다. 대학들은 강사를 더 잘랐고 교양과목을 더 줄였고 분회 사무실을 빼앗았고 강사실을 폐쇄했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수업이 장기화되자 대학들은 이참에 온라인 수업 허용 비율을 무한정 늘이려고 시도하기 시작했다. 팬데믹이 장기화되는 지금 같은 경우 학교측은 방역조치를 강화하고 개설강좌 숫자와 강좌당 분반 숫자를 늘리고 한 분반에 배정되는 수강인원을 축소하고 모든 수업에 더 넓은 강의실을 배정해서 학생들이 물리적인 거리를 유지한 채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조치하고 필요하다면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학생들에게 의무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측은 이런 비용과 노력을 들이고 싶어하지 않았고 책임과 희생을 만만한 강사와 학생들에게 전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실시간 화상수업은 어차피 대면수업의 쌍방향 의사소통이 아닌 일방향 수업이니까 수업의 질이나 강의하는 사람의 업무량 따위 무시하고 수강인원을 대폭 늘려도 상관없을 것이고 동영상 컨텐츠로 수업을 대신하면 사람이 매 학기 직접 강의를 할 필요가 없으니까 강사를 더 잘라도 될 것이라는 게 학교측의 계산이었다. 무슨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학교측은 수업을 폐강하고 남은 수업의 수강인원을 최대한 늘리고 강사를 자르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학생들은 수업의 질 저하를 지적하며 등록금 반환을 요구했고 강사들은 생계의 위협에 몰리면서 동시에 교육의 근본을 내다 버리려는 학교측의 작태에 분노했으며 지금도 분노하고 있다. 

한편 위원장님은 나의 예상과는 달리 소원하던 문어를 먹은 다음날 나에게 전화해서 사귀어도 되냐고 물었고 나는 이제 위원장님 임기 끝나서 위원장과 조합원이라는 위계가 없으니까 괜찮지 않냐고 반문했으며 그리하여 나는 위원장님이 각종 해양생물을 해체하는 식생활에 참관하는 관계가 되어 다시는 문어를 먹지 않겠다는 결심은 무너져 버렸다. ‘문어’와 ‘무너져’로 말장난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써놓고 보니까 그렇게 됐지만 괜찮아 보이니까 굳이 고치지는 않겠다. 외계생물 암거래와 관련 국제협약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지금도 알지 못하므로 혹시 아시는 분 계시면 제보해 주시면 좋겠지만 또 다시 검은 차에 실려서 멀미하면서 검은 빌딩에 끌려갈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으므로 해양정보과에 들키지 않게 몰래 제보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애인님이 된 위원장님을 바라보면서 가끔 그 때 학교 복도에서 비린내를 풍기며 눈이 돌아가던 거대 외계 문어를 생각하곤 한다.

- 지구-생물체는-항복하라.

우리는 항복하지 않는다. 나와 위원장님은 데모하다 만났고 나는 데모하면서 위원장님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도 함께 데모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교육공공성 확보와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해방과 지구의 평화를 위해 계속 함께 싸울 것이다. 투쟁.

댓글 1
  • 글쓴이 정도경 20.08.01 11:09 댓글

    의도했던 건 아닌데 2020년 8월 1일은 일명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 시행 1주년 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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