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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이든 핼러윈이든

노말시티

“어머. 정호 엄마, 몰랐어? 오늘 핼러윈이잖아.”

단지 내 상가에서 사탕과 초콜릿을 쓸어 담으며 아래층 민준이 엄마가 핀잔을 주었다. 핼러윈? 아, 할로윈. 수진은 살짝 자존심이 상했지만 얼굴에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묘하게 성질을 긁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단지에서 수진에게 말을 걸어주는 몇 안 되는 엄마들 중 하나였다. 순진해서 그럴 거야. 남편이 무슨 사업을 하는지 돈을 그렇게 잘 벌어다 준다지. 참자. 정호를 위해서라도. 민준이와 정호는 같은 반이었다.

가진 돈을 박박 긁어모으고 대출도 한계까지 뽑아내서 단지 내에 초등학교가 있는 아파트, 소위 초품아라는 이곳으로 이사 왔다. 퇴직금까지 중간 정산해서 돈을 마련하는 걸 남편은 탐탁치 않아했지만 수진은 막무가내였다. 누구는 아이 때문에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데 고작 이 정도를 가지고. 대형 평수로만 구성된 아파트라 학교 분위기가 남다르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미리 이곳에 이사와 주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었다. 전학해서 적응하기가 만만치 않다던데. 가뜩이나 소극적인 정호의 성격을 생각하니 수진은 한숨만 나왔다.

“정호 입힐 코스튬은 준비했어? 핼러윈인 것도 모르는 걸 보니 준비 안 했구나? 우리 애들 작년에 입었던 거 어디 넣어놨을 텐데. 이따 정호 내려 보내. 하나 빌려줄게. 동네 애들 다 쏟아져 나올 텐데. 이럴 때 어울려야지.”

수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할로윈. 아니 핼러윈. 역시 부자 동네는 다르구나. 발음도 헷갈리는 외국 명절을 온 동네가 챙긴다는 걸 보니. 어렸을 때부터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애들을 커서 노력한다고 따라잡을 수 있겠어? 난 이미 틀렸지만, 우리 정호만큼은 꼭 그 무리에 집어넣을 거야. 여기 애들이 가는 곳은 지옥이라도 쫓아가야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억지로 현관을 나서는 정호의 뒷모습을 보며 수진은 속에서 불이 났다. 먼저 나서서 들러붙어도 애들이 끼워줄까 말까인데 자꾸 뒤로 빼기만 하니 갑갑해 죽을 지경이었다. 여기 이사 오려고 엄마 아빠가 무슨 고생을 했는지 알기나 할까. 다른 애들은 끼가 넘치다 못해 되바라질 정도인데. 이 험한 세상을 대체 어떻게 살아가려고. 수진은 사자 우리에 밀어 넣는 심정으로 싫다는 아이의 등을 떠밀어 민준이네 집으로 보냈다.

쿵 하고 현관문이 닫혔다.

수진의 속은 타들어갔다. 같은 동 아랫집이니 중간에 잘못될 일은 없겠지. 현관 앞이나 계단에 주저앉아 있는 건 아닐까. 수진은 문을 열고 나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언제나 이렇게 물러나고 감싸주기만 해서 아이가 나약해졌는지도 몰라. 민준이네 전화를 해 볼까. 어딘지 구차했다. 쿨하지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 민준 엄마의 핀잔을 또 듣고 싶지가 않았다. 수진보다 한 살 많으면서 더 어려보이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수진도 젊었을 때는 꽤나 인기가 있었다. 나도 집안일 다 사람써서 하면서 편하게 살면 그 정도는.

띵동띵동. 수진은 흠칫 놀라 일어서며 문을 열었다.

“트릭 오어 트릿!”

아이들의 입에서 유창한 발음이 흘러나왔다. 수진은 얼른 아이들을 훑어보았다. 죄다 가면을 뒤집어쓰고 망토까지 둘러서 누가 누군지 구별하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정호는 없는 듯 했다. 거리낌 없이 서로 떠들며 쥐어박는 모습이 정호일리는 없었다. 수진은 얼른 사탕 바구니를 가지고와서는 한 움큼씩 일일이 나누어 주었다. 한 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 여기 새로 이사 왔거든. 삼학년 이반 없니? 박정호 아는 애 없어? 정호랑 사이좋게 놀아라. 우리 집 놀러오면 아줌마가 맛있는 것도 많이 해 줄게.”

아이들은 수진의 말에 관심이 없었다. 세금을 걷듯 사탕을 쓸어 담고는 자기들끼리 왁자지껄 떠들며 아래층으로 몰려 내려갔다. 역시 정호가 저기 끼어있을 리는 없었다. 수진은 힘없이 이마를 짚으며 현관문을 닫았다.

답답한 마음에 거실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차가 다니지 않는다는 단지 안에서 마음껏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바람을 타고 밀려올라와 바로 앞에서 떠드는 듯 또렷했다. 정호의 목소리는 없었다.

일 년에 딱 한 번, 아이들을 풀어 준다고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원 뺑뺑이를 돌아야 하는 아이들은 일 년에 딱 한 번, 발음도 생소한 핼러윈에는 가면을 쓰고 모든 학원과 숙제에서 벗어나 마음껏 떠들고 밤새 몰려다니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했다. 오늘 밤 저지르는 그 어떤 잘못도 용서해 준단다. 밤이 지나고 가면을 벗으면 밤새 저질렀던 말썽들도 모두 벗어지고, 다시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모범생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아이들은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돌아다녔다. 술에 취했을 리도 없을 텐데, 마치 술 취한 사람들처럼 이리 휘청 저리 휘청 몰려다녔다. 그러다 자기들끼리 투닥거리고 쫓고 쫓기며 요란을 떨었다. 뭔가를 집어 던지는 아이들도 있었다. 사탕인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애써 나눠 준 사탕을 망설임 없이 바닥에 던지며 깔깔댔다. 가끔 서로에게 집어 던지기도 했다.

그런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수진의 눈에 유령처럼 허연 천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가면을 쓴 아이 하나가 보였다.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에게 사탕 세례를 받으면서도 반격은커녕 도망치는 것조차 굼떴다. 도망치는 건지, 쫓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아이가 움직이면 다른 아이들은 자석에 당겨지고 밀려나듯 그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다 휘청, 아이가 쓰러졌다. 쓰러진 아이 위로 몰려든 아이들의 발길질이 쏟아졌다.

정호?

불길한 예감이 수진의 등골을 훑었다. 뒷목이 뻣뻣해지는 걸 느끼며 수진은 정신없이 현관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이가 쓰러졌던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허연 천을 뒤집어썼던 아이도, 발길질을 퍼붓던 아이도 모두 없었다. 바닥에는 깨진 사탕과 짓뭉개진 초콜릿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반대쪽 놀이터에서 들려왔다. 수진은 그쪽으로 달려갔다.

아이들은 놀이터에 모여 사탕과 초콜릿을 까먹고 있었다. 여전히 시끌벅적했지만 아까처럼 요란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허연 천을 뒤집어 쓴 아이는 없었다. 정호는 어디 있지? 수진은 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흡혈귀와 처녀 귀신과 미이라와 늑대와 거미와 박쥐와 프랑켄슈타인. 수많은 작은 악마들 중 자신의 아이가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정호야. 말이 나오다 목에 걸렸다. 밖에 나와 있는 어른은 자신밖에 없었다. 아이들만 가득한 이곳에서 정호의 이름을 부르고 돌아다니면 아이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마마보이라고 손가락질 당할지도 모른다. 전학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런 이미지가 덧씌워진다면. 수진은 떨리는 손을 겨드랑이 사이에 넣고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넘어진 아이에게 발길질을 퍼부었던 건 자신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이들은 그저 일으켜 주려고 했던 건지도. 다쳐서 쓰러져 있지도 않았잖아. 허연 천을 뒤집어 쓴 아이가 정호가 아닐지도 모른다. 거리낌 없이 서로 떠들며 놀고 있는 저 아이들 가운데 정호가 있을지도 모른다. 소심한 아이지만 가면을 썼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이 할로윈이 정호에게는 딱 맞는 시기에 열린 고마운 축제인지도 모른다.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돈도 많고 똑똑하고 영어도 잘 하고 매너도 좋은, 하여간에 근본이 다른 아이들과. 요새는 개천에서 나봐야 미꾸라지밖에 안 된다지. 빚에 허덕이며 천 원짜리 한 장도 망설이며 써야하는 이런 삶을, 할로윈을 핼러윈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주눅 들어야 하는 이런 삶을 아이에게 물려줄 순 없어.

현관 번호키를 누르며 수진은 또 다시 만감이 교차했다. 정호가 너무 보고 싶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집 안에 사랑스러운 아이가 눈을 초롱거리며 앉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건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는 걸 의미했다. 안 된다. 아이가 집안에 있어서는 안 된다. 덜컥 문이 열리고, 덩그러니 켜진 거실 전등만이 수진을 맞이했다. 남편은 오늘도 야근이다.

생각을 비우기 위해 텔레비전을 켰다. 공허한 웃음소리가 거실을 채웠다. 수진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소파에 앉아 매 분 마다 시계를 확인했다. 낡았지만 아직은 쓸 만한 소파를 버리고 빚을 더해 장만한 비싼 소파였다. 이웃들을 초대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부드럽게 몸을 감싸주는 폭신한 소파가 지금은 바늘처럼 수진을 찔러댔다. 벌떡 일어나 하릴없이 거실을 돌았다.

스마트폰 사 달라고 할 때 사 줄걸. 요즘 애들은 다 하나씩 들고 다닌다던데. 몇 푼이나 한다고. 그 말 없는 애가 뭐 사달라고 한 건 그게 처음이었는데. 답답한 마음에 수진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할 때 전화하는 걸 안 좋아하는 남편이었지만, 누구하고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무슨 사고라도 칠 것 같았다. 통화음이 한참동안 이어지고서야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무슨 일이야?”

수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무실은 아닌 듯 했다. 남편은 모래같이 까끌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오빠 어디야? 많이 늦어?”

“어 지금 접대 중이라… 최대한 빨리 들어가 볼께. 왜? 무슨 일 있어?”

남편은 자꾸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수진은 무슨 일이 생겨버릴 것 같아 점점 더 불안해졌다. 남편이 화를 낼 걸 알면서도, 수진은 정호의 이야기를 했다.

“정호가 친구랑 놀러 나갔는데… 아직 안 들어와. 아무 일 없겠지?”

“뭐? 지금이 몇 시인데!”

“오늘 그… 핼러윈이라고… 동네 아이들 다 나와서 놀고 있거든… 아마 정호도 같이 잘 놀고 있을 것 같긴 한데… 괜히 마음이 불안해서…”

“핼… 뭐? 할로윈? 무슨 족보도 없는 서양 명절 축하를 한다고 이 밤중에 애를 내보내!”

“여기서는 다들 그렇게 한대… 우리도 적응해야지.”

술이 얼근히 들어간 듯 남편은 목소리가 높아졌다. 수진은 그런 목소리라도 들으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 자기 자신이 싫었다. 결국 남편은 최대한 빨리 빠져나와 보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수진은 다시 텔레비전 소리만 가득한 거실에 내던져졌다. 그대로 주저앉아 초점 없는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쇠사슬이 끌리듯 시간이 흘러갔다. 여전히 아이의 소식은 없었다. 시간은 벌써 자정에 가까워졌다.

끼아아아악.

창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사색이 된 수진이 황급히 난간 밖으로 몸을 뺐다. 내려다보이는 바깥에는 아무도 없었다. 동과 동 사이를 들여다보려 몸을 더 뺐다. 수진의 몸이 반 이상 난간을 넘어 아슬아슬하게 걸렸다. 아무도 없었다.


수진은 터질 듯한 심장을 부여잡고 인터폰을 집어 들었다. 몇 번이나 헛기침을 하고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딸각 소리와 함께 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호보다 굵은, 어른스러운 목소리였다.

“민준이니? 아… 나 정호 엄만데. 혹시 정호 지금 거기 있니?”

“아뇨. 전 먼저 들어왔는데.”

수화기 너머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준이는 말을 미처 다 끝마치기도 전에 아이들과의 대화에 섞여 들었다. 아 좀 가만히 좀 있어봐. 그거 그냥 놔두라고. 너 죽는다.

“…그래? 그럼 지금 정호 어디 있는지 혹시 아니?”

민준이는 아이들과 떠드느라 수진의 말을 못 들은 듯 했다. 수진은 고개를 돌려 헛기침을 하고는 좀 더 굵고 확실한, 하지만 화가 난 기색을 뺀 목소리로 아이에게 물었다. 민준이는 그제야 대답했다.

“몰라요. 밖에 나가서는 흩어져서 따로 다녔어요. 가면 써서 누가 누군지도 몰라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와 불길한 예감이 섞여 수진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견뎌야 해. 고작 이런 것도 못 견디면. 수진은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렇구나. 그럼… 혹시 우리 정호 무슨 옷 입고 나갔는지는 아니? 네가 빌려줬잖아.”

“몰라요. 기억 안 나요.”

뚝. 인터폰이 끊겼다. 수진 머릿속의 무언가도 함께 끊겼다.


수진은 미친 듯이 단지 안을 헤집고 다니며 아이를 찾았다. 아이들의 수는 반 이하로 줄어들어 있었다. 악마와 귀신과 괴물로 변한 아이들은 이제는 좀 지친 듯 흐느적거리며 단지 안을 돌아다녔다. 허연 천을 뒤집어 쓴 유령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어깨를 잡고 흔들며 아이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연기인지 진심인지 가면을 쓴 아이들은 으르렁거릴 뿐 대답이 없었다.

휴대폰을 사줄 걸. 할로윈인지 핼러윈인지에 내보내지 말 걸. 여기에 이사 오지 말 걸. 아니 예전에 미리 이사 올 걸. 바보. 바보. 바보. 바보. 수진은 달빛이 가득한 단지 안을 상처 입은 짐승처럼 헤매고 다녔다.

수진이 경비실 문을 벌컥 밀어 젖히자 졸고 있던 경비가 깜짝 놀라 일어났다. 얼굴에 불쾌한 기분이 가득했지만 수진은 개의치 않았다.

“우리 아이, 우리 아이가 없어졌어요!”

아이가 없어졌다는 말에 경비의 눈이 잠시 커졌다가 이내 심드렁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단지 안 어딘가에 있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하로윈인지 뭔지 그것 때문에, 오늘 밤 만큼은 아이들이 마음껏 돌아다니게 내버려두는 대신 단지 밖으로는 못 나가게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는 말을, 방금 전 까지 졸고 있던 사람이 천연덕스럽게 늘어놓았다.

“방송이라도 좀 해 주세요! 예감이 이상해요!”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방송을… 좀 기다려 보세요. 애들 다 들어가고 나서도 안 보이면 그때 찾아 볼 테니까.”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니까 그러죠! 아무리 찾아도 없고! 우리 애가, 우리 정호가 그럴 애가 아니라고요!”

“아니 근데 이 아줌마가 왜 소리를 질러!”

삐뽀삐뽀삐뽀.

구급차 소리였다. 아파트 정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수진이 먼저 새파래진 얼굴로 뛰쳐나갔고 경비가 허겁지겁 모자를 챙겨 쓰고는 뒤를 따랐다.

아파트 정문에서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 쪽에 새빨간 경광등을 번쩍이는 구급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주황색 옷을 입은 구급대원들이 누군가를 들것에 실어 옮기고 있었다. 수진이 정신을 놓고 구급차로 뛰었다. 지나가던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고 아슬아슬하게 멈춰 섰다.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욕을 했지만 수진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구급대원들 사이로 쓰러진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수진이 너무나도 잘 아는 얼굴이었다.

“…오빠?”

“아는 분이세요?”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고 구급대원이 말해 주었다.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걸 지나가는 사람이 신고했다고. 술을 마시고 걸어오다 미끄러져서 머리를 부딪친 것 같다고. 끄응. 신음 소리를 내며 남편이 몸을 꿈틀댔다. 게슴츠레 뜬 눈으로 수진을 바라보더니, 남편은 술 냄새 가득한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어… 여기 어디지? 내가 왜…”

“오빠 지금 뭐하는 거야! 지금 우리 정호가 어디서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겠는데, 왜 오빠까지 내 속을 썩여! 도대체 왜! 다들 나한테 왜 그러냐고!”

이럴 때가 아니었다. 정호를 찾아야 했다. 수진은 눈물을 씻으며 구급대원을 뿌리치고 돌아섰다. 보호자 아니냐는 말에 그런 사람 모른다고 소리쳤다. 사람들은 미친 사람 보듯 수진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미쳤는지도 몰랐다. 갑자기 현실감이 없었다. 낯선 동네, 낯선 사람들. 남편도 낯설었다. 수진의 머릿속에는 아이 밖에 없었다. 어서 정호를 찾아서 여길 빠져나가야 해. 수진은 꿈속을 걷듯 무거운 팔다리를 이끌며 단지 안을 헤맸다.


혹시나 하고 집에 가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어디에서도 아이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시 단지 안을 구석구석 찾아 헤맸지만 소용없었다. 시커멓고 육중한 콘크리트 기둥 중간에 켜져 있던 불들이 하나둘씩 꺼져갔다. 아직 환하게 밝혀진 곳은 몇 집 되지 않았다. 그 중 하나가 수진의 눈에 들어왔다. 701호. 민준이네 집이었다.

수진은 정신없이 동 현관을 찾아 들어가 승강기 버튼을 눌렀다. 20층에 세워져 있던 승강기가 꿈지럭 거리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기다릴 수가 없어 계단을 뛰어 올랐다. 7층에 도착했을 때는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벨을 누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수진은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는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진은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아니 대체 누구… 어머, 정호 엄마 아냐? 어머, 어머. 꼴이 이게 뭐야? 무슨 일 있어?”

민준 엄마는 머리가 온통 흐트러지고 땀에 절어 있는 수진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어쩌면 사람의 눈 같지 않은 눈을 보고 놀랐는지도. 수진은 민준 엄마를 거칠게 밀치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거실은 난장판이었다. 집 안에서도 여전히 가면을 쓴 아이들이 거실에 깔아 놓은 이불 위에서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흡혈귀와 처녀 귀신과 미이라와 늑대와 거미와 박쥐와 프랑켄슈타인. 작은 악마들이 일 년에 한 번 오는 밤, 무엇을 해도,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가 되는 밤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 정호 어딨니. 정호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난 절대 용서하지 않아.

수진은 흡혈귀의 어깨를 잡아챘다. 아까 인터폰에 떴던 가면이었다. 가면을 벗겼더니 역시 민준이였다. 흉측한 가면 뒤에 감춰져 있던 아이의 눈동자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정호 어딨니? 응? 정호 어딨냐고? 우리 정호 무슨 옷 입고 나갔어? 허연 천에 우는 가면, 그거 맞지? 어딨어? 어딨냐고?”

“아줌마 왜 그래요… 무서워요… 오늘 핼러윈인데… 엄마가 실컷 놀아도 된다고 했는데…”

“정호 엄마! 지금 애한테 뭐하는 거야?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냐고?”

수진의 귀에는 이제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말리는 민준 엄마의 팔을 다시 한 번 뿌리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가면을 쓴 채로 이곳저곳 구석으로 도망가 떨고 있었다. 프랑켄슈타인만이 놀라서 몸이 굳은 듯 아직 거실에 얼어붙어 있었다. 수진은 얼른 프랑켄슈타인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거칠게 가면을 뜯어냈다. 우리 정호 어디 있니.

정호는 놀란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와 엄마는 단지 내 정원에 놓인 벤치에 앉아 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오랜만에 신나게 뛰어놀아 피곤한 듯 엄마에게 기대 눈을 감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혼자 걱정하고, 혼자 뛰어다니고, 혼자 난리치고. 할로윈이라고. 수진에게는 잊고 싶은 끔찍한 날이었다. 민준 엄마 얼굴을 어떻게 보지. 그보다 정호, 우리 정호 괜히 엄마 때문에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면 어쩌지. 바보. 바보. 바보. 수진은 괜히 부아가 치밀어 아이에게 따졌다.

“그런데 민준이는 너랑 놀면서 너 이름도 모르니? 아까 전화하니까 너 없다고 했단 말야.”

“아까 애들이 한꺼번에 가면이랑 옷이랑 막 꺼내 입어서 그래요. 누가 누군지 모르는 게 재밌다고. 핼러윈에는 원래 그러고 논대요. 여기서는.”

아이가 잠이 들려다가 설핏 깨어 엄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수진은 한숨을 쉬며 아이의 머리를 쓸었다.

“그래, 아이들은 괜찮아? 많이 친해졌어?”

“네. 전에 학교 친구들도 좋은데, 여기 애들도 좋아요. 다 착해요.”

“근데 왜 그렇게 가기 싫다 그랬어. 아까는.”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겠지만 오늘 밤엔 꼭 아이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수진은 심술궂은 아이처럼 재차 캐물었다. 아이는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엄마 혼자 집에 있는 게 싫어서. 아빠 들어오시면 놀러가려고 했어요.”

그래. 다 내 잘못이야. 바보같이. 난 대체 뭘 하고 사는 걸까. 수진은 하늘의 달을 올려다보았다. 흡혈귀와 처녀 귀신과 미이라와 늑대와 거미와 박쥐와 프랑켄슈타인이 허연 천을 뒤집어 쓴 유령을 쫓아가고 있었다. 유령은 끼아아아악 비명을 질렀다. 그 광경이 하나도 이상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오늘 밤 수진은 모든 게 낯설었다. 수진은 다시 잠이 드려는 아이를 깨웠다. 나랑 놀아줘.

“정호야. 오늘 엄마 때문에 많이 놀랐지? 미안해. 엄마가 바보 같이.”

“…괜찮아요. 오늘은 핼러윈이잖아요. 오늘 밤에 한 일은 모두 용서된대요. 내일이면 다 잊을 거래요.”

아이의 말이었지만, 수진은 왠지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제야 남편이 생각났다. 이 인간. 괜찮을까. 수진은 다시 기대려는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정호야. 가자. 아빠 문병가야 해.”

“아빠? 아빠 다쳤어요?”

“응. 근데… 괜찮을 거야. 큰일 날 뻔 했다고 했으니까…. 큰일은 안 나겠지. 어서 가보자.”

아이는 눈을 부비며 벤치에서 일어나 엄마의 손을 잡았다.

오늘은 할로윈, 아니 핼러윈. 모든 성인의 밤. 모든 악마의 밤. 세상에 없는 밤. 모든 것이 용서되는 밤. 가면을 쓰지 않았다고요? 괜찮아요.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사니까요. 원래부터. 평소에 가면을 쓰지 않는 아이들만 핼러윈에 가면을 쓰죠. 해피 할로윈, 해피 핼러윈. 할로윈이든 핼러윈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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