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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시간여행문

2019.11.01 00:0011.01

시간여행문

곽재식

혜란을 궁예파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없잖아 있었다. 혜란도 가끔 반 농담으로 자기 자신을 궁예파라고 부를 때가 있었다. 시간 여행에 대해 남들보다 훨씬 더 관심이 많고, 시간 여행이 가능할 거라는 생각에 빠져 드는 일이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듣듯이 자주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쟤는 어떤 사람이라서 저런 걸 좋아하지”라고 궁금해 할 법도 했다.

“너 이런 거 좋아해?”

그렇지만 “수덕만세” 계획에 관한 기사를 열심히 읽고 있는 혜란의 모습을 보고 규도가 물었을 때에 혜란은 당황했다. 언뜻 들어 봐도 규도가 물어 보는 투에 밝은 느낌만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너 이런 거 좋아해?”라는 말에서 “이런 거” 대신에 “선량하게 사는 삶”이나 “남을 대하는 친절한 태도” 같은 좋은 말을 대신 넣으면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말투였다.

“오늘 같은 날에는 누구든 관심 가질 만 하잖아.”

“정말 그래? 그래도 너무 열심히 보는 거 아니야? 원래 관심이 좀 있었기는 하니까 그래도 더 그렇게 열중해서 열심히 보겠지.”

“그렇다면 그렇긴 한데. 그래도 막 깊이 빠져 있고 그런 건 아니고.”

“궁예파 집회 같은 데도 나가?”

“아니, 아니. 무슨 집회에 나가. 절대 아니야. 그냥 관심만 좀 있는 거지.”

“그런데 시간여행 이론 좋아하는 사람들은 점점 거기에 빠진다고 하던데?”

“다 그렇기야 하겠니. 그리고 그런 것도 다 정도가 있지.”

“너는 어느 정도인데?”

혜란은 잠깐 “음”하고 말을 멈추었다.

“사실 시간여행 이론에 관심이 생기면 혹할 만한 내용이 있기는 있어.”

대화가 길어지다 보니 두 사람은 어느 새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간여행이라는 게 어떤 장치를 이용해서 과거로 갈 수 있다는 거잖아.”

혜란이 말했다.

“그런데 미래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간이 과거거든. 그러니까 언젠가 시간여행 기술이 가능해지면 분명히 지금 우리가 사는 오늘을 향해서 미래에서 누가 올 수도 있단 말이야.”

“그렇겠지.”

“그러면 미래에서 누가 와서 어떤 모습으로 뭐라고 말 할 지 궁금하지 않아? 신기하기도 하고 말이야. 그러니까 관심이 생길만하지.”

“궁예파 애들은 그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던데.”

“그 정도가 아니면?”

“궁예파 애들은 먼 미래의 사람들은 분명히 아주아주 사회와 문화와 지식이 극히 발전한 시기에서 살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는 거야.”

“사회와 문화 지식이 극히 발전한 시기라고?”

“왜 옛날에 특이점, 지수적 발전, 무슨 점, 뭐 그딴 거 엄청 떠들면서 ‘자기는 신비로운 너희들은 모르는 세계를 알고 있노라’고 혼자 신비로운 척하고 싶어서 아주 죽을 지경인 애들 많지 않았냐? 그 비슷하게 궁예파 애들은 먼 미래의 사람들은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다른 경지의 엄청난 문화와 기술을 갖고 있을 거라고 믿는데.”

“좀 과장이기는 하지만, 뭐 그것도 그럴 법 하지 않아? 너는 미래가 돼도 별 차이가 없을 거 같아?”

“아니아니, 그런 건 아니고.”

두 사람의 이야기는 잡다하게 갈래를 치면서 이리저리 길어지고 있었다. 규도는 혜란에게 점심 시간 되었는데 밥이나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혜란은 같이 식사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과 같이 식사를 하는 게 굉장히 오래간만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새로 생긴 냉면 가게로 갔다.

“사실, 궁예파, 그런 쪽 생각에 진짜 깊이 빠진 사람들은 뭘 믿냐면,”

자리에 앉고 주문을 마치자 혜란은 이야기를 다시 이어나갔다.

“먼 미래에 엄청나게 발전한 사람들은 분명히 우리 모두를 완벽한 행복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을 거라는 거야. 지금보다 훨씬 훨씬 상상도 못하게 발전한 시대의 사람들은 온갖 병을 치료해 줄 수 있는 기술도 있고, 온갖 괴로웠던 기억이나 우울한 추억이나, 겪고 있는 삶의 문제들을 다 해결해 줄 방법도 알고 있겠지. 문화도 엄청나게 발달했으니까, 도대체 인생을 왜 사는가, 우주라는 게 도대체 왜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도 아주 명쾌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고.”

“그럴 듯 한데?”

“그런데 난 그런데 별로 빠져 있지는 않거든. 궁예파로 깊게 빠진 사람들은 그래서 시간여행 기술만 완성되면 그런 삶의 모든 문제에 답을 줄 수 있는 먼 미래의 사람들이 우리 시대에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뭔가 삶에 절박한 문제가 있다거나, 삶에 고민거리가 있는 사람들은 어서 빨리 그 미래 사람들이 우리 시대로 시간여행 해 와서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거든. 그래서 바로 그 순간만을 기다리고, 기대하면서, 같이 집회도 하고, 무슨 행사도 하고, 시위도 하고 그러는 거지.”

“아주아주 발전한 미래의 사람이 오기만 하면 그 사람들이 내 삶의 문제도 다 해결해 줄 기술을 갖고 있을 거니까, 거기에 매달린다는 거. 그런 거는 너무 한 방에 쉽게 삶을 해결하려는 도박 같은 느낌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그런 정도까지는 관심이 없는 거고.”

혜란은 냉면 맛이 생각했던 것 보다는 괜찮다고 여겼다. 규도가 물었다.

“잠깐만, 그런데 시간여행이라면 꼭 우리 시간대로 와야만 하는 것도 아니잖아. 우리 시간 보다 더 과거로 갈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예를 들어서 미래의 그 사람이 조선시대로 간다, 그럴 수도 있는 거 잖아.”

“예를 들어서, 전우치 같은 신비한 전설 속 인물이 사실은 스마트폰, 공중 비행 모터사이클, 나노봇 같은 미래의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이 조선시대에 가서 이런저런 신기한 기술을 보여 주다가 기록에 남은 것이다, 뭐 그런 이야기 말하는 거야?”

“정말로 그렇게 과거로 가서 장난만 치던 사람이 기록에 남을 수도 있고. 좀 더 진지하게 먼 옛날 사람들에게 홍익인간의 가르침을 전해 주면서 착하게 살라고 가르쳐 주었던 먼 옛날의 신선 같은 인물이 사실은 미래에서 온 사람이었다, 뭐 그런 것일 수도 있잖아.”

“너, 진짜 관심 없었구나.”

혜란은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규도가 일부러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아닌가 싶었다. 혜란은 계속 그 의심하는 마음을 가진 채로 규도에게 설명했다.

“몇 년 전에 시간여행 기본 이론이 나왔다고 여기저기에서 잠깐 요란했던 것, 기억 나?”

“그때 노벨상급 연구네, 어쩌네, 하면서 시끌벅적 했던 그거? 그러고 보니까 노벨상급 이라는 말도 좀 우스꽝스럽지 않냐?”

“그때 나온 시간여행 기본 이론이 뭐였냐면, 시간여행을 실제로 해 낼 수 있는 안정된 이론이 드디어 나왔다는 거였어.”

“그러면 진짜로 그거 되는 거 아니야? 전우치가 사실은 미래에서 온 사람이었다. 그게 이론상 가능하다는 거잖아.”

“그게 아니야. 이론상으로 전우치가 미래에서온 사람이라는 거는 불가능하대.”

“왜 그런데?”

“시간여행 기본 이론대로 하려면 시간여행 장치를 만들어 놓은 시점부터 그 시간여행 장치를 통해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거 거든. 그러니까, 우리가 시간여행 장치를 오늘 만들어 놓으면 그 시간여행 장치를 내일이나 모레나 다음 주나 1년 후에 이용하면 최대한 많이 거슬러 올라가면 시간여행 장치가 만들어져 있는 오늘까지 거슬러 올 수 있다는 거야. 시간여행 장치가 없는 시대로 갈 수는 없는 거지. 그런 방식 말고는 시간여행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거고.”

규도는 그 말을 금방 잘 이해하지 못했다. 혜란은 몇 가지 예를 더 들며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 설명을 다 듣고 규도가 말했다.

“그러면 조선시대에 시간여행장치를 누가 만들어 놓았다는 기록이 없는 한은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조선시대로 돌아 오지는 못하는 거네. 그러니까 전우치가 미래에서 온 사람일 수는 없다는 이야기고.”

“그렇지.”

규도는 다시 말했다.

“잠깐만, 그러면 얼른 우리가 시간여행장치를 빨리 안 만들면 나중에 미래 사람이 시간여행 올 수 있는 한계가 점점 더 늦춰지는 거 잖아.”

“그렇지. 만약에 오늘 시간여행장치를 안 만들고 오늘이 지나가 버리면 영영 오늘로는 다시 올 수 없게 되는 거야. 그리고 만약에 내일 시간여행장치를 안 만들고 내일이 지나가 버리면 영영 내일로도 다시 올 수 없게 되는 거야. 시간은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잖아. 그런 식으로 절대로 돌아 올 수 없는 시간이 계속 지나가 버리는거야. 우리가 시간여행장치를 빨리 보내지 않는 한은.”

“그러면 시간여행장치를 최대한 빨리 만들어야겠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많았고.”

“사람이 문명을 만든 때부터만 따지면 흐른 시간이 얼마지.”

“한 만 년?”

“그래 사람이 문명 만든 지도 벌써 1만년 정도 시간이 지났잖아. 아직까지 시간여행장치는 아무데서도 못 만들었으니까 벌써 절대 돌아 갈 수 없는 인간의 역사가 1만년이나 날아 가 버린거잖아. 하루 하루 시간여행장치 없이 시간이 지나갈 때마다 그런 식으로 절대 돌아 갈 수 없는 시간이 버려지고 또 버려지는 거고.”

“바로 네가 말한 그런 생각에 흠뻑 빠진 사람들이 어서 빨리 시간여행장치 만들자고 집회에도 나가고 시위도 하고 단체에도 가입하고 학교나 회사에는 안 나가고 막 그러는 거고.”

혜란의 마지막 말을 듣고 규도는 쾌활하게 웃었다.

그러나 철원에 수덕만세 장치가 최대한 빨리 건설된 것은 그런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은 전혀 아니었다. 일본 정부와 중국 정부의 화려한 우주 개발 선전에 도저히 한국은 경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 여론이 안 좋아진 것이 원인이었다. 그러니 안 좋은 여론을 극복하기 위해 뭔가 한국도 일본, 중국 못지 않게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과학 기술 분야에서 굉장한 일을 하고 싶다고 선전하고 싶었는데, 남들이 안 하는 분야에서 빨리 뭔가 결과를 보여 줄 수 있는 무엇을 찾다가 높은 분들이 그럴듯하다고 도장을 찍어 준 것이 최근에 나온 시간여행 기본 이론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두 사람은 공원을 구경하거나 새로 생긴 가게들을 구경하면서 좀 더 같이 걸었다. 결국 두 사람은 오늘 수덕만세 장치 가동 기념식에 찾아 가 보자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수덕만세 장치는 뭐야? 시간여행장치하고는 다른 거야?”

“철원에 만드는 이 기계가 다른 나라보다 빨리 시간여행장치를 만들기 위해서 굉장히 급하게 만드는 거잖아. 그래서 완전한 시간여행장치가 아니야. 시간여행 기본 이론이 나와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시간여행장치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은 완성이 안 되어 있거든.”

“그러면 수덕만세 장치는 뭘 할 수 있는 건데?”

“수덕만세 장치는 시간여행을 하는 사람을 보낼 수는 없고, 시간여행을 한 사람을 받을 수만 있어.”

“그게 무슨 말인데?”

“그러니까 시간을 여행하는 통로를 열어서 입구로 들어 가서 출구로 나온다고 했을 때. 그러니까 10년 후의 미래에 어떤 사람이 시간여행 통로를 열어서 입구로 들어 간다고 할 때, 10년 전, 바로 오늘로 올 수 있는 출구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바로 수덕만세 장치야.”

“나오는 문 역할만 한다고? 그러니까 미래에서 오는 시간여행자를 받는 역할만 할 수 있는 거야?”

“그렇지.”

“그러면 수덕만세 장치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는 없는 거네.”

“수덕만세 장치만으로는 안 되지.”

“그러면 시간여행을 떠나는 장치, 입구는 언제 만드는데?”

“그거야 모르지. 아직 그걸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 10년 후가 될 지, 20년 후가 될 지. 100년 후가 될 지 아무도 몰라.”

“에이, 그러면 오늘 수덕만세 장치가 가동을 시작한다고 해도 시간여행을 하는 걸 보려면 한참 기다려야 되잖아.”

규도의 말을 듣고 혜란은 규도를 쳐다 보았다. 혜란은 몇 마디 놀리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그게 아니라니까. 어쨌거나 수덕만세 장치가 가동 되면, 백 년 후가 되었든, 천 년 후가 되었든, 나중에 나중에 언제가 되든 시간여행 입구를 만드는 기술을 누가 개발해서 작동시키기만 하면, 그 장치로 오늘의 수덕만세 장치로 올 수 있는 거라고. 오늘 수덕만세 장치를 작동시키면 아무리 먼 미래에서도 오늘까지는 올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시간여행 입구는 없고 출구만 있지만, 미래에 누군가 입구를 개발할 것이기 때문에 일단 출구만 만들어 놓으면 미래의 사람이 출구에 나타날 거다.”

“그렇지.”

“그런데 그 시간여행 하는 미래 사람이 하필 왜 오늘로 와야 되는건데?”

“오늘 말고 다른 날로도 가는 사람도 많겠지. 그렇지만 그 많은 시간 여행 중에 오늘로 오는 사람이 한 사람만 오늘로 오더라도 우리는 그 사람을 오늘 가동 기념식 행사에서 볼 거라고. 게다가 오늘이 시간여행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과거인데 오늘로 오는 사람이 적지는 않겠지.”

규도는 그 말을 듣고 무엇인가 생각하는 듯이 말이 드물어졌다.

수덕만세 장치 가동 기념식 장으로 가는 동안 규도는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물어 보았다.

“그렇게 미래에서 온 사람이 갑자기 지금 이 시대에 나타나는 게 아무 문제가 없을까?”

“미래에서 악당이 미래 기술로 개발된 핵폭탄 보다 백만 배 무서운 무기를 들고 나타나서 지구를 정복하러 온다, 뭐 이런 거?”

“그런 게 아니라도 전혀 연결되지 않았던 두 세상이 갑자기 연결된다는 것만으로도 그냥 얼핏 생각해 봐도 너무 위험한 느낌이잖아.”

“어떻게 위험해?”

“예를 들면... 지금은 아무도 면역성을 갖고 있지 않은 미래의 바이러스가 몇 개 지금으로 넘어 와서 온 지구에 퍼져서 사람들이 다 몰살 당하면 어쩔 거야?”

“그래서 수덕만세 장치 작동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거든. 그런데 결국 작동해도 별 문제가 없다는 쪽으로 결론났대.”

혜란과 규도 두 사람은 문제가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기를 원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 했다. 멋있는 잔치를 보여 주기를 원했던 정치인? 팀의 인건비 문제를 모조리 해결해 줄 굵직한 연구비가 달려 있는 사업을 원했던 연구소 임원들? 먼 미래에서 온 문화가 아주아주아주 뛰어난 사람들이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사람들?

수덕만세 장치가 가동을 준비하고 있는 곳에 도착해 보니, 과연 전 세계로 생중계 한다는 행사는 대단히 요란해 보였다. 축하 공연 무대도 있었고, 기자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구역, 정치인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구역, 이국적인 분위기를 최대한 내기 위해 인종을 가장 우선으로 고려해서 초대한 외국인 연구원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구역, 특히 그 모든 것을 감싸고 혜란과 규도 같은 구경꾼들이 가득한 지역이 넓디넓게 펼쳐져 있었다.

거기에 더해, 온갖 깃발과 현수막을 들고 있는 미래에서 온 사람을 기다리는 단체 사람들도 끝이 없을 정도로 많이 모여 있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미래에서 지금 오늘로 시간여행을 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많은 단체들이 다 함께 부를 수 있는 가장 유명한 한 노래가 있었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별로 높지도 않은 노래를 반주도 없이 부르는 목소리가 온 하늘에 넘쳐 흐르도록 계속 반복되었다. 그러고 있으니 과연 뭔가 굉장히 이상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들뜬 기분에 모두 빠져들었다. 모여 있는 사람들 중 몇몇이 하늘 높이 붕 떠오른다거나, 노을로 물드는 하늘에 갑자기 커다란 얼굴이 나타나 사람들을 내려 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혜란과 규도가 사람들을 헤치며 한참 더 걸어 가고, 과거와 미래와 시간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는 동안, 그리고 그러면서 두 사람들이 몇 차례 더 쳐다 볼 동안, 점점 더 군중들 사이의 고양은 더해가는 듯 했다. 장치 앞으로 줄을 맞추어 설치 되어 있는 거대한 화면 앞에 현재 장치가 어떤 상태이며 언제 가동될 것인지를 표시하는 말들이 나왔고, 곧 장치가 가동될 것을 알리는 아름다운 홍보 영상이 나타났다.

시간이 되어 장치가 가동 되었을 때, 시간여행의 도착지 역할을 하는 설비가 모두 정상적으로 가동되는데 성공했다고 운영진은 알려 왔다. 모든 검증 방식이 장치가 시간여행의 기본 이론에 따라 완벽히 잘 작동하고 있다고 나타내고 있었다. 사람들이 가장 흥분하고 기뻐한 순간도 그때였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밤이 깊어 가고 다시 새벽이 찾아 오고 사람들이 광장에서 모두 흩어질 때까지 기다려도, 장치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이 슬프게 우는 소리도 들렸고, 어떤 사람들이 길고 복잡한 말로 끊임 없이 안타까움을 설명하는 이야기도 들려 왔다. 혜란이 규도를 보니, 규도 역시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혜란은 규도에게 우냐고 물어 보았고, 규도가 우는 건 아니라고 하자, 둘은 같이 픽 하고 웃었다.

— 2019년, 광화문에서

댓글 3
  • 심너울 19.10.31 20:26 댓글

    <16년 후에서 온 시간 여행자>, <미노타우르스의 비전>의 궁예 이야기가 생각나서 저는 미영과 양식이 문에서 나올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 심너울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19.10.31 20:31 댓글

    아, 그걸 또 기억해 주셨네요. 이번에는 미영과 양식 이야기와는 상관 없는 것으로 써 보았습니다. 아마도 내년에는 매달 하나 씩 미영과 양식 이야기를 어디 다른 데에 연재하게 될 듯해서 당분간 거울에는 미영과 양식 시리즈 없이 진행할 예정입니다.

  • 곽재식님께
    심너울 19.10.31 20:32 댓글

    와, 매달 제 최애 픽스업인 미영과 양식이!!! 너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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