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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괴이한 거울

죄는 죄로

장아미

서해 용왕에게는 사특한 존재와 교통해 얻은 딸이 있었으니
그의 다리는 꼬리로 바뀌어 뭍과 바다를 동시에 넘나들 수 있었으며
-<기사이문>

섬과 섬 사이, 먼 곳에서 뱃고동이 울려 퍼졌다. 부우 부우우. 그 소리가 허물없는 손길처럼 잔물결이 이는 바다를 더듬었다. 어둠 속에서 점멸하는 십수 개의 점들. 달과 별과 불빛들. 감상에 빠지기 쉬운 밤이었다. 가을. 페가수스자리와 카시오페이아자리, 북극성.

현수가 고개를 들었다. 홉뜬 눈에 드러나 있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죄책감과 후회, 약간의 즐거움.

그들은 해서는 안 될 일을 벌이고 있었다. 죄를 범하고 있었다. 이건 명백한 범죄행위였다.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현수가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갈 거라고?”

재민이 대답했다.

“민호가 어련히 알아서 안내해줄까.”

재민은 이런 상황에서도 매우 태연해 보였다.

“그렇지, 민호야?”

“그럼.”

민호가 대답했다. 방향키를 잡은 채로 녀석은 가볍게 키득거리기까지 했다.

“이 근방에 이리섬이라고 무인도가 하나 있거든. 저기, 벌써 보이네.”

민호가 오른손을 들었다. 시커먼 바다 위에 도사리고 앉은 그보다 더 시커먼 맹수. 이리섬은 모래사장을 낀 작은 바위섬이었다. 그 이름에서 풍기는 위세에 걸맞지 않게 백사장은 지저분했고 바윗돌 틈새에 뿌리를 내린 해송은 볼품없었지만.

세상은 어두웠고 빛들은 까마득했다. 또 다시 메아리치던 뱃고동 소리. 부우우 부우, 더는 다가오지 말라 위협하는 듯하던 메아리.

그럼에도 세 친구들 가운데 전율하고 있던 이는 현수뿐이었다. 현수가 다운점퍼의 지퍼를 목까지 끌어 올렸다. 바닷바람이 매서웠다. 재민은 홑겹의 나일론 점퍼를 걸치고 있었고, 민호는 심지어 외투도 없이 얇은 긴팔 상의를 입고 있을 뿐이었다. 하긴 민호야 한겨울에도 가죽점퍼에 면 셔츠, 허벅지께가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얼어붙은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놈이었으니까.

“너희들, 재미 볼 준비는 돼 있겠지?”

민호가 재민의 옆 오른편에 물러앉다시피 한 여자를 곁눈질했다. 허리 뒤로 양 손이 묶인 채로 여자는 얼굴 옆으로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여자의 손목을 결박한 것은 민호의 허리띠였고, 그를 그런 식으로 구속해놓기를 제안한 것도 민호였다. 그 탓인지 민호는 아까부터 계속 흘러내리는 청바지를 추어올리고 있었다.

재민이 제 팔목에 허리띠를 감아 조이는 동안 비명을 지르며 반항하던 여자는 이제 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뱃전만 노려볼 따름이었다. 무표정하게. 감정이라곤 없는 사람처럼. 체념한 걸까. 절망 때문에? 밤하늘에 떠 있는 먼지 한 톨 같은 이 보트 위에서 아무리 발버둥친다 한들 누구에게 어떤 도움도 구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깨달아서일까. 뭍에서 멀어질 만큼 멀어졌다는 것을 실감해서?

민호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재민이 불쑥 손을 뻗어 여자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얼어붙어 있던 여자가 경련 비슷하게 몸을 뒤틀며 숨을 헐떡였다. 숱 많은 머리칼 사이로 적개심을 담은 안광이 번뜩였다.

현수가 항의했다.

“이런 짓까지 해야 돼?”

그의 말투가 애원조로 바뀌었다.

“그만하자. 더는 되돌릴 수 없어지기 전에, 얘들아, 제발.”

오랜 친구를 향해 시선을 던지며 재민이 대꾸했다.

“혹시 몰라 경고하는데 혼자 빠져나갈 수 없을 거야. 너는 나를 도와 저 여자를 보트에 태웠어. 만에 하나 경찰에게 붙들린다고 해도 셋이 똑같이 처벌받게 될 거야. 뒤통수치기 없기다.”

현수는 그제야 여자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죄악감 때문인지 그 여자와 시선이 마주쳤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인지, 식은땀이 흐르면서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찰나의 긴장을 이기지 못하고 현수가 휙 고개를 돌려버렸다.

민호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윤현수, 저 새끼는 매사에 저런 식이라니까. 하여간 겁은 많아가지고.”

민호가 보트의 속력을 높였다. 재민은 말이 없었다. 녀석은 바람결에 흩날리는 여자의 머리카락을 희롱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까. 어깨를 웅크린 채로 여자는 있는 힘껏 손가락을 오므려 쥐고 있었다. 그것이 그들에게 적개심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앞머리를 헝클이며 현수가 한숨을 쉬었다.

“어쩌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음흉한 목적을 감춘 채로 안개가 수평선 가까이로 슬금슬금 내리깔리고 있었다.

여름방학은 진즉에 끝났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시각, 그들 셋이 서해안의 어촌 마을에 이르게 된 것은 첫째는 술 때문이었고, 둘째는 재민이 몰고 온 자동차 때문이었으며, 셋째는 민호의 군 입대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이건 어디까지나 예정에 없는 나들이였다는 뜻이었다.

주차장 골목으로 재민이 차를 끌고 나타났을 때 두 친구는 녀석답지 않은 일탈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재민이 운전해온 볼보의 에스유브이는 평소 녀석의 새어머니가 타고 다니는 것이라고 했다. 재민은 새어머니라면 치를 떨었다. 외출을 앞두고 티브이장 위 담뱃갑에서 담배 두어 개비를 훔치는 김에 차 키를 함께 손에 넣은 재민은 곧바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짙푸른 색 에스유브이는 금요일 밤의 고속도로를 시속 200㎞로 달렸다. 카스테레오에서는 도어즈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재민은 짐 모리슨을 사랑했다.

차창을 열고 민호가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씹새들아, 잘 먹고 잘 살아라.”

민호가 맥주 캔을 일그러뜨렸다. 녀석이 마시다 만 맥주를 창밖으로 집어던질까 봐 현수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톨게이트를 지나 서너 개의 교차로를 가로지른 끝에 자동차는 잔돌이 박힌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었다. 가로등이 눈에 띄게 드문드문해졌다. 출발 직전 재민이 내비게이션에 입력한 주소는 민호가 여름 내내 머물렀다는 바닷가 마을의 그것이었다. 민호는 그곳에서 사촌 형이 운영하는 레저업체의 일을 도와 적지 않은 용돈을 벌었다고 했다. 그 계절의 증거로 민호의 목덜미는 여전히 구릿빛으로 그을려 있었다.

여하간, 무모하다고 해야 할 만큼 단순한 그들의 작전은 다음과 같았다. 혹시라도 덜미를 잡히는 일이 없도록 방파제에서 멀찍이 떨어진 공터에 차를 세울 것, 재민과 현수가 짐을 챙겨 바닷가로 나가 있는 동안 민호는 바다로레저 사무실에 들어가 보트 키를 훔쳐가지고 나올 것. 방파제 옆 가건물의 문에 달린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민호는 알고 있었으므로.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로 재민이 하릴없이 제자리걸음을 했다. 그의 손목에는 캔 맥주가 담긴 비닐봉지가 걸려 있었다. 별문제 없을 것이라는 호언장담과 달리, 현수가 백을 세고 또 세고 거듭 셀 동안에도 민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무렵 현수는 벌써 겁에 질려 있었다. 눈가로 쏟아진 머리칼을 넘기며 재민이 중얼거렸다.

“빨리도 오네.”

현수의 눈에도 방파제 끄트머리에서 희끄무레한 형체가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야구모자를 매만지며 민호가 욕설을 지껄였다.

“빌어먹을 개새끼 같으니.”

“왜? 오는 길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포구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앞서 걸으며 재민이 물었다.

“사무실을 나와서 걷는데, 젠장, 웬 개 한 마리가 달려 들어서는 신발을 물어뜯는 거야. 산 지 한 달도 안 지난 새 운동화인데.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냅다 걷어차줬지 뭐야.”

민호의 운동화에 묻어 있던 얼룩을 발견하고 현수는 펄쩍 뛰다시피 했다.

“그거, 설마 피야?”

“그런가 보지.”

열쇠를 짤랑거리며 민호는 큼지막한 보폭으로 걸었다.

“너희들 말이야. 이런 경험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니다. 보트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기분이 얼마나 끝내주는데. 나한테 고맙다고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일걸.”

“너, 보트 운전은 할 줄 아는 거지?”

현수가 불안하다는 듯 물었다.

“당연하지.”

“보트 모는 데도 면허가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민호 너, 면허는 있어?”

민호가 키득거리며 현수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친구야, 걱정할 거 하나 없다. 조용히 몰고 나갔다가 원래 자리에 대놓으면 돼. 아무도 눈치 못 챌걸. 아침 일찍 삼촌 집에 들러서 밥이나 사달라고 해야겠다. 우리 회 먹으러 갈까. 내가 괜찮은 식당 하나 아는데.”

민호가 휘파람을 불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걱정을 삼키며 현수가 민호와 걸음을 맞추었다.

재민이 다리를 넓게 벌려 쇠사슬을 건너뛰었다. 민호와 현수가 그 뒤를 따랐다. 민호가 옆면에 7이라는 번호가 적힌 푸른색 보트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러키세븐, 저 배에 타면 돼.”

탈까 말까 망설이는 것처럼 어정쩡한 자세로 현수가 물었다.

“구명조끼는?”

“괜찮아. 괜찮다니까.”

민호가 정신 사나운 손사랫짓을 해 보였다.

“내가 임마, 너희들을 위험하게 만들겠냐.”

보트 뒤편에서 허리를 숙이고 민호가 무슨 장치인가를 조작했다. 그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파도가 잘고 잔잔한 날이었다. 민호가 조종간 앞에 자리를 잡았다. 재민이 쇠말뚝에 걸린 줄을 풀었다. 현수가 좌석 끝에 걸터앉았다.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지독한 기름 냄새를 퍼뜨리며 보트가 천천히 움직였다.

현수 옆 좌석에 재민이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재민이 부스럭거리며 맥주 캔을 집어들었다.

“바람 좋고.”

재민이 캔 맥주를 내밀었지만 현수는 한사코 이를 거절했다. 민호가 방향키를 잡지 않은 손을 뻗었다.

“나도 한 캔만.”

마개 딴 맥주를 재민이 민호에게 전달했다. 모터 소음을 의식해서인지 민호가 친구들을 향해 바락바락 고함을 질렀다.

“밤공기 죽이지 않냐. 여자만 있으면 완벽하겠는데. 아쉽다.”

재민이 킬킬거리며 미지근한 맥주를 들이켰다. 군 입대를 앞두고 민호는 다음 행동을 예측하기 힘든 사람으로 돌변해 있었다. 성급한 성격에 여자 친구들과 사소한 사건 사고들을 일으키기는 했어도 민호는 아무에게나 시비를 걸거나 입간판을 걷어차는 부류는 아니었다. 그에 반하면 재민은 한결 같았지만. 매사에 신랄하고 시큰둥하다는 점에서.

보트는 물결이 이는 해수면을 힘차게 헤치며 나아갔다. 추웠고 어지러웠고 아름다웠다. 그랬다, 아름다웠다. 그 점이 가장 중요했다. 얼어붙은 손을 맞비비면서 현수는 유령이 추는 춤사위 같은 입김을 뱉어냈다. 밤하늘이 검은 물웅덩이 같았다. 별은 암흑의 여왕이 마구잡이로 내던진 보석들이었다.

가을의 대사각형을 현수는 어렵지 않게 더듬었다. 페가수스자리. 그로부터 카시오페이아자리를 이어갔고 북극성을 짚어내는 데 이르렀다. 지금에 와서는 재민과 민호마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짭조름하다 못해 달착지근하기까지 한 해풍을 만끽하고 있었을까. 밤이 불러일으킨 환각 속에서 그들 모두 서로에게 털어놓지 못할 불온한 상상에 빠져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부우 부우우, 뱃고동과 보트 좌우에 끊임없이 와 부딪치는 물결, 맹렬하기 그지없는 모터의 박동과 망자들의 절절한 호소와도 같은 바람 소리. 세 청년들 중에 누구도 말문을 열지 않았다. 밤의 장막 너머에서 불현듯 손을 뻗어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는 것처럼 주위를 의식하며 눈을 부릅뜨고 있을 뿐.

그때 무슨 생각인가에 잠겨 있는가 싶던 민호가 야구모자의 챙을 비틀어 쥐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 소리, 너희 귀에도 들려? 씨발, 이 노래를 다시 들게 될 줄이야.”

“응? 무슨 소리?”

재민이 캔 맥주를 우그러뜨리며 되물었다.

“말소리……… 웃음과 신음……… 노랫소리……… 헐떡이는 숨소리.”

민호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뇌까렸다. 재민이 대놓고 신경질을 부렸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잠깐, 조용히 좀 해봐.”

재민의 얘기를 끊은 것은 정작 민호가 아니라 현수였다.

“여자 목소리인가.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웃고 있는 건가. 민호야, 너한테도 들리는 거지? 나 혼자 듣고 있는 거 아니지? 그렇지?”

시퍼렇게 식은 밤공기 속에서 현수의 눈동자가 기묘한 광채를 발했다. 그제야 재민 역시 해풍에서 떨어져 나온 한 가닥 부르짖음을 헤아려낼 수 있었다. 어느 정신 나간 낚시꾼이 졸음을 쫓으려 라디오라도 틀어놓은 걸까. 신경을 후벼 파는 듯한 노랫소리.

바람 때문이야. 땀에 젖은 손바닥으로 재민이 상기된 낯을 문질렀다. 분위기에 취해 맥주를 너무 많이 마시기도 했고. 재민으로서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저건 의미 없는 음가들의 조합에 불과하다고. 해풍을 타고 섬들 사이를 떠다니는 잡음일 뿐이라고.

민호가 돌발적으로 보트의 방향을 틀었다. 그 바람에 의자에서 굴러떨어진 현수가 뱃전을 움켜쥐었다. 재민이 혼비백산해 외쳤다.

“미쳤어? 그러다 보트가 뒤집히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찾아야겠어.”

민호는 반쯤 얼이 빠져 있었다.

“뭘?”

재민이 악을 썼다. 의자 밑에 뭉쳐놓은 비닐봉지에서 맥주 한 캔이 굴러와 현수의 운동화 뒤꿈치에 부딪쳤다. 기겁하는 현수를 재민이 성난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저 여자!”

민호가 손을 들어 바다 저편을 가리켰다. 세 청년의 애간장을 태우려는 듯 노래는 가냘프게 이어졌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았다. 기어이 이어졌다.

얼얼한 무릎을 어루만지며 현수는 생각했다. 저 여자는 왜 저렇게 비통하게 울부짖고 있는 거지? 저건 마치 곡소리 같잖아.

“저 여자, 내가 꼭 찾아내고 만다.”

민호가 혼잣말 비슷하게 지껄였다. 엄지손톱을 잘근거리던 재민이 한 마디 쏘아붙이려다 그만두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흥분한 민호를 멈춰 세우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을뿐더러, 재민 역시 궁금하기도 해서였다. 어떤 사람일까. 저런 목소리를 내는 여자라면 필시 매우 아름답겠지?

반면 민호는 실핏줄이 터진 눈을 번뜩이며 어금니를 으득거리고 있었다. 그는 두 가지 상반된 욕구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귀를 곤두세우고 노래인지 뭔지 모를 저 소리를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듣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조금도 듣고 싶지 않았다. 황홀경에 빠져 자신을 놓아버리고 싶으면서도 두 귀를 단단히 틀어막고 싶었다.

유혹하고 있잖아. 우리를, 나를. 그날과 똑같아. 그 밤, 나를 불렀던 바로 그 여자일까. 설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 상관없어. 쫓아갈 테니까, 저 여자를. 그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말겠어.

재민이 휴대전화의 손전등 기능을 켰다. 그래봤자 그 불빛은 파도의 구김살 하나 제대로 펼쳐내지 못했지만. 재민이 의자 등받이를 짚으며 튕기듯 일어섰다.

“속도 늦춰, 민호야. 안 보여? 저 섬이, 바위가. 그러다 좌초하고 말 거야.”

재민이 가리킨 방향을 향해 두 청년은 동시에 시선을 던졌다. 파도를 헤치며 불거져 나온 그곳은 어슴푸레한 광휘에 휩싸여 있었다. 별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원피스의 장식이 난반사한 수 갈래의 빛살 때문에?

바윗돌에 걸터앉아 여자는 발을 까딱이고 있었다. 달이 구름 뒤에 숨었다. 검은빛의 그 바위는 흡사 괴물이 뽑아 내민 혓바닥 같았다. 기이하다 못해 초현실적이기까지 한 광경 앞에서 현수는 제 눈을 의심했다. 저 여자는 누구일까.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낚싯배를 얻어 타고 왔다 홀로 남겨진 걸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불안한 기색이라곤 없이 태연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거야?

스커트 밑이 겹겹이 포개져 부풀려진 검푸른 원피스 차림. 원피스의 몸통 부분을 따라 희고 뾰족한 금속 조각이 촘촘하게 이어 붙여져 있었다. 맨발. 물에 젖은 종아리가 날씬했다.

저건 노래일까. 기도 혹은 주문일까. 절규일까. 아니면 차라리 지저귐이라 해야 할까.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재민은 눈만 굴려댔고, 현수는 두 손을 맞잡은 채로 벌벌 떨고 있었다. 그에 반해 강렬한 목적의식에 사로잡혀 있어서인지, 민호는 방금 전까지 헛소리를 지껄인 사람답지 않게 놀랍도록 침착한 태도로 바위섬을 쏘아보았다.

“이런 곳에 섬이 있었다고? 이상하네.”

엔진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여자는 달아나려는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여기에 낙오한 사람이 있다고, 나를 제발 육지로 함께 데리고 나가달라고 목청 높여 고함을 지르지도 않았다. 고개를 젖히며 어깨를 움츠러뜨리기는 했으나 여자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러키세븐을 옆구리에 새긴 모터보트는 바위 옆에 조심스럽게 뱃머리를 갖다 붙였다. 민호는 보트를 대는 데 애를 먹었다.

“이런, 밧줄을 어디에 묶어놓지?”

민호가 말을 채 마무리 짓기도 전에 재민이 보트에서 뛰어내렸다. 보트가 흔들렸다. 여자가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현수가 말문을 떼려고 하자 민호가 쉿,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재민이 여자 앞으로 가 섰다. 여자의 입술이 달싹였다. 제대로 된 인사를 건네온 건 아니었다. 그건 그야말로 연약하기 그지없는 속삭임에 불과했으니까.

“우리랑 같이 바다 구경 안 할래요?”

재민은 번듯한 청년이었다. 키가 큰 데다 이목구비는 단정했고 남들 비위에 맞춰 제법 예의바른 시늉을 할 줄도 알았다.

“한밤중에 여자 혼자 이런 곳에 나와 있다니 위험하잖아요.”

현수가 여자를 향해 무슨 말인가를 내어놓으려 하자 민호가 거칠게 그를 저지했다.

“저, 저는.”

여자가 중얼거렸다. 남자 셋을 한꺼번에 반 최면상태에 빠뜨린 사람의 그것이라 믿기에는 그 음성이 지나치게 낮고 가냘팠다. 그 같은 태도가 상대를 더욱 대담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하고 여자가 머뭇거렸다.

“저는, 그게.”

재민이 여자의 팔을 붙들었다.

“가요.”

“이, 이러지 마세요.”

여자가 그의 팔을 뿌리치려 했지만 재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녀석은 전에 없이 막무가내였다. 재민에게 끌려 여자가 맨발로 휘청거리며 걸었다.

“태워, 빨리.”

민호가 현수에게 명령했다. 뭐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현수는 여자를 붙들어 보트에 오르도록 했다. 재민이 여자를 넘어뜨려 좌석 뒤편에 주저앉혔다.

“출발해.”

조종간을 만지며 민호가 알겠다는 듯 고갯깃을 해 보였다. 여자 쪽을 곁눈질하며 현수가 속삭이다시피 물었다.

“이제 뭘 어쩔 작정이야?”

재민이 실실거렸다.

“놀이, 아주 재미있는 놀이를 하려는 거지.”

“놀이라니?”

현수의 낯에서 핏기가 가셨다.

“재민이 너까지 왜 그래? 평소답지 않게.”

엔진 소리가 시끄러웠다. 초점 없는 시선으로 바다 저편을 쏘아보던 여자가 두어 번 콧등을 씰룩거리는가 싶더니 마침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상냥한 표정으로 재민이 여자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울지 말아요. 괜찮아요. 겁먹지 않아도 돼요.”

여자의 머리카락이 무섭도록 검었다. 밤 같고 바다 같았다. 한편으로는 이끼로 뒤덮인 바위틈의 균열이나 맞닿은 곳 어디에나 검질기게 휘감겨오는 수초 같기도 했다.

“해치지 않을게요. 정말이에요.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처럼 보여요? 우리와 잠시만 같이 있어주면 돼요. 적당한 때를 봐서 내려줄게요. 육지든 섬이든 원하는 장소에 안전하게. 이봐요. 내 말, 못 믿겠어요?”

재민의 위로에도 눈물을 그치기는커녕 손바닥에 낯을 묻고 여자는 한층 서럽게 울었다. 재민이 소름 끼칠 만큼 냉랭한 눈초리로 여자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여자의 가슴 언저리에 매달려 있던 손가락 한 마디만 한 물건. 가죽을 꼬아 만든 갈색 줄에 걸려 있던 그건 흰색 뿔 장식이었다. 한쪽 끄트머리에 구멍이 뚫린 모양새가 얼핏 피리 같아 보였다.

“아끼는 물건인가 봐요?”

재민이 목걸이의 장식을 잡아채려고 했다. 여자가 질겁하며 그것을 얼른 손안에 감추었다.

“놀리는 재미가 있는 사람이네.”

재민이 여자의 뺨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그러니까 더 괴롭히고 싶어지잖아요.”

무릎 사이에 얼굴을 감추고 여자는 눈물만 떨어뜨렸다. 보다 못한 현수가 두 친구를 다그치고 나섰다.

“대답 좀 해봐. 대체 왜들 이러는 거야?”

민호가 피식거리며 웃었다.

“내가 보기에는 너희 둘 다 제정신이 아니야.”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민호가 맞받아쳤다.

“너는 그런 말할 자격이 없을 텐데. 저 여자를 보트에 태우는 걸 도운 게 누군데.”

들숨과 함께 공격적인 말투를 누그러뜨린 민호가 재민을 향해 턱짓했다.

“잠깐 쉬었다 가는 건 어때. 배를 멈춘 김에 볼일도 좀 보고.”

턱밑을 쓸면서 재민이 찌푸려 뜬 눈으로 여자를 쏘아보았다. 말없이. 재민은 저 여자를 원했다. 그것이 그 밤이 재민의 마음에 심어놓은 파멸의 씨앗이었다.

“나, 나는 반대야.”

현수가 말을 더듬었다.

“못 해. 절대로. 안 해.”

“그건 내가 용납 못 하지.”

재민이 쏘아붙였다.

“한 명도 빠질 수 없어. 오늘 우리가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면 이거야. 무슨 일이든 셋이 같이 해야 한다는 거.”

현수가 신음했다. 저 새끼들이, 돌았어, 홀려버린 거야. 자신의 노래가, 미려한 그 목소리가 스스로를 이처럼 큰 고난에 빠뜨릴 거라고 저 여자는 상상이나 했을까.

그러는 동안에도 안개는 짙어졌다. 기척을 숨긴 채 밀려들고 있었다.

재민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먼 바다를 넘겨보았다.

“바다 안개가 무섭다더니 진짜네.”

“좀 오싹하기는 하지?”

민호가 보트의 속력을 줄였다.

“이상하네. 이쯤에서 섬이 보여야 하는데. 아까부터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기분이야.”

현수가 다시금 친구들을 설득했다.

“장난은 그만하자. 저 여자, 적당한 곳에 내려주자. 이 배도 반납해버리자. 더 큰일이 벌어지기 전에, 응?”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민호가 눈을 부라렸다.

“윤현수, 분위기 파악 못하고 자꾸 우는 소리 낼래?”

하, 소리를 내면서 현수가 아랫입술을 쥐어뜯었다. 그 역시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였을까, 민호는 오히려 이상할 만큼 호기롭게 굴었다.

“그만하긴 뭘 그만해?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정 불안하면 저 여자, 바다 한가운데 빠뜨려버리든가.”

지금에 이르러 안개는 거대한 장막을 이루고 있었다. 유령처럼 너울거리며 고색창연한 드레스 자락을 나부끼고 있었다.

바람이 멎어 있었다. 파도가 기묘하도록 잔잔했다. 그렇다면 이 안개는 어떤 힘에 떠밀려 움직이고 있는 걸까. 방향키를 잡은 민호의 낯이 굳어 있었다.

넋 나간 얼굴로 현수가 입속말을 중얼거렸다. 뭔가 잘못됐어. 이럴 수는 없어. 이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저기, 제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고아한 음성이 셋의 주의를 집중시켰다. 잠에서 막 깨어난 사람처럼 몽롱한 눈빛으로 여자가 그들 셋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려움에 못 이겨 마침내 실성해버린 걸까. 민호가 불안한 눈초리로 등 뒤를 흘끔거렸다. 반면 재민은 구미가 당긴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턱을 괴었다.

“서해 용왕에게는 아홉 명의 딸이 있었대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중 하나가 괴물과 맺어 얻은 딸이었던 거예요.”

자신에게 쏟아진 시선을 만끽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자가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깜빡였다.

“괴물이 낳은 자식이니 그 딸 역시 태생부터 괴물이었지요. 그 아이는 육지와 바다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었어요. 두 다리가 물속에서는 꼬리로 바뀌었으니까요.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답니다. 아버지의 방관과 증오 속에서도 어머니처럼 아름다운 여자로 성장했지요. 그 괴물에게도 정인이 생겼어요. 그 역시 괴물이었지만요. 인간을 잡아먹고 살았으니까. 그중에서도 특히 좋아한 건 젊은 남자들이었대요. 방탕과 오만은 그들을 각별히 맛있는 먹잇감으로 만들어주었거든요.”

보트 안에 서늘한 침묵이 고였다. 여자가 입술을 비죽이며 웃었고, 민호가 뭔지 모를 욕설을 지껄였다. 재민이 대뜸 팔을 휘둘러 여자의 뺨을 올려붙였다. 그 반동에 나자빠지며 여자가 뱃전에 어깨를 찧었다. 찢어진 입술에 핏방울이 맺혔다.

“무슨 수작이야?”

재민의 화는 매서웠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현수가 뺨을 씰룩거렸다.

“한 번만 더 내 성질을 건드렸다가는 가만두지 않을 거야.”

“어이, 재민아. 저기 뭔가 보이는데?”

민호가 손을 들었다. 보트가 나아가는 방향을 따라 안개가 커튼처럼 좌우로 열어젖혀지고 있었다.

“이리섬은 아닌 것 같고. 안개 때문에 방향 감각이 엉망이네. 아무튼, 안개가 걷힐 때까지 잠시 머물렀다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보트는 굼뜨게 움직였다. 거사를 앞두고 기쁨에 차 있었을지언정 민호는 서두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민호가 바윗돌 옆에 보트를 댔다.

재민이 등 뒤로 묶인 팔을 당겨 여자를 일어서도록 했다.

“내가 첫 번째야.”

여자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움직이지 않으려 했다. 재민과 여자가 몸싸움을 벌이는 통에 보트가 마구 뒤흔들렸다. 그 모습을 구경하며 민호가 재미있다는 듯 휘파람을 불었다. 사력을 다한 몸싸움에도 여자는 끝내 재민의 위력을 이겨내지 못했다. 머리채를 휘어 잡힌 채로 신음하면서 재민을 따라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좋은 말 할 때 순순히 따라와.”

여자가 서럽게 울었다. 바다 저편에서 누군들 그 소리에 귀 기울여줄 리 있겠냐마는.

“땅이 왜 이렇게 물컹물컹해? 기분 나쁘게.”

재민이 물웅덩이를 걷어찼다. 여자가 웃는 듯 흐느꼈다. 안개의 장막 저편에서 우우웅, 낮은 고동이 울려왔다. 등줄기에 냉기가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현수가 민호에게 물었다.

“방금 그 소리 들었어?”

“뭐?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민호는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현수는 더는 대화를 이어가기를 포기했다. 재민과 여자의 모습이 안개 너머로 지워졌다. 현수가 의자에 엉덩이를 뭉갰다.

“다음은 나다. 새치기하면 안 돼. 재민이 자식, 가끔 보면 진짜 음흉하다니까.”

여자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다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색을 잃은 듯 희고 검으며 흐리멍덩한 세상 속에서, 그 소리만이 또렷한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다 급기야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 안 돼! 제발!”

현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름이 뾰족하게 기른 손톱처럼 등을 긁었다. 민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지? 왜 저러는 거야?”

그 목소리의 주인은 재민이었다. 재민이 멱을 따이기 직전의 짐승처럼 꽥꽥거리고 있었다. 발버둥치고 있었다. 상처를 입은 채로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그 외침에 선혈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듣는 사람의 정신마저 혼미하게 만들 만큼 끔찍한 통증도.

재민이 헐떡였다.

“살려주세요. 살려주, 세, 악, 눈, 내 눈!”

그 울음이 이제는 민호조차 못 들어줄 지경이었다. 귀를 막고 현수가 뱃전에 숨듯 웅크렸다. 절정에 이르는가 싶던 비명 소리는 어느 순간 가위로 자르기라도 한 것처럼 뚝 끊어져버렸다. 현수가 눈물로 범벅된 낯을 들었다. 정적. 안개를 노려보며 숨을 헐떡이던 민호가 허둥지둥 다가와 현수를 일으켜 세웠다.

“가서 재민이를 찾아와.”

“나, 나 말이야?”

현수가 말을 더듬었다.

“그래, 너 말고 여기 또 누가 있다고. 줄을 매어놓을 곳도 마땅찮은데 보트가 파도에 떠밀려가버리기라도 하면 너나 나나 끝장이잖아. 나는 보트를 지키고 있을 테니까 재민이가 괜찮은지 확인하고 와.”

현수가 무릎을 세우려 안간힘을 썼다. 그럼에도 다리에 힘이 풀려 난간을 짚으며 금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지만.

민호가 현수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흔들리는 보트 안에서 현수가 간신히 균형을 잡고 섰다. 현수가 구역질하며 어깨를 들먹이자 민호가 친구의 얼굴을 붙들었다.

“현수야.”

눈물 한 방울이 현수의 뺨을 타고 굴러 떨어졌다. 민호가 현수의 뺨을 후려갈겼다.

“정신 차려, 윤현수!”

“어? 어.”

“재민이가 위험에 처해 있잖아. 우리가 구해서 데리고 가야 한다고. 마음 같아서는 내가 직접 움직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잖아.”

민호가 현수를 다그쳤다.

“윤현수, 할 수 있지?”

“어.”

현수가 눈물을 찔끔거렸다.

“최대한 빨리 확인하고 오는 거야. 서둘러.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나를 불러. 그때는 보트고 뭐고 내버려두고 도우러 갈게. 알겠지?”

“어.”

현수가 점퍼 소매로 얼굴을 훔쳤다.

“현수야, 부탁한다.”

민호가 현수의 어깨를 당겼다. 입술을 다문 채로 고개를 주억거리던 현수가 팔을 들어 친구의 포옹을 풀어낸 다음 구부정한 자세로 보트 가장자리에 가 섰다. 도를 지나친 공포 때문인지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터져버릴 것 같았다. 현수가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 재민이는 십년도 넘게 알고 지낸 사이잖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잖아. 최소한 확인은 해야지. 저 밖에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 살아는 있는지. 제기랄, 설마 벌써 죽어버린 건 아니겠지?

민호의 도움을 받아 현수는 더듬더듬 보트에서 내렸다. 발밑으로 느껴지는 땅이 질었다. 진흙범벅이었다. 묘하게 불쾌한 감각. 속이 울렁거려 금방이라도 속에 든 것을 모조리 게워낼 것 같았다. 현수는 어떻게든 구역감을 억누르기 위해 애썼다.

“재민아.”

앞을 더듬으며 현수는 조금씩 재민이 사라진 곳을 향해 나아갔다.

“재민아, 어디에 있어?”

망할 놈의 안개 같으니. 현수가 휘휘 팔을 저으며 거듭 속삭였다.

“내 목소리가 들리면 대답해봐, 재민아?”

그때 발끝에 무엇인가가 채였다. 현수가 뻗고 있던 팔을 움츠리며 뒷목을 당겼다. 현수가 신은 운동화의 앞코에 들이받힌 것은 머리였다. 사람의 머리통. 잘려 나간 목 아래에서 뿜어져 나온 피 때문인지 뻘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발길을 멈춘 몇 초 동안 현수는 생각했다. 그건 그야말로 무의식적인 사고였다.

그 여자는 재민이의 머리를 어떻게 뜯어냈을까.

재민의 오른 눈이 뽑혀 나온 자리를 쏘아보면서 현수는 뒤늦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울고불고 야단을 떨어대면서 왔던 길을 거슬러 달렸다.

“민호야, 박민호!”

그때 멀고도 가까운 곳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여자, 그 여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감정이 없는 것들까지 전율하며 부르짖게 만들 법한 그 음성.

현수가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보트에 시동을 걸어. 떠나야 해. 지금 당장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한다고.”

“재민이는?”

안개 속에 모습을 감춘 채로 민호가 물었다.

“재민이는 찾았어?”

흰 커튼 사이로 푸른색으로 칠한 보트의 윤곽이 드러났다.

“죽었어.”

“뭐?”

“그 여자에게 당한 거야. 그 여자,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던 거야.”

민호가 떨리는 손으로 조종간을 조작했다. 바윗돌을 타넘던 현수가 화들짝 놀라 모래사장을 더듬어보았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귀를 곤두세우고 현수는 이내 조심스럽게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재수 없는 곳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던 가엾은 청년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보트 옆 바다 밑에서 거품이 부글거리고 있다는 것을. 수초처럼 끈끈하고 돌기둥처럼 단단하며 악마처럼 잔인무도한 어떤 존재인가가 파도를 거스르며 솟구쳐 오르고 있음을.

다리, 다리, 흡반이 달린 거대한 다리들. 이 다리의 주인은 얼마나 거대한 괴수일까.

순간 검고 기다란 다리 하나가 철썩 보트 옆면에 달라붙었다. 보트가 요동쳐 민호가 비틀거리며 물러앉고 말았다.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현수가 아연실색하며 뒷걸음질했다.

“보트에서 뛰어내려, 얼른!”

그것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담벼락을 타고 뻗어가는 덩굴식물처럼 보트 이곳저곳을 휘감으며 삽시간에 민호에게 달려들었다.

“저리 가.”

민호가 펄쩍 뛰어오르자 흡반에 닿은 청바지 종아리께가 찢어졌다. 민호가 울먹이며 주먹을 내질렀다.

“꺼져. 내 몸에 손대지 마.”

“뒤야, 뒤를 돌아봐.”

현수가 비명을 질렀다. 보트의 옆구리를 더듬어 오른 다리 하나가 민호를 휘감았다. 흡반에서 맹독성의 액체가 뿜어져 나와 민호의 웃옷이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한바탕 욕설이라도 퍼부으려는 것처럼 민호가 입을 크게 벌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뾰족하게 벼린 다리 끝이 미끄러지듯 그의 목구멍으로 파고들었다. 입안을 가득 채운 다리를 끄집어내기 위해 민호가 두 팔을 저으며 몸부림쳤다. 엔진이 뜯겨 나갔고 보트가 뒤집혔다.

보트의 잔해가 비처럼 쏟아졌다.

괴수의 다리는 목구멍부터 식도, 위장을 거쳐 민호의 몸뚱이를 위아래로 꿰뚫었다. 민호가 다리의 겉면을 쥐어뜯었다. 숨이 막혀 컥컥거리며 충혈된 눈을 부릅뜬 채로 쉴 새 없이 몸을 바르작거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민호는 살아 있었다. 제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음에 절망하면서, 지금 당장 죽어버리는 자비를 얻을 수 있기를 갈구하면서.

환희에 벅차오른 여자가 노래를 불렀다. 그것은 진정 승리의 송가였다.

“살려주세요.”

자신에게 닥칠 비극을 예감한 현수가 무릎을 꿇고 빌었다.

“용서해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손을 맞잡고 애원했다. 바다 저편에서 누군들 그 소리에 귀 기울여줄 리 있겠냐마는.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수면 위로 조그만 머리통이 솟구쳤다. 머리를 젖히고 여자가 유유히 자맥질했다. 다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인간 여자의 상반신 아래로 은회색 비늘을 반짝이는 꼬리가 이어져 있었다.

여자는 서해 용왕의 막내딸이었다. 그가 사특한 존재와 간음해 얻은 자식. 신이자 악귀이자 용왕.

눈물을 삼키며 현수가 여자에게 호소했다.

“저는 죄를 짓지 않았어요.”

여자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숱 많은 머리카락이 물결과 함께 일렁이며 부채꼴 모양으로 흩어졌다.

“아시잖아요? 저는 친구들을 말리려고 노력했어요. 하지 말라고, 이러면 안 된다고 여러 번 사정했어요. 당신도 옆에 있었잖아요? 다 보고 들었잖아요?”

“인간 남자야, 너는 결백하지 않아.”

다정한 말투로 여자가 대답했다.

“방관은 아주 큰 죄악이거든.”

“아니야!”

현수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나는 무죄야.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나를 보내줘. 풀어줘. 이렇게 부탁할게요, 제발.”

“그건 안 될 말이지.”

애석하다는 듯 도리질하던 여자가 가슴팍을 더듬어 목걸이의 장식을 입술 앞으로 가져왔다. 피리 소리가 공명하면서 밤하늘을 가득 채웠다. 결박에서 벗어나 가파르게 비상하며 북극성까지 메아리쳤다.

“아악, 안 돼.”

뒤틀리고 비비꼬이며 시시각각 형체를 뒤바꾸는 대지에서 현수가 붙잡을 것을 찾기 위해 손을 더듬었다. 마침 야틈한 모서리 같은 것이 손가락에 걸렸다. 여자가 숨을 불어넣어 다시 한번 힘차게 피리를 불었다. 배를 깔고 엎드린 채로 현수는 바윗돌인지 뭔지 모를 것에 결사적으로 달라붙었다.

놈이 여자의 부름에 화답했다. 수십 개의 다리를 놀리며 웅대한 몸뚱이를 꿈틀거렸다. 해수면 위로 솟구쳐 올라 눈을 부릅떴다. 여자의 정인. 인간을 잡아먹으며 목숨을 부지한다는 괴수.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현수의 모습이 비쳐 있었다.

현수가 붙들고 있던 건 놈의 눈두덩이었다. 까무러치게 놀란 현수가 엉겁결에 주먹 손을 풀었다. 섬의 일부인지 괴이한 이 생명체의 몸통인지 모를 이곳저곳을 들이받으며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졌다. 그때 굵다란 다리 하나가 바람을 일으키며 허공을 가로질러 바다 속으로 곤두박질치기 직전이던 현수를 낚아챘다.

죽음을 앞두고 전에 없이 용감해진 현수가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죽을 거야. 죽일 거야. 네놈도 언젠가는.”

놈이 현수를 집어삼켰다. 놈의 입안이 좁고 까마득한 동굴 같았다. 현수의 외침이 한 줄기 반향으로 바뀌어 점차로 멀어져갔다. 그 밑바닥, 부글거리는 액체에 잠겨 현수는 천천히 녹아들 것이었다. 자신의 울부짖음이 천만 갈래로 찢겨져 돌아오는 텅 빈 어둠 속에서.

“뻔뻔한 놈. 감히 내게 저주를 내리다니.”

파도를 밀어내며 여자가 괴물에게로 헤엄쳐갔다. 무수한 다리를 떨며 놈이 웅 우웅, 말 못하는 아기처럼 울었다.

“나를 걱정했구나?”

여자가 손등으로 부드럽게 사랑하는 이의 살결을 쓸어주었다. 거대한 다리들이 꿈틀거리며 여자를 받쳐 올렸다. 자신만의 왕좌에 그를 올려놓았다.

“괜찮아. 안심하려무나. 내가 너를 낫게 해줄 테니. 죄를 범하는 것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우리는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안개가 옅어지고 있었다. 괴수의 품에 안겨, 여자는 섬과 섬 사이 점멸하는 불빛을 우러러보았다. 연해를 횡행한 다리와 자동차들의 행렬, 아파트와 고층빌딩, 공장과 방파제와 여객선들. 비행기 한 대가 고도를 낮추며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쳐 갔다.

부우 부우우,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인간들의 세상이 거기에 있었다. 어둠의 영토를 정복하며 온갖 불가해한 것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밤.

울면서 웃는 것처럼, 고통인지 기쁨인지 모를 감정에 취해 여자가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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