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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괴이한 거울

아버지와 아빠와 오빠와 나

갈원경

그런 날이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의 1시간만으로 오늘은 뭘 해도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날. 출근 전에 마실 커피를 캡슐로 할지 드립으로 할지 그도 아니면 믹스로 할지 고민하다가, 그 전날까지 계속 캡슐커피를 불만 없이 잘 마시다가 그날따라 드립커피를 마시고 싶어져서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원두를 분쇄기에 넣는데 손이 삐끗해서 원두를 흘려버리고 흘린 다섯 알을 포기하고 원두를 갈아 종이 필터 위에 올리는데 왈칵 원두가루가 쏟아지면서 드리퍼 밖으로 튀어나오는 날. 그날따라 평소에 그렇게 잘 되던 물 조절도 안 되고 방금 갈아낸 원두는 부풀 생각도 하지 않고 첫 입에 달콤하지도 향긋하지도 않은 기름 맛이 확 올라오는 그런 날. 그럴 때 일찌감치 포기하고 캡슐커피로 바꾸기로 하면 나을 걸 맛없는 커피를 사약처럼 마시고 현관에서 신을 신으면 유독 그 때 구두끈을 밟고 비틀거리다 아끼는 하얀 가죽 가방을 밟아 소리를 지르는 날.

11월 1일은 딱 그런 날이었다.

출근하니 부장이 얼굴을 찌푸리고 앉아 있다가 날 보고 일어났다. 표정이 풀리는 걸 보면 나한테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뜻이다. 부장 밑에서 일한 지 삼 년. 척하면 척이지.

“조 쌤, 조 쌤.”

굳이 두 번 부르는 걸 보니 100%다.

“오늘따라 늦어서 걱정했어. 재단에서 공문이 내려왔는데 자기한테 가 있을 거야. 거긴 또 마감을 그렇게 급하게 주네. 지금 그래도 다른 급한 건 없잖아 그치?”

“어느 마감이에요? 4억짜리 아니면 1억 2천짜리? 아, 그건 계획서 지난번에 수정해서 냈으니까 벌써 보고는 아닐 텐데. 어, 설마 2억짜리에요?”

가방의 얼룩이 신경 쓰여 안 보이게 의자 위에 놓으며 내가 말했다.

“조 쌤은 꼭 그렇게 사업 이름으로 말 안하고 돈으로 얘기하시더라.”

“이름이 다 비슷비슷해서 헷갈리잖아요 민 쌤. 그래서 부장님 어느 거예요?”

열쇠로 서랍을 열어 노트북을 꺼내 켜면서 나는 민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부장을 보았다. 이름도 다들 거창하다. 4차 산업혁명 대비를 위한 공공기관 업무 효율성 제고를 위한 역량 지원 사업, 4차 산업혁명 시대 인적 자원 개발을 위한 교육 사업,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위한 청년 학자 양성 프로그램 지원 사업. 내가 세 개를 구별하지 못해서는 아니다. 세 개를 총괄 담당하고 있는 나에게 한 가지 사업에만 얽혀 있는 사람들은 늘 “그 사차산업 있잖아요,” 라고 말을 시작하는데 4차 산업 뒤가 뭐냐고 물으면 다른 사람 사업과 헷갈리기 일쑤여서 예산으로 이야기하는 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부장이 얼른 대답하지 못하는 사이에 컴퓨터 화면이 켜졌다. 그는 자신이 설명하기 곤란하거나 혹은 설명하고 싶지 않은 일에는 침묵하는 사람이다. 결재 프로그램을 켜고 부장이 승인해서 내 관할로 넘어온 공문이 떴다. 최악, 2억짜리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위한 청년 학자 양성 프로그램 지원 사업. 이건 사업 내 프로그램이 스무 개로 쪼개진다. 정확히는 청년 학자 양성 프로그램이 스무 개가 있다는 뜻이고 전체 예산 2억이 각 팀당 천만원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라서 이 사업은 팀장 스무 명을 총괄해야 하는 일이었다. 1월에 사업을 신청할 때 스물 다섯 개 팀이 나왔는데 다섯 팀은 탈락하고 스무 명이 최종에 남았다는 공문이 온 게 3월, 예산 이억 중에 일억이 내려온 게 4월, 9월에 남은 돈이 내려왔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났을 뿐인데 11월 15일까지 1억 8천 이상을 쓰고 그 내역서를 팀별, 사업 종합까지 해서 내라는 거다.

“15일…, 부장님, 이거 팀장들에게 공문 공람 갔어요?”

“어제 오후에 들어왔는데? 이제 자기가 돌려야지.”

부장이 말했다. 오후라고 하는 걸 보니 세 시쯤 들어왔겠네. 공문 이력을 보니 재단에서 공문 발송을 한 게 어제 세 시, 부장이 읽고 승인한 게 10분 전. 어제 퇴근까지 네 시간이나 있었는데 왜 오늘에야 읽은 거냐고 말할 가치도 없다. 출장은 아니었지만 어제는 점심 후에 소장님과 연구소 뒷산을 산책하러 간다고 산을 올라가는 걸 한 시에 본 뒤로 부장을 보지 못했다. 1억 2천짜리 예산 사용 항목 때문에 실무팀과 협의하고 돌아오니 부장은 이미 퇴근한 뒤, 그 시점에서 내게 넘어온 공문도 없었다.

스무 개 팀 팀장에게 공문 공람을 돌리고 11월 13일까지 예산 내역서를 제출해달라는 메시지를 돌렸다. 당연한 듯 전화가 울렸다.

“네, 재단예산계입니다.”

“십오일이 마감인데 왜 십삼일까지 내라고 그래요?”

거두절미, 말이 좋아 예산계지 나보다 오래 연구소에 있어 온 선배들이 팀장 중에 반을 넘는다.

“팀장님, 팀별 예산 취합해서 주시면 저는 전체 총액으로 맞춰야 하거든요. 혹시나 잘못된 것 있으면 고칠 시간도 필요하고요, 되도록 빨리 주시면 그만큼 오류를 발견하기가….”

“오류 없이 주면 되지.”

“네에, 그렇게 주시겠지만 그래도 제가 취합하고 새로 정리해야 하는 시간이 있으니까요. 아시다시피 팀이 스무 개라서...”

“15일 정오까지 낼게요.”

“그러시면 곤란한…”

내 말이 끝나는 것보다 전화가 먼저 끊어졌다. 전화 한 통이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전화가 울렸다. 어떤 말이 나올지 상상이 되는 전화다.

“네 재단예산계입니다.”

“11번 팀 15일 정오까지 낸다는데 우리 팀도 그 때 주면 되죠?”

소문은 참 빨리 퍼진다. 11팀 팀장과 8팀 팀장이 그렇게 가까운 사인지 몰랐다. 전공도 다르고 학교도 다르고. 예산 계획서를 취합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개인정보가 모인다. 13팀과 3팀의 팀장은 유난히 닮은 얼굴이다 싶었는데 같은 지역의 지거국 출신에 동갑이라서 혹시 먼 친척인 건 아닐까 상상하게 된다거나 계획서를 냈었는데 탈락했던 팀장 중 한 명이 9팀 팀장의 같은 과 3년 선배라거나 하는 것들. 기억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기억할 필요도 없는데 기억에 남아 있는 곤란한 정보들.

“팀장님 팀이 총 스무 개라서 다 그렇게 주시면….”

“자료 받아서 컨트롤 씨 컨트롤 븨만 하면 되잖아요. 담당계가 그 정도도 못하면 어떻게 해? 부장님이랑 통화할 테니까 넘겨주세요.”

부장을 힐긋 쳐다보자 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나도 고개를 끄덕일 일이 아니지만 전화를 넘겼다. 부장이 네네 응응 그럼요 계속 대답하는 게 새롭지 않다.

“조 쌤, 자기 유능하잖아. 반나절이면 스무 개 팀 정리하는 거 별 거 아니고. 팀장들 프로그램 운영하느라 힘든데 이런 거라도 좀 도와줘야지 우리가, 응?”

반나절에 스무 팀을 정리할 수 있으면 애초에 그렇게 부탁했겠지. 요청받은 시간 안에 할 수 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별 거 아니다’라고 말하는 저 부장은 다른 부서의 요청이 들어오면 실무자와 이야기를 좀 해 달라고 몇 번을 말해도 듣지 않는다. 2년을 지내고 작년 말, 타 부서로 옮겨 달라고 신청서를 냈지만 나는 연 초 부서 이동에서 누락되었다. 작년에 새로 이 부에 발령이 난 민 쌤은 부장이 한 말을 옮겨 주었다. 조 쌤을 아무도 못 받겠다고 했대요. 조 쌤이 재단 예산 일 하면서 다른 연구원들 기분을 많이 상하게 해서. 융통성 없는 사람이긴 해도 일 잘 하시는 분이라고 쌤에게 일 잘 배우라고 하시면서요. 칭찬을 받은 건지 욕을 먹은 건지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다른 연구원들에게 매번 불만만 듣고 있으니 저 정도의 말이면 칭찬이라 해도 좋을지 모른다.

“재단 보고 15일 일곱시까지니까, 조 쌤은 금방 할 거야. 정 안 되면 소장님 잠깐 퇴근 못하시게 막고 있지 뭐. 한 시간 정도는 늦어도 재단에서 뭐라고 안 할 거야. 진짜로 그렇게 되면 내가 재단 담당자랑 담판 지을게. 맡겨 둬.”

부장은 윗사람들을 상대하는 데 능란하다. 나에게 혀를 차곤 하는 소장도 부장과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니까. 관리자는 그런 사람이 해야 하는 걸 거다.


점심을 먹고 들어오니 컴퓨터에 알림이 하나 들어와 있었다. 오빠가 보낸 메일이었다. 반사적으로 날짜에 눈이 갔다. 11월 1일. 그래, 오늘이었다. 일 년에 한 번 오빠가 나한테 연락을 하는 날. 아무리 멀어도 통화가 안 되는 거리도 아니지만 오빠는 늘 메일을 보냈다.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없으니까 불평할 거리는 못 된다.

[1년이 참 빨리 지나가네.

올해는 며칠이라도 거기 들어갈 수 있을까 했는데 네 언니가 감기에 걸려서 장거리 여행은 안 되는 상태거든. 너한테 미안하다고 전해 달래.

계좌로 돈 조금 넣었다. 아버지 찾아뵐 때 아버지 좋아하시는 인절미 넣어드려 주라.

그래도 네가 거기 있어서 다행이다. 아버지도 네가 찾아뵙는 걸 더 바라실 거야. 아버지가 너 되게 예뻐하셨으니까.

아버지한테 혹시 더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 줘.

건강하고.

C. D.에서 오빠가.]

속칭 C.D.로 불리는 위성도시 ‘꿈’에서 지구로 오는 정류장까지는 열 네 시간, 정류장에서 내가 사는 B시로 오는 데까지 두 시간이 걸리니까 몸이 약한 새언니에게는 긴 거리임엔 틀림없다. 애초에 오빠가 그 곳으로 이주를 결심한 건 난개발된 지구보다 애초부터 환경을 고려해서 주거지와 산업지대를 분리한 위성도시가 건강에 더 좋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하나뿐인 자식이 B시를 뜨는 것도 반대했던 사람이어서 위성도시 이주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며 펄쩍 뛰었지만 혼자 힘들게 키운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말에도 오빠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위성도시 이주 수속은 지루하게 길었지만 오빠는 경력 20년의 프로그래머로 위성도시에 필요한 자원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주 허락은 쉽게 떨어졌다. 아버지는 이주 허가증이 나온 날 허가증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한숨을 쉬다가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날 깨어나지 못했다. 의사들은 아버지가 주무시듯 돌아가신 것 같다고 했다. 오빠는 아버지의 장례에 최선을 다했다. 당시에는 아직 일반적이지 않았던 전사(轉寫) 장례를 결정하고 그 비용을 모두 부담한 것도 오빠였다. 아버지는 ‘천공’에 있는 B시의 초기 주민이 되었다. 아버지의 데이터를 오빠가 모두 백업해 두었다는 것도 나는 장례 준비를 할 때 겨우 알았다.

아버지가 가끔 보내는 메일에 의하면 아버지는 ‘천공’에서 잘 지내고 계시는 것 같다. 좋아하는 자전거 여행을 하고 때로는 인적 없는 산 속에서 비박을 하시기도 한다고. 아버지의 데이터로 구성되어 있는 ‘천공’의 아버지가 보내는 메일은 매우 아버지가 보낼 법한 메일이라 나는 1년에 한 번 ‘천공’에서 아버지를 만나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곤 했다. 날짜를 잊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아버지가 주무시듯 떠난 그 날로 맞췄는데도. 오히려 지구 밖 열 네 시간 거리에 있는 C.D.에 있는 오빠 부부가 더 아버지를 잘 기억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에게 받은 가장 최근 메일을 열었다. 아버지의 메일함은 두 개다. 연도별로 나눈 것이기도 하고 아버지가 전사되기 전과 후이기도 하다.

[이번에 너희 연구소가 공정성 부분에서 우수 연구소로 선정되었다는 뉴스 보았니? 원하던 곳에 들어갔으니 열심히 일하거라. 자기가 속한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만큼 보기 좋은 모습이 없다.]

돌아가시기 전에도 아버지는 핸드폰 메시지로 보내도 될 것까지 굳이 메일로 보냈다. 네트워크를 컴퓨터로 처음 배운 세대니까 답다면 다운 일이지만, 전화 걸고 받는 걸 유독 싫어하는 아버지가 메일만큼은 거리낌 없이 쓰는 게 신기했다. 그것도 글자 수 제한이 있는 플랫폼을 쓰는 사람처럼 몇 줄 안 되는 내용, 뜬금없는 소식으로. 평생 당신이 지지하는 당을 지지하라고 한 적은 없지만 내가 연구소에 들어가려 하는 것은 그렇게 싫어했던 아버지였다. 정치적 관점보다 직업이 아버지의 기준에 벗어나는 게 더 싫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오빠가 연구원이 되길 바랐고 나는 당신이 이루지 못한 좋은 가정을 이루기를 바랐다. 두 자식에 대한 바람은 완전하게 반대로 이루어졌다. 다만 아버지는 연구원이 이런 일을 하는 줄은 모르셨을 거다. 인류에게 가치 있는 발명과 발견을 하기를, 미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겠지.


퇴근하자마자 ‘천공’에 접속 가능한 추억관으로 갔다. 추억관 1층에는 ‘천공’ 사람들을 위한 데이터 서비스 물건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있다. 아버지가 초기 입주자이긴 하지만 입주자들 중에는 아버지보다 10년 이상 먼저 태어난 사람도 있어서 사람들이 원하는 물건들도 시대를 초월하는 다양한 것들이 있었다. 1940년대 평양의 ‘모란봉냉면’의 평양냉면이라든가 1980년대 신포시장의 쫄면 같은 먹거리들이 있는가 하면 이미 단종된 20세기 초 히트상품이라는 ‘카제인이 없는 믹스커피’ 같은 기호식품이나 이름밖에 모르는 MD 플레이어니 Mp3 플레이어니 하는 예전 전자제품까지. ‘천공’에서 시간대는 우리의 시간대와 함께 흘러간다는데 과거의 그리운 것들은 되살려 즐길 수 있다니 그 안에서 지내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래서 가족의 장례를 전사식으로 선택한 이들이 자신도 이 장례 방식으로 해 달라고 하는 유언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인절미를 신청하고, 실제 인절미가 들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무게인 상자를 하나 받아 대기실에 앉았다. 가족에게 선물을 사 간다는 감정을 더 리얼하게 느끼게 하려는 거라고 했다. 2010년대 후반에 유행했다는 마라탕 상호가 붙은 쇼핑백을 들고 있는 사람이 건너편에 앉아 있고 그 옆에는 초조한 얼굴로 계속 두리번거리는 소년이 하나 앉아 있었다. 두 명이 차례로 들어가고 내 번호가 불리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등판과 다리를 조절할 수 있는 의자 위에 커다란 헬멧 하나가 놓여 있다. 매번 올 때마다 접견실이 오래된 영화의 복각판처럼 느껴지곤 한다. 편안하게 각도가 조절된다는 의자가 있다고 해도 비행기 비지니스석 정도의 저 의자가 있으려면 최소한 이 방을 조금 넓게 해 주는 게 낫지 않을까. 의자가 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곳은 누가 설계했는지 몰라도 유리벽과 테이블만 있다면 오래전 영화 속 형무소 면회실이 떠오른다. 의자에 앉으면 바로 보이는 위치에 붙어있는 주의사항의 문구도 그렇다. “‘천공’에서 다치거나 혹은 죽더라도 실제로 죽거나 다치지 않습니다만 충격을 크게 받으면 접속이 해제된 후에도 한동안 힘드실 수 있으니 위태로운 행동은 하지 마십시오.” 라니. 도대체 전사 장례를 치른 옛 가족을 만나는 일에 다치거나 죽는 일이 생길 리도 없고 정말 다치거나 죽는 일이 생길 수 있을 사람이 이곳에 와서 접속할 리도 없지 않은가. 생전에 없던 원한이 ‘천공’에서 생길 것도 아닌데. 가족이 평양냉면을 공수해 주지 않는다고 죽이고 싶을 만큼 살의가 생기거나 할까.

헬멧을 쓰고 다시 화면의 주의사항을 읽고 잠시, 온 몸에 묘한 위화감이 훑고 지나간 뒤 헬멧의 무게감도 의자의 촉감도 사라지고 나는 옛 우리 집의 거실에 서 있었다.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갖고 있었던 대형 텔레비전과 늘 아버지의 지정석이었던, 쿠션이 조금 꺼진 1인 쇼파가 있는 밝은 민트색의 벽. 아버지가 반갑게 방문을 열었다. 1년의 시간동안 아버지는 조금 더 피부색이 짙어졌고 머리카락이 조금 더 희게 덮였다.

“뭘 또 그렇게 사들고 오고 그러냐. 서 있지 말고 앉아라.”

“…오빠가 아빠 좋아하시는 인절미 갖고 가라고 돈을 부쳤어요. 언니가 몸이 안 좋아서 못 와서 미안하다고요.”

“멀리 사니까 그런 걸 어떻게 하겠니.”

아버지는 약간 한숨을 쉬는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한숨을 내쉬지는 않는다. 아무리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 현실감.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이곳은 내가 사는 곳이 아니라 ‘천공’이라고, 여기서 보는 모든 것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계속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주춤거리며 소파에 앉아 인절미를 꺼냈다. 뚜껑을 여는데 콩가루가 살짝 들썩이며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아버지는 빙긋이 웃으며 나를 보았다.

“뭐라도 좀 마실래? 녹차라면 있다만.”

아버지는 녹차를 마시지 않는다. 녹차를 좋아하는 건 나다. 아버지는 1년에 한 번밖에 오지 않는 나를 위해서 이 집에 녹차를 둔다. ‘천공’에서 아버지가 어떻게 세작을 구하는지 모른다. 현실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천공’에서도 구할 수 있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녹차의 종류를 구별할 줄도 모르던 사람이었다. 아내 없이 남매를 키우면서 둘째인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 일주일에 세 번 오던 가사도우미도 더 이상 오지 않았고 아버지와 나는 자신의 일을 하고 매일의 가사를 나눠지기에도 벅차 기호식품을 집에 갖출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가 녹차를 마시게 된 건 대학생이 되면서부터였다. 우리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짧아져 집에서 해야 하는 집안일도 줄어들었을 때, 아버지는 술 담배를 다시 시작하는 대신 네트워크 활동을 취미삼아 하기 시작했고 나는 대학교 선배로부터 녹차를 배웠다. 선배의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고 겨우 차 종류를 구별하는 정도에 그치긴 했지만.

“작년보다 조금 더 잘 탈지도 모르잖니.”

“…신경 안 쓰셔도 되는데. 잘 마실게요.”

아버지가 쟁반을 들고 와 내려놓았다. 찻주전자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아버지가 건네는 작은 다완을 두 손으로 받아 마신다. 따뜻하고 달큰하고 마지막으로 쌉사래한 향이 올라온다. 다행이야. ‘천공’이 이렇게 리얼한 곳이어서. 여기서 아버지는 덜 외로울 테니까.

“맛있어요. 지난번보다.”

“다행이다. 이번엔 찻잎을 다른 회사 걸 샀는데, 파는 사람 말로는 괜찮은 거라고 하더라.”

“……얼굴이 좀 타셨어요. 캠핑 하셨어요?”

건강해 보이세요, 라는 말을 하려다가 삼켰다.

“새 친구가 생겼는데 아주 캠핑 귀신이라. 도봉산이 그렇게 좋은 산인지 몰랐다. 비박하기에도 좋다네. 다음 주에 비박하기로 했다. 산을 잘 아는 친구라서 같이 있으면 든든해.”

“잘 됐네요, 혼자 등산하면 홀가분해서 좋지만 가끔은 북적대는 것도 좋다고 하셨잖아요.”

“상처한 친구인데, 마음이 참 잘 맞아. 일찍 혼자 된 것도 나하고 같고. 아, 은퇴 전에는 너희 연구소에 있었다던데. 부소장까지 했다고 해. 등산 더 하고 싶어서 5년 전에 명예퇴직 했다더라.”

“5년 전이면 저는 모르겠네요.”

5년 전에 명예퇴직한 그 친구는 명예퇴직을 하고 얼마 안 돼 돌아가신 것일까. 어쩌면 명예퇴직이 아니라 재직 중에 사망한 것이 이곳에서는 그렇게 바뀌어 설정된 것일까. 어느 쪽이든 안쓰럽게 느껴지지만 여기서 원하던 캠핑을 즐기며 지내고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닐까.

“연구소에서는 어떠냐, 원하던 곳인데 일은 재미있고?”

“…저는 예산 쪽이라서 실제로 연구를 하진 않아요 아버지, 작년에도 말씀드렸지만.”

“아……, 그랬지. 내가 깜빡깜빡하는구나.”

아버지가 미안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인절미를 입에 넣었다.

“예산 쪽 일이 다른 사람들과 협업이 많아서……, 아니 그건 괜찮은데, 돈을 계속 맞춰내야 하니까 마감이 몰리면 조금 힘들 때도 있어요. 예산마다 결산 시기가 다르거든요. 방식도 다르고, 지금 마감 제일 가까운 일은 20개 팀 예산을 결산해야 돼서……, 말씀드려도 잘 모르실텐데 죄송해요. 어쨌든, 생각했던 거랑 좀 달라서, 막 재미있진 않아요. 그래도 다른 부서에 가게 되면 또 달라질지 모르니까요. 어떻게 좋아하는 일만 하겠어요.”

“……20개 팀 예산을 내가 결산한다고? 각 팀에서는 뭐하고?”

아버지의 얼굴이 굳어져서, 나는 순간 이성을 놓아버렸다. 아버지가 상황도 모르고 이야기한다고 화가 난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가 어쩌면 내 어려움을 알아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지 아니면 그저 누구든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했던 것뿐이었는지, 나는 숨도 쉬지 않고 연구소 예산 업무의 상황을 줄줄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연구소에서 요구하는 능력이 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불만과 3년째가 되어도 이 일을 빨리 처리하지 못하는 답답함. 그렇게 원하던 곳에 들어왔는데 여전히 서툴기만 한 내가 연구소에 있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말을 하다 보니 내가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지 새삼스러운 말까지 나왔다.

“똑똑한 사람들은 개성이 강하니까, 그거 조율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게다. 그래, 과장이 말한 시간 안에 끝낼 수는 있는 거냐? 아니면 못 한다고 확실히 말을 해야지. 네가 일손이 빠른 사람은 아니잖아.”

왈칵, 속에서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일손이 느린 사람. 융통성 없는 사람. 다른 사람들과 의견 조율을 할 줄 모르는 사람. 3년간 연구소에서 계속 들어온 말이었다. 나는 어쩌자고 나를 이렇게 몰라서, 잘 맞지 않는 일을 하겠다고 거기 갔을까. 연구소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땐 그렇게 기뻤는데. 눈앞이 어른거렸다. 어쩌자고. ‘천공’에서 울어봤자 아버지 마음만 아플 뿐인데. 내 상황이 달라질 것도 없고 아버지가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어깨 위로 아버지 손이 얹혔다. 따뜻하지 않다. ‘천공’에 속해있지 않은 나는 온도가 변하지 않는 이 접촉이 낯설다. ‘천공’에 속한 사람들은, 전사된 사람들은 이런 접촉이 당연한 것일까. 온도도 없는 단지 무게와 촉감뿐인 이 접촉이 아버지로부터는 한 번도 받아보지 않은 거라서, 나는 당황해서 아버지를 보았다. 어색해하는 아버지의 얼굴이 굳어 있다. 아버지는 내가 우는 걸 본 적이 없다. 중학생이 되고 가사를 함께 나누어 하자는 아버지의 선언을 들은 이후로, 세탁과 건조와 정리와 요리 절반, 거실과 부엌 청소와 설거지가 내 몫이 된 후로 나는 이제 그럴 나이가 아니었으므로 울지 않았고 우리 집에 어머니가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손이 터서 찢어진 상처를 본 담임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내게 말했다. 자주 손을 씻고 핸드크림을 꼬박꼬박 발라야지. 그러나 내 상처는 낫지 않았고 학교에서는 내가 손을 씻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래도 나는 울지 않았다. 손수건이 더러워지는 것이 싫었고 눈물을 손으로 훔치다 상처가 아리게 되는 것도 싫었다. 담임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날 아버지는 왜 손을 안 씻냐고 내게 소리쳤다. 손을 안 씻는 게 아니라고, 겨울만 되면 손이 트는 것 뿐이라고, 그냥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내게 핸드크림을 사 주었다. 나는 그 핸드크림을 다 쓰고 또 똑같은 걸 두 통이나 더 쓰고 중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땐 이미 집에서 아무도 밥을 먹지 않았으므로 내 손은 더 이상 트지 않았다.

디지털식 시계가 눈앞에 갑자기 떠올랐다. 시간이었다. 나는 대충 눈을 훔치고 일어났다.

“가 볼게요, 시간이 다 됐어요.”

“……그래. 벌써 그렇게 됐구나. 인절미 잘 먹으마.”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보았다. 나는 괜찮아. 내 집에는 식기세척기와 세탁건조기와 의류관리기와 로봇청소기가 있고 나는 어쨌든 연구소에서 있을 곳이 있다. 아직 나는 ‘천공’에 전사되지 않을 것이다. 눈을 감았다 뜨자 눈가는 젖어 있지 않고 나는 핼멧을 쓴 채로 의자에 반쯤 누운 자세로 있었다. 등받이를 높이고 헬멧을 벗고 의자에서 내려왔다. 나는 괜찮다. 나는 1년간 아버지를 보지 않아도 된다.


그런 날이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의 1시간만으로 오늘은 뭘 해도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날. 출근 전에 마실 커피를 무설탕 믹스로 할지 프림까지 들어간 라테 믹스로 할지 고민하다가, 오늘은 어쩐지 달콤한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라테 믹스를 뜯었는데 그날따라 손이 삐끗하면서 설탕 부분과 프림 부분 대부분이 반 이상 테이블 위로 떨어지는 날. 그날따라 라테 믹스가 한 개도 남아있지 않아서 남아있는 것만으로 라떼도 무설탕도 아닌 커피를 마시고 현관에서 신을 신으면 유독 그 때 느슨하던 운동화 끈이 풀리고 실수로 끈을 밟아 비틀대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마는 날. 그럴 때 유독 백팩 끈이 갑자기 풀려서 한 쪽 어깨가 늘어지고 끈을 끼우려고 백팩을 도로 벗다가 단단하게 묶은 머리끈에 걸려 머리까지 엉클어지고 마는 날.

11월 2일은 딱 그런 날이었다.

출근하자 부장이 얼굴을 찌푸리고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 일어났다.

“조 쌤, 조 쌤, 지난주에 보낸 수정 계획서, 잘못됐다고 수정하라고 왔어. 한 두 번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

“죄송해요, 어디가 잘못됐다고 하던가요? 보느라고 봤는데.”

당황해서 얼굴이 붉어진다.

“그거 이제 자기가 봐야지. 내가 그거까지 체크해서 넘겨줘야 해? 누가 상관이야?”

“……죄송합니다. 검토하겠습니다.”

“내일까지 제대로 수정한 거 안 보내면 예산 지급 안하겠대. 1억 2천이 날아가게 생겼다고, 내일 보고할 수 있게 오늘은 그것부터 수정해서 정리해.”

백팩을 자리에 놓는데 균형을 잃은 백팩이 떨어지면서 쿵, 소리가 난다. 맞은편에 앉은 민팀장이 쯧, 혀를 찬다. 나보다 1년 먼저 연구소에 들어온 민팀장은 예산 정산의 귀재라는 평이다. 성격이 조금 까칠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유능하니까 다들 그러려니 한다.

컴퓨터를 열어 켜자 문제의 공문이 반송되어 와 있다. 다행히 재단에서는 오류 부분을 정리해서 보내 주었다. 100페이지짜리 보고서에 지적된 오류가 열 두 건. 올 초에 보낸 계획서는 스무 건 지적을 받았으니 이 정도면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과장이 들으면 질색할 말이지만, 그래도 나아지고 있다는 것은 다행이지 않나. 오늘 아침은 이런 일이 있으려는 경고였나 보다.

수정해야 할 항목을 출력해 두고 계획서 파일을 열어 하나씩 검토하고 있는데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떴다. 오빠가 보낸 메일이었다. 남들 모르게 메일을 열었다. 개인 메일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보는 게 원칙이지만, 급한 일일지도 모르니까.

[어제 아버지는 잘 보고 왔지? 아버지가 메일 보내셨더라, 너 왔다고.

아버지가 믹스 커피 타 주셨다며? 너 좋아하는 라테 믹스 준비해 놓은 보람이 있었다고 하시더라. 네 얼굴 좋아서 다행이라고 하시고. 정말 아버지가 널 얼마나 예뻐하셨는지, 거기서도 네 이야기만 하시네.

네 언니도 고맙다고 전해 달래.

인절미 잘 전해 줘서 고마워.

건강하고.

C. D.에서 오빠가.]

어제는 아빠가 돌아가신 날이었다. 전사 장례를 치른 아빠는 지금 ‘천공’에 있는 B시에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11월 1일에는 추억관에 가서 아빠를 만났다. 자전거 여행을 하고 등산도 하며 즐거운 생활을 보내고 있는 아빠를 만나는 일이 내겐 정말 기쁜 일이었다. 전사 장례를 치러서 얼마나 다행인지. 여전히 B시에서 우리 가족이 살던 집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아빠를 보는 건 행복한 일이었다. 비록 이곳의 B시에는 더 이상 그 집이 없고 그 자리는 상업시설의 일부가 되어 흔적조차 남지 않았어도. 나 역시 나중에 이 세상을 뜨게 되면 ‘천공’에 가고 싶다고 이미 서류 작성을 끝내 놓았다. 그 때는 아빠와 계속 함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일찍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우리에겐 어머니의 빈자리는 없었다. 아빠는 매일 아침 우리를 직접 깨우고 우리가 학교에 가는 걸 챙긴 다음에 출근했다. 휴일이면 아빠 손을 잡고 쇼핑을 가거나 함께 등산을 했다. 학교 친구들은 아빠와 유독 친한 나를 놀리기도 했지만, 뭐 어떤가. 아빠는 모든 딸의 첫사랑이라는 말도 있는데. 인절미만 해도 그렇다. 인절미와 라떼 믹스는 아빠와 나의 추억의 음식이다. 오빠가 집에 없는 날이면 아빠는 늘 따뜻한 라떼를 끓이고 냉동실의 인절미를 데웠다. 오빠는 우리 둘의 비밀을 모른다. 아빠가 인절미를 좋아하는 이유도 모른다.

“조 쌤, 지금 검토 어디까지 됐어?”

부장의 목소리가 꽂혔다. 나는 익숙하게 컴퓨터 화면 창을 바꾼다.

“검토하고 있어요, 오늘 끝낼 수 있어요.”

“……휴, 자기야. 진짜 우리 야근 좀 그만 하자. 야근 많다고 일 열심히 하는 거 아니야, 알지?”

“오늘 끝내려면 야근 해야 하는데요?”

“그건 아는데, 어쨌든 일 좀 빨리 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부장의 표정이 안 봐도 훤하다. 올 초에 부서간 이동 발표가 있었을 때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예산부에는 새로운 걸 만들어 낼 필요가 없다. 아이디어가 좋고 독창적인 연구원들은 예산부로 발령 나는 걸 질색하지만 나는 다른 부서로 옮겨질까봐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저렇게 잔소리를 하긴 하지만 그래도 부장은 나를 다른 부서로 보내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부장한테 잘 하는데. 야근을 해서라도 마감은 꼬박꼬박 맞추잖아.

점심시간,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올라오니 부장은 심각한 얼굴로 사무실 안을 왔다갔다 하곡 있었다. 다른 일이 뭔가 생긴 걸까.

“부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조쌤 일은 아니고. 괜찮아. ……자기야, 나 커피 한 잔 타 줄래?”

“달달한 라떼믹스, 괜찮으시죠?”

“응, 이상하게 그건 조 쌤이 타야 맛있더라.”

“금방 해 올게요.”

나는 휴게실로 종종걸음으로 가서 물을 끓인다. 라떼믹스 한 개 반을 230ml 컵에 넣고 잘 젓는다. 남은 반개는 버린다. 물의 비율이 같더라도 양이 늘어나면 부장은 다 마시질 못한다. 부장이 제일 좋아하는 농도와 양이다. 달콤한 향을 풍기며 사무실로 들어오니 부장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부장의 코스터 위에 230ml 컵을 놓았다. 부장이 빙긋 웃음 지었다.

“자기야, 자기 아버지 ‘천공’에 계시다 그랬지.”

“네, 3년 됐어요. 저도 나중에 전사 장례 치르기로 서류 작성 해 뒀구요.”

“…그, ‘천공’에 가면 진짜 행복해 보이시나? 그거 진짜 아버지 같아?”

부장의 어머니가 건강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장례를 생각해야 하는 상황인걸까.

“‘천공’은요, 계시는 분도 계시는 분인데 남은 분들에게도 좋은 일 같아요.”

내 말에 부장이 귀를 기울였다.

“언제든 추억관에 가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잖아요. 진짜 리얼하거든요. 거기서 마시는 커피 맛이 나오고 나서도 기억날 정도로요. 손을 잡거나 서로 허그하거나. 저는 아빠가 거기 계셔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았으면 저는 몇 년은 힘들어서 매일매일 울었을 것 같아요.”

“…그거, 설정 수정도 가능하다면서? 엄청 무섭고 잔인한 사람이었으면 그런 속성을 낮춰서 다정한 성격이 되도록 할 수도 있고 직업도 바꿀 수 있고 그렇다던데, 자긴 그런 건 안 해 봤어?”

“그런 걸 왜 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면 그건 아빠가 아니잖아요, 그 모습 그대로의 그 사람을 만나는 거지, 가짜를 만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부장이 나를 보았다. 쓸쓸한 표정이었다.

“……자기야, 자기는 아빠랑 사이가 좋았으니까, 좋은 아빠였으니까 그렇겠지만……, 본인이 힘들어서 원하는 경우도 있지 않겠어? 다시 살 수 있다면 이런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남은 사람의 희망이 아니라.”

“그래도…….”

“응, 자기 말은 알았어. 고마워. 자기 말도 일리가 있어. ……우리 엄마는, 외향적인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셔서. 건강하고 외향적인 사람이면 좋겠다고. 지금과 똑같이 계속 살기는 싫으시다고 해서, 고민하고 있었거든.”

부장이 라떼를 한 모금 마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천공’에 들어갈 때 무엇을 바꾸고 싶을까. 아니, 나는 아무 것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빠와 함께 살던 그 집으로 갈 거다. 오빠가 없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오빠 역시 ‘천공’으로 오고 싶다면 그래도 좋다. 오빠에겐 새언니가 있고 아빠의 집이 아닌 두 사람의 집이 ‘천공’에 있게 될 테니까. 아무 것도 손대지 않을 것이다. 나에겐 ‘천공’ 밖에서 날 만나고 싶어 할 다른 가족도 없으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천공’에 전사해도 되지 않을까?

“아, 커피 진짜 맛있다. 자기가 탄 게 제일 맛있어 역시.”

부장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방금의 생각을 지우기로 했다. 여기도 날 좋아하는 사람들은 있으니까, 언제든 아빠를 만나러 갈 수 있으니까, 여기에 좀 더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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