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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륜 모계유전 by 김수륜

2019.11.01 00:01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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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괴이한 거울

모계유전

김수륜

그 일이 언제 벌어지는지는 잘 모른다.

내가 처음 어머니에게 그 일에 대해서 들은 것은 열 네살 때였다. 나는 그 때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계집애가 중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던 아버지에게 울고불고 사흘간 밥을 굶으며 졸라서 간신히 허락을 받아내 가게 된 중학교였다. 학교에서 하교하면 대략 다섯시에서 여섯시 정도 되었다. 어머니가 집에 없었다. 아버지는 불콰하게 술에 취해 드러누워 있었다.

엄마가 집에 언제부터 없었을까.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일단 가방부터 장작더미 안쪽에 숨겨놓았다. 술을 마신 아버지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내 가방과 교과서들을 모조리 불태운 이후 나는 어깨가 빠질 것 같더라도 엔간한 교과서는 다 가방에 짊어지고 다녔고, 집에 와서는 가방을 매번 숨겼다. 연필 같은 건 다시 살 수 있었지만 교과서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불태운 걸 알게 된 담임선생님이 나를 불쌍하게 여겨서 교과서를 중고로 구해주셔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또 교과서를 그렇게 빼앗길 수는 없었으니까, 교과서는 반드시 숨겨야 했다.

가방을 숨긴 뒤에 엄마를 찾으러 갔다. 엄마가 이 시간에 없는 것은 두 가지 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성당 일을 하러 사람들과 함께 성당에 갔거나... 아니면... 성당 마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보통 아주머니들이나 아저씨가 한두번 계시면서 마당이라도 쓸고 잡초라도 뽑고 있을 법도 한데 기이하게 조용했다.

성당 사무실 한쪽에는 사랑방이 있었다. 보통 때처럼 엄마는 거기 있었다. 사목회장 아주머니가 앉아서 한숨을 푹푹 내쉬며 엄마의 얼굴과 팔다리에 약을 발랐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간혹 엄마한테 손을 휘둘렀고, 엄마는 적당히 맞다가 아버지가 본격적으로 주먹을 쥐면 성당으로 도망쳤다.

나를 본 사목회장 아주머니가 주섬주섬 약상자를 챙겨서 일어섰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엄마한테 갔다.

“밥 한 상 갖고 올 테니 여서 기다려.”

“네, 고마워요, 큰언니.”

사목회장 아주머니는 이 동네에서 큰언니라고 불렸다. 그녀는 대답 대신 한숨을 푹푹 쉬면서 나갔다. 엄마가 내게 다정한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엄마 얼굴을 본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얼굴 한쪽이 시뻘겋게 부풀어 있었다. 호랑이연고로도 그 상처를 감추지 못했다. 내일이면 저 얼굴이 보라색 멍으로 뒤덮일 것이다.

나는 울음을 삼키면서 엄마 옆에 앉아서 가만히 엄마의 귓가에 입을 가져갔다. 엄마는 내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였다. 이 넓은 사랑방에 우리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누가 들을까봐 나는 아주 작게 속삭였다.

“엄마... 도망가...”

엄마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짓고, 팔을 뻗어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 작은 동작으로도 엄마가 숨을 삼키며 통증을 참는 게 느껴졌다.

“엄마가 이야기 하나 해줄게.”

엄마도 나처럼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때가 되면 엄마한테, 외할머니한테, 외외증조할머니한테 일어났던 일이 벌어질 거야.”

나는 머리를 살짝 움직였다. 그러자 엄마의 이마와 내 이마가 맞닿았다.

“그 일은, 너 뿐 아니라 네 딸, 네 손녀딸에게도 이어질 거야.”

엄마가 머금은 뜨거운 체온과, 입술에서 내뿜어지는 뜨거운 숨결이 나를 껴안듯이 다가왔다.

“그 때가 오기 전에 너는 신랑을 찾아서 결혼을 해야해.” “네가 - 할 사람은 - 반드시- 이어야해.” 나는 눈을 깜박였다. 마치 귀에도 열이 가득 찬 것 같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아니, 잘 못 들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싶지 않아서.

“엄마...?”

내 목소리가 마치 남의 목소리처럼 낯설게 들렸다. 엄마는 시뻘겋게 부푼 얼굴, 터져버린 입술로 미소를 지었다.

엄마가 내게 그 일에 대해서 알려준 건 그 때 뿐이었다. 나도 엄마에게, 엄마도 나에게 두 번 다시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엄마는 매번 눈으로 물었다.

기억하니.

내가 눈을 피하려 하면 할수록, 엄마의 눈이 어둡게 불탔다. 엄마는 눈으로 묻고, 또 물었다. 기억하니. 기억하니. 기억하니. 내 온몸을 뒤흔드는 것 같은 엄마의 응시 속에서 내가 그 말들을 하나하나 기억해내면 그 때서야 엄마의 어둠 같은 질문들이 가라앉았다.

몇 해가 지나 아버지의 다리가 부러졌다. 낫지도 않은 다리로 술을 마시고 걸어다니다가 아버지는 영영 불구가 되었고, 그 때가 되어서야 엄마를 향한 폭력이 멈췄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 폭력을 멈춰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맞고 사는 엄마를 내버려두고 내가 그 집을 탈출했다면 너무나 슬펐을 테니까. 하지만 걱정스러운 내게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인생 살다보면 좋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법이다. 내 걱정은 말고 결혼할 때가 되면 해야지.”

“엄마를 놔두고 어떻게 해.”

“잘 들어. 결혼은 반드시 해야해. 지나가는 거지와 하더라도 결혼은 해야한다.”

단호하게 말하는 엄마는 어딘가 결사적이었다. 어딘가 마음 한 구석에서 속삭이고 있었다.

결혼도 그 일과 관련이 있어.

그런 확신이 들자 도무지 엄마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나는 사무보조로 일하던 건축 사무소에서 같이 일하던 과장에게 청혼을 받고 결혼했다.

이듬해에, 나는 임신을 했고, 회사를 그만둔 뒤에 아들을 낳았다. 임신한 후에도 가열차게 이어지던 시모의 구박이 잠시 멎었다. 아니, 구박이 멎은 수준이 아니었다. 시모는 나와 아들만 보면 환하게 웃으며, 내게 성큼성큼 돈을 찔러주었다. 아이를 키울 때에는 현금이 많이 필요한 법이라면서. 그런 시모의 눈치를 보느라 시누이의 등쌀도 줄었다.

아이는 남편을 닮았다. 약간 벌어진 미간, 다소 좁은 듯한 하관, 얇은 입술, 둥근 이마. 하지만 나를 닮은 구석도 있었다. 긴 속눈썹과 약간 치켜올라간 눈매, 아기인데도 두드러지는 높은 콧대와 귓불이 큰 귀 같은 것들. 하지만 시모는 이런 것도 전부 남편을 닮았다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 모습이 꼴보기 싫었지만 어쨌거나 아기는 사랑스러웠다. 첫 아기였고, 첫 아들이었고, 내가 뭔가를 성취해낸 기분이 들게 한 아이였다.

그래서 다음 해에 딸을 봤을 때 그런 기분일 줄 몰랐다.

생각처럼 기쁘지 않았으니까. 임신했을 때부터 달갑지 않기도 했다. 아들이 쑥쑥 자라고 몸무게가 늘어서 뿌듯했지만 그만큼 무거워지고, 힘이 세져서 출산 후 상태가 나빠진 손목으로는 감당해낼 수가 없었다. 임신을 미뤄야한다고 남편에게 그렇게 당부했지만 술만 마시면 그 이야기를 모두 까먹고 달라붙었다.

임신 기간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낳아놓으니 더 힘들었다. 딸은 정말이지 쉽게 잠들지 않는 아이였다. 잠투정이 심각해서 한 번 재우고나면 진이 빠졌다.

애들을 키우느라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매일매일이 유지하기에 바쁜 나날이었다.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을 돌보는 일은 어제 백번 천번을 해도 오늘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어제 수십번 애 옷을 빨고 갈아입혀도 오늘 애가 한 번 음식을 옷에 엎으면 애는 더러워지는 것이다. 어제 그릇 수백개를 설거지했어도 오늘 애가 밥투정 간식투정 서너번 하면 개수대에 그릇이 쌓이는 것이다.

그런 날들을 보내는 와중에 그 일이 벌어졌다.

추석에 다 같이 모인 때였다. 시누는 평소처럼 누워서 내게 말하고 있었다.

“올케, 나 곶감호두말이 띄운 수정과 좀 갖다줘.”

식사가 끝난지 한 시간 즈음 됐을 무렵이었다. 밥을 먹고 상을 치운 뒤 설거지하고 부엌 정리한 뒤 저녁 준비를 위해 쪽파를 다듬는 와중에 들은 말이었다. 이럴 때는 가타부타 말을 붙이는 게 더 시끄러워지기 마련이었다. 시누는 먹고 싶은 건 꼭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시모의 냉장고는 그야말로 거대한 창고였다. 두 개의 김치냉장고에까지 꽉꽉 들어찬 식재료는 줄어들 기미가 전혀 없이, 마법의 창고처럼 볼 때마다 늘어나면서 내 손길만을 기다렸다. 나는 냉장고를 뒤져서 곶감과 호두, 잣을 꺼냈다. 곶감을 펼쳐서 반듯한 사각모양으로 자르고, 호두와 잣을 박아서 돌돌 만다. 본래는 냉장고에서 하루 묵혀야 모양이 예쁘게 잡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바로 잘라서 수정과 위에 띄워 가져갔다.

“고마워, 올케.”

그 때부터 올케는 단 걸 먹으니 짠 게 당기네, 바삭바삭한 게 먹고 싶네 어쩌니하면서 연달아 내 이름을 불러댔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해달라는대로 해주었다. 시가에 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제대로 앉아보지도 못하고 내내 시중만 들다 마침내 저녁이 되어서야 앉을 수 있었다.

이집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남편이 어릴 때 시부가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그 때는 제사를 지냈지만, 남편이 군대에 가면서부터는 제사를 관뒀다고 했다. 그 때 시조모가 돌아가신 덕분에 제사를 그만둘 수 있었다고. 하지만 시부가 돌아가신 날이 되면 이렇게 식구들이 다 모여서 술자리를 만들었다.

내가 차린 술상을 받아서 시가 식구들이 도란도란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나도 간신히 소주 한 병을 들고 끼어앉을 때였다. 간신히 재웠던 딸, 말리가 부스스 일어나 문을 열고 나왔다.

“엄마-.”

짜증이 확 일었다. 하루종일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내 집을 깨끗하게 한 것도 아니고 남의 집에서 종종거리고 시중만 든 피로와 짜증이 한번에 몰려왔다.

나는 말없이 아이를 향해 팔을 내밀었다. 아이가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았다. 남편은 애를 흘긋 보다가 시선을 슥 돌리며 관심을 끊었다. 아이가 눈치를 보는 게 몹시 짜증이 났다. 말리라고 이름을 지어준 딸아이는 내가 저를 탐탁찮아하는 걸 알았는지 언젠가부터 나를 찾을 때마다 눈치를 봤다. 그게 애의 잘못은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좀 애답게 와서 덥석덥석 안기고하면 얼마나 좋은가? 아들은 음식 양이 충분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만 있으면 세상에서 제일 착한 아이였다. 그에 비하면 딸아이는 잠투정이 심하더니 이유식을 할 때도 까다롭게 굴었다.

짜증스러웠지만 애가 엄마를 찾고 있었다. 나는 팔을 벌린 채 오지 않는 아이에게 인상을 썼다. 그러자 애가 흠칫 놀라면서 쭈뼛쭈뼛 옆에 다가왔다.

“올케는 모성애가 별로 없는 타입인가봐. 애한테 항상 그렇게 싸늘하게 굴고.”

시누이가 술잔을 들어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말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보면 올케도 큰조카와 작은조카 차별이 심하다니까. 둘째의 서러움은 내가 둘째니까 잘 알지. 이리온, 말리야. 고모한테 와.”

딸아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내 옆에 달라붙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시누이가 미소를 지었다. 말리가 어딜 봐서 그렇게 예쁜지 도저히 모를 일이었다. 내가 나직하게 물었다.

“왜 안 자고 나왔어.”

딸아이는 여섯살인데, 제 오빠보다 더 말을 잘했다.

“자다가 배가 꼬르륵거려서 잠이 깼어요.”

그래서 가끔 거짓말도 잘했다. 나는 물끄러미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정말로 배가 고파서 깬 건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화장실 가고 싶어서 깬 거 아냐?”

딸아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에요.”

“올케, 배가 고프다잖아. 애한테 먹을 거부터 줘요.”

“그래, 먹을 것부터 줘라.”

시누와 시모가 차례로 앉아서 술잔을 꺾으며 말했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일어섰다. 딸애가 좋아하는 버터간장밥이라도 해줘야겠다고 부엌에 들어설 때였다. 갑작스럽게 몸이 떨렸다. 아파트일지라도 부엌은 다른 방들보다 항상 따뜻하다. 심지어 오늘은 하루종일 어른들과 아이들의 끼니와 간식을 마련하느라 가스렌지 위에서 항상 뭔가가 끓었고, 사람도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렇게 춥지?

냉장고 앞에 있던 나는 창문이 열렸나 싶어서 무심코 부엌 창문쪽을 돌아보았다. 부엌 창문은 개수대 쪽에 있었다. 밤이라 창밖이 어두웠고, 아파트단지 아래쪽에서 가로등만이 줄지어 빛나는 시각이었다. 지금은 9월이었고 그렇게까지 추울 계절이 아니었다.

개수대와 상부 수납장 사이에 가로로 길쭉하게 자리잡은 부엌 창문에 한 남자의 얼굴이 둥둥 떠 있었다.

여기는 15층이었다.

“악!”

나는 짧게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몸서리를 치는 바람에 내 손에서 간장병이 굴러떨어졌다.

“무슨 일이냐?!”

“뭐야? 왜 그래, 당신?”

남편과 시모가 허둥지둥 달려왔다. 부엌 창문에 떠 있던 얼굴의 시선이 스윽 나와 마주쳤다. 새까맣고, 탐욕스럽고, 빛이 없이 탁한 눈이 나를 쳐다보았다. 눈이 나를 인지했다. 너로구나. 다음 순간 그 얼굴이 사라졌다. 눈앞이 새까매지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의 말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때가 오기 전에 너는 신랑을 찾아서 결혼을 해야해.

저절로 가슴이 들썩였다. 숨이 부족했다.

“여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바퀴벌레가 나와서 그만…”

“그런 걸로 그렇게 소리를 질러!”

시모가 버럭 화를 냈다. 나는 바닥에 구르는 간장병에 시선을 박고 있다가 들어올렸다. 다행히 간장병에서 간장이 쏟아지지 않아서 바닥은 깨끗했다.

“니 나이가 몇 살인데 그딴 걸로 소리를 질러서 사람을 놀래켜! 이 시어미를 줄일 셈이냐! 벌레 따위가 너를 죽이기라도 해?!”

나는 당황해서 시모를 쳐다보았다. 달려온 남편도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엄마, 뭐 그렇게까지 화를 내.”

오지는 않았지만 이쪽을 쳐다보는 시누이도 당황한 것 같았다. 시모는 인상을 팍 쓰고는 몸을 휙 돌려서 나갔다. 그 때 누가 주저앉은 내 등을 꽉 끌어안았다.

“엄마, 괜찮아요?”

말리였다. 나는 깊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모두 놀랐는데, 아들만은 안 깨고 잘 자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응, 엄마는 괜찮아요.”

습관적으로 말리를 도닥이면서 마음을 추스렸다. 머리가 정신없이 돌아갔다.

엄마가 왜, 그 때가 언제라고 말해주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말해줄 수도 없다. 엄마도 모르기 때문에. 나도 몰랐다. 그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오기 전까지는 모를 것이다.

거실 베란다 창이 반 정도 열려 있었다. 거기에 그 남자 얼굴이 언뜻 나타났다가, 점멸하듯이 사라졌다. 하지만 떠났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전등 스위치를 켰다가 끄면 환한 빛에 적응했던 눈에 사물이 보이지 않듯이, 그 둥둥 떠 있는 남자 얼굴도 그저 보이지 않게 된 느낌이었다.

심장이 낚시바늘을 삼킨 물고기처럼 펄떡거렸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내 온몸이 전부 펄떡거리는 것만 같았다. 너무 무서워서.

너로구나.

그 탁한 눈이 말하고 있었다.

너다.

나는 초록색 소주병을 쥐고 잔에 채웠다. 술이 필요했다.

아니야, 내가 아니니까.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끝맛이 달짝지근했다. 술이 너무 달아서 전혀 취할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두 잔, 세 잔을 비우는 동안 점차 맥박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엄마, 깡소주만 마시면 속이 상한대요.”

말리가 옆에서 편육 접시를 내 앞으로 끌어당겼다. 시누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 얘 좀 봐,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티비에서요!”

“아유, 엄마 생각할 줄도 알고. 다 컸네, 다 컸어. 올케는 애 다 키워서 이제 편할 일만 남았네.”

나는 젓가락으로 편육을 한 점 집었다. 이제 뭘 해야할지 알 것 같았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시모는 자러 안방에 들어갔고 나와 남편과 시누이만 남아서 술을 마셨다. 침묵 속에서 술만 마시는 분위기는 스산하기 그지 없었다. 말리는 내 티셔츠 옆구리를 꼬옥 쥐고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침내 때가 왔다.

거실 베란다 창이 반쯤 열려 있었다. 그 창으로 부엌 창문에 나타났던 남자 얼굴이 들어왔다. 아까는 얼굴만 있었지만 지금은 몸도 있었다. 40대 정도 되었을까, 50대 초반일까, 피부 자체가 너무 풍화된 종이처럼 삭아있어서 나이를 정확하게 추정하기가 어려웠다.

누렇게 찌든 손가락이 나를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니야.

“이현지를 데려가.”

나는 시누이의 손목을 잡아 일으켰다. 술을 마시던 시누이의 눈이 둥그래졌다.

“올케, 그게 무슨 소리야?”

남자가 시꺼먼 입을 헤벌쭉 찢으면서 다가왔다. 짙은 담배냄새가, 땀과 오줌이 썩은 듯한 지린내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내가 일으킨 시누이의 손목을 잡아챘다.

“오, 올케, 이게 무슨… 올케… 왜… 나한테 왜 … 왜 이래…”

시누이가 속절없이 남자에게 끌려갔다. 몸은 남자에게 끌려가면서도 시누이의 눈은 정확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올케! 올케! 나한테 이러면 안돼!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네가! 어떻게!”

“…? 현지야, 너 뭐하는 거야? 이 사람이 뭘 했다고 그래?”

남편은 멍하니 쳐다보면서 무슨 사태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시누이가 고래고래 질러대는 소리 때문에 잠들었던 시모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이게 무슨 소란이야?”

시모와 남편의 눈에는 시누이를 끌고 가는 남자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남자는 시모와 남편이 일어서려하자 다시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더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이 모든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베란다 창에는 200kg의 무게에도 버틴다고 하는 강철방충망이 설치되어 있어서,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기만 할 뿐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기묘한 확신이 있었다. 저 남자는 분명히 어떻게든 시누이를 데리고 갈 것이다.

엄마가 내게 속삭였던 말들이 떠올랐다. 엄마가 다시 한 번 내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기억해, 네가 밀어야할 사람은 반드시 가족이어야해. 네 가족.

나는 시누이의 손목을 잡아 직접 넘겨주었다.

내가 아니기 위해.

남자에게 내가 가지 않기 위해.

그리고 시누이는 강철방충망을 열고 뛰어내렸다. 15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시누이의 장례식에서 시모가 내 뺨을 호되게 갈겼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내 딸을 죽였어! 네가 감히! 내 딸을! 너 같은 걸 데려오는 게 아니었다!”

나는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를 피했다. 시모를 뜯어말리고 가서 자게 한 남편이 한숨을 쉬었다.

“대체 엄마가 왜 저러지? 내가 다 미안하네, 당신한테.”

제3자인 척 뒤로 빠지는 말투는 남편이 항상 구사하는 말투다. 나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어머니가 충격이 크신가봐요. 제가 가면 더 화내실 것 같으니, 당분간 저는 어머니 앞에 안 갈게요.”

“그래, 그게 좋겠어.”

나는 휴게실로 돌아왔다. 말리가 눈이 퉁퉁 붓도록 울다가 지쳐서 자고 있었다. 이 조그만 여섯살 짜리가 죽음과 장례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만, 어른처럼 행동하는 게 징그러웠다. 반면 아들은 무슨 일인지 전혀 모르는 것만 같았다. 해맑은 얼굴로 장례식장에서 나온 편육을 열심히 먹고, 혼자서 잘 놀고 잘 잤다. 엄마를 가끔 찾는 거 말고는 정말 손이 안 가는 아이였다.

말리의 손이 이불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아이의 손을 다시 이불 속으로 넣고 잘 여며주었다. 엄마의 말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때가 되면 엄마한테, 외할머니한테, 외외증조할머니한테 일어났던 일이 벌어질 거야. 그 일은, 너 뿐 아니라 네 딸, 네 손녀딸에게도 이어질 거야.

내 딸, 내 손녀딸에게도 이런 일이 이어진다고. 이 조그만 아이가 나와 같은 일을 겪는다고.

말리가 좀 짜증스럽다할지라도 내 딸이었다. 이 아이가 이런 일들을 겪는다니… 홀연히 툭 떨어지던 시누이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몸은 끌려가면서도 얼굴은 나를 돌아보며, 안구가 튀어나올 것 같고 입이 검게 뻥 뚫려 울부짖던 모습도.

이 아이가 이런 일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저 아이에게 그 일이 벌어질 때 내가 있을까? 엄마는 내가 그 일을 겪기 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엄마에게 가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안그래도 엄마가 돌아가실 때 하염없이 흐느껴 울었다. 엄마만이 내가 진심으로 믿고 의지할 가족이었다. 엄마 외에는… 믿고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고, 그 후로도 몇 번이나 그 사실을 절감했다. 엄마가 없으면 내겐 아무도 없어.

물어볼 사람도, 상담할 사람도 없어. 엄마가 그래서 성당에 그렇게 열심히 다녔던 걸까. 의지할 순 없어도 최소한 엄마가 거기 있다는 걸 알아줄 사람들을 찾아서?

아들은 잘 자랐다. 남매가 그렇게 사이좋지 않다는 문제가 있긴 했다. 가끔 제 여동생을 두들겨팼다. 볼 때마다 나무랐더니 내가 없을 때 때리고, 엄마에게 말하지 말라고 협박하는 모양이었다. 아들이 물색없이 동생을 때리는 건 아니었다. 말리는 조금이라도 이치와 규칙에 맞지 않으면 납득을 못하는 아이였다. 반면 아들은 넉살이 좋았다. 그리고 한번 욱하고 성을 내면 앞뒤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성질도 있었다. 애교를 섞어 넉살좋게 대꾸하다가 어느 순간 이중인격처럼 욱하고 성질을 내며 주먹부터 쥐는 게 제 아비와 똑같았다. 둘이 싸우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말리는 제 오빠가 게으름을 피우거나 대충 애교로 넘기는 걸 그대로 봐넘기지를 못했고, 아들은 제 여동생이 자신에게 따져드는 걸 참지 못했다.

말리가 오빠 앞에서 조금만 참으면 될 일인데, 그걸 참지 못해서 매번 매를 버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말리는 제 오빠와 아예 말을 섞지 않게 되었다. 둘 사이는 몹시 냉랭했지만 어쨌거나 집안은 조용해졌다.

아들과 말리 모두 큰 말썽 없이 사춘기를 보내며 착실하게 자랐다. 아들이 취업한 후, 나는 전세금을 마련해 아들을 독립시켰다. 말리도 취업했지만, 아들과는 달리 독립을 시키지 않았다. 남편이 딸아이를 시집가기 전까지는 내보내지 않겠다며 강경하게 반대하기도 했고, 요즘같이 흉흉한 시기에 여자 혼자 살게 두는 것도 영 불안했다. 딸아이에게 전세금을 넘겨주는 것보다는 좀더 모아서 혼수를 마련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슬슬 혼기 걱정을 할 무렵이었다.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아들은 먼저 만나는 여자가 있다고 소개 자리를 마련했다. 아직 상견례도 아니고, 결혼을 약속한 것도 아니었으니 집에서 만나는 건 과하다 싶어서 고즈넉한 중식당의 룸을 예약했다.

아들이 데려온 여자는 얌전하고 꽤 예뻤다. 긴장했는지 제대로 먹지 못했지만, 그건 당연했다. 어떤 여자가 시어미 될지도 모르는 어른 앞에서 태평할 수 있을까. 제법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하는데, 말리가 사고를 쳤다.

말리는 처음부터 그 여자가 마음에 안 드는 기색이 역력했다. 애당초 이 자리 자체에 별로 오고 싶어하지 않았는데, 내가 억지로 권해서 데려왔다. 식구라고는 딱 넷인데 남편마저 지방으로 출장가서 오지 않은 탓에 식구가 하나라도 더 있는 게 좋을 것만 같았다.

밥 먹는 내내 툴툴거리면서 영 석연찮아하더니 급기야 식혜를 아들 여자친구의 옷에 엎은 것이었다. 말리 자신도 놀랐는지 당황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사과를 했다.

“어머, 언니, 미안해요-!”

하지만 그 사과가 끝나기도 전에 아들이 일어나 말리의 뺨을 후려쳤다. 아들 여자친구의 얼굴이 경악으로 얼어붙었다. 말리가 비틀거리면서 옆으로 넘어졌다. 나도 눈을 크게 뜨면서 아들을 돌아보았다.

아들은 홧김에 손을 댄 다음, 여자친구를 돌아보다가 안색이 굳어졌다. 여자친구는 마치 범죄자를 보는 것 같은 얼굴로 아들을 보고 있었다.

나는 옷을 버린 아들 여자친구를 데려가서 옷을 새로 사주고 갈아입혔다. 아들은 여자친구에게 연달아 뭐라고 속삭이며 달래고 있었다. 아들이 여자친구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나는 말리에게 집에 가지 말고 친구 집이라도 가 있으라고 속삭였다. 아들 성격으로 봐서 여자친구가 간 다음에 도저히 그냥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핸드폰도 꺼 놓고, 친구 집에 가 있으라고 일렀다.

말리는 복잡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이 그 일을 어떻게 수습했는지는 몰라도, 수빈은 아들과 결혼을 약속했다.

아들과 수빈이 결혼한 후 남편이 지방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 후 나는 딸과 둘이서 살았다. 불안한 마음에 말리에게 몇 번이나 결혼을 재촉했지만 말리는 듣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 후, 나는 남편의 기일에 딸과 함께 납골당에 다녀오는 길에 불현듯 깨달았다. 곧 딸애에게 그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엄마는 내가 꽤 어릴 때 내게 말해줬지만, 나는 여태까지 딸에게 말해준 적이 없다는 것도 함께 깨달았다. 엄마가 이런 기분이었던 걸까? 엄마는 그래서 내게 말해줬던 걸까? 만약- 엄마가 그 때에 살아계셨다면 이런 기분이셨을까?

우리는 밥을 먹고 있었다. 문득 숟가락을 딱 멈춘 나를 보고 말리가 눈을 둥글게 떴다.

“엄마? 왜 그래요? 어디 아파?”

어쨌거나 말리는 미우나고우나 내 딸이었다. 말리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며칠 후에 수빈이 부를 거다. 그 때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

“응? 싫어, 그럼 그 인간도 올 거 아냐?”

“오빠한테 그 인간이 뭐야.”

나는 반사적으로 나무라다가 다시 말을 되잡았다.

“말리야, 엄마 말 잘 들어.”

말리가 여섯살 때 일어났던 그 일이 다시 떠올랐다. 그 일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잊혀지지도 않는다. 나는 아직도 그 순간에 떠돌던 집안의 냄새를 기억한다. 내가 삶아서 썰었던 수육의 부들부들한 냄새, 수육을 삶을 때 누린내를 제거하느라 넣었던 양파와 대파와 마늘이 흐늘흐늘하게 늘어지던 모양, 그리고 내가 떨어뜨렸던 간장병의 빨간 상표 같은 것들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엄마한테도, 외할머니한테도, 외외증조할머니에게도 일어났던 일이 있어.”

말리는 말없이 눈을 껌벅거렸다.

“너한테도 그 일이 일어날 거야.”

하지만 너는, 나와는 다르게, 엄마가 옆에 있어줄 거야.

“그 일이 일어나면 엄마가 시키는대로 해. 알겠어?”

말리가 잠자코 젓가락을 만지작거리다가 물었다.

“그 일하고 수빈언니하고 무슨 상관인데?”

나는 엄마에게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놀라고 당혹스러웠지만 말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저 잠시 생각하다가 되물었을 뿐이었다. 나는 이걸 미리 말해줄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네가 밀어야할 사람은 반드시 가족이어야 해.

말리는 아직 결혼을 안했는데… 하지만 괜찮아. 말리는… 괜찮아.

“아무튼 엄마 말대로 한다고 약속해. 알았어, 몰랐어?”

말리는 다른 때와는 달리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이럴 때에는 유난히 고집스럽던 아이였다. 말리는 물끄러미 내 얼굴이며 몸짓을 살펴서 내 속을 알아내려고 애썼다.

“말리야, 그 일이 일어나면, 너는 엄마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거야. 엄마 말대로 따르면 너는 그 일을 한 번만 겪을 수 있어.”

나는 엄마가 했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 안다.

내 딸에게 엄마가 했던 말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약속해, 엄마가 시키는대로 한다고!”

“으응...”

말리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애써 아픈 척을 하며 아들에게 전화했다. 엄마가 몸살이 나서 아픈데, 수빈이가 보고 싶다고. 와서 엄마 얼굴 한 번만 보고 갔으면 좋겠다고.

이런 면에선 내게 잘하는 아들이었다. 아들은 알았어, 수빈이 데리고 엄마한테 갈게, 엄마 너무 아프지 마, 몇 번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

주말에 수빈이와 아들이 왔다. 둘 다 직장에 다니고 있었으니 평일에 오는 게 쉽지 않았다. 내가 당부했던 대로 말리도 집에 있었다. 말리를 본 아들이 의외라는 듯 놀라다가 눈을 부라렸다.

수빈이가 인사왔던 때 이후로 둘의 사이는 악화일로를 치달아서, 이제 도저히 같은 가족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원래 가족이란 이름 하에 묶이는 사람이 남보다 못할 때가 많은 법이다.

나는 요리를 데웠고, 말리가 아들과 수빈에게 상을 차려주었다. 아픈데 뭘 이런 걸 했냐고 타박하면서도 아들은 맛있게 먹었다. 수빈은 음식을 건성으로 건드리며 나를 살폈다.

“어머니, 아프시다고 해서 홍삼을 사왔는데 좀 드시겠어요? 홍삼이 몸에 받으시는지 이 사람은 모른다고 해서요.”

수빈이 조심스레 나를 걱정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가슴이 콱 막히는 기분으로 웃었다.

나는 조심스레 말리를 살피며 따라다녔다. 시모와 시누이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기억한다. 그들 눈에는 그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내 눈에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봐야하는 건 말리 뿐이었다. 말리가 알려줄 것이다.

지켜본 보람이 있었다. 하필이면 말리가 부엌에서 과일과 과도를 챙기던 때였다. 말리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말리의 손에 들려 있던 쟁반이 서서히 기울어졌다. 나는 재빨리 말리의 손에서 쟁반을 받았다. 말리의 발에 과도를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어딘가, 그것이 있다.

나는 침을 삼키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말리의 시선으로는 아무 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말리는 그저 눈을 크게 뜨고 허공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차가운 소름이 등줄기를 훑어내렸다. 새까맣게 열려서 웃던 입, 찢어진 눈-. 그 때 봤던 그 얼굴이 내 기억 속에 선명히 떠올랐다.

그리고, 한 가지 기억도 떠올랐다.

나는 아주 어렸다. 서너살쯤 되었을까. 화창한 낮이었다. 그 때는 우리 가족이 작은 아버지 내외와 함께 살고 있었다. 부엌은 낡은 한옥이라서 낮에는 깊고 침침했다. 엄마가 부엌의 높은 문턱 앞에서 작은 엄마의 등을 밀었다.

날카롭게 터지던 작은 엄마의 비명이 떠올랐다.

말리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아니었다. 말리의 몸이 떨려서 턱도 끄덕이는 것 같이 보일 뿐이었다. 말리가 나지막이 신음했다.

“아빠...?”

나는 과도를 내려놓고 말리의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

“그건 아빠가 아니다.”

말리의 공허한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

“말리야, 그건 아빠가 아니야. 그건...”

나는 숨을 몰아쉬면서 말리를 끌어당겼다. 아니 내가 말리의 귓가로 가까이 다가갔다. 내 딸은 나보다 키가 컸다. 나는 발돋움을 해서 속삭였다.

“그건... 수빈이를 받아갈 것이야.”

말리는 결혼을 안해도 괜찮아. 다른 여자 가족이 이미 있으니까.

말리의 눈이 활짝 열렸다. 말리가 덜덜 떨면서 고개를 저었다.

“어, 엄마, 엄마, 그게, 엄마-. 아빠가-.”

“아빠가 아니라니까! 엄마 말 듣기로 약속했잖아!”

나는 단호하게 소리지르면서 말리를 끌어안았다. 그런데 말리의 손목이 움직이지 않는 걸 발견했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미 손목을 붙잡힌 것이다. 나는 있는 힘껏 말리를 끌어안았다.

“안돼! 내 딸이야! 말리야! 말리야! 어서 말해! 말리야!”

“엄마! 어떻게-! 안돼, 엄마!”

말리가 목이 부러질 것처럼 머리를 흔들어댔다.

“엄마! 엄마가! 어떻게! 안돼! 엄마가! 엄마가… 역시… 고모를…. 나도… 엄마처럼… 새언니를…!”

말리의 흔들리는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손을 휘둘렀다. 말리를 키우며 단 한 번도 말리에게 손을 대지 않았었다. 안그래도 제 오빠에게 치이는 아이가 가여웠기 때문에. 그런데, 처음으로 말리를 내 손으로 때렸다.

“너는 내 딸이야! 저런 거한테 내 딸을 뺏길 수 없어! 세상 모두를 줘도 내 딸은 안돼!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니?”

뺨을 얻어맞은 말리의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어엄마아-.”

“그래, 그래, 말리야, 내 딸.”

나는 말리를 끌어안은 채 발을 옮겼다. 너무 무거워서 신음이 터졌다. 말리가 무거운 게 아니라, 말리의 손목을 쥔 것이 지독하게 무거웠다.

“엄마는! 너를 절대 뺏기지 않아!”

“...엄마...”

내가 소리를 꽥 질렀다.

“수빈이를 주라고!”

거실에 있던 수빈과 아들이 벌떡 일어섰다. 부엌에서 일어나는 일이 가족의 일이라고 생각해서 애써 외면하던 수빈이와, 제 엄마와 제 동생이 창피해서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던 아들이 마침내 뭔가 일이 생각과 다르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성큼성큼 부엌으로 왔다.

“엄마, 왜 그래? 왜 소리질러?”

“어머니? 괜찮으세요?”

나는 가까이 온 수빈이의 손목을 잡아채어 말리 쪽으로 떠밀었다.

“대신 얘를 주라고! 내 딸 대신!”

“어머니?”

하지만 말리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기만 했다. 그리고 천천히 발을, 욕실 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이 집에 있는 사람 네 명이 모두 여기에 있는데, 물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마치 욕조에 물을 받는 것처럼.

상식적으로, 손님이 와 있는데 누가 욕조에 물을 받겠는가?

말리가 욕실 쪽으로 조금씩 걸어갔다. 마치 말리는 가만히 있는데 누군가가 억지로 말리의 발을 하나씩 옮기고, 등을 떠미는 것 같은 뻣뻣한 움직임이었다.

“말리야!”

말리의 눈이 커다랗게 열리고, 초점이 사라져갔다. 저런 눈빛을 안다. 베란다에서 방충망을 열어젖히던 시누이의 눈이었다. 밖에 둥둥 떠 있던 남자의 얼굴을 한 그것에게 마침내 먹힌 눈.

“안돼! 말리야악!”

나는 목을 찢어놓을 것 같은 비명을 질렀다. 욕실로 들어가는 말리를 꽉 붙잡았지만 문이 쾅 닫히면서 내 팔뚝이 문 사이에 끼었다.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비명이 터졌다. 팔이 잘려나가는 것만 같았다. 팔이 영원히 끼어 있다고 느끼는 순간 문이 활짝 열리고, 나는 거칠게 가슴을 걷어채였다.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컥컥거리면서 바닥에서 뒹굴다 무릎을 배 아래에 넣어 일어나는데, 닫히는 욕실 문 사이로 익숙한 발뒤꿈치를 보았다.

“...동백아?”

아들의 발뒤꿈치였다.

아들이 왜 저기로 갔지? 첨벙! 물 소리가 들렸다. 끄억꺽 지르는 소리와 물이 사방으로 튀는 소리가 들렸다.

뭐가 잘못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뭐지?

나는 앉아서 멍하니 욕실 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욕실 문이 열렸다.

아들이 흠뻑 젖어서 욕실 바깥으로 천천히 쓰러졌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물에 빠진 듯 물방울이 뚝뚝 흐르는 몰골이었다. 이어서 말리가 아들의 몸을 타넘으며 나왔다. 말리는 그 정도로 젖지는 않았지만, 대신 땀범벅이었다.

이제 말리의 눈은 완전히 돌아와 있었다.

“쟤, 죽지는 않았어요.”

나는... 무슨 일인지 천천히, 아니, 빠르게 깨달았다. 말리에게 달려들었다. 말리를 때리려고 했지만 팔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말리가 몸을 피하다가 동백의 몸에 걸려서 넘어졌다. 나는 말리를 발로 걷어찼다.

“네가! 저 애 대신! 내 아들을 주었구나! 네가 감히!”

말리가 수빈이 대신 내 아들을 그것에게 넘긴 것이다!

애 아빠 얼굴을 한 그것에게, 내 아들을 준 것이다!

어떻게!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워냈는데 내 아들을 죽이려 해! 내게서 내 아들을 빼앗으려 해! 내가 저를 얼마나 아껴줬는데!

말리는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몸을 웅크렸다.

“네가 감히! 어떻게! 내 아들을! 너 같은 게!”

퍼억, 퍼억 발로 걷어차고 있는데 발가락이 부러지는 것 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눈이 시뻘개져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아들을 감히 죽이려 한 이년을 죽이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지 마세요, 어머니.”

“아윽!”

어깨가 강하게 잡혔다. 뿌리치려 했지만 팔이 너무 아파서 그러지 못했다.

“뭐야?”

나는 거칠게 돌아보았다. 수빈이었다. 눈물로 범벅이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말리도 어머니 딸이고, 말리도 아파요. 그러니 그만하세요.”

“내 딸이라고? 내 아들을 죽이려고 한 게?! 저게 내 아들을 죽이려고 했다고! “

“동백씨를 죽이려고 한 건 아가씨가 아니라 욕실 안에 있는 그거잖아요! “

수빈이 눈물 묻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눈가가 붉었다.

“저 년이 내 아들을 넘겼잖아! 그게 죽이려고 한 거잖아! 내 아들이 죽을 뻔했어!”

“그렇게 따지면, 저를 죽이려고 한 건 어머니잖아요!”

그게 뭐 어때서!

아니면 내 딸이 죽으니까! 내 딸이 끌려가니까! 그게 뭐 어때서!

그 때 웅크리고 있던 말리가 나직이 말했다.

“이동백 안 죽었다고요, 엄마. 이동백이나 살펴봐요.”

그 말을 듣고서 나는 내 아들을 돌아보았다. 희미하게 젖은 등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나는 비틀거리면서 움직였다. 내 아들에게 가까이 가자 뜨끈뜨끈 열이 오르기 시작하는 체온이 느껴졌다.

“아들. 아들. 눈 좀 떠봐. 엄마다, 응? 아들.”

나는 아들의 등을 끌어안으며 울었다. 내 딸이 내 아들을 감히 죽이려고 했어. 그것에게 넘기려고 했어. 내 아들이 죽을 뻔했어.

하염없이 울다가, 구급차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자 말리를 부축하고 현관문을 나서는 수빈의 뒷모습이 보였다. 둘은 서로를 부축하듯, 의지하듯 단단히 달라붙어서 걸어갔다.

내 쪽은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나는 아직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핸드폰을 찾았다. 아들이 얼른 병원에 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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