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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영웅들이 없는 곳이 아닙니다

엄길윤

​안녕하세요? 유튜브 트라우입니다. 여러분들도 다 아실 겁니다. 요즘 세상이 난리가 아닙니다. 사람을 잡아먹는 좀비들이 득실거린다고요.

이거 어떻게 할 겁니까? 경찰 조직이요? 이미 초기에 궤멸했습니다. 군대도 좀비들에게 밀려서 후퇴한 지 오래고요. 좀비들이 너무 많아요. 많아서 미쳐버리겠습니다. 생태계를 교란한다고요. 죽어 나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떻게 살라는 겁니까? 예? 집에 가만히 앉아있으라는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그래서 이 트라우가 왔지 않겠습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 트라우가 여러분들에게 좀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잡는지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영상을 찍으려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말도 못 한다 아닙니까? 여러분들까지 고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제가 올린 영상을 보고 따라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고생은 저 혼자만 하는 거로 충분합니다.

여러분, 저기 가게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좀비 보이시나요? 아침부터 이게 무슨 개고생입니까? 이 지역에 많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좀비들이 또 저를 피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짜식들! 무서운 사람이라는 건 또 어떻게 알아가지고. 어허, 도망가지 마. 형이 살살 한다니까? 어쨌든 한 시간 넘게 찾아다니다 겨우 저 한 마리를 발견한 겁니다. 그리고 명심하세요. 본 영상은 전문가의 조언과 시범을 토대로 철저히 계산해서 찍은 겁니다. 괜히 오버하시거나 매뉴얼에 없는 행동을 하시면 큰일 납니다. 저처럼 덜떨어진 사람이 되는 거예요.

먼저 좀비들에게 다가가기 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퇴로를 살피는 겁니다. 세상에는 만에 하나라는 게 존재하지 않겠습니까? 좀비들을 후드려 패다가 발목이 삐끗했다, 좀비의 몸에서 튄 피가 눈에 들어갔다, 아이쿠 손이 미끄러져서 무기를 놓쳤다, 이러면 우짭니까?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야죠! 그래서 퇴로를 잘 살피라는 겁니다.

좀비 구제 작업을 혼자서 해도 되냐고요? 저 혼자 아닙니다. 제 얼굴을 찍어주는 저 카메라맨이 있지 않습니까? 혼자 행동해도 되지만, 저 트라우는 2인 1조로 행동하는 걸 강력히 추천합니다. 적어도 저 카메라맨은 제 뒤를 봐줄 수 있잖아요. 여러분! 사각지대를 살필 수 있다는 건 아주 커다란 이득입니다. 왜, 군대 훈련소에서는 3인 1조로 화장실도 가고 그러잖아요. 일명 전우조라고 부르면서요. 좀비를 잡을 때는 두 명이 전우조입니다. 그렇다고 우르르 몰려다니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세 명부터는 오히려 난잡해지고 상황이 복잡해질 우려가 있거든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아닙니까?

그리고 말입니다. 저를 보세요. 손에 든 야구방망이 말고는 몸에 아무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어떤 분은 이러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딱 걸렸네! 저, 저, 아무런 안전 장비도 없이 뭐 하는 짓이냐? 애들이 무턱대고 따라 하면 어떡하느냐? 참고로 아이들은 절대 이 영상을 보면 안 됩니다. 괜히 19금 딱지를 붙인 게 아니에요. 부모님의 지도 편달 부탁드리고요.

안전 장비를 안 한 이유가 있습니다. 퇴로를 살피는 것하고 큰 관련이 있는데요.

다른 유튜브 영상에서는 아마 두꺼운 패딩을 입으라든지, 팔목이나 목덜미 같은 부분을 테이프로 감아 맨살이 노출되는 걸 피하라는 둥 안전에 대해 철저하게 대비하는 걸 보셨을 겁니다.

예. 맞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분들의 말이 잘못됐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저 트라우는 그렇게 대비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다른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알려드리려는 겁니다.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위험에 빠졌을 때 제일 효과적인 방법은 달아나는 것이다.

툭 까놓고 생각해 보자고요. 안전 장비를 철저하게 착용하고 좀비에게 맞선다. 분명히 마음 한쪽으로 자신은 안전하다는 방심을 할 겁니다. 그게 위험의 시작인 겁니다.

그리고 좀비를 처치하러 갈 때마다 언제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 앉아 있습니까? 이거 너무 귀찮잖아요. 전 그런 짓 못 합니다. 그럴 바에야 그냥 뛰어서 달아나는 게 낫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좀비들은 속전속결로 처리해야 합니다. 시간이 길어지면 근처의 다른 좀비들까지 몰려와 까딱하면 좀비 한 마리도 처리 못 하고 그대로 돌아와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여러분들도 안전 장비를 너무 믿지 마십시오. 그 시간에 달아나는 게 더 효과적이고 시간도 아끼는 겁니다. 아셨죠?

이제 좀비에게 다가가 보겠습니다. 어휴, 저 얼굴 좀 보세요. 빨갛게 충혈된 눈과 질질 흐르는 침. 썩어 문드러진 피부까지. 참 못났다!

그리고 아실 분들은 이미 다 아실 겁니다. 좀비의 약점이 어딥니까? 바로 머리입니다. 뚝배기를 깨는 것만큼 좀비를 구제하기 좋은 방법이 없죠. 깔끔합니다. 하지만! 재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좀비를 구제하는 것도 좋은데 우리도 얻어가는 게 하나쯤은 있어야죠.

그래서 이 트라우 고민 많이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즐길 수 있을까? 요래하면 어떨까? 조래하면 더 길게 가지고 놀 수 있지 않을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좀비는 좀비이기 전에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에게 제일 큰 타격을 주는 무기가 뭐겠습니까? 날카로운 흉기? 회칼이나 부엌칼? 아닙니다. 바로 둔기입니다. 방망이나 망치 같은 것 말이죠.

좀 끔찍한 말이지만 사람은 끝이 뭉툭한 둔기로 때려죽이는 게 제일 효과적입니다. 그건 좀비들에게 그대로 해당되고요. 무슨 소리냐? 칼이 제일 위험한 거 아니냐?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기다려보세요. 지금 빌드업 중이니까.

칼에 찔렸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살갗이 벌어지고 피가 벌컥벌컥 나옵니다. 사람이라면 바로 쇼크가 오고 과다 출혈로 정신을 잃을 겁니다. 그리고 꼴까닥 죽겠죠.

하지만! 좀비는 사람이 아닙니다. 시체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거예요. 좀비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그냥 살이 벌어진 것뿐이에요. 관절이 어긋났거나 몸이 부서진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아픔도 못 느끼고요. 이걸 보고도 상황 끝? 이러면 진짜 큰일 날 생각이라는 겁니다. 좀비가 피를 흘린다고 방심하다가 물리면 어쩝니까? 바로 좀비가 되는 거예요.

좀비가 뭡니까? 바로 애미 애비도 몰라보는 불효자식 아닙니까? 백신? 치료약? 그런 거 없습니다. 물리면 그냥 사람들을 잡아먹으러 돌아다니는 괴물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둔기를 사용하라고 추천을 드리는 겁니다. 야구방망이가 딱이죠. 뚝배기를 내리치면 한방에 나가떨어집니다. 이건 너무 쉬우니까 넘어가고.

제가 좀비를 잡으러 돌아다니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무릎이죠.

우리 어르신들 매일 하는 말씀이 뭡니까? 도가니가 아프네, 무릎이 시리네. 이거 아닙니까? 잘 걷지도 못하시죠? 맞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야구방망이로 무릎을 공격하는 겁니다. 좀비도 어쨌든 사람이라는 건 아까 말씀드렸죠?

무릎을 박살 내면 좀비들은 걸어오지도 못합니다. 엎어져 버둥거리다가 기어오지 않겠습니까?

제가 직접 해보겠습니다. 좀비가 가까이 오는 게 보이시죠? 한, 5미터 정도까지 기다립니다. 그리고 달려갑니다. 막 달려가서 야구방망이를 마음껏 휘둘러야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차례차례 무릎을 박살 내면 되는 겁니다. 웃차! 으랏차! 보셨죠?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어어? 좀비가 비틀거리면서 쓰러지지를 않네요? 그럼 다시 무릎을 공격하시면 됩니다. 이제야 넘어졌네요. 참 쉽죠? 준비 끝입니다. 이제 바닥에서 버둥거리는 좀비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즐기면 되는 겁니다.

그래도 겁이 난다. 만약 좀비가 기어와서 물면 어떡하느냐.

간단합니다. 양손을 박살 내주시면 돼요. 그렇다고 팔꿈치나 어디 손목 같은 곳은 안 됩니다. 우리 구독자분들께서는 현명하시리라 믿습니다. 아니라고요? 저는 믿습니다. 손가락을 유심히 살피세요. 열 손가락을 다 뭉개야 좀비가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발목을 잡아채면 어떡합니까?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면요? 그러니까 손을 아작 내야죠. 이제 저 더러운 입만 조심하면 되는 겁니다. 이쯤에서 구독, 추천, 알람 부탁드리고요.

여기에서 주의할 점이 있는데요. 만약 여러분이 혼자라면 절대 좀비 세 마리 이상과 맞서면 안 됩니다. 너는 우리가 겁쟁이로 보이느냐, 그깟 느려터진 좀비가 뭐가 무섭다고 그러느냐, 혼자로도 충분하다, 이러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 여러분. 저 트라우 남자입니다. 그깟 좀비가 무서우면 이 영상을 찍지도 않았을 겁니다. 사람은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닌데? 난 다섯 개도 동시에 할 수 있는데? 맞습니다. 할 수 있죠. 하지만 그게 격렬한 신체적 활동을 요구하는 일이라면 어떨까요? 그것도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이라면?

여러분! 자신을 너무 믿지 마세요. 생각보다 멍청할 수, 죄송합니다. 농담이었습니다.

여튼, 전문가의 조언에 따르면 사람은 한꺼번에 세 곳을 동시에 살필 수가 없답니다. 한 대상에 집중하고 상황이 종료되면 또 다음 곳을 살피는 방식이죠. 허점이 많습니다. 좀비 한 마리를 해치우다가 나머지 두 마리에게 공격당할 수도 있어요. 물론 안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어디까지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겁니다.

자, 이제 슬슬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좀비는 무슨 맛이냐? 먹어 봤느냐? 혹시 몸에 좋은 거 아니냐? 먹으면 발딱 서느냐? 아이고, 여러분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그런 거 없습니다. 이 좀비를 보세요. 시체 아닙니까? 그런 거 먹고 싶으십니까?

마! 내 머리로 내가 생각한다는데 뭐, 불만 있어? 이러신다고요? 맞습니다. 상상은 자유 아니겠습니까? 무슨 상관입니까? 남한테 피해도 안 끼쳐, 법에도 저촉 안 돼. 얼마나 좋습니까?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권장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추측은 해볼 수 있겠죠?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기름기가 많은 돼지고기 맛이 나지 않을까요? 사람 장기와 돼지의 장기가 상당히 유사하다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그럼 고기의 맛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아, 이건 절대 제가 직접 먹어본 게 아닙니다.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어디까지나 한니발 선생님의 고견, 아니, 그냥 저의 상상일 뿐이고요. 먹지 말라면 먹지 마세요, 좀!

그래도 정~ 먹고 싶다? 일단 맛이라도 봐야겠다. 실험정신이 투철하신 분은 튀겨서 먹는 걸 추천합니다. 자, 여러분. 이 세상에 튀겨서 맛없는 음식 있습니까? 없습니다. 기름에 튀기면 다 맛있어요. 제가 신고 있는 이 운동화 요것도 튀겨 먹으면 맛있을 겁니다. 아마도요. 보시다시피 생긴 게 극혐이니 튀김옷을 가득 입히는 걸 추천 드리고요.

이제 슬슬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알았어요, 알았어. 이제 말하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제일 알고 싶어 하는 그거. 예, 그거라고요. 그거. 그래서 발딱 서느냐, 안 서느냐?

제가 그걸 우째 압니까? 먹어보지도 않았는데. 저 트라우 아직 아무런 문제 없습니다. 단 한 번도 그런 고민 한 적 없다고요. 쌩쌩합니다. 다만 상상의 나래를 좀 펼치면, 아예 없는 말은 아니다! 누군가는 실제로 부부 금실이 좋아졌다고 하더라. 저도 없어서 못 먹는, 아잇! 내가 뭔 소리를! 이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더 파고들면 사람 여럿 다친다고요.

아, 참! 하마터면 까먹을 뻔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게 남았습니다. 좀비를 구제하고 나서 남은 쓰레기들을 그냥 버리고 가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성숙한 시민 의식을 가진 우리 대한민국의 주역들 아닙니까?

제가 큰 걸 바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자신이 처리한 좀비들의 시체 조각과 쓰레기들만 가져가세요. 자기가 가져온 것만 그대로 다시 가져가면 되는 겁니다. 주변에 있는 쓰레기들을 다 치우라는 게 아니고요. 여러분들은 딱 그것만 하시면 됩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죠? 저 트라우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명심하세요. 여러분이 하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 깨끗한 거리를 만드는 것에 일조할 겁니다.

물론 저도 이따가 좀비의 시체와 주위 쓰레기들까지 싹 모아서 가져갈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고요. 영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 유튜브 트라우였습니다.


네이버 문학 카페 수필 게시판

좀비는 나

2023년 5월 21일 오전 10시 35분

오늘도 좀비를 발견했다. 저 좀비를 보니 문득 얼마 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나를 저 좀비 보듯 쳐다봤을지도 모른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느라 내내 학원과 독서실, 집을 오가던 나날들. 이제는 국가가 무너지고 사회 안전망이 붕괴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시간 낭비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저 좀비와 나의 차이점은 뭘까? 모르겠다. 우리 둘 다 상황에 휩쓸려 그저 바다에 떠다니는 쓰레기처럼 떠밀리기만 할 뿐이니까.

그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끓어올랐다. 무작정 좀비에게 달려갔다. 좀비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자마자 어깨로 가슴 부분을 밀쳤다. 좀비는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그러고서는 버둥거리며 잘 일어나지 못했다. 어마무시한 공무원 시험 경쟁률을 넘지 못하고 벌써 두 번이나 떨어졌을 때가 떠올랐다. 나도 딱 저런 모습이었겠지. 버둥버둥. 마치 저 좀비가 쓰러져 버둥거리는 것처럼.

미리 준비한 삽으로 좀비의 대가리를 내리쳤다. 잘못 맞았는지 한 번에 죽지 않아 여러 차례 삽을 휘둘렀다. 그때는 그저 좀비를 처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저 좀비는 나였다. 어쩌면 무능력한 나를 죽일 절호의 기회였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다시없을 기회 말이다.

아버지와 아들

2023년 6월 4일 오후 3시 12분

오늘은 나란히 걸어가고 있는 좀비 2마리를 뒤에서 발견했다. 특이하게도 좀비들은 서로의 손을 꼭 붙잡은 상태였다. 한 마리는 키가 컸고, 다른 한 마리는 아이처럼 작았다. 문득, 저 둘은 생전에 아버지와 아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좀비가 된 후에도 서로를 떠나지 못했던 거겠지. 아마도 아버지는 평소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안 하는 무심한 아빠였을 거다. 우리 아버지가 그랬으니까. 늘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셨지만, 그게 다였다. 평소에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으셨고, 늘 바쁘다는 핑계로 주말에도 회사에 출근하셨다. 그리고 암으로 돌아가시기 전에야 뒤늦게 우리와 시간을 보내시려고 애썼다. 그래서 저 좀비들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화가 났으니까. 다 죽고 좀비가 된 후에 저리 붙어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일까?

스패너를 들고 살금살금 다가가 제일 큰 좀비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뒤이어 작은 좀비의 머리도 내리쳤다. 좀비들은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바닥에 엎어져 꿈틀거리는 좀비들의 머리를 차례차례 박살 냈다. 저 아버지란 사람은 좀비가 되기 전에 아들에게 다가가야 했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소통해야 했다. 지금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래서 이렇게 화가 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버지와 너무 똑같았으니까.

우물 안 개구리

2023년 8월 17일 밤 11시 55분

일주일 치 식량은 구했다. 하지만 긴 밤이 문제였다. 봤던 영화들을 또 봐야 한다는 게 너무 지겨웠다. 남아있는 인터넷 사이트는 네이버나 유튜브 같은 자본력이 엄청난 곳뿐이었다. 그나마도 서버가 대부분 죽어 안 되는 것이 더 많았다. 네이버는 검색 기능과 블로그 기능이 사라졌고, 유튜브는 영화 보기와 수많은 영상이 날아갔다. 남은 거라고는 수십 개의 유튜버들 컨텐츠와 뉴스들 뿐.

그래서 좀비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영화를 찾기로 한 것이다. 아마도 사무실 같은 곳을 뒤지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서랍이나 벗어놓은 옷가지의 주머니라면 영화가 가득 담긴 usb가 있을 법했다.

보금자리에서 몰래 나와 불빛이 사라진 어두컴컴한 도시를 살폈다. 대충 회사로 보이는 건물을 찾아 안으로 들어왔다. 손전등으로 사방을 이리저리 비추면서 컴컴한 사무실로 향했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책상 서랍에는 서류 뭉치나 집게, 동전 같은 잡동사니만 가득했다.

다른 곳을 뒤지려고 사무실 밖으로 나오는데 복도 한쪽에 좀비 몇 마리가 어슬렁거리는 게 보였다. 손에 든 낫을 들고 뛰어들어 좀비들의 머리를 날카로운 날 끝으로 꿰뚫었다. 좀비들이 픽픽 쓰러지는 게 보였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냥 지나갔어도 될 일이었다. 좀비들은 늘 같은 생각만 하고 같은 세상만 볼 거였다. 정체되어 있으니까. 이미 죽은 후라 더 새로울 것도 변하는 것도 없겠지. 제일 위험한 건 사람을 먹고 싶다는 생각과 피로 물든 세상을 본다는 게 아니었다. 바로 우물 안 개구리였다.

늘 같은 것만 보고 같은 것만 느끼면 결국 그 사람은 정체되고 만다. 그게 제일 위험하다. 그래서 내가 저 좀비들을 해치웠는지도 모르겠다. 저런 사고가 정체된 좀비들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존재니까. 또한 그게 위험을 감수하면서 내가 새로운 영화들을 찾는 이유이기도 했다.


카톡!

오늘 무슨 일 있었는지 암?

희영이랑 배급 타러 가다가 개후달림

골목 한쪽에서 좀비가 사람 하나를 붙잡은 거임

잡힌 사람은 다리를 다쳐 움직이지도 못함

그때 서은이 새끼가 한 말이 떠오름

그 새끼 말이 좀비는 목이 잘려서는 안죽는다는거

잘린 머리가 살아 움직이는 걸 직접 봤다고 개구라침

꼭 뇌 부분을 파괴해야 한다고 우김

너도 알지않음?

서은이가 평소 얼마나 구라를 잘까는지

그래서 고민 끝에 차 트렁크에서 마체테를 꺼냄

잡힌사람을 먹으려고 이빨을 들이대는 좀비뒤로

몰래 다가감

마체테로 목을 댕강!

어떻게 된지 암?

진짜였음

머리를 자르니까

몸과 머리가 따로 살아서 움직이는거임

그와중에 좀비의 머리가 앞사람 팔을 물어뜯음

ㅇㅇ 극혐

바로 머리통을 반으로 가르니 조용해짐

그 새끼 구라만 치는 줄 알았더니만 진실이었음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것보다

진짜라는게 더 깜놀


​김성명 sungmyung
15분 •

제가 이렇게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건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해명하기 위함입니다. 하루 사이에 국민 여러분께 얼마나 많은 질타와 지적을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억울한 부분이 있기에 사실을 바로 잡으려 합니다. 전 좀비에게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버려두고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어디까지나 오해고 잘못 전해진 사실입니다. 목격자분들이 보신 상황은 명백하게 사실과 다릅니다.

우선 저를 아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사실이야 어찌 됐든 실망을 끼쳐 죄송합니다. 저를 지지해주시는 분들과 제가 몸담고 있는 곳에도 큰 피해가 갔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진실을 밝히려고 합니다.

먼저 좀비에게 부모를 잃은 남매가 있었던 건 맞습니다. 그 자리에 물론 저도 있었습니다. 부모를 다 먹어 치운 좀비들이 남매를 향해 몰려오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걸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목격자분들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알지 못하는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걸 공개하려 합니다.

전 남매들을 향해 다가오는 좀비들을 처리하기 위해 야구방망이를 번쩍 들었습니다. 벌써 수십 마리의 좀비들을 죽이느라 어깨와 팔이 얼얼했지만, 그 정도는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보고 말았습니다. 제 시선에서 오른쪽, 즉, 큰 건물로 목격자분들의 시야가 가려진 쪽에서 제가 뭘 발견했는지 아십니까? 눈앞의 대 여섯 마리 좀비보다 훨씬 더 많은 좀비들이었습니다. 대략 20마리는 넘어 보였습니다.

저는 절대로 비겁하게 아이들을 버려두고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훨씬 더 많은 좀비들을 처치하기 위해 20마리의 좀비들을 향해 뛰어든 겁니다. 6마리 좀비와 20마리 좀비들 중 국민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20마리의 좀비를 선택하실 분은 흔치 않을 겁니다.

전 저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뼈를 깎는 고통과 피를 토하는 결정이었습니다. 좀비를 한 마리라도 더 처치해 국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의지였다는 사실, 그거 하나만이라도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20마리의 좀비들을 처치한 증거는 직접 찍은 동영상 자료로 첨부했습니다. 늘 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

미래한국당 김성명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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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아직 9살이었다. 이름은 지아. 여자아이였지만, 씩씩했다. 결코 눈물을 흘리는 법이 없었다. 아이의 부모님이 좀비들의 습격을 받아 돌아가셨을 때도, 삼촌과 이모가 배급을 타러 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않았을 때도, 아이는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았다.

아이는 집에 혼자 남았어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냉장고에 음식이 다 떨어져 가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여긴 영웅들이 없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스마트폰에는 항상 좀비들을 처치하는 멋진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이는 기다렸다. 스마트폰 속의 영웅들이 모든 좀비를 처치했다는 소식을 한밤, 한밤, 날을 세며 별을 세듯 기다렸다.

아이는 언제부턴가 네이버가 접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다음에는 페이스북이었고, 뒤를 이어 카톡도 실행이 되지 않았다. 트위터는 이미 오래전에 새로운 소식이 끊긴 상태였다. 유튜브는 모든 동영상이 삭제됐다.

아이는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은 영웅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당연히 좀비들은 진작 사라져야만 했다. 인터넷 기반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되지 않는다는 건 사회에 심각한 일이 벌어졌음을 의미했다.

아이는 이제 켜지지도 않는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아이는 확인해야만 했다. 얼마 만에 방안을 걷는 건지 몰랐다. 아이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부터 아예 다가가지도 않던 창문으로 향했다. 드리워진 커튼을 젖혔다. 잠금장치를 풀고 창문을 열었다. 밖을 확인했다. 정말 영웅들이 좀비들에게 졌을까? 지금도 밖에는 수많은 좀비가 활개 치고 다니는 걸까? 아이는 주위를 살폈다. 아니었다. 좀비들은 보이지 않았다. 창문 밖에는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각종 무기를 휘두르며 서로를 죽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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