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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괴이한 거울

중력의 노래를 들어라

노말시티

내가 어딘가 살짝 어긋나 있다고 느낀 건 잠에서 깨어난 직후였다. 그 어긋남은 말하자면 내 영혼이 내 몸의 가운데 있는 게 아니라 한 뼘 정도 떨어진 바깥으로 빠져 나와 있는 느낌이었다. 그건 정말로 그저 느낌일 뿐이었다. 나의 시야는 여전히 내 눈이 있는 곳에 잘 위치하고 있었고 청각이나 촉각 등 모든 감각도 정상이었고 사지 또한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데 문제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내 안에 들어 있다고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처음에는 가위에 눌린 거라고 생각했다. 가위에는 여러 번 눌려 보았으니까. 그래서 그게 가위와는 다르다는 걸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가위눌림이란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는 과정에서 감각 신경과 운동 신경이 복구되는 시차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간단히 말해 청각이나 촉각 등으로 주변 상황을 인지할 수는 있지만 아직 운동 신경이 연결되지 않아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다. 이런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뇌는 귀신이 누르고 있는다던지 하는 임의의 상상을 하게 되고 심지어 아직 연결되지 않은 시각 정보를 조작하여 귀신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머리는 몸을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리지만 아직 운동 신경이 연결되지 않은 몸은 움직이지 않고 먼저 연결된 감각 신경만이 몸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명확한 신호를 보내는 게 가위에 눌렸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이 정도 설명했으니 내가 겪은 일을 단순한 착각으로 치부하지 않았으면 한다. 느낌은 가위에 눌렸을 때와 유사했지만 몸은 내가 원하는 대로 정확하게 움직였다. 시각을 비롯한 모든 감각들도 그에 맞게 따라왔다. 일어서니 시점이 올라왔고 거실로 나가니 그에 맞게 눈앞의 광경도 움직였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을 꺼내 입 안으로 부으니 물의 온도가 그대로 입 안에서 느껴졌다. 그 차가운 감각에 나는 내가 느끼는 이물감의 근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 몸은 내 몸이 아니라 그저 내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시체였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아 하마터면 물병을 손에서 떨어뜨릴 뻔했다. 나는 물병을 든 손에 힘을 주었고 그 상태 그대로 마치 인형뽑기 기계처럼 팔을 움직여 냉장고 안에 물병을 도로 집어넣을 수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판단은 이렇다. 나는 이미 죽었지만 어떤 이유에선가 나의 감각 신경과 운동 신경이 여전히 나의 영혼과 신호를 주고받고 있다는 거다. 말하자면 나는 삶이라는 꿈에서 제대로 깨어나지 못한 채 가위에 눌리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 악몽에서 깨어나려 하지만 깨어날 수 없다. 내 몸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며 솔직히 말해 나는 이 살덩어리가 한때 나의 영혼이 머물렀던 육체라는 사실까지 부정하고 싶다. 나의 영혼은 이 끔찍한 시체를 통해 전해지는 모든 감각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코타르 증후군이군요. 일명 걷는 시체 증후군.”

현수가 짧게 말했다. 김 박사가 건네 준 클립보드에는 진료 차트 대신 A4 용지가 꽂혀 있었다. 어눌한 손글씨로 삐뚤빼뚤 적혀 있는 글을 조심스럽게 읽어 내려가며 현수는 환자의 병명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악필이라기보다는 일부러 과장되게 획을 그은 티가 났다. 글씨체와는 달리 내용은 정갈했고 논리에 흠이 없었다. 환자가 직접 쓴 게 아니라 진료를 한 김 박사가 정리한 보고서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방송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느끼고 자신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죠. 심지어 멀쩡한 자신의 몸을 시체라고까지 여긴다고 들었습니다.”

의학 전문 기자인 장현수는 그 환자의 증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코타르 증후군. 어쩌면 의사인 김진만 박사 보다 기자인 현수에게 더 익숙한 증후군이었다. 실제 발병 사례보다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송이나 기사에서 회자된 건수가 더 많을 테니까.

“역시 잘 아시는 군요. 제가 그래서 장 기자님께 연락한 거 아니겠습니까.”

김 박사가 묘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김진만 박사는 실력보다는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과 차분한 목소리 때문에 방송에 자주 섭외되는 유명인이었다. 그럼에도 정작 본인은 자신의 의학적 권위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얄팍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전문적인 정보들이 단편적으로 왜곡되고 흥미 위주로 편집되는 현실을 틈만 나면 비웃으려 애썼다. 그런 튀는 발언들과 차분한 목소리의 갭이 일반 시청자들에게 그저 독특한 유머 코드로 소비되는 걸 김 박사 본인은 모르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유명세를 누리기 위해 이용하는 걸까. 현수는 항상 그 점이 궁금했다.

“그런데 아직 치료 중인 환자 아닙니까? 취재를 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본인 동의가 가능한 상황인가요?”

“사실. 본인이 요청한 겁니다. 물론 지금 환자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태는 아닙니다만. 담당의로써 어쩌면 치료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장 기자님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현수가 특별히 취재원을 배려하는 기자는 아니었다. 김진만 박사를 정신의학계의 권위자로 포장해 주는 기사는 몇 번 써 준 적이 있었다. 김 박사가 현수의 어떤 면을 믿고 불렀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갔다. 현수로서는 나쁠 게 없었다. 걷는 시체 증후군이라는 자극적인 이름이 붙은 병.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사례. 특종 거리로 모자람이 없었다. 김 박사가 원하는 미사여구만 적당히 붙여 주면 독점 취재가 가능했다. 현수의 머릿속에는 벌써 이 증후군을 자살률 1위 국가인 우리나라의 현실과 엮어 내는 스토리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현수가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김 박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사실 그럴 듯한 이름이 붙어 있긴 하지만 코타르 증후군이란 다양한 원인에서 발생하는 유사한 증상들을 뭉뚱그려 놓은 측면이 커요. 게다가 흥미를 끌기 위해 자극적인 요소들만 뽑아 강조한 탓에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모습과 실제 병례에는 많은 차이가 있죠. 그런 오해들을 바로잡는 것도 제가 장 기자님께 기대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어련하시겠습니까. 그 오해를 바로 잡는 주체가 김 박사님으로 보도되는 걸 기대하고 계신 거겠죠. 문제는 없었다. 자극적인 타이틀과 내용으로 도배한 끝 부분에 점잖은 체 하는 김 박사의 인터뷰를 실으면 균형도 맞고 모양새도 좋으니까.

“그 부분이야 김 박사님이 잘 도와주시리라고 믿겠습니다. 그럼. 환자를 볼 수 있을까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아. 지금은 좀 곤란합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김 박사가 다시 한 번 묘한 웃음을 보였다. 순간 현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어긋남을 느꼈다. 오래된 이불에서 먼지를 털어내듯 출렁하는 파동과 함께 무언가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어쨌거나 그 웃음은 현수의 예상 범위에서 벗어난 반응이었다. 이어진 김 박사의 말은 더더욱 예상 밖이었다.

“방금 치료를 끝내고 지금 안정을 취하는 중이거든요. 자신의 두 눈을 찔러 버려서요.”

“네? 뭐라고요? 어떻게 그런…….”

“본인의 손가락으로요. 검지와 중지를 이렇게 안구 위쪽으로 집어넣어서는 숟가락으로 긁어내듯이…….”

김 박사는 두 손을 가느다란 은테 안경 위쪽으로 드러난 자신의 눈꺼풀에 가져다 대며 눈알을 긁어내는 시늉을 했다. 마치 소화기 사용법을 설명하듯이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당혹감에 굳어 버린 현수의 표정을 보았는지 김 박사는 시연을 멈추고 설명을 덧붙였다.

“코타르 증후군에 대해 잘 알고 계신다고 생각했는데요. 이 환자는 자신의 몸을 자신의 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들러붙은 다른 사람의 살조각같이 느낀다고 해야 하나요. 장 기자님에게 제 살조각이 붙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진저리를 치면서 떼어 내겠죠. 이 환자는 그런 느낌으로 자신의 눈을 파낸 겁니다.”

“하지만…… 고통은 그대로 느끼지 않습니까?”

코타르 증후군 환자는 감각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보고 듣는 것은 물론 촉감과 고통 또한 똑같이 느낀다. 자신의 지식을 끌어 모아 반문해 보는 현수에게 김 박사가 대답했다.

“그대로 느끼죠. 다만 그 고통 또한 자신의 고통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이 환자의 입장에서는 시각 입력을 제거하려는 목적을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했을 뿐이죠.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아마 환자에게는 시끄럽게 울리는 기관총 소리 정도에 불과했을 겁니다. 이 정도의 통증이 있다고 객관적으로 알려주는 신호인 거죠.”

“시각 입력 제거라니. 스스로 장님이 되려 했단 말입니까? 왜 그런 일을 했을까요.”

“메모를 계속 읽어 보시죠. 눈을 파내기 직전에 쓴 글입니다.”

현수는 손에 들고 있던 클립보드에 꽂혀 있는 A4 용지를 한 장 넘겼다. 그 뒤에는 마찬가지로 삐뚤빼뚤하게 적힌 글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껍질을 깨고 부푼 나는 세상을 가득 채운다. 풍선처럼 부풀어 땅을 덮고 산을 덮고 우주로 솟아오른다.

내 감각이 여전히 저 조그만 살덩이를 통해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해방되려던 내 영혼은 껍질에 묶여 여기 붙어 있다. 여전히 그 껍질은 시체처럼 불쾌하지만 나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 한다. 수많은 감각 신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신호들은 중첩된 주파수가 뒤섞인 모스 부호처럼 입력되고 그걸 무심히 지켜보던 나는 어떤 패턴을 발견한다.

그 감각은 지금까지 내가 느껴왔던 그 어떤 감각과도 다르다. 귀를 막는다. 한 뭉텅이의 신호들이 사그라지면서 그 패턴이 좀 더 도드라진다. 눈을 감는다. 이제는 그 패턴이 전혀 새로운 종류의 감각이라는 게 명확해진다. 이건 몸의 특정한 부위를 통해 들어오는 감각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뇌 전체의 구조가 미세하게 변화하는 느낌이다. 그 무작위한 변화가 주변의 세상과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그 감각을 듣는다. 마치 광자가 시신경을 자극하듯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아니, 광자라기보다는 소리에 가깝다. 영원과도 같은 시간 동안 그 감각에 집중하다가 나는 그게 중력이라는 걸 느낀다.

나의 위치가 중력파와 중력자가 감지되는 우주의 한 점으로 환원된다. 그 점을 중심으로 나는 우주의 움직임과 시공간의 왜곡을 느낀다. 한 번 그 패턴을 인식하기 시작하자 그 느낌의 기억이 시간을 거슬러 번져간다. 그리고 나는 내가 느꼈던 최초의 어긋남을 기억해낸다. 잠에서 깨어난 순간 느꼈던 영혼의 흔들림. 사실 흔들린 건 영혼이 아니라 내가 인식하는 세상의 기준점이었다. 한 점으로 환원된 나의 위치였고 그 지점에서의 시공간의 출렁임이었다. 다시 말해 내가 느낀 건 거대한 중력의 흔들림이었다.

그 흔들림은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미세한 감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지진처럼 나를 뒤흔든 그 파동은 내 잠을 깨웠고 그로 인한 어긋남이 나를 삶에서 깨웠다. 어쩌면 반대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유로 나의 영혼은 내 육체에서 떨어져 나왔고 그 덕에 순간 나를 뒤흔든 파동을 느낄 수 있었을 지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중력을 듣는다. 천체의 공전과 폭발하는 별과 모든 걸 빨아들이는 블랙홀의 신음 소리를 듣는다. 방향을 가리지 않고 퍼져나가는 전 우주의 노래가 중첩되는 곳에서 나의 존재를 느낀다. 그게 이 끔찍한 살덩어리를 벗어 던지지 않는 유일한 이유다. 불필요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쓸모없는 감각들을 꺼버려야 한다. 눈을 감는 걸로는 부족하다.


눈을 감는 걸로는 부족하다는 마지막 문장은 급히 글을 마무리 지으려 했는지 다른 글씨들 보다 더 심하게 휘갈겨져 있었다. 마지막 획을 그은 바로 그 손가락을 안구 위쪽으로 밀어 넣는 모습이 상상되어 현수는 오싹 소름이 끼쳤다. 뿜어져 나온 핏방울이 종이 위에 흩뿌려지지는 않았을까 살펴보았지만 그런 흔적은 없었다.

“이게 대체. 그래서 자기 눈을 파낸 겁니까?”

“그렇죠. 그게 좀 특이한 게. 다른 코타르 증후군의 사례들을 보면 환자들의 사고에 비논리적인 측면들이 많거든요. 몸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지 못하는 기저 증상은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보통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의 심장이나 위장이 사라졌다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죽었다고 강력하게 믿으면서 몸에서 시체가 썩는 냄새가 난다는 환취 증상을 보고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우울증이나 공허감이 동반되면서 아무 것도 먹지 않아 아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환자는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면서도 목적이 아주 뚜렷해요.”

“눈을 파낸 것도? 아까는 불쾌감 때문에 파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게 기저 증상일 겁니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항상 보다 그럴 듯한 변명거리를 찾아내려 애씁니다. 단순한 불쾌감 때문에 눈을 파낸다는 건 아마 이 환자의 생각엔 그럴듯하지 않았나보죠. 그래서 중력이니 뭐니 하는 핑계를 만들어 냈을 겁니다. 환자들이 겪는 망상은 보통 증상이 발생하기 전의 환경에 좌우되니까요.”

“환자가 원래 뭘 하던 사람이었는데요?”

“물리학과 대학원생이었어요. 듣기론 끈 이론이라는 걸 연구했답니다. 강창우라고 꽤나 촉망받던 학생이었다더군요. 본인 주장으론 그래요. 결국엔 학위를 받지 못하고 수료 상태로 학교를 떠난 모양이에요. 그 이후로는 특별한 직업 없이 혼자 지냈고. 아마도 그런 환경에서 망상증이 시작되었을 겁니다.”

“강창우? 잠깐만요. 강창우…….”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이었다. 현수는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내 강창우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몇 개의 기사가 떴다. 짐작했던 대로였다. 4년 전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을 불합격시켰다는 이유로 지도 교수를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고소 자체는 기각되었지만 끈 이론이라는 독특한 주제가 얽혀 있다는 이유로 꽤나 화제가 되었었다. 그 이론 자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고 그걸 대중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사람은 전무한 상황에서 온갖 호사가들의 검증받지 않은 설이 난무했다.

강창우가 바로 그 대학원생이었다. 한때 강창우를 천재가 인정받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주제와 연관시켜 떠받드는 사람들이 무시하지 못할 수준으로 늘어나기도 했었다. 모든 이슈가 그렇듯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난 뒤에는 모두 잊히고 말았지만. 그 강창우가 코타르 증후군에 걸렸고 중력을 들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스스로 눈을 파냈다니. 이건 특종이라는 표현으로도 모자란 대박사건이었다. 현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김 박사님은 어떻게 그걸 다 아셨습니까? 따로 조사를 하신 겁니까?”

“조사는요. 전 진찰을 할 뿐이죠. 강창우가 절 찾아와서는 방금 읽으신 그 메모를 건네 준 게 오늘 아침입니다. 환자가 처음 증상을 느낀 건 일주일 전이었고요. 새벽 여섯 시 정도였다고 하더군요. 메모에 적힌 것처럼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잘 설명을 했습니다. 저는 망상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했고요. 그래서 방금 말씀드린 사실들을 알게 된 겁니다. 진찰이 끝나고 나서 그 환자는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 걸로는 부족하다며 이렇게…….”

김 박사는 다시 자신의 안구 위로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현수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물었다.

“그 부분은 알았습니다. 그럼 자신의 눈을 파낸 게 병원에 와서라는 말씀이시죠? 왜 그랬을까요?”

“눈을 제거하고는 싶었지만 죽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게 보고된 코타르 증후군의 사례들과 다른 점이지요. 이 환자는 삶에 대한 의지가 분명하게 있어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코타르 증후군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개념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찾지 못해요. 이 환자는 반대인 겁니다. 이 환자가 여전히 자아를 의식하고 있거나 아니면 살아야 하는 이유가 한 개인의 자아를 뛰어 넘는 더 거대한 무언가든가.”

“거대한 무언가라면…….”

“글쎄요. 어떤 우주적인 의지랄까요. 저도 그것까지는 잘 상상이 안 되는군요. 따져 보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어쨌든 그런 이유에서 환자는 명백히 본인의 의지로 자해를 했고……. 아. 바로 그 자리입니다. 장 기자님이 앉아 있는 그 자리에서요.”

현수가 무심코 김 박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자 의자 팔걸이 안쪽에 아직 지워지지 않은 핏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현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자 그제야 김 박사의 책상 한편에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는 은빛의 스테인리스 접시 하나가 보였다. 그 안에는 한 쪽 면에 식물의 뿌리 같은 수염들이 조밀하게 뻗어 나와 있는 한 쌍의 둥근 물체가 놓여 있었다. 모형 같은 게 아니었다. 그 정체를 깨닫자마자 현수는 자기도 모르게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본 김 박사가 아까의 묘한 웃음을 다시 내 보이며 말했다.

“아. 이게 바로 아까 뽑아 낸 안구입니다. 강창우가 자해를 했다는 증거가 될 것 같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안타깝지만 복구 수술은 불가능해요.”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책상 위에 놓아두신 겁니까?”

“제가 그렇게 책상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요. 그렇지 않아도 장 기자님께 보여 드린 후에 잘 보관해 두려고 했습니다. 한번 가까이에서 보시겠습니까? 이 근육이 뜯겨나간 모양을 보시면…….”

김 박사가 접시를 들어 현수에게 들이댔다. 현수는 차가운 바람이 훅 불어와 자신을 뒤덮는 기분이 들어 다시 몇 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뽑혀진 안구의 모습 자체도 끔찍했지만 더 소름끼쳤던 건 그걸 대하는 김 박사의 태도였다. 아무리 몸에서 떨어져 나와 생명력을 잃은 덩어리라고 해도 그 안구는 불과 아침까지만 해도 강창우의 일부였던 무언가였다.

엄밀히 따지면 인간의 몸도 그저 세상에 널린 유기물 중 하나일 뿐이겠지만 살아있는 생명체의 몸에는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기운이 있다. 세포질을 둘러싼 세포막처럼 한 개체를 둘러싸고 다른 개체와 구분해 주는 보이지 않는 껍질. 그 껍질은 같은 극성을 띤 자석처럼 서로를 밀어내며 개체를 유지해준다.

현수는 지금 김 박사에게서 그런 껍질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아까부터 현수를 위협하던 어긋남의 근원이었다. 자성을 띠지 않는 물질은 자성으로 밀어낼 수 없다. 김 박사의 손과 강창우의 안구는 현수에게도 그런 껍질 따위는 없다는 듯이 불쑥 내밀어졌고 그게 거침없이 껍질 안으로 파고 들어올까 두려워 현수는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아뇨. 됐습니다.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그럼 저는 면회가 가능할 때 까지 강창우의 주변 인물들을 취재해 보겠습니다.”

“역시 기자님이시군요. 내일 정도면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김 박사가 내밀었던 접시를 다시 자신의 책상 한 구석에 아무렇지 않게 내려놓았다. 현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충 인사하고 김 박사의 방을 빠져 나왔다.


현수는 곧장 강창우의 지도교수였던 박기영 교수를 찾아갔다. 블랙홀 연구의 권위자로 언론에도 몇 번 소개된 적이 있었다. 장현수는 의학 전문 기자였지만 과학 분야 기사는 헤드라인이라도 챙기는 편이었고 그쪽 기자들과도 자주 만나며 친분을 터 두고 있었다. 우주 관련 기사들을 주로 다루는 기자를 통해 연락을 넣자 박 교수는 흔쾌히 시간을 내 주었다.

“어서 오세요. 박기영이라고 합니다. 어…… 근데 의학 전문 기자시네요?”

반갑게 일어나 악수하고 명함을 교환하던 박 교수는 현수의 명함을 보더니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박 교수는 연락을 해온 현수에게 기자라는 말만 듣고는 무슨 일로 만나고자 하는 지도 묻지 않고 방문을 허락했었다. 사실 그 점이 현수도 의아하긴 했다.

“아. 네. 사실 제가 찾아온 건…….”

“하하. 난 또. 이번에 새로 검출된 중력파 때문에 찾아오신 줄 알았는데. 어쩐지 아직 전 세계적으로 발표도 되지 않은 사실을 어떻게 알아내셨나 궁금해 하고 있었습니다.”

“네? 중력파가 또 검출되었나요?”

몇 년 전에 최초로 중력파가 검출되었다는 소식이 공개되었을 때는 당연히 현수도 취재에 뛰어들었었다. 과학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경제 기자들도 중력파가 증권 시장에 미치는 영향 같은 기사들을 뽑아내던 때였다. 한바탕 유행이 지나간 후에는 다들 금방 시큰둥해졌지만. 그래도 헤드라인 정도는 체크하고 있었던 현수는 중력파가 추가로 검출되고 있다는 소식을 봤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럼요. 일 년에 서너 개 정도씩은 계속 검출이 되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라이고를 계속 켜 놓는다면 훨씬 더 많이 검출이 되겠지만요. 라이고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죠? 중력파를 검출하는 4km 짜리 레이저 간섭계 말입니다.”

그 정도는 현수도 알고 있었다. 중력파 소동이 한 차례 몰아치고 간 후로는 측정 원리고 뭐고 다 까먹어 버렸지만. 그래도 라이고 라는 이름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네. 간단하게는 알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미국에 있는 두 대의 라이고에 이어 유럽의 비르고가 가동을 시작했고 조만간 일본의 카그라도 가동될 예정이니 앞으로 점점 더 많은 블랙홀 충돌이 관측될 겁니다. 하지만 이번에 관측된 건 달라요. 단순한 블랙홀이 아니라 두 개의 은하가 충돌하는 거니까.”

“은하가…… 충돌한다고요?”

“이거 참. 정말 모르고 있었군. 이러면 곤란한데. 사실 이번 충돌은 아직 발표 금지령이 내려져 있는 상태예요. 엄청난 중력파가 방출된 그 시점에 하필이면 모든 간섭계가 제대로 동작하고 있지 않았거든. 신호가 측정이 되긴 했는데 잡음이 너무 많아서 분석이 어려워요. 아까 말했듯이 라이고 같은 장비는 24시간 가동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유지 보수도 해야 하고 업그레이드도 해야 하고. 주변에서 공사라도 하면 아예 측정이 불가능하죠. 그런데 하필 그 중력파가 방출될 때 장비 중 일부가 유지 보수 중이라 진동 잡음이 완전히 상쇄되지 않았어요. 운이 없었던 거지.”

현수는 박 교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과학적인 부분이 아니라 정치적인 부분을. 위대한 발견에는 거의 항상 일정 부분의 행운이 함께 한다. 최초의 중력파 역시 대대적인 업그레이드를 마치고 가동한 지 불과 며칠 후 시험 가동 모드에서 측정되었고 두 번째 중력파는 하마터면 장치를 꺼놓을 뻔 했던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에 검출되었다. 이번에는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거였다. 하필이면 은하가 충돌하는 빅 이벤트가 벌어지는 순간에 장비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무리 공들여 관리한다고 해도 실험 장비라는 게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현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인들과 예산을 주는 정치인들이 그런 사정을 봐줄리 없었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현수 역시 기다렸다는 듯 연구자들의 기강 해이를 지적하는 기사들을 쏟아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연구진들이 어떻게 해서든 은하 충돌의 증거를 찾아 낸 뒤에 발표하려 애쓰는 게 충분히 이해가 갔다. 박 교수는 안경 너머로 현수를 바라보며 당부하듯 말했다.

“그러니 내가 그 정보를 먼저 공개할 수는 없어요. 다른 곳에서 흘러나온 정보를 듣고 왔다면 보충 설명을 해 주는 정도야 가능하겠지. 미안하지만 오늘은 이 정도만 하죠. 대신 공식적으로 발표가 결정되면 장 기자님에게 제일 먼저 연락한다고 약속할게요.”

기사에 이름이 실리는 건 좋지만 최초 유출자의 오명을 쓰기는 싫다는 뜻이었다. 물론 현수는 중력파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박 교수를 찾아온 게 아니었다. 그래도 은하 충돌이라는 엄청난 현상에 호기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은하가 충돌한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 겁니까? 당장 기사를 내려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감을 잡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흠. 그래. 좋아요. 정확히 말하면 이번에 충돌하는 건 은하 자체라기보다는 은하 중심에 있는 거대한 블랙홀이에요. 사실 은하 자체는 이미 충돌하고 있는 중이니까요. NGC 2623 이라는 은하계인데 두 개의 은하가 병합되는 충돌의 마지막 단계에 있어요. 두 은하의 중심이 어떤 식으로 합쳐졌는지가 의문이었는데 이번에 그 지점에서 두 개의 초대질량 블랙홀이 합쳐지며 엄청난 세기의 중력파를 내뿜은 거죠. 우리의 미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40억 년 후에 우리 은하가 안드로메다은하와 충돌할 때도 비슷한 모습이 될 테니까요.”

“은하의 중심에 블랙홀이 있습니까?”

무심코 뱉은 질문에 박 교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봤다.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는 건 아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현수는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해야 하거든요. 기사를 쓰는 원칙입니다. 기사는 학술 논문이 아니니까요.”

“좋아요. 블랙홀……은 알겠죠? 초등학생도 블랙홀은 알 테니까. 그렇죠? 하여튼. 연료를 다 써버린 별은 언젠가는 스스로의 중력을 견뎌내지 못하고 작은 덩어리로 붕괴합니다. 태양 정도 되는 별은 백색왜성이 됩니다. 전자기력이 버텨내는 한계까지 붕괴하는 거죠. 그보다 더 무거우면 전자기력을 이겨내고 중성자 수준으로 붕괴해 중성자별이 됩니다. 태양 질량의 세 배가 넘어가면 핵력마저도 무시하고 오직 중력만이 남아 모든 질량이 한없이 쪼그라드는 블랙홀이 되지요. 중력이 너무 강해 빛조차 빠져 나오지 못하는 블랙홀 말입니다.”

“네네. 정말 깔끔하게 설명해 주시는 군요. 이해가 쏙쏙 됩니다.”

“그래요. 보통 일반적인 블랙홀이라고 하면 태양 질량의 수십 배 정도 됩니다. 그 정도 되는 질량이 반경 수십 km 내에 뭉쳐져 있는 거죠. 아니 정확히는 대부분의 질량은 중심점에 모여 있고 빛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반경이 수십 km인 거지만요.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런 블랙홀이 은하 중심에도 있다는 거죠?”

“아뇨. 은하 중심에 있는 건 초대질량 블랙홀입니다. 질량이 대략 태양의 수십만 배에서 수십억 배 정도 되죠.”

“수십억 배요?”

“네. 수십억 배. 그 정도면 지름이 대충 태양계의 열 배 정도 됩니다. 태양계 전체 크기의 열 배 정도 되는 공간에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검은 블랙홀이 펼쳐져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상상이 되십니까? 그런 엄청난 블랙홀 두 개가 충돌하는 겁니다. NGC 2623의 두 블랙홀을 합치면 질량이 대략 태양의 100억 배일 거라고 예측되고 있습니다. 그게 충돌하면 질량의 3 ~ 10% 가량이 사라져서 중력파가 돼요. 10억 개의 태양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겁니다. 질량-에너지 등가 공식 알죠? 아인슈타인이요. 1kg 의 질량이 에너지로 바뀌면 얼마나 될 거 같아요? 핵폭탄 20개예요. 근데 태양 10억 개가 에너지로 바뀌는 겁니다! 그 에너지가 전 우주로 흩뿌려지는 거라고요! 중력파의 형태로요. 상상이 되십니까?”

박 교수가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현란한 숫자들이 현수는 하나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현수가 느낀 건 그저 이상할 정도로 들뜬 박 교수의 목소리였다. 박 교수의 모습이 순간 조금 커져 보였다. 박 교수를 감싸고 있는 자아의 껍질 너머로 무언가가 넘실대며 흘러넘친 느낌도 들었다. 현수는 자신조차 이상해 질 것 같아 얼른 진저리를 치며 몸을 털어 냈다. 그리고는 박 교수에게 말했다.

“그런데 교수님. 사실 제가 오늘 찾아온 건 그 블랙홀 때문은 아닙니다. 학생 한 명에 대해 여쭤 보러 왔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강창우라는 학생입니다. 아니, 학생이었지요.”

강창우라는 이름이 현수의 입에서 흘러나오자마자 박 교수는 순식간에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냥 현수의 느낌이 그랬던 거지만 그 느낌은 기이할 정도로 선명했다.

“강창우요? 기억하죠. 기억하고말고요. 혹시 그 학생이 또 무슨…….”

박 교수가 현수 쪽으로 한껏 기울였던 몸을 다시 치켜세우며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물었다. 표정에 한껏 경계심이 차올라 현수는 서둘러 대답했다.

“아뇨아뇨. 교수님과 연관된 일은 아닙니다. 다만…… 강창우 씨가 좀…… 상태가 많이 안 좋아져서요. 그냥 학생 때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게 궁금해서 이렇게 찾아 뵌 겁니다.”

현수는 그저 상태가 안 좋아졌다고만 말했을 뿐인데 박 교수는 어쩐지 무슨 소린지 알아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얼굴에서는 살짝 경계를 풀었지만 여전히 두 팔은 가슴 앞에서 팔짱을 낀 채로 박 교수가 대답했다.

“그래요. 장 기자는 의학 전문 기자라고 했지. 똑똑한 학생이었어요. 지나치게 똑똑했습니다. 사실 지금 끈 이론에 매달려서는 먹고 살기 힘들어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유학을 가는 것도 쉽지가 않고. 몇 번 권유를 해 봤지만 말을 들어야지. 뭔가 좀. 딴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았어요. 절반 정도는 다른 차원에 걸쳐 있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뭐 학위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논문만 제출했으면 통과했을 거예요.”

“논문을 제출 안 했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고소 사건 말인가요? 그러니 바로 기각되지 않았습니까. 최종본을 제출하지 않았어요. 본인은 제출했다고 믿고 있더군요. 다시 써 오면 기한을 연장해서라도 받아 주겠다고 했는데 그것도 거부했습니다. 다시는 쓸 수 없대요. 그러더니 소송을 하더군요. 학위를 주지 않을 거면 논문이라도 내놓으라고.”

현수는 강창우라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코타르 증후군 증세를 보인 게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코타르 증후군이 아니라 그저 어떤 망상에 빠져 있는 건지도 몰랐다. 학위 과정에서의 스트레스로 자신이 곧 우주라는 식의 착각에 빠져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전 우주의 중력을 들을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면서. 박 교수가 덧붙였다.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마 그 논문은 완성할 수 없었을 겁니다. 주제를 바꾸지 않았다면요. 강창우의 논문은 말하자면 중력과 시공간의 다차원적인 구조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완성하기만 했다면 세계적인 연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엄청난 논문이 되었겠죠. 정말 독특하고 천재적인 접근법이었지만 완성될 수는 없었어요. 이차원의 종이 위에 일차원적인 선들의 집합인 글씨를 쓰는 방법으로는 도저히 그걸 설명할 수 없었을 겁니다.”

현수의 머릿속에는 다시 기사의 아웃라인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한때 천재라고 인정받았던 한 물리학자의 몰락. 큰 줄기는 그렇게 가고. 우주의 심연을 엿보고 나서 광기에 빠지다. 이런 느낌을 슬쩍 추가하고. 현수는 그렇게 해서 이 취재를 어서 마무리 짓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며 박 교수에게 슬쩍 물었다.

“만일 지금 그렇게 엄청난 에너지의 중력파가 발생했다면 말입니다…….”

“발생은 이미 오래 전에 했습니다. 2억 5천만 년 전에. 지구로 따지면 트라이아스기가 시작될 즈음에 이미 두 블랙홀은 충돌한 거예요. 그 여파가 2억 5천만 광년 떨어진 이곳에 2억 5천만 년에 걸쳐 전달되어 온 거죠.”

“네네. 어쨌든 그런 거대한 중력파가 전달되어 온 거라면. 만일 그렇다면 그 중력파를 몸으로 느끼는 게 가능할까요?”

“몸으로요? 사람의 몸으로요?”

박 교수의 얼굴에 다시 한 번 한심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현수는 괜히 물었다 생각하며 변명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우리 몸이 중력을 느끼지 않습니까. 지구의 중력이요. 그러니까 블랙홀이라는 게 그렇게 거대할 수 있다면 거기서 나온 중력을 우리가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일단 말입니다. 중력과 중력파는 달라요. 중력이 시공간의 왜곡이라면 중력파는 그 왜곡의 흔들림입니다. 게다가 그 흔들림의 크기라는 게. 최초로 측정된 중력파의 흔들림은 원자 크기의 1000분의 1 정도였어요. 그것도 레이저 빔이 4km나 되는 거리를 수백 번 왕복했기 때문에 겨우 그 정도라도 나온 겁니다. 이번 충돌이 아무리 거대하다고 해도 인간의 몸에서 느껴지는 차이라면 기껏해야 원자 하나 크기도 안 돼요. 그걸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글쎄요. 눈을 감고 행성들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박 교수는 자신의 비유가 매우 적절했다고 느낀 모양인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현수는 눈을 감는다는 표현에서 아까 김 박사가 내밀었던 강창우의 안구가 떠올라 다시 한 번 오싹함을 느꼈다. 강창우는 결국 연구에 대한 스트레스를 이겨 내지 못하고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걸까.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현수는 문득 생각난 질문 하나를 박 교수에게 던졌다.

“오늘 정말 많이 배우고 갑니다. 아 참. 혹시 이번 충돌에 의한 중력파가 정확히 언제 지구를 지나간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일주일 전이에요.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새벽 여섯 시 쯤 되겠네요.”

강창우가 중력파를 느꼈다고 주장한 시간이었다. 현수는 다시 물었다.

“혹시 그 사실을 우리나라에서 교수님 외에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와 같이 일하는 대학원생들 서너 명을 제외하면 없을 겁니다.”

강창우의 이야기를 계속하니 박 교수는 조금 불쾌해지는 모양이었다. 더 분위기가 딱딱해지기 전에 현수는 얼른 인사를 하고 나왔다.


교수실에서 나온 현수는 대학원생실에 들러 박기영 교수와 일하는 학생들 몇 명을 만나보았다. 학생들의 평가는 교수와 마찬가지였다. 똑똑하지만 어딘가 이상한 선배. 강창우와 최근에 연락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현수에게 강창우의 안부를 물어와 난감하게 만들었다. 그저 간단한 정신과 상담 정도를 받고 있는 모양이라고 둘러댔다. 학생들은 오히려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강창우 씨가 혹시 중력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은 없습니까? 아니, 그러니까. 중력이든 중력파든 말이에요.”

현수의 질문에 학생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박 교수처럼 대놓고 한심하게 보지 않는 정도의 차이만 있었다. 한 학생은 현수에게 경계심을 보이며 이렇게 대답했다.

“창우 선배가 좀 별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과학의 영역을 벗어난 주장을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혹시라도 삼류 미스터리 소재를 선배에게 가져다 붙일 생각을 하시는 거라면 부탁인데 그만둬 주세요.”

기자인 현수가 없는 일이라도 만들어 내려 한다는 투였다. 물론 그런 적이 전혀 없진 않았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강창우가 쓴 메모를 눈앞에 들이대고 흔들고 싶었다. 그렇게 과학적 사고를 하는 강창우가 시각 입력을 차단해야 한다며 스스로 눈을 파낸 건 아냐고 쏘아 붙이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눌렀다. 현수는 조금 다른 질문을 했다.

“이건 너무 심각하게 듣지 마시고. 그냥 우스개 같은 질문입니다. 만일 강창우 씨가 어떤 계기로 우주적인 의지가 된다면. 그러니까 뭐 전지전능한 신 같은 존재가 된다면 가장 먼저 어떤 일을 할까요?”

학생들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어이없어 했고 비웃음에 가까운 실소를 흘리기도 했다. 현수가 분위기를 풀기 위한 농담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중 한 학생이 겨우 현수에게 대답을 돌려줬다. 강창우와 그나마 가깝게 지냈다는 학생이었다.

“그럼 아마 우주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 주지 못해 안달이 났겠죠. 듣기 싫다고 하면 의자에 묶어라도 놓고 강의를 했을 겁니다. 선배가 왜 그렇게 우주 이론에 미쳐 있었겠어요.”


쏟아질 듯 가득히 별이 빛나는 밤하늘의 가운데. 찢겨진 흉터 같은 은하수가 보였다. 현수는 그 은하수의 중심을 향해 하염없이 날아갔다. 어느 순간 은하수의 중심에서 칠흑처럼 검은 눈동자가 현수를 응시하고 있는 게 보였다. 작은 점이라고 생각했던 그 눈동자는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몸집을 불리며 현수에게 다가왔다. 단 하나의 오점도 없는 완벽한 검은 원이 시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나서야 현수는 덜컥 겁이 났다.

현수의 몸은 보이지 않았다. 현수는 그저 광대한 우주 한 가운데에서 시야를 유지하는 하나의 기준점이었다. 그래도 고개를 돌리듯 시야를 돌릴 수는 있었다. 검은 원의 반대쪽에는 여전히 별빛이 가득했다. 다시 시야를 돌리자 지워낸 듯 검은 지평선이 보였다. 둥글었던 지평선은 허리를 펴며 점점 직선에 가까워졌다. 현수의 시선이 은하의 중앙을 향하자 아무것도 없는 완전한 어둠이 시야를 뒤덮었다. 현수는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았지만 이내 자신이 숨을 쉬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곡률이 뒤집어진 검은 지평선은 이제 거대한 입이 되어 현수를 삼키기 시작했다. 별이 빛나는 우주가 도리어 둥글게 몸을 말며 원이 되었다. 현수는 그 좁은 원 안에서 점점 빨라지는 우주를 보았다. 별이 폭발하고 은하가 충돌하고 새로운 은하가 생겨났다. 현수는 유한한 시간 동안 무한한 우주의 역사를 보았다. 빛의 원이 점점 작아지며 마침내 한 점으로 줄어들고 끝내 그 점마저 꺼지고 나자 현수는 완전한 어둠에 감싸였다. 동시에 현수의 시간이 무한대로 펼쳐지며 정지했다.

현수는 하나의 점이었다. 현수 뿐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의 점이었다. 경계는 존재하지 않았고 공간도 시간도 없었다. 영원할 것 같던 어둠 속에서 하나의 빛이 나타났다. 그 빛의 원이 점점 커지며 다시 우주의 역사가 시작됐다. 빛보다 빠르게 번쩍이던 빛들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졌다. 그리고 장대하게 펼쳐진 우주가 현수의 시야에 들어왔다.

현수를 토해 낸 검은 어둠은 점점 줄어들더니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졌다. 현수는 엄청난 속도로 작은 행성을 향해 추락했다.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이 현수의 눈앞에서 번쩍였다. 현수의 시야는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어떤 장면 하나로 수렴했다. 현수의 방이었다. 현수의 침대. 현수는 질식했던 사람처럼 꽉 막혔던 숨을 토해냈다.


몸이 떨릴 정도로 생생한 꿈이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현수는 흩어졌던 기억을 주워 담기 위해 한동안 머리를 싸매고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강창우를 만나러 가야 한다는 데 까지 생각이 이르자 현수는 깊게 한 번 심호흡을 하고는 침대에서 일어섰다.

김진만 박사는 어제와 똑같은 자세와 표정으로 현수를 맞았다. 다행히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강창우의 안구는 보이지 않았다.

“장 기자님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아주 안 좋아 보이는데요.”

김 박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검은 원에 삼켜지는 꿈을 꾼 이후로 현수는 자신이 부쩍 늙은 느낌이 들었다. 인간의 나이가 아니라 우주의 나이만큼이나 늙었다는 느낌이었다. 말이 되지 않지만 현수가 느끼는 바는 그랬다. 병원으로 찾아오며 현수는 자신이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반문했다. 아무런 이유를 찾을 수 없었지만 현수는 그저 관성으로 병원에 도착해 김 박사의 방으로 안내 받았다.

지금 현수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감정이라면 호기심이었다. 강창우를 만나서 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가 듣는다는 중력의 소리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일주일 전. 그러니까 이제는 8일 전 새벽 여섯 시. 10억 개의 태양이 사라지며 흩뿌린 중력파를 몸으로 느꼈다는 게 그저 우연의 일치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잠을 잘 못 자서 그런가 봅니다. 별 거 아닙니다. 면회는. 가능합니까?”

“네. 아마 지금쯤은 깨어 있을 겁니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마시고요. 끝나고 수액이라도 맞고 가시죠. 피로와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입니다.”

현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일어섰다. 김 박사는 아무래도 괜찮다는 듯이 간호사를 불러 현수를 안내하게 했다. 현수는 혹시 자신이 아직도 꿈에서 깨지 않은 건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모든 게 붕 떠 있었고 현실감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살짝 손등을 꼬집어보았지만 감각에는 문제가 없었다. 손등에 빨간 손톱자국이 진하게 남았다.

간호사가 안내한 병실 한가운데에는 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고 그 침대 위에 구속복을 입은 사람이 누워 있었다. 눈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몸을 감싼 구속복은 또다시 침대에 묶여 있었고 구속복을 조금 잘라내 드러난 팔뚝에 수액 주사 바늘이 꽂혀 있었다. 간호사는 현수가 병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도망치듯 밖으로 나가며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자 병실은 새벽처럼 어두워졌다. 창문에는 두꺼운 커튼이 내려져 있었고 낮은 조도의 조명 하나가 환자의 눈을 피해 벽을 비추고 있었다. 현수는 침대 옆에 앉기 위해 의자 하나를 끌어왔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유난히 날카롭게 현수의 귀를 찔렀다. 동시에 붕대로 감은 얼굴이 현수를 향해 돌아갔다. 속이 텅 비어있을 눈구멍이 현수가 있는 곳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장현수 기자님이십니까?”

현수의 예상과는 달리 하나도 특별할 게 없는 목소리였다. 텅 빈 병실에 반사된 낮은 목소리가 무덤처럼 울렸다. 현수는 침을 한 번 삼키고는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강창우 선생님 되시죠? 저를 만나고 싶어 하셨다고…….”

“죄송하지만 목소리를 최대한 줄여 주시겠습니까? 너무 소리가 강해 혼란스럽군요.”

“……아. 네. 알겠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붕대로 감은 얼굴이 다시 정면으로 돌아갔다. 강창우는 마치 물속에서 숨을 쉬듯 크게 공기를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몇 번 그렇게 호흡을 한 뒤 다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장 기자님을 고른 건 의사였겠죠. 전 그저 제 이야기를 널리 알려줄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제가 선생님을 먼저 이해해야 기사를 쓸 수 있을 텐데요. 지금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강창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수는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곧장 가장 궁금하던 부분을 질문했다.

“8일 전 새벽 여섯 시에 실제로 엄청난 중력파가 지구를 지나갔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메모에 쓰지 않았습니까? 의사에게도 말했던 것 같은데요.”

“선생님이 느낀 것 말고 다른 경로를 통해서 그 사실을 들은 적이 있냐고 여쭙는 겁니다.”

“없습니다.”

“NGC 2623의 두 초대질량 블랙홀이 충돌했다는 걸 들은 적이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현수는 메모장에 적어 놓은 걸 보며 은하의 이름을 외웠다. 강창우가 대답했다.

“전 NGC 2623이 뭔지도 모릅니다.”

“네? 우주 이론을 연구하지 않으셨나요?”

“제가 연구한 건 우주의 이론적인 구조입니다. 그걸 실제 사례에 맞춰 해석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어요. 사람들이 임의로 붙여 놓은 이름에는 더더욱. 그런 알파벳과 숫자의 나열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현수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 부분은 현수가 이해하고 싶은 부분이 아니었다. 그저 괴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핵심은 이 강창우라는 사람이 중력파를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게 정말인지를 밝히는 일이었다.

“중력파를 느낄 수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습니까?”

“증명이요? 제가 하고자 하는 건 증명이 아닙니다. 제가 왜 무딘 인간의 언어로 우주의 구조를 증명해야 합니까. 아니.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 전 사람들에게 뭘 알려야 하죠?”

“제가 본, 아니 들은 우주의 광경입니다. 그걸 그대로 묘사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강창우의 말을 듣던 현수는 왠지 모를 종교적인 경이감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그러한 경이감이 뇌의 특정 부분을 자극하면 반사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걸 현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극은 직접적인 전기 자극이 아닌 목소리의 톤, 공간감, 특정한 향, 주변 사람들의 감정 등 외부적이고 심리적인 자극을 통해서도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 또한 이해하고 있었다. 강창우는 일종의 사이비 교주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자신은 신이 되고 현수를 메신저로 삼고자 하는 것일까. 현수는 일단 강창우의 말을 들어 보기로 했다.

“그럼 먼저. 중력을 느낀다. 아니 듣는다는 표현을 계속 쓰시더군요. 그걸 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중력파는 원자 크기보다 작은 정도로만 시공간을 흔든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런 걸 감지할 수 있습니까?”

“광자가 뭔지 아십니까?”

강창우가 뜬금없이 물었다. 현수는 아는 선에서 적당히 대답했다.

“글쎄요. 그냥 뭐, 빛 알갱이 같은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빛의 가장 작은 단위죠. 물질을 쪼개면 분자, 원자가 되고 원자는 전자, 양성자, 중성자, 그리고 다시 쿼크와 같은 소립자로 쪼개집니다. 마찬가지로 빛을 쪼개다 보면 가장 작은 단위인 광자에 도달합니다. 광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죠.”

“그렇군요. 그런데요?”

“인간의 시각이 광자 하나도 볼 수 있다는 걸 아십니까?”

“네? 설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현수는 얼핏 그런 기사를 본 기억도 떠올랐다. 스치듯 기사를 훑었을 때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인간이 광자 하나도 볼 수 있는데 원자 크기의 중력파를 느낀다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입니까?”

“하지만…….”

“모든 변화는 인식될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변화라도 있으면 아주 미묘하게 인식할 수 있겠지요. 패턴을 찾아내는 방법을 알고 또 주변이 충분히 조용하기만 하다면요.”

“그 패턴을 찾아내는 방법을 아신단 뜻이군요.”

“운이 좋았습니다. 적당한 시기에 강력한 중력파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그 중력이 전파되는 구조를 제가 추상적으로나마 이해하고 있었기도 했고요.”

“그리고 주변을 조용하게 만들기 위해 눈을…… 아니 시각을 제거하신 거고요.”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시각보다는 청각을 제거해야 했어요. 중력은 보는 게 아니라 듣는 거니까요.”

강창우의 말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그 말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현수는 조금씩 강창우에게 동화되어 갔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빛에는 방향성이 있지요. 빛은 특정한 경로를 따라 특정한 방향으로 날아갑니다. 그러니 우리는 빛을 보기 위해서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해요. 소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소리는 모든 방향으로 퍼져 나가지요. 중력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중력파는 본다기보다 듣는다고 해야 맞겠지요.”

“그럼 지금도 중력의 소리를 듣고 계신 겁니까.”

강창우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침묵이 두 사람을 뒤덮었다. 왠지 소리를 내면 안 될 것 같아 현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두근. 두근. 현수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강한 혈류가 경동맥을 타고 올라와 뇌에 산개한 동맥으로 흩어지는 게 느껴졌다. 주기적인 흐름이었다. 패턴이 익숙해지자 현수는 그 패턴을 제외한 다른 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고요했다. 그 고요함 속에서 현수는 또 하나의 미묘한 진동을 찾아냈다. 그 진동은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시간축의 진동과도 삼차원 공간의 진동과도 약간 달랐다. 그저 다르다는 느낌뿐이었지만 느낌 자체는 선명했다. 그리고 순간. 현수는 놀랄 정도로 큰 진동을 느끼며 눈을 번쩍 떴다.

“들으셨습니까?”

강창우가 물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강창우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는 겨우 말했다.

“들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이 정도 거리라면 당신이 고개를 어느 방향으로 흔들었는지 정도는 느낄 수 있어요. 질량 중심이 변하며 중력이 미묘하게 달라지니까요. 창밖 대로에서 달리는 자동차들의 움직임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더라도요. 지구의 자전과 공전도 느껴지지요. 행성과 위성이 서서히 움직이는 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태양을 비롯한 1000억 개의 항성이 은하 중심의 거대한 블랙홀 주변을 돌고 있는 것도 느껴집니다! 왜 중력을 들어야 하는지 아십니까?”

강창우가 갑작스럽게 물었다. 현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강창우가 말을 이었다.

“중력파는 그 어떤 물질에도 흡수되지 않고 전 우주로 퍼져 나갑니다. 다시 말하면 전 우주에서 발생한 모든 중력파가 이곳에 도달한다는 뜻입니다. 중력을 듣는 건 우주를 듣는 겁니다. 그게 이 티끌만도 못한 육체가 영혼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입니다. 껍질을 벗고 우주의 중심으로 날아가기 전에. 모든 블랙홀의 중심에서 우주의 영혼을 만나기 전에. 우리의 이 보잘것없는 삶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호사란 말입니다.”

강창우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현수는 그 목소리와 의미의 크기에 압도되었다. 강창우는 계속 말했다.

“우주의 소리는 음악입니다. 음악 자체가 우주의 소리를 모방한 거니까요. 우주의 소리가 내가 서 있는 한 점으로 모이며 시간 축을 타고 흐르는 한 줄의 음악이 됩니다. 더 놀라운 건 뭔지 아십니까? 전 우주의 모든 질량이 저마다의 중력을 내뿜지만 그 중력은 듣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들립니다. 중력의 크기가 다르고 도달하는 시간이 다르지요. 그 음악은 우주의 모든 지점마다 서로 다릅니다. 우리가 이 보잘 것 없는 작은 행성에서 티끌만도 못한 육체에 매여 있어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오직 이 지점에서만 들을 수 있는 중력의 노래를 듣는 것 이외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까? 우주의 영혼이 한 점의 물질에 연결되어 보잘 것 없는 자아로 나타나는 건 오직 그 음악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점점 높아지던 강창우의 목소리는 마침내 절규가 되었다. 눈에 감긴 붕대에서 다시금 빨간 피가 배어나왔다. 현수는 무중력 상태로 떠오르는 것 같은 느낌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더 이상 현수가 지닌 살덩어리에 묶여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어딘가 어긋난 진동들이 계속 현수를 자극했다. 그리고 쿵. 또 한 번 강한 진동이 현수를 흔들었다.

“지금! 지금 지나간 이 진동은 대체 뭡니까?”

“아시잖습니까. 은하가 충돌하는 소리입니다. 지금 충돌하고 있는 두 은하의 중심은 단번에 충돌하여 합쳐지는 게 아닙니다. 수많은 소용돌이가 부딪히며 작은 충돌과 흡수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거인의 발자국 소리처럼 서서히 다가오는 최종적인 충돌을 알려주고 있는 겁니다. 그 마지막 충돌은…… 지금 느낀 중력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울림을 전 우주로 내뿜을 겁니다.”

“대체 왜 저를 부른 겁니까! 이걸 들려주기 위해서였나요? 아니. 그보다 어떻게 제가 이걸 들을 수 있게 된 겁니까. 제가 듣고 있는 게 맞긴 한가요? 중력을?”

강창우는 작게 웃었다. 어쩌면 그게 강창우가 마지막으로 남긴 한 인간으로서의 흔적이었다.

“무언가를 들을 수 있는 구조는 반대로 소리를 낼 수도 있습니다. 정확히 역의 과정이니까요. 안테나가 전파를 받기도하고 또 보내기도 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제가 중력파를 보낸 겁니다. 일정한 주기로. 당신이 감지할 수 있도록. 중력의 패턴을 익힐 수 있도록.”

“왜요? 왜 그런 짓을 한 건데요?”

“당신이 알려야 하니까요. 중력의 노래를 듣는 법을. 그게 제가 한때나마 함께 살았던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입니다. 생각해 봐요. 당신의 영혼은 왜 하필 이 시간 이 공간에 위치하는 그 육체와 연결이 된 겁니까. 당신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이렇게 미세한 시공간에 국한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노래를 듣기 위해섭니다. 중력의 노래를. 다른 어떤 곳도 아니고 오직 지금 이 위치에서만 들을 수 있는 당신만의 노래를. 그게 아니라면 삶이라는 게 대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걸 왜 제가 알립니까. 당신이 알리면 되잖아요. 당신이 직접 사람들에게 그걸 알리면 되는 거 아닙니까?”

강창우는 잠시 침묵했다. 그동안 현수의 귀에는 점점 더 크게 중력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진동들에서 하나씩 조화와 패턴이 느껴졌다. 모든 소리가 어우러지며 그 울림은 조금씩 노래가 되었다. 다시 차분해진 목소리로 강창우가 말했다.

“제가 이걸 얼마나 알리고 싶을지 당신은 상상도 못할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전 지쳤어요. 이 모든 걸 이해하고 찾아내기 까지 너무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중력 이외의 감각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부탁이 있어요. 제발. 제 감각을 끊어 주시죠. 청각을 말입니다.”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기자시니까 펜 하나 정도는 가지고 계시겠죠. 귀를 찔러 주시면 됩니다. 고막만 찢는 정도로는 안 돼요. 그 안쪽의 청각 신경까지 완전히 뚫어 주셨으면 합니다. 양쪽 다요. 이 시끄러운 잡음 때문에 정말이지 미칠 지경입니다. 완벽한 우주의 노래를 들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절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당신도 중력을 들었으니까요.”

“그…….”

어이없게도 현수는 강창우를 이해했다. 그건 논리적인 결론이 아니라 강렬한 욕망에 가까웠다. 지금 현수의 머릿속에서 끓어오르는 욕망을 강창우는 얼마나 더 강렬하게 느끼고 있을 지 상상이 되고도 남았다. 그걸 지금까지 참아낸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그 욕망을 외면하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현수는 주머니에서 펜을 꺼냈다. 끝이 뾰족한 만년필이었다.


현수는 강창우의 비명을 듣고 달려 들어온 의사와 간호사에게 제지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강창우의 두 귀. 그리고 현수 자신의 두 귀 까지도 뚫고 난 뒤였다. 현수는 청각을 끊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중력의 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현수의 몸을 부축하여 침대에 눕히는 느낌이 났다. 불필요하게 전달되는 촉감이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게 묶이고 나서야 현수는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감각이 차단된 암흑 속에서 중력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현수는 강창우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우주의 노래였다. 전 우주가 현수를 위해. 현수의 티끌 같은 육체가 머무르는 우주의 한 점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 위성과 행성과 항성의 소용돌이가 화음이 되어 우주를 노래하고 있었다. 그 노랫가락에 실려 웅대한 북소리와 같은 은하의 충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인간이 붙여 놓은 이름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 은하는 스스로의 노래로 이름을 대신하고 있었다.

지구상의 한 점을 중심으로 현수는 점점 커져갔다. 은하 중심의 블랙홀을 향해 날아가던 꿈이 떠올랐다. 현수는 충돌하는 은하의 중심으로 날았다. 2억 5천만 년 전에 충돌한 어떤 은하로. 어쩌면 40억년 후에 충돌할 우리 은하로.

그리고 현수는 은하의 충돌은 이제 겨우 전주에 불과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강창우가 말했듯이 최종적인 충돌은 한 걸음씩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현수는 그 노래의 끝에 예정된 마지막의 거대한 울림을 예감할 수 있었다. 노래는 길지 않을 것이다. 지구상에 매달려 있는 가냘픈 영혼의 끈 따위는 가볍게 불어 날려 버릴 수 있는 거대한 충돌이 준비되고 있었다. 하찮은 행성 하나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그 어떤 움직임으로도 막으려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중력파였다.

지구의 모든 영혼이 휩쓸려 나가 우주의 중심에서 다시 모이기 전까지. 하나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우주의 노래를 듣는 것 밖에는 없었다. 오직 지구에서만 들을 수 있는 전 우주의 노래. 그게 아니라면 이 하찮은 행성에 잠시 와 닿았던 삶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현수는 다시 한 번 정신을 집중했다. 이번에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리를 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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