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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괴이한 거울

박평수가 술법을 익히다

미로냥

가을 겨울을 거쳐 봄까지 내내 어지간하도록 푹푹 내리는 눈 말고도 비설산(飛雪山)이 자랑할 만한 것이라면 신선바위다. 비설산 은선대(隱仙臺) 근처 높다란 곳의 신선바위는 뭘 닮지도 않았고 색이 오묘한 것도 아닌, 그저 편평한 바위에 불과했지만 알음알음 사방 백리에 그 명성이 퍼졌다.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소문 때문이다.

수양하여 자질이 있는 자는 몸을 던진 즉시 우화등선한다는 이야기에 눈이 번쩍 뜨인 사람들이 꾸준히 신선바위를 찾았다. 그 덕에 근처 사기꾼들만 노가 났다. 사기꾼들은 어디서 도사, 신선, 은거기인 복장을 주워 입고는 신선바위로 가는 길목마다 초막을 짓고 뜨내기들 상대로 한 탕 해 먹었다. 이들은 몸 던진 이들의 시신이 바위 아래 수북하게 흩어지면 그걸 더러 시해선(尸解仙) 이라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늘어놓고 등을 떠밀어 죽이는가 하면 겁을 먹고 돌아서는 이들에게 신선 수련을 시켜 준다며 어르고 달래 돈을 뺏기도 했다.

한편 정말로 신선을 만난 이도 있다.

풍진 세상에 순정한 마음을 품고 수행을 쌓인 이들이나 절실한 일심이 하늘에 닿아 그야말로 지성이 감천한 이들이다. 혹은 세상을 등지는 편이 얼싸안고 살아가느니보다 낫거나 혹은 정말로 타고 난, 이른바 선골인 이들.

박평수(朴平壽)는 그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우선 이 양반은 참말로 게을렀다. 하도 게을러서 깔때기를 꽂아 먹을 걸 흘려주지 않으면 그대로 굶는 양반 이야기가 있는데, 박평수도 그에 비견할 만한 작자였다. 거기다 박평수는 유복한 가문의 자제로 태어난 덕분에 길바닥에서 죽지 않거나 궁둥이를 걷어 채이는 대신 구들장에 딱 들러붙어서 둥기둥기 편안하게 자랐다. 유모가 업어주고 찬모며 하인들이 박평수의 앵돌아간 주둥이에 죽을 물려주고 손이며 발이며 닦아주어 사실상 숨만 쉬면서 슬그머니 자랐다는 뜻이다.

각설하고, 사람이란 게 우스워서 자기 사지육신 가누는 건 성가셔도 그 아둔한 머리로는 얼마든지 창천을 노닐 수가 있는지라 이 양반도 불쑥 꿈을 품었다. 사지 편안하게 구름 사이나 노닐 것 같은 신선이 되어 술법을 좀 써 보고 싶었던 것이다. 대저 신선이란 무엇이냐. 하늘을 다스리고 땅을 돌보며 산과 들과 강과 바다에 두루 조화로운 경지를 이름이거늘, 제 사지육신 가누는 것도 싫어라 하는 게으름뱅이 박평수가 언감생심 어떻게 신선이 되겠는가. 박평수는 며칠 구들장을 지고 가만 고민하다가 때마침 온천하가 춘삼월 따뜻할 적에 불쑥 길을 나섰다. 비설산 은선대 신선바위 소문을 들은 게다.

다섯 걸음에 한 번씩 두고 온 자기 방 아랫목을 그리워하면서도 어찌어찌 비설산에 이른 박평수. 그는 산기슭에 발을 딱 들이자마자 ‘아이고, 이 호구를 내가 물어야지’ 하며 접근한 사기꾼 손에 끌려 은선대를 올랐다. 그 과정이 또 얼마나 지긋지긋하게 힘겹고 길고 느려 터졌던지 종내엔 사기꾼도 이놈에겐 돈 좀 더 울궈내도 미안할 게 없겠다 싶었을 정도였다.

박평수의 신선이 되려는 욕망이 티끌만했어도 그를 뜯어먹으려는 사기꾼의 욕망이 주먹만 한 덕분에, 두 사람은 한낮쯤 되어 신선바위에 앉아 아래를 훑어볼 수 있었다.

“아이구!”

눈으로 보고는 도저히 못 뛰어내릴 높이인지라, 박평수는 눈을 딱 감고 바위에서 냉큼 물러났다.

“아이구, 아이구! 도무지 나는…… 못 뛰어내리겠소이다.”

사기꾼은 이 성가신 종자를 번쩍 들어 던질까 말까 하다가 자신이 들인 공이 떠올랐는지 낯을 좋게 꾸며 번지르르 떠들었다.

“거, 이보쇼. 우화등선을 그리 쉽게 하는 게 아니외다. 뛰어내릴 용기 하나 없는 양반이 어찌 속세를 등지겠소?”

“신선까지는 아니 되어도 좋소. 나는 그저…… 그저 선술 한 자락이나 얻으면 그로 족하오. 신선을 만나면 그만이지 굳이 내가 신선이 될 필요까지야 있소?”

“글쎄! 신선을 만나는 건 삼생의 연이 있어야 되는 일이라오. 그보다는 한 번 눈 감고 뛰어내려서 스스로 신선이 되는 편이 좋잖소?”

“아니, 아니. 글쎄…… 그것이. 선술 한 자락이나…… 아이고! 아이구야! 휘이…… 높아라!”

사기꾼은 박평수와 실랑이를 하다 어디 혼 좀 나 보라는 생각에 그를 두고 하산해 버렸다. 박평수는 바지런히 그 뒤를 쫓아갈 생각도 없이 멍청한 얼굴로 나가 떨어져 신선바위 위에 오도카니 앉았다. 해바라기를 하다 달바라기를 할 지경에 이르자 박평수는 덜컥 겁이 났으나 어둑어둑한 길을 되짚어 내려가기엔 귀찮고 두려웠다.

‘에라, 될 대로 되라지. 설마 죽겠나.’

평생 게으르게 살아온 이 양반이 그리 드러누워 빈둥거리노라니, 야심한 밤에 휘영청한 보름달이 뜰 때 인기척이 났다. 수런거리는 수풀 소리며 시커먼 나무 그림자, 계곡 저편의 아득한 바람소리가 어지간한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으나 이 박평수는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무엇인가가 자신을 해치리라는 상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탓이다.

덕분에 박평수는 신선을 만났다. 정확히 말하자면야 구름을 다루고 산을 접고 땅을 엎는 신선은 아니고, 그 제자의 제자쯤 되는 누군가였다. 신선은 바위에 드러누운 양반의 생사 따위엔 흥미가 없을 터이나 제자의 제자는 호기심이 일어, 슬쩍 살피러 온 참이었다.

신선의 제자의 제자, 저간에서는 송옥(松玉)이라고 불리는 여자가 낭랑하게 물었다.

“거기서 무얼 하니?”

“서…… 선인이십니까?”

박평수가 그렇게나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은 건 전에도 없고 후에도 다시 없을 일이었다.

“그렇단다.”

그는 송옥의 옷자락에 매달릴 기세로 달려들어 머리를 바위에 쿵 하고 찧었다. 한 번 찧고 나니 이게 생각보다 더 아픈지라, 다시 찧지는 않고 슬그머니 손을 짚어서 이마와 바위 사이에 댔다. 목소리만은 우렁차게 그가 선인의 술법 한 자락 얻기를 청하였다. 송옥은 이 양반이 겁 없이 한 밤 신선바위 위에서 견디었다고 착각하여 잠시 마음이 동하여,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선인이 되고 싶다고? 그러면 벽곡(辟穀)하며 자중할 수 있겠니?”

“아니, 아니, 그저 선술 한 자락이면 되옵니다.”

“내 제자로 삼아줄 수도 있는데 정말 그거면 되니? 많이 고단하겠지만 단단히 결심을 굳히고 노력하노라면 우리 스승도 뵐 날이 올 거란다.”

“감히 선술 한 자락을…….”

벽곡이라니, 안 될 소리였다. 사실 박평수는 이미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었고 ‘신선이 되자’ 하는 막연한 꿈도 만사 귀찮아서 쪼그라든 지 오래였다. 집에 가만히 앉아 허송세월 하노라면 온갖 산해진미를 대령해 올 텐데 그걸 즐기며 한 세상 살지 뭐하러 못 먹을 걸 질금질금 주워 먹어 가면서 춥고 배고프고 험난한 길을 간단 말인가.

한정된 수명을 두려워하기에 박평수는 지나치게 젊었다.

그는 이제 본전 생각이 나서 술법을 베풀어 달라 매달릴 뿐이었다.

“뭐, 이런 인연도 있는 거겠지. 좋다. 너에게 뭘 하나 내어 주마.”

송옥은 박평수에게 절을 받아 흡족하였고 동시에 절값을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소맷자락을 펄럭, 흔들었다. 희고 가느다래서 산 사람 같지 않은 손가락이 소매 속으로 사라지더니 무엇인가가 그 안에서 덩더쿵 널뛰는 꼴이 보였다. 박평수는 숨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옛다. 이걸 너에게 줄 테니 잘 익혀 보렴.”

둘둘 말린 두루마리가 박평수의 품에 뚝 떨어졌다. 그가 두루마리를 쥐고 고개를 들자, 송옥은 홀연 간 곳이 없었다. 그는 터오는 새벽 빛에 두루마리를 펼쳤다. 누렇게 낡은 종이에 생생한 필치로 돼지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종이를 뚫고 튀어나올 듯한 그 녀석 위로 나는 듯한 글귀가 보였다.

“마음을 바르게 하고 눈을 감은즉 세상사 모두 내게 달린 것을 아노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그는 흐릿한 글자 위를 쓰다듬었다.

그것은 목적한 것을 돼지로 바꾸는 술법인 듯했다.

박평수가 두루마리에 적힌 괴상한 주문을 마저 읽어 외는 사이 날이 훤히 밝았고 그를 버려두고 떠났던 사기꾼이 나타났다. 그는 어설픈 신선 복색으로 등장한 사기꾼과 눈이 마주치자, 방금 익힌 술법을 시험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가 진짜 신선이나 그 제자쯤 된다면 알아서 피할 것이고, 아니라면 술법에 당해도 그 업보라는 계산이 섰던 것이다.

‘너는 돼지다.’

그는 사기꾼의 눈을 한 번 보고 눈을 감은 후 주문을 외웠다. 너는 돼지다. 반신반의하며 생각한 후 슬그머니 눈을 뜨자, 이게 웬 일인가? 사기꾼은 간 데 없이 옷자락에 폭 파묻힌 돼지 한 마리가 버둥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으하하!”

예상 외의 소득을 거의 공으로 얻은 박평수가 얼마나 신이 났을 지는 덧붙일 필요도 없을 터다. 이 게으른 사내가 앉은 자리에서 두어 장쯤은 펄쩍펄쩍 뛰며 하산했을 정도로 아주 신바람이 났다. 그는 곧바로 비설산을 떠나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이 몸은 이제 신선의 말석이란 말씀이야.’

다만 무언가를 돼지로 바꾸는 술법 따위는 기실 박평수의 일상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눈을 깜박이며 주문을 외우는 것보다, 아랫목에서 빈둥거리며 종에게 돼지를 대령하라고 명령하는 쪽이 더 편한 양반이었으므로. 그야 살아서 펄펄 날뛰는 돼지가 양반에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잘 다듬어 요리를 마치고 상에 올라야 겨우 박평수에게 돼지 취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마침 박평수에게 기회가 왔다.

사정은 이러했다.

박평수의 일가 가운데 두루 신망이 높은 무인이 하나 있었다. 이름을 천욱이라고 하는 그이는 소년급제한 헌헌장부였는데, 화살 한 대로 천리 밖의 엽전을 꿰미처럼 꿰었더라는 호들갑스러운 소문이 따라붙을 정도였다.

덕분에 박천욱은 세상 천지에 두려운 게 없었는데, 어느 날 첩첩산중에서 그만 집채만 한 범을 만나 사투를 벌이다 부상을 입고 말았다. 그날부터 천욱은 범을 두려워했다. 호걸 소리를 듣던 젊은이는 자신의 두려움을 감히 고백할 수 없었다. 몸은 나았으나 마음은 낫지 않아, 안으로 감춘 공포는 이내 건장한 육신마저 도로 좀먹기 시작했다. 한데 바로 이때 왕도 인근에 범이 한 마리 나타나 인심이 흉흉해지자, 관에서는 장수 박천욱에게 범을 잡아 왕의 덕을 널리 떨치라 하였다. 천욱은 깊은 근심을 품고 왕명을 받들어 떠난 참에 잠시 친지를 방문했다.

박평수의 집이었다.

구들장을 지고 자신의 술법 한 자락을 어떻게 자랑할까 알지 못하던 박평수는, 이 대단한 친척을 보러 슬그머니 기어 나왔다. 천욱은 일가 어른들 앞에서 침묵을 지키다가 조심스레 자신의 두려움을 털어 놓았다. 병풍보다도 존재감 없이 앉았던 박평수는 불현듯 말을 얹었다.

“그걸 내가 어찌 할 수 있을 법도 하고…… 큼큼, 아닐 법도 하고…….”

그는 온 일가가 신줏단지 받들듯 하는 젊은이 앞에서 한 번쯤 어른 노릇을 하고 싶었다. 턱을 빳빳하게 쳐들고 으쓱거려 보고 싶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있는 그 공명심이라고 할지 허풍이라고 할지 모를 욕망이 박평수를 이끌었다.

“이보게, 내가 촌수로 따지면야 자네 삼촌쯤 될 터인데 어린 조카의 고민을 모른 척 해서야 되겠나? 그간 세속을 등지고 초연하였을 뿐 세상 정리를 모르는 바 아니라네. 에헴.”

박평수의 부모 형제는 속으로 ‘아이고! 저 어리석은 것이 웬 흰소리를 늘어 놓아 망신을 당하려나’ 하였지만 천욱 앞에서 나무라기 어려워 말을 삼갔다. 천욱은 부드러운 어조에 약간의 존경심을 담아 그의 ‘삼촌뻘’ 되는 양반에게 간청하였다.

“아저씨. 아저씨께서 이 조카의 가여운 처지를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를 일생 잊지 않겠습니다.”

“과갈 간에 모르는 척해서야 사람이 아니지. 자네가 그리 말한다면야 내가 나서 줌세. 에헴에헴.”

그는 우선 잔뜩 허세를 부렸다. 그러나 주둥이로 지껄일 때나 쉽고 재미나고 기분 좋았지, 정작 천욱과 다른 몰이꾼들을 데리고 인근 산을 오르기로 하자 두렵고 귀찮아서 고통이 찾아왔다.

“자네는 범을 보면 오금이 저린다고 하였지.”

박평수가 조급증을 내며 천욱에게 물었다. 금방이라도 산중에서 범이 톡 튀어 나와서 자기 목줄기를 콱 물까 봐 그는 무서워 다리가 발발 떨렸다. 천욱이 시위에 활을 재어 거리를 가늠해 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다른 짐승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범의 눈깔만 봐도 그 누린내가 물씬 풍기며 어린아이처럼 기가 죽고 맙니다.”

“그렇군, 그래. 자네…… 돼지라면 어떤가? 돼지라면 쏠 수 있겠는가?”

“돼지를 못 쏠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불초한 조카가 그만큼 망가지지는 않았습니다.”

부드러운 가운데 속이 상한 듯 뾰족한 데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박평수는 머쓱해서 얼른 모르쇠 하며 범을 찾아야 하는데 하고 제가 나서서 오두방정을 떨었다.

운이 따랐던지 아니면 정해진 운명이란 게 참말 거기 있었음인지, 박평수는 계곡 저편에 보란 듯 나타난 범을 발견했다.

빠른 물살이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며 이편에서 저편으로 흘러 사라지는 가운데 범은 유유하였다. 튼실한 몸뚱이에 꼭 알맞게 붙은 머리가 포효하는 대신 침묵하며 어리석은 인간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돼지다.’

박평수는 눈을 감았다. 주문을 외우고 발발 떨었다. 여차하면 천욱 뒤로 숨을 요량으로 발을 물리며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는데, 천욱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돼지로구나.”

박평수가 눈을 떠서 제가 이루어 낸 일을 보는 것보다 천욱의 화살이 더 빨랐다. 거센 계곡풍에도 길을 빗나가는 일 없이 날아간 화살 한 대가 정확히 돼지의, 아니, 실은 범이었던 점잖은 짐승의 숨을 끊었다.

몰이꾼과 천욱이 시체를 거두러 건너편으로 건너가 확인하니 그것은 어느새 범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마음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아저씨.”

천욱은 범의 시체를 메고 와서 박평수 앞에 넙죽 절을 올렸다. 평수는 이 굉장한 광경을 세상 사람이 다 보고 자신을 칭송해야 하는데 황량한 산중에서 거렁뱅이 같은 몰이꾼이나 몇 둘러놓고 있으니 속이 상했다. 그가 까칠하게 고개를 젓자 천욱은 재차 감격 어린 말을 쏟아 놓았다.

“불초한 조카가 느낀 바 있습니다. 무예를 단련함에 있어 중한 것은 오로지 마음이요, 그 밖에 눈과 귀와 혀는 얼마든지 사람을 현혹할 수 있다는 그 명제를 진실로 깨달았습니다. 범이라 여길 때는 사지를 움직이기 어렵더니 돼지라 여길 때는 망설이지 않고 활을 들었으니 저라는 자의 미욱함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자만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무인이 되겠나이다. 절 받으소서.”

본시 성실하고 씩씩했던 이 젊은 장수는 깨달음을 얻어 더욱 그럴듯해진 모습으로 떠났다. 평수는 산을 오르기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꼴로 느릿느릿 돌아와 또 뜨끈한 구들장에 드러누웠다.

‘다들 이 몸의 술법이 얼마나 굉장한지, 그걸 쓰는 이 몸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야 하는데.’

그런데 정말이지 하늘이 무심하게도, 아니, 박평수에게는 당연하게도, 그 비슷한 날이 오고야 말았다.

정직한 박천욱이 공을 치하 받는 자리에 나아가 자기 상관에게 ‘은거한 기인’이라며 박평수를 추천하였던 것이다. 일이 되려고 하면 돌멩이 하나 집어 던져도 기러기 두 마리가 맞아 떨어지는 법이고 헐값 주고 산 자갈밭에서 금덩이가 나오는 법이라 했다. 널리 특이한 사람을 뽑아 쓰려던 어느 높은 분의 귀에 소문이 날아든 덕분에, 박평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벼슬자리를 얻기에 이르렀다.

고을 사또가 되어 당현(塘懸)이라는 고장으로 내려간 것이다.

백성들은 그저 못골이라고 부르는 그 고을은 그럭저럭 작고 그럭저럭 먹고 살만 하고 그럭저럭 세금을 충당하며 그럭저럭 토박이들이 횡포를 부리는 그런 촌이었다. 고을의 절반은 산이고 절반의 나머지 절반은 옹색한 밭이며 또 나머지의 절반가량이 못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알량한 못의 동서남북에서 각자 못 이름을 붙여 부르는 그런 곳이기도 했다.

새 수령이 납셨다고 인사를 하고 나니 이방이 와서 박평수에게 일렀다.

“이 고을에선 그저 도(陶)진사 어르신과 알고 지내시면 족합니다.”

도원개(陶元介)라는 어른이 한 분 계신데 그가 바로 못골의 유지로 사실상 고을을 지배하고 있으니 수령은 와서 절이나 하고 떡이나 먹으라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공으로 벼슬을 하려니 낯설고 황감하던 차에 잘 됐다 싶어 박평수는 냉큼 그 말을 따랐다. 고향집에서 집어온 서화를 몇 점 가져다주고 인사를 하니 도진사는 아주 식견 있는 사또가 오셨다며 금세 친근하게 대해 주었다.

고을은 평안했다.

사건이라곤 아주 이따금 벌어졌다. 사람은 죽은 만큼 태어났고 장례가 있는가 하면 잔치도 있어, 도토리나무가 싹이 나고 자라 또 도토리를 떨어뜨리듯 못골의 생활은 거기에서 거기였다. 백성들은 배 곯을 것이 세상에서 제일 중한 고민이었는데 사실 못골의 조그마한 전답에서 곡식이 덜 여물든 더 여물든 부유한 양반님네들에겐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이야, 박평수 팔자가 아주 노났구나.’

원님이라도 절을 하는 백성들과 입 속의 혀처럼 구는 아전들, 사나흘에 한 번은 돌아가며 유람을 하고 술상을 벌이는 고을 양반들 사이에서 그는 세월을 타령 한 곡조처럼 쉽게 지나 보냈다.

한편 못골에는 산이 많은 만큼 산기슭을 일구어 먹고 살거나 사냥을 해서 먹고 사는 이들도 많았는데, 그중 부사리라는 영감이 하나 있었다. 아내 없이 홀로 저루소라고 불리는 어린 딸과 조촐하게 살았는데, 아비는 덫을 놓고 딸은 열매를 따거나 침모 일을 하며 살았다.

저루소는 아리잠직한 계집아이였는데 어느 날 누구 잔칫집엔가 들렀다가 그만 도원개의 눈에 띄었다. 그는 부리는 사람을 보내 부사리에게 저루소를 자기 첩으로 달라고 청했는데, 부사리가 길길이 날뛰며 쫓아내자 마음이 상하고 말았다. 입맛이나 다시며 양반답게 넘어갔으면 모두 좋았으련만, 도원개는 어느 날 술을 진탕 퍼 마시고는 들이닥쳐 저루소를 보쌈해 가 버렸다.

부사리는 덫을 놓으러 나갔다가 뒤늦게 사실을 깨닫고는 관아로 달려왔다. 문을 굳게 닫고 모르쇠로 일관할 게 뻔한 도원개에게 가느니 사또에게 매달려 말이라도 넣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도진사 나리는 참 점잖은 분인데.”

이런저런 사정이 겹쳐, 박평수는 부사리를 쫓아내지 못하고 마주한 참이었다. 아예 몰랐으면 속이 편했으련만. 들었으니 뭐라도 하는 척을 해야 마땅했다. 박평수는 아전을 시켜 도원개에게 가서 말을 건네 보라고 했는데, 도원개는 그조차 자기 체면이 깎인다 싶었던지 오히려 성을 내기 시작했다.

저루소를 내놓아라.

아니, 내놓긴 뭘 내놓으라는 거냐?

그런 식의 실랑이가 오가는 새 해가 지고 달이 떴다. 날이 밝도록 부사리는 관아 앞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부사리. 이 답답한 사람아, 글쎄 도진사 나리께선 자네 딸년을 데려간 일이 없다지 않아? 이럴 시간에 사냥이나 더 하면서 집 나간 딸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게 어떤가?”

이방이 그렇게 말했다가 부사리의 주먹에 주둥이가 터지고 말았다.

‘귀찮구만.’

박평수는 부사리 때문에 도원개와 어울려 놀지도 못하고 오가는 아전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게 성가셔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불쑥 나아가 부사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건 돼지다.”

웅성거리던 주위가 일시에 가라앉았다.

“그건 돼지야, 부사리. 도진사는 저루소라고 이름을 붙인 돼지를 데리고 사시는 걸세. 내가 사람을 보내서 그 댁에 말을 전하겠네. 자네에게 다른 돼지를 한 마리 사 주라고 말이네.”

부사리가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박평수는 이걸로 됐다고 생각하며 가벼운 걸음으로 관아 문턱을 넘었다. 박평수의 말을 전해 들은 도원개는 가타부타 따지지 않고 돼지를 두 마리 사서 멱을 따라고 이르더니 그 사체를 부사리의 초라한 집 마당에 던져 놓았다.

“이왕 잡은 돼지니 푹 삶아 동네 잔치나 합세.”

도원개가 그렇게 말하더라는 소문이 고을을 뒤덮기까지 채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숙덕거림은 사립문을 넘지 못했고 부사리는 죽은 돼지 두 마리를 앞에 둔 채 관아 앞에서 그랬듯 묵묵히 앉아 있었다.

박평수는 ‘다 해결됐다’ 고 발을 쭉 뻗고 잠을 잤다.

그의 꿈에 무시무시한 얼굴을 한 송옥이 나타났다. 비설산 은선대에서 그에게 술법이 적힌 두루마리를 던져주었던 그 모습 그대로 구름을 밟으며 내려와 박평수의 머리채를 덥석 움켜쥐었다.

“졸렬하고 비열한 것아! 이 악한 것아! 네놈이 죄를 저지르니 나까지 업을 짊어지게 되었구나.”

박평수는 영문을 몰라 어물거리며 버둥거렸다. 송옥은 그를 놓아주기는커녕 큰 칼을 든 사령들을 가리켰다.

“우리 스승이 격노하시어 내게 벌을 받으라 명하셨으니, 나는 보잘것없는 자만심 하나의 업을 짊어지고 떠나려 한다. 그러나 두고 보아라. 네놈의 눈에서도 피가 마르지 않게 되리라.”

눈이 번쩍 뜨이자 이불 속에서 얼마나 발버둥을 쳤던지 머리맡에 두었던 자리끼가 발끝까지 날아가 있었다. 박평수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손등으로 슥 문지르고 벌렁거리는 심장을 다스렸다.

‘꿈자리가 사납구만.’

입맛이 떨어져서 그는 며칠 빈둥거렸다. 꾀를 내어 사람을 시켜 인근 절이며 당집이며 쌀과 돈푼을 좀 가져다 바치고 아직 보릿고개가 온 것도 아닌데 구휼을 한답시고 이 집 저 집에 묵은 보리를 풀었다. 그러고 나니 자기의 별거 아닌 죄 따위는 싹 씻겨 내려간 듯 기분이 가뿐했다.

듣자 하니 부사리는 몰래 도원개의 집에 먹을 것을 들여보내는 듯했다. 아마도 여전히 딸이 그 집에 갇혔다고 여기는 것이리라. 동정심 가진 종들이 부사리를 돕는지 어떤지는 알지 못해도 더 이상 저루소 이야기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 못골은 청명한 가을 하늘보다도 평온했다.

박평수는 향반들과 어울려 이웃한 고장의 큰 강을 구경하러 가기도 하고 계곡의 어느 정자를 찾아 노닐기도 하면서 잘 살았다. 아무도 부사리와 저루소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박평수는 으스대며 행차할 적에 길 이편과 저편에서 인사하는 사람들 사이에 부사리가 끼어 있지나 않나 두려워하였으나 그는 다시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달이 바뀌기 전에 도원개가 장가를 들게 됐다.

소문으로 온 고을이 들썩거리자 박평수는 부사리가 어쩌고 있나 하고 이방을 불러 떠보았다. 이방이 살살대는 목소리로 늘어 놓았다.

“하하! 거, 이제 걱정 탁 내려 놓으십시오, 사또. 부사리는 외려 좋아하고 있더랍니다.”

“좋아해? 그이가 도진사 댁 경사에 기쁠 일이 뭐가 있다고?”

“뭐가 있긴요. 글쎄, 진사 나리가 장가를 드시면 그…… 그, 거두어 갔던 돼지 새끼를 돌려주지 않겠습니까? 돌아만 와 주면 좋다고, 영감이 매일같이 담장을 돌며 염불하던 걸 무지렁이들도 다 아는 걸요. 요즘 그 텁석부리가 싱글벙글 웃고 다닌답니다.”

“아, 아아…… 그렇지. 돼지! 그 촌민이 아주 크게 이득을 보겠구만. 일전에 도진사가 돼지를 두 마리나 주었는데 이제는 전에 데려간 돼지까지 돌려주실 테니 말이야.”

부사리는 수모를 견디며 도원개가 저루소를 돌려주길 기다렸다. 밥 안의 작은 돌처럼 버석거리던 것이 어떻게 해결되었구나, 하여 박평수는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도원개가 사주단자를 주고받았다는 둥 길일을 받았다는 둥 소식이 연이어도 그 댁에서 어린 돼지 혹은 계집애가 나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그러기를 며칠, 관아가 들썩거릴 만큼 소동이 일었다.

“사또! ……그, 죽었답니다.”

이방의 얼굴이 어두웠다.

“죽다니, 누가.”

“거…… 돼지가. 도진사 댁의 돼지 말입니다요, 사또. 죽었답니다.”

도원개가 흠씬 때려죽였다는 소문이 어느새 퍼졌다고 했다. 정황이 드러나기 전에 소문부터 짜아하니 환장할 노릇이었고 참 곤란한 일이었다. 부사리는 딸을 데려가려고 지게를 진 채 매일같이 도원개의 담장을 맴돌았으니 이 소문에 가만있을 까닭이 없었다. 당장 주먹을 말아 쥐고는 도원개의 집으로 닥쳐 들어 실랑이가 한창이었다.

아직 그 댁에서 시체가 나오기도 전이었다.

소식이 닿자마자 박평수는 나는 듯이 달려갔다.

“여보오, 진사 나리! 그저 돼지가 아닙니까!”

부사리가 쉬어 터진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돼지 시체라도 보겠다는데 붙잡으려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삐쩍 마른 부사리 하나를 도원개 댁 장정들이 당해 내질 못했다. 박평수는 헐레벌떡 그들 모두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 초조하게 버티고 선 도원개와 눈을 마주하였다.

“좀 봅시다.”

떨떠름한 얼굴로 도원개가 몸을 약간 비켜 주었다. 부사리가 벽력처럼 박평수의 뒤를 따랐다. 어어 하는 사이 문짝이 박살 났다. 박평수는 아주 약간, 정말이지 조금 빨리 방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방 안은 후텁지근했고 쾌쾌한 냄새로 가득했다. 둘둘 말린 이불 아래로 고깃덩어리 같은 것이 삐쭉 튀어나와 있었다. 박살이 난 병풍과 흩어진 회초리, 피리. 나란히 놓였다가 쓰러졌음 직한 술병. 이리 널리고 저리 널린 색색의 저고리와 치맛자락이 보였다. 박평수는 눈을 보았다.

커다란 눈.

그리고 눈을 감았다.

꼭 한 순간이었다.

‘저것은 돼지다.’

저건, 그저 돼지다.

바로 다음 순간 부사리가 그야말로 범처럼 포효하며 박평수의 어깨를 떠다밀었다. 벌렁 나자빠진 박평수는 술법을 제대로 썼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등을 보이고 떡 버티고 선 부사리가 보였다. 그의 마른, 그러나 범 같은, 태산처럼 치솟았던 어깨가 한 번 휘청 흔들리더니 와그르르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래요…… 돼지군요.”

방금 전까지의 야단법석이 다 거짓말이었던 듯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부사리는 산 딸을 데려가려던 지게에 거적에 둘둘 만 돼지를 싣고 도진사 댁을 떠났다.

‘저건 돼지다.’

거적 틈새로 어째 사람의 머리카락인지 손목 발목인지가 보이는 것만 같아 박평수는 눈을 쓱쓱 비볐다.

“돼지야.”

고쳐 다시 보니 영락없이 돼지였다.

아무렴, 돼지였다.

그건 그저 죽은 돼지 한 마리였다.

얼마 후 부사리가 두루 죄송한 노릇이라며 삶은 돼지고기를 대접하려 했지만, 아무도 그것을 먹으려 들지 않았다. 부사리는 고기를 관아로도 가지고 왔다. 박평수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피하려다 또 어찌어찌 그를 마주하고 말았다.

“이건 혹시…… 일전의 그 돼지인가?”

박평수가 묻자 부사리가 놀라울 만큼 친근하게 웃었다.

“암만요! 그건 하마 팔았습죠. 며칠이 지났는데 그게 있겠습니까요. 이건 산 너머 새매가 잡은 멧돼지를 나누어 받은 겁니다요. 살이 아주 씹을 만하다고 그이가 어찌나 자랑이던지.”

“끄응.”

내키지가 않아서 돼지고기를 앞에 두고 박평수는 턱짓을 했다.

“그럼 어디 자셔 보게.”

“촌놈이 어찌 하늘 같은 사또 앞에서…….”

“먹어 보라지 않나!”

“네, 네, 분부대로 합죠.”

부사리는 씩 웃으며 고기를 집어 텁석부리 사이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씩씩하게 씹었다. 그의 툭 튀어나온 목젖이 울렸다. 고기 냄새가 온 관아 안을 가득 채웠다.

“아이고! 맛 좋다!”

박평수는 떨떠름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전들은 이제 경계가 풀렸는지 저마다 침을 꼴깍꼴깍 삼켰지만 그는 도저히 고기를 씹을 수가 없었다.

‘튀어나온 발에 발굽이 없었다.’

저도 모르게 부사리의 지게와, 그 위 얹힌 채 훠이훠이 흔들리며 멀어져 가던 거적이 떠올랐다.

‘사람 발이었어.’

박평수는 눈을 꽉 감았다.

‘……아니다. 그것은 돼지다.’

그날부터 박평수가 고기를 입에 대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양념을 해서 맛을 감춰 보아도 고기를 씹는 순간 그 질겅거리는 감각이 소름 끼쳐서 대번에 뱉게 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못골은 평온하고 부사리는 허허실실 웃으며 여전히 초라한 집에 틀어박혀 지내고 도원개는 대처에서 각시를 얻었다.

여전히 박평수가 행차하면 못골 사람들은 조용히 고개를 조아리거나 걸음을 물렸다.

세월은 흘렀다.

박평수는 놀고먹으며 일거리를 팽개쳤다.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가, 도저히 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것만 빼고는. 고기 굽고 삶는 냄새만 풍겨도 구역질을 한다는 것쯤 아주 사소했다. 세상엔 고기 말고도 먹을 것이 많았고 박평수는 시무룩할지언정 어떻게든 사치스럽게 살 만큼 여유가 넘쳤으므로.

그는 몇 번이나 고기를 먹으려고 노력하다 이제는 다 포기한 참이었다.

먹다 뱉은 고기와 그를 위해 새로 잡았던 무수한 짐승을 내다 묻으며 박평수는 자기 팔자가 기구하다고 한탄을 했다.

해 질 녘이 되어 인줏빛 노을을 이고 촌민 몇이 찾아왔다.

“사또. 우리 못골의 어버이이신 사또께서 여름을 타서 입맛을 잃었다 하니 촌민들이 이것저것 엮어 삿자리를 만들어 이리 보내왔습니다. 시원하게 지내시노라면 금세 또 입맛이 도시겠지요.”

일제히 어설픈 절을 올리는 그이들의 얼굴은 몹시 천진했다. 웃고 울고 찡그리며 정직하게 살아온 형태가 고스란히 남은 주름을 일그러뜨리며, 그들은 진정 박평수를 염려해 주었다. 박평수는 그 불그스름한 삿자리를 받아 깔고 앉아 보았다.

“오호. 참말 시원하구나.”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도 같았다.

자리에 앉아 엉터리 시를 읊다가 그대로 낮잠이 들었을 만큼 편안하기까지 했다.

“이놈아. 이 어리석고 악한 것아.”

쥐새끼처럼 생긴 옹색한 주둥이를 배쭉거리며 웬 노인이 하나 걸어왔다. 박평수는 자신이 꿈을 꾸는 줄도 모르고 낯선 노인네를 멀거니 치어다보았다. 못골에선 그가 가장 높은 양반일 터이건만 저 못생기고 추레한 노인은 왜 예를 갖추지 않는가? 하고 미리 분을 내면서.

그는 무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언제나 칭송받기를 바랐다.

움직여 사소한 일을 이루고 그만큼의 실패를 쌓아 낡아 가기보다 손짓 발짓 눈빛 하나로 하늘과 땅을 진동케 하기를 원하였다.

우러르며 인사를 받을 자리에 있는데 지나치는 꼴을 용납할 수 없었다.

당연히 박평수는 보료에 기대 앉은 채 그 버르장머리 없는 노인을 향해 호통 쳤다.

“왜 예를 갖추지 않는고? 고얀 노인이로다.”

“꿈에서 예를 갖추어 무엇을 하누? 자네나 나나 내 가여운 제자나 모두 한심한 돼지털 한 가닥에 진배없거늘. 이 돼지털이 저 돼지털에게 고개를 숙인단 소리를 들어나 보았는가?”

“어허! 돼지털이라니! 이 몸은 현령이시다!”

“이 몸은 돼지털이시다!”

“어허! 어허!”

박평수는 분기탱천하여 일어났다. 그러나 생각뿐, 둔중한 몸뚱이는 영 자기 뜻대로 움직여 주지를 않았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손으로 삿대질을 하자 노인이 어디 그걸로 눈알이라도 파보라는 양 면상을 갖다 대더니, 반도 남지 않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하, 찾았네그려. 내 제자의 껍질이 여기 있군.”

히히히. 손구멍을 낸 것처럼 깊숙하게 파인 눈꺼풀이 푸르스름한 빛을 띠더니 바르르 떨렸다. 노인이 웃는 소리에 맞추듯이. 박평수는 그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궁둥이에 딱 달라붙은 삿자리가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꺼, 껍질이라니!”

박평수가 말을 더듬었다. 삿자리는 숫제 기이한 형태로 비틀리며 툭, 툭, 엮은 자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아니다. 이건 껍질이 아니다.”

무슨 껍질인 줄도 모르면서 그가 냅다 반대부터 하고 나섰다. 노인이 히히히, 히히히, 어깨를 흔들면서 유쾌하게 웃었다.

“나는 돼지털이고 그건 내 제자의 껍질이다. 돼지피를 먹고 자란 갈대로 만들었으니 껍질이고 말고. 피를 담는 그릇이지.”

주름진 손가락으로 노인이 삿자리를 쓰다듬었다. 작은 틈새마다 피가 송골송골 맺혔다가 질질 흘러내렸다.

쏟아져 내렸다.

“어억! 우아아아아아!”

박평수는 자다가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왔다. 홑겹 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맨발로 관아 대문을 넘었다.

“삿자리를 엮은 갈대를 어디서 베어 왔느냐!”

그는 아무나 붙들고 물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시선이 의심과 두려움으로 변해가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박평수는 결국 강가에 당도하였다. 강물은 노을 빛을 받아 당연히 붉었고 그는 제 머리를 싸 안고 벌벌 떨며 중얼거렸다.

“피야. 돼지 피인 게야.”

물이 전부 돼지피로 뒤바뀌기 전에 박평수는 명을 내려야만 했다. 무수한 갈대들이 바람을 맞아 바삭바삭 소리를 냈다. 히히히, 히히히, 노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저건, 저것은…… 하고 그는 생각을 다잡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돼지를 떠올려선 안 돼.’

강변을 뒤덮은 갈대가, 돌이, 이끼가, 모두 돼지로 변하게 할 순 없었다. 박평수는 비틀거리며 되돌아왔다. 피 냄새가, 돼지 털을 태우는 냄새가, 언제까지나 그의 뒤를 쫓아오는 것만 같았다.

그는 못골의 돼지란 돼지는 모두 모아 파묻게 했다.

부사리는 그가 생계를 잇던 산이 여기저기 파헤쳐지고 돼지가 산 채로 묻히는 것을 반대하기는 커녕 묵묵히 도왔다. 그리고 조그만 돼지 위로 흙이 덮이는 것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다. 고을 사람들은 돼지가 가엾어 눈물을 글썽거리다가도 부사리의 그 오묘한 표정과 시선에 관해 저희들끼리 떠들었다.

땅이 점점 붉게 변했다.

하지를 지나자 저녁이 이르게 닥쳤고 해가 가라앉기 시작한 하늘은 시뻘겋게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 빛을 그대로 되 비추듯 땅도 나날이 붉어졌다.

‘사람이었을까.’

박평수는 생각했다.

‘거적 사이로 튀어나왔던 것은.’

사람의 손, 사람의 발, 사람의 머리카락이었을까?

박평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그때 고기를 먹지 않았다. 부사리가 가져온 고기를 못골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나누어 먹었으니, 원한은 절대 박평수에게 올 리 없었다. 그러나 그날의 광경이 생생하게 떠오르면 머리가 산산이 부스러질 것처럼 아팠다.

‘그것은 돼지다.’

스스로를 달래며 그는 엎어져 잠들었다.

“저걸 보시구려.”

그 노인이 썩어 문드러져가는 대가리를 척 매달고 달랑달랑 나타났다. 꿈은 깊고 냉엄했다. 노인의 입 위쪽이 시시각각 녹아내리며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저걸 보라고, 이 악한 작자야. 저 조그만 것이 안 보이느냐?”

노인과 박평수는 꿈 속에서 도원개의 집 마당에 서 있었다. 감나무 아래 젖어미 품에 안겨 목을 가누는 어린애였다.

“금침에 폭 감겼구나. 잘됐다, 잘됐어.”

손뼉을 치면서 기뻐하더니 노인이 완전히 뼈가 드러난 입을 열었다.

“저것은.”

“도진사가 낳은 딸이로구나.”

“저것은 돼지다.”

덜컥, 두려운 기분에 박평수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옆을 홱 돌아보자 노인의 남은 욱신도 썩어 문드러져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히히히히.

겨울 바람이 새어 나가 늙은 나뭇가지 사이를 휘돌 듯 노인의 뼈만 남은 입이 딱, 딱, 딱, 딱, 아래위로 부딪히면서 웃음을 남겼다. 을씨년스럽고 섬뜩한 목소리였다.

박평수가 노인으로부터 조심스럽게 물러나며 소리쳤다.

“세상에 그 재주를 부리는 건 나뿐인데!”

“그대가 무엇인데?”

히, 히, 히, 히.

“나는, 나는, 나는……!”

“답해 보라. 네가 대관절 무엇인데?”

“나는!”

신선의 제자가 내어주었던 두루마리의 글귀를 떠올리면서, 박평수는 노인의 해골을 양손으로 꽉 잡았다.

“너는 돼지다!”

“너는?”

“너는 돼지다! 너는 돼지다! 이것은 돼지란 말이다!”

“너는?”

노인의 텅 빈 눈동자가 차오르며 그 맑고 검은 표면에 박평수의 얼굴이 비쳤다.

“나는!”

박평수는 어서 이 꿈에서 깨고 싶었다. 해골을 벽 반대편에 패대기치고는 허둥지둥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못골은 거짓말처럼 평화롭고 밥 짓는 연기가 여기저기에서 다투어 올랐다. 박평수의 걸음이 도원개의 번듯한 기와집으로 향했다. 문짝이 비틀린 채 걸린, 언제 망해 버렸는지 모를 그 흉흉한 폐허로.

“아니…… 그럴 리가.”

도원개의 아내가 어린 돼지를 이불로 동동 싸매고 서둘러 집을 빠져나오는 광경이 보였다. 비명횡사한 도원개는 버려진 집 안에 홀로 남아 썩어버릴 것이다.

“그럴 리가.”

고개를 흔들자 사방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깨어나고 싶으냐?”

그렇다, 고 박평수는 외쳤다. 벌린 입에서 침이 튀었다.

“깨어나면 과연 네가 인간이겠느냐?”

노인이 속삭였다. 너는 누구냐고 되물었다. 박평수의 단전에서 분노가, 고통이, 혼란이 치밀어 올랐다. 눈을 번쩍 떴다.

아!

그는 비설산 은선대를 오르고 있었다. 걷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도사 복장을 입은 길잡이의 등짝을 보며 사정을 하고, 양반 체면 불고하고 흙을 움켜쥐며 기기도 했다.

“그렇게 약해 빠져서 무슨 해탈을 하신다고.”

사기꾼이 커다란 복숭아를 하나 내밀었다.

“휘유.”

그는 손을 뻗어 복숭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발그스름하게 물든 둥그스름한 표면을 도폿자락에 쓱쓱 문질러,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입안으로 고기 비린내가 확 퍼지며 온몸으로 고통이 번졌다.

“악!”

그는 눈을 번쩍! 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숨을 헐떡이며 시선을 떨어뜨리자 한 입 베어 문 흔적이 남은 자기 손등이 보였다. 씨근벌떡거리는 잇새로 피가 흘렀다. 그는 입안에 담뿍 물린 미끈덩거리는 고기를 뱉지도 씹지도 삼키지도 못한 채 흐느꼈다.

‘너는 누구냐.’

모든 것이 녹아 내렸다.

흘러 쏟아졌다.

‘그것은 돼지였다.’

그의 눈알도 녹여 버릴 기세로 눈물이 흘렀다. 폭 젖어 흐린 시야로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더러운 몸으로 들이닥쳤다.

“거기 뭐가 있나? 부사리!”

부사리.

아는 이름에 박평수가 얼른 눈을 끔적거려 눈물을 떨구었다. 쿰쿰한 땀냄새 나는 손이 박평수의 목을 움켜쥐더니 과연 그 메마르고 늙은 얼굴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부사리가 웃었다. 히쭉 웃지도 벙싯 웃지도 파안하며 웃지도 않는 모호한 미소가 부사리의 주름 하나하나를 움직였다.

“부사리, 어이!”

부사리는 그 물음에 기꺼이 답해 주었다.

“아, 우리 집 돼지야. 별거 아닐세. 이건 그저 돼지니까.”

박평수는 컥, 하고 입안에 든 것을 뱉어냈다.

사방이 일렁거렸다.

그가 묻으라 명했던 모든 것이 그를 향해 솟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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