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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향한 사랑은 무한 이상

곽재식

이한나 선장이 또 선장이 되었다는 소식이 보도 되었을 때 반대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았다. 반대한다는 사람이 어느 정도 있을 거라는 예상을 팀에서도 하고 있긴 했지만 예상 이상으로 놀라운 숫자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한나 선장이 너무 싫다고 거의 적개심 비슷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무래도 너무 어려운 사업인데 무리하게 추진하는 거니까 더 그렇겠죠.”

관제부장은 그렇게 말했다. 관제부장 말도 맞는 말이었다. 목성의 유로파 위성으로 날아가는 우주선이 두 번이나 실패했는데, 세 번째 우주선을 또 띄운다는 것부터 일단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무인 우주선으로 유로파 착륙하는데 최근에 연속 두 번이나 실패했으면 당분간 몸 사려야 한다는 말도 일리는 있죠. 무인 우주선으로 두 번 실패 해놓고, 세 번째로는 도리어 사람을 태운 우주선을 보낸다는 게 너무 무리하는 느낌이잖아요.”

“이 선장 본인까지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네.”

이한나 선장은 아무리 걱정스럽고 불안할 만한 일이라도 아주 편안하게 말하는 재능이 있었다. 일부러 괜히 강한 척 해 보려고 겁나는 데도 억지로 여유로운 척 가장하면서 말하는 투는 결코 아니었다. 도리어 위험하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그 느낌은 고스란히 전달하는 말투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듣고 있으면 마음을 가라앉게 해 주는 목소리였다.

같이 우주선을 타고 화성에 갔던 한 프로그래머는 이렇게 말했다.

“선장님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 ‘아, 이제 큰일났구나’하는 생각은 번뜩 들거든요. 그런데, ‘아 큰일났으니까, 어쩌지, 어쩌지, 끝장이다’ 이게 아니라, ‘그래, 뭐, 이제부터 좀 바짝 정신차리고 알아 보면 되겠지, 뭐부터 봐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 말투도 이한나 선장이 행성 탐사 우주선 팀 대원들에게 강한 지지를 받은 이유였을 것이다. 대원들이라고 해서 다들 이한나 선장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같이 우주선을 타고 싶은 사람을 무기명으로 조사하면 항상 압도적으로 많은 표를 받는 사람은 이한나 선장이었다. 세간의 이 선장 싫어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능력도 없고, 성격도 안 맞으면서, 쓸데 없는 명성만으로 괜히 우주의 대가인 척 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대원들 사이의 평판과는 아주 먼 이야기였다.

객관적인 기록만 보아도 이한나 선장만한 선장감은 없었다. 이 선장은 화성에 두 번이나 가 보았고, 달에는 세 번 가 본 사람이었다. 전 세계에서도 화성에 두 번 가 본 사람은 거의 없다. 선장 역할도 세 번이나 해 보았기 때문에, 팀 소속 대원들 중에서는 가장 횟수가 많았다. 더군다나 이한나 선장이 참여한 임무는 설령 문제가 좀 있었던 임무였더라도, 모두 최우선 목표는 달성했고 사람의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입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최첨단과학의 현장이라는 우주 임무 연구원에서도 이한나 선장을 행운의 상징처럼 생각하는 미신 같은 분위기가 돌만도 했다.

이한나 선장에게 문제가 있다면 명망이 부족했다기 보다는 워낙 많이 알려져 있다는 점이 도리어 문제였다.

이 선장은 텔레비전 대담쇼나 그 비슷한 영상 프로그램에 대단히 많이 출연했다. 특히 홍보 사업에 대한 방향이 명확하게 서 있지 않았던 첫번째, 두번째 선장 역할 무렵에 별별 잡다한 프로그램 출연이 많았다. 이한나 선장은 연예인들과 함께 운동회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 해서 같이 뛰기도 했고, 골동품을 감정하는 프로그램이나 심지어 가면을 뒤집어 쓰고 노래를 부르는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으며, 우주선 선장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하는 이야기는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수백번, 수천번을 반복했다.

“저는 처음부터 우주선 승무원이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요.”

처음에는 “신기하다” “독특하다”고 이야기했던 그 사연도 워낙 많은 곳에서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느새 “자기 인생 이야기를 특이하게 말해 보려고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진부하다”는 평을 들을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이한나 선장의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이 선장은 통신 회사의 소프트웨어 기술자 출신이었고, 우주선에 실리는 최신 통신 시스템을 다루기 위해 우주선 대원이 된 것이 첫번째 우주 임무였다. 그리고 그 첫번째 임무에서 다른 대원들을 안심시키거나 우주선 전체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이 유난히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같이 우주선을 탄 동료 대원들은 각자 서로 다른 이유로 이 선장을 생명의 은인 비슷하게 여기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식으로 몇 년이 지나다 보니 이 선장은 어느덧 전문 우주선 지휘관처럼 변해서 그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정말 어릴 때에는 우주에 아무 관심도 없으셨어요?”

굳이 진행자가 그렇게 덧붙여 물으면 거기에 대답하는 이야기도 한 가지 정해진 것이 있었다.

어릴 때에 우주, 별, 행성 탐사 같은 이야기들을 동경하기는 했다. 최신 자료라는 신기한 소식을 읽으려고 PC 통신에 몇 시간 씩 접속해 있었는데, 그때에는 시외전화 회선을 이용해서 온라인 게시판을 봐야 했다. 그런데 시외전화 요금은 거리가 멀 수록 많이 나왔고 이한나 선장의 고향은 대도시에서 먼 시골이었기 때문에 전화요금이 왕창 나와서 부모님께 꾸중을 들은 적도 많았다.

“PC 통신이요? 그게 뭐예요?”

“음성 전화요금이 나온다고요? 데이터 요금이 따로 나오는 게 아니고요?”

젊은 진행자들이 묻는 그런 질문에 웃으면서 대답해 준 것도 수십 번, 수백 번이었다. 사람들도, 이 선장 스스로도 지겨워질 만도 했다. “PC 통신이 뭐냐 하면-”이라면서 대답하는 말투를 흉내내는 코미디언들이 나타났다. 흉내내는 투는 점차 비웃고 놀리는 것으로 변했다.

그러는 사이에 이한나 선장을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이 점차 나타났다. 이 선장의 옷 입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 말투가 싫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는가 하면, 너무 나이가 많다는 점을 집요하게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냥 긴 말 없이 “재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차차 생겨났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료들이 인터넷 이곳저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숫자는 더 빠르게 불어 났고 의견은 더 심하게 거칠어졌다. “솔직히 딱 봐도 호감 보다는 반감이 생기기 쉽지 않냐”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는 동안 이 선장이 나이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는 말들은 점점 더 모욕적이고 살벌하게 변해갔다.

그러다가 이 선장이 유로파 임무를 맡게 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면서 비난은 또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올라 서게 되었다.

그 가장 큰 원인은 그 전까지 이 선장이 임무를 수행할 때와 유로파 임무를 맡았을 때, 선거 결과가 달라져서 정권이 교체 되었다는 점이었다. 이 선장이 두 번 화성을 다녀 오는 동안에는 여당이었던 정당이 이제는 야당이 되었고, 그때는 야당이었던 정당이 이제는 여당이 되었다. 후보가 청년 기업이라고 하는 마카롱 가게에서 과자를 사먹는 모습을 기자들 앞에서 보여 주며 말 실수를 한 것이 선거의 큰 화제거리가 되어 선거 결과가 뒤집어졌는데, 그 결과가 유로파 임무와 이한나 선장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마카롱 먹으면서 농담한 것과 우주선을 타고 목성까지 날아 가는 일이 그렇게 큰 관계가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아직까지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선장이 야당의 지난 시절 상징이었으므로 싫어했다. 여당 사람들은 야당 입장에서 “우리가 예전에 정치를 이렇게 잘 해서, 한국인이 이렇게 화성까지 잘 다녀왔다”고 자랑하고 떠벌릴 수 있는 재료가 바로 이한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 선장에 대한 일이라면 여당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미워할 준비를 잘 갖추고 있었다.

반면에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제 이 선장이 성공하면 그것은 여당이 정치를 잘한다는 증거가 될 것이었으므로 어떻게든 이 선장의 일이 잘 풀려 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이 선장이 원래 야당편이었는데 자신의 출세를 위해 배신하고 여당에 달라 붙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양쪽 사람들이 둘 다 싫어하는 사람이 이한나 선장이다 보니, 정치 이야기를 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선장에 대해 비난을 하는 것이 가벼운 화제 거리로 적당하기도 했다. 세상에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를 할 때에 다른 누군가의 잘못에 대해 투덜거리는 것 외에는 적당한 화제를 잘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그러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문득 “이 정도였나” 싶을 정도로 이 선장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많아 보이게 되었다.

유로파 임무 자체에 대한 반대 의견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우선 이렇게 우주에서 장난치면서 나라 이름 내세우려는데 돈 날리지 말고 그 돈을 복지에 써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런 의견은 우주 임무에서는 항상 나오던 것이었는데, 유로파 임무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유로파 근처까지 실제로 보냈다가 데려온다는 것이었으므로 막대한 예산이 필요했기에 더 문제 제기가 깊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이번 유로파 임무는 너무 위험하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의견은 정치적인 문제 이상이었다.

유로파 초근접 궤도에 들어 선 무인 우주선과 로봇이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장으로 파괴되었다. 그것도 두 대가 연속으로 망가져서 실패했다. 무인 우주선이 성공했다고 해도 사람을 태운 우주선을 보낼 때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인데, 이번에는 무인 우주선이 연속으로 실패했으면서도 사람을 보내겠다고 계획하고 있었다. 이것은 뭐가 있을 줄 모르는 죽음의 행성에 사람을 보낸다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렇지만, 어떻게 우리가 다 발견해 놓고 지금 와서 포기합니까? 지금 포기하면 세계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견을 빼앗기는데요.”

실패한 무인 우주선들이 마지막에 포착한 자료들을 두고 몇몇 학자들은 그것은 유로파에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 몇몇 중에는 정치인들도 알고 있는 유명한 사람도 끼어 있었다.

최초의 외계생명체 발견! 우주 임무에 엮여 있던 그 많은 사람들은 그때부터 그 가능성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유로파 무인 우주선은 실패했다고 하지만 실패가 아니다”라는 말은 그 사람들이 무슨 시위 구호처럼 매번 말하고 다니던 이야기였다.

“지금 유로파에 생명체가 있을 거 같다는 단서를 얻은 게,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그 많은 돈을 들여서 우주 임무를 한 열매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포기하고 다른 나라가 지금 재빨리 유로파에 가서 최초로 외계 생명체를 발견하면 그 열매를 빼앗기는 거예요. 우리는 지금까지 해 놓은 것 다 날리는 거고요.”

발사계획팀 팀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아예 대놓고 그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다들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모든 의원들이 우주 임무가 경쟁국가들, 이웃 나라들과의 감정 대결 때문에 응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한국이 외계 생명체를 처음으로 찾아내기 직전에 정치인 누구누구가 반대해서 그것을 다른 나라에게 빼앗겼다”는 욕을 듣기가 싫어서 정치인들이 나서서 사업을 말리지는 못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유로파 임무의 일정이 잡히고 대원이 선발될 즈음이 되자 세상 사람들 사이에 한국 정부가 “세계 최초 기록”에 눈이 멀어 너무 위험한 계획을 벌이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빠르게 늘어 났다. 두 번이나 길을 잃고 돌아 오지 못한 우주선에 타는 것은 폭포로 흘러 드는 뗏목 위에 올라 타는 것과 같다고 비판하는 만화 그림까지 유행했다.

거기에 대해서 우주 임무팀이 밝히는 이유는 준비되어 있었다. 이한나 선장이 직접 기자들 앞에서 설명한 적도 있다.

“광속 한계 때문에, 유로파와 지구 사이에 통신을 하는데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립니다. 유로파에서 전파를 쏘더라도 지구에 닿는데 30분에서 50분 정도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유로파에서 무슨 문제가 생겼는데 즉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원격 조종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만큼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사이에 우주선이 더 고장나고 부서진다면 영영 해결할 수 없게 됩니다. 이때, 만약 우주선에 사람들이 직접 타고 있다면 그 사람들이 우주선에서 시간을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오류가 무엇인지 찾아서 그 오류를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우주선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우주선을 직접 다 정비하고 수리할 수 있나요?”

질문 내용은 좋았지만 그 말을 묻는 표정은 다분히 멸시하는 태도였다. 그러나 이 선장은 그래도 질문 내용이 반가웠기에 싫은 기색 없이 대답했다.

“저는 나22호 기기까지 중앙 관리 프로그램을 시험하는데 직접 참여했던 프로그래머였습니다. 저와 같이 우주선을 타고 갈 다른 대원들도 각자 맡은 분야를 익힌 사람들로 선발할 겁니다.”

하지만 그 정도 대답으로 반대 의견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았다.

우주선 출항일이 다가 오자, 이번에는 이상한 망상에 가까운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늘어 놓는 작가들이나 사상가들이 반대 의견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무슨 1980년대 SF 영화에 심취했는지 어떤 작가는 이것은 분명히 우리보다 굉장히 발달한 외계인들이 자신들의 중요한 터전인 유로파에 우리가 오는 것을 막고 있는 것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 작가의 추종자들은 “유로파를 건드리면 인류가 멸망한다는 10가지 증거”라고 하면서, 유로파에 가까이 가려고 하면 외계인들이 격추해버릴 것이고 용케 격추를 피해 유로파에 만약 도달한다면 외계인들은 사람이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지구로 군대를 보내어 지구 전체를 폭파해 버릴 것임이 “99.99%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그 밖에도 자기 종교의 교주가 8만4천년 전에 지구에 나타나서 다른 동물, 식물과는 달리 사람들에게만 특별한 자아와 의식을 주어 살게 했는데, 만약 사람이 유로파에 가서 사람이 아닌 다른 외계인도 지능이 뛰어 다나는 것을 알아 내면 이것은 그 종교 교주의 교리를 일부러 틀리게 만들려는 사악한 악마의 수작을 부린 것이므로, 지성과 마음을 가진 외계인이 발견되는 순간 교주가 온 우주를 다 없애 버린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등, 해괴한 이유로 임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생겨났다.

일이 그런 식으로 돌아 가다 보니, 유로파 팀 사람들 중에서도 이 일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 났다. 이한나 선장이 자기 대원들을 처음 만나 우주선 점검을 해 나가던 시기에는 지원팀 사람들 중에 그러저러한 이유로 갑자기 일을 그만두겠다는 사람들이 1주일에 한 두명씩은 꼭꼭 나타났다.

이 선장은 그때마다 그 자리를 메워 줄 새 팀원을 보충해 달라고 상부에 매달려야 했고, 한편으로는 그런 흉흉한 분위기에서 대원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마음을 달래는 일도 해야 했다.

이 선장이 특히 유심히 살펴 본 대원은 과학 장교인 김 대리였다.

김 대리를 유심히 본 것은 그가 특별히 임무에 부정적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김 대리는 다른 팀원이나 대원과 달리 도리어 임무를 너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굳이 “저는 유로파에 가는 게 너무 신나요”라고 떠들고 있지는 않았다. 슬쩍 아무렇지 않은 척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매일 출근할 때 마다 출근길을 즐거워하는 기색은 뚜렷했다.

출근길을 즐거워하는 직장인이란 굉장히 이상한 현상이었다. 이한나 선장의 눈길을 끌 수 밖에 없었다. 이 선장은 예전에 우주 비행 교육 프로그램에서 교관으로 일하다가 김 대리와 친해진 적이 있었다. 김 대리의 성격이 어떤 지 대강 알고 있었다. 이 선장은 김 대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더 세심히 관찰해 보았다.

얼마 후, 이 선장은 김 대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이 선장은 최종 엔진 점검을 위해 김 대리와 단 둘만 우주선에 붙어 있을 때, 그에게 말했다.

“김 대리, 일등항해사 박 대리 좋아하죠? 임무 앞두고 있으니까 그런 거 박 대리에게 절대 티 내지 말아요. 내가 보기에 잘 풀릴 가능성도 없는 것 같고.”

김 대리는 놀랐다.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그러나 김 대리의 그 웃음이 어이가 없다는 것을 애써 흉내내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 눈썰미 없는 사람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 선장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러자 김 대리가 머뭇거리다가 다시 물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왜 그런데요?”

“그렇잖아. 김 대리 자기는 어차피 박 대리 많이 좋아하니까 상관 없겠지만, 박 대리 입장에서는 직장에 왔는데 어떤 남자가 자기를 좋아하네 어쩌네 하면서 신경 쓰이게 하는 게 업무에 방해되는 피곤한 일이잖아. 혹시 거절했다고 해서 무슨 불이익 당하면 어쩌나 골치 아프기도 할 거고. 실제로 불이익을 당하는 게 없더라도 그런 걸 걱정하는 것 자체가 삶을 힘들고 귀찮게 만들잖아. 반대로 같이 힘을 합쳐서 일을 해야 하는 게 있을텐데. 그럴 때에 자기가 좀 부드럽게 대해 주면 혹시 좋아하는 마음 받아준다고 오해할까봐 신경 써야 하고. 그렇게 계속 신경 쓰는 게 고통이라고. 그런 게 업무에 고충이 되면 안 돼요. 한 쪽에서는 혼자서 무슨 달콤한 사랑 이야기를 꿈꾸는 지는 몰라도 다른 쪽에서는 괜히 자기만 직장 생활 힘겹게 만드는 함정이 하나 생기는 거야. 그런 게 없는 사람에 비해서 직장 생활을 힘들게 하는 불리한 점이 되고 괴롭히는 일이 된다고. 그런 일도 다 직장에서 다른 사람 괴롭히는 일 하는거야.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이 편한 일도 아닌데. 우리 임무에도 안 좋을 거고.”

김 대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거 말고요. 선장님, 그런 원칙은 저도 아는데요.”

“그러면?”

“왜 잘 풀릴 가능성이 없는데요?”

“그렇잖아. 박 대리는 딱 봐도 인기 많을 것 같잖아. 그렇지? 그런데, 김 대리는. 김 대리도 뭐 건실하고 멀쩡해 보이기는 하는데 박 대리 처럼 딱 봐도 인기 많을 것 같은 느낌은 아니잖아. 유로파 임무에 지원하면서 텔레비전에도 많이 나가고 알아 보는 사람도 많고 하니까 막 세상 모든 분야에서 내가 다 인기가 많아지는 것 같은 착각이 느껴질 수도 있는데, 우주 임무를 새로 맡게 되었다고 해서 얼굴까지 갑자기 잘 생기게 변하는 거는 아니잖아요. 그런 것 때문에 헛바람 들어서 괜히 나는 이런 멋진 직업을 갖고 있으니까, 세상 사람들 다 나를 좋아하겠지, 그런 생각 품으면 안 된다고. 나 봐라, 우주선 타면서 욕만 더 먹고 있지.”

그날 이후 과연 김 대리는 자기가 “알고 있다”고 말 한대로 박 대리에게 특별한 말을 하거나 별다른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우주선이 목성을 향해 출발할 때까지도 계속 그랬다.

그렇지만 이 선장은 박 대리를 쳐다 보는 김 대리의 표정 속에 들어 있는 느낌을 환하게 볼 수 있었다. 박 대리 역시 똑같이 김 대리에게 특별한 말을 하지도 않고 별다른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박 대리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아무런 노력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와 대조 되어 김 대리의 마음 속은 더욱 뻔해 보였다.

이한나 선장은 대원을 바꾸어 볼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그렇지만 돌아가는 것을 보니 적어도 임무가 끝나서 다시 서로 다른 관계 없는 부서에 배속될 때까지 김 대리가 박 대리에게 무슨 엉뚱한 말을 하거나 할 것 같지는 않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김 대리는 이 선장을 누구보다 잘 따르는 편이었다. 잘 따르는 정도가 아니라 김 대리는 이 선장을 굉장한 우상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학생일 때 이 선장이 나오는 화성 탐험 뉴스만 수 백 개를 찾아 보았다고, 같이 우주선 타게 되어 정말 기분 좋다고 직접 말한 적도 있었다. 지금까지 하는 모습으로 봐서는 일도 잘 해낼 수 있어 보였다.

과학 장교 역할을 할 대원을 이제 와서 새로 선발한다면 김 대리만큼 잘 할 사람을 구할 자신은 없었다. 시간이 정해져 있고,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는 이렇게 출발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이 선장은 김 대리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주었다. 김 대리는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알겠다고 했다. 별 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동안 내내 애타는 가슴 한량 없이 설레기야 하겠지만 결국 참을 것이다.

우주선이 출발한 후에는 우주선 속 사정은 편안해졌다. 너무 편안해져서 지루해 보일 정도였고 그래서 이상해 보일 정도였다. 우주선이 날아 가는 동안에도 모든 프로그램과 장비가 정상으로 동작하는 지, 혹시 오류가 생길만한 달라지는 점은 없는 지 계속 확인하고 시험해 보는 작업을 해야 하기는 했다. 하지만 모두 예상한 작업을 반복하는 일뿐이었다. 일등항해사와 과학 장교, 두 사람 모두 조금의 문제도 없이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우주선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지구의 사정은 전혀 조용해지지 않았다. 괴이한 의견을 내던 사람들은 도리어 점점 더 격렬해졌다. 유로파에 있는 외계인들을 건드리면 보복 공격을 당해 지구가 멸망할 거라고 믿는 사람들은 애절할 정도로 열심히 자신들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애썼다. 지금이라도 우주선을 되돌리라면서 집회도 했고, 시위도 했고, 투서도 했고, 광고도 만들어서 방영했다.

그 기세를 타고 그 외의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같이 거세졌다. 종교 단체와 여당, 야당 정치인들부터 이싫모, 그러니까 이한나 선장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까지 유로파 임무를 멈추라고 소리를 높였다. 짓궂은 사람들은 유로파에 도착하면 우주선이 반드시 파괴될테니, 거기 타고 있는 대원들의 목숨은 이제 며칠 남았다면서 D-며칠 이라면서 날마다 떠들며 알리기도 했다.

반면에 이한나 선장은 우주선이 유로파에 가까이 다가가기 전까지 반복 되는 일정의 편안함을 그저 즐겼다.

해가 뜨지도 않고 밤이 오지도 않고 날씨가 바뀌지도 않고 모든 것이 가만히 반복되는 것만 같은 우주선 속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 다시 잠이 들 때까지 정해진 일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우주선 내부에서 나는 소음이 귀에 계속 들리는 것을 없애기 위해서 음파 교정기를 실행하고 나면 잡음이 들리는 것도 없어진다. 무중력 비행의 불쾌한 느낌과 소화불량에서 벗어나기 위해 관성감 대응 조치를 받으면,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우주선 속에 있는 기분도 지구의 삶과는 아주 달라진다.

아무도 올 수 없는 곳에 와서 텅 빈 곳으로 끝도 없이 점점 멀어지는 동안 조용히 계속 같은 일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이 선장은 그것이 아늑하고 평화로우면서도 후련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너무 미워서 꼴보기 싫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은 우주선에서 4억 킬로미터 거리에 떨어져 있으며, 그 고요한 시간 동안에도 그곳으로부터 1초에 2백 킬로미터씩 멀어지고 있다는 계산 역시 아늑한 생각이었다.

편안한 시간은 유로파 접근 궤도로 우주선 엔진을 조종하면서부터 사라졌다.

반복을 편안하게 즐기기에는 이제부터 따지고 계산해야 할 양은 훨씬 더 늘어났다. 아마 먼저 유로파에 날아갔다가 박살이 났던 로봇 우주선들은 이 즈음부터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결국 망가졌을 것 같았다. 무엇인가가 잘못 되고 있다면, 잘못 되고 있다는 문제가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지는 시점이었다. 정말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처럼 보인다면 “임무 중단” 명령을 내려야 했다.

우주선 조종 장치에 정말로 “임무 중단”이라고 적혀 있는 빨갛고 커다란 자폭 단추가 마련 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 선장은 그 빨간 단추가 나오는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한국 우주 비행사들은 다 안다는 그 이한나 선장의 놀랍도록 편안한 말투는 여전히 아무 변함이 없었지만 그 말을 하는 머릿속은 완전히 달라졌다. 일등항해사 박 대리의 진지한 얼굴이나, 사랑에 빠진 것을 숨기려고 애쓰는 김 대리의 얼빠진 얼굴은 내내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얼굴을 볼 때마다 이 선장의 머릿속에는 “내가 임무 중단 명령을 제 때 안 내리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폭발할텐데”하는 생각이 언제나 떠올랐다.

그렇지만 이 선장은 임무 중단 명령을 내릴 순간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모든 프로그램은 전부 정상 작동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지구의 관제실로 전송하고 나면 전송 하느라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지구에서도 다시 한번 정밀하게 검토를 하는데 그쪽에서도 프로그램 작동의 이상을 발견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한나 선장은 다른 생각을 떠올려야 했다. 지금부터 프로그램 오류가 쌓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갑자기 우주선 작동을 정지시킬 무슨 다른 문제가 곧 생기지는 않을까 의심해 보기 시작했다.

목성 지역에서 발생하는 강한 방사선이 우주선을 휩쓸고 지나가고 그 때문에 전자 부품이 망가지는 것일까? 전자 부품이 까맣게 탈 정도로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도, 작디 작은 메모리 속에 들어 있는 전기 신호 몇 개가 오류로 뒤집어지면 몇 비트 정도의 정보가 바뀌고 그 때문에 프로그램이 이상하게 변형되어 갑자기 우주선을 자폭시키는 방향으로 흘러 갈 지도 모르는 노릇아닌가? 아니면 정말 외계인이 공격해 오는 지 살펴 보아야 하나?

유로파 최근접 궤도 진입 직전까지 돌입할 때 까지도 이 선장은 문제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제 대원들은 모두 눈 앞에 희미하게 빛나는 목적지를 볼 수 있었다. 울긋불긋한 모양이 조금 있는 매끈한 회색 원 모양의 위성이 머리 위에 떠 있었다. 상상하기에 따라서는 무서운 무기를 갖고 있는 외계인들의 요새일 수도 있고 사람은 결코 접근해서는 안 되는 하늘 저편 탑 꼭대기 악마의 소굴일 수도 있는 곳. 이 선장의 눈에는 너무 조용하고 말이 없어 보이는 커다란 얼음 덩어리였다.

마침내 우주선에서 오류가 나타났을 때, 대원들은 일등항해사 박 대리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물에 적시면 부풀어 오르는 우주용 생일 떡이 준비 되어 있었다. 막 떡에 LED 촛불을 꽂고 있는데 갑자기 오류 신호가 시작되었다.

생일 떡은 그저 우주에서 호사로 즐기는 행사가 아니었다. 그 떡은 우주에서 떡을 먹는 행사를 하라고 한국 최대의 떡 생산 회사가 특수 개발해서 광고비를 지불하며 보낸 제품이었다. 그러므로 박 대리의 생일 파티는 적지 않은 자금이 달린 중요한 홍보 행사이기도 했다.

“떡 회사에서 욕 엄청 하겠는데.” 이 선장은 자기가 죽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보다 그 말부터 먼저 중얼거렸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외계의 생명체를 확인하고 만나는 대원이 먹을 생일 떡이라고 엄청난 광고비를 지불했는데, 대원들이 우주선 고장 사고로 사망하면 광고는 망해 버릴 것이다. 아마 그 떡 회사의 광고는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남겨진 시체들이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으로나 기억될 것이다.

“다시 한번 각자 주요 예상 위험 사항 한번 점검해 봅시다. 일등항해사, 보고.”

“기본 컴퓨터가 시동 단계에서 멈춰버렸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다음 프로그램으로 진행이 안 되고 시작하는 단계에 걸려 있습니다.”

이 선장은 그 말을 듣고 컴퓨터가 개발된 이래 수없이 많은 전문가들이 최고의 대응 방법으로 무수히 사용해 온 방법을 대응 방안으로 제시했다.

“껐다 켜 보죠. 그래도 안 되나?”

그 말에 대답하는 목소리는 아까와 비슷했다. 그렇지만 듣기에는 다른 기분으로 들렸다.

“변화 없습니다. 여전히 비슷한 지점에서 진행이 멈춥니다.”

“누가 컴퓨터를 망치로 때린 것처럼 무작위로 프로그램이 파괴된 건가? 그런 느낌은 아닌가?”

“그런 느낌은 아니고, 딱 프로그램의 어떤 지점에서 누가 일부러 정지 명령을 끼워 넣은 느낌입니다.”

외계인이 외부에서 컴퓨터를 해킹할 수 있는 신호를 쏜 건가? 그래서 그런 신호를 담고 있는 전파 광선 한 방이면 아무리 거대한 우주선이라도 바로 침몰시킬 수 있는 건가? 언뜻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말도 안 되는 가능성이라는 것은 이 선장도 잘 알고 있었다.

“과학 장교, 프로그램 이상 발견 후로부터 경과 시간은?”

“40초 정도입니다.”

“다시 한번 전체 점검 빨리 해 보도록 합시다.”

앞서 날아간 탐사선들이 특별히 조치를 취할 기회도 없이 파괴된 것을 보면, 프로그램 오류 발생으로부터 그 소식이 지구에 전달되는 사이의 시간, 그러니까 대략 30분에서 50분 정도의 시간 안에 우주선이 완전히 파괴된다는 뜻이었다. 세상이 모두 환호할 발견을 해 낼 영웅이 되는 순간을 기대하고 있다가, 햇빛도 미치기 어려운 얼어 붙은 죽음으로 떨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 치고는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다시 돌려 본 전체 점검 결과에도 소프트웨어의 이상은 없는 것으로 나왔다. 정말로 무슨 마귀에 홀린 것처럼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동작하고 있는 프로그램인데 이상하게도 갑자기 멈춰 서서 사람이 새로운 생명이 있다는 땅으로 가는 것을 막고 있었다.

이 선장은 잠시 고민했다. 얼마 후 선장은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이한나 선장” 말투스러운 말투로 말해 보기로 했다.

“대원들, 남은 시간은 30분 정도인 것 같습니다. 별 다른 좋은 방법은 없고. 장거리 보조 통신망으로 지구로 마지막 말을 보내려고 합니다. 남길 말 있으면 각자 한 마디씩 하기 바랍니다.”

우주에서는 통신망에 소리가 없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주선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가 싶은 생각이 엉뚱하게 잠깐 들었다. 이 선장이 맨 먼저 말하게 되었다.

“대원들, 대원들은 제가 지금까지 같이 일했던 분들 중에 가장 멋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과 같이 이렇게 아무도 와 보지 못한 먼 곳까지 와 볼 수 있어서 정말 즐겁고 신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 도요” “저도, 선장님” 하는 말이 짧게 들렸다.

뒤이어서 김 대리가 말했다.

“사실 박 대리님 생일 잔치 때 생일 축하하는 축하곡을 제가 들려 드리려고 노래 연습이랑 기타 연습 엄청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하필 딱 이때 끝나서 너무 아쉽네요. 밀폐실로 들어 가면 바로 옆 자리로도 소리도 안 들리고 해서 일부러 이렇게 애써서 연습한 것도 아무도 모를 것 같고 해서 매일 꼭꼭 한 번씩 연습했었거든요.”

이 선장은 한숨을 쉬었다.

“매일? 정말 매일?”

“예. 아니... 아니오. 오늘만 빼고 매일요.”

김 대리가 대답했다. 이 선장은 그냥 웃고 넘어 가려다가, 김 대리에게 다시 물었다.

“오늘은 왜 뺐는데?”

“아, 오늘요? 오늘은 밀폐실 컴퓨터가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정비 요청 신호 보내고, 그만뒀습니다.”

이 선장은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장은 박 대리에게 지시했다.

“일등항해사, 밀폐실 컴퓨터가 기본 컴퓨터에 연결되어 작동되는 것 맞지?”

“맞습니다. 선장님.”

“좋아, 과학 장교가 밀폐실 컴퓨터를 사용한 시각이 언제인지 모두 표시해봐.”

김 대리가 말했다.

“선장님, 잠깐만요. 제가 정말로 매일 노래 연습했는지 확인해 보시는 거예요?”

이 선장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답도 바로 알 수 있었다. 김 대리는 정말로 우주선이 출발한 후 매일 꼬박꼬박 한 번씩 밀폐실을 사용했다. 박 대리의 생일을 기다리며 매일 기타 치는 연습을 했다는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노래 연습한 시점을 시간 말고 지구에서 떨어진 거리 단위로 한 번 표시해 보면 어떻죠?”

“변환해 보겠습니다.”

매일 몇 시에 김 대리가 노래 연습을 했는가 하는 내용이 지구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을 때 노래 연습을 했는가 하는 내용으로 바뀌어 나왔다.

“과학 장교, 거리 단위를 킬로미터 말고 무슨 단위든지 여러 가지로 다 변환해서 보여 줘봐.”

“예? 무슨 단위든지 아무거나 다요? 지시대로 해 보겠습니다.”

김 대리는 어떤 이유로 내리는 지시인지 모르지만 시키는 대로 했다. 자기가 노래 부르는 것을 신비로운 유로파의 외계인들이 듣고 너무 노래 내용에 화가 나서 없애 버리려고 결심했다는 이야기일까? 김 대리는 그런 생각을 잠깐 하다가 그만두었다.

화면 속을 쳐다 보는 이 선장의 얼굴은 화면이 바다로 변했을 때 그 속으로 뛰어 드는 것 같아 보였다. 깊이 잠수해서 숨이 모자라서 곧 못버틸 것 같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바다 밑을 헤메는 해녀처럼 이 선장은 숫자 사이를 쳐다 보았다. 이 선장이 다음 지시를 내릴 때, 그 표정은 마침내 물 밖으로 나온 듯이 보였다.

“당장 대원 전부, 모든 통신 프로그램에서 거리 제한 명령이 있는지를 찾습니다. 그걸 고쳐 봅시다.”

대원들은 일사 분란하게 보조 컴퓨터를 조작했다. 그렇지만 김 대리는 작업을 하는 도중에도 이해가 가지 않아서 물었다.

“그런데 통신 프로그램의 거리 제한 명령이라는 게 어떤 식으로 걸리는 건데요?”

“무한대 문제 오류에 걸린 거 같아.”

“그게 무슨 뭐죠?”

“1년 회원이라든가 3년 회원이라든가 그런 식으로 비디오 가게 회원으로 가입을 한다고 쳐 보자고.”

“비디오 가게가 뭔데요?”

“아니, 그러면 음식 같은 거 유통기한이 있는 거 알지? 그런데 사진 찍는 필름 중에는 유통기한이 되게 긴 것도 있거든.”

“사진 찍는 필름이 뭔데요?”

“아니, 그러니까. 김 대리가 지금 무슨 컴퓨터 게임을 회원 가입하려고 한다고 해봐. 20만원을 내면 1년 회원이고, 30만원을 내면 2년 회원이고, 100만원을 내면 평생 무한대로 회원이라고 해 보자고.”

“예, 게임 회원은 뭔지 이해되네요.”

“그렇게 돈을 내고 가입하면, 게임 회사 서버 컴퓨터에서는 회원 가입 기한이 얼마인지 입력을 해 놓을 거란 말이야. 1년이면 365일, 2년이면 730일이 남은 기한이라고 입력해 두겠지. 그렇지만 평생 무한대 회원이라고 하면 무한대는 입력하기가 어렵잖아. 그래서 보통 어떤 식으로 입력하냐면 무한대 대신에 그냥 엄청나게 큰 수를 써 두곤 하거든. 예를 들어서 남은 기한에 99999일이라고 하면 273년 동안 회원이라는 뜻이 되는데 보통 사람이 아무리 오래 살아도 270년 동안 그 게임을 하지는 않을 거니까 그렇게 해 두면 사실상 무한대라는 뜻이 된단 말이지. 컴퓨터 프로그램에서는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게 많아요.”

“아, 그러면 그런 게 우리 우주선 프로그램에도 있을 거란 말이에요?”

“맞아. 통신 프로그램 만들던 사람들이 무선 통신하면서 요금 계산하면서 거리가 얼마까지는 요금이 얼마고 얼마를 넘어서면 얼마라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넣었던 적이 있을 거라고.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그대로 장거리 통신 프로그램에도 끼워 넣은거야. 예를 들어서 거리 제한 없이 무한대로 쓸 수 있다는 뜻으로 99999킬로미터까지 요금이 0원이라고 프로그램에 입력해 놓았다면 지구에서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99999킬로미터 보다 멀어질 수는 없으니까 요금을 안 내도 프로그램이 동작될 거거든, 그러니까 문제가 없었겠지. 그런데, 지금 우리는 너무 멀리 오는 바람에 ‘이 정도면 무한대나 다름 없다’라고 옛날에 프로그램에 써 놓았던 그 한계치를 넘어버린 거예요. 당연히 우리가 통신 요금을 냈다는 기록은 없으니까 프로그램은 돈 내고 통신 프로그램을 쓰라면서 거기에 걸려서 정지되는 거고.”

“그러니까, 제가 밀폐실에서 노래 연습을 잘 했던 어제까지는 그 무한대나 다름 없는 한계치를 안 넘었는데, 오늘은 그 무한대나 다름 없는 한계치를 넘었다는 거에요? 그 무한대를 표현했다는 한계치 거리가 얼마인데요?”

그때 마침 박 대리가 정말로 통신 프로그램에서 문제가 있는 부분을 찾아냈다. “찾았습니다. 선장님.” “제가 수정하겠습니다.” 김 대리가 뒤이어 외쳤다. 이 선장은 앞의 질문에 대답했다.

“거리 단위 중에 해리라는 단위 있는 거 알아요? 9999만9999해리, 포르투갈 방식 해리로. 그게 입력되어 있는 무한대를 나타내는 값이었어요. 그것보다 멀어지면 유료 과금을 하도록 되어 있었던 거였고.”

김 대리가 소리쳤다.

“세상에 누가 포르투갈 방식 해리 같은 단위를 쓰는데요?”

“바다 위에서 항해하는 배들이 장거리 통신 많이 하잖아. 옛날에는 그쪽에 들어가던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아.”

김 대리가 프로그램 수정을 마치자, 하나 둘 우주선 소프트웨어는 정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우주선은 제 길을 찾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선장은 더욱더 이 선장다워진 목소리로 설명했다.

“세상에 악마라는 게, 뿔이 달리고 빨갛게 생긴 이상한 아저씨 같은 생긴 게 돌아다니는 게 악마가 아니야. 악마는 사람들 정신과 사람이 쓴 문서에 돌아 다니는 생각과 글자의 형태로 우리 정신 속에 파고 들어 옵니다. 피트, 파운드, 화씨, BTU 같은 이름을 갖고 있지요.”

2년 후, 이 선장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 김 대리를 다시 만났다. 이 선장은 김 대리에게 “그때 죽기 30분 남았는데, 그래도 박 대리한테 좋아한다는 말은 안 했네?” 라고 물었다. 김 대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상하게 선장님이 말씀하시는 거 들으니까, 어찌저찌 살아날 수도 있을 거 같더라고요.”

김 대리가 박 대리에게 다가간 것은 그로부터도 꽤 시간이 지난 후였다. 두 사람은 결국 결혼했는데, 공교롭게도 결혼식 날짜는 이한나 선장이 새로운 우주선을 타고 다시 한 번 유로파로 떠나는 날이었다.

— 2019년, 서울시립과학관에서

댓글 2
  • No Profile
    윤새턴 19.10.08 23:54 댓글

    김 대리의 인내심이 대단하군요. 주례까지는 봐주고 가셨으면 좋았을텐데요.

  • 윤새턴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19.10.09 16:05 댓글

    주례를 선다는 것은 좀 상투적인 것 같아 뺐습니다. 장기 우주선 탑승 전에는 격리 기간이 있을 테니 결혼식 참석과 너무 가까운 것도 이상할듯해서 이렇게 처리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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