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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 사막으로

2019.11.15 00:0311.15

사막으로

천선란

사막에 대해 글을 써 보는 건 어떠니?

아버지가 사막에 대해 처음 이야기했던 것은 1년 간 사우디아라비아로 출장을 갔을 때였다. 그 시기 아버지는 대기업 건설업체를 재직 중이었다. 스물다섯이라는 이른 나이에 첫 연애상대였던 엄마와 사랑에 빠져 식을 치렀다. 아버지보다 엄마가 더 어렸는데 엄마는 결혼 당시 스무 살이었다. 회사에서 만났던 두 분은 몇 개월의 연애 끝에 서로가 백년가약의 짝임을 확신하고 결혼을 올린 것이다. 필시 누군가는 너무도 어린 나이에, 적은 연애경험을 토대로, 고작 일 년을 만나놓고 결혼한 두 사람을 보고 생각이 짧다며 혀를 내두를 수 있겠다.

하지만 아버지가 결혼식에서 평생 당신만을 사랑하겠다는 서약을 그 후로 평생 지켰다는 것을 생각하면 두 사람은 복잡한 이별과 상처를 굳이 겪지 않고 만나게 된 축복 같은 사랑에 가까웠다. 결혼 1년 만에 딸이라는 새 가족이 생겼다. 그 후로는 아이를 낳지 않았으므로 그 딸이 나라는 건 설명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엄마는 육아에 뛰어들었고 아버지는 회사에 뛰어들었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은 새 가정을 꾸려 서로를 책임지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토목과를 전공하고 졸업 후 건축 일을 시작했다. 돈을 많이 주는 곳이라면 지방 출장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그 경력이 점점 쌓이고 쌓여 내가 13살이 되었을 때 멕시코로 첫 해외 출장을 떠났다. 한국에 있을 때와 해외로 갈 때의 임금이 2배 이상 차이 났으므로 아버지는 주저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지하나 해저에 도로를 놓는 일의 총책임자를 맡았다. 멕시코에서 3년 동안 일을 하며 4개월에 한 번씩 14일 동안 한국으로 휴가를 나왔다. 내가 아버지를 볼 수 있는 시간은 그 기간이 다였다. 우리는 늘 최상의 14일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여행을 다니며 추억을 쌓았지만 그 중 하루는 두 분이서 꼭 싸웠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두 분을 붙잡고 말리는 상상을 했다.

어쨌든 아버지는 3년간의 멕시코 일을 마무리한 뒤 한국이 아닌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곳에서 체류하던 중 14일 휴가를 나왔던 때에 아버지와 나눈 대화이다. 아버지는 모르지만 이 대화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그래서 내가 이 이야기를 첫머리에 다는 것이다. 나는 사막에 대해 쓰라는 아버지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내가 작가가 될 거라는 어떤 몽상을 꾸고 있는 듯했다. 그렇지만 아버지에게 현실을 일깨워 줄만큼 당시 나는 무언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었으므로 늘 아버지의 몽상을 방관했다. 아버지에게 소설을 쓴다는 건 불가측 영역의 일인 모양이었다. 나는 나름 아버지가 기분 상하지 않을 수 있도록 머리를 굴려 대답했는데, 돌이켜 생각하면 보잘 것 없는 답이었다. 조금 한심하고 바보 같은.

하지만 저는 사막에 가본 적이 없어요.

사람이 보는 것을 쓰는 건 아니잖니. 본다고 믿는 것을 쓰지.

아버지는 그 휴가를 오기 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직원들과 함께 사막체험을 했다. 낙타를 타고 사막 중심부로 들어가 가이드와 함께 사막에서 밤을 보내는 코스이다. 그곳에서 뭘 봤는데요? 하고 아버지에게 묻자 아버지는 아파트 불빛이 오징어 배처럼 빛나는 야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평선에 별이 닿아 있었다. 은하수가 흘렀고 사방에 별이 깔려 있었지. 나한테 쏟아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만큼. 할 수만 있다면 평생 그렇게 누워 별만 보고 싶었다. 마치 나에게 우주가 말을 거는 것 같았지.

아버지는 자신이 말하고도 퍽 어울리지 않다는 걸 알았는지 말을 끝으로 뒷짐을 지고 슬며시 자리를 피했다. 나는 베란다에 오래도록 서서 아버지가 말한 지평선에 닿은 별을 상상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말한 사막의 밤하늘보다 그 밤하늘의 별이 우리에게 빛으로 닿을 때까지 얼마만큼 오랜 시간 고독한 우주를 가로질렀는지 따위를 생각했다. 물론 이 고독도 철저히 지구에서 바라보는 내 입장이겠지만 말이다. 빛은 숨 가쁘게 돌아가는 우주를 정신없이 가로질렀을 테지. 하지만 이렇게 표현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멋이 없었다. 적어도 내 귀에는 우주의 소음이 들리지 않으므로. 나는 아버지가 기대했던 소설적인 상상력 대신 이런 식의 공허한 우주를 자주 꿈꿨다. 내가 우주를 지표로 두고 접근하기 시작한 것은 물리를 전공한 대학교부터이지만 나는 그 베란다에서부터 소리 없는 진동으로 가득 찬 우주를 떠올리는 것으로 내 삶을 꿰어나갔다. 아버지의 그 말이 나를 우주로 던져 놓은 것이다.

우주의 망망대공(茫茫大空)에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이 호프호(hope spacecraft)에 승선하게 된 시초가 아버지의 말로부터 뻗어 나왔기 때문이다. 리윙이 들으면 배를 잡고 웃을 것이다. 우리는 이십 몇 년을 만나며 단 한 번도 각자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진중하게 나눈 적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해주려고 했다. 청자는 있지만 내게 말을 걸 수는 없는 방백 같은 조건이 필요했을 뿐이지.

그러니까 나의 별 볼 일 없는 역사는 아버지의 말로부터 시작했다. 아버지의 말은 빛의 속도인 시속 10억 8,000만 킬로미터로 우주를 유영하다 나에게 다시 닿은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운명이라 부른다.

내가 아버지에게 물리학과를 지원했다고 말한 것은 통보였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일을 끝내고 남미 에콰도르로 넘어갔던 아버지에게는 한국 인천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었다. 설령 아버지가 물리학과에 가는 걸 반대한다고 해도 전화를 끊어버리면 그만이라는 걸 아버지도 알고 있을 거였다. 대신 아버지는 넌지시 물리학과에 들어가면 무엇이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와이파이 상태가 좋지 않아 끊기는 목소리를 듣다가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정말로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몰랐다. 어쩌면 블랙홀이나 시공간에 대해,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원자나 이 우주의 결말에 대해 답을 내려 역사에 이름을 깊게 남길 수도 있겠으나 이게 내가 살아가는 동안 해낼 수 있는 일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단지 아버지가 보았다는 그 사막의 밤하늘이 정말로 실체하는지, 모두가 보지 않고서 내뱉는 말은 아닌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시시한 내 대답을 듣고도 토 달지 않았다. 대신 전화를 끝내기 전에 내게 이런 제안을 했다.

수능이 끝나면 에콰도르에 너도 한 번 와보는 게 좋겠다. 여기에 적도 기념비가 있거든. 세상의 중심이라는 구나.

아버지는 마치 내 학업이나 진로보다 그 사실을 더 흥미로워하는 것 같았다. 에콰도르라는 나라 이름 자체가 에스파냐어로 ‘적도’를 뜻한다는 것을 모르시고 있는 듯했다. 알고 있어요, 라거나 못 위에 달걀은 세워 보셨어요? 라는 말 중 어떤 말을 꺼낼지 고민하다가 나는 또 시시한 답을 내놨다.

엄마 상태가 조금 좋아지면요. 그때 같이 갈게요. 시험도 끝나고….

무언가를 말하고 싶지만 선뜻 운을 떼지 못하는 머뭇거림이 느껴졌다. 나는 구태여 아버지의 말길을 열지 않았다. 침묵이 인천과 에콰도르 거리만큼 쌓이고 그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전파가 들릴 때쯤 아버지는 다음에 또 전화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나는 엄마의 상태를 상세히 묻지 않는 아버지를 야박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두 분은 밤마다 나보다 더 길고 긴말한 통화를 나누었으므로, 나와의 통화를 단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타당하지 않았다. 그것이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으려는 나의 고된 노력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음에도 애써 마주보려고 하지 않았다. 엄마의 치료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무엇보다도 내가 대학입학을 앞두고 있었으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원망할 수 없었다.

엄마는 이삼년 전부터 체기능부전증을 앓았다. 2034년에 정식으로 질병이 인정된 이 무서운 질병은 모두가 알다시피 머리카락보다 1/30만큼 작은 먼지로부터 시작되어 지구의 삶을 차츰 절망으로 바꾸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세계보건기구가 질병을 인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률 1위를 차지했다는 기사를 보았지만, 글쎄 나는 여전히 그 수치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인류가 방관하고 들이킨 그 발암물질이 결국 암, 결핵, 뇌종양, 뇌출혈, 심장병… 다양한 형태로 변이되었으니 체기능부전증이라기보다 모두가 각자의 병에 걸려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몸에 박힌 그 작은 먼지를 빼낼 수만 있다면 내가 이곳에 이렇게 있지도 않겠지. 엄마는 뇌가 말썽을 일으켰다. 노폐물이 혈관을 자주 막았다. 오래도록 피가 흐르지 못한 부분이 죽어가기 시작했지만 겉으로는 큰 증상이 없었다. 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것과 외출할 때 방독면과 수경, 모자를 쓰는 것만이 증상을 지연시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더는 집 베란다에서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볼 수 없는 시대가 이토록 빨리 도래할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자주 하늘을 바라봤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먼지로 뒤덮인 것과 달리 내 삶의 속도는 조금도 달리지지 않았다. 나는 그해 선망했던 물리학과에 무탈하게 입학 후 새롭지만 지리멸렬한 집단으로 섞여들었다. 내가 그곳에서 배운 것은 학생의 이해 따위는 바라지 않는 공식과 다른 과 친구들은 이해할 수 없는 개그, 그리고 답답할 때마다 우리는 저 발암물질과 같다는 소리를 내지르며 방독면을 벗고 운동장을 뛰는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다. 아마 지금쯤 그때 들이킨 공기가 몸속에서 재앙으로 꽈리를 틀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시간이 조금 단축되었을 뿐. 리윙은 그즈음 만났다. 홍콩에서 교환학생을 온 리윙에게 내가 던진 첫 질문은 이랬다.

모국어로 들어도 이해 못할 물리를 왜 외국어로 배우러 온 거야?

리윙은 유독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홍콩보다 한국의 하늘이 그나마 깨끗하거든.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는데, 홍콩 하늘이나 한국 하늘이나 도긴개긴이었고 극지방으로 가지 않는 이상 지구 어디에서도 맑은 하늘은 기대할 수 없었다. 리윙은 지구에 떠다니는 발암물질을 없앨 수 있는 물질이, 혹은 그 조합이 이 세상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할 것이라 믿었다. 리윙이 꽉 막힌 지구에서 먼지를 걷어낼 수 있는 구멍을 찾고 있을 때 나는 언제나 지구 밖을 떠나는 상상을 했다. 우리가 현실에 거는 기대감이 없다는 것이 공통점이 되었을 것이다.

리윙은 신장이 나보다 조금 더 작고 마른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기껏해야 평균 신장을 조금 넘은 173센티미터였다는 걸 생각하면 리윙은 전체적으로 왜소했다. 리윙은 늘 검은색 책가방을 멨고, 그 안에는 오래도록 쓴 텀블러, 에어컨을 견디기 위한 셔츠, 안경집과 휴대 산소주입기가 주인어른처럼 들어있었다. 자신의 등보다 큰 가방을 들고 다니는 리윙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따금씩 등딱지를 메고 걷는 육지거북 같기도 했다. 그 모습에서는 듬직함이라고는 절대 느낄 수 없었지만 모종의 생존력은 느껴졌다. 어디를 가든 살아남을 것 같은, 그리고 나를 위해 언제든 그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줄 것 같은.

고백은 내가 먼저 했다. 내 손을 평생 놓지 않고 항상 함께 있었으면 하고, 네 가방에 내 물건도 함께 넣어줬으면 좋겠다는 말로 말이다. 리윙은 대답대신 내 손에 들려 있던 물통을 자신의 가방에 넣고 깍지를 꼈다. 우리는 시작하는 연애에 대해 가타부타 이야기 대신 그날 들었던 수업을 나누고 끝냈다. 지금 말하면서 떠오르건대 나는 어쩌면 아버지와 반대의 누군가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침대에 모로 누워 한 자리만 차지하는 엄마의 등을 보며, 함께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엄마의 병은 그녀가 살아오며 들이마신 숨의 값이었지만 그 과정에는 필시 외로움이 끼어들었을 것이다. 물질이 몸속 곳곳에 잘 스며들어 결합할 수 있도록 외로움은 촉매 역할을 했다. 그리하여 병의 진행속도를 가속시키지 않았을까. 마흔 다섯에 혈관이 터졌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밖에 납득하지 못했다. 우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구는 그 많은 행성들 중 어쩌다 생긴 하나에 불과했고, 그 중에서도 아주 작은 행성이었으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별 상관없는 행성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존재의 이유조차 알 수 없도록 우연히 생긴 생명체였다. 사랑과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은 인간이다. 인간이 창조했으므로 인간만이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 땅을 외롭게 만든 것은 오롯이 인간의 짓이라는 걸 상기할 때마다 나는 그저 이 행성을 떠나야만 그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방언을 터트리며 집에서 쓰러진 엄마를 병원에 데려온 것은 나였다. 몸도 가누지 못하는 엄마를 차에 태워 병원까지 어떻게 운전했는지는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순간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긴박한 순간이 오면 인간이 잠재된 힘을 쏟아낼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실감했다. 자신의 증상을 스스로 설명하고 오한을 느끼는 엄마에게 내려진 첫 진단은 몸살감기였다. 엄마는 응급실에 누워 링거를 맞았고, 나는 그제야 숨을 몰아쉬며 링겔만 다 맞고 집으로 돌아가서 쉬자는 말을 웃으며 엄마에게 했지만 우리의 대화는, 그러니까 엄마가 엄마로서 나와 나눈 대화가 그것이 영영 마지막일 줄 알았더라면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혹 나를 잊게 되더라도 사랑했다는 것은 잊지 말아달라고 말이다.

엄마의 오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다시금 정신 놓기를 반복할 때쯤 의사가 나를 불러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찍은 MRI를 보여줬다. 의사의 말을 들으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의 뇌가 저렇게 시커멓게 변할 수도 있구나. 마치 우주 같다. 흑백으로 인쇄된 책 속 성운을 바라봤을 때의, 그런 우주. 엄마의 뇌에도 첫 폭발이 일어났구나, 그러니까 의사의 말은 살 수도 죽을 수도 있지만 살게 된다면 머릿속의 엔트로피가 계속 증가할 거라는 거구나.

엄마는 뇌압을 낮춰야하다는 이유로 다섯 시간 방치되었다가 세 시간 수술을 받고 살았다. 엄마의 뇌는 카오스 상태가 되었다. 후에 엄마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엄마의 인지는 고작해야 3살 정도였고 우리가 함께 했던 모든 것을 잊은 상태였다. 엄마의 뇌는, 그 이후로도 죽을 때까지 과거의 일을 기억해내지 못했고 기억을 쌓지 못했다. 현재의 행복만을 느끼는 삶.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그 순간만을 사는 삶. 엄마는 마치 신인류 같은 인간이 되었다.

엄마가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을 전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의사의 말을 그대로 전하는 것뿐이었다. 수술은 들어갔지만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는. 아버지는 바로 회사에 이 사실을 알린 후 귀국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아버지가 타고 왔을, 세상과 차단된 비행기를 떠올린다. 급하게 와야 했기에 아버지는 16시간동안 한 번의 경유를 했고, 기내 와이파이가 제공되지 않는 저가항공을 이용했다. 아버지는 경유하는 공항에 도착해 내게 전화를 걸어 엄마의 상태를 물었고, 나는 아직 수술중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아버지가 마지막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 엄마의 수술이 끝났으므로 아버지는 엄마가 살았다는 것을 한국에 도착한 후에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비행기에 있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공항에 도착할 때 어떤 마음으로 휴대폰을 켰을까. 이곳에 있다 보면 비행기에 갇혀 아내의 죽음을 상상하는 아버지를 자주 떠올린다. 물론 우주에서는 이렇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소통하는데 문제는 없지만, 사방이 막힌 방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보면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내의 아버지를 보고 있다. 의문이 생긴다.

당신은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16시간이라는 비행시간 동안 아버지의 시간은 몇 번이나 생을 넘겼을까. 혹시 시간이 멈춘 건 아닐까 자신의 손목시계를 몇 번이나 확인했을까. 지나가는 승무원을 붙잡아 도착까지 얼마나 남았느냐는 질문을 몇 번이나 했는지 따위를 말이다.

아버지의 마지막 출장은 에콰도르가 되었다. 엄마에게는 두 손과 두 발이 되어 줄 보호자가 필요했고, 아버지는 아내를 돌보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내가 껴들 수 없게 딱 잘라 말했다. 부모를 돌보는 것은 자식의 일이 아니라는, 내가 사회에서 듣고 자란 말과는 정반대의 말을 뱉으며 낮에는 간병인을 써 회사에 나갔다가 퇴근 후 병원으로 오는 생활을 반복했다. 살았다는 사실 하나로 우리는 이 절망이 금방 예전으로 회복될 줄 알았다. 하지만 중환자실에서 일주일을 버티다 나온 엄마는 저 혼자 시간을 역행해 아주 어리고 여린 아기로 회귀했다. 뇌의 이마엽 기능이 완전히 손실된 엄마는 판단, 사고, 창조, 억제, 대화 같은 모든 사고체제 기능이 망가졌으며 인지의 저화와 같은 수준으로 운동기능도 상실했다. 엄마는 신생아처럼 중환자실에 누워 잠을 잤다. 피부는 뽀얗게 변했고 미간에 잔뜩 졌던 주름도 펴졌다. 몸도 회귀하려는 움직임 같았다.

나는 그때 휴학으로 인해 반 학기가 남은 상태였지만 다시금 휴학을 연장했다. 홈페이지에서 휴학신청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담당 교수에게 따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 휴학하면 정해져 있던 항공 연구원 자리가 불투명해질 수도 있다는 말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리윙이 환경을 살리기 위해 대기 물질을 조사하는 동안 나는 끊임없이 대기가 가린 우주로 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서로 다른 꿈을 꿨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지구를 함께 살리려고 한다는 건 같잖아.

천장이 돔으로 만들어진 카페에 반쯤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리윙이 말했다. 고장 난 스크린은 자꾸 색이 튀어 저 혼자 다채로운 색을 띄고 있었다. 발아래에는 산이 있었고 머리 쪽에는 석양이 있었다. 철새인지 알 수 없는 푸른 새가 이따금씩 돔을 가로질러 규칙적으로 날아갔다. 내가 한동안 답이 없자 리윙은 여태 상실감에 빠져있는 줄 알고 심심찮은 위로를 던졌다.

기회는 또 올 거야. 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까.

나는 실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그저 웃음이 나와 웃었을 뿐이다. 어쩌면 몇 주째 네 시간 이상 잠들지 못해 그랬을 수도 있으리라. 짐작컨대 리윙은 나와의 이별을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끝내 헤어지지는 않았지만, 미쳐가는 연인을 옆에 두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 말이다. 나는 한참을 웃다, 주문한 물을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지구를 살리는 일에 별 관심 없어. 그게 우리의 유일한 다른 점이겠다.

리윙은 뒷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별다른 말없이 나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는 리윙이 기대하는 특별한 이유를 댈 수 없었다. 나는 이유 없이 계속해서 우주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우주로, 지구 밖으로 나가고 싶었고 설령 그 이유가 외계생명과의 조우라거나 테라포밍을 위한 일이라도 상관없었다. 대신 나는 시시한 이야기를 조금 꺼냈다.

옛날에는 아버지가 해외에 나가기 싫은데 억지로 나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요즘은 아닌 것 같아. 요즘에는 그 반대 같아. 나가고 싶은데 한국에 묶여 있어야 하는…. 욕망들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동시에 끌어안을 수 없고, 그래서 그 틈으로 외로움이 쌓이는 거 같아.

아버지는 객지에서의 이야기를 더는 꺼내지 않았다. 그런 대화를 나눌 상황이 되지 못해서 그러리라. 내가 뱉고도 괜한 말을 한 것 같아 방금 한 말을 취소하겠다고 뒤늦게야 수습했지만 리윙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네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데.

무슨 말인데?

‘모든 걸 다 모르는 척 하고 싶지만 차마 눈을 감을 수 없는’그런 거잖아. 이를테면 네가 지금 눈을 뜨고 기회를 떠나보내는 것 같은.

…….

그렇다면 네 간격에도 외로움이 생겼겠네.

리윙은 나를 가만 끌어안았다. 리윙은 그때 내 표정이 얼마나 얼떨떨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표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리윙이 놓을 때까지 안겨 있던 나였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외롭구나. 외로움을 이겨낼 수 없을 때 사람이 덤덤해지는 구나.

그 시기에 리윙과는 자주 만나지 못했다. 리윙이 바빴던 것은 물론이고 나 역시도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동시에 병행하고 있어 하루가 짧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도 쓰러져 내가 가장이 되는 꿈을 자주 꾸었고 통장에 일정 이하로 금액이 떨어지면 미친 듯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퇴직한 것은 아니므로 1년 동안 수술비와 병원비를 지불하고도 집의 재정이 크게 기울지는 않았으나 마음의 여유는 완전히 소멸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아버지와는 그때 가장 많이 싸웠다. 어리광이 심해진 엄마는 성인의 괴력으로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때리고, 꼬집었으므로 타인이 엄마를 감당하기란 쉽지 않았다. 일주일 단위로 간병인이 바뀌었고 어떤 간병인은 통보도 없이 도망을 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도 급하게 병원을 가야하는 일이 생겼다. 그럴수록 보이지 않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숨통이 조여오고 답답함이 심해졌다. 호흡기를 달고 숨을 크게 들이마셔도 숨을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스트레스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었고 아주 작은 다툼에도 쉽게 눈물을 보이며 화를 냈다. 그 대상은 대부분이 아버지였다.

말해놓고 나니 ‘싸웠다’는 표현보다 일방적으로 화풀이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야 그때의 나를 책망하고 싶지는 않다. 당시의 나는 고작해야 스물세 살이었고 곁에 있던 사람이 죽음과도 같은 시간을 견뎌냈던 것은 버거웠으며 더욱이 그 사람 인생의 무게를 짊어지기에는 너무 작았다. 살이 8킬로그램이나 빠졌으니 물리적으로 작았음을 뜻한다. 지금의 나도 감당할 수 없으리라.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는 폭력적인 엄마를 돌보는 일을. 단지 당시의 내가 거부했던, 엄마가 죽지 않고 살았으므로 뒤따라 온 모든 고통을 힘들다고 투정부리는 것이 사치와 불효처럼 느껴졌던 그 마음을, 이제는 인정할 수 있다. 나는 그때 힘들었다. 고통스러웠다. 다시는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할 까봐 두려웠다.

엄마가 서울 순천향병원에 있는 동안 회사가 을지로에 있었던 아버지는 점심시간에도 엄마를 찾아왔다. 이미 내 세상이 피폐하고 좁아, 나는 아버지의 삶이 어떤지 일부러 짐작하지 않았다. 하지만 외면해도 맞닥뜨리게 되는 순간은 오기 마련이었는데, 내가 아버지의 차에서 수첩을 발견한 순간이 그때였다. 아버지는 아직 내가 당신의 수첩을 봤다는 것을 모른다.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되겠지. 어쩌면 아버지도 잊었을 지도 모른다. 이십 년 전의 수첩이었으니 말이다.

잠시 눈을 붙이려고 앉은 운전석에서 까맣고 작은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엄마가 쓰러진 지 4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그 수첩에는 도로를 설계하는 아버지의 직업처럼 정갈하고 세밀하게 엄마의 병명과 증상이 쓰여 있었다. 아침, 저녁으로 의사를 만나 들었던 모든 내용이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먹고 있는 약의 성분, 그날 맞은 주사의 종류, 운동치료의 종류와 효과까지 전부 다. 거기에 아버지의 감상은 생략되어 있었으나 ‘기억하지 못함’이라거나 ‘자주 움’이라는 기록에는 밑줄을 긋거나 동그라미를 쳐두었다. 떨림이 많은 선. 아주 느리게 왕복한 선들이 고독하게 누워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수첩을 바라보다 떨림이 그대로 기록된 선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내면의 흔적이었다.

아버지가 다시 사막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엄마의 폭력성이 조금 잠재워지고 모든 말에 ‘그래?’‘왜?’‘몰라’같은 대답을 하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앞에 앉은 남자가 자신과 인연이 깊다는 것과 내가 딸이라는 것쯤은 아는 모양이었다. 나는 복학 후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항공 연구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영어 점수를 따고 있었다. 새벽 일찍부터 나가 학원에서 온종일 박혀 있다가 밤이 되면 병원에 얼굴을 비추는 정도였다. 스물여섯이었으니 그리 늦은 나이도 아니었으나 마음의 조급함을 달래는 길이 그런 식으로 나를 혹독하게 만드는 방법뿐이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나를 위해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을 행복으로 느낀 때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병원에 머무는 시간이 예전보다 줄었고 내가 병실에 도착하면 늘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은 엄마와 마주보고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서로 말을 주고받는다기보다 화자와 청자가 완벽하게 구분된 대화였다. 아버지는 그때부터 자신이 해외에 있는 동안 겪었던 일들을 공동의 추억으로 탈바꿈해 꺼내놓았다. 연애시절의 이야기와 결혼 초반의 이야기는 이미 다 소진한 후였다. 아버지는 에콰도르의 태평양에서 보았던 고래 떼와 멕시코 수미데르 계곡에서 본 쌍무지개, 사우디아라비 헤자즈 산맥을 따라 북동 방향으로 이동하다 만난 네지드 고원 따위를 이야기했다.

그때 네가 거기서 넘어지는 바람에 내가 업어줬잖아. 그거 기억 안나?

아버지가 시치미 떼고 가짜 추억을 만들어 물으면, 엄마는 도통 생각나지 않는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다 끝내 그랬지, 하고 대답했다.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는 남자가 안쓰러워 내뱉은 반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따금씩 엄마는 ‘그래, 기억나.’하고 말할 때마다 정말로 그때를 회상하는 것 같은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개중에서도 엄마가 가장 큰 반응을 보이는 이야기는 사막에 관한 추억이었다.

사막 투어를 했던 날 있잖아, 당신이랑 나랑.

사막?

응, 사막. 온통 모래뿐인 곳. 우리 다녀왔잖아.

응. 그렇지.

거기서 은하수도 봤고. 땅까지 별이 닿아 있었잖아.

별?

응, 우주에서 보내는 빛. 그게 밤하늘에 빼곡하게 박혀 있었어. 은하수도 있었고. 우리 같이 누워서 하염없이 밤하늘만 바라보면서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랐어.

…….

기억 안나?

나.

그렇지? 우리 거기 다시 가기로 했잖아. 그것도 기억 나?

나.

당신 퇴원하면 가자.

실제로 두 분이서 그곳에 다시 가자는 약속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와 새끼손가락을 걸었고, 그럴 때면 아버지가 만든 가짜추억이 진짜가 되는 듯했다. 적어도 엄마에게는.

그로부터 10년 후, 사막에 간 사람은 나였다.

항공 훈련 중 한 단계였다. 서 있기도 힘든 모래폭풍과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가혹한 훈련이었다. 가압 방수복을 입고 있어 움직임도 자유롭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서 파트너였던 산드라와 일주일을 버텼다. 행성에 처음 도착한 최초의 인류처럼, 혹은 태초의 원시 인류처럼 황무지인 사막에서 불을 피웠고, 불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살아남기 위해 식량을 아꼈으며 모래로부터 서로를 잃지 않기 위해 부둥켜안았다. 일주일 중 몇 시간은 바람이 멎기도 했다. 하지만 별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은 그대로였다. 무엇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실망감을 느꼈다. 아버지가 내게 말했던 사막과 지금의 사막은 너무나도 달랐다. 포악하고 불친절했다. 소중하게 아꼈던 무언가를 잃은 것처럼 화나 있었다.

일주일의 훈련을 마치고 인근의 마을로 도착했다. 그곳에서 다른 팀과 합류해야 했다. 카림은 그 마을에서 50년을 산 토박이로, 수작업으로 마스크를 세척하며 간간히 숙박을 받는다고 말했다.

원래는 숙박업소가 대대로 내려오던 가업이었어요. 그런데 사막을 찾는 이들이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일을 병행해야 했죠.

카림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대변하듯 거실 한 벽면에는 아주 오래전에 이곳에 머물렀다 간 사람들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2012년부터 이어져오던 사진은 2027년에서 끊겼다. 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왔을 때가 2028년이었다. 나는 사진을 멀끔히 바라보다 카림에게 물었다.

이곳에 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뭘 관광했어요?

사막이죠. 다른 지역은 모르겠지만 여기에는 사막뿐인걸요.

그럼 이 사람들도 사막체험을 했겠네요.

카림은 내 말을 듣더니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언제 적 사막투어인데요. 그중에 절반은 그저 겉에서 사막을 보러 온 거죠. 태초의 황망함을 느끼고 싶은 인간들이거나.

나는 그제야 사진을 다시 둘러보았다. 2022년까지는 사막 가운데서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전부 이 집 앞에서 헤어지기 전에 찍은 듯한 사진들이었다.

이 이후로는 사막투어가 사라졌나요?

사라졌어요. 그날 이후로는 아무도 못 들어갔어요.

혹시 여기 말고 다른 곳은…

다른 곳도 마찬 가지죠. 생계였으니 우리도 누구보다 아쉽지만 어쩌겠어요. 사막이 인간을 허락하지 않는데. 자연을 거스르면 안 돼요. 그 결과는 죽음뿐이니까요.

카림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라 자체에서 사막체험을 금지시켰다는 것을 뒤늦게 도착한 동료를 통해 들었다. 기후변화로 인해 모래폭풍이 거세다는 안전상의 문제와 밤하늘이 보이지 않는다는 관광목적상실의 이유로 사막체험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사설 여행사도 사막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카림은 나와 헤어질 즈음 나에게 집 뒤에 있던 지하 도로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버지가 이 근처에서 일을 한 적 있다는 내 말을 듣고서 내내 생각한 모양이었다.

저 도로를 만들 즈음이 모래폭풍이 가장 심했어요. 그때 한국에서도 사람이 왔었는데 일할 때 빼고는 내내 숙소에만 있어야 했어요. 사막은 어림도 없었어요. 가끔씩 일하는 사람들이 이 마을까지 내려와 우리와 같이 술을 마시기는 했어요. 심심하니까요. 그럴 때면 사막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눴죠. 사막에 대한 아름다움이나 밤하늘 따위를요. 물론 그 중에서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렇지만 그냥 말하는 거예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곳은 너무 무섭고 팍팍하니까요. 멀리 타국까지 날아와 일하는 사람들은 그게 더 심하겠죠. 아름다움을 꿈꾸면서 사막으로 외로움을 던지는 거죠.

당신도 사막의 밤하늘을 본 적 없나요?

없죠. 저도 아버지한테 들었어요. 아버지는 또 할아버지한테 들었고…. 사막의 밤하늘은 그 어느 곳보다 위대하다는 걸요. 지평선에 별이 걸려 있다니까요.


우리는 오래도록 우주 어딘가에 있을 우리와 같은 지적 생명체에게 신호를 보내왔다. 그리고 이십년 전 1229b 행성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행성으로부터 답을 얻었다. 추측하기로 그들은 우리보다 문명과 과학기술의 속도가 100년 정도 늦을 것이다. 우주와 외계존재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질문을 쏟아낸 것으로 예상할 수 있었다. 그곳의 대기와 물, 중력, 기압… 모든 것이 지구와 흡사하다. 적어도 그들은 우리와 같거나 우리와 비슷한 모습이리라. 다른 점이 있다면 아직 그곳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맑은 공기가 있다는 것.  

나도 아버지를 닮았나보다. 리윙에게 평생 옆에 있어달라고 부탁했건만 결국 떠나는 것은 나였다. 리윙은 아주 긴 항해에 선발되었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 축하와 동시에 ‘우리가 이혼하는 것은 아니지?’라고 물었다. 살아 돌아온다면, 그리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네가 살아있다면 결혼은 계속 유지된다는 대답을 했다.

나는 여전히 내가 이토록 우주를 갈망하는 정확한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다. 나는 운이 좋게 호프호에 승선한 선원일 뿐, 인류를 위해 위대한 업적을 남길 위인이 아니다. 하지만 가끔 아버지가 말했던 사막의 밤하늘이 딱 그날 하루, 아주 운 좋게 뜨지 않았을까하는 상상을 했고, 정말로 우주의 누군가가 아버지에게 속삭인 것은 아닐까 오래도록 고민했다. 우리를 우주로 보내기 위해서. 어쩌면 지금 우리가 그들에게 보낸 신호가 차원을 돌다 다시 지구에 닿았던 것은 아닐까.

리윙은 떠나기 전 아직도 지구를 살리는 일에는 관심이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키스를 남겼지만, 이곳에서 솔직히 말해보자면 여전히 지구를 살리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나에게는 그저 꿈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있을 뿐.

아버지는 도로가 없는 우주를 어떻게 달리느냐고 물었다. 정말로 궁금해 물은 것은 아니리라. 영원히 젊을 것 같은 아버지는 어느새 머리가 전부 새하얗게 샜고 얼굴에 겹버선이 가득해졌다.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아요. 바다에도 도로는 없지만 배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잖아요.

그렇구나. 평생 열심히 땅에 도로를 깔았더니 내 딸은 도로가 없는 길을 가네. 이럴 줄 알았으면 우주에 도로를 깔았어야 했어.

아버지는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는 곧 머뭇거리는 내 속마음을 꿰뚫어보고는 말했다.

엄마는 걱정마라. 이 아빠가 있잖니. 아빠도 이제 엄마 보는 건 익숙해서 아무 문제없거든. 자식은 부모 걱정하는 거 아니다.

나는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느 곳이든 네가 나아가는 곳이 길이고, 길은 늘 외롭단다. 머물지 않고 떠나니까. 적당히 외로움을 길 밖으로 내던지며 나아가야 한다. 외로움이 적재되면 도로도 쉽게 무너지니까. 알겠니?

나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 아버지에게 카림에게 들었던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설령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거짓말했더라도, 내 출발지가 그곳이었음은 변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보지 않은 것은 쓸 수 없다고 말했지만 결국 보지 않은 우주를 꿈꿨다. 나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을 향해 가고 있고, 긴 주행을 마친 아버지는 현재만이 존재하는 세계에 정착했다.

우리가 갈 수 있도록 그 행성에게 텔레포트 설계도를 보냈고,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 끝에야 그 행성에서 우리의 숙제를 완수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지구가 잃은 공기를 다시 찾기 위해 노력하겠지. 내 메시지가 닿는 속도만큼 나는 그 행성으로 나아갈 것이다. 침전되지 않도록 우주 밖으로 외로움을 내던지면서. 그곳에 아직 별이 뜬 사막이 있을까.

당신은 여전히 사막을 꿈꿀까.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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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길윤 19.11.20 02:33 댓글

    재밌게 잘 봤습니다. 이 글을 보니 괜히 혼자서 여행을 떠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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