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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울 20주년 기념 칼럼  ------    

거울 리뷰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본 환상문학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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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 환상문학의 의미
  • 환상문학의 역사 기원편
  • 환상문학의 역사 분화편
  • 환상문학의 역사 한국편
  • 글을 마치며

거울은 환상문학 웹진이다. 2003년 창간할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환상문학 웹진 거울〉이라는 제목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많은 필진이 스스로 환상문학이라 생각하는 글을 썼고 독자들 역시 큰 이의제기 없이 그렇게 읽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거울이 추구하는 환상문학의 의미는 무엇이며 범위는 어디까지를 가리키는 걸까? 환상문학은 어떻게 생겨나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까? 태어난 아이가 성인이 되는 20년. 한 인간이 세상에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흘렀다. 마침 20주년을 맞은 지금이 이런 의문의 답을 찾아보기에 적절한 때가 아닐까. 그래서 거울 리뷰에서 다룬 작품을 예시로 들면서 간단하게 환상문학의 의미와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다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전망하는 일은 내 깜냥으로 엄두도 낼 수 없기에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는 얄팍한 변명으로 은근슬쩍 넘어가겠다.

또한 이 글은 논문도 아니고 학술연구 목적도 아니며, 따라서 깊고 치밀하게 조사하고 연구한 결과물이 아니라는 면피용 전제도 미리 깔아두겠다. 연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내용은 필자의 기억에 의지해 썼으므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잘못된 내용은 인터넷 게시물 특성상 쥐도 새도 모르게 수정될 수 있으니 양해 바란다.

그러니 괜히 심각하게 읽을 필요없고, 거울 독자이거나 독자가 될 사람의 흥미를 돋워주기 위한 전채(前菜) 정도로 여겨주면 고맙겠다. 우리가 즐겨야 할 진짜 식사는 바로 거울에 실린 소설이니까.

기본적으로는 거울 리뷰에 다룬 작품을 예로 들겠지만 예외로 장르소설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거나 꼭 참고해야 할 가치가 있는 작품 몇몇만 추가했다. 〈이달의 거울 픽〉 코너에 소개한 도서는 너무 많아서 목록을 정리할 엄두도 내지 못했기에 생략했다. 마지막으로 소개한 작품 중 2023년 현재 품절, 절판된 도서가 있는 점 사과드린다.


환상문학의 의미

 

거울이 말하는 환상문학의 범위는 매우 넓다. 웹진의 FAQ란에는 ‘SF, 판타지, 호러 등을 아우르는 장르소설 전반을 가리킨다’고 적혀 있다. 거울을 창간했고 초대 편집장(당시 호칭은 편집부장)을 맡은 박애진(대표작 『지우전』, 『부엉이 소녀 욜란드』, 『각인』 등)창간사에서 환상문학을 판타지(당시 표기는 ‘환타지 소설’)와 사실상 동의어로 쓰면서 환상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기에 웹진의 이름을 거울로 지었다고 밝혔다. 또한 환상문학의 정의를 자문하며 ‘그 기준은 작가에게 맡긴다, 이견이 있겠지만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자답해 웹진이 직접 정의나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여기서 환상문학과 판타지 소설이 정말 같은 개념이 맞는지, 다르다면 무슨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장르소설에 관심이 많거나 관련 전공자가 아니라면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독서대중이 볼 때 판타지는 SF, 호러 등 이웃 장르들과 유사한 점도 많지만 차이 역시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거울이 20주년을 맞이했어도 환상문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아직 ‘메이저’한 개념은 아니다. DBpia에서 ‘환상문학’을 검색하면 2천 건 이상 나오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학술용어로만 쓰이지 평범한 대중이 언급하는 낱말은 아니다(참고로 단순 검색시 2천 건이고 키워드로 검색하면 200건도 안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환상문학은 환상적인 요소가 들어간 문학, 즉 사실주의 문학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문학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전체 문학 중에서 따지면 환상문학의 비중이 더 클지도 모른다. 웹진 거울이 사실상 소설만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문학의 정의가 ‘언어로 표현한 예술’이니까 시, 수필, 시나리오 등 더 넓은 범위에서 따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거울이 추구하는 환상문학은 그보다 조금 더 좁다. 현대의 장르소설에 더 가까운 개념으로,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소재·설정·인물·사건을 그리는 소설을 뜻한다고 보면 틀리지 않다. 그 안에서 추구하는 목적이나 표현 양식이나 선택한 소재에 따라 판타지, 호러, SF, 무협, 로맨스 판타지, 이세계물, 비일상계 라이트노벨 등 현대 장르소설의 다양한 장르로 구분된다.

여기서 말하는 환상이란 사전적 의미인 머릿속의 상상, 공상, 망상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실체를 가지고 소설 속에 구현된 초자연, 초현실, 비현실, 비일상의 존재 혹은 사건을 뜻한다. 초자연, 초현실, 비현실, 비일상은 각각 나름의 의미가 있어 조금씩 차이가 있으면서도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기에 전공자가 학술 목적으로 구분하지 않는 이상 아무거나 써도 상관없는 개념이기는 하다. 다만 비일상의 경우는 앞의 세 개보다 좀 더 좁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주로 라이트노벨을 중심으로 한 서브컬처 쪽에서 평범하게 살던 주인공 주위에 비현실적인 인물이나 사건이 발생하는 이야기를 ‘비일상물’이라 부른다.

이런 환상의 의미와 용례는 거울 리뷰에서 다루지 않은 책이지만 『환상문학 서설』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으니 관심있는 사람은 읽어보기를 바란다. 오랫동안 절판되었다가 2022년에 재간된 반가운 책이다. 비록 오래 전(1976년) 작품이고 다루고 있는 작가와 작품은 더 오래된 것들뿐이지만 이론적, 학술적으로 환상문학을 다룬 최초이자 가장 유명한 저작이다.

여기서 잠깐 환상문학이 비현실적인 소재를 다루는 문학이라고 설명하면 독자들이 가장 많이 헛갈릴 수 있을 의문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가령 ‘키 크고 잘 생기고 능력 있는데 마음까지 착한 재벌 후계자 남자 주인공이 있을 리가 없어, 비현실적이야’라는 말은 흔히 하지만, 그렇다고 로맨스 소설을 환상문학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로판은 배경이나 소재에 판타지 요소가 있기 때문에 판타지로 분류되는 것이지, 등장인물이 너무 예쁘거나 너무 착하다는 이유로 분류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비현실(unreal)’은 환상문학에서 말하는 ‘초현실(surreal)’과 다르다. 사실 미술용어에서 따온 구분인데, 마술적 사실주의(매직 리얼리즘)가 그렇듯 환상문학 이론에서 미술 등 인접 장르의 용어를 많이 따오긴 했다. 『환상문학 서설』에서는 이를 ‘있음직한 것’과 ‘환상적인 것’으로 구분하는데, 즉 완벽한 남자친구는 있음직한 것이지만 불을 뿜는 드래곤은 환상적인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존재할 가능성이 적지만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것의 차이라고 할까?

외계인의 경우는 쉽게 존재 여부를 판단할 수 없긴 하지만, 인류의 현재 지식과 능력을 감안하여 초현실의 범주에 들어간다. 손바닥 안의 고성능 컴퓨터나 전세계를 강타한 전염병 같이 많은 초현실적인 줄 알았던 소재가 현실로 구현되어 이를 다룬 소설이 환상문학이 아니게 된 사례를 보면 앞으로도 변화될 여지는 충분히 있다.

거울 필진들은 대부분 있음직한 것보다는 환상적인 것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소설을 써 왔다. 이를 염두에 두고 거울에 실린 소설을 읽어보면 거울이 말하는 환상문학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환상문학의 역사 기원편

 

환상문학의 역사는 모든 소설의 역사와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 즉, 소설이라는 근대적인 개념이 발명되기 이전의 민담, 동화, 신화, 전설에서 시작하여 서사시, 로망스, 희곡을 거쳐서 지금까지 내려온다.

그런데 이렇게 설명하면 너무 범위가 넓어진다. 가령 그리스 로마 신화가 끼친 영향은 문학만이 아니라 미술, 조각, 건축, 음악, 연극, 영화, 게임, 패션 등 인류의 모든 문화예술 전반에 이른다. 영어권에서 태양계 행성의 이름을 뭐라고 붙였는지 생각하면 예술을 벗어나 인류 문명 전체에 영향을 끼친 게 사실이다.

신화를 판타지 소설의 조상이라고 해버리면 마치 현생 인류의 조상이 미토콘드리아 이브니까 인류 모두 한가족이라고 말하는 거나 다를 바 없어진다.

그래서 영어판 위키백과에도 판타지를 포함한 소설 전체의 기원을 중세유럽의 기사도 로망스로 본다. 현재 소설로 번역되는 영단어 novel 자체가 ‘새로운 것’이라는 뜻인 이태리어 novella에서 왔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듯, 소설은 발명된 근대의 산물이다(엄밀히 말해 novel은 장편소설이고 중편과 단편은 novella, short story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현대 한국의 출판 및 소설도 마찬가지지만 장르소설 자체가 외국에서 전래되었기에 환상문학의 역사 역시 외국을 기준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데, 소설의 탄생 및 융성은 인쇄기술의 발전 및 보급과 함께 짝을 이룬다. 육체와 정신의 관계처럼 예술의 형식과 내용은 분리될 수가 없다. 컴퓨터가 발명되고 보급된 이후 기존 예술의 표현 방법이 바뀌거나 비디오 아트, 비디오 게임 같은 새로운 예술 장르가 생겨난 것과 마찬가지로 문학 역시 컴퓨터, 인터넷, 디지털 오프셋 인쇄술의 보급은 활판 인쇄술에 비견되는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PC 통신, 인터넷 게시판, 웹소설 플랫폼 등 형식이 바뀌면서 그에 걸맞은 소설 장르가 계속 바뀌거나 생기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거울이 웹진이라는 형식을 통해 생겨나 자생한 것 역시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현대의 장르소설은 컴퓨터, 고속통신망, 모바일 등의 매체 변화로 인해 게시판 연재, 전자책, 모바일 조판과 같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이어져 왔다.

앞으로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가상현실 메타버스 세상에서 독서를 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초현실이 아니라 비현실의 영역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새로운 기술과 환경에 따라 미래의 문학 역시 변모할 가능성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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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의 변화에 따른 문학의 변화도 있을 듯(다음은 생각만 하면 써지는 기계 부탁해요)

 

다시 돌아와서, 로망스와 민담(요정 이야기 fairy tale)에서 근대적 의미의 소설로 이어지면서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을 그린 사실주의 문학과 실제로 일어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일을 그린 환상문학이 비로소 갈라지기 시작한다.

소설이 명확하게 자리잡기 전까지 현실과 환상은 칼로 두부 자르듯 나눌 수 없었다. 왜냐하면 계몽주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 사람은 현실과 환상을 굳이 판별하고 구분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지했기 때문도 있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령 옛날 유럽 사람들은 번개가 하늘에 사는 신이 내리는 벌이라고 여겼다. 중세시대 때는 세상 모든 일을 기독교의 교리에 따라 생각하고 판단했다. 현실과 환상을 명료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근대 문명과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일어난 ‘최근의’ 사례이다. 인류의 역사를 아주 짧게 잡아서 기원전 4천 년부터라고 치면 6천 년 정도 되는데 그중 르네상스는 14세기,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이 15세기 중반에 발명, 종교개혁이 16세기고 계몽주의는 빨라도 17세기 일이다.

그러니까 대중(여기서는 어쩔 수 없이 유럽 대중을 가리킨다)이 인쇄술 덕분에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접하며 전반적으로 계몽된 시기는 17세기 이후로 봐야 하지 않을까. 6천 년 역사 중에 10%도 안 되니 최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

사실 지금도 지구평평설, 사이비종교 등 거짓된 ‘환상’이 판치고 있는 것만 봐도 인류가 현실과 환상을 완전히 구분했다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다. 또한 신, 사후세계, 외계인, 우주와 시공간의 정체 등 아직 인간의 능력으로 다 알아내지 못하는 것도 많다.

따라서 무엇이 환상이고 환상이 아닌지 전부 완벽하게 알아낼 능력이 아직 우리 인류에게 없으며, 이는 인류가 상상력을 증진시켜 무지와 신비를 보완하는 이유가 된다. 인간에게 상상하고 창작하는 능력이 있는 한 환상은 지금껏 그랬듯 앞으로도 인간의 특별한 능력이자 성과로 남을 것이다. 환상문학은 이를 가장 쉽고 간단하지만 확실하고 인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자 성과이다.

이로써 환상문학이 인간이 만든 최고의 예술작품이라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역시 환상문학 웹진의 찬양문이라는 본래 목적에 적합한 결말이다.

 

돌아와서 환상문학의 선조인 신화부터 다시 시작하자. 비록 앞에서는 부정적으로 말했지만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다른 문화예술과 달리) 신화와 전설에서 판타지로 직접적으로 이어진 요소가 있다.

가령 『길가메쉬 서사시』, 『베오울프』 같은 이야기는 영웅들의 모험담을 그리고 있어 곧 에픽 판타지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신화에 대해 알고 싶다면 『신화의 힘』,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신화의 역사』 같은 해설서가 도움이 된다.

이후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중세 유럽으로 가는데, 영문학의 대표작 『캔터베리 이야기』를 언급하고 넘어가자. 18세기에 이르면 유럽의 낭만주의가 대두하였고 대표작인 노발리스의 『푸른 꽃』을 보면 알 수 있듯 낭만주의 문학작품의 다수는 환상문학의 요소를 띠고 있다. 『사랑에 빠진 악마』는 『환상문학 서설』에서 환상문학의 대표로 주요하게 언급하는 작품이다.

이후에야 낭만주의에 반발하여 사실주의, 자연주의 작품이 등장했으니 문학 전체의 역사를 보면 환상문학이 훨씬 오래 된 조상이라는 얘기다. 앞에서 언급했듯 고대에서 중세 시기는 현실과 환상을 엄밀히 구분하지 못했기에 그 시기의 문학은 모두 환상문학이 될 수밖에 없다.

이어서 18세기 영국에서는 장르소설의 조상이자 호러 장르의 부모에 해당하는 고딕소설이 등장한다. 거울 리뷰에 없지만 『오트란토 성』이 고딕 소설의 창시자로 여겨지고, 거울 리뷰에 소개한 『몽크』가 고딕 소설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이후 에드거 앨런 포, 브램 스토커, H.P. 러브크래프트,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로버트 블록, 리처드 매시슨, 스티븐 킹, 클라이브 바커 등의 대표 작가로 이어지는 호러 소설의 계보가 이루어진다. 호러 장르의 특징이라면 영화(오랫동안 B급으로 취급받으며 주류에서 밀려났던)의 영향력이 매우 크며 좀비, 흡혈귀, 초자연적 살인마 등 많은 설정이 영화를 통해 정립되어 소설에도 쓰이게 되었음을 언급해둔다.

판타지로 돌아와서 빅토리아 시대에 이르면 톨킨 이전, 현대적인 의미의 장르 판타지를 만들어낸 중요한 작가들이 나타난다. 필자가 근대 판타지의 빅3라고 이름 지은 로드 던세이니, 조지 맥도널드, 윌리엄 모리스가 그들인데 여기에 이디스 네스빗을 추가해도 좋다. 다만 네스빗은 창작 동화 쪽이므로 직계 조상이라기보다 안데르센과 함께 환상문학에 영향을 끼친 작가로 분류하는 게 맞다.

북풍의 등에서』를 비롯한 조지 맥도널드와 윌리엄 모리스의 작품 다수는 동화로 쓰였으나 신앙심, 죽음, 속죄 같이 무거운 철학적 테마를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톨스토이의 단편소설과 유사한 점이 있다.

페가나의 신들』을 위시한 로드 던세이니의 글은 동화도 아니고 창작 신화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작품이 대다수인데 바로 현대적 의미의 판타지로 가는 가교에 해당한다.

사실 로드 던세이니는 다른 둘보다 조금 뒷세대의 작가로, 마찬가지로 현대 장르소설의 원조 맛집 할머니(할아버지지만wink) 에드거 앨런 포, 『동굴의 여왕』 등을 쓴 헨리 라이더 해거드, 『화성의 공주』 등을 쓴 에드거 라이스 버로우즈와 겹치는 시기에 활동했다. 이보다는 다음 세대지만 역시 생애가 약간 겹치는 H.P. 러브크래프트(1919년 미국에서 개최한 던세이니의 강연에 참석해 만난 적이 있다)에 이르면 비로소 현대 장르소설에 이르는 다리를 완전히 건넜다는 느낌이 든다.

그밖에 이 시기의 대표 작품으로 『세계의 환상 소설』, 『독일 환상 문학선』, 제목은 별로지만 내용은 좋은 『톨킨의 환상 서가』를 들 수 있다. 보르헤스가 편집한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에도 고전 환상소설이 상당수 있다.

이후 마침내 20세기, 현대 판타지의 빅3라 불러도 좋은 세 작가로 이어진다. 에픽 판타지를 정립한 J.R.R. 톨킨, 히로익 판타지를 유행시킨 로버트 E. 하워드, 창작 신화와 호러 분야의 거두가 된 H.P. 러브크래프트. 이들로부터 우리가 흔히 말하는 판타지 장르가 확립되어 지금까지 이어진다.


환상문학의 역사 분화편

 

20세기, 인류의 역사에서 발견과 발명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시기. 문학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SF와 미스터리라는 두 개의 거대한 문학장르가 발명이라는 말에 가깝게 탄생된다.

양쪽 다 에드거 앨런 포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이루어졌다(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포는 현대 호러 장르의 시초이기도 하다). SF는 휴고 건즈백이 1926년 잡지 〈어메이징 스토리즈〉를 창간하며 그 의미를 분명하게 밝혔는데, 하나의 예술 사조를 한 개인이 이토록 명확하게 시기와 정의를 드러내며 시작한 경우는 찾기 드물다. 물론 당연히 SF의 역사는 자연과 우주의 신비를 다룬 신화부터 비롯되어 수많은 시조와 선행 작품이 있었지만, 현대적 의미의 SF는 건즈백이 〈어메이징 스토리즈〉 창간사에서 정의를 내리며 시작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근대 SF의 빅3라 할 수 있는 ‘쥘 베른, H.G. 웰스, 에드거 앨런 포가 쓴 것과 같이 과학적 사실과 예언적 전망이 합쳐진 매력적인 이야기’가 SF라고 밝혔다.

이후 SF의 역사를 다룬 이론서, 개론서는 이미 많이 출간되어 있으므로 생략한다. 이상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고 수요가 있으니까 그렇겠지만, 현재 우리나라에는 장르소설 중에서 SF의 역사를 다룬 책이 상대적으로 많이 출간되었다. 미스터리 쪽도 있긴 한데 의외로 판타지의 역사를 다룬 책은 적은 편이다. 대신 판타지 관련 서적은 신화, 무기와 갑옷, 환상동물 등 세계관 및 설정을 설명하는 도서 쪽이 많다. 수요에 따른 공급이니까 이런 결과가 나온 듯하다.

 

한편으로 장르소설이 분화와 융성을 거듭함과 동시에 장르소설, 특히 판타지 장르의 역사를 이루는 중심축이 유럽에서 영국(영국은 유럽이 아니니까?!)을 거쳐 완전히 미국으로 옮겨졌고, 이러한 추세에는 펄프잡지의 역할이 컸다. 또한 D&D를 필두로 한 TRPG의 영향도 무시하면 안 된다. TRPG 룰북의 영향을 받거나 참조하여 쓰거나 리플레이를 소설화하는 경우는 무수히 많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거울에는 그중 겁스(GURPS) 리뷰가 꽤 있으니 참조 바란다.

이렇게 각각 분화되어 성장하던 판타지, 호러, SF는 대략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점점 뒤섞이는 혼재와 확산기를 맞게 된다. 이제 2000년대 이후 작품은 하나의 장르로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작가들 또한 이 장르에 속하여 이 장르의 글만 쓴다는 정체성이 점점 옅어지며 표현의 수단으로 다양한 장르의 소재나 클리셰를 갖다 쓰는 일이 잦아졌고, 순문학 혹은 문단문학이라 불리는 범주 안에서도 이런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 시발점까지는 아니지만 대표적인 사례로 마거릿 애트우드가 장르라는 의식 없이 쓴 『시녀 이야기』는 장르문학상에 속하는 아서 C. 클라크상을 받았고 네뷸러상 후보로 올랐다. 당시에는 떨떠름했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드라마 덕에 책도 많이 팔려서 속편도 쓰고 유순해지셨다(금융치료의 효과인가?cheeky).

그밖에 거울에서 다룬 판타지 소설로 〈디스크월드 시리즈〉, 『조나단 스트레인지와 마법사 노렐』, 『원더 월드』, 『2004 세계 환상 문학 걸작 단편선』, 〈얼음과 불의 노래〉가 있고 SF로는 〈SF 명예의 전당〉, 『타이거! 타이거!』, 『스타십 트루퍼스』, 『낯선 땅 이방인』, 『아서 클라크 단편전집』, 〈견인 도시 연대기〉가 있다. 호러로는 〈뱀파이어 연대기〉, 『크라바트』 등이 있다. 더해서 장르소설을 넘어 영문학계에서도 현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내세우는 스티븐 킹의 『스탠드』도 넘어갈 수 없다.

영미권 이외의 주요 작품으로 『공포의 헬멧』, 『퀀텀 패밀리즈』, 『카자르 사전』, 『고독 깊은 곳』,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같은 작품들을 거울에서 소개했으니 흥미가 생기면 읽어보기를 권한다.


환상문학의 역사 한국편

 

그런데 여기까지 읽은 독자의 불만이 갓 구운 빵처럼 부풀어 있을 것 같다. 당연히 이해가 간다. 한국 독자에게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옛날옛적 장르소설의 역사를 말해본들 관련 전공자가 아닌 이상 흥미로울 리가 없지 않을까?

사실 아시아로 눈을 돌리면 중국의 『서유기』, 『봉신연의』, 『수호전』, 『요재지이』도 엄연히 환상소설의 조상이고 무협소설의 계보도 울창한 숲을 이뤘으며 일본도 전기/신전기, 체포록(捕物帳), J-호러 등 독자적인 역사와 개성을 갖고 있지만 필자의 좁은 식견으로 다 소개하지 못해서 아쉽다.

이쯤 해두고 한국 현대 환상문학을 되짚어보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 현대로 한정한 이유는? 당연히 현재 『홍길동전』이나 『구운몽』의 직접적인 후계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물론 고전을 소재로 하거나 패러디하는 경우(특히 팩션 장르)는 많지만, 여기서 후계자라는 건 이런 뜻이다. 『홍길동전』을 읽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여, 비슷한 장르나 소재(도술을 쓰거나 의적이 활약하는 등)로 소설을 계속 쓰는 작가가 있느냐는 의미. 그보다는 J.R.R. 톨킨이나 J.K. 롤링을 읽고 작가가 된 사람이 훨씬 많지 않을까?

여기서 놓치기 쉬운 중요한 사실 하나를 언급해야겠다. 한국문학의 역사를 살펴볼 때 번역문학 역시 다루어야 한다는 사실, 또한 덧붙여 그들 번역문학은 원작 출간시기가 아니라 한국에 소개된 시기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에 관해서는 매우 긴 설명이 필요한데 아마 누군가가 논문이나 책으로 써서 발표했지 싶다.

이유를 간단히 언급하자면 한국에서 대여점 판타지/무협/로맨스 작가를 제외하고 장르소설을 쓰는 작가(적어도 2010년대까지)는 외국소설의 영향을 받고 쓰기 시작한 작가가 많다는 사실, 또한 과거(대략 2000년대까지)에는 한국 작가의 장르소설을 평가할 때 ‘번역소설 같다’, ‘외국소설 같다’라는 말이 진심으로 하는 칭찬이었다는 사실을 반추하자면 학술적으로 의의를 따지고 자시고 하기 전에 필연적인 일이다.

물론 번역문학 말고 또 하나 잊어버리기 일쑤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아동문학이다. 『금성 탐험대』를 발표한 한낙원이 한국 SF의 시조 중 한 명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고, 현재는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위상을 증명하고 있다. 1970년대에 출간한 〈아이디어 회관〉 시리즈를 1999년에 직지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복원한 것도 놀라운데, 직지 프로젝트 웹사이트는 아직도 건재하며, 서문을 읽어보면 1969년에 이미 한국 SF 작가 클럽이 탄생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만 대다수가 아동문학 쪽 작가로 추정되며 〈한국과학소설전집〉을 냈지만 후속 활동 없이 해체된 것으로 보이며 이후 명맥이 끊겼다. 2000년에 이름이 비슷한 SF작가 클럽이 설립되는데 설립했다는 신문기사만 있고 이후 활동은 전혀 알려지지 않아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17년에 한국SF협회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가 각각 설립되는데 두 단체 중 어느 쪽도 1970년대 및 2000년의 단체와 직접 연관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웹진 거울이 작가모임을 표방하고 있지 않지만(FAQ란에는 그렇게 아는 사람이 많다고 언급할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사실상 거울이 작가모임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기에 20년을 버틴 최장수 환상문학 작가모임이기도 하다.

물론 장르소설 전반으로 보면 한국추리작가협회라는 훨씬 크고 오래 된 단체가 건재하다. 1983년 설립되어 계간지와 단행본 출간 등 많은 실적을 갖고 있다. 그에 못지않게 규모가 큰 한국웹소설작가협회의 전신인 한국대중문학작가협회는 2006년 설립되었다. 친한 판타지 작가들이 모여서 만든 연재 사이트 커그(CUG)가 2002년 설립되어 거울보다 먼저지만 작가모임보다는 연재 및 작가와 독자의 커뮤니티 사이트 성격이 더 강하다. 또한 판타지, 무협 작가 모임 일필휘지도 오래 전부터 소속 작가의 소개란에서 이름은 보이는데 정확한 설립연도를 알 수 없을 뿐더러 활동내역이 무엇인지, 현재까지 지속되는지 등을 알 수 없어 해체되었거나 유지되더라도 단순한 친목모임으로 추정된다.

호러 쪽을 보면 공포문학 창작집단 매드클럽은 2006년 결성되었다. 출판사와 작가모임의 성격을 반씩 갖고 있는 호러 레이블 괴이학회는 2019년 설립되었다. 양쪽 다 크게 눈에 뜨이지 않아도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어 호러 장르의 생존 비결을 엿볼 수 있다.

반면 거울은 작품 합평회, 중단편선 출간 등 친목 이상의 외부 활동을 꾸준히 하기에 작가단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이런 여러 이유로 거울을 최장수 환상문학 작가모임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한국 환상문학, 특히 판타지 소설의 역사는 대본소 무협지, PC통신, 인터넷 소설, 대여점 환협지, 웹소설의 역사와 상당수 겹친다. 또한 장르소설은 만화와 함게 성장했다는 사실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애초에 만화방(=대본소)에서 만화, 소설(무협지), 잡지를 함께 대여했고 1990년대 이후 번성하다 2000년대 PC방 등장 이후 쇠락한 도서대여점의 주력 인기품목도 장르소설과 만화다. 자연히 잘 팔리는, 아니 잘 대여되는 도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소설과 만화 양쪽이 서로의 인기작을 참고하거나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인기 소설이 만화화되거나 그 반대인 미디어 믹스도 일본에 비하면 너무나 미미하지만 조금씩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거울이 창간된 2000년대 초반은 도서대여점이 감소하는 추세이긴 해도 아직 많이 영업하는 시기였다. 이때까지도 장르소설이라는 낱말은 대여점용 판타지, 무협, 로맨스를 가리켰다. SF, 미스터리 등 서점 중심으로 유통하는 장르소설도 있었지만 대중에게는 이들 세 장르라는 인상이 더 뿌리박혀 있었다.

이때 판타지는 ‘양판소’, 판타지와 무협은 뭉뚱그려 ‘환협지’, 로맨스는 ‘인소’라고도 불렸으며 이들은 질이 떨어지는 양산형 작품이 범람하는 현상을 비판하고 조롱하기 위한 멸칭으로 쓰였다. 아울러 장르소설이나 판타지라는 말 자체가 일반 소설보다 한 단계 낮다는 선입견도 한층 굳어졌다. 거울이 굳이 ‘환상문학’이라는 낯선 용어를 내세운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필자는 추측한다.

판타지 장르가 아닌 환상소설, 사변소설, 공포소설들은 보통 개별적으로 조금씩 출간되었는데 하나의 흐름을 만든 것은 황금가지의 황금드래곤 문학상 3회를 호러장르인 『몸』이 수상하고 비슷한 시기 만들어진 〈밀리언셀러 클럽 한국편〉을 통해 출간되면서 시작된다. 한국 작가의 장르소설을 하나의 레이블로 출간하는, 당시에는 매우 드문 시도였다.

한편 거울의 창간 전후로 워터가이드, 이매진(→드래곤북스→디겐), 정크SF, SF리더스(원래 위키지만 웹진 역할을 일부 수행), SF웹진(당시 대학생이던 장강명이 혼자 운영한 것으로 유명) 등 단행본 장르소설을 중심으로 한 웹진, 정보, 커뮤니티 웹사이트들이 사라졌고 라니안, 라다가스트 등 개인이 운영하던 장르소설 연재 사이트 역시 2000년대 중반쯤에 전부 사라졌다. 이후 인터넷 소설 연재 플랫폼은 조아라(개인 사이트에서 출발하여 기업이 된 경우), 로망띠끄(커뮤니티 성격이 짙다), 문피아(2021년 네이버 웹툰에 인수되었지만 2023년 현재까지 독립 운영중) 같은 중소기업과 네이버, 카카오 등 대기업이 운영하는 곳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연재 플랫폼이 거대해지는 반면 거울에 맞먹을 웹진이 없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하긴 장르를 따지지 않고서라도 현재 한국에서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독립 웹진이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여기서 독립 웹진이라고 부른 이유는 신문, 잡지 등 기존 언론사나 포털에서 운영하는 하위 웹사이트를 제외하기 위해서다. 그나마 세계적으로 봐도 가장 웹진 운영이 잘 되는 분야는 게임, 영화, 음악이고 문학 쪽은 크게 활성화되지 않는데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문학과 출판 쪽을 보면 세금으로 지원하는 문장, 크로스로드, 만화규장각, 비유, 출판N 같은 웹진만 건재할 뿐이다. 추가하자면 브릿G(황금가지 운영)매거진 코너와 창작의날씨(교보문고 운영)날씨매거진 코너가 장르소설 웹진의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기관에서든 기업에서든 돈이 나와야 원활한 운영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반면 폐쇄되고 사라진 웹진은 너무 많아서 여기에 일일이 열거하기도 입이, 아니 손가락이 아픈데 대표적인 예시만 들면 서평 웹진 소설리스트, 만화 평론 웹진 크리틱 엠, 문학 플랫폼 던전, 문학 웹진 문학3 등이 있고 특히 만화 웹진은 we6, 오즈, 다다코믹스, 만끽, 에이코믹스 등 무수히 많다. 큰 족적을 남긴 1인 팬진 alt. SF도 기념하는 의미로 여기 언급해둔다(다행히 아직 열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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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워터가이드, 이매진, 소설리스트, 오즈(웨이백 머신 캡처)

 

사실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웹진이라는 형식이 시대에 맞지 않아 도태된 것일 수도 있다. 웹진을 혼자 운영하기란 어려우므로(그런 사례가 없진 않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 여러 명이 힘을 합쳐야 하는데, 비용을 포함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면 굳이 힘들게 웹진을 만들어 운영하느니 혼자 블로그를 운영하는 쪽을 택했고, 지금은 그 흐름이 유튜브로 이어져 있다.

유튜브는 전문적인 정보를 체계적으로 얻기에 무척이나 불편한 매체지만, 창작자에게 수익을 준다는 점에서는 웹진이나 블로그보다 나은 점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이 흐름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자료를 정리하고 접하기 쉽게 제공하는 웹진이 가진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이런 현실 속에서 세금 지원, 광고, 기업 후원 등 아무것도 없이 비영리로 운영하는 웹진인 거울이 아직 건재한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오히려 비영리이기에 존속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2023년 현재 거울이 하는 유일한 영리활동은 게재한 소설을 묶은 중단편선의 판매로, 여기서 얻은 이익을 웹진의 운영비로 썼다. 2019년 『아직은 끝이 아니야』가 출판사를 통해 상업출판되기 전까지는 ISBN이 없는 동인지 형식으로 찍어 통판 혹은 이벤트에서 직접 판매를 했고, 출판사에서 중단편선이 나온 후로도 인세의 일부를 웹진 운영비로 사용하고 있다.

슬픈 사실이지만 서버가 터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적은 거의 없고(필자의 기억으로는 한 번 있었던 것 같은데 아시는 분은 알려주기를), 그렇기에 운영비가 과하게 들지도 않았다. 덕분에 거울은 지금까지 중단편선의 판매 이익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거울이 거의 매년 게재 작품을 모은 중단편선을 내놓았고, 드물게 작가의 개별 단편집이나 테마 단편집을 선보였으니 비록 동인지 형식이었으나 한국 장르소설 단편집의 원조격에 해당한다. 거울 리뷰에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년도 단편집 리뷰가 있다. 필진 개인 단편집은 『우리의 삶을 부수기 전에 부숴야 할 것들』, 『멀리 가는 이야기』, 『신체의 조합』, 『할티노』, 『밤 너머에』 등이 있다. 더해서 비평선 『B평』도 있다.

이전에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PC통신에 게재한 단편을 묶은 단편집 『판타지는 없다』, 『공주를 구하는 것은 언제나 왕자』, 『창작 기계』, 『사이버펑크』 등이 있었고 2000년에 나온 『윈드 드리머』는 한국 장르소설 역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단편집이다(이유는 등단하지 않은 작가들의 판타지 단편소설을 모은 단편집이 출판사에서 나온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 SF는 앞에 언급한 『창작 기계』가 최초). 또한 듀나는 거울 창간 이전에 이미 『면세구역』 등 몇 권의 개인 단편집을 내기도 했다(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자체로도 당시에는 화제를 모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개별적이고 단편적 시도였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지도 못했다.

거울 중단편선의 꾸준한 출간이 장르소설 단편집이라는 흐름을 만들어내는 시작점임이 분명하다.

이후 시장성을 내다본 복수의 출판사에서 『누군가를 만났어』,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황금가지시작), 과학기술 창작문예 수상작품집,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꿈을 걷다』 시리즈(두 권밖에 없지만), 크로스로드 SF 컬렉션 등이 나오게 된다. 더해서 번역 또한 활발해졌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2004 세계 환상문학 걸작 단편선』을 비롯한 외국 판타지, SF 단편집의 출간도 거울 창간 이후부터 부쩍 늘어났다는 느낌이 든다.

한편 동인출판 쪽은 웹시리얼, 테일즈(tales.pe.kr), 환상서고, 드림워커, Reading Fantasy, JOY SF, 판갤(제목이 『첫 번째 비상』인데 두 번째 이후가 나왔는지 모르겠다)에서도 단편집을 낸 적이 있다.

이와 함께 거울은 또 하나 장르소설계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우는데, 공통의 테마를 담은 단편을 모은 테마 단편집(‘앤솔로지’라고도 부름) 역시 한국 최초로 시도한다. 외국에 이미 많이 있었다는 항변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거울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찾아보면 답은 분명하다. 이쪽은 다양한 소재와 내용을 가진 SF 단편을 모아놓고 ‘사이버펑크’라는 제목을 붙일 정도로 출판업자들이 장르소설에 무지하고 무관심했다.

2006년 『혈중환상농도 13%(흡혈귀)』를 시작으로 『달과 아홉 냥(고양이)』, 『제15종 근접조우(외계인)』, 『타로카드 22제(타로카드)』 등이 나온 이후 출판계는 SF, 판타지, 호러와 같은 큰 틀에서 벗어나 특정한 테마나 소재를 중심으로 한 장르소설 단편집 출간으로 경향이 바뀌게 된다. 이는 시장이 커지며 독자들의 수요가 다양해진 이유도 있고 작가풀이 늘어나며 다양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된 이유도 있다. 사실 테마 단편집의 상업성을 입증한 가장 큰 계기는 ZA 문학 공모전 및 수상작품집의 인기 덕분이긴 하지만, 거울이 먼저 시도했음은 분명하며 결과적으로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좋은 현상이다.

2023년 현재 테마 단편집은 좀비, 종말, 독재자, 히어로, 게임, 설화, 퀴어, 시간여행, 음식, 도시괴담, 사이버펑크, 메타버스 등 다양한 테마로 출간되고 있어 출판계의 주류 아이템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장르소설 시장이 커지면서 문예지 『HAPPY SF』, 『계간 리얼판타』, 잡지 『판타스틱』, 『파우스트(일본 문예지 번역판이지만 한국 오리지널 작품과 기획도 포함)』, 『녹스앤룩스』, 『드림아웃』, 동인 잡지들(『JOY SF ZINE』, 『미래경』, 『텍스툰』 등), SF판타지 도서관, 카페와 도서관을 합친 듯한 안전가옥(현재 카페 운영은 종료하고 출판사로만 활동) 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지만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거울 이전, 90년대에 나경문화가 낸 『SF매거진』도 언급해준다).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경우는 잡지 『미스테리아』, 『어션 테일즈』가 있고 문예지 『오늘의 SF』는 2023년 기준으로 더 이어질지 모르겠다. 또한 현재 펀딩으로만 유통되고 있는 호러 매거진 『오드(The Odd)』와 퍼플레인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메일 매거진 『퍼플레터』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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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이 창간호가 아닌 이유는 책더미 속에 묻혀서 꺼내기 귀찮았음...

 

한편 문단소설, 주류소설, 자칭 순문학 업계의 동향은 어떤가 알고 싶으면 『환상소설첩』을 추천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 문단 쪽에서 나온 환상소설 단편을 소개하고 있다. 2006년 갑툭튀한 〈우주항공소설 시리즈〉는 아직 모르는 독자의 돈과 시간을 아껴주기 위해 더 언급을 삼가하겠다. 「상식의 속도」 자질(?) 논란, 문예지 『악스트』의 듀나 인터뷰 참사도 기억에 새롭다.

웹진 사이언스타임즈에 연재한 고장원의 〈한국 SF를 찾아서〉 칼럼에서 소개한 한국 SF작가 중 이른바 문단작가로 복거일, 백민석, 윤이형(『셋을 위한 왈츠), 박민규를 언급했다. 이 칼럼은 2011년에서 12년에 걸쳐 썼으니 당시 고장원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필자도 못했다blush). 정세랑(『덧니가 보고 싶어』, 『시선으로부터』), 김초엽, 곽재식(『ㅁㅇㅇㅅ』), 천선란 등 장르소설 토양에서 자라나 문단까지 씹어먹고 평정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속속 나올 줄이야…….

뿐만 아니라 세계진출도 가시화되고 있다. 영미권에 출간된 한국작가 대표 SF단편선 『Readymade Bodhisattva』에 이어 웹진 클락스월드에는 한국 작가의 작품이 번역되어 실린 바 있고 거울이 주체가 된 〈한중SF 교류 프로젝트〉도 있었다. 거울 필진이자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회장(2023년 현재)인 정보라(방문, 『문이 열렸다』)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로 선정되어 뒤늦게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작가로 등극한 바 있다. 뒤를 이어 배명훈(타워』, 『신의 궤도』), 김보영(『진화신화』, 『7인의 집행관』), 이영도(『폴라리스 랩소디』) 등의 소설이 여러 언어판으로 번역되어 세계로 진출하고 있어 앞으로도 이런 시도는 늘어날 것이다. 여기에 거울 필진이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는 사실을 첨언해둘 뿐이다.

밑거름이 된 것은 공모전이 늘어난 이유가 크다. 특히 SF 공모전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아져서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과학문학상, 과학소재 장르문학 단편소설 공모전, 한낙원 과학소설상, 문윤성 SF문학상, 김진재 SF어워드(현재 중단된 듯하다), 포스텍SF어워드.

또한 필자도 오랫동안 염원했던 기발표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 시상하는 상인 SF어워드가 1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으며, 20년 정도 명맥이 끊어졌던 황금드래곤 문학상은 주관사 황금가지가 운영하는 브릿G 발표작에 SF어워드처럼 기존 발표작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부활하여 이어지고 있다.

반면 중간문학, 경계문학, 슬립스트림 등 문단에서 장르소설을 포섭하기 위해 만든 개념들은 대한민국에서 유행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다. 대신 문단작가가 장르소설의 소재나 형식을 차용하는 경우는 심심치 않게 나왔으나 대부분 일회성이거나 실험적인 시도로 여겨질 뿐이다. 2023년 현재도 김영하, 김훈 등 내노라하는 작가들이 단편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로 장르소설의 소재나 형식을 차용하고 있으면서 장르소설이기를 부인하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크게 바뀔 것 같진 않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볼 부분은 대형 출판사에서 장르소설 전문 브랜드를 분리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해당 브랜드는 본사(?)의 개입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민음인 그룹의 황금가지이고, 웅진씽크빅이 과거 임프린트 방식으로 수많은 독립 브랜드(장르소설 쪽으로 노블마인, 뿔, 오멜라스, 시작, 사막여우가 있었다)를 선보였으나 경영부진 및 엇비슷한 임프린트가 많다는 이유로 통폐합시켜서 조금 위축된 감이 있었다. 지금도 엘릭시르(문학동네), 퍼플레인(갈매나무) 등의 브랜드는 마치 별개의 출판사인 것처럼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전부터 출판사의 규모가 커지면 만화, 아동도서, 실용서 등을 개별 브랜드로 분리시키긴 하지만 장르소설이 이와 같이 독립하는 것은 개별 시장으로의 존재감이 크다는 증거다.

문단에서 다른 장르에 비해 SF를 유독 높이 평가하며 문단 내부로 포함시키려는 시도는 2010년대부터 늘어나기 시작하는데(김초엽을 향해 쏟아지던 문단의 찬사를 떠올려보라), 필자가 이전 이에 관한 글을 썼듯이 분량이 짧아서 읽기 부담없다는 점, 사회 풍자나 비판으로 해석하기 쉽다는 점(물론 실제 그런 목적으로 쓴 글이 많기도 하다) 등을 들 수 있고, 두 가지 더 추가하자면 독자들이 먼저 발견하고 호평하여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주자 문단 쪽이 당황하여 끌려가듯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과, SF공모전이 늘어나고 인기 작가도 많아지자 등단에 매달리기보다 이쪽을 목표로 하는 지망생 및 신인 작가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덤으로 외국에서 과학소설이나 마술적 사실주의를 높이 평가하는 데 따른 문화적 사대주의도 들 수 있겠다(정보라가 부커상 후보가 되기 이전과 이후를 보라).

더해서 은퇴했거나 곧 은퇴할 교수님들이 쓴 자가출판 SF에 관한 이야기는 필자도 트위터에서 했는데 어느 베스트셀러 원작 영화에서는 노작가가 SF를 내서 대박이 났다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원작 소설에서는 스릴러라고 하는데, 아무튼 다른 업계(?)에서 SF에 대해 가진 인식이 조금 드러나는 부분이다. ‘거 뭐 젊은 독자들이 SF를 좋아한다는데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대박 난다’ 그런 심리. 물론 영화, 드라마 업계에서 SF를 모르는 감독(그것도 인터뷰에서 당당하게 말함)이 야심차게 도전했다가 폭망한 사례는 넘치고 넘친다.

또 엇나갔는데 돌아와서(이제 적응하셨죠?wink) 확신을 담고 말할 수 있는 사실은, 한국의 장르소설은 작가와 독자들이 자생적으로 만들고 읽으며 성장시킨 분야라는 점이다. 출판계와 문단은 2000년대 이후 늘 위기라고 주장할 정도로 형편이 안 좋은 가운데 장르소설 쪽이 점점 존재감을 키워가자 이제 더는 대놓고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브랜드를 제외한 문단 중심의 출판계가 장르소설을 인정하거나 발견하거나 육성한 적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안타깝지 않게도cheeky 문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장르소설 작가들은 점점 사라져서 이제는 찾기도 힘들어졌다(거울 비평선 『B평』의 ‘문학적 김예슬 선언’은 당시에는 비장했으나, 지금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어버렸다).

이렇듯 문단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반면 2000년대 이후 무섭게 성장한 청소년 문학 쪽은 번역이든 창작이든 안 가리고 다수의 장르소설을 발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청소년 문학 쪽에서 데뷔하거나 왕성히 활동하는 장르소설 작가도 많으며 듀나도 청소년 문학 레이블에서 꽤 많은 작품을 냈다. 특히 청소년 문학 레이블에서 나온 단편선은 출신을 안 따지고 다양한 작가들을 편견없이 모아놓은 것이 큰 특징이기도 하다. 거울 필진들도 이런 경로로 많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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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단이 인정하든 말든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가 된 정보라의 『저주토끼』

글을 마치며

 

마칠 때가 되어 돌아보니 거울 리뷰에서 다룬 도서를 소개하겠다는 원래의 의도에서 멀어진 내용이 되어버렸다. 더구나 의식의 흐름 기법도 아닌 주제에 시도 때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새어나가는 난잡한 글이니, 읽느라 고생 많으셨다.

그러나 웹진 거울과 거울 필진을 찬양하겠다는 또 하나의 의도는 어설프게나마 이루어낸 것 같다.

맨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환상문학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한 가지 분명한 답변이 있다. 환상문학 웹진 거울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한국 환상문학의 한 축을 이루었으며 변화와 성장을 이끌어낸 흐름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니 환상문학의 미래가 궁금하면 앞으로도 거울을 지켜보시라. 현실을 비춘 환상이 여기에 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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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na 24.01.02 10:17 댓글

    스티븐 킹의 경우에는 단편집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읽으면서 감탄했어요. 이 모든 것들을 뒤지고 글로 녹여내느라 정말 말도 못하게 힘쓰셨을 듯합니다. 즐겁게 읽었어요. 감동적이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