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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imento@freechal.com환타지 읽기Reading Fantasy(readingfantasy.pe.kr)에서 양장본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척 반가웠습니다. 현재 국내 장르 시장은 아직 중, 단편을 수용할 만큼 자라지 않았고 좋은 단편을 쓰는 분들이 나타났다가 슬며시 사라지는 현실에서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추어 만화나 속칭 야오이 소설 쪽은 동인지 작업이 무척 활발합니다. 모토는 아카라는 이름의 일종의 협회였지요. 일 년에 한 번 장소를 빌려 아마추어 만화단체들이 참여해 직접 제작한 회지를 판매하던 일에서 시작해, 만화가 아닌 소설을 중심으로 나온 게토가 등장했고 - 게토는 지금은 없어졌습니다만 - 이후 많은 관련 모임들이 나와서 판매전을 하고 있습니다. 배포전이라고 해서 뜻 맞는 팀을 그때그때 모아서 열기도 합니다. 이 중 게토에서 98년도에 N. O. S. T. F. 라는 제목으로 판타지 단편 창작집이 판매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99년과 2000년에 하이텔 환타지 동호회에서 자체 단편집을 제작했었습니다. 하이텔 환타지 동호회 단편집 제1호, 하이텔 환타지 동호회 단편집 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당시 책 가격은 3000원씩이었죠. 지금 돌아보니 정말 싼 가격이었군요. 01년에 3호 단편집이 기획되다가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vt가 쇠퇴하면서 하이텔에서 지원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1호와 2호의 경우 지원금 +관련 담당인의 사비로 만들었었지요. 결국 3호는 나오지 않고 2호에서 끝났습니다.

  출판사에서 단편집을 낸 적도 있습니다. 하이텔 환타지 동호회에서 1호 단편집이 나오기 전이었을 겁니다. 명상 출판사에서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유니텔에서 좋은 단편들을 골라 각 한 권씩 4권으로 묶어 출판할 기획을 열었었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만큼 작품이 나오지 않아 2권으로 압축되어 나오기로 했지요. 하지만 명상에서 출판사 사정, 단편 시장의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한동안 책을 내지 않아 계약한 작가들과 마찰을 일기도 했습니다. 미뤄지고 미뤄지다가 결국 1권은 2000년에 윈드드리머라는 방지나님의 작품을 표제로 출판되었습니다만 2권은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출판사에서 정식 출판된 단편집은 하나 더 있습니다. 2회 황금 드래곤 문학상에서 단편을 응모했던 작가를 중심으로 환상서고라는 모임이 열렸습니다. 모임 이름과 같은 제목인 환상서고로 2001년에 드림필드라는 출판玲【?단편집이 나온 바 있습니다.
  판타지로 한 작가 단편이 묶여 나온 건 01년에 황금가지에서 나온 이영도 판타지 단편집이 최초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바로 얼마전 2004년 2월에 환상문학 전집 15권에 오버 더 호라이즌이라는 제목으로 이영도 판타지 단편집에 중편 한 편, 단편 두 편이 추가되어 새로 나왔습니다.
  작년-2003년-에 제1회 황금 드래곤 문학상에서 할머니 나무로 단편상을 수상하신 은림님이 주축 중 하나가 되어 단편집을 기획한다는 홍보가 있었는데 그 뒤 아직 새로운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 또 다른 사이트나 출판사에서 단편집을 기획해서 낸 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시는 분 댓글로 달아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자료로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본론이네요. 2004년 판타지 읽기 Reading Fantasy에서 판타지 읽기 Reading Fantasy 중단편선 Ⅰ이라는 제목으로 양장본으로 리딩 판타지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중심으로 중단편선이 나왔습니다. 위에도 썼듯이 마른 하늘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단편집 제작비의 부담이 만만치 않았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양장본이라니요. 권당 19000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이었습니다. 페이지도 400페이지가 넘게 나왔지요. 60부 가량 찍었다고 들었습니다. 외부 홍보 없이 사이트 내에서만 판매되었고 거의 소화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리딩 판타지의 실제 참여 회원이 60~70명인 걸 감안하면 참여하시는 분들의 적극성을 알 수 있습니다. 외부 판매에까지 돌리지 못한 면이 개인적으로는 아쉽습니다만 아직 1호이고 현재 2호를 준비 중 이시라니 다음 호에 기대를 걸어봅니다.

  리딩 판타지의 주소는 http://readingfantasy.pe.kr 입니다. 사이트 이름대로 감상과 비평 중심입니다. 감상과 비평 중심이니만큼 실려 있는 작품마다 작품 비평을 뒤에 함께 실었습니다.

  책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설레는 일이었지요. 책을 받고 나서 먼저 양장본의 외면적인 형태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형식이 아쉬운 점은 작품 앞부분에도 작가 이름을 실었으면 하는 점입니다. 내부 행사였기에 회원이신 분들은 제목만 봐도 어떤 분의 작품인 지 쉽게 알 수 있었겠지만 외부에서 보기에 비평에서 작가 이름을 언급할 때 혼란이 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필명과 본명이 혼재하는 경우 더 그러했지요.
  사소한 지적이지만 목차에 중편 분량의 글에 대해 장편이라는 부제를 달은 점도 걸렸습니다. 장편은 일반적으로 최소한 한 권 분량 원고지 1200매 이상일 때 쓰는 말이니까요.

  판타지 읽기가 사이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비평과 감상을 중심으로 하는 만큼 작품에 대한 개별 감상을 써보겠습니다.

  첫 작품은 “한 여름 밤의 꿈”입니다. 처음 읽을 때는 흔히 접할 수 있는 검투사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읽을수록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구조가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구조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많은 아마추어 작가가 작품의 구조적인 형식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습니다. 아쉬운 점은 분량의 조절입니다. 어디에 중점을 둘 것인가를 미리 정하고 길게 풀 이야기와 짧게 정리할 부분에 대한 조절, 호흡에 좀 더 신경을 써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초반에 오르센차의 냉소적인 시각이 걸립니다. 냉소는 많은 젊은 판타지 작가에서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좀 더 깊이 있는 성찰을 얻기도 전에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 시각이 작품의 전체 구조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도 필요합니다. 이 작품의 경우 인물의 성격이 반전을 위해서 준비되었어야 합니다. 인물의 성격이 자연스러운 복선으로 나중에 가서야 그 것이 복선이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는 장치로 활용할 수도 있었는데 낭비된 느낌이었습니다.

  “호상”은 구수한 시골 묘사와 도깨비, 귀인 등의 재미있는 설정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기존에 있는 말들을 재치 있게 비튼 점도 재미있었고요. 다만 서사가 현저히 떨어집니다. 한 편의 완결된 작품이 되기에는 미흡하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추리의 기법을 차용하다가 의도적으로 허무한 결말을 냈다고 보는데 초반의 사건 부분이 너무 헐거워 결말이 타당성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양장본 내 호상을 평한 글에서도 있었습니다만 말장난도 걸립니다. 서사의 부족을 말장난으로 메운 게 아닌가 라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말장난도 냉소처럼 많은 판타지 작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나친 말장난의 남발로 재미있는 표현이 죽었습니다. 이야기 흐름에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중단편은 특히 이야기가 한 점을 향해서 가야 합니다. 의도적으로 형식을 무시할 수는 있습니다. 잔재미를 추구할 수도 있겠지요. 글의 목표점을 좀 더 확실히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 용병이야기”는 소재나 이야기 면에서 흔히 아마추어에게 기대되는 신선함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용병이야기의 비평은 작품을 과대해석 했습니다. 비평 潔薩璲?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전반적으로 글 뒤에 붙은 비평들이 작품을 우호적으로 해석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듯 합니다.  

  “천명”도 한 편의 단편 소설로 보기에는 아쉬운 점이 보였습니다. 무당과 내림굿에 대해 일반이 알고 있는 이야기 이상 보여준 것이 없습니다. 진지하게 무속에 접근한 글이었다는 점에 비해 서사와 이야기가 부족했습니다.

  “넥타이”는 진지하게 열심히 쓴 흔적이 보이는 글입니다. 다만 개별적인 묘사가 많이 미흡했습니다. 좀 더 치밀하게 인물의 심리를 따라갔어야 한다고 봅니다. 너무 얇았습니다.

  “0동”은 사형수 감방을 소재로 했습니다. 중추절이 되면 그 중 한 명이 사면됩니다. 이 상황을 그리고자 하는 의도는 높이 살만 합니다. 치밀한 심리극이 되었다면 성공했을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에게 생긴 희망, 절망, 간절한 바람, 각양각생의 험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기엔 작가의 내공이 부족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사면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가 뽑혔을 때 후보조차 되지 못한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약합니다. 드디어 다섯 명 중 한 명이 뽑혔을 때 뽑힌 사람, 뽑히지 못한 사람 모두 기절하는 것으로 상황 묘사가 끝납니다. 아직 역량이 부족했더라도 더 따라가 보려는 무언가 더 잡아보려고 하는 작가의 의지가 그다지 보이지 않는 점도 아쉽습니다.

  “에피소드”는 담담하게 읽었는데 읽은 뒤 여운이 남는 글이었습니다. 이 글 속에 무언가가 있는가 없는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향미님의 다른 작품을 더 읽어야 알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이 글에 대해서는 감상을 일단 생략합니다.
  
  “환상경계, 비, 나비, 봄비”는 탐미적인 글이었습니다. 뚜렷한 서사는 없이 이미지로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나비는 환상 지킴이입니다. 환상은 꿈, 소망 등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지요. 나비는 가녀리고 약하지만 존재합니다. 아련한 글었습니다.

  “눈”은 착상이 돋보이는 짧고 감각있는 인상적인 글이었습니다. 다만 ‘나’는 분명히 눈을 가렸는데 왜 살해당했는지가 의문이네요. 암시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제일 뒤 어떤 마을에 놓여있는 책 - 공책이 좀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만 -에 대한 부분에서 갑자기 작가 시점이 들어섭니다. 마을 사람이든 외지에서 온 또 다른 사람이든 인물의 시각으로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갑자기 어색해지는 면이 있거든요. 너무 설명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섬찟해야 할 결말이 약해진 것 같습니다. 이야기 - 서사 - 로도 충분한데 작가가 인과관계, 현상과 원인을 설명해버린 점도 작품의 묘미를 떨어뜨리지 않았나 싶어요.


  좋은 단편들이 많았고 추천제로 작품을 뽑았다는 방식도 좋네요. 제 글이 누가 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거울도 곧 단편집이 나옵니다. 공정을 위해 앞으로 나올 거울 단편집 리뷰를 환타지 읽기에 청탁하고자 합니다. 가차없는 비평 기대하겠습니다. (공개적인 원고 청탁이군요. *웃음*)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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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음 04.06.01 21:46 댓글 수정 삭제
    테일즈 판타지 커뮤니티에서 세 권인가 이곳처럼 단편집을 냈죠. 워터가이드에 홍보하던 게 생각나네요.( http://waterguide.new21.net/bbs/zboard.php?id=free&no=12235 ) 음, 판타지 단편집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이영도님의 미출판된 "신비로운 이야기"라는 단편과 영도님 팬픽들을 모아서 황금가지 죽돌이에서 인쇄한 팬북이 있을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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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아 04.06.02 00:21 댓글 수정 삭제
    테일즈 판타지 커뮤니티 쪽은 구입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는데요.. 영도님 팬북은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혹시 아시나요? (절판 되었으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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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아 04.06.02 00:21 댓글 수정 삭제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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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음 04.06.02 01:55 댓글 수정 삭제
    project s.i ( http://nunsae.co.to/ ) 입니다. 『SINBIROUN iyagi』 팬북은 양장본으로 만든 100부 한정판이라 당시 예약도 치열했고, 다 팔렸을 거예요. 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글을 보니 반양장본으로 개정판을 준비중인 것 같더군요.(언제 나오게 되는 건지는 모르겠네요. 대략 피마새 완결 때쯤인 것이려나요.) 개정판은 오타가 수정되고, 당시 SINBIROUN iyagi가 실렸던 빨간펜 원본도 구해서 이미지도 더 추가한 판인 듯 합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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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아 04.06.02 02:05 댓글 수정 삭제
    올 초였네요.. 아쉬워라.
    개정판 나오면 구해야겠군요.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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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음 04.06.02 11:20 댓글 수정 삭제
    이런 뭔가를 빼먹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이텔 시리얼란에서 웹으로 옮긴 웹시리얼 ( http://serial.or.kr/ )에서 제1회 단편공모전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나온 수상작들로 1회 단편공모전 단편집을 인쇄했죠. 홈페이지에 가셔서 도서구입 메뉴에 보면 아직 재고가 남아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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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아 04.06.02 13:56 댓글 수정 삭제
    잽싸게 주문했습니다. 거듭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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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혼 04.06.05 11:15 댓글 수정 삭제
    단편집 1호... 등산 베낭에 40권씩 둘러메고 다녔던 추억이 아련하네요.
    근데 1호도 사재를 털어서 출간했던가요? 결국 지원금으로 다 충당되고 약간의 흑자를 봤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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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아 04.06.05 11:47 댓글 수정 삭제
    지원금+사재였어요. 저는 잊고 있었는데 르호님께서 알려주시곤.. 이젠 르혼님이 잊으셨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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