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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Axt) : 무지하거나, 무례하거나

赤漁


지난해 7월 도서출판 은행나무에서 ‘소설을 위한, 소설가에 의한 소설 전문 문예·서평지’임을 천명하며 악스트(Axt) 창간호가 발간되었다. 흔히 주류 문학이라 불리는 문단 출신 작가들이 모여 새로운 색깔을 표방한 점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지면서 출발은 산뜻한 편이었다. 그런데 악스트는 올해 4호(2016.1-2)에 SF 작가 듀나와의 인터뷰를 실으면서 재앙이라 부를만한 사태에 휩쓸렸다.
악스트 4호가 발간된 후 각종 SNS에는 듀나를 인터뷰한 악스트 측의 태도와 인터뷰 내용을 성토하거나 비난하는 SF 팬들의 글이 줄줄이 이어졌다. 특히 인터뷰어이자 악스트의 대표 집필자인 백가흠 작가의 태도와 질문이 집중 포격의 대상이 되었다.
SF 팬들이 주로 지적한 것은 듀나라는 작가나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은 무성의한 질문과 태도, 무례함이다.
SF 팬들이 이 무례함을 이해하는 시각은 다양하다. 인터뷰어 개인의 무례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있고, 인터뷰어가 속한 문단이 취하는 무례한 태도로 해석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든지 간에 대표적인 SF 작가에게 상당히 무례한 인터뷰였음은 분명하다.
만약 악스트 인터뷰에서 나타나는 무례함이 고의적이었다면 그 무례함 뒤에는 상대를 비하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무례함이 반드시 고의적으로 발생하는 것만은 아니다. 상대에 관한 이해가 부족하고 시각이 편협할 때 무례는 의도치 않게 발생되기도 한다. 이런 무례함은 인종, 성(性), 종교 등에서 차이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문화적인 차이 역시 무례함을 발생시키는 한 요인이다. 한 문화권에서는 당연시 되는 것이 다른 문화권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도서출판 은행나무 홈페이지에서 악스트 소개 글을 읽어보면 문단에 속한 편집위원들이 전제하는 문학 판의 문화가 장르문학 진영의 문화와 사뭇 다름을 찾아볼 수 있다. 악스트 대표 집필자인 백가흠 작가는 악스트를 소개하는 글에서 문학이 지루하다는 편견을 언급한다. 꾸준히 문학의 재미를 추구하고 소비해온 장르문학 진영의 문화에서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팔리지 않는 소설에 대해 소설가가 비난받는 세상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라는 고뇌 역시 그렇다. 독자가 우선시 되는 장르문학 진영의 문화에서는 읽히지 않는 글을 쓰는 작가가 줄곧 비난의 대상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장르문학 진영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문학 판의 문화를 악스트 편집진은 부수어야 할 것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이들이 기존 문학 판의 문화를 부수어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변화’다. 문단의 굵직한 작가인 공지영, 천명관, 박민규에 이어 SF 작가인 듀나와의 인터뷰를 기획한 것도 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 놓여있다.
그런데 변화를 위해서는 근본적인 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보편적인 진리라고 여겨왔던 가치를 재검토하고 지금까지 배척해왔던 것에도 가치가 담겼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듀나와의 인터뷰에서는 이 점이 결여되어 있다.


익명성과 정체에 부여하는 의미

인터뷰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SF 작가 듀나의 정체에 대한 백가흠 작가의 질문이었다. 대표적인 SF 작가를 인터뷰하면서 그의 작품보다 정체를 궁금해 하는 태도는 그 질문의 수준과 더불어 무례해도 이보다 더 무례할 수는 없다는 SF팬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듀나의 정체에 집착하는 백가흠 작가의 질문과 태도는 90년대 후반에 듀나를 처음 접한 SF팬들의 호기심을 연상시킨다. 통신이 막 발달하기 시작했던 그 시기에 익명성은 아직 낯선 개념이었다. 유명 작가의 신상이나 얼굴이 문예지나 언론에 공개되는 문화에 익숙했던 독자들을 감안한다면 주목받는 SF작가 듀나의 익명성과 숨겨진 정체는 화젯거리가 되기 충분했다.
그런데 2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익명성은 익숙함으로 자리 잡았다. 양적, 질적으로 발전해온 장르문학의 발표공간이 인터넷으로 넓혀지면서 필명만은 내세우고 소설을 발표하는 작가도 흔해졌다. 작가의 익명이나 정체가 큰 화젯거리가 되지 않는 문화가 장르문학 진영 내에 형성된 것이다. 이 문화 속에서 작가의 익명성은 흔히 접하는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생산하는 소설보다 작가인 듀나의 정체에 주목하고 익명성을 전략으로 바라보는 악스트 인터뷰어들의 관점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장르문학 독자 대부분은 십 수 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을 것이고 장르문학 진영 내에서 오래 전에 사라진 구태적인 가치를 고수하고 있는 악스트 편집진은, 당연하게도 경악과 충격의 대상이 되었다.
악스트의 창간 의도가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움임을 감안한다면 편집진이 인터뷰에서 보인 태도는 실망스럽다. 구태적인 가치를 고수하는 태도에서 변화를 위한 준비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논란이 된 인터뷰 내용 역시 기존 문단 문화가 중요시 해온 가치를 재검토하기보다 그 가치를 바탕으로 그들에게는 낯선 가치를 평가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독자와의 공감 조건

백가흠 작가는 선험적인 경험과 체득이 담긴 세월이 작가에게서 느껴지지 않으면 독자와의 공감에 문제가 생긴다고 바라본다. 그래서 세대나 시대감이 느껴지지 않는 듀나의 소설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내보인다.
이러한 입장은 그가 속한 문단 문화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문단의 잣대로 보자면 그의 주장이 타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낯선 것이 틀린 것이 될 수는 없다.
장르문학 독자는 문단소설 독자보다 뚜렷한 취향을 지니고 있다. 이는 SF, 판타지, 추리, 무협, 라이트노벨 등 그 성격이 구분되는 다양한 유형의 소설을 품는 장르문학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장르문학 독자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장르와 소설을 선택하고 소비하는데 익숙하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하는 장르소설의 특성을 잘 이해한다. 판타지를 읽으면서 SF적인 특성을 기대하지 않으며, SF를 읽으면서 무협소설의 문법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들이 작가와의 공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작가에게서 묻어나는 세대나 시대감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소설적 재미다. 그래서 각 장르문학에서 독자와의 공감에 우선하는 것은 독자가 기대하는 각 장르의 개성과 특성을 얼마나 잘 따르고 있느냐하는 것이다.
그리고 특수한 한 장르 안에는 그 장르에서 보편적으로 지향되는 바람직한 가치가 있다. 장르문학이라는 용어가 문단 문학과 구별되는 용어로 사용되긴 하지만 전체 문학 시장에서 보자면 문단에서 생산하는 소설 역시 문단 소설이라는 하나의 장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독자와의 공감에 작가의 선험적인 경험과 체득 그리고 세대나 시대감을 중요시하는 것은 문단 소설의 ‘특수한’ 개성과 특성으로 바라보는 것이 타당하다.


작가의 사회적 철학적 책무와 당위

문단소설이 지향하는 특수한 가치를 타 장르문학에서도 따라야할 보편적인 가치로 바라보는 태도는 작가의 사회적 철학적 책무와 당위를 강조하는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우리 사회가 격동해온 세월 동안 문단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문단 소설이나 문단 작가들이 사회변화에 끼친 영향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문단 작가들이 감당해온 사회적 철학적 책무와 당위의 무게 역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들이 쫓아온 가치를 반드시 따라야할 보편타당한 문학의 가치로 강요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태도이다.
SF가 속한 장르문학은 문단 소설과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문단 소설이 사회적 철학적 당위를 쫓아가는 동안 장르문학은 독자의 요구를 꾸준히 쫓으며 변화해왔다. 소설발표공간이 문단보다 훨씬 빠르게 확장된 것도 독자들과 밀접한 장르문학의 특성 때문이다.
악스트 편집진의 주장대로 문단 작가의 성패가 사회적 철학적 책무와 당위를 확보하는 것에 달려있다면 장르문학 작가의 성패는 각 장르 독자들이 요구하는 소설적 재미를 확보하는 것에 달려있다. 사회적 철학적 책무와 당위를 얼마나 잘 담아내든 간에 그 장르의 소설적 재미가 확보되지 않으면 장르문학 판의 작가는 실패한다.
이처럼 작가의 성패 요건이 달라지는 것은 문단 소설과 장르소설을 평가하는 주요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선배 작가나 비평가가 심사하는 등단을 통과하여 작가의 길로 들어서는 문단 작가들은 비평이나 매체의 권위에 계속 평가받는다. 그래서 그런 권위가 지향하는 가치를 확보하는 것이 소설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건이 된다. 악스트 편집진이 내세우는 작가의 사회적 철학적 책무와 당위 역시 그런 권위가 요구하는 가치 중 하나다.
반면, SF를 비롯한 장르작가들을 평가는 철저하게 독자에게 달려있다. 그리고 독자가 작가에게 요구하는 것은 각 장르의 특성에 충실한 재미다. 아무리 사회적 철학적 당위를 확보하더라도 장르의 특성을 반영한 재미가 없는 소설을 쓴다면 그는 실패한 작가로 여겨지는 것이다.
악스트 편집진이 문단소설이 따르는 보편적인 가치로 장르소설 작가의 성패를 거론한 무례함은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소산으로 여겨진다.


작가의 업적과 제도교육

시대의 흐름을 벗어난 보수적 가치를 견지하는 태도는 듀나의 업적이 제도교육과 관련이 없는지 묻는 배수아 작가의 질문에서도 묻어난다. 조심스럽게 던져진 긴 질문의 이면에는 전문성과 식견을 학위나 전공 등의 권위와 연관 짓는 보수적인 관점이 숨어있다.
보수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면 인터넷을 전제로 등장한 한 분야의 전문가는 미심쩍어진다. 이 전문가들은 대개 자신의 학위나 전공 등을 적극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권위가 담긴 종잇조각 대신 실제적인 지식과 실력으로 자신의 전문성을 입증하며 독자, 해당분야 전문가나 애호가 등으로 구성된 네티즌들의 검증을 지속적으로 거친다. 그리고 이 검증과정에서는 그들이 뱉어놓은 전문적 지식을 얼마나 유용하게 소비하고 즐길 수 있는지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해당분야의 학업적 성취 여부는 사소하게 여겨지거나 무시된다.
이처럼 기존의 권위적인 문화와는 다른 새로운 문화를 정확히 이해했다면 작가 듀나에게 제도교육의 영향을 묻는 우는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호불호가 있을지언정 그는 20여 년 동안 SF와 영화평론 등의 분야에서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매체의 독자에게 지지를 받아왔다. 이미 그의 지식과 소설을 소비하는 독자가 검증을 끝내고 그에게 권위를 부여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제도교육의 영향을 묻는 것은 문단 내에서 학문적 혹은 문학적 성취를 이룬 권위자를 앞에 두고 네티즌의 댓글 내용이 업적에 끼친 영향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알트SF의 폐간 그리고 도서출판 은행나무의 전략적 승리

악스트 측이 인터뷰에서 가감 없이 내보인 보수적인 가치와 편견 그리고 그것을 고수하는 태도는 매우 염려스럽다. 악스트의 창간 의도가 기존 문학이 지루하다는 편견을 넘어가는 데 있음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문단소설이 지루해진 것은 비평 등의 권위에 주로 기대면서 독자를 소외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야 그들이 마주한 ‘팔리지 않는 소설에 대해 소설가가 비난받는 세상’은 독자가 주체인 세상이다. 이 세상에서 작가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힘은 오롯이 독자에게 있다. 만약 문단 문학의 지루함과 편견을 깨고자 한다면 또 다른 문화를 가진 장르문학의 문화를 이해하고 인정함과 더불어 문학을 선택하고 소비하는 독자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악스트를 발간하는 도서출판 은행나무 측은 듀나와의 인터뷰어와 내용을 조목조목 깎아 내린 웹진 알트SF에 압력을 행사하여 결과적으로 폐간시켰다. 장르문학 진영에서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폭력적인 횡포다. 
압력을 행사한 표면적 이유는 저작권법 위반이다. 그러나 악스트 인터뷰에 관한 논란이 한창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괘씸죄가 작용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SF팬을 비롯한 장르문학 독자들은 대형출판사가 1인 웹진을 상대로 과도한 권력을 행사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비판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단순한 횡포로 받아들이기엔 이상한 낌새가 감지된다.

듀나와의 인터뷰 내용에 대한 논란이 시작되면서 SF팬을 비롯한 장르문학 독자들은 각종 SNS를 통해 비판에 가세했다. 그리고 알트SF의 폐간 소식은 그 비판에 더욱 불을 질렀다. 이 과정에서 악스트는 톡톡한 홍보효과를 거뒀고, 악스트 4호 매진을 달성했다. 그리고 이 여세를 몰아 다음 호에 듀나 인터뷰 논란에 관한 새로운 내용이 수록됨을 예고하고 있다. 악스트 4호 매진을 이룩시켜준 독자들이 또 위력을 발한다면 악스트 및 도서출판 은행나무 측은 전략적인 승리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악스트 홍보대사가 되었음을 깨달은 독자들의 행보가 변수로 남아있다. 실제로 도서출판 은행나무에서 출판된 도서를 사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독자도 생겨나는 추세다. 종이로 출간되는 책과 잡지의 실제적인 목적이 판매량을 늘임으로 거둬들이는 자본에 있다고 본다면, 불매는 독자로 행사하는 가장 큰 권력이다. 도서관 대여 등을 이용하여 읽되 사지 않거나 읽지도 사지도 않는 것, 전략적으로 이어지는 논란에 침묵으로 대응하는 것 등 독자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악스트가 ‘팔리지 않는 잡지’가 되느냐, 매진을 이어가느냐의 여부는 독자들에게 달려있음이 분명해 보인다.(終)

 ※ 악스트에 개재된 듀나와의 인터뷰에 관한 독자들의 반응은 다음 페이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http://nyxity.com/wiki/wiki.pl/악스트듀나인터뷰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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