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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한 해 동안 환상문학웹진 ‘거울’ 내의 ‘시간의 잔상’ 코너에 게재된 중ㆍ단편소설들 가운데에서 엄선한 19편과 초청작품 및 독자우수작품 3편을 합한 총 22편의 작품을 수록한 단편집. 무려 629쪽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과 수록된 작품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스펙트럼에 기가 질리기도 하지만 책을 잡고 차분하게 읽다 보면 몇 시간은 금방 우습게 지나가는 흡인력을 보여준다. 작가도 각각 다르고 소재와 주제 역시 천차만별인 만큼 억지로 한데 묶어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각 작품별로 간단한 감상 포인트를 짚어보는 것이 효과적일 것 같다. 작품의 매력을 설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줄거리상 중요한 부분을 누설하게 될지 모르니 미리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 거울 속에서 사는 법 / pilza2
주인공이 정말로 거울 속 자신과 뒤바뀐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세상을 비관하여 행동장애와 궤변이 뒤범벅된 증세를 보이는 것인지 확실히 밝히지 않고 어느 쪽으로도 해석 가능한 여지를 남겨둔 채 끝맺음으로써 기묘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 거울을 모티브로 삼은 각종 고전소설들의 인용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거울’이라는 발표지 이름에도 딱 맞는 소설이다. 그런데 설령 주인공의 말이 거짓이라 해도 몸이 마비되어 위기에 처한 것은 확실할텐데 죽거나 말거나 그냥 내버려두고 가도 되는건지 좀 의문이긴 하다. (저렇게 토론할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구급차를 부르지?)

■ 현대 마법사 : 새파란 것 / 미로냥
우리 곁에는 마법사라고 불리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마법은 그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마법은 해와 별과 달과 지구와 풀과 나무와 그 밖의 자연 만물을 운행하고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세상의 관리인으로 태어난 그들은 미리 정해진 궤도를 타고 정해진 운명을 살아가야만 한다.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미래가 궁금할 일도 없다. 이 이야기는 자기가 그런 마법사 종족이라고 주장하는 소년을 사랑해 버린 소녀의 이야기다.
소년의 주장이 진실인지 아닌지 모호한 상태에서 끝난다는 점에서는 [거울 속에서 사는 법]과 마찬가지로 약간 현실에서 벗어난 괴짜의 이야기에 속할지도 모르지만, 그의 상대역이자 화자(話者)인 소녀가 훨씬 강렬한 감정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점에서는 좀 더 복잡한 이야기라고 해도 좋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운명이란 것을 통감(痛感)하고, 그런 슬픔을 맛보지 않기 위해 그 사람의 세계 자체를 부정하는 길을 택하는 애증어린 심리 묘사가 돋보인다.
참고로 작가는 비슷한 설정을 바탕으로 한 단편 [현대 마법사 : 달콤한 것]을 먼저 발표했는데, 거기에서는 마법사의 존재가 분명한 기정사실로 전제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지만, 역시 ‘무언가를 쫓아 앞으로 달려가는 인물과, 그를 좋아했지만 결코 같이 달려갈 수는 없어서 힘없이 지켜보기만 하는 인물’을 그렸다는 점에서는 통하는 면이 있다.

■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 보라
여성에게서 여성으로, 그리고 또 그 아래의 여성으로 이어져가는 이야기의 강(江). 그 속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채 놓쳐버린 연대기가 깔려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건져올려 물기를 털어내고 새로운 눈으로 들여다보았을 때, 우리는 그 이야기를 진정으로 다시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딘가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가상국가의 파란 많은 연대기와 비록 스펙터클은 덜하지만 애절하기로는 그에 못지 않은 민초들의 근대사를 오버랩시킴으로써 후대에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을 보여주는 작품. 다만 구조적으로 볼 때는 화자의 할머니 이야기를 다루는 부분보다 옛 시절의 연대기를 다루는 부분이 더 두드러져서 다소 균형이 맞지 않는 듯한 인상을 주며, 두 이야기 사이에 어떠한 유사점이나 연결점도 없기 때문에 독자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는 맹점도 있다.

■ 화무십일홍 / 누혜
사춘기 소녀의 변덕스러운 순정과 고색창연한 구한말 신소설의 어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판타스틱 퀴어 흡혈귀 치정극(?). 만약 전지적 시점으로 전개하면서 이런 문체를 사용했더라면 괜시리 낡아 보여서 역효과를 낳았을지도 모르지만, 극중 인물의 편지를 통해서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수법을 채택함으로써 그런 함정을 피하고 오히려 화자의 심정을 더욱 절절하게 드러내는 상승효과를 거두었다. 달콤하고 은은한 연애담으로 시작하여 인간의 비뚤어진 갈망과 변화하는 현실(제목에 힌트가 있다)로 인한 절망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심리 스릴러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단편집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은 작품.

■ 횡단보도 앞 편의점 / 가연
부모의 복잡한 가정사로 인해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되어버린(정확히는 사랑해도 붙잡을 수 없게 되어버린) 남자의 고독과 허무감을 회상에 회상이 꼬리를 무는 변화무쌍한 서술을 통해 담담하게 전해주는 작품. 주인공이 신경장애로 인해 물건을 ‘붙잡는’ 힘이 약하다는 설정은 꽤 의미심장하다. 별다른 사건 없이 은은하게 흘러가며 환상적인 요소는 전혀 없는 보통의 드라마이지만, 이 시간대 저 시간대를 넘나들며 남자가 갖고 있는 상처의 근원을 추적하는 리드미컬한 서술 방식은 독자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 날개의 밤 / 갈원경
천인, 상인, 비인의 3가지 종족이 공존하는 이세계를 무대로, 세 종족 사이에 드리워진 위계질서의 장막에 대해 의문을 품고 모든 종족에게 공평하게 내려졌다는 신의 선물 ‘아홉 개의 붓’을 찾아 여행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연작소설 중 한 편. 이번 이야기에서는 네팔을 연상케 하는 산간지방을 배경으로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거짓 우상을 만들고 그 환상 뒤에 숨어 살아야만 하는 이들의 애환과 구원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장대한 스케일의 배경에 비해서 이야기가 너무 짧은 탓에 아쉬움이 남지만 아직 ‘시간의 잔상’에 발표 중인 같은 시리즈의 작품들을 함께 읽는다면 그런 아쉬움도 어느 정도 해소될 듯.

■ 야간산책 / 아밀
낮을 주된 생활 시간대로 하여 살아가는 인간에게 밤은 여러모로 신기한 존재다. 모든 것을 뒤덮는 어둠으로 세상의 모습을 전혀 다르게 바꿔버리고, 낮에는 존재하지도 않았거나 혹은 존재했으나 살아있지 않았던 그 무언가를 지상에 불러내기도 한다. 밤은 혐오스러운 현실로부터 도피하고자 집을 나섰다가 길을 잃은 주인공을 다른 이들이 상상도 못할 세계로 안내한다. 그러나 그 세계가 과연 행복하기만 할까? 은은하게 흐르는 달빛처럼 편안하면서도 어둠 속에 숨어있는 독충처럼 짜릿한, 신비스러운 사랑 이야기. 그러나 마지막에 주인공이 ‘그’에게 다가갈 때의 묘사로 미루어 보아 해피엔딩으로만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뇌리를 스친다.

■ 그는 그녀를 사랑했을까 / sandmeer
중간까지 읽으면서 ‘이거 어쩐지 화자가 느끼는 것과 실제 상황은 전혀 다른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 강렬하고도 씁쓸한 최후의 반전이 신선한 충격을 준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아름답고 달콤하게만 들리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변명에 불과한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장편(掌篇).

■ 수이 / 배명훈
이야기의 서술자를 ‘주술사’의 위치에 놓음으로써 극중 인물의 서사가 소설의 서술 그 자체와 중첩되어 불협화음을 내면서도 아슬아슬하게 계속 흘러가는 묘기를 보여주는 일종의 실험 소설. 종국에는 서술자의 파괴로 인한 텍스트의 해체와 재구성, 그리고 재구성된 텍스트 속에서 방황하는 인물의 최종적인 각성과 희망의 발견을 역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같은 작가의 문제작인 [연애편지]와 마찬가지로 ‘소설에 대한 소설’ 혹은 ‘텍스트에 대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 유령들 / 전건우
고시원이라는 폐쇄공간을 무대로 평소에는 소 닭 보듯 살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특별한 사건을 계기로 한데 뭉쳐 가슴 훈훈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일상 추리 개그 어드벤처(?). 제목에 숨겨진 이중의 의미를 교묘하게 활용함으로써 약간 섬뜩하면서도 안타까운 여운을 남기는 결말이 인상깊다. 집필 당시 고시원을 무대로 벌어졌던 실제 범죄사건을 언급하기 때문에,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이 읽으면 다소 복잡한 감회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 전설의 용 우리 마을에 오시네 / 임태운
한때 용이 실존하여 신으로 추앙받기도 했으나 현재는 모습을 감춰버린 중세풍 세계를 무대로 천애고아의 몸이 되어 구차한 인생을 이어가는 주인공의 수난과 기발한 복수극을 그리고 있다. 내용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성(性) 묘사 때문에 어린 친구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지만, 용들의 대격투와 인간의 정사신이라는 상반된 행위가 동시에 같은 공간에서 진행되는 백열(白熱)의 클라이막스는 꽤 볼만하다. 소재의 민감성이나 주인공 심리묘사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도 있으나, 용의 근엄하고 고고한 이미지를 확 뒤집어 버리는 아이디어의 힘은 인정해야 할 듯.

■ 01001한 로봇 친구들 / 콜린
이런 01001한 작품 같으니라고! (이하생략)

…아니, 물론 위 문장은 농담이지만, 정말 01001한 작품인 것만은 틀림없다. 진짜라니까.

■ 환상소설을 쓰는 법 / SeeReal
보통 인간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기이한 능력으로 글을 쓰는 사람에서부터 자기 글은 실제 체험담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별별 희한한 작가군상들의 프로필을 모자이크처럼 엮어놓은 가상 취재기. 아이디어 하나 하나는 각각 독립된 작품의 ‘씨앗’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이지만 글의 구조 자체는 너무 단순해서 소설이라기보다는 시놉시스에 가까운 느낌이 든다. 마지막에 전체 이야기를 하나로 아우르는 어떤 ‘장치’가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 앞쪽의 산만한 인상을 커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어쩌면 “왜 사람들은 소설을 안 쓰는 건가요?”라는 한 마디야말로 작가가 이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어두운 입맞춤 / 보라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가정폭력과 치정살인으로만 여겨졌던 한 사건이 사실은 전혀 다른 구도로 벌어진 일이었다는 것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영원한 생명과 금기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애정이라 하기엔 너무 옅고 단순한 호감이라 하기엔 너무나 애절한 어떤 감정이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 목숨을 단순한 장난감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 영생의 존재와 너무나도 절망적인 처지 때문에 차라리 사람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고 싶다고 열망하는 필멸의 존재가 기묘한 대구(對句)를 이루며 서로 호응하다가 결국은 한 쪽이 다른 쪽의 세계로 편입되는 ‘정-반-합’의 구조에도 주목.

■ 냄새 / 아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채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계속 누리는 것만이 꿈인 의욕 제로의 아르바이트생이 실험용 쥐 돌보는 일을 하다가 묘한 현상에 휩쓸린다. 실험실이라는 공간을 무대로 삼고 있긴 하지만 SF는 아니며 묘사되는 사건의 성질로 보아서는 괴담이나 판타지에 더 가깝다. 두 개의 기현상이 시차를 두고 연속으로 일어나 주인공의 평범한 일상을 방해하지만 결국 주인공은 그것을 모두 외면하고 전과 같은 삶에 안주하는 길을 택한다. 아쉬운 것은 두 기현상 사이에 아무런 인과관계나 연관성도 없으며 제시되는 상황도 다소 뜬금없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 다만 현상 1에 정신이 팔려 미처 신경을 못 쓰는 사이에 현상 2를 슬쩍 던져놓고 나중에 서서히 폭발하도록 만든다는 구조는 꽤 흥미롭고, 현상 2의 전조로 시각이나 청각이 아닌 ‘후각’을 활용한 것도 독특하다. 마치 실제로 실험용 쥐를 돌보는 듯한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된 아르바이트생의 일과도 현실감을 준다.

■ 나의 우주 / crazyjam
도플갱어 전설과 평행우주의 소멸이라는 소재를 한데 엮은 착상이 돋보이는 작품.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소재에 불과하고, 진짜 메인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갑작스럽게 자기가 알고 있는 세계의 소멸을 앞두고 동요하는 주인공의 안타까운 심정과, 조금이라도 바라던 바를 더 이룬 뒤에 종말을 맞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절박함이라 하겠다. 소속된 시공간의 소멸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서 여러 차원을 떠도는 ‘특이점’의 존재는 꽤 돋보이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이상현상을 알려주는 메신저 역할에 그치기 때문에 더 이상 파고들지는 않는다.

■ 발푸르기스의 밤 / 김창규
때 이른 죽음을 맞은 인간의 의식이 에너지의 형태로 네트워크에 숨어들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미래세계. 죽음의 끔찍함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반기계인(半機械人) 해결사가 수상쩍은 강령회에 손님으로 참석했다가 묘한 사건에 말려든다. 허무와 고통의 무기질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하드보일드풍의 사이버펑크 추리 스릴러.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어지는 부분을 추가 집필하여 장편화할 예정이라는데,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단편 [지옥은 사랑으로 가득하다]는 이미 ‘시간의 잔상’에 게재된 바 있다. 어디선가 한 번쯤은 본 듯한, 텁텁하고 칙칙한 미래의 모습으로 가득하지만, 그래서 더욱 더 매력적이기도 하다.

■ 청소로봇의 죄 / raile
오직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계들은 수명을 다하여 폐기되고 나면 그들 나름의 규칙에 따라 처벌을 받는 ‘기계들만의 저승’으로 간다. 하지만 그 규칙이란 것이 어떻게 보면 되게 고지식하고 또 어떻게 보면 되게 부조리하다. 오직 임무에 충실하고 싶었을 따름이었던 청소로봇이 어떻게 중죄인으로 서게 되었는지에 관하여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인간의 일생도 이 못지 않게 얄궂고 부조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글을 읽고 나면 집 한구석에 놓여 있는 청소기가 그전과는 좀 다르게 보일지도?

■ 코르사코프 증후군 / 정해복
범죄를 저지르는 충동은 ‘병’인가? 만약 병이라면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 국가나 그에 상응하는 조직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그리고 만약 그 노력이 너무 지나쳐서 대상자의 범죄보다 더 큰 범죄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저지르고 있다면? 현실에서라면 오직 범죄인 한 명을 위해 저렇게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삽질을 하기보다는 그냥 편하게 사형이나 무기징역 때리고 잊어버릴 듯 하지만, 그런 삽질을 일부러 보여주면서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SF의 참맛이라 할 수 있다. 앞 부분과 뒷 부분의 연결이 다소 매끄럽지 못한 느낌이 들지만 여러모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독자에게 안겨주는 섬뜩함과 쓸쓸함은 좀처럼 잊을 수 없다.

■ 숨 / 날개
사방을 둘러싼 미지의 부유물(浮遊物) 때문에 파란 하늘도 사람들의 미소도 전설이 되어버린 미래의 도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악영향을 막으려고 사람들은 방독면이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바쁘게 자기 갈 길을 간다. 미지의 물질은 삶의 즐거움도 앗아갔지만, 그와 동시에 사람들 사이의 소통도 가로막아 버린 것이다. 이런 상태를 당연하게 여기고 별 생각 없이 살아가던 주인공이 어떤 일을 계기로 서서히 현재의 세계에 의문을 느끼면서 이야기는 흘러가고, 결국 원인모를 돌발사태에 쓰러진 타인을 위해서 주인공은 예전같으면 생각도 못 할 어떤 결단을 내린다. 무엇 하나 속시원하게 밝혀진 것은 없고 사건이 해결된 것도 아니지만, 주인공의 심리적인 성장이 정점에 달하는 결말 부분의 카타르시스가 그점을 상쇄하는 작품.

■ 사라진 아내 / 우명희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과는 함께하지 못하고 반대로 주는 거 없이 싫은 사람과 평생 붙어다녀야 하는 꼴이 되었다면? 게다가 그 사람의 우매함으로 인해 진짜 소중한 것까지 다 빼앗기고 빈껍데기같은 생을 보내게 생겼다면? 이 작품은 그런 상황에 처한 인간의 심리를 마치 의사가 메스로 해부하듯 아주 집요하게 추적하여, 독자에게 측은함과 답답함을 한껏 맛보게 해 준다. 단 몇 글자로 이야기의 전체 분위기를 확 뒤집어버리는 결말 부분의 처리는 흐름을 제대로 따라잡은 독자라면 대충 짐작할 만한 것이긴 하지만, 여전히 효과 만점이다.

■ 부안 왕손이 / 계림
운명의 장난으로 단종되어버린 거대 포크레인의 인생유전 아닌 포생유전(?)을 통하여 우직하게 한우물만 파는 일꾼들의 순박함과 의리를 찬양하고 시대의 조류에 밀려 사라져가는 옛 것들에 대한 연민을 자극하는 현대 우화. 적절한 레벨로 의인화된 중장비들이 인간 못지않은 고민과 활약을 보여주면서 건설과 토목으로 점철된 한국 근대사의 뒤안길로 안내한다. 영상으로 만든다면 픽사의 [토이 스토리]나 [카] 같은 CG 애니메이션이 어울릴 듯.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수록된 작품들의 분위기와 소재는 매우 다양하다.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일상의 자잘한 부분을 재조명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남들과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 때문에 소외된 사람들을 주변과 충돌시킴으로써 그들의 애환을 더욱 더 깊게 드러내는가 하면, 깔끔하게 잘 짜여진 유쾌한 환상을 보여줌으로써 삶의 피곤을 잠시나마 잊게도 해 주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싶게 만드는 아이디어의 재주넘기를 시도함으로써 두뇌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작가군과 작품군의 축적은 ‘거울’이 7년여의 시간 동안 쌓아 온 성과를 웅변하는 지표(指標)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더욱 더 시간이 흘러 2019년, 2029년, 2039년…이 되더라도 ‘거울’의 새로운 작품집을 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쁘고 보람찬 일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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