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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혁은 별 볼일 없는 웹툰 작가로 그럭저럭 먹고 사는 평범한 젊은이다. 어린 시절에 불의의 사고로 부친에게 중상을 입힌 뒤 집을 뛰쳐나와 가족과 연을 끊다시피하고 살지만 그것만 빼면 별로 넘칠 것도 모자랄 것도 없는 이 시대의 흔해빠진 청년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에 알려진 겉모습에 불과하다. 그의 정체는 무려 늑대인간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보름달 밤에 알콜을 섭취하면 통제 불가능한 충동에 휩쓸려 변신, 주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중증 늑대인간이다. 어째서 이런 체질이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조상 중에 비슷한 일을 겪은 이가 있더라는 얘기로 미루어 보아 가문에 내려오는 유전이 아닌가 할 따름이다.

 누구도 이해 못할 고민을 품고 누구도 납득 못할 강박증에 시달리며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던 진혁은 어느 날 갑자기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는데…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필진으로 활약하면서 주로 중ㆍ단편을 발표해 왔던 저자의 첫 번째 장편 작품. 다소 뒤틀린 위트와 일상 속에 갑작스럽게 녹아드는 공포를 은은하게 그려나가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결코 잃지 않는 독특한 작풍의 도회풍 판타지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진혁의 1인칭 시점을 통해 전개되며, 연속해서 터져 나오는 희한한 상황에 대한 그의 심정과 느낌이 솔직담백하게 전해진다. 그가 사는 동네에는 아무리 고쳐도 계속 고장나서 제 구실을 못 하는 가로등 하나가 있는데, 묘하게도 그 가로등에 불이 켜질 때마다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

 문제의 가로등 아래에서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나면서 진혁의 운명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왠지 비밀이 많은 듯한 여인과 그녀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전남편,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신비한 사건들이 진혁의 눈을 통해 묘사되고, 주위에는 말할 수 없는 이유로 여인에게 서서히 반하게 된 진혁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삼각관계를 형성하면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급물살을 탄다.

 늑대인간과 달걀귀신과 최면술사와 사람으로 둔갑한 쥐와 오만 잡귀신이 다 튀어나오지만 사실 이 소설의 본질은 연애소설을 겸한 성장소설이다. 진혁은 자기의 특이체질 때문에 누군가를 상처입힐까봐 두려워서 일부러 타인과의 접촉을 피한 채 외톨이로 살아가는 길을 택한다. 하지만 자기와 마찬가지로 ‘다른 무언가로 변하곤 하지만 그 변신을 스스로 통제할 수는 없는’ 여인을 만나면서 그의 태도는 눈에 띄게 변하기 시작한다.

 난생 처음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타인을 접한 진혁은 그녀의 고달픈 처지에 공감하게 되고, 이윽고 사랑에 빠진다. 여인 또한 진혁의 무뚝뚝하고 둔해빠진 태도를 미덥지 못하게 여기면서도, 그의 순수한 열정과 숨겨진 따스함을 알고 차차 마음을 열어간다. 이 소설은 말하자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스스로가 파 놓은 고독의 함정 속에서 끙끙 앓던 인간이 유사한 처지의 동류를 만나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법을 배워가며 세상과 화해하려고 손을 내미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여겨진다. 처음에는 ‘남과 다르다’는 사실에 대해 고민하고 괴로워하지만 여러 가지 일을 겪은 후에 나는 ‘원래 그렇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더 의미있는 삶을 위해 한 발짝을 내딛는 이야기인 것이다.

 (물론 진혁의 경우는 그냥 ‘다른’ 것만은 아니고 행동하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처지라서 앞으로 어떻게 될까에 대한 한 조각의 막연한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작가 후기에 따르면 원래는 장편으로 구상한 글이 아니고 첫 장에 해당하는 {가로등}을 단편으로써 완성한 뒤 계속해서 ‘그 뒤는 어떻게 될까’라는 궁금증이 생기는 바람에 조금씩 이야기를 확장하여 이어쓴 결과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되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인물의 성격이나 기타 설정 등에 일관성이 부족하고 처음에는 미처 생각도 못했던 캐릭터나 사건이 여기저기서 뜬금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느낌이 드는 등 다소 산만한 인상을 준다.

 또한 중반에 등장한 이래 계속 주인공에게 시련을 줌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주인공의 성장과 여인과의 감정을 더욱 튼튼하게 북돋워 주는 악역의 존재가 너무 평면적으로 묘사되어 아쉬움을 남긴다. 아무래도 주인공 1인칭 시점이라는 특성 상 다른 캐릭터들의 사연은 대부분 대화를 통해서 밝혀지다 보니 그런 인상이 더욱 강해지는 듯 하다.

 하지만 주인공이 특이체질의 위협과 악역의 술수를 극복하고 진정한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그러한 결점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소설은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주인공의 내면에 주로 집중하는 성장소설에 가깝기 때문이다. 때로는 오싹하고 때로는 안타깝고 때로는 얄궂기도 하지만, 때로는 훈훈하고 때로는 달착지근하고 때로는 알콩달콩한, 별난 사랑 이야기라 해도 좋을 것이다. 진혁의 경우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뭔가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끌어안은 채 고민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더욱 절실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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