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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ㅇㅇㅅ
곽재식, 아작, 2021년 7월

SF는 어렵다. 과학에 대한 기초―라고 쓰고 전문이라 읽는―지식이 없다면 처음부터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다. 어차피 이해하지 못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SF가 꼭 엄밀한 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하지 않더라도 진입장벽은 여전히 존재한다. SF에 종종 등장하는 낯선 개념들은 평범한 독자가 이해하기에는 지나치게 난해하고 관념적이다. SF는 주로 광활한 우주나 아득한 미래 같은 것들에 관심을 두기 때문에 지금 이곳의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고, 특히 한국인 독자와의 접점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SF에 등장하는 고유명사는 외국, 구체적으로는 미국이나 러시아의 것이어야 자연스럽다. 한국의 인명이나 지명을 쓰는 SF는 어색하고 때로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정말 그런가.

고백하자면 위에 적힌 말들은 대략 십여 년 전의 내 생각과 거의 일치한다. 그리고 그때 나는 SF를 보거나 읽지 않았다. 아니, 실은 그때도 SF를 많이 보았다. 단지 그게 SF인 줄 몰랐거나, SF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제 SF를 적극적으로 찾아 즐기는 입장에서 나는 저 말들이 모두 그르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더 이상 SF가 어렵지 않다는 뜻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이렇다. "어려운 것도 있고 쉬운 것도 있죠."

다른 모든 분야에서 그렇듯, SF를 납작하게 규정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SF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중 일부는 나처럼 우연한 계기를 맞아 SF에 빠져들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럴 수 있을 만큼은 열려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 책 『ㅁㅇㅇㅅ』을 미리 권하고 싶다. 내가 보기에 『ㅁㅇㅇㅅ』은 어렵지 않고, 난해하거나 관념적이지 않으며, SF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활짝 열려 있고, 한국인에게 익숙한 위트와 유머로 가득하다. 이것은 모든 SF가 따라야 할 전범은 물론 아니지만, 이처럼 개성 뚜렷한 SF를 발견하여 읽는 것은 그 자체로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게다가 앞서 언급한 스테레오 타입을 고수하고 있던 독자라면 이 이야기가 더욱 색다르게 읽히지 않을까. 그동안 막연히 가지고 있던 틀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도 결국 SF라는 장르의 한 복판에 도달하는 곽재식의 세계에 빠져들지 않을 재간이 있을까.

『ㅁㅇㅇㅅ』은 우주를 은하 단위로 종횡무진하는 이미영 사장과 김양식 이사의 비즈니스 활극이다. 사건은 언제나 미영과 양식의 입씨름으로 시작된다. 미영이 회사의 일거리를 받아오면 양식은 그 일이 '우리가 사업을 시작한 목적'과 아무 상관도 없지 않냐며 투덜거린다. 두 사람이 사업을 시작한 목적이 대체 뭐였는지는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잘 모르겠는데, 뭐 그러거나 말거나 미영과 양식은 의뢰받은 일에 착수하고 그럭저럭 헤쳐나간다.

그들은 초광속 우주선을 타고 다니며 외계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법정 다툼에 나서고, 강아지를 실어 나르고,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림을 훔쳐 달아난 화가를 쫓고,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시간 여행에 관한 연구를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전관예우 어뷰징에 당하기도 하고,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리하기도 하고,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그 밖에도 '맛집 행성'의 부장 개그부터 '자율학습 행성'의 교육 위원회까지 둘은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듯한 모험을 이어간다. 그 와중에 미영과 양식이 믿을 거라곤 성능 좋은 우주선 한 대가 거의 전부인데, 이런 한국적인 업무에 꼭 우주선씩이나 필요할까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다가도 막상 우주선이 아니고선 이렇게나 다채로운 이야기가 어떻게 가능할까 싶어 종국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곽재식에게 우주선 한 대란 무한한 이야기의 세계와 동의어인 듯하다.

이를 증명하듯 각각의 이야기들은 독자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영역에서 전개된다. 미영과 양식의 티키타카로 사건의 신호탄이 울리면 독자는 그냥 그들의 우주선에 합승하여 따라다니며 즐기기만 하면 된다. 때로 모험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일단락되지만, 미영과 양식의 사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그러므로 언제든 다음 여정을 기약할 수 있기에 그리 아쉽지 않다. 그들 사업의 앞날에 번영이 깃들기를 바라며 짧은 소감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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