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르혼 (cybragon@naver.com)



 제목만 보면 얼핏 블랙홀 발견에 대한 교양 과학 서적처럼 보이는 이 책은, 분홍색과 흰색으로 된 표지만큼이나 블랙홀과는 거리가 먼 얘기를 늘어놓고 있다. 블랙홀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는가에 흥미를 가지고 이 책을 잡은 사람이라면 25,000원이나 투자했다는 것을 십중팔구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국내에 출간된 교양 과학 서적에서 흔히 보이는 최악의 조합을 채택하고 있다. 무미 건조한 과학 저술을 하는 사람이 어설프게 문학적 구조를 채택함으로써 안 그래도 충분히 어려운 현대 천체물리학에 대한 접근을 밀어내듯 하고 있으며, 거기에 인문학 전공인 번역자가 끼어들어 이공계 특유의 버석버석한 유머 감각까지 깔끔하게 제거해 버렸다.


▲ 크리스마스 시즌 이공계 유머: “Leonard, look! Sheldon’s hugging me!” 이런 유머 없는 [빅뱅 이론]을 보고 싶으세요?
※궁금하신 분은 [빅뱅 이론] 2시즌 11번째 에피소드를 보세요!

 많은 교양 과학 서적이 독자의 감정 이입을 위해 그랬던 것처럼, 이 책 역시 이론과 실험의 발전을 단순 나열하기보다는 거기에 관련된 과학자들의 일화에 치중해서 생동감을 불러일으키려고 시도했다. 불행히도, 이 시도는 그저 시도로 끝났다. 이 책은 먼저 두 거장이 강렬한 충돌을 일으키고 젊은 지성이 낡은 권위에 어떻게 짓밟히는지를 보여주려 한다. 그럼으로써 독자를 첨단 이론의 논쟁 한복판에 끌어들인 다음, 왜 그런 충돌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차근차근 풀어가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처음에 강한 인상을 주어야 할 충돌을 생생하게 묘사하지 못하고, 격렬해야 할 시작 부분부터 이미 지지부진하게 이야기를 끌어가서 재미도 감흥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는 그 배경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도 차분하게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수시로 앞뒤로 널뛰며, 자꾸만 아까의 ‘충돌’을 반복해서 거론한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의 성장기이자 과학의 격변기였던 1930년대에 학자들 간의 이런 충돌은 수도 없이 많았으며 수많은 거장들이 온갖 우여곡절을 거듭하면서 수 년에서 수십 년에 걸친 논쟁과 토의로 현대 물리학의 토대를 쌓아갔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한 학회의 발표회장에서 상반되는 의견이 동시에 발표되었다는 이유로 지구가 두 쪽 난 것 같은 호들갑을 떨면서 억지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물론 ‘옳은 의견’을 학계의 거물로부터 묵살당하는 걸로 모자라 모욕에 가까운 비난을 받은 젊은이의 심정은 참담했을 것이다. 하지만 권위 있는 영국 과학자로부터 묵살당한 젊은 천재 인도인의 우울한 감수성을 공감하는 데는 한 문단, 넓게 잡아도 한 장 정도면 충분하다. 그럼에도 이 음울한 내용을 책의 거의 절반, 그나마 순수한 과학 이론 소개인 부록을 제외하면 전체의 2/3에 해당하는 1부에서 끝도 없이 동어 반복을 하는 것은, 독자에게 재미를 주려 한다기 보다는 찬드라세카르의 침울한 내면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물귀신의 손짓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치 술자리에서 만취한 회사원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편협한 직장 상사 얘기를 하염없이 하고 또 하는 것만 같다. 다행히도 독자는 취객에게 붙잡힌 친구가 아니기에, 이런 암울한 얘기를 끝까지 참고 들어줄 의무가 없다. 불행한 것은, 이런 얘기를 더 들을지 말지 고민할 시점에는 이미 술값을 내 버린 뒤라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3부분(좀 더 세분하면 4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먼저 젊은 인도인 찬드라세카르와 늙은 영국인 에딩턴의 대립과 생애를 200여 쪽에 걸쳐 동어 반복으로 겹치고 또 겹쳐가며 기술한 1부와, 70쪽 미만의 분량으로 블랙홀 발견의 기반이 된 과학적 발전을 다룬 2부 및 곧바로 이어서 (이 책의 가장 큰 주제여야 할) 블랙홀에 대해 다룬 50쪽 미만의 3부,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룬 주제에 관련된 과학적 지식을 설명해주는 100여 쪽의 부록이 그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불쌍하다고 주장하는(그리고 젊은 시절부터 국제적 명성을 쌓고 거의 평생 동안 천체 물리학과 이론 물리학에서 존경을 받았던) 한 인도인의 ‘불행’에 관심 없는 독자들에겐 불행히도, 이 책의 거의 절반은 찬드라세카르가 영국 과학계로부터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지를 동어반복적으로 서술하는데 낭비되어 있다. 내가 아까부터 동어반복적이라는 말을 동어반복 하는 이유는,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내가 이 책을 읽은 소감을 조금이나마 감정적으로 전달해 드리고자 함이다. 아마 이 소감문을 별 다른 내용 추가 없이 40배 정도로 늘여 놓은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대충 이 책의 1부를 다 읽는 기분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어째서 아무도 일어나서 에딩턴에게 그가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가? 찬드라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일어섰다. 의장인 ‘뚱땡이’ 스트래턴이 그에게 반박할 기회를 주지 않자 그는 벙어리가 된 느낌이었다. 의장은 “이 논문의 주장에 대해 우리가 토론하기 전에 먼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로 찬드라-에딩턴 대립의 제1막을 내려버렸다. 그다음 그는 애도 안 먹고 다음 발표를 안내했다. “에딩턴의 권위가 하도 커서 사람들은 그를 받아들였다.”고 찬드라는 한탄하면서 회고했다. “그는 (내 이론에 대해) 농담을 하고 나를 바보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것이 끝났을 때 모든 사람이 지나가면서 말했다. ‘안됐네, 안됐어.’”
―――[블랙홀 이야기] 中, 50페이지

 압도적인 분량과 음울함을 자랑하는 1부를 마치고 나면, 현대 물리학과 천문학이 어떻게 블랙홀을 발견하고 인정하게 되었는가를 주마간산으로 스쳐가는 2, 3부를 만나게 된다. 하류로 갈수록 유량이 많아지며 천천히 흐르는 강물과는 반대로, 이 설명의 흐름은 뒤로 갈수록 빨라지고 좁아져서, 이 분야 최후의(라기보다 최신의) 거장 스티븐 호킹에 이르면 학자 개인에 대한 최소한의 소개도 없이 단순히 그의 이론을 한두 줄로 요약하는 것으로 끝난다. 에딩턴과 찬드라세카르,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에 대해 설명하는데 200여 쪽을 할당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리고는 다시 관련된 과학적 지식들을 요약해주는 부록을 만나게 되는데, 과학의 흐름을 빠르게 짚어가는 2,3부는 1부보다는 오히려 이 부록과 더 닮아 있다. 즉, 이 책은 크게 나누어 블랙홀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두 과학자의 대립에 대해 동어반복적으로 설명하는 1부와, 다시 그와는 거의 관계 없이 블랙홀을 둘러싼 과학적 지식에 대해 개략적으로 설명하는 나머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런 구조는 블랙홀 자체에 흥미와 매력을 느껴서 이 책을 구입하는 독자에게는 큰 불행이며, 원래라면 당대 과학자들의 생생한 생각과 행동에 몰입하게 만들었어야 할 1부가 실제로는 재미도 감동도 없는 일화의 반복 나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제 동어반복이란 말을 동어반복하기에도 질렸다.)
 
 덧붙이자면, 이 책의 번역 역시 원작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역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축퇴, 혹은 겹침(degeneracy)을 퇴화(degeneration)라고 번역하는 등 단어 선택이나 의미 전달에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불행히도 ‘퇴화’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할 때 덧붙은 역주에서 역자가 축퇴라는 말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역자는 물리학에 대해서는 큰 문제 없이 번역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했는지 몰라도 진화학이나 생물학에서 퇴화란 단어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지식은 별로 없는 모양이다.
 게다가 원문에서 간간히 보여주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머 감각 역시 번역문에서는 거의 느낄 수 없는데, 일례로 비틀즈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를 패러디 한 것이 분명한 ‘우주에 있는 다이아몬드’라는 표현도 아무런 감흥 없이 직역해 놓았을 뿐이다. 이런 무미건조한 기계적 번역은 도처에서 발견되며, 불행히도 개인의 감성보다는 과학의 흐름을 짚어가는 ――― 개인적으로는 더 재미있는 ――― 후반으로 갈수록 심해진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블랙홀에 대해 흥미는 있지만 찬드라세카르라는 인도 과학자에 대한 큰 관심은 없는 사람에게는 그저 흔히 접할 수 있는 블랙홀 소개서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범용한 번역으로 일관한 덕분에 원작이 가진 최소한의 재미조차 놓친 무미건조한 산문이다. 이 책을 재미있게 보는 방법은, 커터 칼을 들고 1부와 2부 이하를 반으로 뚝 갈라서 먼저 2부 이하 부분만 가볍게 들고 다니며 읽는 것이다. 이 부분만이라면 대충 분량 대비 가격에 맞는 가치 ――― 1만원 정도 ――― 는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다음, 찬드라세카르의 음울한 정신 세계로 들어가고 싶은 흥미가 생겼을 때에 책장에 처박아 두었던 1부를 꺼내서 보라. 장소는 머리 등을 켜고 베게와 이불로 파묻힌 침대가 가장 좋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는 역시 그 분량만큼의 가치는 있을 것이다.
댓글 2
  • No Profile
    진아 09.12.27 02:19 댓글 수정 삭제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라 혹평을 보니 가슴이 아프네요.
    저는 "블랙홀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는가"도 만족할 만하게 얻었고, 과학자들의 충돌도, 찬드라세카르의 우울함도, 몰입해서 읽었던 지라...
    다른 의견도 있다는 의미로 댓글 답니다. ^^
  • No Profile
    르혼 09.12.28 10:21 댓글 수정 삭제
    찬드라세카르가 마치 에딩턴 개인의 고집에 의해 과학계에서 매장된 것처럼 그리고 있는데, 당시의 인종차별을 감안하면 사실 상당히 축복받은 인도 과학자라고 할 수 있을정도라서, 감정 이입이 되질 않았습니다.

    젊은 나이에 이미 명성과 권위를 얻었고, 평생 일류 학자로서 대우받았으며 자식이 없던 것을 제외하면 가족 관계도 대체로 무난한 정도였지요. 결국 과학자로서의 성공의 상징인 노벨상까지 받았습니다. 아인슈타인조차 상대성이론이 아닌 광전효과로 노벨상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식민지 출신 과학자로서는 결코 나쁜 대접이 아니었지요.

    이 정도 성취가 일반적인 과학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볼 때, 200페이지씩이나 할애해가며 찬드라세카르를 일방적인 희생자처럼 묘사한 글에 감정 이입이 되질 않았어요. 그리고 내용도 내용이지만 구성 면에 있어서도 소설식의 이야기 완급 조절에 실패한 느낌이라 아쉬웠습니다. '더 잘 쓸 수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더군요.

    끼워넣어주신 삽화와 인용문 감사합니다.
Prev 1 ...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 33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