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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런 꿈을 보았다

2010.02.26 23:4202.26





pilza2.compilza2@gmail.com
 본 작품집은 '일본 모던 판타지 걸작선'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에 걸쳐서 활동했던 작가들의 단편을 수록했다. 옮긴이의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같은 출판사에서 한국 작가들의 환상소설을 시대별로 묶어 두 권으로 냈던 [환상소설첩]의 일본판에 해당하는 책을 내자는 기획에서 태어났다. 좋은 기획이기 때문에 미국, 유럽 등 다양한 국가의 환상소설을 선보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붐/포스트 붐이라는 이름 하에 남미 작가들의 단편집은 비교적 많이 소개되었으나 유럽, 남아시아, 인도 등 미개척지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는 분야니까 말이다.

 하지만 기획이 좋은만큼 기대가 컸기 때문인지 아쉬운 점이 두 가지 남는다.
 첫 번째는 근대 작가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인데, 이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은 저작권 계약 및 저작권료 지급이 필요하여 절차나 비용 등의 사정상 힘들기 때문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싣지 못했으리라 추측된다.
 대신 본 작품집의 반응이 좋다면 환상소설첩이 그랬듯 현대 작가들의 작품도 선보였으면 좋겠다. 일본 소설이 봇물 터진 듯 수입되고 있으나 추리를 제외하면 SF/판타지 단편은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있는 상황을 생각할 때 좋은 반응이 있으리라 기대된다.

 두 번째는 일본 모던 판타지 걸작선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으나 수록 작품들이 그리 '판타지'하지 않다는 점이다. 수록 작가도 유명 작가 위주의 비교적 안전한 인선이라, 장르소설인 판타지와의 직접적인 연결점을 찾기 힘들다. 사실 이건 환상소설첩 국내편 리뷰에서 지적한 것과 똑같은 문제인지라, 출판사의 의지 혹은 성향에 따른 결과로 해석해야 할 듯 하다.
 그래도 아쉬운 것이, 첫 번째 이유로 사후 50년이 지난 근대 작가들의 작품만 수록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판타지, SF, 호러 장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이즈미 쿄카, 유메노 큐사쿠, 오카모토 키도 등의 작가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일문학을 전공하고 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역자의 이력을 보면 짐작할 수 있는 한계이기도 하다. 일본은 독자가 많고 시장이 클 뿐 장르소설이 학계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은 한국과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일본 문학을 연구한 외국인 학자가 일본의 장르소설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한국 문학을 창작, 비평, 연구하는 사람이 한국의 장르소설에 관심이 없는 것과 비슷하게).
 그 결과 수록작들 대부분은 심심하고 담백한 글이다. 대표작으로 실린, 그리고 아마도 가장 유명한 일본 소설인 [몽십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수록작 대부분이 설화적이고 민담이나 기담의 느낌이 난다.

 만개한 벚꽃 나무 숲 아래 / 사카구치 안고
 남자가 여자 잘못 만나 고생하는 이야기, 라고 하면 지나치게 축약했다는 느낌이 들지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형식과 문체, 그리고 이와 약간은 어울리지 않은 듯 하면서도 납득하게 만드는 탐미적인 결말이 인상적이다.

 코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소소한 민담 같은 느낌. 코를 소재로 한 코믹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고골의 〈코〉가 떠오른다.

 쥐 고개 / 모리 오가이
 형식의 측면에서 보면 수록작 중에서 가장 현대적인 공포 소설이다. 과거의 죄악을 자랑스레 말하는 남자에게 닥쳐온 갑작스런 죽음은 인과응보인지, 원한의 복수인지, 그저 죄의식이 만든 환각에 의한 사고인지…… 정답은 독자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풍류불 / 고다 로한
 일본풍 피그말리온 이야기라고 소개할 수 있겠으나 결말은 신화와 다르다.
조각에 정진하던 남자가 우연히 여자를 만나, 서로에게 이끌리지만, 맺어지려는 찰나 방해요소가 나타나고, 원치 않게 헤어진 후, 남자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슬픔을 예술을 통해 승화시킨다. 그리고 마치 [플란더스의 개]를 연상시키는 환상적인 혹은 초월적인 결말.
 불경의 인용문을 소제목으로 쓰고, 결말에서 화자의 충고 등 많은 부분에서 불교적 색채가 짙게 드러난다. 다만 로맨틱하고 애특한 러브 스토리에는 조금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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