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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문 콜드

2010.02.26 23:3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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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시 톰슨은 동부 워싱턴의 소도시에서 독일제 클래식카를 수리하며 조용히 살아가는 정비공이다. 하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언제나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들끓는다. 이웃의 성질 고약한 이혼남은 늑대인간이며, 정비소를 물려준 옛 고용주는 금속을 다루는 요정이고, 버스 수리를 맡긴 친구는 뱀파이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 모든 사실을 아주 익숙하게 받아들이는데, 사실은 그녀 역시 평범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머시의 정비소를 찾아온 한 소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헐벗고 굶주린 것이 분명한 그 소년은 잠시동안의 피난처와 일자리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머시는 날카로운 감각으로 소년의 정체가 늑대인간임을 알아차리고 그를 채용하는 것을 주저하지만, 소년에 대한 측은한 심정과 궁금증 때문에 결국 받아들인다. 그러나 얼마 후 정체불명의 무장괴한들이 소년의 행방을 쫓아 정비소에 들이닥치면서 머시의 인생은 사정없이 꼬이기 시작하는데…

 2006년에 발표된 파트리샤 브릭스의 도회풍 판타지 장편소설. 우리 세계와는 약간 다른 또 하나의 현대 미국을 배경으로, 전설이나 민담 속에서만 볼 수 있었던 초자연적 존재들이 인간들 틈에 숨어살고 있다는 기본 설정을 깔고 있다. 이미 요정족(fae)은 모종의 계기에 의해 인간들에게 커밍아웃한 상태이지만 그 밖의 종족들은 아직 존재를 비밀로 한 채 미국 곳곳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그들의 정체가 노출될 위험이 생길 경우 뒷처리를 해주는 마녀(witch)들이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각 종족의 특성은 저자 특유의 어레인지를 거쳐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약간씩 다른 느낌을 주는데, 대부분 유럽 등지에서 저마다의 사정 때문에 미대륙으로 건너왔다는 사연이 있다.

 이런 세계관 속에서 더욱 이채를 띠는 것은 주인공 머시의 설정이다. 그녀는 아메리카 원주민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코요테로 둔갑할 수 있는 변신능력자(shapeshifter)다. 이러한 능력자들은 인디언 전승에 따라 워커(walker)라고 불리는데, 이제는 그 수가 너무 적어져서 사실상 머시가 최후의 생존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희귀한 종족이다. 인간일 때에도 뛰어난 후각과 청각으로 주변상황을 탐지하며 변신하면 늑대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고 추위에도 강하다. 하지만 다른 능력은 보통 인간과 별 차이가 없으며 훨씬 강한 타종족들을 상대로 정면승부를 걸 만한 힘도 없다.

 그러나 머시에게는 그런 약점들을 보완하기에 충분한 ‘지혜’와 ‘직감’의 힘이 있다. 어릴 때 늑대인간에게 입양되어 그들의 공동체 안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늑대인간의 습성이나 강점, 약점,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그들 자신보다도 훨씬 잘 알고 있으며, 요정족이나 뱀파이어와도 친구가 될 만큼 폭넓은 친화력을 갖고 있다. 또한 달의 기운이나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변신하는 늑대인간과 달리 언제든 평상심을 유지한 상태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변신 가능하고, 늑대인간에게 치명적인 은(銀)이나 마법에 대해서도 면역을 갖고 있기 때문에 특정한 상황 하에서는 오히려 우위를 점하기도 한다.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재빠른 판단을 내려 진상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는 탐정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때도 있다.

 머시라는 캐릭터는 모든 상황을 스스로 해결할 만큼 무적인 것도 아니고 저마다 한두 가지씩 화려한 능력과 사연을 갖추고 있는 다른 조연들에 비하면 오히려 심각한 약체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주인공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비범한 특성과 보통 인간의 상식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을 주지 않고서도 작품 내의 세계관을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하여 다른 캐릭터들을 한데 모으고 전혀 섞이지 않을 듯한 인물들을 일시적으로나마 한 팀으로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을 받는 지혜로움도 한몫하고 있다. 능력이 평균 이하이기 때문에 오히려 적의 주의를 끌지 않고 역습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점이다. 『삼국지』에 비유하자면 유비에 가까운 인물형이랄까. (그렇기 때문에 관점에 따라서는 작중 인물들이 하나같이 머시를 중심축으로 움직이고 그녀에게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게 눈에 들어와서 다소 작위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1인칭 소설이다보니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하겠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어느 무리에도 속하지 않는 늑대인간들과 인간 용병으로 구성된 정체불명의 조직을 상대로 머시와 그의 이웃이자 지역 늑대인간 무리의 알파(우두머리)인 아담이 종횡무진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는 것이다. 북미 늑대인간들의 총대표이자 머시의 양아버지 격인 매록이나 그의 아들이자 머시의 첫사랑이었던 새뮤얼 등등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속속 등장하고 정보통 뱀파이어나 무기를 조달하는 요정 등 다른 종족들의 개입도 이야기를 점점 흥미진진하게 한다.

 하지만 서술 자체는 머시의 1인칭 관점에서 진행되는데다가 본격적인 싸움보다는 거기에 이르는 인물간의 대화나 갈등상황의 해결 등에 더 무게가 실려 있기 때문에 액션은 약한 편이다.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한 자의 정체나 그의 동기를 밝혀내는 과정도 다소 억지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워서 미스터리물로서의 재미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불같은 성질에 위압적이지만 은근히 정이 많고 유머러스한 아담과 친절하고 다정하며 자제력이 강하지만 머시 앞에만 오면 철부지가 되는 새뮤얼 사이에서 고민하는 머시의 모습은 할리퀸 로맨스에 지지 않는 감미로움(읽는 이의 취향에 따라서는 닭살)을 선사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삼각관계의 기본 틀만 제시하고 더 이상의 진전은 없기 때문에 로맨스가 메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인물들의 대화에서 간간이 나타나는 미국식 유머도 원래는 긴장감을 누그러뜨리는 완충제 역할을 하기 위해 투입된 것이겠지만 문화적 배경이 다른 한국 독자에게는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느낌을 줄 우려가 있다.

 오히려 이 작품은 자기보다 강한 자에게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지만 프라이드를 잃지 않고 당차게 앞길을 개척해 나가는 머시의 성장 이야기로 보는 것이 더 좋을 듯 하다. 그녀를 둘러싼 조연들의 성격도 다소 전형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는 나름대로 제 역할을 다 하고 있으며, 늑대인간이나 뱀파이어 등 기존의 크리처를 빌어와서 저자 나름대로의 재해석을 거쳐 현대 미국에 배치한 설정도 신선하다. 다만 이야기의 비중이나 세계관의 구축 면에서는 늑대인간이 다른 종족들보다 월등히 공들여 묘사되고 있으므로 특히 늑대인간에 관심이 많은 팬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머시 톰슨 시리즈는 이 작품 이후 『Blood Bound』(2007), 『Iron Kissed』(2008), 『Bone Crossed』(2009)의 후속편이 나왔으며, 제5편에 해당하는 『Silver Borne』이 2010년 3월에 출간 예정이다. 저자가 본 시리즈를 총 7편으로 구상하고 있다고 이미 발표한 바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2권이 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같은 세계의 수 년 전을 무대로 별개의 캐릭터가 활약하는 중편 「알파와 오메가(Alpha and Omega)」 및 그와 연결된 장편소설 시리즈(현재까지 총 2권 출간, 2011년 가을에 제3권 출간 예정)도 존재하며, 2008년에는 머시가 대학을 졸업한 직후의 시기를 그리는 4부작 미니시리즈 형식의 프리퀄 코믹스 『머시 톰슨 : 귀향(Mercy Thompson: Homecoming)』이 출판되는 등 활발한 스핀오프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2008년에는 『해리포터와 불의 잔』으로 유명한 마이크 뉴웰 감독의 50 캐논 엔터테인먼트 사(社)와 영화화 판권 계약을 맺기도 했다.



■ 참고링크 ■

http://en.wikipedia.org/wiki/The_Mercedes_Thompson_Series
http://en.wikipedia.org/wiki/Patricia_Briggs
http://www.patriciabriggs.com/books/books.shtml
http://www.lovevampires.com/pbmoon.htm
http://www.goodreads.com/book/show/71811.Moon_Called
http://www.amazon.com/dp/0345509889
http://www.dabelbrothers.com/index.php?categoryid=16&p2_articleid=4
http://www.comicmix.com/news/2008/10/04/mike-newell-sinks-teeth-into-patricia-briggs-mercy-tho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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