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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마법의 시대

2009.08.19 00:3408.19

마법의 시대


(전략)
……마법의 시대의 종말은, 세간에서 말하는‘종말’이 일어나기 3년 전부터 그 조짐이 보였던 것이다. 마법의 시대에서 나무의 죽음을 자연의 섭리로 넘겨버린 국왕과 그에 물든 정부 역시 마법계에 어떤 보고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2개월 뒤……(중략)……마침내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종말의 시발점인 눈사태가 일어났다. 그제야 정부는 수도의 마법자치제에 연락을 취했고, 마법계가 정부의 뒤늦은 보고를 탓할 새도 없이 비행 중이던 수도의 비공정이 추락한다. 뒤이어 대재앙으로 일컬어지는, 상천(上天)회의장이 떨어지는 사고가 터졌다. 이제 국왕은 정부에 탓을 돌리고, 정부는 국왕을 탓하는 일이 반복……
(중략)


마법의 시대. 집집에 만개하는 꽃, 쉼 없이 흐르는 강물. 북적이는 매미의 우짖음을 타고 흐르는 시원한 바람. 산봉우리의 눈은 녹지 않았지만 어떤 동물도 겨울잠에 빠지지 않았다.
마법의 시대. 모두가 마법사들을 존경하고 모두가 풍족하여 다툼은 줄어들었다. 코흘리개 아이는 코를 흘리지 않게 되면서부터 마법을 알게 되었고, 마법은 아이의 인생이 되었다.
마법의 시대. 상상이 더 이상 상상이 아니게 되었다.


아침의 비로 질척한 땅을 밟고 가는 행인들의 바쁘지만 조심스런 걸음이 멎었다. 물기 머금은 공기를 흐르는 시인의 아니리는 그들의 귀를 이끌었다. 그리고 그 소일적인 즐거움은 메마른 목소리로 갈라졌다.
“이 양반아, 어디서 고릿적 얘기를 쭝얼대고 있어.”
소일거리를 방해받은 청중은 이 불만 가득한 농부에게 항의의 표정만 지을 뿐, 굳이 반박의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언뜻 안타까움을 떠올린 시인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아, 제가 한 손님을 불편하게 했나보네요.” 시인은 차분하게 목청을 가다듬고 바이올린을 켰다. “*웃고 있다. 원 안에서 손을 잡고 돌며. 서있지 않으면 세상은 흐려져 간다…….”


[ㅁ]
(전략)
마법<명사>
1. 마력으로써 행할 수 있는 일.
2. 상상의 동력.
(추가 : 이제는 사라진 옛날이야기)
¶ ~으로 나무를 가꾸다.
<동의어> 마술. 요술.

마법-같다(신조어)<형용사>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 같다. 마법-같이<부사>

마법사<명사>
1. 마력을 능히 다루어 마법을 행하는 자.
2. 상상을 현실로 이뤄내는 사람.
(추가 : 이제는 사라진 옛날이야기)
<참고> 마술사. 요술쟁이.

마법적(신조어)<관형사><명사>
마법을 부린 것과 같은. 또는 그것.
¶ 그것은 ~인 일이므로 있을 수 없다. 그 일은 몹시 ~인걸.


나는 사전을 덮으며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귀갓길에 들었던 시인의 아니리는, 할아버지께 듣고, 어머니께 듣고, 또 촌장님께 들으면서 자란 내 마법애호심을 일깨웠다. 하지만 그 설렘이 과거에 대한 안타까운 예찬이며 지금의 부정이 아니고 무엇이랴. 애틋한 상상에서 돌아온 나는 새파랗게 청승맞은 현실에, 정신적으로 몸서리를 치며 다시, 허공에 한숨을 뱉어냈다. 겉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서니 거리에 붙은 방들이 눈에 띠었다.

마법 같은 공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지나간 마법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여러분께,
반짝 벌 음악대.

감각을 파고드는 음악으로 마음을 채운들 마법의 시대가 다시 돌아올까. 이제는 사라진 옛날이야기. 마법은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된.

마법의 시인 제프리 보거트 신작, ‘어둡고도 환한’ 출간!

환하지만 어두운, 그래서 더욱 어둡고도 환한 과거. 이제는 사라진 옛날이야기. 잠깐 동안 달아오를 수 있는 시린 지난 날. 그리고 그 마음처럼,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선 하나가 음으로 대변해 들려왔다. 내 걸음은 약속처럼 그 음의 시작점으로 걸어갔다. 빗물이 고인 물웅덩이의 달은 그 바이올린에도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달을 담은 바이올린은 낮에 보았던 시인에 의해 들려있었고, 홀로 있는 그는 바이올린과 대화를 시도하는 듯한 모습이기에 나 역시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귀뚜라미는 어디선가 대화를 시도하고, 옅은 바람에 나뭇잎이 속닥거렸지만 사위는 너무도 조용했다. 하지만 바이올린이 날 먼저 알아차렸는지 무겁고도 탁한 소리로 정적을 깨었다.
“아.” “아.”
동시에 목소리를 낸 나와 시인은, 각자 다른 의미로 놀라 서로를 보았다.
“안녕하세요. 그 바이올린 소리가 절 이끌었군요.”
“하하, 이것 참. 하모닉스를 연습하는 중이었습니다. 수도에서 많이 쓰는 주법이기에 따라해 봤는데, 영 어렵네요.”
“피리 소리 같기도 한 것이, 바이올린으로 여러 소리를 낼 수도 있군요.”
“예. 매력적인 악기지요.”
이 이방인과의 대화를 굳이 짧게 끝내고 싶지 않았기에, ― 이방인도 그것을 바라는 것 같다는 개인적인 견해를 덧붙여 ― 통성명을 위해 악수를 청했다.
“길버트 파블롭니다. 수도에서 오신 겁니까?”
“예. 윌포드라고 불러주세요. 수도를 지나온 지는 꽤 되었지요.”
“그 길이 방랑이든 여행이든 우리 마을에 잘 오셨습니다. 마을의 자랑거리는 딱히 없지만, 마을에서 유일한 주점인 ‘콧수염에 맥주거품’의 주인만큼은 자신의 맥주가 마법으로도 만들 수 없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거든요.”
“아, 하하하. 맥주라면 환영입니다.”
우리는 주점 주인의 작명 감각부터 지나친 자기맥주애에 대해, 주인이 들었다면 썩 불쾌했을 이야기를 나누며 주점으로 향했다. 이야기는 지금껏 마을을 굳이 멀리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내 호기심에서 비롯된 질문으로 이어졌고, 주점에 들어서기 직전에 윌포드는 나를 흥분케 만들었다. 그 덕에 내 목소리는 조금 갈라지기까지 했다.
“마법이라고요?”
“얼른 맥주로 목을 축이셔야겠습니다. 예, 마법이요.”
잔뜩 흥분한 나는, 그러나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를 주문했다.
“아니, 왜 마법을 찾고 계신 겁니까? 그건 이미 다 사라진 게 아니던가요?”
“아니요. 마법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조용하게 남아있지요.”
“아아.” 나는 약간의 실망과 더불어 솟구친 작은 기대감을 느꼈다. “마법의 시대가 완전히 끝난 게 아닐 수도 있겠군요?”
윌포드는 맥주잔을 잡고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끝났어요. 너무도 아쉬운 일이지만, 마법의 시대는 역사일 뿐이지요. 그래서 더욱 저는 그 조용히 숨어있는 마법을 찾으러 다니는 겁니다. 마법마저 역사가 되지 않도록.”
나는 이 이방인의 마법에 대한 집착을 보며 은근하게 치미는 의문을 우악스럽게 물었다.
“마법사이십니까? 혹시, 윌포드 씨?”
“아닙니다. 저는, 마법사가.” 윌포드는 장난스럽게 미소를 띠었다. “마법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시인이지요. 파블로 씨처럼.”
이 짓궂은 시인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답을 찾는다면 누구나 마법사가 될 수 있겠지요.”


지방의 마법학교와 마법자치제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여 두 달에 한 번씩 여는 회의지만 여전히 빈 의자가 더 많은 수도 마법학교 내 대회의장을 둘러보며, 수도 마법학교장이자 마법사의 수장, 대마법사 엘모 콘라드는 안타까운 웃음을 띠었다.
“시간이 되었으니,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괜찮으십니까?”
이 30대 후반의 젊은 대마법사는 수개월이나 변함없는 60대 이상의 노마법사들이 보이는 시큰둥하거나 무관심한 반응을 하릴없이, 당연히 여기며 회의를 진행했다.
“안건은 줄어가는 마법사와 그로 인한 마법의 감소에 대한 대응책에 대해서,”
“아, 나도 요즘 마법을 쓰기가 힘들어졌어. 밤에 영 힘을 못 쓰겠더란 말이지.”
그나마 몇 자리를 채운 마법사들은 이 음탕한 농담에 낮게 웃으며 대마법사를 조롱했다.
“으흠, 어어, 안 좋은 일입니다. 얼른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의원님.”
누군가 선동하여 대마법사를 희롱하고 대마법사의 반응에 마법사들은 웃음을 그치는 수순. 그것은 엘모가 대마법사가 된 이후 1년이 넘게 이어진 질 나쁜 방식의 탄압이었다. 전 대마법사는 노병을 이유로 퇴임의사를 표명하는 한편 차기 대마법사로 엘모를 지목했다. 투표로 국왕이 선출되는 나라에서 아직까지 지정제를 유지하는 대마법사직의 위임이 30대의 실력이 부족한, 그래서 선생으로 취직을 시도했으나 수도 마법학교의 수위로 전락했던 엘모에게 넘어간 것은 마법계의 행정을 담당하는 늙은 마법사들뿐 아니라 엘모에게도 청천벽력이었다. 전 대마법사가 왜 자신을 지목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행정을 비롯한 마법계의 사소한 일까지 엘모가 해결하는 턱에 잠도 줄여야했다. 늙은 마법사들은 회의를 두 달에 한 번 열 것을 건의하더니, 점차 참석하는 수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매 회의마다 나오는 이 의견은 엘모에게 자괴감마저 들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현재의 일인 대마법사 체제로는 마법계마저 힘들어질 것 같은데, 대마법사를 여러 명 두는 게 어떻소?”
“오, 그거 괜찮구먼. 그 참에 현 대마법사의 자진사퇴도 병행되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그러게요. 그래야 의원투표제로 제도를 바꿀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시오, 대마법사님?”
이 참기 힘든 모욕에도 대마법사는 웃는 낯을 지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고려해보겠습니다. 의원투표제는 저도 찬성하는 바입니다. 다른 의견 없으십니까?” 대마법사는 좌중을 둘러보았다. “없으시면 마치겠습니다. 보름 후에 상천회의장에서 있을 정부회담에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와중에도 대마법사는 자신을 찾아오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충고를 하는 데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건 수위일 때의 그가 누린 가장 즐거운 일이었고, 지금도 그 즐거움이 여전하다는 것이 그로서는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 자식, 용서할 수가 없어요. 언젠가 그 자식 속옷에다가 뱀을 넣고 말 거예요.”
“그거 좋은 방법이구나! 하지만 그 친구가 평생 남자 노릇을 못하게 될 수 있는데, 그래도 괜찮은 거니?”
“당연하죠! 정정당당한 마법대결에서 내 머리에 똥을 끼얹었다구요. 저는 분명 패배를 인정했는데!”
“못된 친구네. 으음, 그렇다면 내가 속옷에 뱀을 넣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을 알려줄까?”
이제는 수위실이 아닌 교장실에서 대마법사와 마주 앉은 곱슬머리 남학생의 눈이 석양을 받아 무척이나 반짝였다.
“네가 훌륭한 마법사가 되는 거야. 그 친구보다 더. 그 때 그 친구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거는 거지. 친구가 되자고. 그럼 아마 그 친구는 네가 속옷에 뱀을 넣는 것보다 더 너를 잊지 못하게 될걸?”
“하지만 전 마법에 소질이 없잖아요.”
“그건 무슨 말이니?”
“다들 그렇게 쑥덕대는 걸 들었는데요. 저처럼 마법에 소질도 없는 애랑 마법학교에서 같이 수업을 드는 게 수치스럽다고 그랬어요.”
대마법사는 한껏 시무룩한 이 남학생의 곱슬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감나무의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그 감나무에 손을 뻗는 네 노력은 분명 널 버리지 않을 거야. 내가 약속할게.”
그 무게가 덜해졌지만 시무룩한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로 하교하는 곱슬머리 남학생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배웅한 대마법사는, 조금 더워졌음을 느꼈다. 기온변환 마법으로 날씨를 원래대로 돌리려고 했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대마법사는 급히 의원들을 소집하면서, 중대 발표가 있다고 덧붙였다.
드디어 이 고집스런 녀석이 자진 사퇴하는구나, 끈질긴 녀석 같으니, 아직 돼먹지도 못한 주제에 어디 욕심에 눈이 멀어서 대마법사를 계속 해먹으려 드는 건지. 며칠 뒤 늙은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이번 회의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회의장에 들어선 덕에, 대마법사의 바람대로 그 넓은 대회의장에 사람이 가득 들어앉았다. 오랜만에 만난 의원들은 회의 시간이 다 되도록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회의장을 어지럽혔다.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의원님들?”
대마법사의 말에 회의장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까지도 그에게 주목했다. 이 얼마나 이례적인 모습인가!
“안건은 마법사 감소에 의한 마법 붕괴의 조짐입니다.”
이번에는 그의 말에 모든 의원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이 약삭빠른 녀석이 우릴 놀려먹는 건가?
“그건 지난번에 나왔던 안건 아닌가?”
지난 회의에서 선봉으로 대마법사를 농락한 의원이 반박을 하고 나섰다. 대마법사는 전과 다르게, 자신도 굳은 표정을 지을 수 있음을 증명하며 답했다.
“다릅니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매도를 당한들 하릴없는 대답이었기에 그것을 실천하려던 의원들은 차츰 표정이 굳어졌다. 기온, 기압, 습도, 온도, 바람, 구름의 양과 비까지 조절한 날씨변환 마법으로 매일이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는 날씨를 유지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더위’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연륜과 함께 능글맞음도 쌓아온 의원들은 얼른 대마법사를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생각엔 대마법사의 능력이 아주 의심되는 바요.”
“그렇소. 검증도 되지 않은 자가 지정제도를 업고 대마법사가 되었을 때부터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이윽고 공격의 물꼬는 세차게 열렸다. 마법사들은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는 대마법사에게 일제히 맹공을 퍼부어댔다.
“이럴 게 아니라 이 자리에서 의원투표제를 가결하고 새 대마법사를 뽑읍시다.”
“그 전에 모양새도 있으니 현 대마법사께서 좀 자진을 해주셨으면 하는데.”
“그거 좋은 말일세. 이대로는 마법계에 재앙이 불어 닥칠 게 뻔해.”
이미 며칠을 밤낮으로 고민하고 감안한 일이기에, 대마법사는 드디어 결의에 찬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눈길을 주지 않는 척하면서도 마법사들은 대마법사의 행동을 주시했다.
“의원님들의 의견이 그러하시다면 잘 알겠습니다. 저 엘모 콘라드는 오늘 회의에서 구두의사로써 일 년하고도 이백삼십칠일 간 임했던 대마법사직의 퇴임을 표명합니다.”
전 대마법사가 의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대회의장을 나서자, 그의 뒤에서는 약속처럼 박수가 터졌다. 늙은 마법사들이 드디어 제 세상을 만난 것이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나무가 말라죽는 일이 생기지만 그것을 가볍게 넘긴 정부에서는 새로운 대마법사에게 보고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차츰 마법의 시대는 종말을 맞는데, 이를 쭉 지켜보던 전 국정감사정보담당관 마틴 로저스가 정부의 안일한 문제대처와 행실을 지적하면서 희대의 금서 ‘사라진 마법사, 숨겨진 진실’을 출판했다. 이 책은 작가와 출판자가 처벌을 받고 모든 책을 대대적으로 샅샅이 뒤져 불태웠음에도 조판을 지켜내, 결국 수면 아래에서 재판되는 기구한 운명으로도 유명했다.


“그 책은 저도 봤습니다. 하지만 대마법사에 관한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는군요.”
“예. 마법계에서는 마틴 로저스같은 의기 있는 사람이 없었나보네요.”
긴 얘기에 잘 시간이 지났지만 졸음은 이미 행적을 감췄다. 그보다 긴 얘기를 하면서도 지친 기색이 없는 윌포드가 경이로웠다.
“전 대마법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엘모 콘라드, 맞나요?”
“예. 맞아요. 그는 수도를 떠나 인적도 마법학교도 마법자치제도 없는 시골에서 재야하게 되지요. 누구도 그를 찾지 않았고, 이전에 그에 대해 궁금해 하지도 않았어요.”
드디어 피곤함을 느꼈는지, 윌포드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 피곤하시겠습니다. 묵을 곳은 정하셨습니까?”
“아니요, 괜찮아요. 잠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요. 으음……. 그 전직 대마법사는,” 그는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고는 맥주 한 모금으로 목을 적셨다. “하아,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아이는 유행하던 흑사병에 목숨을 잃고, 부인은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돌아가시지요. 전 대마법사가 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법의 시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면서요.”
윌포드의 목소리를 빌어 전 대마법사의 박복한 행적이 애달프게 묻어나와, 나는 그가 참으로 이야기에 소질을 가진 시인이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아니다. 사실 다른 생각이 떠올랐지만 부러 감추었다.
“그는 자신의 무능력함에 깊게 원차하며,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거소를 옮깁니다. 평생을 혼자 살던 그는 무슨 변덕에서인지 회갑이 넘어서 아이 하나를 입양하지요. 그 아이와 단 둘이 살면서 그는, 그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을 이야기로 풀어 전해주지만 단 하나 결코 안 가르치는 게 있었어요.”
나는 윌포드의 잘 정돈된 머리, 깊고 검은 눈, 호감을 주는 부드러운 인상을 천천히 뜯어보며 말했다.
“마법이군요.”
“예. 마법이지요. 그는 그 아이에게 오직 마법만 가르치지 않았어요. 모든 것을 닮게 했으면서도.”
다른 손님들은 그 자리에서 참을 청하거나, 혹은 참을 청하기 위해 나선 뒤인 주점은 무척이나 조용해, 나와 윌포드 사이에 끼어든 잠깐의 침묵은 원치 않았던 친구처럼 깊게 내리깔려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잠시 그 묘한 불편함을 주는 친구에게 귀를 기울이듯 말없이 앉아있었다. 취객의 뒤척이는 소리에 이어 빈 잔이 뒹구는 소리, 어느 객석에서 쏟아진 맥주가 바닥과 접점을 만들어내는 소리가 그를 통해 들려왔다. 나는 이제 그 낯선 방문객을 보내기로 했다.
“마법은 무엇입니까, 윌포드 씨?”
“그 질문에는 저도 답할 수가 없네요. 저 역시 그 답을 찾는 중이니까요.”
빈 맥주잔에 닿지 않은 손을 움직여, 윌포드는 그것을 움직였다. 그리고는 마음의 심연에서부터 올라온 듯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아마도……. 제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파블로 씨와 마음을 나눈 것처럼 말이에요.”
늦은 밤, 혹은 이른 새벽, 별들은 무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밝게 빛났다. 그 별들은 창문을 통해 우리를 엿보았고, 또한 윌포드의 눈을 빌어 나와 마주했다. 그 청명함은 나를 비추고, 또 내 마음을 비추었다. 보고 싶어도 그리워해야만 하는 씁쓸함으로, 마법의 시대는 끝났으나 사라지지 않은 채로 머물러있다.


……바로 마법의 시대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여러분의 몫이다. 이미 다 지난 부귀영화가 다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으나, 겉으로 드러난 부귀영화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기에, 크나큰 숙제를 남기며. 마틴 로저스.




* Sigur Ros의 Hoppipolla 도입 부분을 번역하여 차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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