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우주세기가 도래했다. 이는 수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동식 주택이 널리 보급되었다. 그때 집시들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주택이 이동하는데 사업체가 이동하지 못할 이유는 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시들이나 할 짓이라 경멸하며 피하긴 했지만, 집시들, 그리고 자유를 원하는 몽상가들은 자유롭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여행 자금을 벌면서 여행을 하는 것은 이제 색다른 아이디어가 아니게 되었다.

그런 수많은 우주선 중에 그 우주선의 화물칸, 그러니까 집 부분은 남녀 공용으로 이인실이며 꾀나 아늑하게 설계되어 있다. 주방이 존재하며, 옆에 창고에는 일주일 정도의 식량과, 적어도 한 달은 버틸 수 영양캡슐과 최면기계가 존재하며, 그 외에도 돈 대신 받은 수많은 물품들이 쌓여 있었다. 대부분 실패한 물물교환의 흔적과 은하벼룩시장에서도 받아주지 않을 물건들이지만, 잘 찾아보면 가끔은 정말로 팔기 아까운 물건도 섞여 있긴 하다.

앞으로 나오면 운전석이 있는데 이곳, 그러니까 콕핏에는 4개의 의자가 존재했다. 2명이 사는데 의자가 4개씩이나 존재하는 이유는 단순한 설계 미스가 아니라 그 곳에 손님들이 앉기 때문이다. 그 옆에는 수많은 가위들과 속칭 바리깡이라고 불리는 도구들. 유통기한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젤과 샴푸. 그 외 각종 미용 약품들. 그리고 줄, 노끈이 아니라 손톱을 갈 때 쓰는, 과 매니큐어 등이 있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연마제가 있었다.

아무래도 다른 것들은 쉽게 이해가 간다. 종업원 보다 많은 수의 의자, 아니 그전에 바리깡이 존재하는걸 봐서 이곳이 미용실이란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런데 연마제라니? 어째서 연마제가 미용실에 필요한 걸까? 잡동사니를 쌓아놓는 공간은 생활공간 바로 옆인데 말이다.

그 사연을 이야기 하자면 역시 꼬마의 투덜거림으로 시작하는 게 좋을 거 같다. 자 들어보자. 연마제와 영웅, 그리고 이발사의 이야기를.

“선배 아무리 생각해도 여긴 장사가 될 거 같지 않아.”

그날도 그 꼬마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손에는 원래 들려 있어야 할 장사 도구 대신 마음의 양식이 들려있었다. 나는 마음의 양식도 좋아하지만 몸의 양식을 더 좋아한다고. 고기가 먹고 싶어! 라면서 계속해서 투덜거린다.

“내 생각도 그래. 하지만 세, 하지만 일단은 여기서 돈을 모아야 해. 다른 곳으로 가려 해도 일단은 연료가 필요하단 말이야.”

그 여자는 나지막하게 설명했다. 또한 같은 양식이라도 그건 불량식품이고 고기 축에 속하는 고전을 읽으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이거 전 행성에서 돈 대신 받은 거라고. 돈이 없다니까 책이라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건 선배야. 그리고 내 이름은 저르세야 세가 아니라고!”

키는 대략 160. 그 나이 또래의 남자치고는 키가 작고, 그 작은 키 때문에 매일 우유와 콩나물과 멸치를 먹고 있는 꼬마, 저르세가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이름을 부르면 혀를 절 거 같은 그런 이름으로 널 부르고 싶지 않은걸 세. 억울하면 너도 나를 령으로 부르렴. 누나에게 그런 말버릇이 뭐냐고 야단치진 않을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 책 말인데, 맞아, 그건 그때 이발비 대신 받은 거야. 한마디로 팔 물건이라고! 그러니 니가 읽고 낡게 만들어서 상품가치를 떨어트리면 안되. 그러니 읽지마 새. 상태가 좋아야 돈도 더 많이 받지! 그래야 고기라도 먹을거 아니겠어?”

선배라고 불린 여성은 근무 중에 책을 읽는 것도 안 된다고 말하며 책을 뺏었다. 누나는 원래 이름이 령이잖아. 라고 투덜거리면서도 꼬마는 순순히 책을 넘겨주었다. 책은 세가 책을 꺼내기 어려운 곳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선반 위 말이다. 세는 툴툴거리면서 청소를 시작했다. 령은 그 장면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청소 하는 김에 창고도 좀 정리하라는 말을 잊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재빨리 어서 오시라고 외치려던 령은 머뭇거릴 수 밖에 없었다.

“손님이 왔는데 인사도 안 하다니 불친절한 가게 구만.”

통합우주에서 가장 친절한 가게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해당 성운에서 친절한 가게 축에 속하는 미용실은 자기 변명의 기회를 잡는 대신 누구나 알 만한 사실을 나불대고 말았다.

“어 저, 손님. 저희는 미용실 인데요.”

“너네 간판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커.”

“아니 그게 아니라 저희는 주로 모발을 관리하는데 손님은 저 그러니까…….

본인 입으로 손님이라 말했으니 이분은 분명 손님일 것이다. 하지만 이 손님은 약간 기괴했다. 스톤 골렘. 인간 크기의 거기다 꾀나 근육질로 보이는 스톤 골렘이 문을 열고 들어와 있었다.

다시 정리하자면, 미용실에 걸어 들어온 돌덩이 상대로 무슨 영업이 가능할까 두 남매는 고민하고 있었다. 선배, 설마 석공 일도 개업했다고 간판에 써 놨어? 하는 눈초리로 세는 령을 쳐다보고 있었다. 령은 정중하게 내보내야 할지 아니라면 일단 앉으라고 해야 할지, 만약 앉으라고 한다면 의자가 무게를 버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거 간판 보니까 두피 마사지 서비스나 피부 캐어 시스템 등도 가능하고 되어 있더구먼. 설마 내가 두피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셈은 아니겠지?”

돌덩이는 이렇게 말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남매가 생각한 두피는 인간, 아니 적어도 좀더 연한 그것이지 돌덩이가 아니었다. 돌덩이를 눌러서 마사지를 하라니! 그럴 힘은 없다고! 라고 절규했다. 손님이 없어서 입 밖으로 꺼냈다면, 아마 남매는 서로가 오랜만에 일치했단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음, 저 그러시다면 앉아 주시겠어요?”

다행이다. 다행히 돌덩이가 앉아도 의자는 부셔지지 않았다. 며칠 전에 새것으로 교체해 두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누나는 안도의 한숨을 쓸어 내렸다. 그리고 그때까지 멍하니 있던 동생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뭘 어떡해야 하는 거지?

“자 그럼 너희들은 뭘 해줄 수 있지?”

“아 예, 저 그럼 손님 두피 마사지 해 드릴까요?”

습관대로 트레이를 끌고 오면서 령은 생각했다. 일단 트레이 가져오긴 했는데 뭐부터 해야 하는거지? 내 카리스마는 전에 있던 행성에 두고 왔나? 역시 이 행성이 나쁜 거야. 등등의 이런 저런 생각들은 손님의 한마디와 함께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뭐 좋네. 해 보게.”

“예 잠시만요.”

트레이 하단에서 관련된 약품들을 꺼내고 장갑을 껴서 만발의 준비를 끝낸 령은 두피 마사지를 시작했다. 그리고 거울을 통해 눈으로 시작했다는 걸 확인한 손님은 말한다.

“지금 뭔가를 시작한 게 맞나? 거울을 보면 뭔가 시작한 거 같은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단 말야.”

아무래도 이상한 기분이 적중한 거 같다. 돌덩이를 감동시킬만한 손재주를 령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가씨는 힘이 너무 약한 거 같군. 저기 멍하게 서있는 저 꼬마에게 한번 받아보고 싶은데 상관 없겠지?”

령은 아무래도 카리스마뿐 아니라 자존심도 전 행성에 버리고 온 거 같고, 둘 다 찾으려면 다시 방문해야 할거 같다고 느끼면서 순순히 자리를 비켜 주었다. 이제 누나 대신 꼬마가 울상이 될 차례였다.

“예, 물론입니다. 새! 이리와!”

나지막하게 웃으면서 울상이 된 세를 부르는걸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죄송하지만 손님, 저도 힘이 좀 부족할거 같은데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거 잠시만 기다리면 무슨 수가 생긴다는 건가? 재밋군. 기다려 주지.”

돌덩이의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섞여있는 것 같았다. 웃음이 눈으로 보인다면 손님의 몸을 이루는 돌멩이 사이 사이로 비웃음이 삐져나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창고로 뛰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령은 그렇다고 나만 남겨두고 가면 어쩌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색한 침묵이 미용실 문을 두드리며 여기서 나를 부르는 거 같아 찾아왔다고 문을 좀 열어달라고 할 나에 돌덩이는 침묵을 멀리 내 쫓아 버렸다. 물론 어색함은 좀 더 부른 거 같긴 하지만 말이다.

“아가씨는 필요 없어진 영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지막한 슬픔이 담겨 있는 목소리였다. 물론 다른 생각, 돌멩이의 결과 실제 머리의 혈의 관계를 파악하면 두피 마사지가 가능할까? 라는 지극히 프로적인 고찰을 하고 있던 령은 잘 듣지 못해서 멍청하게 다시 물어봤지만 말이다.

“하긴, 자네는 영웅이 되어본 적이 없으니 모르겠군. 허언이었네. 그나저나 자네 동생은 언제 오나?”

주인을 무시하는 손님과 어린애를 무시하는 노인네를 반씩 섞어놓은 뉘앙스로 돌덩이는 질문하였다. 령이 어떻게 답해야 고민하는 순간 문이 부셔지면서 꼬마가 대답을 대신했다.

“기다리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두피 마사지 해 드릴께요.”

동생이 왔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쓸어 내리던 령은 뭔가를 깨달았다. 문이 부셔졌다는 것을 말이다. 맙소사 설마 창고에서 그걸 꺼내온 건가? 령은 빠르게 몸을 옆으로 피하면서 외쳤다.

“세!”

여성 특유의 ㅉㅣㅅ어지는 비명이 미용실 구석구석을 찔렀다. 세도, 손님도 령을 돌아봤다.

“왜, 왜 그래 선배?”

“OPG를 끼려면 연습을 더 해야 한다고 했잖아!”

“안 끼면 되잖아 안 끼면!”

OPG, 오거 파워 건틀렛. 모든 사내 아이들의 로망. 단순히 은은한 빛을 내는 고급스러운 장갑으로 보이겠지만 끼면 가녀린 여자라도 오우거와 팔씨름이 가능하게 해 주는 장갑이다. 지금은 일단 문 부숴버린 것도 있고 하니 야단치지만, 나중에 고기라도 사 줘야겠다고 령은 생각했다. 확실히 이거라면 돌덩이에도 통하겠지.

“아 죄송합니다. 손님. 두피 마사지 해 드리겠습니다.”

“흠 일단 내 머리에 뭔가 느끼게……. 시원하군.”

여전히 빈정대려는 손님은 시원하다고 느낀 후 감상에 빠져들어간 듯 하다. OPG를 낀 손으로 마사지를 하는데 나오는 말이 고작 ‘시원하군.’이라니. 돌머리도 어지간한 돌머리가 아니네. 그래도 효과가 있어. 역시 전에 용 구슬과 바꿔서 머리에 존재하는 혈들을 배운 게 어리석은 선택만은 아니었어. 라고 령은 속으로 생각한다. 세는 여전히 삐쭉 대고 있었다.

“손님 기분이 어떠십니까?”

“렘.”

“네?”

“내 이름은 손님이 아니라 렘이네. 그렇게 부르게.”

시원함과 서운함이 동시에 묻어나는 약간은 서글픈 목소리로 손님은 말했다.

“네. 그렇다면 렘씨, 시원하세요?”

령은 억지로 짜낸 웃음을 담아 손님에게 물었다.

“맞아 내가 바로 렘이지. 흉측한 돌덩이도 뭐도 아니고 렘이지.”

렘은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듣고 싶은 말은 없다는 듯이 행동했다. 령은 곤란해 했지만, 세는 장갑의 원한이 남아있는 건지, 무시하고 뒤를 향했다.

“흉측한 돌덩이라뇨. 아닙니다. 미남이세요.”

“그런 말 하는 게 직업이라니 불쌍하군. 그래 분명 감마선을 쬐기 전까진 미남이었겠지. 자네도 나중에 쬐바. 투명해지는 능력이나 ESP라도 얻을지 누가 알아?”

“아니오 손님 저 그러니까…….”

“아니 됐네. 투덜대는 돌 더미는 어딜 가도 인기가 없지. 그래도 오랜만에 미용실에 올 수 있어서 좋았네. 이 별의 미용사들은 내가 가게 근처에만 가도 소금을 뿌릴 기세라 갈 수가 없었거든.”

령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마사지에 집중했다. 그런데 이게 끝나면 뭘 해야 하지? 팩? 일단은 손님을 재워야겠다고 생각한 령은 비공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맙소사, 빌런들이 날뛸 때만 해도 감마선을 쬘 용감한 자원자였고, 빌런들을 무찌를 땐 우리들의 영웅이었지. 렘! 렘! 렘! 그렇게 환호하던 사람들이 빌런들이 없어지고 우주경찰이 들어와 치안이 안정되니까 돈 몇 푼 쥐어주고는 흉측한 돌더미, 과거의 유물, 하아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돌이라 그런 걸지, 비공이 효과가 없는 건지 렘은 잠들지 않았다.

“저 손님, 아니 렘씨, 흥분을 가라 앉히세요. 머리 시원하시죠? 한숨 주무시는 게 어떠세요?”

“그러고 보니 어쩐지 피곤하군. 가능하다면, 한숨 자겠네.”

설마 정말로 잠들진 몰랐던 령은 놀랐다. 창고 정리를 대충 끝내고 먼지투성이가 된 세가 옆으로 왔다.

“이제 어쩔 거야? 팩이라도 할 거야?”

“나도 생각해 봤는데 역시 무리겠지.”

“하지만 그거밖에 없잖아. 일단 팩이라도 씌우고 생각하는 게 어때 선배?”

평소에도 그렇지만 저 선배라는 말이 매우 밉상스럽게 들린다고 생각하며 트레이 아래서 두 번째 단에서 주섬주섬 팩 관련 용품들을 꺼내기 시작한다. 세도 그것을 잠자코 돕는다.

“아 그리고 아로마 테라피도 하자. 보니까 기분이 많이 상하신 거 같던데,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건 다 도와야지!”

그래도 내 동생 아니랄까 봐 마음씨는 참 고운 아이 같아서 다행이다. 하지만 나중에 돈 청구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감추지 않으면서 아로마 테라피에 필요한 병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하는 령이었다.

“그럼 수고해. 나는 뒤에 창고 좀 정리할게.”

아니 역시 밉상이다. 나랑 이 돌덩이만 남겨두고 떠나지마! 라고 외치고 싶지만 손님이 일어날까 봐 말 하지도 못하고 가슴만 태우는 령이었다. 나중에 용돈 깍을꺼야. 흥칫쳇풍.

문이 열려있지는 않지만 바람이 부는 거 같다. 기분 나쁜 바람은 아니고 상쾌한 바람이. 령은 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손님의 얼굴을 바라본다. 아무래도 본 바탕은 미남인 거 같다. 하지만 돌덩이 특유의, 그리고 숱한 상처로 거친 피부. 그리고 보이진 않지만 마음 속으로도 수많은 상처자국이 나 있을 거 같은 느낌이 감도는 분위기. 다행이 비공을 찔려서인지 마사지의 효과인지 잠을 자는 얼굴은 평온하기만 하다.

그래도 아로마 테라피와 마스크 팩 등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일어나고 시술한 뒤에 청구서만 제시하면 된다. 전직 영웅이라니 돈은 많을 것이다. 별로 과잉청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리고 만약 돈을 받지 못한다면, 다른 물건 이라도 받고 지난 행성에서 받은 거 몇 개와 별로 팔고 싶지 않은 물건 몇 개를 팔아서 연료를 채우면 되리라. 아무래도 이 행성은 우리를 별로 환영하지 않는 거 같다.

아, 아무래도 일어나려는 거 같다. 혹여 라도 기지개에 맞지 않게 약간 뒤로 물러선 뒤, 속으로 멘트를 정리해 본다.

“하암. 잘 잤군.”

“아 일어나셨습니까 고객님? 아로마 테라피와 팩 준비하였는데 받아보시겠습니까?”

“렘 이라고 불러달라고 했을 텐데, 뭐 좋네. 받아보지. 미용실에 이렇게 온건 오랜만이지만, 미용실에 이렇게 오래 있는 건 처음이자 마지막일 테니 말이네.”

“네 렘씨. 이 인섬니아라는 아로마는 기분을 진정시키고 숙면을 취하는 역할을 하고요, 이 ㅂㅞㄺ킹더로 같은 경우 활기찬 아침을 시작할 수 있게 해 드립니다. 지금 한숨 주무셨으니 ㅂㅞㄺ킹 더로향 맡으시면서 팩을 해보세요. 팩 같은 경우, 저희가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요, 페이스 허거 라는 팩이거든요. 각질 제거 효과가 탁월한 팩인데, 이 팩을 시술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저 얼굴이 각질인지 돌덩이인지는 논쟁을 한다면 100이면 100, 돌덩이라고 하겠지만, 이거보다 강력한 팩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령은 생각했다.

“어느 정도 걸리지?”

“한 20분 정도 하신 후에 세안 도와드리겠습니다 렘씨.”

고객님이라는 단어를 억지로 렘씨로 치환시킨 후에 미소를 지은 령은 우주괴수의 새끼로 만들어진 페이스 허거 팩을 렘의 얼굴에 바르기 시작했다. 피부에 좋다지만, 역시 이 감촉은 맘에 안 들어. 그래도 좀더 깨끗한 얼굴이 되겠지? 아마도?

“내 고객님 팩은 다 끝났고, 한 20분 정도 향 맡으시면서 기다리시어야 하는데, 말씀 하셔도 됩니다. 간단하게 이야기라도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렘씨?”

아니 그래도 말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는 힘드네. 그래도 뒤에 렘이라고 붙였으니 분노하진 않을 거라고 령은 생각했다.

“하 이 영웅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건가? 뭐 가서 다른 일을 해도 좋네. 억지로 비위 맞춰줄 필요는 없어. 나를 이름으로 부르는 걸로 충분하네.”

진심으로 뒤에 창고로 가서 세가 하는 일을 도와주고 싶은 령이었지만, 손님은 왕, 돈은 신, 왕은 신에게 선택 받은 자. 끊임없이 비위 맞춰줘야 하는자. 그러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미소를 띄우며 진심으로 이야기 듣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머리카락 없이 이방인의 미용실의 문을 두들길 정도로 외면 받는 영웅에 대한 동정심과 조금 있다 일반인 기준에선 과할지도 모르게 청구될 청구서에 대한 불만을 막기 위한 사전작업이 어느 정도 깔려 있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영웅이 그렇듯 나는 평범한 소년이었네. 아니 평범한 고아라고 해 두는 편이 맞겠군. 그러던 도중에 기관이란 곳을 알게 되었네.”

그리고 렘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돈을 준다고 해서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는, 그렇지만 초능력을 얻을 수 있는 감마선 시술을 받은 이야기, 돌덩이가 되어서 처음으로 구해준 소녀의 이야기, 그리고 우주 경찰이 찾아온 이야기.

“이 행성은 최근에 UU에 가입하였네. 그리고 UU에 가입함과 거의 동시에 우주경찰이 이 행성에 찾아왔지. 그들은 한마디로 멋졌네.”

우주경찰은 조직화된 영웅들이었다. 자신이 혼자이기에, 조직이 아니기에 할 수 없었던 수많은 일을 우주경찰이 해결했다.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일에서부터 심지어 자신만이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대 악당들을 물리치는 일까지…….

“그렇게 우주경찰이 이 행성의 치안을 바로잡고, 대부분의 악당이 우주로 나가 우주 해적이 되어버리자 자연스럽게 나는 할 일이 없어지더군. 그 이후는, 보는 대로네. 먹지 않기에 식당도, 머리카락이 없으니 미용실도, 아무 곳도 재대로 갈 수 없을 뿐이지. 돈은 많지만 돈이 부르는 건 친구가 아니라 사기꾼들뿐이더군. 대적할 빌런이 없는 히어로는 히어로가 아니라 거추장스러운 이웃일 뿐이야.”

차라리 인섬니아를 사용했어야 했다고 령은 속으로 생각했다. 기껏 기분을 좋게 만들어 놓고선 이게 뭐 하는 짓인 걸까?

“저런, 렘씨, 저 안되셨습니다. 그래도 이 향 맡고 기운 내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는 좋은 일이 있겠죠.”

어줍잖은 위로 고맙다는 건지 아니면 여전히 이죽대는 건지 팩 아래로 살짝 올라간 입 꼬리가 보였다.

“아 팩 재거해 드리겠습니다.”

복잡한 마음이지만, 어차피 고객과 주인, 이 팩 제거하고 당신의 지갑에서 돈만 받으면 이 기분도 끝이야. 하지만 어쩐지 좀 미안하단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세심하게 페이스 허거를 때어냈다. 렘의 피부는, 아쉽지만 그대로였다. 대부분의 경우 거의 새로 태어난 듯한 효과를 주는 페이스 허거조차 돌덩이에는 효과가 없는 거 같았다. 령은 가까스로 한숨을 삼켰다.

그때였다. 이발소의 문이 열리면서 레이저 총을 든 3명의 사내들이 나타났다.

“우주선을 내놔라!”

반사적으로 령은 손을 머리위로 올렸다. 이런 일에 익숙하단 듯이. 손을 올리면서 비녀에 있는 스위치를 눌렀다. 이제 곧 세도 올 것이고, 자동 방위장치도 가동될 것이다. 겨우 레이저 총 3정 가지고 우주선을 털려 하다니 꿈도 갸륵하다고 령이 생각할 때 렘이 일어났다.

“조금 깎아주겠지?”

렘은 팔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했다. 건물 안에서 격투경험이 많은 듯, 한번의 휘두름으로 세 명은 모두 밖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렘은 금방 따라갔다.

“내가 죽이기 전에 경찰에 신고하게.”

멍하니 서있던 령은 빌어먹을 이라고 작게 중얼거리고 단분자 커터를 들고 나온 세에게 그거 머리 깎을 때 쓰는 거라고 이야기 한 뒤 경찰을 부르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래도 우주선을 뺏으려고 꾀나 준비를 많이 한 듯, 악당들은 렘을 상대로 잘 싸웠다. 하지만 전직 히어로, 현직 회의주의자인 렘은 몸 자체가 무기였다.

팔을 한번 휘두르면 악당 하나가 저 멀리 처 박혔다. 악당도 몸을 개조한 듯, 한방에 나가 떨어지진 않았지만, 그냥 그것뿐이었다.

악당들의 발차기는 매서웠다. 세는 렘이 맞는걸 보고는 자신의 그곳을 보호했다. 령또한 어쩐지 아프다는 게 뭔지 알 거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자신의 발로 악당에게 똑같이 되갚아 주었다. 세는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고, 령은 악당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악당은 렘에게 주먹질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주먹을 쥐고 흔들었다. 렘은 때릴 가치도 없단 듯, 가볍게 들어선 내동댕이 쳤다. 분명 일어날수 있어 보였지만, 악당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품 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조심해요!”

섬광이 허공을 가르고 렘의 뺨을 스쳤다. 하지만 그곳에선 피조차 흐르지 않는다. 경고조차 무의미, 압도적인 강함이었다. 렘은 걸어가 얼어있는 악당에게 총을 빼앗아 가볍게 우그러트려버렸다. 에너지 캡슐이 손 안에서 폭발했다. 물론 렘의 손은 여전히 굳건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악당들을 두들기던 렘은 묶을걸 달라고 했다. 전 영웅의 강함에 압도되고 있던 령은 아직도 반쯤 정신이 나가있는 세에게 가서 전선을 가져오라고 했다.

묶지 않아도 이미 걸을 수 없어 보이는 악당들은 경찰에게 인도되었다. 경찰은 렘에게 전에도 말 했지 만으로 시작해서 다신 이러지 말아달라는 말로 끝나는 긴 설득을 했고 렘은 가볍게 무시하면서 얼마냐고 물었다.

“저, 그런데 몸이 만신창이신데…….”

“모처럼 한 팩이 엉망이 되었지만, 그래도 뭐 상관없네. 내가 움직인 탓이니까. 집에 가서 샤워라도 해야지 어떻겠나.”

“저 잠시만요, 마지막으로 서비스 하나만 더 받아보시지 않겠습니까 고객님? 별로 오래 걸리진 않아요.”

뭐 어쩌려고? 너무 그러지 말고 나만 믿어 선배. 하는 눈빛이 재빠르게 교차되었다. 령은 기어코 한숨을 쉬고 말았다. 세는 렘을 이끌고 다시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그것을 꺼내왔다.

“뭔가 그것은?”

“불쾌하게 생각하시진 마세요. 연마제입니다. 고객님 피부에 광택을 줄 겁니다.”

령은 기가 차다는 듯 세를 바라보다가 렘을 바라봤다. 역시나 렘은 약간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체 연마제를 어디서 찾아낸 건지 모르겠지만. 자기 피부에 연마제를 바른다는데 좋아할 사람이 있겠냐! 제정신이야 세? 라고 외치려는 순간 렘이 말했다.

“렘이라 부르게.”

“예, 렘씨 지금 머리와 얼굴 쪽, 연마 할 텐데 혹시 아프시거나 하시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네. 시작하게나.”

불만이 있는 건 이름 부르지 않아서였나. 령은 허탈했다. 그리고 가게에는 연마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렘의 표정은 편안했다. 마치 가려운 곳을 긁을 때 지을 수 있는 그런 표정을 지었다. 연마기가 지나간 곳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연마기를 돌리는 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얼마 걸리지 않는다고 말은 했지만, 꾀나 꼼꼼하게 하느라 꾀나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저 돌가루들 치우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 하지만 걸리는 시간에 비례하여 렘의 피부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가능하다면 등 쪽도 좀 해주겠나? 배 쪽은 좀 기분이 거북할거 같지만 등 쪽은 해 줬으면 하군.”

“알겠습니다 렘씨. 금방 해드리죠.”

속으로 뭐라고 외치던 것으로는 내색하지 않는 것이 프로의 자세라면, 세는 이미 훌륭한 프로다. 마지막으로 깔끔하게 등의 근육을 세공하고 연마하여 반짝 반짝하게 빛나게 되었다. 물론 그와 반대로 가게의 내부는, 처참하다고 설명해 두겠다.

“오늘은 너무 늦었군. 청구서는 이 수표로 처리하도록 해. 이 행성 내에서, 그리고 이 근처 은하계 일부에서는 어디든지 통용 가능 할 거야.”

렘은 종이 한 장을 내밀며 말했다. 몸에서 광채를 내뿜었지만 이 남매에겐 렘의 광채보다는 평범한 종이 한 장이 더욱 광채를 내뿜는 것처럼 보였다.

“예, 감사합니다. 렘씨. 저희는 이 행성시간으로 다음주에 떠날 예정이고요, 그전에 볼일 있으시다면 다시 들려 주세요.”

“이번 주 말에 수표 조회를 하네, 물론 어느 정도는 팁으로 이해 할 수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불합리하다면, 나는 자네들도 악당이라고 생각하겠네.”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렘은 말했다. 남매는 절대 그런 일 없을 것이고 추후에 다른 관리 필요하시거나 아로마 향 구입 등을 원하신다면 다시 방문해 달라고 말했다. 렘은 그렇게 가게 문을 나갔다.

“저 근데 누나, 청소는 어떻게 하지?”

“바깥에서 할 걸 그랬지 역시?”

한 손에는 백지 수표를 들고 령은 드디어 한숨을 내 쉬었다. 진작에 그 이야기 했으면 당연히 바깥에서 했지! 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세는 빗자루를 챙기러 갔다.

“그냥 우주선 점검 맞길 겸 해서 내부 수리 맡기고 오늘은 돈도 벌었으니 외식이나 하자. 세.”

일단 종종걸음으로 뛰어가는 세를 말리자. 그리고 내일은 외식을 하고 우주선은 수리 센터에 맞겨서 날아가기 위한 최종 점검을 하자. 물론 그 쪽에서 청소도 해 줄 것이다. 그런 다음엔 최대한 합리적인 가격을 쓰고 허락을 맞아 수표를 인출하자. 그러기 위해 일단 씻고 자자. 세 번째 달은 하늘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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