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겁에 질린 그녀가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하자 남자가 쫓아와 과격하게 덮쳤고, 그녀는 바닥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저리가! 이 미친놈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발길질을 해댔다. 이 짐승 같은 남자에게 물어뜯기고 싶지 않았다.

남자가 씩씩거리며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고, 그녀는 발버둥 치며 남자의 손은 힘껏 깨물었다. 끄응, 남자가 아픔을 참으며 무섭게 부라렸다.

“씨발! 입 좀 다물어, 이 여자야!”

“······!”

그녀는 놀라 험악한 남자를 보았다. 온 신경이 굳은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뒤에서 남자 하나와 여자가 쫓아왔고, 여자가 침착하게 그녀를 살폈다.

“멀쩡하군, 아직 감염되지 않았어.”

위에서 누르던 남자가 힘으로 그녀를 일으켜 세웠고, 그녀는 이성이 돌아오며 세 사람을 살폈다. 험상궂은 남자와 단단해 보이는 여자, 그리고 혼혈인 듯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맙소사! 당신들은 그들이 아니군요!”

그녀는 비로소 안도가 되었고, 긴장이 풀리자 자신도 모르게 말들이 터져 나왔다.

“대체 어떻게 온 거죠? 밖은, 밖은 이제 괜찮은 건가요? 폭도들은 물러갔나요? 경찰은, 경찰은 요······?”

강재가 다가와 그녀를 잡았다. 그녀는 쏟아 붓던 말을 멈추며 그를 보았다. 이국적인 얼굴이 잘 생긴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해요, 여긴 당신 혼자예요?”

“아, 아뇨. 후배랑 동료 한 사람이 있어요. 근데 지금······.”

“그들은 지금 어디 있죠?”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 이 사람들에게 진이와 승목 씨 위치를 알려주어도 되는 걸까?

그러나 그때 진이가 먼저 자신의 위치를 밝혔다.

“아악!”

사람들은 위쪽을 올려다보았고, 그녀는 다시 막연한 불안감 속에 휩싸이는 것을 느꼈다. 아침에 보았던, 미친 남자 밑에 깔려 소리를 지르던 진이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사람들을 밀치며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류박사 방 문을 열자 정말로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번엔 모르는 남자가 아니라 승목 씨였다. 진이는 도망치려는 듯 창문 앞에서 창살을 부여잡고 악을 쓰고 있었고, 어느새 의식이 돌아온 승목 씨가 진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흔들어대고 있었다. 잠옷이 찢어진 채 드러난 진이의 예쁜 가슴(그녀는 진이가 자신의 가슴에 자신감 있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에선 이미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승목 씨는 진이의 가슴을 물어뜯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

그녀는 굳어 버렸고, 다시 다리가 후들거리는 걸 느꼈다.

그리고 승목 씨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입 주위에 진이의 피로 흠뻑 젖은 채 승목 씨는 그녀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퀭하면서도 공격적인 눈! 그녀는 같은 눈을 본 적이 있었고, 그는 이미 그녀가 알던 승목 씨가 아니었다.

그때 뒤에서 제마가 쫓아 들어오며 그녀를 밀쳤고, 그녀는 다리가 풀리면서 소파 위로 쓰러져야만 했다.

제마가 엽총을 겨누자 승목 씨, 아니 이미 미쳐버린 그는 사냥꾼에게 몰린 짐승처럼 그르렁거리며 노려보았다.

“소리를 내면 안 돼.”

뒤에서 들어온 이화가 말했다.

“젠장, 나도 안다고요!”

제마는 엽총을 거꾸로 움켜쥐며 승목에게 다가갔고 이어서 승목 씨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개머리판으로 승목 씨의 머리를 내려찍으며 쓰러뜨린 제마는 그의 머리를 가차 없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퍽, 퍽, 퍽! 승목 씨의 입에서 고통스런 소리가 새나왔다. 죽어가는 짐승의 울부짖음이었고 잠시 후엔 그 소리마저 끊겨버렸다.

이번엔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모두가 미쳐가고 있었다. 승목 씨도, 저 흉악한 남자도 그리고 사람들도. 모두가 미쳐가고 있었다.

강재가 그녀를 잡으며 진정시켰다.

“진정해요, 저것들은 이미 사람이 아녜요. 짐승이라고!”

그것 네놈들도 마찬가지야!

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악을 썼다.

“놔! 놔! 저리가, 이 미친놈들!”

그녀가 노려보자 강재는 머뭇거렸고, 뒤에서 이화가 대신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 입 다물지 않으면 놈들이 얼씨구나 하고 몰려들 거야!”

“······!”

그녀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이화를 보았다. 그녀도 미친 폭도들을 불러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이화는 떠는 그녀를 무시하며 창가로 가 진이를 살펴보았다.

“오른쪽 어깨와 왼쪽 가슴을 통째로 물렸군, 가망이 없어.”

“내가 처리하죠.”

제마가 엽총을 고쳐 쥐며 말했다.

그녀는 그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직감했고, 쫓아가 진이를 몸으로 막으며 세 사람을 노려보았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당신들!”

“놔뒀다간 이 여자도 저 자처럼 될 거야.”

이화가 표정 없이 그녀의 보며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진이를 보았다. 진이는 이제 온 몸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심한 경련을 일으키는 중이었고, 이미 눈이 돌아가 있었다.

“2차변이야. 그 여잔 이제 곧 인성을 잃게 돼.”

“그럴 리가 없어!”

그녀는 이화의 말을 부정하며 진이를 위로했다.

“괜찮아 진이야, 치료를 받으면 살 수 있어. 지금 사람들이 오고······.”

“이 여자 이름이, 진이 인가?”

“······!”

그녀가 이화를 돌아보았다. 이 여자는 무슨 뜻으로 묻는 거지? 무슨 뜻으로······ 그녀는 두려움을 억누르며 물었다. 목소리가 떨려왔다.

“당신들, 대체 누구야······!”

이화가 잠시 대꾸 없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공격적이진 않았지만, 또 다른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는 단호한 이화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진이라는 여자를, 제거하러 온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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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연재는 11월 말 경입니다. 고맙습니다.
조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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