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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갈림길이 없는 미로

2020.12.14 07:4312.14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 돌이킬 수 없는, 가스파 노에 作

 

누군가는 사막에 길이 있다고 말했다.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고 마을과 마을 사이의 오아시스와 오아시스를 연결하고 오아시스와 오아시스 사이의 무수한 점들을 연결하는 길이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낙타가 짊어진 사람들이 짊어진 짐이 그 길을 따라 움직인다고 말했다. 돈과 비단, 도자기와 은, 찻잎과 향신료가 그 길을 따라 전 유럽으로 퍼지고, 마침내 유럽은 중세의 야만에서 벗어나 근세로 향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글쎄. 그들도 이 사막을 겪고 나면 그런 말은 못할 것이다.

오늘 본 사막은 그때와 다름이 없었다. 아니, 내게는 사막의 차이를 감식할 눈과 지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막이 그때와 같을 리가 없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자명한 일이다. 오로지 내가 그 차이를 알지 못할 뿐. 그러나, 그 광활함와 무수함 사이에서 질식당하지 않고 돌아온 것에 감사해야 할 미물에 불과한 내가 어찌 그 다변하는 모습을 알고자 할 수 있겠는가. 그래. 나는 사막의 초입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내가 일행을 멈추고서 차에서 내려 불모의 대지에 취한 것 또한 그 기시감 때문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사구와 그 사구를 끝없이 잇는 모래알, 그리고 그 모래알을 잇는 탄소와 실리콘 같은 개별의 원자들. 내게는 그 모든 것들이 그때와 같아 보였다.

그때, 나는 마르코 폴로처럼 신세계로의 여행이라는 환상에 젖어 있었다. 고통스러운 집에서 도망쳐서 길거리의 아이로 8년을 자랐다. 폭력과 파괴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나는 언제나 더 나은 삶을 꿈꿨고 정착하는 삶을 꿈꿨다. 내가 아주 어릴 적에는 눈앞의 한 사람만 때려눕히면, 눈앞의 한 위기만 넘기면 그래도 편해질 것이라 믿었다. 그때는 그래도 되는 시기였고, 그럴 수 있는 시기였다. 그러나, 때려눕히면 다른 녀석이 내게 달려들고 그 녀석도 때려눕히면 또 다른 녀석이 달려들었다. 그 사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그 사슬을 관망하며 비웃는 인물이 되어 있을 거라는 믿음은 산산조각났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그 깨달음은 내게 최소한 그 사슬로부터 도주하는 꿈을 꾸게 만들었다. 내가 때려놉힐 녀석도 날 때려눕히려는 녀석도 없는 곳. 그곳이 내 샹그릴라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곳은 없었다.

그 빈민굴, 매음굴에서 도망 나와 내가 도착한 곳은 야생이었다. 그곳은 나를 정신적으로 후려치고 때려눕혔다. 나는 때려눕힐 놈을 찾아 헤맸지만 그런 놈은 없었다. 나는 날 후려친 놈을 찾았지만, 그런 놈은 없었다. 나는 휘청거리기만 했다.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일하고 일하고 일해도, 나는 내 몸에 중심 하나 잡을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샹그릴라를 생각했다. 이것 하나만 하면. 지금 하는 일만 끝나면. 내일은 꼭. 다음 달에는 무조건. 내년에는 반드시. 그런 식으로 나는 샹그릴라로 가는 꿈을 꿨다.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그 꿈을 꾸게 했다. 샹그릴라로. 고통도 죽음도 없는 곳으로.

그날, 아내는 나를 말렸다. 뭣하러 그럴 데를 가느냐고. 그 긴 여정을, 그 위험한 데를 왜 가느냐고. 나는 그랬다. 일이니까 간다고. 갔다 오면 다 잘 될 거라고. 회사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니까 다 잘 될 거라고. 거기서는 내 이름 붙은 사무실도 받고, 월급도 오를 거라고. 아내는 기차역에서 나를 배웅했다. 꼬박 이틀을 달려서 나는 사막의 끄트머리에 도착했다. 그곳에 모인 조사단, 혹은 원정대는 모두 저마다의 꿈으로 벅차올라 있었다. 나는 그들의 눈에서 샹그릴라를 보았다. 그들만의 샹그릴라. 그들도 아마 내 눈에서 그곳을 보았을 것이다. 유토피아라고 부르든 발할라라고 부르든, 그들은 그들의 꿈을 내게서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마치 카리브의 개척자들처럼 들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듯이, 우리는 각자의 꿈으로 각자도생할 길만을 찾고 있었다. 역시, 실제로 그랬듯이, 그 사막에 살 길이란 없었다.

모래밭을 달리던 차는 전복됐다. 뒤집히는 것 정도는 그럴 수 있었다. 뒤집히라고 만든 건 아니었지만, 위아래가 있는 이상 뒤집히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차가 굉음을 내며 폭발했고, 그 아래 깔린 모래를 내가 흠뻑 뒤집어쓰자 나는 아득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불길에 휩싸여 춤추는 사람이 비명을 지르면서 사구 아래로 굴러가는 모습을 본 감상은 겨우 그런 것이었다. 모래를 끼얹으면 불을 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모두가 죽었을 때에야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곧바로, 그런다고 살 수 있을까 싶었다. 트럭의 짐칸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있다가 튕겨 나왔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살아남은 놈치고는 오만한 생각이었다. 모래를 뒤집어쓰고 뒤를 돌아보았다. 사막은 끝이 없었다. 똑같은 모습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 수 없었다. 길을 잃어버렸다.

나는 걸었다. 그곳에서 고철이 되어버린 자동차와 먹을 수도 없는 식량을 부둥켜안고 살아갈 수는 없었다. 사람의 살을 먹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계속 있으면 그러고 싶을 것 같았다. 그래서 걸었다. 알량한 도덕심 같은 것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식인처럼 부정하고 불쾌한 것이 내 여정에 끼어드는 것이 싫어서였다. 식인을 하고 나면 가나안의 앞에서 죽은 모세처럼 샹그릴라의 입구에서 한 발자국 디디지도 못하고 죽을 것 같아서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 비굴한 꿈을 꾸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놓고는 도움을 청하러 가는 거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걸었다. 내가 보더라도 비루하고 구차한 인생이었다.

그 남자를 본 것은 내가 얼마나 걸었는지 실감하지도 못한 채 몇 번을 방향을 바꿨을 때였다. 어리석게도 방향을 바꿔야 하나 고민할 때면 발을 움직여서는 안된다는 듯이 다리에 힘을 주고 발을 고정했다. 그리고 항상 뒤쪽을 먼저 살폈다. 바로 그때 그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온통 시커먼 옷을 입은 사람이 먼 곳의 사구에 서 있었다. 음울한 석양의 빛무리에 사막의 홍갈색 모래알이 끓어오르는 경계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외쳤다. 살려달라고. 그는 내가 한참을 달려가 열 번이 넘도록 살려달라 외칠 때까지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의 발치에 엎드렸다. 푹푹 들어가는 모래를 박차고 사구를 오르는 것이 여간 쉽지 않았던 탓에 나는 숨이 차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남자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턱에 덥수룩히 난 흰 수염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왜 대답을 안 했습니까? 안 들렸나요?”

“살려달라는 사람치고는 참 쓸데없는 걸 묻는군.”

그와 나의 만남은 그런 식으로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아무렇게나 불러달라고 했다. 그러지 말고 이름을 가르쳐달라는 내게 그는 코웃음을 쳤다. 갖가지 이름을 다 대면서 한 번 맞춰보려는 내게 남자는 말했다.

“어차피 둘뿐이니 헷갈릴 일은 없을 텐데.”

그 말 한 마디만 툭 던지고, 남자는 천천히 사구를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힘겹게 올라온 보람도 없이, 나는 그를 따라 내려가야만 했다.

그의 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그를 계속 따라가야 하나 걱정하던 나는 한참 뒤에야 그것을 깨달았다. 문득 가야 하는 방향을 남자가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 않고는 걸음이 그렇게 당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자네가 살아남을 길을 찾아 간다네.”

그러더니, 남자는 두 눈을 치켜뜨고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지?”

“어디로 가는 거냐고…….”

“그럼 자네는 아직 괜찮은 게로구만!”

남자는 눈에 이채를 띠며 기뻐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물었지만, 남자는 한시가 급하다며 일단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남자는 자신을 믿으라고 했다. 그러자 멍청하게도 그를 의심하는 내게 남자는 도와달라고 해 놓고는 의심하는 나의 우둔함을 반성시켰다. 우리는 걸었다. 밤이 오고 있었다.

“자네. 내가 했던 말 기억하는가?”

“저는 괜찮다는 것 말인가요?”

“그래. 아직 괜찮냐는 말 말이야.”

“그게 무슨 뜻이죠?”

남자는 묵묵히 한참을 고민했다. 나는 옆에서 대답을 재촉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느라 말없이 걸었다. 그러다가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사과했다.

“미안하이. 생각을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말이야. 자네도 내 입장이 되어 보면 알게 되겠지. 절대 그래서는 안 되지만.”

그러더니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다.

“별이 보이나?”

“그럼요.”

“별들은 움직이지. 어디에서 어디로 움직이나?”

“태양과 같겠죠. 동에서 서로 움직이겠죠.”

“그래. 아직은 괜찮은 것 같구만.”

“뭐가 괜찮다는 겁니까?”

“자네는 아직 변하지 않았다는 말이야. 나는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없거든.”

“그런 식이라뇨?”

“나라면 별이 일몰에서 일출로 움직인다고 말했을 걸세. 태양은 일출에서 일몰로 움직이고 말이야.”

당신은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그게 무슨 해괴한 소리냐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일몰에서 일출로 움직이는 별이라니. 남자는 나를 이해시키려고 몇 번이나 같은 설명을 반복했다. 그러나 그는 본질적으로 날 이해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언어를 가지고 설명하건 애초에 그가 겪는 것은 인간의 언어로는 쉽사리 구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별이 일몰에서 일출로 움직인다는 그의 말도 사실 그로서는 충분하게 느껴지지 않는 설명이었던 것이다.

“나는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네.”

그는 헛웃음을 짓는 내게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나 또한 원래 이렇지는 않았어. 자네에게 이 현상이 어떤지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도 내가 원래는 자네와 같았기 때문이지. 나는 자네의 사고방식을 기억하고 있어. 다행히도 말이야. 내가 어떻게 세상을 봤는지, 어떻게 삶을 살았는지 기억하고 있다고.”

남자는, 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정확하게 도치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구태여 덧붙이자면’이라는 사족을 달아가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자네가 ‘공간’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리는 것들을 생각해 보게. 나도 많이 잊었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렴풋이 기억은 하니까 하는 말이야.어서 떠올려 보게. 자네라면 ‘공간’의 의미를 뭐라고 말하겠나? 어떤 단어들로 공간을 수식할 건가?”

“사물들이 있는 곳. 사물들이 움직이는 곳. 저기서 여기까지. 우주공간. 공기로 차 있는 것.”

“정밀하지는 않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겠어. 나는 ‘시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네. 자네, 추이펀의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을 본 적 있나?”

“정원이요? 제가 정원을 어디서 보겠어요?”

남자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추이펀의 정원이란 진짜 식물이 자라는 곳이 아니라 한 권의 책이라고 말했다.

“추이펀은 중국의 학자이자 소설가였네. 그는 목표가 뚜렷한 인간이었지.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표는 두 가지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네. 하나는 미로를 만드는 것. 다른 하나는 책을 쓰는 것. 추이펀은 청고루에서 무려 십삼 년을 은거했네. 그리고 죽었지. 사람들은 그의 미로를 찾아 청고루를 뒤졌어. 하지만 그가 남긴 것은 책 한 권뿐이었지. 누구도 예상하거나 감히 상상하지 못했지만, 그건 단순한 책이 아니었네. 그건 책이면서 미로였어.”

사막을 탈출하고 나서, 나는 추이펀의 그 ‘미로’를 구해 읽을 수 있었다. 권말에 스티븐 앨버트 박사의 주석까지 달린 책을 말이다. 그 책에서는 3장에서 죽은 주인공이 4장에서는 멀쩡히 살아서 등장하고, 10장에서 적을 살해한 주인공은 13장에서 적에게 살해당한다.스티븐 앺버트 박사는 서문에서 추이펀의 편지를 인용한다. “나는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 모든 미래가 아니라 몇몇 미래를 남긴다.” 앨버트 박사는 추이펀이 하나의 사건에서 파생하는 수많은 선택지들이 모두 책에 담길 수 있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갈라진 선택지들이 책의 부분부분으로 기능하고 그 선택지들에서 갈라진 선택지들이 다시 책을 구성하면서 추이펀의 미로는 끝없이 두 갈래로 뻗어나간다는 것이다. 남자는 비웃었다.

“추이펀의 글쓰기는 헛짓에 불과했어. 그걸 이 지경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지.”

남자는 나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었다. 그 또한 때려눕힐 자들과 때려눕혀질 자들을 생각하며 휘청대던 인간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나보다 유복하고 유식하고 유능했다. 그리고 그건 별 차이를 만들지 못했다.

“십수 년을 배우고만 살았어. 그런데 다 배우고 나니 사회는 내가 쓸모가 없다더군. 나는 내가 배운 것들이 그렇게 쉽게 버려지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네. 조급해졌지. 다른 것들을 배우려고 애썼어. 조금 더 실용적인 것들을 말이야. 그러나 나이를 먹었다고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더군. 젊은 녀석들은 하루면 하는 걸 나는 이틀이 걸려서 배웠어. 그리고 배우고 나서도 문제였지. 나는 너무 늙어버렸거든.”

그가 이 사막에 들어온 건 나처럼 이 사막에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때의 남자 또한 샹그릴라를 꿈꾸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남자는 나가지 못했다. 그리고 ‘이 망할 놈의 질병’이 시작됐다.

“나는 시간을 걸어다닌다네. 자네가 땅을 밟고 서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면, 나는 이때저때를 돌아다니는 셈이지. 내 눈앞에는, 말하자면, 시간의 평원이 펼쳐져 있네. 지금은 사막에 있으니까 시간의 사막이라고 해도 좋겠군. 무수하게 많은 사구가 펼쳐진 사막 말이야. 다만, 나는 이때의 사구에서 저때의 사구로 움직이는 걸세. 이곳의 사구에서 저곳의 사구가 아니라. 대신에, 나는 이곳저곳을 가지 못해. 자네가 나처럼 움직일 수 없듯이.”

동일성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오래된 과제이지만, 그것은 본래 시공간의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같은 시각에 두 다른 장소에 있는 물체는 서로 같을 수 없다’나 ‘한 물체는 두 서로 다른 시각에 존재할 수 있다’처럼. 혹은 이 개념을 필연성과 관련짓는 철학자들도 있었다. 만약 A와 B가 동일하다면, 그 둘은 필연적으로 동일하다. 남자에게도 이런 명제들은 여전히 성립했다. ‘시각’과 ‘장소’만 서로 뒤바꾼다면 말이다.

“추이펀이 썼던 글은 모조품에 불과해. 어쨌거나 책은 앞에서 뒤로 읽어나가야 하는 법이니까. 책 자체로만 보자면 시간성은 배제될 수 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선형적인 시간 구조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지. 추이펀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한 거야. 그가 추구했던 일이 가능하려면 이 세상을 수백만 개는 줘도 모자라지. 그 모든 가능성을 하나의 입체공간 안에 모두 펼쳐보여야 하니까. 그래서 겨우 ‘몇몇’ 미래만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던 거고.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전혀 다르지. 나는 어디로 갈지를 선택한 것이 아니야, 어떤 때로 갈지를 선택한 거지. 내가 그때로 이동하건 아니건, 내 주위의 공간은 흘러. 하지만, 난 이때로 가기로 결정했네. 이 공간쯤에는 다른 시간에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야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지. 지나온 공간은 다시 돌아갈 수 없거든.”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말 그대로야. 자네가 얼마나 우습게 여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나온 공간에 다시 갈 수 없어.”

나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서 있는 자리를 표시하고 그를 살짝 들어 앞으로 옮긴 다음,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옮겼다. 그러나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자네는 나를 공간적으로 옮겼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여전히 시간적으로만 움직였네. 이번에는 자네가 나를 옮긴 것이지만.”

“그럼 시간적으로 앞뒤로 움직이는 것은 가능합니까?”

“그럼 가능하지.”

“한 번 해보십시오.”

나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남자는 애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했네.”

나는 당황했다. 그래서 한 번만 더 해보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남자는 더욱 애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벌써 네 번은 왔다갔다 했네만.”

우리는 한참을 토론했다. 내가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따질 때마다, 남자는 그게 가능한 것을 어찌하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게 공간과 시간이 가능한 방식을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나는 점점 소모적이고 난해해져만 가는 논쟁에 지쳐갔다. 결국, 남자의 말이 이해하지 못할 수준에까지 다다르자, 나는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럼 미래도 알 수 있다는 겁니까?”

“아마도 그렇겠지.”

“아마도 그렇다는 건 또 뭡니까?”

“아마 자네가 살아나갈 수 있는지가 궁금하겠지.”

“맞습니다.”

“그건 나도 모르겠네.”

“어째서죠? 시간을 넘나들 수 있다면서요?”

“만했잖은가. 자네가 공간을 생각하는 방식으로 추론해 보라고. 자네는 수십,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볼 수 있나? 자네는 자네가 이동할 수 있는 속도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나? 시간도 마찬가지일세. 눈앞에 보이는 시간이 한정적이고 내가 한 번에 갈 수 있는 시간도 한정적이지. 아직은 자네의 죽음이 보이지 않아.”

“그럼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겁니까?”

“나도 초기에는 그런 환상을 가진 적이 있지. 하지만, 그 시간은 보이지 않았어. 지금도 마찬가지고. 내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다는 거지. 아니면 거대한 모래더미들이 가리고 있거나. 나 또한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몰라. 자네가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것처럼. 다만, 자네는 이렇게 생각하겠지. 언제 죽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죽을 거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네. 어디서 죽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선가는 죽을 거다.”

그 이후로도 꽤 오래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정확하게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그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어디선가는 죽을 거다. 나도, 그도 어리석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죽을 장소를 모르는 것도 매한가지면서 언제 죽을 것인지만 생각하던 나와 죽을 시기를 모르는 것도 마찬가지면서 어디서 죽을 것인지만 생각하던 그는 닮은꼴이었다. 언젠가는 죽겠지만 여기서는 죽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나를 움직였다. 여기서는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나를 살려달라고 간청하게 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왜 안 돌아가죠?”

“무슨 뜻이지?”

“삶을 잘못 살았다면서요.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쏟지 말았어야 했다면서요. 그럼 그때로 돌아가지 왜 여기 있는 거죠?”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자네를 이해할 수 없어. 그런 질문을 던지는 자네를 말이야. 그리고 그렇게 날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는 자네를 말이야. 그럼 자네는 왜 돌아가지 않지?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데.”

“그때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아.”

“내가 정말 과거로 돌아간 적이 없다고 생각하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자네처럼 내가 돌아온 흔적을 찾아 헤맸어. 그때로 돌아가려 애썼지. 아마 내가 지나친 시간을 다시 지나친 적도 있을 거야. 나는 알지 못하겠지만. 자네와 같지. 자네는 사막을 헤맸을 거야. 그리고 자네가 지나친 곳을 한 번 더 지나치거나 봤겠지. 자네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 사막을 탈출한다고 해도 나는 돌아갈 수 없어. 자네와 같은 이유로 말일세. 나는 그곳으로 갈 수 없네.”

우리는 며칠을 걸었다.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걸을 때는 느끼지 못했다. 나는 점점 그를 신뢰하게 됐다. 그를 따라가면 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갈수록 분명해졌다. 그가 움직이지 않는다거나 하면 내가 죽는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는 사구를 넘고 언덕에 오를 때마다 안도했다. 여전히 내가 걸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내가 멈추지 않고 걸어가고 있다고 했다. 미래를 어렴풋하게나마 안다는 것은 그런 희망과 그런 힘을 제공했다. 죽지 않는다. 살아 있다. 살아있다. 그만큼 뜨거운 말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남자의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그는 죽을 때까지도 내게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는 아무런 징조도, 징후도 없이 풀썩 쓰러졌다. 모래더미에 정면으로 넘어졌다. 그는 간결하게 말했다. 미안하다고. 하루는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적어도 하루는 살아 있을 거라고. 그러니 걸으라고. 자기 몸뚱이는 버려두고 걸으라고 했다. 남자는 힘주어 말했다.

“내겐 아직 자네가 걸어가는 시간이 보여. 자네가 살아있다는 거지. 적어도 내 눈에 보이는 시간까지는 말이야. 그러니 여기서 살아나가면 그곳으로 가게. 지금 자네가 생각하는 곳이 어디든 간에 그곳으로 가라구. 그때로 돌아가네 어쩌네 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남자의 볼은 사막처럼 차가웠다.

“지금 죽고 싶었어. 이때까지는 와서 죽고 싶었어. 그곳에서 머뭇거릴 수는 없었어.”

그때는 죽음 앞에서도 나를 걱정하던 남자가 고마웠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생각도 해 본다. 가득히 쌓인 사구를 한 번 타넘으면 자신의 죽음이 느껴질까 봐 두려웠던 게 아니었을까. 자신이 죽어간다는 것을 깨닫는 게 두려웠던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한참을 사구 위에 올라 제 죽지 않을 시간만을 밟고 서 있다가 마침내 나를 죽음의 증인으로 만들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가 원망스럽지는 않다. 그러나 귀띔은 해 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그의 말대로 걸었다. 그러나 하루가 점점 저물어가자 나는 두려워지고 조급해졌다. 사막을 배회하다 죽어 망령이 될까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서서히 속도를 올렸다. 땅은 푹푹 꺼지고 다리에는 힘이 자꾸만 들어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내가 단단한 땅을 박차고 달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땅이 굳고 있었다. 마침내 나는 사막의 끝에 다다른 것이다.

나는 구조됐다. 나는 가장 가까운 도시로 이송됐고, 그곳에서 치료받았다. 회사에서는 조사원을 보냈고, 조사원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왔다. 공교롭게도 그 도시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자, 내가 버리고 도망친 도시였다. 내 부모는 둘 다 예전에 죽어 땅에 묻혀 있었다. 태어난 집은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새 건물이 들어선 지 오래였다. 내가 때려눕히고 눕던 골목 역시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내 기원은 송두리째 이 세상에서 소멸한 것이다. 돌아갈 곳도 없이 지금 있는 곳만을 기준점으로 삼아서 흔들대고 휘청일 수밖에 없는 인간인 것이다.

나는 그가 가르쳐준 추이펀의 소설을 찾아보았으나, 누구도 그런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서점의 직원은 지구에 그런 소설이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이야기했지만 몇 달째 찾지 못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설령 지구에 있다고 할지라도 화성까지 들여오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포기했다. 남자가 처음 그 작품을 읽었을 때의 경이와 그가 그 작품을 곱씹으며 느낀 배신감을 같이 느끼고 싶었다. 말하자면, 그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의 유해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알 수 없다. 나는 그처럼 시간을 이해하고 있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의 당부에도, 나는 다시 사막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의 말대로, 그가 이미 지나간 곳을 다시 지나갈 수 없다고 할지라도, 나는 내가 있었던 곳에 다시 갈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오직 나만이 그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니까.

 

※추이펀은 보르헤스의 소설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 등장하는 가상의 성주이자 천문학자, 점성술사, 장기의 대가, 시인, 서예가이다. 그리고 단편의 제목인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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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5 장편 INA - 맹세의 깃발 키미기미 2020.12.12 0
2644 장편 INA - 포프의 자식 키미기미 2020.12.11 0
2643 장편 INA - 전쟁 나팔 키미기미 2020.12.10 0
2642 장편 INA - 믿어선 안되는 것들 키미기미 2020.12.09 0
2641 장편 INA - 구원자 키미기미 2020.12.08 0
2640 장편 INA - 거짓말쟁이들 키미기미 2020.12.07 0
2639 장편 INA - 그애의 말이 사실인가요? 키미기미 2020.12.07 0
2638 장편 INA - 부랑자 키미기미 2020.12.06 0
2637 장편 INA - 그럼요, 그럼요 이나양. 키미기미 2020.12.05 0
2636 장편 INA - 프롤로그 (판타지) 키미기미 2020.12.05 0
2635 단편 인류의 비극 투인 2020.11.30 0
2634 단편 FLY WITH ME 미믹응가 2020.11.25 0
2633 단편 차를 멈춰야 해요 2시59분 2020.11.25 0
2632 단편 미운 반지 장난감신부 2020.11.24 0
2631 단편 피부묘기증 ㄱㅎㅇ 2020.11.24 0
2630 단편 미아 양윤영 2020.11.22 0
2629 단편 내 이름은 조이 마음의풍경 2020.11.20 0
2628 단편 여섯번째 꿈의 감각 양윤영 2020.11.1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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