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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차를 멈춰야 해요

2020.11.25 00:2111.25

까만 밤에 하얀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바닥에 쌓인 눈이 달빛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발견하지 못했을 지도 몰랐다. 저 멀리 어슴푸레 보이는 형상에 이끌려 걸음을 내디뎠다. 가까이 가보니 고속도로 한가운데에 일고여덟 살되어보이는 어린아이가 앉아있었다.  때는 11월이라 막 추워지기 시작했는데 얇은 외투만 입고 있어 걱정되던 찰나였다. 

 

"꼬마야 왜 여기 있니?"

"차를 멈춰야 해요."

"하지만 지금은 차가 다니질 않는걸."

 

이상한 대답이었다. 길을 잃었다거나  엄마가 잠깐만 있으라고 했는데 돌아오지 않았다거나 하는 대답을 들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어린아이의 엉뚱한 생각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었는데 꼬마의 표정은 결연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현실적인 대답을 해주었다. 이 구간은 도로 공사 때문에 한동안 폐쇄된 상태였다. 꼬마가 차를 멈추려 한다면 이곳은 적절한 곳이 아니었다. 

 

“집이 어디니?”

 

아이는 손가락으로 도로 옆의 산을 가리켰다. 산속에 집이 있거나 산 너머에 집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집에 가려다 길을 잘못 들어 고속도로 쪽으로 내려왔거나 산 너머에 아이를 버려두면 다시 집을 찾아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여기 유기한 것일 수도 있다.

 

“엄마는 어디있어?”

“집에 있어요.”

 

그렇다면 전자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길을 잃었니?”

“아니요.”

“집에 가는 길을 알아?”

 

끄덕끄덕. 혼란스러웠다. 집에 가는 길을 안다면 길을 잃은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여기 있는 걸까. 폐쇄된 도로를 뛰어노는 게 재밌어서? 아니다. 꼬마는 별로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한밤중에 나가 놀라고 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부모가 아이를 방치하거나 학대하는 모양이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집에서 도망쳐 나온 아이를 집에 데려다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학대했다는 증거도 없으니 당장은 신고할 수도 없었다.

 

“차가 다니는 도로는 어디에요?”

“꼬마야 집에 가고 싶니?”

“네. 그런데 저는 차를 막아야 해요.”

“누가 그러라고 시켰어?”

“모두가 그러길 바랄 거에요.”

 

아이와의 대화는 계속 겉도는 느낌이었다. 내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은 해주었지만 중요한 내용은 빠져있었다. 대화는 끊임없이 차를 멈춰야 한다는 이야기로 끝났다. 결국 나는 차를 멈추는 이야기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면 내가 차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줄게. 대신 그리고 나면 바로 나랑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거다?”

“네.”

 

꼬마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카디건을 벗어 꼬마에게 둘러주고는 손을 잡고 나란히 걸었다. 10분만 걸으면 교차로가 나온다. 왜 차를 멈추고 싶어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쌩쌩 달리는 차를 보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래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빨간불에 멈추는 차들을 보여주면 된다. 그리고 집에 가서 부모의 태도를 보고 경찰에 신고하든 말든 하면 된다.

 

 

***

 

“안돼!”

 

안일한 생각이었다. 꽉 잡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는 도로로 뛰어들고 있었다. 처음에 꼬마가  도로 한가운데 앉아서 차를 멈춰야 된다고 말할때 부터 알았어야했다. 차를 막아야 한다고, 멈춰야 한다고 고장난 라디오처럼 반복했을 때는 알아차려야 했다. 그 단호한 눈빛을 왜 무시했을까. 아이는 끊임없이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차를 멈출 거라고. 

 

멀어져 가는 손을 붙잡기 위해 나는 온몸을 날렸다. 차 한 대가 달려오고 있다. 아이는 달려가고 있다. 나도 아이를 향해 달린다. 아이는 차가 다가오는 차선에 멈춰 두 팔을 벌린다. 차가 너무 가깝다. 차가 멈출 수 있을까? 내가 닿을 수 있을까?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아이에게 닿았지만 차는 제때 멈추지 못할 것 같았다. 

 

“눈 떠도 괜찮아요.”

 

주위를 둘러보았다. 멈춰있는 차. 꼬마는 온데간데 없고 밝은 불빛을 가리고 서있는 검은 그림자는 길쭉하고 얇은 네 다리, 긴 목에 쫑긋 솟은 귀를 하고 내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고라니, 너구리, 개구리, 두꺼비, 뱀, 고양이, 노루, 멧돼지, 각종 곤충들이 각자의 속도로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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