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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INA - 구원자

2020.12.08 21:1712.08

[베스, 안 쫓아가나?]

 

곰 인간이 심드렁하게 종이를 펼쳐 장부를 끄적였다. 베스가 굳은 채로 소녀가 떠난 자리를 멍하니 보고 서있다. 캐시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울먹였다.

 

[베스, 난 그게.]

 

[그래, 이제 몇 명 째이지?]

 

곰 인간이 신경도 쓰지 않는 다는 듯 말하였다. 그가 베스에게로 눈을 흘긴다.

 

[마녀에게로 가는 걸 알면.]

[그 녀석들처럼 우릴 죽이려 들겠지.]

 

베스의 눈동자가 빠르게 주위를 훑는다. 허리에 둘러멘 끈 위를 작은 검들로 채우고 작은 약초들을 집어 작은 가방에 넣는다. 성큼성큼 그녀가 여관을 빠져 나가 소녀가 사라진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베스!]

 

캐시가 소리 지른다. 곰 인간은 다리를 꼬며 연기를 뱉었다.

 

[쫓아가려면 당장 따라가야 할 걸.]

 

갈색 줄무늬 고양이가 잎으로 만든 가방 속으로 갖은 물건을 쓸어 담았다.

 

[빌릴 게요!]

 

곰이 덩치 큰 손을 흔들었고 캐시는 코를 좌우로 킁킁대며 베스의 냄새를 쫓는다.

 

 

 

 

 

 

 

숲으로 갔다. 그 아이가 있을 까봐. 누구를 믿어야 하는 걸까. 의심하기 싫다. 그가 내민 손을 잡고 벽을 오를 때, 잠깐이지만 구원받는 기분이 들었다. 베스. 그 말없는 늑대가 나를 이끌어 작은 나무숲에서 절벽 아래로 펼쳐진 풍경을 보여주었을 때는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었다.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기댈 수 있다는 편안함이 들었었다.

 

탁.

 

베스의 대답. 그녀는 나를 무엇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그래서 식사를 하는데.]

 

[잠깐 그런데 그게 누구라고?]

 

[제대로 들어!]

[마법사가 있었다고!]

 

[마법사가?]

 

덤불로 뛰어 들어가 목을 움츠렸다. 한껏 몸을 잡아 허리를 구부렸다. 들키고 싶지 않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두 목소리가 가깝다.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

 

[사람을 잡아가면 돼.]

 

[그래 그 아이!]

 

[단발머리에 이상한 고글을 낀 녀석만 찾으면.]

 

[찾아야지 당장!]

 

덤불 위로 그림자가 진다. 등 뒤에서 흙냄새와 짐승의 냄새가 진동하였다. 긴장이 되었다. 걱정하지 말자 난 숨어 있으니까. 꼭 숨어서 보이지 않을 테니까.

 

쑤욱!

 

내가 숨어있던 덤불이 위로 홱 벗겨졌다.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잘됐네.]

 

[그럼 잘됐지.]

 

내 옷 뒤를 잡아 들어 올린다. 숨이 막혀 버둥거렸다.

 

[이것 봐 팔팔해.]

 

[꼬맹이 하나에 마을 하나야.]

 

[이제 우리는 영웅이 될 거라고.]

 

퍽.

 

무언가 날아와 꽂히는 소리. 나를 붙잡고 있던 손이 앞으로 고꾸라져 나는 땅위로 굴러 떨어졌다. 주저앉아 있는 내 옆으로 몸뚱어리가 풀썩 쓰러졌다. 나를 발견 했던 수인 둘이 화살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었다. 벌벌 떨고 있는 나에게로 누군가 다가온다.

 

[손잡아.]

 

낯선 목소리. 나는 덥석 내게로 뻗은 손을 맞잡았다. 고글과 마스크. 나를 안아 들고는 나무 사이를 잽싸게 달려 나갔다. 그때 그 아이가 입고 있던 복장이 비슷하다. 나는 어리둥절하게 물었다.

 

[인간인가요?]

 

[그럼.]

 

남자 목소리. 그가 고글 너머로 내 눈을 응시하며 상냥하게 말하였다.

 

[곧 도착해.]

 

가시가 돋아난 덤불들을 몸으로 지나쳐 가지에 매달린다. 나를 안은 그가 빙글 돌았고 땅으로 거꾸로 처박힐 듯 추락하려 한다. 눈을 질끈 감았다. 푹신한 감각. 전에 느껴봤던 편안함. 빨려 들어갈 듯 온 몸을 감싸는 굴 모양의 생명체.

 

퐁.

 

나를 꽉 껴안은 그가 마침내 나를 풀어주었다. 땅을 짚으며 고개를 들었다. 고글을 벗으며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준다. 우리는 좁은 굴속에 있었다.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걱정 마. 더 가면 마을이 있으니까.]

 

그가 앞장서 기었다. 좁은 어둠의 끝으로 빛이 환하게 비쳐 들어왔다. 나도 그를 따라 빛이 있는 곳까지 기었다. 손으로 빛을 가리며 그가 내미는 손을 잡아 새로운 땅 위로 발을 디뎠다.

 

[어서와. 여기는 안전해.]

 

눈이 크게 떠졌다. 하늘만큼 높은 거대한 동굴 안으로 마을이 세워져 있었다. 햇빛이 닿지 않아 투명한 보석들이 천장에 매달려 햇살을 뿜어내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서 잡담을 나누고 솥을 끓이며 요리를 만든다. 아이들도 보였다.

 

[인간들의 마을, 지하마을로 온 걸 환영해.]

 

그가 나를 끌어 마을을 소개하여 주었다.

 

[이 마을은 땅벌레 속에 지어졌어.]

[땅벌레라고 하는 건.]

 

[알아요, 그게 뭔지.]

 

그가 나를 돌아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구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안을 주려던 건 아니다. 나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거대한 굴을 가리켰다.

 

[하지만 이렇게 큰 건 처음이에요.]

 

[당연하지.]

[우리는 이 땅벌레를 구원자라고 불러.]

 

보석들이 발광하는 빛이 모든 곳으로 퍼지지 않았다. 빛이 닿지 않는 곳에는 등불과 횃불로 곳곳을 밝히고 있었다. 수인은 보이지 않았고 인간들만이 살고 있다.

 

[구원자를 발견한 최초의 무리는 이렇게 기록했어.]

[이곳을 집으로 삼고 괴물들의 눈을 피해 살 것이다.]

[우리 다섯이 살기에는 좁지만 편안했다.]

 

그는 이 도시와 구원자라고 불리는 땅벌레가 가진 역사에 대해 줄줄 역사를 읊어갔다. 신나하는 그가 사람들을 가리킨다.

 

[우리는 살아남았어.]

[그리고 꼭 빠져 나갈 거야.]

 

땅벌레를 발견하고 거처를 삼은 최초의 다섯 명은 땅벌레의 굴속에 숨어 식량을 구하고 추위를 피하였다고 한다. 느리지만 땅을 파 움직이는 땅벌레 덕에 이 이상한 세계를 탐험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다섯은 인간들을 모았고 그에 맞추어 땅벌레도 함께 커져갔다. 다섯으로 시작한 생존자들은 곧 열에서 스물, 서른 그리고 점차 불어나 마을 하나를 세우기까지 하였다. 저 혼자 조잘거리던 그가 몸을 돌리며 집 하나를 손으로 가리켜 보였다.

 

[네가 살 곳이야.]

 

[저요?]

 

[한나가 너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

 

그는 작별 인사를 건네며 건물들 사이로 종종 사라졌다.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내 집이라니. 한나. 숲에서 만난 그 아이일까. 그가 소개해 준 집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6평 남짓한 공간에 상자들과 테이블이 놓여져 있다. 음식을 요리할 수 있는 솥과 식기들이 가지런히 정리 되어 있지만 사용은 하지 않았는지 먼지가 쌓여 있었다.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을 밟았다. 커튼이 쳐져 있다. 불이 켜져 있지 않아 어두웠다. 용기를 내어 커튼을 열어젖혔다.

 

이층 침대 두 개와 작은 탁상 하나. 구석에는 포대들이 너저분하게 쌓여 있다.

 

[아, 배고파!]

 

[그렇게 먹고도?]

 

[아직 후식을 먹지 않았는걸.]

 

왁자지껄한 소녀들의 목소리. 나는 조심히 아래로 내려갔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세 명의 소녀가 나를 돌아본다. 침묵. 하얀 머리칼을 늘어뜨린 작은 소녀가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었다.

 

[가터 씨가 구했구나?]

 

가터. 나는 고글을 쓰고 화살을 당기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고개를 끄덕인다.

 

[내 이름은 트라나.]

 

하얀 머리칼을 흔들며 옆에 서있던 양 갈래 소녀를 가리킨다.

 

[얜 타샤. 그리고 얘는.]

 

트라나가 몸을 비키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까만 단발머리와 스카프. 숲에서 만나 소리를 치던 아이.

 

[한나야, 다 같이 잘 지내보자.]

 

까만 단발머리의 한나가 나를 제쳐 불쑥 계단을 올랐다. 트라나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변명하듯 말하였다.

 

[피곤해서 그런 걸 거야.]

 

[근데 넌 밖에서 온 거니?]

 

양 갈래 머리의 타냐가 물어온다.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어디?]

 

[한국.]

 

[한국이 뭐야?]

 

트라나가 나에게로 손짓 한다. 작은 거실 한가운데에 테이블을 끌어 놓으며 나무상자를 내 쪽으로 옮겨 주었다. 나는 타냐와 트라나를 따라 상자에 앉아서 그들을 마주 보았다.

 

[타냐는 바깥 세계를 몰라.]

 

집 밖으로 비쳐 들어오는 빛은 누군가 피워놓은 횃불 하나뿐이다. 횃대 하나가 작은 집을 빛으로 가득 채운다. 테이블에 모여 앉은 세 명의 소녀들을 따라 그림자 세 개가 벽으로 일렁거리고 있다.

 

[나는 러시아에서 왔고.]

 

[러시아?]

 

[응.]

 

하지만 어떻게. 나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고는 트라나도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어떻게 말이 통할 수 있냐 묻는 거지?]

 

타냐가 끼어든다.

 

[마녀 때문이야.]

 

트라나가 타냐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설명을 이어갔다.

 

[여긴 마녀가 만든 세계야.]

[나는 모르지만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더라고.]

[너도 바깥 세계에서 수인들을 만났지?]

 

타냐가 턱을 괴어 나른하게 눈을 감았다. 불들이 노랗게 세 아이들을 감싼다.

 

[나는 토끼 인간이었어.]

[달콤한 말로 나를 꾀었고, 뭐.]

 

트라나가 팔을 들어 주위를 가리킨다.

 

[이렇게 되었지.]

 

그가 말했다. 편지를 보냈다고 분명 만날 수 있다고. 가족들을, 엄마를, 아빠를. 나는 트라나에게 채근하듯 물었다.

 

[그럼 그들은 누구야?]

[우리에게 찾아왔던 사람들 말이야.]

 

[마법사.]

 

타냐가 턱을 괴고서 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마녀의 힘을 받은 자들을 마법사라고 해.]

[너희들이 있었던 그곳에서 사람들을 데려오고.]

 

나는 침을 삼켰다. 설마 그럴 리가.

 

[마녀에게 팔아넘기는 거지.]

 

[타냐.]

 

트라나가 질책하는 표정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맞은편의 아이들이 하는 말을 이해고 싶지 않았다. 그가 분명히 말했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분명히 믿고 있으면 찾을 수 있다고. 그가 미소 짓던 표정으로 뱉었던 말들이 귓가에 맴돈다. 그럼, 그럼요. 이나양.

 

[네 이름은 뭐니?]

 

말 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내 어두운 그늘을 그녀들은 걱정스레 쳐다보았다.

 

[피곤하면 올라가서 자도 좋아.]

 

트라나가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덩치가 작았던 트라나가 타냐에게 눈짓을 보내었고 타냐는 나를 일으켜 위층까지 데려가 주었다. 커튼 너머로 환한 빛이 번진다. 타냐가 조용히 커튼을 걷으며 나를 침대에 앉혔다.

 

[혹시 더 이야기하고 싶으면 아래로 내려와.]

 

타냐가 커튼을 다시 닫으며 계단을 밟아 내려갔다. 양초를 밝혀 책을 팔랑이는 아이. 숲에서 나를 구해주었던 그녀. 나는 눈을 감고서 생각들을 정리했다. 삐걱거리는 소리. 천이 팔락이고 너머로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가는 거야?]

 

[응.]

 

[어디로?]

 

트라나의 목소리와 그 아이의 목소리. 나는 눈을 떠 옆을 바라보았다. 양초불은 그대로 밝혀져 있지만 옆은 비어 있었다. 불편했고 무겁다.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 걸까.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트라나와 타냐가 오순도순 열매 껍질을 까고 있었다.

 

[왔구나.]

 

타냐가 반가운 얼굴로 나를 끌어 상자에 앉혔다. 그녀가 나에게 과일 몇 알을 밀어 주었다. 타냐가 눈을 빛낸다.

 

[네가 살았던 곳에 대해서 말해줘.]

 

트라나가 못 말린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살았던 곳?]

 

[응, 난 너희들이 있던 바깥 세계에 관심이 많거든.]

 

[타냐는 여기서 태어났어.]

[타냐의 부모님은 바깥에서 온 사람들이야.]

 

그럼 그들은 이곳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숨어서 살아왔다는 걸 말하는 걸까. 궁금해졌다.

 

[트라나 너는 얼마나 여기에 있던 거야?]

 

[나?]

 

트라나는 눈을 올리며 입으로 숫자를 중얼거렸다. 그녀의 얼굴이 머쓱하게 웃음만 짓는다.

 

[글쎄?]

 

[여긴 아주 오래됐어.]

 

타냐가 팔을 양쪽으로 벌리고는 연신 좌우로 몸을 흔들어 대었다.

 

[아주, 아주 오래됐어.]

 

나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강조하듯 말하였다.

 

[아주 오래.]

 

트라나가 다정한 미소를 짓는다. 타냐가 내게로 몸을 기울인다.

 

[이제 네 차례야.]

[네 세계는 어땠어?]

 

내 세계. 작은 지하방에 곰팡이가 핀 벽. 가족사진 한 장 없는 빈 액자들. 근근이 하루를 버티기 위해 일을 했던 편의점 알바. 친구도, 아무도 없는 빈 방.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얼버무렸다. 타냐는 이것저것 물어왔지만 트라나는 얌전히 과일을 다듬으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럼, 부모님은 뭐하셨어?]

 

타냐의 질문.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하며 적당히 둘러대려 애썼다. 말들이 버벅거린다.

 

[그게, 저, 내 부모님은.]

 

나의 난처함을 알아 본 것일까. 트라나는 불쑥 사이로 끼어들어 자기가 까놓은 과일들을 나누어 주었다.

 

[그만, 방금 온 애한테 너무 질문만 하는 거 아냐?]

 

[그렇지만.]

 

트라나는 화제를 바꾸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네 이름을 모르네.]

[가르쳐 주겠니?]

 

[이나.]

 

타냐가 주눅이든 표정을 풀고 방긋 웃었다.

 

[예쁜 이름이야.]

 

[그러게 한국식 이름이니?]

 

[응, 뭐.]

 

타냐가 즐겁게 떠든다.

 

[나도 바깥 세계를 봤으면 좋겠어!]

 

그녀의 그림자가 아이들의 그림자를 삼킨다. 신나하는 몸짓이 하나의 춤처럼 흔들린다. 그녀가 기대하는 세상이 꼭 그곳에 있을까.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좋은 세상 같은 건 꿈에나 있을 거라고. 그렇지 않으면 버틸 수 없으니까. 나는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가야 할까. 내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나 보다.

 

[이나, 질문을 많이 한 거라면 사과할게.]

 

타냐가 나에게로 몸을 숙여 손을 맞잡았다. 트라나가 조용히 말하였다.

 

[신나서 그러는 거야, 이해해줘.]

 

타냐가 번쩍 일어나 내 손을 끈다.

 

[이리와.]

 

[타냐, 너 지금.]

 

[왜 잠깐만이야.]

 

타냐가 나를 잡아 문을 열려 하자 트라나가 앞을 막아섰다. 트라나가 화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혼나는 기분이 들어 괜히 주눅이 들었다. 타냐도 기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니, 난 그냥 좋아서.]

 

트라나의 화난 표정에 타냐와 난 조용히 원래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숨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시킨 트라나는 나에게 사과를 하였다.

 

[미안 먼저 올라갈게.]

 

트라나가 위층으로 올라간다. 타냐는 그녀의 눈치를 보며 그녀가 커튼을 열어 침대에 오르는 것까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양초의 불이 꺼진다.

 

[됐어, 가자.]

 

타냐가 나를 잡아 끈다. 나는 타냐의 손을 당기며 물었다.

 

[뭔데?]

 

타냐는 고심하는 듯 머리를 굴리더니 대뜸 이런 말을 하였다.

 

[나를 도와주는 수호천사?]

 

햇살을 비추던 보석들이 점점이 꺼져 간다. 횃불들도 꺼져 모두가 잠든 시간이었다. 색색의 벌레들이 빛을 내며 마을 위를 날고 있다. 타냐는 땅에 있던 열매 하나를 주워 흔들어 대었다. 원통 모양의 열매가 하얀색의 빛을 낸다.

 

[따라와.]

 

작은 불빛들이 마을 위를 날고 굴속에서만 지낸 아이가 빛을 밝히며 거대한 동굴을 이고 땅을 갉아 먹는 벌레 속에 지어진 마을을 돌아다닌다.

 

[수호천사라니?]

 

[트라나가 얘기해줬어.]

[동화에서 사람들을 도와준다며?]

 

나는 동화를 본 적이 없었다. 고개를 도리질치자 그녀가 신나게 말하였다.

 

[그럼 나중에 같이 듣자.]

[트라나는 이야기하는 걸 잘하거든.]

 

우리 둘은 이상한 세계의 이상한 마을을 지나 동굴 벽에 까지 닿았다. 타냐가 벽 주위를 더듬으며 옆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나에게 손짓한다.

 

[여기야!]

 

마을에서 떨어져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외진 곳이었다. 굴의 벽 가까이에 있으니 땅을 파고 움직이는 거대한 울림이 그대로 느껴졌다. 타냐는 벽에 뚫린 구멍으로 쏙 들어갔다. 그녀의 손을 잡아 앞으로 걸어간다.

 

[나 왔어!]

 

그녀의 등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색색거리는 숨과 하얀 갈기. 올라가는 고개와 눈을 가리고 있는 붕대. 수인이었다. 베스보다는 아니었지만 덩치가 큰 늑대. 타냐는 반가운 목소리로 그에게 다가갔다.

 

[새 친구야.]

 

하얀 갈기의 늑대는 코를 킁킁거리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볼 수는 없지만 내가 있는 곳으로 콧김을 뿜었다. 하지만 타냐 이건.

 

[채스는 나를 도와주고 구해줘.]

[그렇지?]

 

하얀 늑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타냐가 나를 보며 내 손을 맞잡았다.

 

[이건 비밀이야.]

[지켜 줄 거지?]

 

하얀 늑대를 흘깃 바라보았다. 그는 지친 듯 자꾸 색색거리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나는 저 늑대를 앞에 두고 말을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베스. 대답 하나와 그녀의 무표정한 눈빛 하나. 그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채스는 내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나타나.]

[언제나 지켜주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

 

하얀 늑대의 고개가 내 쪽을 향하고 있다. 계속. 계속.

 

[그리고 채스는.]

 

타냐의 손을 잡아 끌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느낌이 좋지 않다. 타냐가 당황한 목소리로 마지못해 하얀 늑대에게 작별 인사를 하였다.

 

[너도 그와 친해졌으면 좋겠어.]

 

타냐의 표정은 진지했다. 장난기 가득하던 그녀가 내 눈을 바로 보고 있다.

 

[정말 좋은 사람이야.]

 

나는 간절하게 말하였다.

 

[타냐, 저건 사람이 아니야.]

 

고개를 젓는 그녀. 타냐는 결심이 선 표정이었다. 믿음에 가득 찬 눈에 나는 대꾸를 할 수 없었다.

 

[그라면 믿어도 좋아.]

 

그녀와 손을 맞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품을 하며 그녀가 먼저 들어가고 나는 밖에 남아 하늘을 날으는 빛 무리를 보았다. 베스가 날 찾고 있을까. 날 쫓고 있을까. 그녀는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인 걸까. 타냐의 말이 마음을 괴롭혔다.

 

사람을 데려와서 마녀에게 팔아넘긴대.

 

[맞았어.]

 

등 뒤로 몸을 홱 돌렸다. 귀를 간지럽히는 목소리. 어둠 속에서 하얀 갈기가 벌레들이 내는 빛을 받아 반짝 거린다.

 

[그녀가 맞았어.]

[베스 맞지?]

 

여자의 목소리였다. 타냐 앞에서는 한 번도 말을 하지 않은 걸까. 하얀 늑대가 다가온다. 나는 뒷걸음질 치며 팔을 휘적대었다. 잡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좋았다. 희망을 짓밟기라도 하듯 벽이 등 뒤로 부딪혔다.

 

[희미하지만 남아 있어.]

[베스 맞지, 꼬마야?]

 

[왜 그러시죠?]

 

목소리가 꼴사납게 떨렸다. 턱 밑으로 고개를 숙이며 내 목을 훑는다. 콧김이 그대로 느껴져 소름이 끼쳤다.

 

[진 빚이 있어서 말이다.]

[그녀가 널 찾고 있지?]

 

[모르겠어요.]

 

다리가 떨린다. 목소리는 이미 떨릴 때로 떨려 부자연스럽게 입이 움직였다. 그녀가 날 어떻게 하려는 걸까.

 

[그녀는 한 번 잡은 먹잇감은 놓지 않아.]

[늘 그랬고 늘 그렇지.]

 

하얀 늑대가 몸을 일으켜 몇 걸음 뒤로 떨어진다. 질문들이 멋대로 입 밖으로 뛰쳐나간다.

 

[타냐를 마녀에게 팔 건가요?]

 

하얀 늑대가 미소를 짓는다. 송곳니가 밖으로 드러나 날카롭게 번뜩였다.

 

[걱정 마렴.]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왜 여기에 있는 거죠?]

 

그녀는 타냐의 말을 인용하였다.

 

[그녀의 수호천사이니까.]

 

이상한 말이다. 눈앞에 있는 두 발로 서 있는 하얀 늑대가 자신을 수호천사라고 말한다. 거기엔 타냐가 말했던 편안함이나 안정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위험하고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타냐를 내버려 두라고 부탁이라도 해야 할까.

 

[왜 타냐를 지켜주는 거죠?]

 

뒷짐을 지며 몸을 기울인다. 그녀는 대답을 해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대체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를 어떻게 할 셈이죠?]

 

[네가 알 필요는 없지, 꼬마야.]

 

[베스가 있는 곳을 알려 드릴게요.]

 

웃음소리. 그녀는 내 말이 우스운 듯 입가를 내리지 않는다.

 

[정보를 교환하고 싶다면 꼬마야.]

[더 그럴듯한 걸 가져오렴.]

 

붕대로 눈이 가려진 하얀 늑대가 곧바로 고개를 돌린다. 콧김을 내뿜으며 폴짝 뛰어 어둠 너머로 사라진다. 그녀가 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나가 나에게로 뛰어 오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손도끼가 들려 있었다. 숨을 밭게 차며 무릎을 짚는다. 내가 다가가자 고개를 올리고는 소리를 지른다.

 

[멍청아, 뭐해!]

 

나를 세차게 밀며 집으로 뛰어 들어간다. 시끄러운 소리가 위층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트라나와 타냐가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아래로 내려왔다. 한나가 다시 밖으로 나오며 나에게 외쳤다.

 

[수인이 나타났잖아!]

[그럼 사람들을 깨워야지!]

 

어느새 가지고 온 것인지 한나는 작은 종을 들고서 연신 막대기로 시끄럽게 쳐대었다. 마을 곳곳으로 불이 밝혀진다.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고 몇몇은 어딘가로 달리고 있었다. 곧이어 커다란 종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소리친다.

 

[수인이 쳐들어왔다, 준비해!]

 

횃불을 들며 갖가지 무기를 드는 사람들. 타냐는 긴장한 표정으로 그대로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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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5 장편 INA - 맹세의 깃발 키미기미 2020.12.12 0
2644 장편 INA - 포프의 자식 키미기미 2020.12.11 0
2643 장편 INA - 전쟁 나팔 키미기미 2020.12.10 0
2642 장편 INA - 믿어선 안되는 것들 키미기미 2020.12.09 0
장편 INA - 구원자 키미기미 2020.12.08 0
2640 장편 INA - 거짓말쟁이들 키미기미 2020.12.07 0
2639 장편 INA - 그애의 말이 사실인가요? 키미기미 2020.12.07 0
2638 장편 INA - 부랑자 키미기미 2020.12.06 0
2637 장편 INA - 그럼요, 그럼요 이나양. 키미기미 2020.12.05 0
2636 장편 INA - 프롤로그 (판타지) 키미기미 2020.12.05 0
2635 단편 인류의 비극 투인 2020.11.30 0
2634 단편 FLY WITH ME 미믹응가 2020.11.25 0
2633 단편 차를 멈춰야 해요 2시59분 2020.11.25 0
2632 단편 미운 반지 장난감신부 2020.11.24 0
2631 단편 피부묘기증 ㄱㅎㅇ 2020.11.24 0
2630 단편 미아 양윤영 2020.11.22 0
2629 단편 내 이름은 조이 마음의풍경 2020.11.20 0
2628 단편 여섯번째 꿈의 감각 양윤영 2020.11.1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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