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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INA - 부랑자

2020.12.06 00:2212.06

달이 이불보 위로 커다란 그림을 그려 천천히 흘러 보낸다. 나를 이 이상한 세계로 이끈 그는 웃으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엄마랑 아빠를 볼 수 있다고. 오전에 숲에서 만난 습격자는 부랑자라고만 말하였다. 돈이 필요하면 강도짓을 일삼는 나쁜 이들이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엔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늘 상 짓는 자상한 얼굴을 빼고는.

 

보를 꼭 쥐고서 기도했다. 무사히 두 분을 보게 해주세요. 절 혼자 버려두지 마세요. 꼭 쥐고 기도하였다.

 

 

 

그는 아침 해가 밝기도 전에 모습을 감추었다. 다른 곳에서 자고 오는 걸까. 어제와 똑같이 오두막에는 나와 베스라는 늑대인간만 남아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부랑자는 안정을 되찾은 듯 숨을 고르게 내쉬고 있다.

 

[그 분은 또 나가셨나요?]

 

꼬리만 살랑살랑 거리는 그녀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대답 하나 하지 않았다. 밖은 화창하고 맑았다. 오두막에서 나와 어제의 그 절벽으로 걸어갔다. 기억을 되감으며 내 머리에 까지 밖에 오지 않는 작은 나무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짚었다.

 

작은 나무 숲 사이를 걸어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베스가 가르쳐준 장소는 나타나지 않았다. 길을 잃는 것이 두려워 까치발을 한 채로 고개를 빼었다. 멀리로 희미하지만 오두막이 보였다. 한참을 걸었다고 생각했지만 오두막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낙심한 채로 나무뿌리에 엉킨 꽃을 따 손안에 움켜쥐었다. 흙과 풀내음을 손안 가득 담고서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나요?]

 

나무 마루에는 핏자국만 엉겨 있을 뿐 부랑자는 보이지 않았다. 베스 그녀도. 정말 그 사람을 잡아먹으려 하는 걸까. 오두막 안은 썰렁하게 비어있다. 새소리가 지저귀는 아침 햇살을 등지고서 안으로 들어간다.

 

읍!

 

내 입을 막고 팔을 움켜쥔다. 눈을 꼭 감았다.

 

[움직이지마.]

 

낯선 숨결이 목덜미에 닿았다. 부랑자가 내 몸을 꽉 붙잡고서 밖으로 끌고 나갔다. 몸이 떨려 저항을 할 수 없었다.

 

[젠장, 젠장, 젠장.]

 

짧은 욕을 반복하며 부랑자는 작은 나무숲으로 달음질 쳤다. 그에게 끌려가며 손에 있던 꽃들이 흙바닥으로 우수수 쏟아졌다. 누군가 도와주길 빌었다. 달음질이 멈춘다.

 

숲 입구에서 부랑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저리 꺼져!]

 

새된 목소리. 나는 눈을 떠 그를 막아 세운 존재를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갈기의 말없는 늑대인간 하나. 베스. 그녀는 곧바로 날카로운 발톱을 꺼내 들었다.

 

[젠장,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면 꺼져, 당장!]

 

여자아이의 목소리. 새된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목에 차가운 것이 닿았다. 날붙이와 그을음. 온 몸에 털이 곤두선다. 아찔한 생각이 자리한다. 혹시 죽는 걸까.

 

베스가 발톱을 세운 채로 몸을 웅크린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에 다리를 펴 나를 붙잡은 부랑자의 옆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잔뜩 겁을 먹은 부랑자는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고글과 스카프가 벗겨진 그의 맨 얼굴이 드러난다.

 

작고 오밀조밀한 눈 코 입.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에 두려움에 찬 표정. 베스는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작정인 듯하였다.

 

[안돼요!]

 

내 외침에 베스는 소녀를 덮은 자세 그대로 얌전히 일어났다. 소녀가 금방 자리를 떠나 멀리로 도망을 친다. 베스는 도망가는 부랑자를 쫓아가지 않았다. 잔뜩 긴장한 내 얼굴을 지켜보며 코를 킁킁 댈 뿐이었다. 소란이 지나자 베스는 오두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겁을 먹은 나는 그녀의 갈기 한 쪽을 살짝 잡아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나를 돌아보며 얼굴을 찌푸리지만 가슴이 두근대고 있어 진정될 것이 필요했다. 갈기를 잡은 내 손을 베스는 뿌리치지 않았다. 기분 탓인지 그녀의 걸음이 내 발에 맞추어 가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우리들은 깜짝 놀랄만한 소동을 숲에 두고서 간신히 오두막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휙.

 

화살 하나가 나무 벽으로 날아와 꽂힌다.

 

[잡아, 당장!]

 

침을 삼켰다. 숲에서 일어난 일보다 더 한 것이 남아있다는 말인가. 나는 들 너머로 고개를 돌렸고 동시에 베스가 내 얼굴을 품에 안아 땅으로 눕혔다. 갑갑하다. 베스의 입에서 낮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보이며 낮게 울음소리를 내었다. 화살들이 오두막 위로 쏟아진다.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오르고 베스가 나를 잡아 어깨에 짊어 졌다. 그녀는 들 가운데를 달려갔다.

 

[저 녀석들이야!]

 

[늑대를 잡아!]

 

거친 음성들이 왁자지껄하게 베스와 나를 쫓아온다. 나는 머리를 감싸며 소리 질렀다.

 

[어디로 가게요?]

 

그녀는 여전히 대답 하지 않았다. 연신 콧김을 세차게 몰아쉬며 침입자들로부터 멀리 도망쳤다. 오두막으로부터, 평온해 보이던 들로부터, 나를 이곳으로 오게 한 그의 집으로부터.

 

 

숲의 세 갈래 길에서 베스는 우뚝 멈추어 섰다. 그녀가 나를 잡던 팔을 풀었고 나는 그대로 그녀의 어깨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짧은 비명과 함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여기는 어디에요?]

 

베스가 나를 말없이 내려다보더니 저 홀로 길을 죽 걸어간다. 군소리 없이 따라 오라고 말하는 것 같아 곧바로 따라 걸었다. 숲 사이로 난 길에서 벗어나 초원과 밭이 보이는 곳까지 걸었다. 멀리로 마을이 보인다.

 

수레들이 덜컹이고 가판대로 과일과 고기들이 쌓인다. 뿔이 돋아난 이들과 짐승의 털을 뒤집어 쓴 이들이 잔뜩 모여 물건을 거래한다. 베스는 혼자서 뚜벅뚜벅 걸어 나무판자들과 돌이 얽힌 엉성한 모양의 건물로 들어갔다. 별다른 수가 없었다. 흙길 위를 지나는 이들의 눈이 나를 바라보았고 혼자서 낯선 곳에 남겨져 있기가 두려웠다. 베스를 따라 삐걱거리는 판자를 밀었다.

 

베스는 누군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거대한 덩치에 날카로운 이빨. 몸과 함께 거대한 손을 흔드는 낯선 누군가. 두런두런 말을 하던 그가 나를 바라본다. 나에게 쏟아지는 시선들이 불쾌했다. 대체 여기는 어디인걸까. 돌아가고 싶었다. 그 들이 있는 곳으로. 그 오두막으로.

 

베스가 계단을 오르며 나에게로 손짓하였다. 곰처럼 생긴 그가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베스는 복도를 따라 단단하게 잠긴 문을 힘껏 밀어 젖혔다. 방 하나를 골라 들어온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앉고는 시간을 보냈다.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베스의 날카로운 눈매가 나를 치켜 떠보지만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를 기다려야 할까요?]

 

그녀가 눈을 감는다.

 

[제가 여기 있는지 그가 알까요?]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 나를 이상한 세계로 이끈 남자. 매번 웃음을 지으며 기분을 북돋던 그. 나는 그가 보고 싶었다. 이 이상한 세계에서 그리고 나라는 존재조차 모르는 원래의 세계에서 나를 잡아 이끌어 준 것은 오직 그 뿐이었으니까.

 

베스는 말을 하는 대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 나도 그녀를 따라 일어났다. 그녀가 내 앞으로 손을 뻗으며 앞을 막아 세운다. 당황해하는 나의 얼굴에도 그녀는 저 혼자서 문을 열어 나가버린다. 혼자 남게 되었다. 혼자 떨어져 나간다. 그녀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조용히 문고리를 돌렸다. 문을 열어 그녀를 찾을 수 있을까.

 

‘혹시 이 편지를 발견했다면

나를 보러와 주렴.’

 

엄마. 그냥 눈물이 났다. 왜 우는 지도 모른 채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정말 있을까. 나를 찾는 누군가가 정말 있는 걸까.

 

 

 

 

 

해가 지고 주황색의 빛깔들이 낯선 곳의 땅을 한참을 물들인 뒤에야 베스가 돌아왔다. 불에 익힌 생선 몇 마리와 과일 몇 알들. 처음 보는 노란색의 과일들이 바닥으로 굴러다녔다. 나는 말을 할 기운이 나지 않았다. 그 날 밤을 그렇게 보냈다. 자신이 사라진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기분을 온 몸으로 느끼며.

 

달이 환하게 비추고 모두가 잠들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베스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말없이 그르렁 거리는 울음을 낮게 끌며 꼬리가 살랑거린다. 그녀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는 소리 없이 마루 위를 걸었다.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진짜 엄마인지, 아빠인지. 나의 가족인지. 가족이라면 왜 이런 이상한 세상에 있는 것인지. 나는 물어봐야 한다. 알아야만 한다.

 

몰래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어젖혔다. 두꺼운 문은 내가 온 몸으로 힘껏 밀어야 움직였다. 살금살금. 동물의 얼굴을 한 괴물들이 발소리를 듣고 눈치를 챌까봐 입을 막고 발끝을 들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계단까지 왔다. 베스가 잠든 방으로 몸을 돌려 섰다.

 

나에게는 선택지가 없다. 그런 편지를 받고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계단 아래로 푸른 달빛이 바닥위에 고이고 있다. 모두가 잠들어 숨을 죽인 건물 안은 모든 것이 멈춰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로 가는 게냐.]

 

곰. 베스가 이곳으로 들어와 말을 나누던 괴물. 곰의 모습을 한 그는 얌전히 나를 바라보며 말을 하였다.

 

[방으로 돌아가지 그래.]

 

[찾아야할 사람이 있어요.]

 

치익. 곰이 부싯돌을 부딪혀 불을 피웠다. 연기가 피어올랐고 푸른 달빛으로 회색 숨들을 뱉어 내었다.

 

[그러냐.]

 

숨을 빨아들이고 다시 내쉰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았다.

 

[저를 잡아먹을 건가요?]

 

곰의 모습을 한 괴물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는 꿈쩍도 하지 않는 곰을 두고 건물 밖으로 달음질 쳤다. 오두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 괴물들이 들끓는 위험한 곳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자.

 

흙 길을 그대로 밟으며 고개를 돌렸다. 주위를 훑으며 기억을 되짚었다. 왔던 길로 되돌아 걸었다. 마을에서 입구로, 입구에서 숲으로, 숲에서 수풀 속으로. 나는 길을 잃고 만다.

 

베스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 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딸아.’

 

짧은 메시지의 간단한 문장. 나는 그 문장 몇 줄을 부적인양 손으로 그러모아 가슴 속에 품었다. 풀들이 멋대로 자라난 숲의 사이로 고개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움직이지마!]

 

쉿 소리. 나를 부르며 낮게 자세를 낮추는 의문의 누군가. 전의 커다란 고글을 쓰고 제 몸만한 망토를 걸치고 있다. 나에게로 다가온다. 나는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그녀가 나에게로 몸을 날려 덮쳤다.

 

웁.

 

내 입을 막고서 몸을 꽉 눌렀다. 움직일 수가 없어 눈만 감았다.

 

[요새는 벌이가 시원치 않아.]

 

[사냥도 끝이야.]

 

[마녀가 이걸 알까?]

 

낯선 목소리 둘이 흙길을 밟으며 우리 옆을 지나갔다. 수풀에 가려져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짐승들이 내는 특유의 흙냄새가 진동하였다. 내 위에서 온 몸을 누르고 있는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빚은 갚은 거야.]

 

그녀가 벌떡 일어난다. 망토에 가려져 있지만 그녀가 내는 목소리와 망토 위로 짧게 비어져 나온 단발 때문에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소녀 같아 보였다. 나는 그녀를 붙잡기 위해 소리쳐 물었다.

 

[넌 누구야?]

 

그녀가 자신이 쓴 고글을 위로 벗어 젖혔다. 검은 눈동자와 어깨까지 오는 흑발. 그녀는 허리를 핀 채로 꼿꼿이 서 자신을 소개하였다.

 

[너처럼 잡혀온 노예이지.]

 

지금 저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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