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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네 번째 질문

2021.04.08 12:0304.08

Q4. 생명체가 거주하는 인공 행성을 창조한다고 가정할 때 본인이 가장 중점을 두어 설계할 부분은 무엇인지 근거와 함께 논하시오.

 

 

유르트는 8년째 나와 살고 있다. 유르트의 나이를 계산하는 방식은 알 수 없어서 그냥 우리가 만난 해부터 손가락을 접었다. 새끼손가락이 두 개 남도록 숫자를 세며 양손을 같은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 모양처럼 유르트는 내 인생의 반을 함께했다. 이후에는 그녀가 없었던 시간이 원형 그래프에서 점점 자리를 줄여가는 일만 남아 있었다.

열여섯 살의 여름은 나머지 기억들과 경쟁을 붙일 만했다. 지구 연방 아카데미는 제1태양계에 등록된 생명체 중 지구의 시간을 기준으로 열네 살 이상부터에게 학습의 문을 열어줬다. 대부분은 정규 교육과정을 마치고 이삼 년 정도 고등교육을 받은 이후에 아카데미 입학시험을 치렀다. 탐사선에 한 자리를 차지하거나 우주 개발 관련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연방 고위직을 꿈꾼다면 다들 한 번쯤 염두에 두는 과정이었다.

기회는 비교적 균등했고 절차는 평등했다. 추천 입학생이 없었단 얘긴 말자. 나는 시험을 다섯 번 치렀지만 6차 시험장에 나타난 옆 자리 캐나다인과 짧은 대화를 통해 그는 앞선 두 번의 시험 이후 이 장소로 올 수 있음을 알았다. 절차는 시험장 문 앞에 선 순간부터 평등한 것 같았다. 
정원의 10배수를 선발해 치른 1차 시험부터 정원의 1.15배 인원이 모인 5차 시험까지 치러낸 이들은 대체로 긴장을 한 꺼풀 벗어낸 모습이었다. 사실 6차까지만 오면 신입생 의자 앞에 서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등을 돌려 앉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학교에 다녀봤다면 알 거다. 엉덩이가 닿아야 할 곳에 닿지 않는 아뜩함을.

 

그 해 여름비는 잘못 새겨진 습관처럼 내렸고 태풍은 연약했다. 돌풍이 부는 새벽이 오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몇 년 전만 해도 가을이 아주 짧았다. 이런 날은 9월 말에나 찾아오곤 했다. 해수면이 상승하고부터 계절은 그래프와 예측을 마구 무시한 채 폭주했다. 여덟 살이었지만 유르트가 오기 이틀 전까지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녀가 온 지 꽉 찬 칠 년이 된 셈이었다. 그리고 가을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고, 이제 8월에도 최고기온이 25도에 근접한다. 아직도 정부에서는 날씨 컨트롤이 시원찮았다. 강수량이 늘어나면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그들의 삶을 뒤흔들었던 재난은 아직도 진행형이었다.

유르트는 슬리퍼에 발을 꿰고 지루한 얼굴로 서 있었다. 들고나는 사람이 많아 오며가며 얼굴을 얼핏 본 사람들도 인사 대신 경계를 지우기만 하는 동네였다. 주택 담을 타고 자라는 진녹색 담쟁이가 벽을 뚫을 기세로 자라다가 그늘이 짙어져 기세를 죽이는 벽 아래에서 다들 그림자 안으로 스며들 듯 색을 잃었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면 표정이 바뀌었다. 햇볕 아래로 발걸음을 옮겨 피부가 반짝이듯 환해진 유르트와 보조를 맞추어 걷는다. 우리는 서로를 끌어당기는 점들로 이어진 선 위를 걸어 거리를 좁힌다.

여행은 못 갈 것 같다고 어제 말했다. 목적지도 싫고 시간도 안 난단 말에 유르트는 약간 슬픈 표정을 했지만 나의 선택을 존중해주었다. 오늘은 만나자마자 습기에 가라앉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수고 많았네, 트리스.”

그녀가 내 이름의 첫 번째 글자에 사라진 두 점을 넣어 발음할 때면 오류에 걸린 컴퓨터처럼 신경질적인 단음이 삐죽였다.
학교에서 나를 제외한 열아홉 명이 아카데미 입학시험을 치렀다. 6차까지 함께 간 인원은 한 손으로 계수가 가능했다. 수고 많았다는 말을 들을 만하다. 유르트는 진심이었고, 나는 조금 지친 상태였다.

“이제 뭐 하고 싶어.”

“내일 오후까지 자고 싶어.”

“그건 생각 좀 해 보자.”

계절이 바뀌는 경계에서 내리는 비는 단시간에 기온을 떨어트린다. 해가 다시 드러나 대지를 달구기 전까지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이 선득했다. 유르트는 손목까지 걷어 올린 얼룩진 회색 셔츠를 풀어 손등을 덮었다.
젖은 바닥에 등껍질이 새까만 벌레가 자신의 전속력으로 다리를 움직인다. 긴 오전이 지나자 점심은 흐물흐물해졌다.

“올라갈까. 곧 배달 올 거야.”

식료품을 돌아오는 시간에 맞추어 주문해두었다고 그녀가 설명했다. 모든 물건은 배달자와 비대면으로 받는 쪽을 택한다. 우리는 거실과 방에 느긋하게 늘어져 있다가 현관 복도를 울리는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 가면 비로소 배달 박스를 끌어와 식사를 시작한다.

내가 시험을 치르는 동안 유르트는 가죽 팔찌를 새로 만들었다. 왼쪽 손목에 그녀가 실패를 반복하며 능숙해진 결과물이 매달려 있다. 엘리베이터 버튼은 내가 눌렀다. 아니면 유르트가 팔꿈치를 썼다.  사람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나는 버튼 근처에서 서성이곤 했다. 나는 늘 먼저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다. 남들이 알아채기 전에 내가 먼저 알게 된 습관이었고, 누구도 그걸 얘깃거리로 삼지 않아 다행이었다.

“지금 상태는?”

“체온, 기분, 소화 모두 보통이야.”

“일상 같단 뜻이네.”

유르트의 진단은 노래 같다. 아주 예전부터 내려온 멜로디를 가졌다.
그녀의 고향은 지난 세기에 사라졌다. 위구르족 후손에서도 꼬리의 끝을 물고 있는 그녀는 카타르계 미국인인 아버지와 몽골에서 평생을 보내다 러시아로 이주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고향은 문명을 받아들이지 못해 멸종했다고 전해진다. 세계의 해수면이 1킬로미터 상승해 고향을 잃은 내 어머니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금세 친해졌으며, 아마 그런 아픔이 서로를 이해하게 하는 강한 동력이 되지 않았겠느냐고.

그게 내가 다른 사람에게 부모를 소개할 때 하는 말이다.

유르트는 때 이른 죽음을 선고받은 엄마가 나에게 남긴 안드로이드다. 안드로이드는 단독으로 인간 어린이를 양육할 수 없다. 양육자가 고용하는 베이비시터는 될 수 있지만. 그러나 유르트는 보조용 안드로이드가 아니다.

연방의 아동보호법 규정에 의하면 적법한 보호자 없이 살아가는 14세 미만의 유소년은 정부의 책임 하에 관리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정부와 연방과 남편을 모두 믿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나를 기르기엔 사랑이 모자랐다. 엄마는 자신이 떠난 이후에 나를 돌볼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를 실재로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당연히, 안드로이드를 인간으로 등록하는 것은 불법이다. 안드로이드를 인간과 동일한 외형으로 제작하는 일이 불법이듯이. 

엄마는 아주 고심해서 유르트를 골랐다. 이 동네에 어울리면서 우리 가족과 동떨어지지 않을 만한 인물이어야 했다. 유르트는 키 165센티미터에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혼혈 아시아 여성이다. 그녀의 얼굴에는 기억에 남을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유순한 듯하나 감정이 희석된 얼굴. 오래 바라보고 있어도 희멀건한 답만이 돌아올 것 같은 얼굴에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나는 유르트의 흐릿한 눈썹을 좋아한다. 그건 우리 가족과 그녀가 가진 공통점이다.

우리의 첫 만남은 직선적이었다. 엄마는 우리에게 “트리스는 네 딸이야”라고 말했다. 엄마의 계획을 이런저런 식으로 들어 알고 있어 아주 충격이진 않았다. 엄마와 유르트는 서류상으로 결혼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떠난 이후에도 나에게는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이 있는 셈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그를 불러 보기도 전에 산뜻하게 양육권을 포기했다. 산뜻한 이별이야말로 잘 지내라는 한 마디로 끝낸 관계에 붙일 만한 단어가 아닐까? 

엄마의 재혼은 자신의 공식적으로 사망한 이후에 나의 생물학적 아버지에게는 연락이 미치지 않게 하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졌다. 아버지의 성향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자신을 모욕한 여자가 있는 곳을 향해 그리움을 타전할 인간이 아니었으므로, 그 계획은 어느 정도 성공 가능성이 있었다.
허점도.

그렇지만 엄마는 자신이 설계한 미래를 관철해나갈 의지가 투철했다. 우리는 누가 보기에도 적절한 사이즈의 가족이었다. 엄마가 떠난 이후에도 유르트와 나를 의심하기는 어려웠다. 해수면 상승 이후 세계가 재편성되면서 많은 일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다. 물론 누군가 유르트를 기관으로 데려가 얼굴을 스캔하고 신원 파악을 위해 지문을 따면 들통 날 일이기도 했으나, 사람들이 만든 것들에는 언제나 작고 큰 방식으로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법이었다.

유르트는 엄마의 뇌 일부분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의 생각 뿌리가 같은 셈이었다. 자신이 없을 때 유르트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엄마가 하는 것과 같았다. 유르트는 엄마처럼 생각한다. 뒤집어 말하면 엄마는 유르트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교하는 두 대상은 동일한 무게를 가지지 않고, 한 대상이 상대를 흡수하곤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네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라면, 나는 약간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썼다. 어차피 내 자리는 준비되었을 테니까.

 

*

 

긴급시험의 이유는 장황했다. 그러나 진실이 아니라는 것만 분명하고, 우리는 건너편 방에 심사위원들이 앉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간단한 자기소개 후에 주어진 간식을 먹으며 6차 시험 내용을 토론하는 방식이었다. 다들 며칠 전에 시뮬레이션한 것들을 복기하는 중에 시험자 중 한 명은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한 호스트라는 것을 캐나다인이 말해주었다.

그걸 왜 알려주느냐고 물을 뻔했지만, 그냥 고맙다고 했다.

모르는 척 누구든 따라가면 돼. 캐나다 녀석도 이름표를 달아 그는 캐나다A에서 킬로이로 승격됐다. 킬로이가 내게 친절한 이유를 고민하다 보면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리가 다 아팠다. 이젠 행운이겠거니 하는 것뿐이다. 혹시 거짓말을 했더라도 상관없다. 답안지엔 가족에 관한 어떤 문장도 쓰지 않았다.

긴 원형 탁자는 모두가 한 마디씩 하기에는 부적합한 구조였다. 나는 적당히 원이 돌아가는 지점에 앉았다. 킬로이는 맞은편에 앉아 말간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그의 얇은 피부 아래 즐거워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전 4번에서 시간을 엄청 썼어요. 인공 행성 창조 문제요. 구상이야 가끔 해봤지만 현실적으로 근거를 대서 구현하려니까 어렵더라고요. 다들 어땠어요?”

“처음에는 인간 없는 행성을 만들까 했죠.”

말을 받은 여자가 입은 갈색 셔츠에 동물 털이 장식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삼색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다면 최소 동물이 두 마리일 것 같았다.

“그럼 지구와 비슷하게 설계하셨나요?”

“아뇨.”

“왜죠?”

“누군가 거길 테마파크로 개발하려고 할까 봐요.”

테마파크와 동물학대로 주제가 튀기 전에 호스트는 능란한 솜씨로 대화를 종료했다.

“저는 생명체에 집중해서 생각했어요. 사회에는 아무래도 제도가 필요할 테니까요.”

“저는 성비요. 늘 실험해보고 싶었던 주제예요.”

“인간 말고 다른 생명체를 상정한 분은 또 없나요?”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다면 규칙을 새로 짤 수도 있겠죠."

“트리스트람은 어떻게 생각해요?”

그 애는 내 셔츠에 달린 이름표를 흘깃 보곤 질문했다. 열성적인 눈빛들. 나는 킬로이의 눈썹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제 행성에서는, 행성과 인공 태양과의 거리가 가장 중요해요.”

아그네스 우의 이야기를 썼기 때문이다.

혹자는 인터뷰의 진위에 대해 의심한다. 그러나 나는 시험을 보러 오는 셔틀에서 그 기사를 읽었다. 2082년 2월에 이루어진 인터뷰였다.

21세기의 전설적인 제독 아그네스 우가 죽어가는 태양을 발견하고 연방의 본격적인 승인이 내려지기 전 너나할 것 없이 쏟아낸 426,817개의 기사 중 고작 네 개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뫼르소라는 고전문학 속의 인물을 언급한다. “우리는 모두 뫼르소가 된 기분이었다”라는 제독의 다소 감상적인 문장에 주목한 사람들은 소수였다. 제2태양계가 발견되고 13년 후, 은퇴를 기념한 인터뷰에서 아그네스는 당시 상황을 보다 자세하게 밝혔다.

―총괄 엔지니어 마고 페리가 다들 앉아 안전벨트를 매라고 소리쳤습니다. 기본적으로 긴급 비행 중에는 모두가 자리를 지킵니다. 그런데 저부터가 일어서 있었습니다. 그녀는 개별 좌석에 보호막을 작동시켜놓았어요. 제 허락 없이요. 그리고 어디선가 격발음이 들렸습니다. 나중에 마고는 그러지 않으면 자신부터가 달려들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고 했습니다. 그 충동에 휘말리지 않은 종은 없었겠지요.

후에 아그네스는 그의 동료들을 만나 과거 이야기를 하던 중 그녀는 모르던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당시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던 이는 대부분 지구 출신이었다. 항해사들의 본토는 미국과 중국,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한국과 칠레였다.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역사를 자랑하는 국가들이다. 그 외에 내륙 국가에서 살다 해수면 상승이 끝난 이후 이주한 엔지니어 바토가 있었다. 겨우 서른한 살의 바토는 발바닥이 간지러웠다고 진술했다. 그 외에는, 모두의 눈빛이 평소와 달라 지금이 어떤 긴장 상태인지를 가늠하느라 호흡을 골랐다는 말뿐.

“태양은 두 종류로 가정했습니다. 죽음이 100억 년 정도 남은 제1태양계의 일반적인 태양과 인공 태양인데 행성을 만들 기술력이 있다면 인공 태양 구성에도 어느 정도 성공했으리라 봐서 후자에 중점을 뒀습니다. 인공 태양은 크기에 따라 태양계를 커버할 수 있으니까요. 작게는 행성 한두 개부터 시작하면서, 생장과 호르몬, 생체 리듬에 영향을 미치는데다가 시간을 운용하기 쉬운 점이 인공 태양을 선택한 주된 이유입니다. 저는 0부터 시작하는 걸로 설정했거든요.”

“태양이 있다면 계절이 생기겠네요? 계절이 변할 때마다 생명체를 보호하는 대책도 필요할 거고요.”

“사계절은 좀 비효율적이지 않나요?”

킬로이가 덧붙였다.

“계절을 견디면서 인간은 발전하니까요.”

“발전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은데요? 인공 태양을 만들 기술과 자원으로 행성 자체를 운용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요? 인공 대기막을 씌워서 그 안을 일정한 상태로 유지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버처타운 같은 성공적인 사례도 있고요.”

“저는 버처타운과 용도가 다른 행성을 상정했습니다. 거긴 행정과 군사 기지고, 기본적으로 이 행성은 이주를 위한 공간이에요. 좋은 제안이지만 제 계획과는 다르네요.”

나는 대답이 끝난 것을 알려주고자 호스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다른 이의 이름을 부르고, 또 다른 행성이 시뮬레이션됐다. 나는 아그네스가 평생 마음 한구석에 품고 살았던 우주에 대한 열망이나 집착보다 당장 내가 숨 쉬는 땅이 중요했다.

사실 내 행성에는 생명이 살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내 행성에 가장 먼저 발을 디디는 사람은 나일 것이다.

나는 거기서 보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셔틀 스테이션에서 집 앞까지 운행하는 구식 버스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버스 요금이 셔틀보다 압도적으로 싼 탓이다. 나는 가끔 걷는 이들의 행렬에 합류했다. 집으로 갈 때쯤에는 합격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떨어졌을까? 그렇지만 사람들은 감상적인 이야기에 결국 끌려간다.

내가 여덟 살이던 여름에 엄마는 나를 과달키비르로 데려갔다. 이전에는 강이었으나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절벽이 된 곳이었다. 지형이 안정화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리라 여겨지는 곳에도 몇몇 허가된 사람들의 출입은 허용되었고, 엄마는 과학자 신분을 이용해 출입 허락을 얻어내곤 했다. 

우리는 2인용 소형 셔틀을 타고 저녁 즈음에 도착했다. 무지막지한 수치로 불어난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세계에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나는 사람들이 아직 두려움을 배 한구석에 가지고 있던 시대에 태어났다. 어느 시대에 산 사람만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공포를 빗겨선 세대인 셈이었다.

엄마가 자꾸 셔틀 지붕에 올라가보라고 했다. 이 광경을 봐야 해. 동그란 천장은 사방이 미끄러질 구석이었다. 나는 그대로 떨어져서 절벽을 굴러 바닷속으로 삼켜질 것만 같은 착각에 다리를 떨었다. 엄마가 팔짱을 끼고 선 동안 나를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바람이 산 정상에 올라선 것처럼 불었다. 나는 셔틀 천장에 최대한 달라붙었다. 엄마가 올라오면서 차체가 조금씩 흔들렸다. 

“트리스, 볼을 반대로 붙여야지.”

바다처럼 펼쳐진 들판에서 파도 소리를 들었던 것은 아마 우리의 착각이다.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셔츠 사이로 바람이 새어들었다. 머리통을 달구던 해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아직 인간에게 눈이 달린 이유가 있지.” 그건 엄마가 나에게 보여주려던 여름이었다. 

엄마는 거기서 유르트에 관한 계획을 설명했다. 준비를 여러 번 해서 빠트릴 수 없는 계획을 말하듯이 자연스러웠고, 나에게 미안해하는 기색이 얼핏 느껴졌다. 바람 때문에 글자 몇 개가 날아갔다. 나는 그때부터 과달키비르를 짙은 색으로 기억하곤 한다. 엄마의 기대와는 달리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같이 있으면 안 돼?”

솔직히 어느 여덟 살이 겁먹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를 버리고 떠날 준비를 차곡차곡 해두었다는 것에도 화가 났다. 내 유년에는 화장실에 다녀오며 방문 아래로 새어 나오는 신음 소리를 들었던 새벽이 있다. 화가 났고,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그녀가 하릴없이 낭만적인 탓도 있었으리라. 그녀는 새로운 태양이 생겨나기 위해서 거대한 폭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없으면 유르트도 가버릴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울었다.
나는 아무 기술도 없는 어린아이였다. 유르트가 고장 난다면 어쩔 것인가? 인간처럼 병에 시달리게 된다면? 엄마가 그녀를 프로그래밍했다면, 내가 자란 이후에는?
아마 나는 엄마만큼 유르트를 사랑할까 봐 겁이 났었던 것 같다. 불가능할 것 같은가?

“아니, 트리스. 유르트는 평생 너를 사랑할 거야. 그래야 네가 자라는 동안 너를 사랑할 수 있어.”

엄마가 죽기 직전까지 유르트에 대한 내 감정은, 어린아이답게 굴곡이 컸다고 해 두자. 그녀는 내 또 다른 엄마가 될 인공 배양된 물체였고, 무엇보다 임시 보호자였다. 그러나 유르트는 엄마와는 다른 인물일 것이었다. 생김새도 키도 체향도 모두 엄마와 같을 리 없었다. 나는 그때까지 엄마의 계획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어린아이였다. 자주 빨아 끝이 뻣뻣해진 담요를 덮고 있던 엄마 곁에서 자겠다고 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대신 매 해 여름이 오면 엄마를 생각해줘.”

엄마는 그렇게 말했고, 절벽은 멀쩡했다. 바다가 치솟아 오르거나 셔틀이 제멋대로 작동하거나 엄마가 갑자기 기절하거나 하는 모든 불행한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분홍과 보라와 주홍으로. 천 년 전과 같은 풍경으로.  

과달키비르에서 돌아와 유르트와 함께 살게 된 이후에, 엄마는 결코 유르트와 나와 그녀 셋이 함께하는 추억을 만들지 않았다. 두 사람이 자신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을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내 삶은 나와 타인 한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규칙적이고 절박한 가족의 숫자였다. 
나는 행성에 절벽을 만들 셈이었다. 봄과 가을, 겨울의 과달키비르에 유르트를 심고 싶었다.

 

*

 

기념일용 체리 럼 향초는 달고 진득한 체리 향으로 탄내를 덮었다. 와인에 익힌 닭요리 옆에 당근과 케일이 놓였다. “축하해, 트리스트람.” 동일한 말이 쓰인 케이크도 있었다. 대화의 방향은 당연한 수순처럼 미래로 흘러갔다. 신입생들은 모두 덴버에 있는 기숙사로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유르트는 준비한 것처럼 말을 꺼냈다.

“나는 여행을 좀 다녀오려고.”

글쎄, 지진이 온 줄 알았다. 푹 익은 닭고기는 해체할 필요도 없이 포크를 대면 쓱쓱 잘려나갔다. 내 손은 가만히 있는데도 살이 갈라지는 통에 지진일 거라 믿고 싶었다.

“얼마나?”

“네가 학교에 있는 동안.”

“몇 달?”

아카데미는 최소 3년 코스였다.

“나만 놀러 다녀서 미안.”

“돌아오지 못하면 어떡하려고?”

연방 아카데미는 나에게, 졸업 이후 항해사의 자리를 보장하거나 여러 기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었지만 무엇보다 연방정부로 직행하는 에스컬레이터였다. 나는 연방정부에서 유르트의 신분을 만들 예정이었다. 없는 사람을 살리는 건 어렵지만 죽은 사람의 신분을 가져오는 건 가능할 테니까. 그렇다면 독립해 살 수 있는 법적인 나이를 채운 후에 비로소 나는 유르트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걱정을 버릴 수 있었다.

“별일 없을 거야.”

유르트는 지나치게 여유로웠다. 사실 이제 그녀가 안드로이드로 정부에 등록된다고 해도 누군가 나를 센터로 보내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유르트는 좋지 않은 결과를 마주할 수도 있다.

“걱정되니?”

“돌아올 수 있어?”

“응.”

유르트의 대답처럼, 대부분의 여행이 그렇듯이 떠났다가 돌아오면 되는 일이었다. 우리 모두 잠시 이 집을 떠났다가 시간이 되면 서로를 만나러 귀향하는 거지. 영원히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조금만 더 안전하게 살면 안 될까, 라는 말이 목 안에서 끓었다. 

“내가 왜 4번 문제에 그런 답을 썼는지 말해줬어?”

“아니, 트리스.”

우리에게는 어떤 이동수단의 면허가 없었고, 엄마가 기적적으로 마련해놓은 저금을 제외하면 별다른 수입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내내 시빗거리를 피해 살았다. 나는 유르트가 학교에 방문해야 하는 모든 일을 피했다. 안다, 유르트가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벽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습관이 어디서 왔는지를. 눈이 뜨거워지면서 시야가 점점 뿌옇게 변했다.

“언젠가 엄마가 나한테 질문을 했어. 트리스, 네가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게 될 거야. 그럼 넌 뭐가 가장 궁금하니?”

나는 엄마가 같이 가냐고 물었다. 엄마가 웃었다. 물론 같이 가지. 그것 말고 그 행성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했다.
당시 계절이 겨울이었다. 해가 빨리 진다는 걸 비로소 알아챈 해였다. 새 행성은 밤이 여섯 시간이면 좋겠어. 늦게 어두워지고 곧 밝아져서 늦게 자고 아침부터 깨어 있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가 대답했다. ‘오, 엄마도 그게 궁금했어.’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엄마가 궁금해한 것. 새로운 행성의 첫 번째 원칙. 유르트는 김이 피어오르는 잔을 입술에 갖다 댔다.

“그래서 태양을 가져왔구나.”

“맞아, 유르트. 그 행성을 만들면 우리가 가장 먼저 그곳을 차지할 거고.”

“그 행성에 계절이 필요하니까.”

엄마가 바라듯이. 유르트가 바라듯이.

“트리스트람, 너는 우리가 숨어 살 행성을 상상하는 녀석이지.”

그녀가 잔을 우아하게 내려놓는 데 실패하면서 액체가 잔 바깥으로 흘러내려 비정형적인 얼룩을 만들었다. 살갗이 연한 붉은색으로 부풀어 올랐다. “손이 왜 그래?” 잔은 테이블 아래로 추락했다. 아슬아슬하게 카펫 가장자리로 떨어져 절반으로 쪼개졌다.

“괜찮아. 내가 할게.”

그녀는 깨진 조각에 손가락을 대는 대신 수건을 덮어 파편을 모았다.

“네 염려는 고맙지만 나는 지금 다른 계절을 보러 떠나고 싶어. 그게 너를 지금까지 길러온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게다가 날 위해 연방의 데스크 하나를 차지하겠다는 계획을 들었다면 네 엄만……. 이제 그 걱정은 하지 말자.”

유르트는 식탁 가장자리에서 휴지를 집어 들어 바닥을 마무리했다.

“피비는 영리한 방식으로 날 너에게 가르친 사람이지. 네게 불안을 주지 않기 위해서 약간의 거짓말을 섞었다고만 말해줄게. 여행을 다녀와서 우리 더 긴 이야기를 해보자.”

그녀는 새 잔에 차가운 물을 부었다. 물기가 맺히기 시작한 잔 표면에 다친 손을 조심스럽게 문지르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고독한 과학자였다.
유르트는 엄마와 나의 삶에 등장한……무엇이다.
우리가 사는 동안 유르트는 피를 흘린 적이 없다. 더위를 느끼거나 땀을 흘리고, 피곤해한 적은 있으나 그건 그녀의 신체가 인간처럼 프로그래밍되었기 때문이다. 유르트의 정신은……

“그게 네 엄마들이 선택한 방식이야, 트리스.”

늘 내 방향으로 쏠려 있었다. 언제든, 어디서든.

“아카데미에 가서 내 걱정은 말고 행성에 계절을 만들 방법을 찾아봐.”

유르트는 무엇일까? 여전히 유르트의 몸속에는 위구르인과 카타르인과 러시아인의 피와 내몽골의 바람―결코 잊히지 않는 과거로부터의 기억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나는 식사를 마치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속상하고 화가 조금 났지만 동시에 미안했으며 혼란스러웠다. 유르트가 와서 나를 다독여주었다. 지난 육 년간 해왔던 방식으로.

 

*

 

나는 캐나다인과 룸메이트가 되었다. 킬로이는 공동생활을 시작하게 되어 기쁘다는 소감으로 침대를 차지했다. 그는 내가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면 왜 자신의 화장실에 다른 이가 존재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을 간혹 지어 나를 기분 나쁘게 했다. 학기가 시작되고 이틀 만에 킬로이의 부모님이 도대체가 끝나지 않는 그녀의 짐을 가져다주러 왔고, 이제 방의 절반 이상은 킬로이의 여러 물건으로 덮였다. 

유르트는 뭄바이로 떠났다. 그 도시는 수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혼잡하다. 나를 안심하게 하려는 의도로 선택한 장소는 아니었으나 마음이 놓였다. 유르트는 자라는 내내 너는 엄마를 닮았다고 속삭여줬다. 그건 이상한 일이다. 유르트는 짧은 시간 동안 엄마와 함께 살았지만 엄마의 가족보다 그녀를 더 잘 알고 있다.

킬로이에게 유르트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알고 있다. 이런 사람을 알고 있다. 너는 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니.
그러나 나는 유르트의 태생을 얼버무린다. 그리고 킬로이의 삼촌이 사라진 국가들을 연구하는 역사학자라는 사실을 듣고, 이전의 침묵에 안심했다.
나는 지금껏 유르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녀가 모르는 일들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당신은 태어나 시력을 회복하며 마주한 첫 천장의 무늬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형제가 내민 충전용 케이블 끝을 재빨리 핥았던 날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당신은 엄마나 아빠나 삼촌이나 이모나 고모 혹은 수많은 친척들 혹은 너를 어릴 적부터 봐온 친밀한 이웃과 선생님이 늙어갈 때 네 피부가 단단해지고 뼈가 자라던 날을 겪었다.

유르트에게는 그 무엇도 없다. 유르트는 인간의 시간에 맞추어 늙어갈 수 있다. 유르트는 혼자이며, 그녀는 생장점의 최고점을 지난 상태로 만들어졌다.

만약 유르트에게 이러한 기억이 남아 있다면, 그녀의 첫 들이 존재한다면 유르트에게 지난 삶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도 성장하는 나날을 지나 나에게로 왔을까?
이러한 것을 묻기에 우리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아그네스의 탐사선에 타고 있던 리틀 엔지니어 바토는 이렇게 증언한다. 마고 페리는 죽어가는 태양에게 ‘뫼르소’라는 이름을 붙이기를 거부했다. 아그네스는 그 이름을 고집했다. 행성 연방이 새 항성을 정의하기까지 48일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그 전까지는 발견자인 우리에게도 권한이 있다는 말이었다. 마고는 살의를 불러일으키는 태양에게 주기에 너무 적합한 이름을 골랐다며 고집을 무너트린다. 바토에 말에 따르면 마고는 “뻔한 생각”이란 일격을 날렸고 이는 아그네스에게 직격으로 먹혀들었다.

지구연방의 요청에 따라 죽어가는 태양을 추가로 관찰하던 몇 시간 동안 사람들은 서서히 살의에서 벗어난다. 그들은 접근 가능한 태양의 존재가 두려웠다고 진술한다. 공교롭게도 탐사선에 오른  지구 출신 본토인들의 나라는 국토가 바다와 맞닿아 있으며 그들이 살아가는 동안 지도가 바뀌었다. 그들은 눈으로 사람의 집이 물에 잠기는 것을 바라본 세대였다. 내륙 국가에서 살다 해수면 상승이 끝난 이후 이주한 바토만이 궤도를 떠날 때까지 지휘 선실을 걸어 다녔다.

그 탐사선의 모든 이가 죽은 이후로 한참이 흐른 다음에야 그들이 발견한 태양은 비로소 적색왜성으로 변해 그들이 보았던 풍경을 빨아들이고 폭발시킬 것이다. 그들이 삼킨 불안은 비교적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불행을 예감하는 감각에 가까웠다. 아그네스도 마고도 인정하지 않았으나 바토는 제3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해석했다. 아마 마고는 허무맹랑한 가설이라고 일축했을 것이고 아그네스 또한 동의했으리라. “하지만 아그네스는 태양에게 뫼르소란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 했죠.” 바토는 우리가 간결하게 무시해버리는 감정적이고 비현실적인 요소들이 실제로 시야를 가린다고 말했다.

유르트는 일주일에 한 번 트러블이 삭제된 메일과 사진을 보내주었다.

인공 태양은 죽어가는 태양보다 적은 에너지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 행성에 영향력을 미치기엔 충분할 것이다. 그 행성의 생명체들은 파괴와 상실의 공포에서 먼 삶을 살 것이다. 사람이란 죽음을 눈앞에 둔 날까지도 언젠가 본 풍경을 기억하며 감상에 젖는 이들이다. 엄마가 그랬고 유르트가 그랬고 그들의 자식인 내가 그랬다. 나는 적어도 나의 행성에서는 누구도 불안을 안고 걷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유르트와 내가 지금껏 살아왔듯이, 우리는 작은 불안을 지고 있기에 겨우 서로를 끌어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나는 유르트에게 답장했다. 나를 여전히 사랑한다면 뭐가 어려운지도 말해달라고. 나는 멀리서라도 당신을 걱정하고 있으리라고. 우리 그렇게 서로를 묶도록 하자고.

나는 당신을 위해서도 슬퍼하고 싶어, 라고.

그러면 어떤 여름은 비로소 끝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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