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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표적은 살아있다

2021.03.23 01:4903.23

표적은 살아있다

 

 

 

우주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점진적으로 무질서해지는 과정이다.

-카를로 로벨리

 

 

 

「아이들이 사라졌어요. 다, 다섯 명이고요, 잠실 생명병원에서 없어졌는데, 실종, 실종 신고하려고…」

여준은 사시나무 떨리듯 요동치는 목소리를 간신히 붙들었다. 눈앞에 아이들의 마지막 모습이 아른거린다.

「보호자이신가요? 목소리 신원 확인 결과로는 한여준 씨로 나오는데, 맞으신가요?」

「맞습니다. 쉘터 소속이고요. 애들이 사라진지는 얼마 안…」

「돌연변이 보호 센터 말씀이신 거죠? 아이들 특허 번호 알고 계신가요?」

「특허 번호라니요? 이봐요, 다들 어린아이들이에요. 빨리 위치 추적해주세요!」

「네네, 진정하시고 저희가 특허 번호를 알아야 추적이 가능해서 여쭤보는 겁니다.」

「자, 잠깐만요, 원장 선생님 연결 드릴게요.」

여준은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는 순간을 실감하며 덜덜거리는 손으로 원장을 초대했다. 공공장소라 홀로그램 통화는 하지 못했지만 얼핏 들리는 카랑카랑한 원장의 목소리는 화가 나 있었다. 특허 번호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여준은 그렇지 않아도 측은한 아이들에게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짧은 정적 후, 원장은 특허 번호 다섯 개를 전송했다.

「선생님?」

「예, 말씀하세요.」

「정보 조회 승인받으면 저희 수사관이 정확한 위치 알려 드릴 예정입니다. 몇 분 안 걸릴 거예요.」

여준은 덜덜 떨리는 턱을 진정시키려 뭉툭하게 너덜거리는 손톱을 다시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리곤 텁텁한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심호흡, 심호흡…….

 

 

* * *

흑색 커튼이 둘러진 쉘터 원장실엔 대낮의 햇빛이 들어올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자안을 번뜩이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희다 못해 색이 없는 한 사람이 팔짱을 낀 채 책장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다.

"한 선생님. 아무래도 이번엔 빼먹으면 안 될 것 같아."

여준은 눈을 굴리며 초조해하는 원장의 면전에 '싫어요'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검진 때마다 만나야 하는 정체모를 연구원들이 께름칙해 피하고 싶었지만, 일 년에 두 번 있는 정기 검진은 아이들을 위한 일이었다. 이미 이런저런 핑계로 지난번 검진을 건너뛰기도 했으니, 원장이 안절부절못하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왜 표정이 시원찮아. 큰 걱정은 말고. 선생님들끼리 나눠서 인솔하면 되니까.”

원장은 검진을 받을 아이들 이름이 나열된 문서를 건네주었다. 성은 없고 이름만 있는 목록. ‘쉘터’ 보육원의 아이들은 성이 없다. 생물학적 부모 없이 진정 ‘신이 내려준’ 아이들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 물론, 생식 세포를 제공한 자들은 있겠지만, 유전적으로 엄밀하게 따져보면 굳이 부모는 아니라는 원장의 일관된 신념이라고 해 두자.   

유전자 가위 기술로 ‘완벽하게’ 태어난 보통의 크리스퍼 베이비들은 그 명성에 걸맞게 병원에 잘 가지 않지만, 쉘터의 아이들은 특별했다. 한 생명에 붙이는 수식어라기엔 조금 어색한 말이었지만 사람들은 쉘터의 아이들을 ‘표적이탈 돌연변이’라고 불렀다. 돈을 들여 유전자를 성형했으나, 원하는 대로 태어나지 않은 아이라는 것이었다.

바이오 디자이너들의 목표는 부모가 원하는 성격과 외모를 가진 아이를 ‘디자인’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유전자 가위 기술로 DNA 염기 서열을 자르고, 붙인 다음 DNA 디자인 시안을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넣어 괜찮은 아이로 태어날지를 검토했다. 이때 대상이 되는 염기 서열을 ‘표적’이라고 불렀으며, 후에 유전 형질 지도가 완성되자 목표하는 아이의 특징 자체를 ‘표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디자이너들은 부모가 의뢰한 ‘표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만 오류는 정확히 0이 될 수 없었고, 희소한 확률로 아이가 ‘원하는 대로 태어나지 않는’ 경우들이 발생했다.

크리스퍼 베이비를 의뢰한 부모들은 배아 단계에서 성공적으로 보였던 아기가 막상 태어나서는 그들이 기대했던 완벽한 아이가 아닌 경우, 과감히 양육권을 포기하거나 바이오 디자인 회사에 소송을 걸었다. 아이야 또 가지면 되었고, 보통은 평생 한 아이만 사랑하기에도 벅찬 세상이니까. 크리스퍼 베이비들은 일반 아이들보다 훨씬 비싼 보험을 들어야 했고, 일부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 해외 기관에 배아의 디자인을 의뢰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태어난 영유아들이 버려지면 아이의 양육권자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자 정부에선 버려진 표적이탈 돌연변이들을 위한 보육원 사업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백색증에 온갖 차별과 멸시를 받고 자란 장노아 원장은 일생의 숙원 사업이었던 ‘쉘터’ 재단을 만들어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었고,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돌연변이 전문 교사들을 채용하였다. 여준은 쉘터 초기에 장 원장에게 발탁된 돌연변이 전문 교사였다.

"오늘 선생님이랑 같이 소풍 갈 친구들 앞으로 나올게요. 두란이, 미소, 아랑이, 로하, 자유."

쭈뼛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들이 앞으로 나왔다. 씩씩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뛰어나온 미소를 따라 로하와 아랑이 일어섰다. 곧이어 두란이 자유의 손을 잡아끌고 앞으로 나왔다. 여준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걱정부터 앞섰다. 사실은 소풍이 아니라 병원에 가는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사단이 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실어증이 있는 남자애 두란이, 많이 내향적이고 어수선한 자유, 170 센티미터가 넘는 장신의 초등생 미소, 가장 어린 다섯 살 꼬마 아랑이, 그리고 명석한 두뇌를 자랑하는 고학년 초등생 로하.

병에 걸리거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허탈하게 버려진 아이들. 이런 아이들은 친자확인 검사로 생물학적 부모를 찾는다 해도 실제 양육권이 있는 의뢰인으로 연결되기 어려운 케이스였다. 바이오 디자인 회사들은 의뢰인 정보를 갖고 있지만, 고객 보호법의 개정으로 제3의 기관은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결국 쉘터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된다.

 

"그리고 얘들아, 우리 소풍가기 전에 잠깐 병원에 들러 간단한 검사를 할 거에요."

미소와 로하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교환했다. 로하는 어떤 검사를 하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여준은 간단한 건강 검진일 뿐이라는 것을 풀어 설명해주었다.

"선생님, 주사 아야, 해요?"

평소에도 질문이 많은 아랑이 또랑또랑하게 물어왔다. 아픈지 아닌지가 아이들에겐 제일 중요한 정보일 터였다.

"주사는, 건강하면 안 맞아도 되겠죠?"

주사라는 말에 자유는 울상을 지으며 두란의 뒤로 숨었다. 여준은 자유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자유, 무서우면 두란이 형 옆에 꼭 붙어 있어야 돼, 알았지?"

자유는 두란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그제야 여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없는 두란은 내성적인 자유가 유일하게 따르는 아이였다. 여준은 유달리 겁이 많고 숨기를 좋아하는 자유가 걱정이었다. 다른 아이들과 놀다가도 갑자기 놀란 나머지 어디론가 뛰어가 숨어버리면 자유를 찾느라 반나절을 쏘다니곤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이의 패턴을 파악해 자유가 옷장이나 대형 빨래 바구니같이 천이 많은 곳을 좋아한다는 것을 파악하긴 했지만, 작정하고 숨는 아이를 찾는 건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준은 아이들과 함께 자율주행 택시에 올랐다. 택시는 복잡한 서울 한가운데로 그들을 안내했다. 잠실에 있는 생명병원 옆에는 동물원과 백화점, 놀이공원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들이 많았다. 여준은 병원 일과를 빨리 끝마치고 아이들과 진짜 소풍을 갈 생각이었다. 아이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은 생각보다 중차대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잠실 생명병원에는 최첨단 의료시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온갖 종류의 신형 로봇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이들의 키보다 큰 청소용 로봇, 혈압계와 체중계가 달린 로봇, 작달막한 오리 같은 쓰임새를 알 수 없는 로봇……. 여준은 행여 자유가 무서워할까 아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랑은 자신보다 큰 체구에 청소기 흡입구가 붙어있어 코끼리를 연상시키는 청소로봇을 보며 밝게 인사했다. 유난히 큰 아랑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병원 로비에 울리자 로하는 아랑의 입을 틀어막았다.

"좀 조용히 해."

로하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아랑은 금세 울적해져 미소의 옆으로 가 꾸물거렸다. 오늘따라 로하의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로하의 예민함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이었으며, 여준은 그저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와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아프지도 않은데 병원에 주기적으로 온다는 것이 평범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여준 씨? 우선 로하랑 미소부터 들어올게요."

간호사의 얼굴을 한 가이드봇이 다가와 로하와 미소를 진료실로 안내했다. 청소년이 된 두 아이가 해야 할 검사들이 더 많을 것이었다. 기본적인 유전자 검사뿐만이 아니라 미소의 경우 각종 호르몬 검사를 해야 하고 로하는 정신과 상담을 필수적으로 해야 했다. 미소와 로하가 흰 문 안으로 사라지자 여준을 옥죄던 시한폭탄이 떠올랐다.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불임이 될 것이라는 얘기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 아이들의 유전자는 온전히 그들의 것이 아니며, 돌연변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자손을 낳을 권리조차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여준은 한창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예민한 마음들이 바스러질까, 눈덩이처럼 커져만 가는 두려움에 소름이 돋았다. 소름의 이유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한탄도 포함되어 있으리라.

 

검진을 끝내고 딸기우유 하나를 입에 물고 나온 로하는 쓰레기를 버리고 오겠다고 했다. 다 먹은 우유팩을 가지고 접수실 구석으로 걸어가는 걸 본 미소도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랑이도 화장실…"

아랑이도 따라나섰다. 여준은 미소에게 아랑이를 잘 챙겨주라고 당부한 뒤 자리를 지켰다. 자신들의 차례가 되어가자 잔뜩 겁먹은 두란이와 자유를 어떻게든 진정시켜야 했다.

"괜찮아, 자유야. 두란이형 봐봐, 씩씩하게 잘 있지?"

자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미의 주머니 속에서 고개만 내민 아기 캥거루같이 두란의 팔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여준은 자유가 예상보다는 안정적인 상태인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 안도했다.

"아랑이, 자유, 두란이 진료실로 오세요."

아까 본 가이드봇이었다. 여준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자, 들어가자… 어… 아랑아, 아랑아?"

참, 화장실. 미소랑 화장실에 간다고 한 아랑이 보이지 않았다. 미소와 로하도 돌아오지 않았다. 여준은 로하가 쓰레기를 버리고 오겠다고 한 이후 시간이 꽤 지났다는 것을 깨닫는다.

"두란아, 자유랑 잠시만 앉아 있어. 선생님은 아랑이 데리고 올게."

검진이 끝난 로하와 미소가 병원 어딘가를 쏘다니고 있는 것은 괜찮았지만 아랑이를 데리고 갔을지는 무리수였다. 미소가 아랑이를 챙겨주긴 했지만 누구에게나 아랑이는 성가신 다섯 살 꼬마였다. 여준은 복도 끝의 화장실을 뒤졌다. 먼저 여자 화장실을 칸칸이 뒤지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남자 화장실, 무성별 화장실까지 모두 찾아 헤맸지만 아랑이는 없었다. 여준은 심호흡했다. 무엇이 먼저인지를 고민한 후 아래층 화장실로 내달려 똑같이 헤집고 나왔으나 어디에도 아랑이는 없다. 간호사에게 알린 후 병원 안내 방송이라도 해야겠다 생각한 후 두란과 자유가 있던 대기실로 올라갔다.

두란과 자유가 앉아있어야 할 의자는 비어 있었다.

“간호사님, 저기 앉아있던 아이들 진료실로 들어갔나요?”

“이름이 어떻게 되죠?”

“두란, 자유요.”

“아뇨, 안 오셔서 다음 순서로 넘어갔는데.”

“혹시 어디로 갔는지 보셨어요?”

“지금 워낙 정신이 없어서요……. 보안팀 사무실로 가보세요. 아마 병원 안에 있을 것 같은데요.”

관자놀이에서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간호사에게 화가 나서인지, 자책인지 당혹감인지 그 모든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여준은 민감해진 눈으로 주위를 빠르게 스캔하곤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무작정 달렸다. 아무래도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갔을 가능성이 높은 아이들이었다.

3층……. 2층……. 로비…….

그 짧은 시간 안에 아이들은 어디로 간 걸까. 로하, 미소, 아랑이, 자유, 두란이, 그 누구도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사라질 리가 없는데. 여준은 손톱을 물어뜯다 말고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아이들이 사라졌어요.」

 

* * *

정보수사대의 연락을 기다리는 시간은 일분일초가 무한한 어둠 속으로 빠지는 듯 아득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신고 접수를 받던 사람과는 다른 목소리의 직원이었다.

「예, 한 선생님 되시죠? 정보수사대 김시우입니다.」

「네, 맞아요. 정확한 위치 알아내셨나요?」

「네네, 한 명은 아직 병원 안에 있는 것 같고요,」

「병원 안에요?」

「예, 뭐, 데이터가 그렇습니다. 나머지 아이들은 근처로 나오긴 하는데 정확한 위치는 알기가 어려워요, 현재로서는. 그래도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칩 데이터도 확인했는데 납치되거나 뭐, 그런 패닉 상황은 아닌 것 같네요.」

그 한 명이 누군지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이미 로비의 대형 스크린에 실시간 뉴스로 병원 앞뜰에서 노래하고 있는 아랑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뉴스 헤드라인에 얼핏 보이는 단어들은 '원시 유전자', '치아 구조', ‘돌출 입’, '돌연변이' 같은 단어들이었다. 인공지능 뉴스를 생산하는 신문사들이 많아지면서부터 '실시간 뉴스'가 지나치게 실시간인 게 아닌가, 매번 생각했지만 오늘은 덕분에 아랑을 찾았다. 여준은 병원 앞뜰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사람들이 모여 갖가지 렌즈를 들이밀고 있었다. 자세히 봐야 촬영 장치라는 걸 알 수 있지만.

"아랑아!"

아랑은 여준의 목소리가 들리자 둥그런 눈을 크게 뜨고 어미 새를 찾는 아기 새처럼 두리번거리더니 여준을 보자마자 울음보를 터뜨렸다. 여준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혼자 꿋꿋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아랑이었다. 술렁이며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 틈에서 홀로 용기를 냈던 걸까.

"아랑, 이제 괜찮아. 선생님 여기 있어."

여준은 어쩌다 여기까지 왔냐고 묻고 싶었지만 아랑이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딸꾹질하는 아랑을 꼭 안아 토닥였다. 서럽게 우는 아랑이 안쓰러워 마음 한 구석이 저릿저릿했다. 고작 다섯 살인 꼬꼬마가 자신을 동물원의 원숭이 바라보듯 둘러싸고 관찰하는 사람들 틈에서 느꼈을 당혹감을 상상하자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화가 치밀었다. 여준은 잠시 병원 앞뜰의 벤치에 앉아 아랑과 함께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이제 병원을 나간 아이들을 찾아야 한다.

“아랑아, 미소 누나는 어디 갔어? 아까 같이 화장실 갔잖아.”

“끅… 미소 누나… 끅, 화장실 갔다 왔더니 없었어요… 끅…”

 

여준은 보안팀 사무실을 찾아갔다. 이미 경찰의 연락을 받은 경비원이 화면 한가득 아이들의 사진을 띄워 놓고 있었다. 종합 감시 시스템은 로하와 미소의 사진을 스캔하더니 기가 막히게 온갖 로봇들의 눈에 비친 두 아이의 모습을 시간별로 보여주었다. 경비원은 영상에 선명하게 표시된 미소와 로하의 얼굴을 가리키며 이 아이들이 맞는지 물었다.

“네, 네, 저 아이들이에요.”

로하는 오리같이 생긴 로봇 앞에 서서 무언가를 출력하고 있었다. 미소는 로하의 옆에 서서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다.

“뭐 하는 거죠? 무언가 뽑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저 로봇이 각종 증빙문서 출력용 로봇입니다. 어르신들 전용인데……. 기록을 보니 진단서를 출력했네요. 여기, 여기요. 보이시죠? 출력 후에 서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저쪽은 어디로 가는 길인가요?”

“서문을 나가서 쭉 가면 터미널 가는 길인데, 그, 놀이공원이랑도 연결되고요.”

여준은 무언가 생각난 듯 보안팀 문을 나와 원장에게 부랴부랴 전화를 걸었다.

「원장님, 아랑이는 찾았고요,」

「무사해? 다친 데는 없고?」

「네, 혼자 병원 뜰에서 노래 부르고 있었어요.」

「뉴스로 봤어. 그보단 마음이, 아랑이 마음이 다치지 않았냐고.」

「좀 놀란 것 같아요. 원장님 오셔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미소랑 로하 찾으러 가볼게요.」

「두란이랑 자유는?」

「서에서 곧 연락이 올 것 같아요.」

원장은 우선 가보라고 말하며 '아가는 그쪽에 가만히 맡겨 두라'고 지시했다. 아랑이를 데리고 가서 더 낯선 사람들을 마주치게 하는 것 보다야 잠시 보안팀 직원들과 두는 편이 더 안전할 것이었다. 여준은 보안팀에 아랑을 잘 부탁한다고 신신당부한 후 뛰쳐나갔다. 아랑에게는 곧 원장 선생님이 오실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미소와 로하. 미소는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이지만 단독 행동을 하기엔 겁이 많은 아이다. 로하에게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애'이기도 하고. 미소는 로하를 따라간 것 같은데, 로하는 무엇을 하고자 했던 걸까.

여준은 아이들과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마냥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일념뿐이었고 쉘터에서 만난 아이들은 그저 순수한, 보통의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비뚤어진 눈을 하고 바라보고 있는 탓이라고. 여준은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알아갈수록 자신의 무지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쉘터의 아이들과 소통하는 일은 생전 처음 본 외계 생물을 대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원장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고, 날 선 아이들의 행동에 상처를 받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럴 때면 그런 행동의 원인이 선천적 유전자 결함 때문인지 후천적인 것일지에 대해 고민했고, 선천적인 돌연변이라 그런 것이라고 치부하게 되면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그런 여준의 생각들은 자기 방어적인 것에 가까웠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선생님으로서의 자아와 한여준이라는 개인을 분리하는 벽이 되었다.

특히 또래보다 성숙한 로하를 대할 때면 감정의 방어벽이 더욱 높아졌다. 당시 여섯 살의 로하는 한 정신병원 앞 길섶에서 구조되었다. 심한 빈혈 증상에 쓰러진 아이를 누군가 신고하여 아이는 병원을 거쳐 아동 일시보호소로 가게 되었다. 로하는 부모님이나 살던 집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만 했고, 찾으러 오는 이나 신고한 이도 없어 결국 쉘터로 편입하게 되었다.

편입 후에 여러 검사를 했을 때는 기관에서 뇌과학자를 불러야 했다. 초등생을 뛰어넘는 사고력과 공감각 능력, 인지 능력을 보여 정식 연구 대상으로 등록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로하는 좋은 음악을 들으면 벽에 그려지는 영롱한 색의 빛이 날아다닌다거나 꽃향기가 나고 물 냄새가 난다는 등의 말을 했다. 구조 당시 로하가 들고 있던 일기장엔 암호화된 글자들이 가득했고, 자신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아동에게 기대할 법한 단어와 어투를 구사했다. 로하를 담당했던 유 박사는 로하가 '보통 사람이 뇌를 사용하는 것과 다르게 뇌를 사용하는 능력이 있다'고 하며 아이가 정보나 자극을 훨씬 효율적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각성제나 기타 약물에 대한 작용을 본인 스스로가 느끼고 조절하는 능력까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아마 우리가 보는 세상과 로하가 인지하는 세상은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며, 얼핏 보기에 아이가 환각 증상이 있고 정신과적 질환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본인의 조절 하에서 일어나는 '인지 작용'이라고까지 덧붙였다.

'선생님, 외계 생물은 정말 있는 거겠죠?'

하루는 쉘터 앞뜰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로하가 물었다. 아이는 까맣게 반짝이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구름과 구름 너머의 세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만약 우주 저편에 자신과 비슷한 생물이 있다면 꼭 만나고 싶다고. 평소엔 시니컬한 아이였지만, 그럴 때면 로하의 날숨에서 외로움이 배어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요 선생님, 용서는 복수의 반대말인가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

'그럼 용서하면서 동시에 복수할 수도 있어요?'

'로하야, 때로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도, 진짜 복수하는 길일수도 있는걸.'

이후 로하는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이상 자신의 마음에 있는 이야기들을 하는 것을 꺼려했다. 여준은 예민한 청소년기를 앞둔, 보통의 아이들과 다르게 이미 전두엽이 발달할 대로 발달한 로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매일 고민했다. 로하에게, 쉘터에 거주하는 모든 아이들에게도 삶이 아름답고 경이로운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깨닫게 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여준의 숙제였다.

 

터미널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사람들은 제각각의 가상 세계에 연결된 채로 걸어 다녔다. 여준은 택시 승강장 쪽을 바라보다 김시우에게 다시 연락했다.

「예, 선생님. 한 명은 찾으셨다고요.」

「네, 제일 어린 아이요.」

「아, 다행이네요. 다른 아이들 위치 파악했습니다. 두 아이는 잠실대교 건너 자양동쪽에 있는 것 같고 나머지는 근처 동물원에 있는 걸로 나오고요. 위치정보 전송 드렸습니다.」

「자양동이요? 두 여자아이들 말씀하시는 거죠?」

「예예, 계속 이동 중인 걸로 봐서는 자율주행 택시나 기타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혹, 혹시 납치… 그러니까 생체 신호가 비정상적이거나 그런 건 아니죠?」

「예예, 다 정상으로 뜨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요. 아, 원장선생님께도 연락 취해놓았고 저희 수사대도 자양동으로 출발했습니다.」

로하와 미소는 왜 자양동으로 가고 있는 걸까. 자율주행 택시를 이용하려면 최소한 어른용 칩이 필요했다. 두 아이가 짧은 시간 안에 칩을 구할 확률은 희박했다. 하지만 키도 크고 목소리도 성숙한 미소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여준은 가까이에 있던 자율주행택시에 탑승했다. 수사대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도착해야 한다. 아까 받은 위치 정보를 전송하자 투명한 센터페시아 스크린에 움직이는 점 두 개가 떴다. 두 아이는 자양동의 주택가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최대 속력으로 가주세요. 가격 정책에 동의합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인택시의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며 여준의 몸이 뒤로 젖혀졌다. 전기차임에도 무시무시한 바람 소리가 날 만큼 속도를 더해갔다. 미소와 로하가 낯선 수사대의 얼굴을 먼저 보고 놀라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요금이 처리되었습니다.

빛의 속도로 스쳐가는 거리의 풍경이 차츰 또렷이 보이더니 택시는 한 자양동 빌라 앞에 멈추었다. 건물 입구에 주렁주렁 매달린 담쟁이넝쿨이 지어진지 오래된 건물임을 자랑했다. 건물 입구에 익숙한 뒷모습의 두 여자아이들이 보였다. 어디서 났는지 모를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전기차 엔진소리에 로하가 홱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눈이 마주쳐 스파크가 일었다. 로하는 미소의 손을 잡고 빌라 안으로 들어가 쏜살같이 계단을 올랐다. 여준은 아이들을 놓칠세라 덩달아 뛰어 올라갔다. 빌라는 아담한 오 층짜리 건물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눅눅한 냄새가 코를 뒤덮었고 동시에 사방으로 열린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드나들었다.

'삐리릭, 쾅' 하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여준은 거친 숨을 무시하고 전속력으로 계단을 올랐지만 아이들은 이미 어느 층계의 문을 열고 들어가 버린 후였다. 소리의 울림으로 보아 바로 위층의 어느 집인 것 같았다. 어떻게 문을 열 수 있었으며 이 집은 두 아이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로하, 미소야. 헉… 헉… 잠깐만 문 열어봐, 응?”

여준은 층계참에 서서 복도를 향해 소리 질렀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아이들을 나오게 만들어야 했다. 아이들이 여준의 말을 들을 지는 미지수였지만.

“로하야! 미소야! 선생님 계속 이렇게 소리 지를 거야, 너희가 들여 보네 줄 때까지!”

철컥 소리와 함께 문 사이로 모자를 눌러쓴 로하가 고개를 내밀었다. 아이의 얼굴이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결의에 찬 얼굴이었다. 마치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려는데 여준이 방해한 것처럼.

“시끄러우니까 들어오세요.”

로하는 여준의 팔을 잡아 끌고 문 안쪽으로 당겨 들어오게 한 뒤 재빨리 문을 닫아 걸었다. 그리고 모자를 벗으며 안으로 쾅쾅거리며 들어가더니 마른세수를 했다. 미소는 여준의 얼굴을 보자 나쁜 짓 하다 걸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두려움을 입에 가득 문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집 안은 대체적으로 깨끗했지만 군데군데 부서진 청소로봇의 잔해가 나뒹굴고 있었다.

“로하야, 여기는 왜…….”

“제가 쓰레기 버리러 다녀온다고 했잖아요!”

“로하야, 차근차근 선생님이랑 얘기 하자, 응?”

로하는 여준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미소에게 귓속말하더니 이윽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치 원래 알던 공간이라는 듯이. 미소는 쭈뼛거리며 여준에게 다가와 손을 잡고 거실에 있는 작은 소파에 앉았다.

“선생님, 로하 언니가 너무 걱정 말래요. 금방 끝날 거고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을 거라고요.”

“…미소는 여기가 어딘지 알아?”

“그…….”

“괜찮아, 선생님이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 안할게. 약속해.”

여준은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펴들었다.

“여기는… 로하 언니가 원래 살았던 집이라고 했어요.”

“그랬구나.”

여준은 별달리 할 말이 없어졌다. 로하가 이곳에 왜 오고자 했는지를 퍼뜩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로하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이곳에 온 것은 계획된 일이었다. 자신을 원하지 않아 정신병원에 버린 부모를 찾으려면 찾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면 지금에 와서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걸까? 방 안으로 들어간 로하는 조용했다. 위험할 만한 물건을 들고 있거나 하진 않아 여준은 잠시 로하를 내버려 두기로 했다. 이 시간을 그렇게 원했던 거라면, 가만히 놔두는 것 정도는 해줄 수 있으리라.

여준은 곧 문 밖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건물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수사대가 도착해 빌라의 이편저편을 뒤지고 있었다. 한 거구의 사내가 여준에게 다가왔다. 그는 자신을 ‘오 형사’라고 소개했다.

“형사님, 아이들 찾았고요, 곧 있으면 내려오겠다고 하니 잠시 기다려 주시겠어요?”

“예,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원장 선생님께서 연락 달라고 하시던데요. 나머지 아이를 찾았다고. 그래도 빨리 수사가 끝나 다행입니다.”

두란이와 자유를 찾으신 걸까. 언제 연락이 왔는지 부재중 통화가 열통이 넘게 와있었다. 여준은 원장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예, 원장님.」

「두란이 찾았어. 동물원에 있으니 이쪽으로 오면 될 것 같은데.」

「후… 다행이네요. 미소랑 로하 데리고 가겠습니다.」

말하기 무섭게 검은 쓰레기봉지 하나를 달랑 들고 나온 로하가 보였다. 활짝 웃으며 이제 돌아가자는 미소도 함께.

 

원장은 여준을 보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까딱했다. 원장이 가리킨 곳엔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관찰하는 두란의 뒷모습이 있었다.

“두란아…….”

두란은 '미니 동물 왕국' 앞 유리에 전시된 손바닥만 한 미니 낙타가 힘겹게 책 더미를 오르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 걸로 봐서 낙타의 움직임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여준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두란의 옆으로 가 함께 미니낙타를 지켜봤다. 옆으로 본 두란의 얼굴은 말라붙은 눈물 자국 위로 방금 흘러내린 눈물로 젖어있었다. 포슬포슬한 아이의 얼굴에 깊은 슬픔이 서려 여준의 눈시울도 덩달아 묵직해졌다. 아이는 소리 내어 울지도 않고 그저 미니낙타와 눈을 맞추며 사막에 비 내리듯 우는 것이었다.

“두란아, 낙타가 슬퍼?”

두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란은 여준의 손을 잡고 미니낙타와 여준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잠시간 망설였다. 여준은 두란이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입을 벌렸다, 닫았다 반복하던 두란이 오물오물 입을 움직였다.

“낙타요… 우리가 데려가면 안돼요?”

여준은 넋이 나간 채 두란을 뚫어져라 보며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방금 들은 말이 두란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는지, 실어증에 걸린 두란이 자신에게 처음 한 말이 맞는지를 생각했다. 두란은 여준에게 말을 한 것이 맞았다. 두란이 입을 열었다. 두란이…….

“네? 선생님, 부탁이에요. 미니낙타 데려가면 안돼요?”

“두란아, 미니낙타는 우리가 데려갈 수 없어... 동물원이 낙타 집인걸.”

“미니낙타가 저렇게 태어난 건 쟤 잘못이 아니잖아요, 네? 매일같이 사람들한테 괴롭힘 당하고 별것도 아닌 저 책들을 계단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요. 낙타한테는 얼마나 괴롭고 따분한 일이겠어요.”

두란은 쉼 없이 말하더니 팔소매를 내려 눈물을 닦았다. 하염없이 미니낙타를 바라보다 내 표정을 살피더니 체념한 얼굴로 손을 잡아 끌었다.

“알아요, 어차피 못 데려가는 거. 어서 가요, 여기 있다간 계속 눈물 나요.”

여준은 순간 두란의 나이에 대해 생각했다. 두란이 한 말들이 일곱 살 아이가 할 수 있는 말이 맞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렇게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아이가 왜 여태껏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던 걸까. 여준은 두란에게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받았지만 시간을 두고 다가가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런데요 선생님... 낙타가 저한테 힘들다고 했어요.”

“두란이가 미니낙타랑 대화했구나.”

“저는 그냥 알 수 있어요.”

“아냐, 선생님 두란이 믿어. 진짜야.”

두란은 걸음을 멈추고 여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여준은 아이들을 이해한다는 것이 자신과 완전히 다른 존재에 대해 알아가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근데 원장님, 자유는요? 자유는 어디에 있어요?”

“미소랑 로하랑 있는 거 아니었어?”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던 원장의 얼굴이 종잇장 구겨지듯 일그러졌다. 형사는 아이들을 다 찾았으니 사건을 종결하겠다고 했는데. 여준은 자유가 당연히 두란의 곁에 붙어 있을 거라 생각했던 자신의 부주의함에 뒤통수를 맞았다. 원장과 여준은 서로의 얼굴을 혼란스러운 눈으로 마주보았다.

자유는 어디에 있는 거지?

“두란아, 마지막에 자유랑 언제 어디서 헤어졌는지 기억나?”

상황은 이러했다. 두란과 자유는 여준이 다른 아이들을 찾으러 간 사이, 자신들의 이름을 호명하는 로봇을 따라가기가 싫고 무서워 숨을 곳을 찾으러 병원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다 한 간호사가 길 잃은 아이들을 인도해주려 자유의 어깨를 잡으려 하자 자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리기 시작했고 두란은 그런 자유를 쫓아 병원 밖으로 나왔다가 무언가에 홀린 듯 동물원까지 오게 되었다. 자유는 어디로 간 걸까. 여준은 수사대에 다시 연락을 취했다.

「저기 수사관님, 자유 위치 확인 한번만 더 부탁드릴게요.」

「예? 다 찾으신 거 아니었어요? 데이터는 그게 전부인데.」

「아뇨, 한 아이가 남았어요. 아까 다섯 명 모두 특허번호 알려드렸잖아요!」

「아아 우선 진정하시고요, 잠깐만요, 다시 확인해볼게요.」

여준은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내곤 큰 한숨을 쉬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데이터가 전부라는 말은 무슨 말이야.

「한 선생님?」

「네, 듣고 있습니다.」

「센서가 비활성화 상태로 표시가 되서 누락된 듯한데… 저희 수사팀에 긴급 구조 요청 보내겠습니다. 너무 걱정은 마시고요, 대부분 오류인 경우가 많…」

여준은 전화를 끊었다. 생체 신호를 받아들이는 센서가 비활성화 되었다는 뜻은 곧 자유가 살아있을지 죽었을지 알 수 없다는 뜻이었고, 유괴를 당했거나 그와 비슷한 나쁜 일이 일어났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순간 자신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다 못해 흰 바닥으로 서서히 녹아내리는 것만 같은 환영이 일었다.

아냐, 아직 살아있을 거야, 조금만 버텨줘 자유야…….

센서 오류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한 가닥의 희망도 버려선 안 되었다. 여준은 원장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쉘터로 돌아가 달라고 부탁했다. 여준의 직감은 자유가 살아 있다고, 어딘가에 꼭꼭 숨어버린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직 살아 있다, 자유는.

여준은 다시 보안실로 뛰어갔다. 다른 영상들을 모조리 확인해야 했다. 아까 서로 돌아갔던 오 형사도 어느새 들어와 영상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아이가 병원을 나가는 모습이 없네요.”

화면을 뚫어져라 보던 여준은 오 형사의 말에 팔짱을 꼈다.

“너무 작아서 화면에 잡히지 않은 건 아니고요? 분명 수사관님이 병원엔 아랑이 하나만 있다고 말했었는데요.”

“그 때 이미 센서 데이터가 잡히지 않는 상태였을 수도 있죠. 분명한 건 아이가 아직 병원에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아직 병원에 있을 확률. 여준은 눈을 감고 자유를 떠올렸다. 만약 자유라면, 어디로 도망가고 싶을까? 어디가 가장 안전하다고 느낄까? 어쩌면 한번 가본 곳을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여준은 번뜩 눈을 떴다.

“혹시 침대 시트나 간호사들 옷 세탁하는 곳이 있나요? 병원 안에?”

보안팀 직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더니 키를 챙기며 짚이는 곳이 있다고 했다. 여준은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어떤 천이든 끌어안고 곤히 잠들어 있기를. 여느 때와 다름없는 숨바꼭질로 끝날 일이기를.

 

웅웅거리는 세탁기 소리와 온갖 세제, 향균제 냄새가 선선한 공기를 타고 흘러왔다. 병원 세탁실 한편에 놓인 카트가 눈에 띄었다. 병실에서 수거한 시트와 수건들이 가득 담긴, 빨려지기를 기다리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거대한 카트 안 바구니들.

"자유야……."

여준은 병균이 묻었을지도 모를 수건들과 시트를 파헤치며 자유의 이름을 불렀다. 눈앞이 흐릿하게 따뜻한 물이 고였다. 자유야, 자유…….

있는 수건이란 수건은 다 들춰갈 때쯤, 하얀 수건을 안고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가 보였다. 아이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질려있었고 볼은 빙하처럼 차가웠다. 갑자기 주변이 밝아지자 아이는 부동자세로 눈만 떠선 주변을 살폈다. 눈알조차 빨갛게 충혈 되어 있었다.

"자유야!"

여준은 자유를 꺼내 들고 꼭 안았다. 아이는 여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움찔거리며 꼬물거리는 아이의 체온이 차츰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푸른 백색의 볼에 다시금 선홍색 빛이 돌고 있었다. 여준은 자유를 부둥켜안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거봐, 살아 있었지, 우리 자유.”

여준은 자유를 내려주려 했지만 아이는 온 몸이 뻐근한지 제대로 일어서지 못했다. 온 몸에 쥐가 난 것처럼 손발을 오므리더니 주저앉아 고통을 호소했다. 여준은 자유를 안고 응급실로 뛰었다. 수송용 로봇에 눕히라는 주변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응급실에 도착해 베드에 자유를 눕히고 간호사를 호출했다. 간호사는 아이의 체온을 재고 동공을 살피더니 어디가 아픈 것인지를 물었다. 자유는 거짓말처럼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자신도 이상한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자유, 이제 안 아파?”

자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가 거듭 심박수와 체온을 확인했지만 이상이 없었다. 여준은 발그레한 자유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이를 다시 한 번 꼭 안아주었다.

많이 놀랐지, 이제 괜찮아. 선생님이랑 집에 가자.

 

다음날 여준은 다시 병원을 찾았다. 아이들의 상태에 대해 더 들어야 할 것이 있었다. 유 박사는 홀로그램 시뮬레이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푸른 나선형의 DNA 모형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했다. 작은 입자들이 모이고 모여 세포가 되고, 뇌 모형이 되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 아이들은,”

한참 만에 박사가 입을 열었다.

“유전적 정상범주 안의 건강한 아이들이에요.”

“이전에 박사님께서 표적이탈이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표적이 여러 개였을 뿐이죠. 의도한 여러 특성 중 하나가 결과적으로 빗나간 것뿐이에요. 그건 다중 표적간의 상호작용을 예측하는데 실패한 과학자들, 디자이너들의 과오가 맞고요. 저 아이들은 정확히 그들이 디자인한 대로 태어났어요. 그러니 착상 전 유전자 진단 결과에서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 한 거고요.”

“두란이랑 자유도 그런 건가요?”

“아, 두란이의 경우는 후천적 변수와의 상호작용이 실어증을 안겨 준 케이스죠. 아이의 언어 이해 능력과 표현 능력은 보통의 사람을 뛰어넘어요. 안타까운 것은, 예전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저 아이가 말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충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커요.”

“아,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이들을 고치려고만 하고 있었어요. 각자 살 길을 찾은 것뿐인데…….”

“한 선생님, 선생님이 죄책감 가질 필요는 없지요. 어찌 되었든 중요한 건 저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 아니겠어요? 자신이 있는 그대로 존중 받을 수 있는 생명이라는 걸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앞으로 아이들의 인생을 살아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할겁니다. 물론 자유는… 케이스가 약간 다릅니다만."

“어떻게 다른가요?”

“자유도 전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식 때문에 의도되지 않은 방향으로 성격이 형성되었을 확률이 큽니다만, 분명한건 변온동물의 형질을 갖고 있어요. 더 자세한건 데이터를 다시 봐야 알겠지만 공식 기관에서 태어나지 않았을 가능성도 크고요. 국내에선 보지 못한 케이스입니다.”

“변온동물이요? 악어나 개구리 같은?”

“그렇죠, 그렇다고 악어나 개구리의 유전자는 아닐 거고요, 정확히 뭔지는 지금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다른 의도로 특정 부분만 가져오려 하다 표적이탈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

“결국 생명체의 특성이라는 것은 후천적인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역동적인 것이니까요.”

여준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자유가 개구리 왕자라는 것도 아니고 유전 배열 중 극히 일부가 비슷할 수 있다는 가정일 뿐이었지만 그녀의 머릿속 자유는 이미 개구리 왕자로 변해 있다.

"놀라실 필요는 없어요. 몇몇 나라들에선 합법적인 방법으로 많이들 시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우리에게 아직 생소할 뿐이죠. 아마도 자유가 극심한 공황 상태에 빠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체온을 낮추고 심박을 낮게 유지한 것 같아요. 아이의 입장에선 살기 위한 몸의 불수의적 생명 반응에 가깝다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

"그럼 자유는… 어떻게 되는 거죠? 로하처럼 연구 대상으로 등록 되는 건가요?"

유 박사는 고개를 저었지만,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만약 심각한 이상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라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노아 원장은 놀이공원 나들이를 계획했다.

아이들에게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여준 선생의 고집을 꺾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원장 또한 그 날의 소동을 좋은 추억으로 마무리 짓고 싶었다. 아이들은 금방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아이들의 기억 속에 그날의 소동은 얼룩으로 남아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각자의 크기로 자라는, 언제 트라우마가 되어 괴롭힐지 모르는 얼룩으로.

“선생님, 메이크업 세트 좀… 빌려 주시면 안돼요?”

미소가 능청맞게 웃으며 여준의 곁으로 다가와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화장품은 뭐 하게?”

“오늘 놀이공원 가니까요… 네? 선생니임.”

다 큰 미소라도 찡찡거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초딩’이었다. 여준은 가방에서 화장품 파우치를 꺼내 미소에게 넘겨주었다. 한창 화장에 관심이 많을 나이지. 메이크업 파우치를 뒤적이는 미소와 로하를 바라보며 여준은 궁금해 했다. 진단서를 들고 가 쓰레기 봉지에 무언가 가득 채워서 나왔었던 로하. 그때 로하는 방으로 들어가 무얼 한 걸까? 무엇을 위해 다시 집에 갔던 걸까? 훗날 아이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기는 할까?

그날 이후 로하는 대놓고 지적 호기심을 분출해댔다. 브레인 인터페이스로 무료 백과사전을 하루 종일 뒤지다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자료를 보겠다고 떼를 쓰는 통에, 대학용 전자 도서관 열람권을 끊어주어야만 했다. 말문이 트인 두란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잘조잘 떠들었고, 자유는 숨는 장소를 바꾸어 원장의 방 커튼 뒤로 숨어 다녔으며 아랑이는 대놓고 노래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 날의 사건이 아이들에게 어떤 나비효과가 될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여준의 눈엔 다들 나름의 방향으로 자라나는 평범한 어린이들이었다.

“선생님, 저기 돌아가는 에어라이드요,”

놀이공원 입구에 있는 진공 상태 체험관을 두고 로하가 물어왔다.

“응, 우주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지. 예약해 둘까?”

“네. 그리고 궁금한 것도 있는데요… 저거 잘 타면 우주비행사 될 수 있어요?”

“로하, 꿈을 정한거야?”

“그냥요. 궁금해서요.”

“그럼. 다른 훈련들도 많겠지만, 로하라면 다 통과할 수 있을 거야.”

“선생님이 어떻게 알아요?”

“로하는 용기 있고, 자기 자신한테 솔직한 사람이니까 뭐든 할 수 있어.”

로하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보였다. 여준은 망설였다. 그 날 검은 봉지에 들고 나온 것들이 뭐였는지, 물어봐도 좋지 않을지, 물어보는 것이 로하의 상처를 헤집는 것은 아닐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로하야, 선생님도 궁금한 거 하나 물어봐도 돼?”

“뭔데요?”

로하는 눈을 굴리며 여준의 표정을 읽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는 눈초리였다.

“그 날, 방에서 뭘 했는지 선생님한테 말해줄 수 있어?”

“휴,”

“말하기 어려우면 말하지 않아도 돼, 가볍게 물어본 거야.”

“계속 궁금하시다가 혼자 소설 쓰실 것 같아서 말씀 드릴게요. 제가 예전에 썼던 장난감들, 남아있던 제 홀로그램 사진이랑, 저랑 관련된 것들 다 모아서 버렸어요.”

“그랬구나. 로하 물건들을 정리하고 싶었구나. 그러면… 진단서는 왜 들고 간 거야?”

“그렇게 해야 제 정신이 아픈 게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잖아요, 그 사람들이.”

로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예전 부모를 ‘그 사람들’이라고 할 만큼 아이에게 응어리가 남아있었던 것이었다. 여준은 스스로 과거 정리를 하려 애썼을 로하의 심정이 어땠을지를 상상했다. 똑똑하고 영리한 아이기에, 그만큼 아이가 받았을 상처도 구체적이고 깊을 수 있었겠구나. 안쓰러운 마음과 애잔함이 동시에 몰려왔다.

“별 거 아니었는데 소동만 일으켜서 죄송해요.”

“로하야,”

여준은 가만히 로하를 안아주었다.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여준은 더 자세한 사정은 물어보지 않았다. 로하가 자신에게 상처의 흔적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진심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그렇게 아이의 마음이 전해져서 가슴이 아프면서도, 후련했다. 어쩌면 로하가 이렇게 마음을 연건 쉘터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몰라서였다.

 

앞서 뛰어가던 아랑이가 노래를 불렀다.

바람, 바람 시원한 바람타고 멀리 멀리 지구별 떠나요-

뭉게뭉게 피어난 구름형제도 엄마 아빠 친구들 모두 함께-

푸아아앙, 로케엣- 발사!

여준은 씩씩하게 노래하는 아랑이가 대견했다. 아마도 쉘터는 앞으로 더 시끄러울 테지만, 울퉁불퉁하고 때로는 슬프겠지만,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생생하고 자유롭게 자라도록 놔둬도 좋지 않을까. 어두웠던 기억은 온전히 아이들의 것으로, 드넓은 우주에서 끊임없이 변하며 살아 움직이는 과정의 일부로.

까만 밤하늘을 수놓는 항성처럼, 신비롭고 아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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