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한거정은 연기로 숨을 내쉬었다. 돈 많은 인간들의 인형놀이는 수도 없이 보아왔다고 그는 생각했었다. 부서진 것을 고치고, 있었던 것을 아무도 모르게 치우는 일들을 뻔질나게 맡아왔었다.

[그러니까, 경찰은 왜 안 된다는 건가!]

한거정과 함께 온 자오랑은 노인의 앞에서 쩔쩔매었다. 통역기를 매번 두드리며 같은 말을 반복한다.

[경찰은 안드로이드와 관련한 사건을 맡지 않습니다.]

[안드로이드가 아닐세, 나노하 가문의 아가씨야!]

[당신네들이 넘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성난 고함. 방황하는 발. 한거정은 노인의 행동을 눈여겨보았다. 자오랑이 십 수 번도 반복했을 말들이 줄기차게 새어나온다. 노인은 청년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거정은 불이 붙은 잎을 놓아 손을 흔들어 연기를 흩뜨려 놓았다.

[冷静下来吧]

노인이 우뚝 선다. 돈 많은 사람의 기를 죽이기란 퍽 어려운 일이다. 한거정은 심드렁한 얼굴로 말들을 툭 내던졌다.

[我们会找到的]

자오랑이 자신에게로 귀에 달린 통역 장치를 툭툭 두드린다. 한거정이 제 귀를 툭툭 건드린다. 연식이 된 장치로 옅은 쇠음이 진동한다.

[, , .]

노인과 그의 손자뻘로 보이는 이가 자신을 바라본다.

[되었습니까?]

자오랑이 저택 남자들의 뒤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할 일이니, 맡겨주시죠.]

[경찰도 아닌 것들이 뭘 할 수 있겠나.]

노인의 빈정거림을 한 두 번들은 것은 아니었다. 어느 도시에서나, 어느 저택에서나, 어느 부호에게서나 자신들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별 수 없지 않은가.

[일단 집을 보여주시죠.]

손자뻘로 보이는 남자가 노인의 팔을 부축하며 저택의 문으로 비켜선다. 노인이 성을 내며 홀로 떠나버린다. 한거정은 저택을 둘러보았다. 복도와 홀 그리고 홀 그리고 홀 또다시 복도. 저택으로 가득 홀들이 바둑판 형식으로 죽 늘어서 있었다. 이전에도 본적은 있지만 특이한 구조이다. 한거정은 내심 감탄을 하였다.

[사라진 분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안드로이드라고 하셔도 됩니다.]

남자가 한거정의 앞으로 선다. 제 키보다 높은 남자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한거정은 물었다.

[소개 좀 부탁드리죠.]

남자가 공손하게 가슴에 손을 대어 허리를 숙인다. 한거정은 불편한 표정으로 고개만 살짝 까딱였다. 그에게 저택 예절은 익숙하지 않았다.

[허 훈이라고 합니다.]

[허 씨 집안의 장남이죠.]

[반갑습니다.]

한거정이 수첩을 꺼내 아무렇게나 꽂아둔 명함 한 장을 앞으로 내밀었다.

[Well Life 사의 안전 보고과 현장팀입니다.]

[경찰이 개입하지 못하는 사건을 주로 맡고 있죠.]

저택의 장남이 명함을 주머니에 넣고서 묻는다.

[경찰이 개입하지 못한다는 건.]

[안드로이드와 관련한 법규는 의제에도 걸리지 않아요.]

[인권 의식 향상이나 생체 병기 규제 같은 것들 때문에.]

한거정이 주위를 훑는다. 눈에서 눈으로. 그는 저택의 곳곳을 꼼꼼히 기억하려 하였다.

[그래서 우리가 필요한 거죠.]

뚱뚱한 몸의 툭 튀어나온 볼과 눈두덩이 사이의 좁은 눈이 저택의 너머를 가리킨다.

[안내해주시죠.]

허 훈은 한거정과 자오랑의 앞으로 하녀 안드로이드를 세운다. 하녀가 두 사람을 방으로 안내한다. 그들이 도착한 방은 다다미와 장지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난초로 장식된 도코노마 위로 불상이 올려져있다. 앉은뱅이 의자와 탁상이 간소하게 자리하고 있다. 넓은 저택의 방이라기엔 작고 수수했다.

[이게 다인가요?]

한거정이 묻는다. 허 훈이 하녀 안드로이드에게로 손짓한다. 하녀가 닫혀있던 쇼지를 연다. 방 속에 또 다른 방이 나타난다. 목조 침대와 가죽 소파. 화장대와 거울, 우아하게 뻗어 금으로 장식된 다과용 탁상과 의자들. 안쪽의 방은 훨씬 넓어 보였다. 한거정이 방 중앙으로 걸어가 휘 둘러본다. 허 훈이 하녀를 물린다.

[제품 이름이 요코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제 뒤의 남자가 낸 태연한 반응에 한거정은 눈썹을 올렸다. 더 물어본다.

[그 안드로이드는 어떤 목적으로 주문하신 겁니까?]

[목적이라 하심은?]

한거정의 대답을 자오랑이 앞서 가로챈다.

[어떤 이유로 사라졌는지 알기 위해서는.]

[어떤 이유로 제품을 주문하였는지 알아야 해서 말입니다.]

허 훈이 한거정을 바라본다. 한거정은 가만히 고개만을 끄덕였다.

[우리 집 어른이 동생을 위해서 주문했습니다.]

[워낙 외로움을 타는 아이라서요.]

한거정이 뒤로 등을 돌려 방으로 걸음들을 옮긴다. 허 훈이 난색을 표하자 자오랑이 대신 질문들을 차례로 던지었다.

[그럼 연인으로 주문하신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요코 씨는 줄곧 동생분과 계셨습니까?]

[그렇지 않을까요?]

[둘이 잉꼬 사이였으니.]

허 훈의 표현을 알아듣지 못한다. 자오랑은 다시 질문한다.

[마지막 목격자는 없습니까?]

[하녀들 중 몇이 밤중으로.]

[요코가 방에서 나오는 걸 보았다더군요.]

한거정이 방의 구석으로 쪼그리고 앉아 소리친다.

[주문은 그 쪽에서 하신 겁니까?]

허 훈이 한거정을 본다. 그는 구석에서 바닥으로 흩어진 물건들을 주워 눈앞에서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었다.

[뭔가 찾으신 거라도 있습니까?]

[주문은 당신이 하셨습니까?]

허 훈은 한거정이 물은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허 훈은 뒷짐을 지어 태연하게 말한다.

[그게 중요합니까?]

[그건 제가 판단할 사항이죠.]

허 훈이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나 한거정 역시 물러나지 않는다. 허 훈은 쉽게 대답을 내어주지 않았다.

[글쎄요.]

 

 

 

자오랑은 간밤에 요코를 보았다던 하녀들을 보러 갔다. 한거정은 사라진 제품의 방에서 발견한 꽃들을 집어 들어 정원으로 가려 하였다. 복도를 지난다. 홀이 나온다. 다시 복도를 지난다. 또 다른 홀이 나온다. 바둑판 형식으로 길게 늘어 뜨러진 홀들을 차례로 건넌다. 한참을 헤맨 끝에 한거정은 문 하나로 걸음을 멈추었다. 문을 연다. 넓게 펼쳐진 정원 위로 거대한 아크릴 전광판이 맨 하늘을 비추고 있다. 한거정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원사 하나가 풀을 다듬고 있다.

하염없이 같은 초목을 다듬는 그녀의 뒤로 소리 없이 선다. 그녀의 어깨 너머로 한 남자가 풀밭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어머, 무슨 일이신가요?]

가위를 내리며 활짝 웃어 보이는 여자 안드로이드. 한거정이 명함을 건넨다.

[이 저택에서 한 안드로이드가 사라졌다는군요.]

[어머, 그런 일이.]

[모르십니까?]

안드로이드가 고개를 젓는다.

[모르겠네요, 중요한 안드로이드인가 봐요?]

한거정이 정원용 안드로이드의 어깨 너머를 건너다본다. 풀밭에 앉아있었던 남자가 자신을 보고 있다.

[저 남자가 이 집의 차남입니까?]

안드로이드가 옆으로 몸을 비킨다. 한거정이 남자에게로 죽 걸어간다. 그는 물었다.

[이번에 사라진 요코 씨를 찾으러 왔습니다.]

[그 안드로이드 말이군요.]

한거정이 몸을 뒤로 기울인다. 이 집안의 사람들은 그 안드로이드를 뭐라고 생각했던 걸까. 대부분은 노인처럼 화내며 고함을 지를 터였다.

[제작 용도가 연인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런가요.]

남자는 시큰둥하였다.

[왜 사라졌는지 아십니까?]

[알아야할 필요는 없죠.]

[누가 없앤 건지 아십니까?]

 

한거정은 일부러 세게 나가 보았다.

[알아야합니까?]

 

맥이 빠지는 대답이 돌아온다.

[언제 사라진지도 모르겠군요.]

남자가 삐딱하게 선다. 한거정은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전부 얻어야했다. 실마리라도 있지 않을까.

[그 안드로이드는.]

[무엇을 좋아했습니까?]

한거정에게로 남자는 깊게 숨을 들이켜 뱉어내었다. 숙여진 그의 고개가 가로 저어지고 눈은 허공으로 멈추어 있다. 남자가 답한다.

[그녀는 이미 죽었어요.]

[그 껍데기가 무얼 좋아했는지는.]

[이제 제 알바가 아니죠.]

남자가 뚜벅뚜벅 한거정을 지나쳐 정원을 가로지른다. 한거정이 눈을 감는다. 상록수를 덮은 먹구름 아래로 꼬마 안드로이드가 급히 몸을 감춘다. 한거정이 뒤를 돌아보았을 땐 남자와 그 여자 안드로이드도 자취를 감춘 뒤였다. 곱씹는다. 느낌이 온다. 한거정은 정원으로 가만히 서서 빈 입속을 씹었다. 정원으로 또 다른 정원사가 나타난다. 풍성한 치마를 입은 그녀가 한거정을 바라보고 선다.

한거정이 손을 흔들어 보인다. 그의 손짓을 본 정원사는 금방 한거정의 앞으로 달려왔다.

[용무가 있으십니까?]

한거정은 지나가듯 물어보았다.

[이 저택에서 사라진 안드로이드를 찾고 있어서 말입니다.]

정원용 안드로이드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한거정은 유심히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를 지켜본다.

[알고 있는 게 있으십니까?]

[안드로이드가요?]

[요코라고 불린다더군요.]

[, 나노하 가문의 아가씨말이군요.]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정원용 관리 도구들을 담은 바구니에 위험한 물건은 보이지 않는다. 손도, 발도, 다리와 입술 끝에까지 안드로이드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한거정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본 것을 그대로 보고, 읽은 것들을 그대로 읽는 안드로이드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곤 목격 진술 밖에 없을 것이다. 혹은 녹화 기록이라 던지.

[그 분이 사라지셨나요?]

[그렇습니다.]

그녀가 눈을 굴린다. 혹시 정원 쪽으로 나오지는 않았을까. 그렇다면 정원용 안드로이드들에게 기록이 남아있을 것이다. 한거정은 그녀에게 녹화된 간밤의 자료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던 참이었다.

[만약 제가 알고 있는 걸 알려드린다면.]

그녀가 한거정의 눈을 마주본다.

[가르쳐드릴 수 있나요?]

[무엇을 말입니까?]

안드로이드가 무엇을 원한다는 걸까. 한거정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그녀가 입을 연다.

[우리는 죽으면 무엇이 남나요?]

한거정은 이 기이한 저택에 신물이 나려던 참이었다. 간밤에 사라진 안드로이드와 그녀에 관심도 없는 남자들. 연인으로 등록되어 주문제작 되었지만 찾지 않고 방치된 안드로이드. 그리고 맞은편의 정원용 안드로이드까지. 한거정은 어떤 대답을 내어 놓아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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