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우우우우우웅"

 

주 엔진이 공회전을 하는 소리였다. 몸을 아무리 뒤척여도 편안한 자세를 찾지 못할 것만 같다. 몇 푼 아끼겠다고 새 소파를 사지 않고 집에서 쓰던 다홍색 가죽 소파를 가져온 게 실수일지도 모르겠다. 색이 바랜 이 소파가 그래도 내 몸에 가장 잘 맞는 옷처럼 느껴지는 가구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배치도 꽤 마음에 들었다. 전방의 시야를 가둔 해치를 열고 항해도를 화면에 띄워주는 조악한 홀로그램 프로그램을 꺼버리고 나면, 사방을 감싸고 있는 어둠과 간간이 그 사이를 찢고 흐르는 빛을 한눈에 바라볼 수도 있었으니까. 물론 이런 절경을 누워서 바라볼 수 있도록 최적의 배치를 하기까지 꽤나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사실상 새롭게 이사를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 집은 일반적인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내부적으로 상당히 안정적인 거주공간이었다. 

 

이곳, 우주. 

정확히 지칭할 수조차 없는 이 공간의 광막함에 대한 공포는, 몇 십 년을 이곳에서 생활을 해도 여전히 견딜 수 없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아무도 없다. 적어도 내가 인지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나는 지금 완벽하게 고독하다. 조종간 거치대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작은 목재 인형 상이 달각거리고 있었다. 기도를 드리자. 행위 자체로 위안을 주는 나의 작은 의식으로. 신은 우리에게 개척의 임무를 주었으니 나는 그것을 안고 떠난다.

 

그러나 사람.

그러니까 나와 같은 언어를 쓰고 나와 생활방식이 유사한 생명체와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고했던 게 벌써 지구 시간으로 5년 전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내게는 어제와도 같은 경험이었으니까. 모선을 이끌고 지구를 떠나와, 후에는 각자의 개인 함정을 이끌고 항로를 개척하는 임무를 받았던 동료들은 전부 스무 명이었다. 임무 도중에 죽은 친구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무사히 임무를 수행하고는 지구로 귀환했다.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았던 임무였다. 처음 바다로 떠나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해로를 개척했듯이 말이다. 몇 백 년 전, 배를 타고 처음 바다를 마주한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굽이치는 파도만이 유일한 소리인 것을 깨닫는 날들. 그러다 보면 마음 안에서도 파도가 친다. 그것은 단순한 물의 움직임이 아니다. 불처럼 일렁이며 타오르는 물길들에 묻혀 축축한 재가 되어가는 마음들을 마주하는 과정이다. 나에게 불은 검은 늪이다. 쾌적하고 안락하며 보송 거리는 이불처럼 느껴지는. 유연제의 향기보다는 조금씩 내부적으로 녹이 슬어가는 철골에서 풍기는 피 냄새가 현실을 일깨워주지만 어쨌든 따뜻하다. 가루가 되어가는 인식들 속에서 나는 이 편안함을 축복이라 여겨야 할지, 저주라고 여겨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서희의 죽음을 처음 알았을 때, 그리고 동시에 그 시점이 그가 죽은 지 6년이 지난 후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몸이 찢어발겨지는 듯한 슬픔을 예상했건만 그렇지도 않았다. 애인의 죽음으로 인해 둑이 터진 듯이 밀려오는 슬픔의 위에는 먼저 겹겹이 쌓인 해방감이 아스라이 내려앉았다. 언제 마무리될지도 모를 이 일을 제안받기 전까지 서희와 같은 회사, 같은 부서에서 일을 하면서 서로의 존재가 당연시되는 삶을 살아왔었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내가 모를 수는 없었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사건들에 진절머리를 내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렇게 수년을 함께 하며 경계가 허물어진 서로의 존재감을 익숙하게 삼켜왔다. 뱃속 어딘가에 뭉근히 얹힌 포만감에 지쳐갈 무렵이었다.

 

서희와 어떤 상의도 없이 이 일에 지원했을 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1차 심사에 합격을 하고서 그와 함께 조금 멀리 떨어진 정류장으로 날아가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고 드라이브를 다녀온 것이 다였다. 5차가 넘는 심사가 끝나고 합격한 뒤에 서희는 그제야 울음을 터뜨리며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묻기 시작했지만 나는 이미 그 이유를 잊은 상태였다.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오로지, 중력 가속도가 몸에 미치는 영향을 여성인 내가 견딜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교관의 비아냥 섞인 말들뿐이었다. 변명일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분노를 나는 어쩌면 서희에게 털어내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서희에게 욕지기를 내뱉은 후에 나는, 아니 우리는 우리의 말로를 직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우주 한 복판에서 쏟아지는 동료들의 위로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부모와 동료, 형제들이 몰려와 떠나는 이를 전송하며 눈물짓고 포옹하는 과히 인간적이었던 지구에서의 진수식에, 서희는 오지 않았다. 아무리 서로에게 진절머리가 나 있었기로서니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나처럼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을 아무리 동고동락했던 애인이라도 납득할 수는 없겠거니 했다. 나는 서희를 사랑한 적이 없었나. 동료들의 음성은 생각보다 따뜻했고 잠시 동안 서로의 해치를 열어 불빛을 깜빡거리며 그를 추모하곤 했다. 그러나 충격은 그 이후에 다가왔다. 서희가 어떻게 죽었는지 지구 쪽 통신기에 되묻자, 지구 시간으로 2년 4개월 21일 만에 사령부에서 보낸 답신은 이러했다.

 

'노화로 인한 사망'

 

떠나온 시간은 함께한 시간보다 길었다. 

그것도 오로지 서희에게만 그랬다.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모험이 이루어졌다. 궤도를 이탈한 소행성과의 충돌로 인해 동료를 잃은 것도 정신을 차려보니 지구 시간으로 18년 전의 사건이라고 했다. 우리들은 한 아이가 태어나 수없이 많은 자극과 정보값들을 이해하고 소화하며 스스로 사고하고, 사랑이라는 개념을 어렴풋이 알아가며 나와 다른 타인의 존재를 배려하는 지겹고도 필수적인 사회화 과정의 막바지에 이를 만한 시간만큼도 늙지 않았다. 광속으로 퍼져나가는 철골에 몸을 맡긴 채, 누군가의 일생에 걸친 도전과 오랜 시간 동안 견뎠던 누군가의 투병생활 혹은 멈출 수 없는 죽음으로 나아가는 과정들을 우리는 순간의 숨결들, 눈의 깜빡임으로 흘려보내고 말았다. 사실 이런 시간의 괴리감은 어떤 방법을 시도하더라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는 있다. 

 

서희는 마지막까지 나를 원망했다고. 

 

꽤 많은 액수의 연금이 지급된다는 것과 그 수령인이 나와 서희라는 것으로 안심을 하고 있던 나와는 달리, 서희에게 있어 내가 함께 늙어갈 수 없다는 사실은 견딜 수 없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이미 소리이자 빛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된 것일 수도 있겠다. 서희의 사진이 어디 있더라. 나는 알 수가 없다. 나는 서희를 모른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우우우우우웅"

 

또다시 공회전. 둥둥 떠 있는 이 끝없는 어둠 속에서 나와 내 다리는 갈 길을 잃은 채, 푸른빛이 감도는 작은 행성의 영향권에 머무르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약한 중력을 내뿜는 이 행성에 이끌려 잠시 불법적인 정차를 한 셈이었다. 보통은 행성의 궤도를 따라 엔진을 끈 상태로 유영하면 될 일이었지만, 이 근방에는 궤도를 무시한 채 달려드는 불청객들이 꽤 많이 발견되곤 했다. 넋 놓고 있다 코앞으로 다가온 소행성을 피하기 위해 엔진을 출력하면 그때는 이미 늦었다. 내 동료는 그렇게 요란한 불꽃을 일으키며 우주의 먼지가 되어버렸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걸 개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나? 모르겠다. 그저 야속할 뿐인 것 같다. 누군가를 추모하기에 별의 꽁무니는 아스라한 비행운조차 남기지 않고 떠나버리니까.

 

어쨌든 그런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시동을 걸어줘야만 했는데, 계산해보니 한 번의 공전 이후에 추진을 위한 부가 엔진을 더 출력해야만 했다. 지구 시간으로 3일을 주기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우주선 내부의 시간으로는 단지 3분이 흘렀을 뿐이었다. 오로지 이 이름 모를 행성과 나와 우주선, 이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찰나. 빛이 몇 광년의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누군가의 인생을 가차 없이 끝장내버린 뒤에도 유유히 흘러가는 공전의 시간들.

 

우주선 내부의 시간으로 5년 전, 나와 마지막까지 항로 개척 임무를 다 하던 녀석이 지구로 돌아가야만 했던 치명적인 이유는 지구에서 개발한 행성 간 공간 워프 기술의 개발 덕분이었다. 수집된 입체 좌표를 입력하기만 하면 육체에 조금 부담은 가해질지라도 몇 시간 안에 목적지로 이동이 가능했다. 어느 날 갑자기 굉음을 내며 모습을 드러낸 워프용 우주선의 광휘를 보던 우리의 통신이 기억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각자의 함선에 부착된 방사포를 겨눈 채 숨을 죽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통신 주파수가 연결된 상태에서 감정이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대원분들 모두 '고향으로' 귀환하셔도 됩니다."

 

동료에게는 핏덩이로 남겨두었던 자식이 있다고 들었다. 통신을 어렴풋이 들어보니 이미 어엿한 중년이 되어 있었다고. 그 녀석은 반드시 지구에 돌아가야만 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쭈글거리는 얼굴로 빽빽 울어대기만 했던 아이는 동료가 임무를 착수하며 차곡차곡 쌓아올린 연금 덕분에 꽤나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떠나버린 동료를 그리워한다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흘러갈 빛과 어둠 속에서 끝까지 쥘 수 있는 추억을 쌓고 싶다고. 녀석은 흐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괴상한 감정이 들었다. 지구에서 녀석은 자신이 낳은 자식과 동년배인 상태로 마주하게 될 것이다. 다른 아무런 추억 없이 바로 술잔을 기울이거나 담배를 함께 태울 수도 있겠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지구는 오로지 규칙과 섭리로만 인생을 살아가는 곳이었다. 그 두 가지 없이는 다른 어떤 것도, 단 1초도 지속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모두가 일정 시간은 땅에 발을 붙여야 하고, 마음에 들지 않은 타인과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야만 했지. 이곳은 달랐다. 비록 나는 태생과 소속이 모두 지구임에는 분명하나, 사실상 내가 귀환을 해야 할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이미 죽어 없어진 부모와 애인 그리고 내 모든 것을 담았던 커리어가 지금 내가 움직이는 발자취로써 계속해서 증명되고 또한 연장되고 있었다. 

 

기묘한 자유. 서로 숨길 것도 없는 공간에서 약속도, 다짐도 없다. 동료들이 지구에 두고 온 무언가에 발목을 붙잡혀 멈칫거릴 때, 나는 조금씩 인간들이 올려다보던 별에 가까워진다는 걸 느꼈다.

 

통신기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항해도의 확장과 새로운 좌표의 발견 및 설정은 물론 아직까지도 유효한 작업이자 숭고한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허나, 계속해서 현재의 대원들에게 이러한 작업을 계속해서 맡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시공간 워프용 우주선의 개발로 인해 입력된 좌표계까지의 항해는 순식간에 빨라졌기 때문이죠. 당국에서도 이러한 기술적인 변화를 받아들였고 안정성을 높여가며 새롭게 대원을 선발할 예정입니다."

 

안정성! 새로운 대원! 

그 말은 곧 이제 나는 쓸모가 없다는 말이었다. 단말기도 너무 오래된 것들이라 지구에서 송신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수신할 수도 없을뿐더러 무엇보다 느렸다. 그러니까 나는 이미 지구의 모든 이들에게 잊혀지고 성가신 존재였다. 윤리적으로는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안 지구 정부 쪽에서는 어떻게든 나를 귀환시키고 싶어 할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법적 조항과 지침들이 지구 내부적으로 변화했을 것이고 나의 존재는 그러한 모든 개정안에 있어서 예외를 만들어버리는 오류나 마찬가지일 테니. 하지만 심적으로는 어떨까.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을 텐데.

 

임무는 계속됐다. 

그대들은 내가 귀환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숭고한 탐사를 연장하는 것으로 기억해주길.

인간의 얕은 감정과 굳은 돼지기름 같이 끈적한 관습에서 벗어난 최초의 지구인으로.

 

"우우우우우우우웅"

 

엔진이 세 번째로 출력되는 소리가 나더니 요란한 경고음이 선내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후미 어딘가에서 특수한 장력이 작용하는 것 같았다. 120kgf 정도의 미약한 중력이 작용하는 행성에서 갑자기 특수한 한 지역만이 약 1800kgf의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사실 단 한 번도 이런 강력한 끌림을 받은 적은 없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을 넘어 별밭이 명멸하는 우주의 어느 한 공간에서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평온했던 생각의 무게 추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예정에 없던 착륙을 해야 할까. 사실 그것도 달가운 선택은 아니었다. 어차피 이 함정은 우주의 항해도를 제작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위경도를 안정적으로 설정해가며 착륙할 수 있는 적절한 기기들이 갖춰지지 않았다. 또한 지금 말없이 나를 꼭 붙잡고서 자신의 주위를 끊임없이 빙빙 돌게 만드는 이 행성은 그 어떤 자료에도 없는 새롭고 작은 존재이기 때문에, 어떤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을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대로 행성이 발휘하고 있는 장력을 함정의 장갑 내구도가 버티지는 못할 것 같았다. 붉은빛이 경고음과 함께 선내를 채워가며 울음을 내리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아. 자유롭고 편안한 상태로 조용히 눈을 감는 것이 내 계획이다. 갑자기 떨어지는 온도에 의해, 혹은 철골까지 종이처럼 구겨버릴 압력에 의해 소멸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나와 거의 평생을 함께 한 이 우주선을 최대한 손상시키고 싶지 않았다. 이제 내 집이자 몸이 되어 버린 녀석인걸.

 

타닥타닥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부스러기 같은 부유물이 전방 유리에 부딪고 있었다. 또 다른 경고음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소행성이었다. 직경을 가늠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크기와 질량을 자랑하는 괴물 같은 돌덩어리가 조금씩 별밭의 빛들을 모두 삼켜버린 채 달려오고 있었다. 착륙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푸른빛이 감돌며 탄소가스인지 무엇인지 모를 뿌연 연기들로 자신을 한껏 가린 자그마한 행성. 이 별 내부의 산소 농도는 충분했다. 그러나 질소의 농도가 어마 무시하게 높은 수준이었고 양성자 연쇄 반응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쉬지 않고 어딘가에서 핵융합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 별 어떤 곳에서도 평화로운 화학평형은 일어나고 있지 않았다. 

 

 

 

 

네가 이긴 만큼 내가 다가서야 하는 암묵적인 규칙 따위는 무시한 채, 끝없이 서로의 영토를 탐하는 다툼 속에서 발견한, 마치 마음의 빛깔처럼, 우리는 그걸 마음이라고 부르지만 동시에 처음 보는 색깔을 묘사할 수 없어 묶여버린 입술만이 몰래 알고 있는 대답처럼. 네가 행성이라면 도대체 왜, 너는 더 이상 나에게 손아귀의 힘조차 주지 않고 풀어버리는 거니. 내가 위성이라면 너는 죽은 별이고 나는 펼쳐진 저 별밭들 속에서 또 다른 중력에 이끌릴 수밖에 없어. 

 

우리는 이탈한 궤도를 그리워 할 뿐일지도 몰라.

 

서희의 몇 마디가 옅은 파도처럼 머릿속을 채웠다. 갑자기 왜 옛날 생각이 나는 건지. 감상에 젖을 새도 없이 덜컹거리는 행성의 대기 권역은 이미 나와 내 우주선을 쥐어뜯고 있었다. 불규칙적으로 서로를 주장하는 장력들 속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조종대를 거머쥔 채, 기도문을 줄줄 외우고 있었다. 슬픈 꿈이 끝나면 아픈 기억들도 날아간다고 누군가 그랬다. 이곳에 오른 뒤부터 꿈은 끝없이 우주선 후미에 머무르곤 했다. 그렇다고 믿었다. 꿈처럼 모든 것을 1분 1초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내려 보낸 모든 것들. 그저 꿈을 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모든 걸 붙잡지 못하고 후회만 남겨진 채, 이 우주선이 가진 힘의 다섯 배나 무거운 지구의 중력에 굴복하는 너와 나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궤도를 이탈해버린 위성의 최후는 너도 잘 알잖아.

그 이후에 우리가 떠나보낸 위성이 무엇을 보고 어디를 여행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해.

 

나는 그 대답 속에 나를 던졌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밝은 빛이 어둡고 표독스러운 초록빛을 해치며 함선 전방을 비추기 시작했다. 모든 수치가 안정화되며, 오히려 포근하게 느껴졌던 붉은 경광등이 힘을 잃고 사라졌다. 핵융합 반응은 감쪽같이 잠잠했다. 측면 카메라 화면을 띄워보니 반경 이십 미터 정도 되는, 굵은 반원과도 같은 먼지의 띠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 모든 것이 천천히 이루어졌다. 일련의 미동도 없이 우주선은 조금씩 강하하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띠를 제외한 행성의 다른 대기 권역에서는 여전히 끔찍할 만큼의 양성자 연쇄반응이 일어나며 시퍼런 스파크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래로.

조금씩 더 아래로.

천천히. 

누그러뜨린 채, 서서히.

 

행성의 지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둡고 붉었다.

 

그곳은 푹신하다 못해 축축한 진흙 더미 같아 보였다. 깨진 유리병 조각으로 칠판을 긁는 것만 같은 소리가 함선 사방에서 격렬히 울부짖다 이내 그쳤다. 함선 전체를 감싸 안고 있던 뿌연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무른 땅이라면 이 작은 곳에는 그래도 물이 있다는 말이었다. 바깥을 조사해 보아야 할까. 조종대를 비틀어 다시금 엔진에 시동을 걸어보려 해도 고장 난 탐사로봇이 분해되기 직전에 내는 탁한 소리만 툴툴대며 날 뿐이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괜히 외행성 이동과 탐사를 위해 부설된 소형 탐사선의 상태를 점검해본다. 죽을 수도 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계속 어디론가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곧 폭발할 수도 있는 이 작은 행성의 종말을 함께 맞이하며. 다른가? 그런 죽음들이. 의미는 지구에서나 부여할 수 있다는 걸 잘 알지만서도.

 

감압장치가 갖춰진 무거운 수트를 입은 채로 해치를 열었다. 선내의 산소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었다. 무언가 방법을 찾아 떠나는 수밖에 없어. 그래도 행성 내부에 산소는 많으니까. 할 수 있을 것이다. 외부에서 보던 것과 달리 현재 대기는 매우 안정적이었다. 방사능 수치는 꽤나 높아 헬멧을 벗고 자유롭게 숨을 들이마실 수는 없겠지만. 금방 착륙한 것 같았으나 하늘은 지구에 있을 때처럼 여전히 까마득히 높았다. 그래봤자 인간이다. 절묘한 조건과 규칙 아래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고, 그제서야 자유에 대해서 무심하게 말할 수 있는.

 

이상한 건 이 황톳빛 땅이 마치 누군가 불도저로 밀어버린 듯이 고르고 평평한 지대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일정한 침식작용에 의해 형성되었다 하더라도 이런 인위적인 지대 형성이 가능할 일인지 의심이 들었다. 오싹한 기분이 든다. 이곳에 누군가, 누군가 있다. 아, 성모상을 가져올 걸 그랬다. 기도하며, 어머니는 내가 기도하며 살기를 바랐다. 수없이 많은 별이 폭발하고 탄생하는 정류장 한가운데에서 근무하던 퀭한 눈의 그 여자는 이가 몇 개 나간 낡은 목재 인형상을 만지작대며 알 수 없는 기도문을 중얼거리곤 했다. 어머니가, 나의 또 다른 어머니를 잃고, 그러니까 그의 애인을 잃고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들이 무색할 만큼. 나는 맹목적으로 어머니를 믿은 적은 없으나 쳇바퀴 같은 삶 속에서 천천히 죽어갔던 그가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 그 수단을 언젠가부터 믿기로 결심했던 것 같다.

 

나는 걸었다. 산소는 충분해. 혹 인간이 있다면, 아니 그 어떤 지적 생명체가 있다면 도움을 청하자.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수트에 장착된 번역기가 도움을 주겠지. 항로에도 기록되지 않은 불안정한 행성에 기거하는 행성민과 과연 그런 단순한 방법으로 소통할 수 있을까 의심되지만.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헐떡이는 숨으로 인해 헬멧은 조금씩 김이 서렸다. 내부 온도조절 장치를 벌써 몇 번이나 껐다 켜고 있는 건지. 마지막 한 번의 조절로 습기가 말끔히 걷히며 시야가 확보되는 순간에 내가 확인할 수 있던 것은 작은 건물이었다. 임시로 건축한 가건물이나 컨테이너 박스도 아닌, 검붉은 색의 흙과 돌로 쌓아올린 둥근 돔이었다. 혹 연료가 있을까. 아니면 정비를 볼 수 있을만한 설비가 갖춰졌을까. 그만큼의 발전이 이루어진 곳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건물 앞에 다다르자 나의 키에 꼭 맞는 문이 있었다. 흙과 돌로 이루어진 이 건물에 다른 보안장치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불안하게 떨리던 마음이 갑작스레 천천히 내려앉는 깃털처럼 가라앉기 시작했다. 문을 살짝 밀자 인기척이 느껴졌다. 행성의 토착민인가. 조금씩 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널따란 공간 한 가운데에서 하얀 프릴 원피스를 입고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서희였다.

 

그 서희가, 지구를 떠날 때 고집을 부리며 우주선으로 가져온, 색이 바랜 다홍색 소파 위에 앉아 있었다. 다리를 꼰 채로 발목을 까딱거린다. 오른손으로 턱을 괸 채, 아무런 감정이 없는 새카만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반 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노화는커녕 내 기억에 어렴풋이 잠재되어 있던 서희의 모습보다 훨씬 젊고 생기가 넘쳐 보였다.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수천광년이 넘는 거리를 무시하며, 늙어 죽은 줄 알았던 애인이 눈앞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서희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맨발로 붉은 황톳바닥을 밟고서 나를 향해 외쳤다.

 

“기한이 정해져 있던 것도 아니었잖아.”

 

서희의 날카로운 눈꼬리 끝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었어. 헤어지자는 거야, 아니면 기다리라는 거야. 나는 하염없이 네 냄새가 풍기는 옷장에 앉아서 매일을 울었어.”

 

서희가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하자 나는 무의식적으로 몇 발자국을 뒤로 하고 말았다.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서희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팔자주름으로 경계지어진 볼이 조금씩 깊게 파이기 시작하더니 또한 힘을 잃고 아래로 쳐져갔다. 마치 끊임없이 칼에 베이듯, 그가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말라버린 강바닥 같은 주름이 온 몸에 새겨지고 있었다. 새까만 눈동자는 조금씩 회색빛이 되어가며 탁해졌다. 내게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서희의 허리는 굽어갔다. 불거져 튀어나온 무릎 뼈와 울퉁불퉁해진 손가락과 발가락에 위태롭게 얹혀진 손톱과 발톱은 누래져 갈라지기 시작했다. 검은 반점들이 그의 몸 곳곳에 잉크처럼 번져간다. 회색빛으로 물든 머리칼이 한 움큼씩 빠져 붉은 땅 위로 흩날리며.

 

누렇게 바랜 프릴 원피스 속에 갇혀버린 아이처럼 서희는 너무 작아지고 말았다. 그는 둥글게 말린 허리를 펴지 못한 채 땅을 바라보며 내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쪼그라진 발 앞으로 눈물인지 침인지 모를 것들이 방울져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지구에서는 하지 못했던 말을 건넸다.

 

우주에 가는 것이 꿈이었다고 하면 어때. 매일 같이 머나먼 어딘가로 떠나서 돌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대문을 여닫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내일을 약속한 말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모른 채 하염없이 쏟아지는 별밭들을 바라보며 기도문을 외는 일이 아니고. 도달할 수 없다고 믿는 체념이 아니고.

 

나는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서희의 낡고 지친 귓가에 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손을 뻗어 서희에게 닿으려고, 한 걸음을 떼어 그의 곁에 다가간 순간 그는 사라졌다. 폭발 후에 번지는 분진처럼 먼지가 되어 온데간데 없어지고 말았다. 헬멧에 그의 흔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를 입자들이 달라붙었다. 나는 헬멧의 토크를 열어 산소를 분출한 뒤, 천천히 수트를 벗기 시작했다. 더 이상 핵융합이나 질소 과다, 방사능 노출에 대해서는 걱정되지 않았다.

 

나는 몇 걸음 더 나아갔다. 서희가 앉아있던 정겨운 소파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였다. 소파가 있던 자리에 맨발로 올라서자 은근한 온기가 여전히 무른 땅 위를 달구고 있었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오른편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낡은 개수대 앞에 서서, 어깨를 들썩거리며 설거지를 하는 사람의 뒷모습이 눈에 보였다. 위로 올려묶은 검은 곱슬머리가 낯익었다. 잔머리가 삐죽거리며 튀어나온 뒷목에는 어렸을 적에 내 작은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곤 했던 어머니의 붉은 반점이 과녁처럼 새겨져 있었다.

 

어머니. 

 

나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단어를 굴렸다. 다가가려는 찰나에 어머니 곁으로, 어머니보다 조금 키가 작은 다른 사람이 포르르 날아오듯 가벼운 걸음걸이로 다가와 열중하는 어머니의 허리를 팔로 감싸 안으며 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어두운 붉은 머리칼을 지닌 동양인 여성. 

 

어머니. 나의 또다른 어머니. 서로의 애인이 되어 주었던 어머니들.

 

나는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설거지를 하는 어머니의 허리를 안은 또다른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곤 미소를 지었다.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살짝 대며 쉬이- 하는 시늉을 했다. 나는 잠시 우뚝 멈춰 선 채로 둘을 바라보았다. 다시금 싱긋 웃던 어머니는 땀이 송골히 맺힌 애인의 볼에 살짝 입술을 대고는, 허리를 풀고 뒷걸음질치며 그의 곁을 떠나기 시작했다. 가볍고 경쾌한 종달새의 날갯짓과 같은 모양새를 하며.

 

두 걸음 더 다가가자, 어머니의 뒷모습은 조금씩 낡아가기 시작했다. 허리와 팔뚝은 조금씩 더 굵어지고 온 몸에 주근깨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질끈 그러모은 머리칼을 움켜쥐고 있던 끈이 서서히 힘을 잃고 끊어졌다. 

 

또 한 걸음 더 다가가자, 어머니는 몸을 홱 돌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자연스레 놓인 의자에 앉았다. 그의 팔 왼편에는 길죽한 레버가 앉은 그의 허벅지 께에 솟아나 있었다. 그가 그 레버를 당기자, 은은한 소음이 들리며 돔의 거대한 외벽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오른손으로 이름 모를 버튼을 눌러 쉰 목소리로 말했다.

 

“E-MW-870309. 지구행 비행선 두 척 A45, Z94의 귀환을 환영한다.”

 

지직거리는 소리가 어머니의 목소리에 화답했다. 해치가 열린 돔의 외벽을 바라보니 바깥은 우주. 광막한 어둠이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끝을 알 수 없는 공간. 그곳으로 울퉁불퉁하게 생긴 구형 우주선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우주선을 한참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한 걸음 더 다가가 어머니의 뒤에 섰다. 손과 발이 두서없이 따끔거리고 있었다. 바라보니 붉게 부풀어오른 손과 발에 조금씩 염증이 나타나고 있었다. 방사능이구나. 피폭이다. 몸의 분자구조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그러나 목이 따끔거리가 혀가 부풀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는 걸 곧 깨달았다. 눈물이 차 올랐다. 그조차 아픔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그 때 어머니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20년을 기다렸어.”

 

어머니는 천천히 조종대 의자에서 일어나 말을 이었다.

 

“우주에 가는 것이 꿈이었다고 하면 어떠니. 매일 같이 머나먼 어딘가로 떠나서 돌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대문을 여닫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약속한 말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모른 채 하염없이 쏟아지는 별밭들을 바라보며 기도문을 외지 않고도 그의 행복과 절망을 눈 앞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도달할 수 없다고 믿는 체념으로 매일 그의 냄새가 남아있다고 믿는 텅 빈 옷장에서 잠드는 밤들도 사실은 없지 않았을까.”

 

어머니는 빙글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가슴 깊이 슬퍼하는 듯한 모습이었으나 퀭한 눈은 이미 말라비틀어진 상태였다.

 

 

우리는 그걸 마음이라 부른단다, 얘야. 

사랑의 기쁨을 색으로 묘사할 수 없는 것처럼. 

 

 

 

어머니는 조금씩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나는 이미 부풀어 감을 수 없는 눈꺼풀에 힘을 뺄 수밖에 없었다. 우주의 어둠을 여닫는 정류장의 해치처럼, 눈을 감아 어머니의 모습을 차단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조금씩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가 되어 사라지는 어머니의 발끝까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약 200년 만에 지구로 귀환한 성간 탐사대원 스즈키 씨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성간 이동용 워프는 시공간의 연결 통로를 비틀어 열 때, 시공간 간섭 현상이 생긴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이 때 입력한 입체 좌표계에는 반드시 진공상태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으나, 스즈키 씨가 정박하고 있던 궤도에는 아직 시스템에 입력되지 않은 미확인 행성이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 행성은 곧 수명이 다해 폭발을 앞둔 행성으로 확인되었고 간발의 차이로 스즈키 씨의 우주선은 행성이 폭발하기 직전, 지구 은하계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스즈키 씨는 현재 혼수상태이나, 신체의 바이탈 지수는 굉장히 양호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전문가들의 검진 결과, 스즈키 씨의 두뇌는 손상되어 더 이상 정보의 축적을 할 수 없는 기억 저장의 능력이 상실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안타깝게도 스즈키 씨는 그동안 축적해왔던 과거의 불완전한 기억만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스즈키 씨의 빠른 쾌유를 빌며 오는 지구력 3월 10일에는 스즈키 씨를 필두로 약 200년 간 이어져 온 성간 탐사 활동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축하하는 행사가 세계정부청사 광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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