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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뛰어 봤자 플랫폼

2021.03.22 09:3403.22

딩동. 마음이 부릅니다. 심(心)부름.

 

클라우드와 연결된 가운데 콧구멍으로 배차 메시지가 날아들었어. 불 맛의 스모크 향. 난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로 발송된 배차 메시지를 읽어 내려갔어.

 

휴먼컵스테이크 - 클리올 맛 2개 : 12,000코인

 

역시나 요즘 유행하는 휴먼스테이크. 뭐 좋아, 클리올이나 뮬라토 같은 혼혈 스테이크 맛이 인기인 건 그렇다 치자고. 그런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이곳 앨리시티는 27번 가상계의 비오톱(biotope)이잖아. 12번 가상계의 물리지구를 본뜬 가상인간들의 서식지라고. 20년 후에 70% 확률로 예측되는 물리지구의 미래 도시이기도 해. 그래서인지 물리 법칙이나 생물종 구성, 심지어 문명조차 지구와 닮도록 ‘급속진화’한 측면이 있다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인종까지 닮아가는 건 좀 낭비 아닌가? 전체 가상계의 종 다양성 차원에서 말이야. 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가운데 콧구멍으로 흡, 하고 숨을 들이마셨어. 클라우드 맵의 위치정보와 함께 나머지 배차 메시지가 후각신경으로 훅 들어왔어.

 

픽업 : 0.3km

전달 : 0.6km

배달료 : 3,000코인

5분 후 픽업 완료

 

총 이동 거리 0.9km. 거리 대비 배달료로는 나쁘지 않은 배차야. 문제는 이 거리가 직선거리라는 거지. 실제 길을 따라 걸으면 2km 넘는 경로일 게 뻔해. 그런데도 픽업 시간은 이따위로 직선 거리 0.9km에 맞춰져 있다니까. 게다가 휴먼컵스테이크는 조리 시간이 짧아. 조리까지 염두에 두고 컵 규격으로 썰어서 배양한 사람고기를 쓰거든. 조리 시간이 짧다는 건 그만큼 픽업 시간도 짧다는 거야.

 

‘제길, 또 날아가게 생겼네.’

 

이족보행, 사족보행에 드론까지, 날고 기는 각종 배달로봇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부터 오토바이, 자전거, 킥보드 같은 전통의 탈것 배달이 안전을 이유로 금지되었어. 그나마 인간에게 허용된 유일한 배달 수단이 ‘걷기’야. 배달로봇의 GPS 신호가 중첩되는 다세대 주소지나 부자들의 보안 구역 정도가 도보 인간의 마지막 배달 영역으로 남겨진 거지. 그리고 나는 전통의 도보 인간 커넥터잖아. 공간을 접어 축지법을 쓸 수도, 드론처럼 직선거리로 날 수도 없어. 배달 시간에 맞출 방법은 단 하나야.

 

‘뛰어!’  

 

께느른한 몸뚱이를 곧추세우고 잰걸음에서 달음질로 속도를 올리면서 가운데 콧구멍으로 맵을 열었어. 맵 위의 파란 점 하나가 빨간 점 쪽으로 꾸물꾸물 움직이면서 달리는 단백질과 먹을 단백질의 간격이 좁혀지고 있었어. 두 점 사이에서 반짝이는 황금색 점. 그래, 저게 바로 배양탑이야. 앨리 한가운데 우뚝 선 저 눈부신 배양탑을 봐. 번뜩이는 문장(紋章)이 이중 나선으로 나뉘어서 마치 두 마리의 용처럼 거대한 배양탑 전체를 휘감아 오르고 있잖아.

 

비트는 존재의 구조

존재는 단백질 구조

 

배양탑은 앨리시티 전역에 식재료를 공급해. (비트의 성위 구세주, 존재의 성위 오이오가 지식의 성위 섬니아의 제가를 받아 앨리를 27번 가상계의 비오톱으로 선포하면서 이 배양탑을 세웠다지.) 배양탑에서 자라는 조직배양 식물과 배양육은 완벽해. 유전자 재조합으로 다양한 식감과 맛을 디자인 할 수 있으면서도 영양 또한 월등하지. 무엇보다 손쉽게 먹거리를 얻을 수 있어. 치바팜 노예 시절 내내 겪어야만 했던 징글징글한 노동과 끔찍한 도살의 단계가 아예 사라진 거야. 세포를 배양한 조직을 바이오잉크로 만든 다음 3D 프린터로 고기나 과육을 인쇄하면 끝. 게다가 이 모든 게 치바팜의 수만 분의 일의 땅과 수백 분의 일의 노동으로 가능해. 더 이상 똥오줌으로 기른 곡식과 가축을 잡아 죽인 고기를 먹을 필요가 없어진 거야. 그러니까 어땠겠냐고, 세상이 회까닥 뒤집혔다니까. 수십만 헥타르에 달하는 치바팜의 그 광활한 경작지와 목초지가 불과 1헥타르의 땅에 세워진 앨리의 배양탑 하나로 순식간에 대체되어버린 거지. 급속진화란 게 다 그렇지 뭐. 

 

딩동. 마음이 부릅니다. 심부름.

휴먼컵스테이크 - 기본 3개 : 9,000코인

 

달리는 동안에 또 휴먼컵스테이크 주문이 들어왔어.

 

흡!

수락.

 

가운데 콧구멍이 반사적으로 콜을 잡아챘어. 맵에 겹쳐진 채팅레이어로 주변 커넥터들의 현황이 올라왔어. 

 

와우, 1시간에 휴컵 3콜!

오늘도 휴컵이 대세인가.

아이고, 작작들 좀 먹자. 사람고기 배달하다 사람 뒈지겄네.

···  

 

맞아, 이제 앨리의 주 단백질원은 배양인육이고, 배양인육은 분명히 사람고기야. 그런데 그게 뭐? 진짜 사람을 도축해서 얻은 고기가 아니잖아. 배양인육에는 두 개의 팔다리도, 세 개의 콧구멍도 없어. 사람 개체에서 얻은 게 아니라 사람 세포에서 얻은 고기니까, 도살 된 건 세포에 불과하지. 앨리 사람들은 합리적이야. 사람한테 좋은 단백질이라면 역시 사람 단백질 아니겠어. 질로 보나, 양으로 보나, 맛으로 보나, 동물 윤리로 보나 훨씬 나아진 거야, 치바팜에서 노예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말린 오리고기나 씹던 때에 비하면 말이야.

 

*

 

비록 한때였지만 치바팜은 27번 가상계 최대 규모의 농지였어. ‘사탕수수 대마’라고 불리우는 ‘치바치바’가 특산물이었지. 치바치바는 27번 가상계는 물론이고 가상계의 가상계의 가상계 구석구석까지 팔려나갔어. 심지어 앨리의 원형(原型)인 물리지구의 20세기 도시들에서는 몽롱한 음악을 들으며 치바치바를 찬양하는 사조까지 생겨났다니까.  

 

물리지구의 음악 1

 

노예고 감독관이고, 땅이고 하늘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울끈불끈했던 고단백 시절이었어. 그러니까 어떻게 알았겠냐고, 그렇게 탱탱하고 풍성한 세상이 배양탑 따위에 밀려서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줄이야. 세상에, 그런데 그게 이미 90% 수준으로 예측된 급속진화였다는 거야.

단백질이 사라진 다른 농장들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대. 굶주린 노예들이 감독관들을 잡아먹고 앨리까지 가기 위한 헬스포인트를 확보했다지. 노예들은 감독관들 코와 귀를 무슨 훈장처럼 목에 걸고 앨리시티로 몰려들었다는데, 급속진화가 원래 그런 거야, 마치 시체에 구더기가 꼬이듯이 자연발생적으로, 자율적으로,  본능적으로, 그러니까 그게,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플랜테이션 노예 퀘스트에서 도시 노동자 퀘스트로 옮겨간 거야.

 

*

 

앨리 생활은 시작부터 운이 좋았어, 심부름 AI가 나를 로로구에 배치했거든. 로로는 앨리 최대의 환락가야. 환락가 특성상 단골 배달이 많고 배달로봇이 적기 때문에 인간 커넥터에게는 꽤 짭잘한 곳이지. 

 

딩동. 마음이 부릅니다. 심부름.

배달료 : 200,000코인

 

헐··· 뭐라? 2십만?! 설레는 마음으로 가운데 콧구멍을 한껏 열어젖혔어. 그런데, 어라? 알듯 말듯 모호한 향기의 배차 메시지. 일단 콜 파악에 들어갔어. 먼저 거리와 시간.

 

픽업 : 0.7km

전달 : 0.2km

28분 후 픽업 완료

 

직선거리로도 꽤 먼 편이지만 그래도 2십만 코인이라면 당연 오케이지. 픽업 시간도 넉넉한 편이라 뛰지 않아도 되겠어. 그렇다면 배달 할 음식은?

 

박제구이(30kg) : 2,300,000코인

 

박제구이? 이건 또 뭐야? 230만 코인짜리 메뉴인데 배달료가 2십만이라··· 무게가 30kg이면 꽤 무거운 편이긴 한데, 전달지까지 그리 멀지는 않고··· 또 무슨 창작요리인가? 로로는 갖가지 창작식당들이 즐비한 곳이니까. 그래 가자! 뭐 사람이 할만하니까 배차한 거겠지. 난 심부름 AI를 믿어. 뭘 더 따져, 30분에 20만 코인이잖아. 

 

흡! 

 

가운데 콧구멍으로 수락 버튼을 누르고 맵을 따라 실실 걸으면서 음악을 틀었어. 요즘 자주 듣는 픽업송은 슬릭의 <리쿼>야. 

 

물리지구의 음악 2

 

술주정 가득한 비트가 가운데 콧구멍을 지나 온몸을 울려. 그 상태로 로로의 꾸불꾸불한 환락가를 걸으면 오히려 몸이 가벼워지지. 종아리 근육이 풀리고 음악과 심부름 AI의 내비 멘트가 뒤섞이면서 차차로 감각이 무뎌지는 거야. 마치 게임 속 캐릭터가 된 느낌이야. 나는야 나노봇, 심부름 AI의 지시대로 최적의 경로를 밟아가지. 그 경로를 학습한 심부름 AI가 최적의 배차를 결정해. 때로는 심부름 AI의 경로를 반영한 맵에 따라 앨리의 길이 바뀌기도 하지. 그런고로 커넥터는 언제나 자기 몸에 맞게 움직여야 해. 너무 무리하면 데이터가 왜곡될 테니까. 커넥터들의 경로가 맵을 만들고, 맵이 길을 만들어. 27번 가상계는 그렇게 비트에서 존재를 빚어내. 나는야 나노봇, 경로를 돌고도는 떠돌이 캐릭이라네. 되풀이되는 술주정이나 순환하는 단백질 같은 것. 가상계의 가상계 캐릭터라니. 역시 음악은 물리지구라니까.

 

“20미터 앞에서 오른쪽, 목적지입니다.”

 

음악이 끝나고, 심부름 AI의 멘트만 심드렁히 울렸어. 모퉁이를 돌자 꽃으로 장식된 쇼윈도에 헐벗은 마네킹과 두툼한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어.  

 

‘단백질의 정원’

 

여기가 맞나··· 재차 맵을 확인하고 뻘쭘히 가게로 들어섰어. 

 

“안녕하세요, 심부름입니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둥그런 빵 모자를 쓴 조리사, 마네킹에 옷을 입히며 치수를 재는 재단사, 그리고 꽃바구니를 들고 분주히 움직이는 정원사 중 하나가 짧게 답했어. 그러니까 여기가··· 빵가게야, 옷가게야, 꽃가게야?

 

“230만 코인이죠?”

 

가게 안쪽에서 누군가가 동상 같은 걸 밀면서 걸어 나오는데, 어딘가 낯이 익었어.  굵고 갈라진 목소리, 다리를 뻗을 때마다 움찔거리는 걸음걸이. 저 사람은···

 

“네, 230만 코인 맞습니다. 그런데 혹시···”

 

나를 비치는 희뿌연 눈동자. 마캉달이었어. 치바팜의 조장 노예, 그리고 주술사.

 

*

 

그날 치바팜 감독관들이 선수를 쳤어. 노예들 밥에다 흰독말풀과 치바치바 달인 물을 섞어 먹인 다음 불을 지르고 내뺀 거야. 화염이 파도처럼 농장을 삼켰어. 독이 덜 든 밥을 먹었던 걸까, 나는 죽거나 환각에 빠지지 않고 간신히 오두막에서 기어 나왔어. 수레 밑에 바싹 엎드린 채로 밭과 창고, 축사, 그리고 노예들의 오두막이 활활 타는 걸 넋놓고 바라봤지. 노예들은 건초더미를 끌어 안고 환각에 해롱거리면서 천천히 구워졌어. 나, 그리고 나무를 베러 나갔다 도망친 벌목조 넷만이 간신히 통구이 신세를 면할 수 있었어. 벌목조 조장 마캉달이 눈치를 챈 덕이었지. 벌목조는 야산에 굴을 파고 불바다가 잦아들 때까지 쫄쫄 배를 곯으면서 숨어 지내다가 허기에 지쳐 내려온 거였어. 하지만 불바다가 쓸고 간 농장은 잿더미뿐이었어. 생명체라곤 그렇게 다섯. 채 클라우드로 소멸하지 않은 몇 구의 시체로부터  당장에 필요한 단백질 입자를 얻을 수 있었지만, 그래봐야 고작 하루 이틀 치에 지나지 않았어. 다섯은 바비큐가 된 시신 몇 구를 그러모아 빙 둘러싸고 서로 눈치를 살피면서 고기와 살기를 나눴어. 다섯 모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지, 간단한 계산이었으니까. 앨리까지 가는 데 필요한 헬스포인트를 충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일인당 한 명 반어치의 단백질 입자가 필요해. 다섯 중 셋이 둘을 위한 단백질이 되어야만 하는 거지.

나는 감독관들 몰래 꿍쳐둔 치바치바 잎을 사용했어. 막사발에 치바치바 이파리를 찢어 넣고 팔뚝을 그어 푸른 피를 받은 다음 으깨서 껌을 만들었지. 파르스름한 껌을 가운데 콧구멍 깊숙히 박아 넣고 흐읍, 하고 대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알싸한 정향 냄새가 정수리까지 치솟았어. 숨이 멎으면서 몸이 가벼워지더군. 가운데 콧구멍과 연결된 공유 중추신경 클라우드를 차단하고 으깨진 치바치바 입자들로 감각 정보를 교란시킨 거야. 무뎌진 감각과 환각에 일순간 나는 괴수로 돌변했어. 침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둘을 잡아서 말뚝에 묶고 열린 두 개의 콧구멍으로 숨을 쌕쌕 몰아쉬면서 그 중 하나를 산 채로 으깨어 먹었지. 그 광경을 본 나머지 하나는 기겁해서 혀를 물고 스스로 단백질원이 되었어. 조장 노예였던 마캉달 역시 하나를 죽였어. 살아남은 우리 둘은 신사협정을 맺었어. 세 구의 고기를 서걱서걱 저민 다음 반씩 나누었지. 마캉달은 가운데 콧구멍을 킁킁거리며 클라우드에 접속한 다음 냄새로 위치정보를 검색했어. 그런 다음 그 희뿌연 눈동자로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내게 고기 몇 점을 들이밀었어. 

 

“챙겨. 난 충분해. 주술사는 단백질에서 단백질을 뽑을 수 있거든.”

 

그 순간 장미 향의 잿바람이 일었어. 단백질이 사라진 메마른 땅에는 어울리지 않는 향기였어. 마캉달이 가운데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말했어. 

 

“치바팜이 맵에서 삭제되고 있어. 장미 향은 시공간이 소멸될 때 생기는 버그야.”

“버그?”

“급속진화의 부작용이랄까. 죽치고 있다가는 언제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갈지 몰라. 빨리 빠져나가.”

 

곳곳에서 잿빛 소용돌이가 하늘로 치솟으며 땅이 뱀처럼 꾸물거리기 시작했어. 나는 흠칫 놀라 물러서서 소용돌이 사이를 서성거렸어. 마캉달은 등을 돌리고 짙은 잿바람 속으로 사라졌어. 아마도 나와 겹치지 않게 앨리로 가는 경로를 잡은 것이겠지, 나처럼 단백질 소모가 많은 먹깨비하고 다니다가는 언제 고기 신세가 될지 모를 테니까.     

 

*

 

“와! 이게 얼마만이야.”

 

마캉달이 내 팔뚝을 흔들며 반갑게 맞았어. 나 역시 활짝 웃으며 화답했어.  

 

“결국 우리 둘 다 앨리에 들어왔구나.”

 

나는 커넥터 앱을 대기 모드로 전환하고 마캉달과 못다 한 얘기를 나눴어. 

 

“네가 마지막에 챙겨준 고기가 아니었더라면 난 분명 굶어 죽었을 거야. 내가 좀 많이 먹잖아. 정말 간신히 앨리에 들어왔다니까.”

“나도 죽다 살았어. 치바팜이 앱에서 사라지니까 주술도 쓸 수 없게 된 거야. 단백질 부족으로 오도가도 못하고 죽어 가는데, 한 귀인이 내 가운데 콧구멍에 헬스포인트를 불어넣어서 살려냈지 뭐야.” 

“귀인?”

“응. 그분 얘기까지 하자면  길고, 아무튼 그분과의 인연으로 이 식당까지 열게 된 거야.”

 

마캉달이 가게 중앙으로 끌어다 놓은 매끈한 다비드상을 가리켰어.

 

“아! 이게 박제구이?”

 

마캉달은 뿌듯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어. 

 

“배양인육으로 각각의 부위를 프린트 한 다음에 정교하게 조립한 거야.”

“우와! 이거 정말 예술인데. 정말 사람을 잡아먹는 느낌이겠는 걸. 흐흐.”

 

순간 치바팜 생각이 나서 아차 싶었는데, 마캉달은 껄껄거리면서 말을 돌렸어. 

 

“이 정교한 작품을 로봇한테 배달시키기가 조금 께름칙해서 말이야. 바닥의 충격이나 탄성에 맞춰서 민감하게 자세를 바꿔가면서 움직여야 하는데, 로봇은 아직 그 감각이 부족한 것 같더라고. 일종의 모라벡의 역설이랄까.”

“음··· 이걸 통째로 가져가야 한다는 말이지. 그런데 이게 30kg이라고? 키가 못 돼도 170cm는 넘겠는 걸.”

“보기보다 가벼워, 실제 사람보다는 수분이 훨씬 적으니까. 속도 듬성듬성 비어있고. 그래도 짊어지고 가면 위험하니까 앞으로 비껴 안고 가야할 거야.”

 

나는 편하게 옮길 만한 자세를 가늠하면서 다비드상을 이리저리 훑었어. 그런데 이건 정말이지 너무나 매끈한 거야. 불현듯 궁금증이 일더군. 

 

“대체 어떻게 조립한 거야? 진짜 사람 몸처럼 이음새가 하나도 없잖아.”

 

내 물음에 마캉달은 눈을 지그시 감고 가운데 콧구멍을 보안모드로 벌름거리면서 다비드상 주위를 천천히 돌았어. 그러고는 희뿌연 눈으로 나를 향해 씨익 웃으며 이러는 거야.  

 

“그거 아주 좋은 질문이야. 하지만 그게 바로 비밀 레시피란 말씀.”

 

*

 

가게를 연지 한 달쯤 지나자 대표 메뉴가 자리를 잡았어. 가장 인기있는 부위는 다름 아닌 ‘얼굴’이었지. 완전 대박이었어. 사람들이 정말 뭣에 홀린 것처럼 미친 듯이 단백질 얼굴케이크를 시켜 먹더라니까. 처음에는 역사 속 인물이나 유명 가상인간처럼 잘 알려진 얼굴들로 시작했어. 그러다 실제 사람 연예인들까지 자기 얼굴케이크를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오더니만, 결국 맞춤형 얼굴 주문까지 받게 된 거야.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얼굴은 물론, 친구, 연인, 동료, 가족의 얼굴까지  주문해서 먹기 시작한 거라고.

 

너에게 나를 보낸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당신의 얼굴을 먹어 보아요!

이달의 얼굴에 100만 코인 지급.

···

 

쇼윈도는 아롱다롱 쓰인 이벤트 알림과 대롱대롱 매달린 각양각색의 얼굴들이 아기자기한 텃밭을 이루는 코티지 가든으로 꾸며졌어. 주문은 간단했어. 가게로 얼굴 사진이나 영상을 보내면 마캉달이 그걸 3D프린트 도면으로 바꿔서 단백질 케이크로 빚는 방식이야. 솔직히 난 이 얼굴 메뉴에 질색했지만, 아무튼 얼굴케이크 덕에 ‘단백질의 정원’은 로로의 대표적인 창작요리점으로 등극했고, 나는 ‘단백질의 정원’ 단골 커넥터가 될 수 있었지. 얼굴 배달은 아무한테 배달을 맡길 수 없거든. 배달하다 얼굴이 뭉그러지면 그건 그냥 떡갈비나 마찬가지니까.

 

딩동. 마음이 부릅니다. 심부름.

머리카락, 수염 - 오징어 먹물 알리오올리오

눈썹 - 밀어주세요

 

요즘 눈썹 밀어달라는 주문이 많네. 하긴 머리카락이나 수염 가니시는 파스타나 면요리지만, 눈썹은 실제 모발 세포로 배양한 거라 좀 징글맞긴 해. 한번은 마캉달에게 물었어.

 

“돼지고기에 난 털 같잖아. 진짜 눈썹을 꼭 써야하는 거야?”

 

마캉달이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하더군. 

 

“이런 게 정말 중요한 거야. 이런 디테일을 포기하기 시작하면 그냥 빵하고 다를 게 없게 되는 거라고.”

 

잘났다. 어련하시려고. 

 

*

 

혼자서는 절대로 얼굴 따위를 시켜먹지 않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할 때가 있지, 그것도 내 얼굴을. 바로 파찌와 있을 때야.

 

딩동. 마음이 부릅니다. 심부름.

맞춤형 얼굴케이크 - 30,000코인

추가 주문이 있습니다.

 

비밀번호가 걸린 추가 주문. 파찌가 나를 부르는 프라이빗 콜이야. 파찌는 내 얼굴과 함께 ‘나’ 그 자체를 배달시키는 그렇고 그런 단골이지. 

 

추가 주문 

프라이빗 커넥팅 2시간 : 14:00-16:00 - 300,000코인

 

심부름 AI는 파찌같은 프라이빗 고객에게 한 번에 두어 시간 단위로 내 시간을 팔아주고 수수료를 챙겨. 나는 심부름 AI로부터 내 시간 임대료와 내 몸 사용료와 내 얼굴 배달료를 받게 되지.

 

흡!

 

언제나처럼 가운데 콧구멍으로 수락 버튼을 누른 다음, 파찌가 좋아라하는 루즈핏 린넨 셔츠에 글렌체크 반바지를 받쳐 입고, 마캉달네 가게로 가서 내 얼굴을 받아다가, 부리나케 파찌네로 이동해. 벨을 누르자마자 문이 활짝 열렸어.

 

“어서오세요, 라이더님.”

“라이더가 아니라 커넥터라니까.”

“차이가 뭔데?”

“라이더는 탈것으로 배달하던 시절에나 쓰던 말이야. 지금 난 아무 것도 타지 않고 두 발로 걸어서 왔잖아. 이게 바로 커넥터라는 거지.”

 

가만, 그런데 어찌 보면 이 여자한테 배달한 나의 몸통은 나의 팔다리를 타고 왔으니 라이더라고도 할 수도 있는 거 아닐까? 내 말이나 생각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파찌는 아랑곳없이 몸을 배배 꼬면서 고객다운 소신을 펼쳤어.

 

“그래도 난 라이더가 좋아. 내 프라이빗 라이더. 뭔가 밀착된 느낌이랄까. 서로 올라타는 탈것의 느낌이 꽤 매력적이지 않아?”

 

잘났다. 어련하시려고.

 

흐드러지게 일을 벌인 다음에는 단백질을 보충해야 해. 파찌는 테이블에 뜨끈뜨끈한 내 얼굴을 꺼내 놓고 정수리부터 반으로 가른 다음 뺨부터 턱까지 빵처럼 야금야금 뜯어먹기 시작했어. 그러다 한쪽 귀를 북 뜯어서 내게 건네며 새침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러지 않겠어. 

 

“벌이야, 오늘은 이것만 먹어. 더 먹고 싶으면 앞으로 제대로 해야 할 거야.”

 

그러고는 정말 자기 혼자서 내 얼굴을 와구와구 집어삼키는 거야. 파찌의 모습은 뭐랄까, 교미를 마치자마자 수컷의 머리부터 게걸스럽게 뜯어먹는 암컷 사마귀? 이 잡아 먹히는 기분은 무엇? 나 원, 드러워서. 내 얼굴도 내 맘대로 못먹게 하다니. 이제 그만 만나야 하나? 그런데 생각해 보자, 내가 과연 파찌의 주문에 거절 버튼을 누를 수 있을 것인가? 시간당 15,000코인 넘기 힘든 세상에, 파찌는 내가 그 짓만 잘해주면 시간당 몇십만 코인씩 슴풍슴풍 던져 주잖아. 개뿔도 없는 치바팜 노예 출신이 앨리에서 먹고 살려면 제일 값나가는 걸 팔아야 하지 않겠어. 역시 거절은 무리야. 차라리 파찌를 구워삶아서 좀 더 편하고 비싸게, 보다 인간적으로 일하는 게 최선이야.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하고 내 귀를 받아 깨작깨작 씹으면서 속으로 말했지. 그런데 정말 돈만 주면 다야? 내가 무슨 바이브레이터도 아니고,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싸질렀으면 씨발 밥은 먹여야 할 거 아냐.

 

*

 

뚝뚝 떨어지는 코인과 헬스포인트를 확인할 때마다 내 몸의 단백질 구조가 붕괴되어 맵에서 삭제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어쩔 땐 차라리 치바팜 노예 시절이 그립기까지 하다니까. 노예 시절 기억이라는 건 말이야, 온몸의 수분이 증발하면서 목젖이 쫄아들고 가운데 콧구멍이 턱 막히는데도 감독관 눈치를 보며 찍소리 못하고 몸을 놀려야만 했던 감각이야. 그래도 그때는 적어도 먹고 자는 걱정은 안 했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코인 같은 걸 모으지 않아도, 정해진 식사 시간과 취침 시간이 돌아오기 마련이었니까. 감독관에 복종하고, 농장주에 충성하고, 마음대로 나다닐 수 없는 대가로 얻은 안정감 같은 게 있었다고. 그런데 이제는 내가 알아서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해. 앨리에 왔을 때 제일 이상했던 게 뭔 줄 알아? 누가 패지도 않는데도 사람들이 너무나 열심히 일을 한다는 거야. 이젠 나도 똑같아졌지 뭐. 심부름 AI가 치바팜 감독관처럼 욕지거릴 해, 때리길 해. 그런데도 나는 이렇게 자발적으로 발목이 나가도록 죽어라 뛰어다니고 있잖아. 젠장, 자유의 대가로 불안감을 얻은 것이야.

 

딩동. 마음이 부릅니다. 심부름.

커넥터님의 로로구 배치가 1년 연장되었습니다.

 

야호! 이것 봐, 역시 심부름 AI야. 정말 다행이지 뭐야. 삼위의 칙령을 받은 AI들은 대체로 냉정하잖아. 특히나  급속진화 알고리즘은 냉혹하리만큼 단순하다고. 그놈들은 반경 2킬로미터 내의 인구가 50명만 넘으면 가차없이 농장을 맵에서 삭제하고 노예를 해방시켜. 인구밀도 50명 이상의 마을에서는 노예들의 주거비와 식비를 부담하느니 자유 노동자로 풀어주고 임금을 지급하는 게 더 싸게 먹히거든. 27번 가상계의 거의 모든 알고리즘은 보다 효율적으로 비트와 단백질을 생산하도록 짜여졌어. 그에 비하면 심부름 AI는 얼마나 유도리가 있어, 반경 2킬로미터의 로로가 30만 명의 인구와 1천 개의 식당과 1만 명의 커넥터로 넘쳐나는데도 노동자를 해방시키지도, 맵에서 삭제하지도 않잖아. 아직 다음 단계가 없어서 그런 건가?

 

*

 

난 파찌를 만족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했어. 그건 본질적으로 치바팜에서 내가 했던 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일의 목적은 헬스포인트를 채우고, 그럼으로 해서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감각을 자극시키기 위해서야. 만족감을 대가로 만족감을 주는 거지. 문제는 웬만해서는 파찌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거야. 파찌가 처음은 아냐, 환락의 로로는 파찌처럼 애초에 멈출 수 없는 고객들로 그득하다는 걸 알아. 결국 파찌도 다른 고객들처럼 로봇섹스나 증강섹스로 넘어가겠지. 가상계의 급속진화라는 게 원래 그래. 시뮬레이션 퀄리티가 리얼을 넘어서면 욕망은 시뮬레이션에 맞춰져. 그리고 시뮬레이션이 리얼로 간주되는 거야. 파찌처럼 맛과 멋의 감각이 끝을 모르고 높아지는 거지. 사람들이 증강섹스나 배양인육에 열광하는 이유라고 봐. 가상계가 계속 늘어나고 물리지구같은 리얼월드가 도태되어서 가상계로 편입된 이유이기도 하고. 무엇이 리얼이냐는 결국 인식의 문제니까. 그리고 지금 당장 인식의 문제는 내 배달가방에 든 얼굴이 점점 무거워진다는 거야.

 

“얼굴 퀄리티를 높이려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네. 단백질하고 수분이 좀 늘었거든. 어떻게, 배달비 좀 올려 드릴까?”

 

마캉달이 진열대에 놓인 내 얼굴 하나를 빼오면서 방긋거렸어. 나는 진열대의 얼굴들을 유심히 들여다봤어. 

 

“배달비 얘기가 아니라, 이 얼굴들이 좀···”

 

확실히 얼굴들 퀄리티가 눈에 띄게 달라졌어. 뭘 어떻게 쓴 건지 살아있는 얼굴처럼 혈색이 돌고 눈빛이 생생했어. 그때 가게 안에 심부름 메시지가 울렸어.

 

딩동. 마음이 부릅니다. 심부름.

 

“어, 너네 형한테 뭐 왔다.”

 

마캉달이 주문대 모니터를 내려다보면서 말했어. 나도 콜을 확인했어. 제길, 마캉달네에서 노닥거리는 사이에 프라이빗 모드의 심부름 AI로부터 재촉콜 하나가 들어와 있었던 거야. 

 

프라이빗 배달 지연 시간이 15분을  넘었습니다.

지금부터 지연 15분마다 남은 배달료의 10%가 차감됩니다.

1차 지연 차감 : 30,000코인

프라이빗 모드에서 지연 시간이 통계 범위를 넘을 경우 배차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 짜증나. 이 포주 같은 새끼. 아니, 포주 같은 게 아니라 포주 그 자체지. 내 스케줄을 관리하고, 닥달하고, 마음대로 벗어날 수도 없고. 마캉달이 심부름 AI를 ‘너네 형’이라고 부를 때마다 진짜 형 같은 기분이 든다니까.

 

“빨리 가. 너네 형한테 혼날라. 크크.”

 

킥킥거리는 마캉달을 뒤로 하고 내 얼굴을 주섬주섬 싸들고 가게 문을 나섰어. 늘어난 얼굴 무게로 배달가방이 축 늘어졌어. 프라이빗 모드의 거절 버튼은 이미 비활성 상태였어. 가운데 콧구멍으로 한숨을 푹 쉬어 이번 주 운행시간을  불러왔어. 

 

운행시간 : 31시간 38분 / 40시간

잔여 운행시간 : 8시간 22분

 

다음은 이번 주 정산내역.

 

3,400코인

5,400코인

2,900코인

···

 

운행시간이 줄어든 만큼 코인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어.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또 다른 커넥터를 부를 수 있는 만큼의 숫자들이야. 헬스포인트를 소비해서 얻은 코인들로 다시 헬스포인트를 충전하는 꼴이라니. 잉여 코인을 다른 커넥터에 주고 내 단백질을 채우고 있는 거잖아. 그냥 모두가 자기 헬스포인트만으로 살다 죽을 수는 없단 말인가? 그런데 코인과 운행시간. 그러니까 노동과 시간. 둘 중에 어떤 숫자가 내 헬스포인트에 도움이 되는 숫자란 말인가? 나는 그 정체불명의 숫자들을 찬찬히 톺아보면서 털레털레 파찌네로 향했어.

 

딩동. 마음이 부릅니다. 심부름.

프라이빗 배달 지연 시간이 30분을  넘었습니다.

2차 지연 차감 : 27,000코인

1차 지연 차감 : 30,000코인

지연 차감 합계 : 57,000코인

 

그래, 지금 간다 가. 내가 씨발 어딜 가겠어. 뛰어 봤자 플랫폼이지.

 

*

 

파찌네 침실 벽에 내 얼굴이 떡하니 걸려 있었어. 

 

“으 씨발, 저게 뭐야?”

“보면 몰라? 자기 얼굴이잖아.” 

“아니 왜 저딴 걸 저기다 걸어 놓은 건데”

“요즘 유행이잖아. 뭐 일종의 기념사진? 저걸 보면 왠지 기분이···”

“기분이 뭐?”

“하이해져.”

 

하이해진다··· 그래, 우리 고객님 기분이 하이해지신다면 뭐 걸어 놔야지.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 헌팅트로피처럼 벽에 걸린 내 얼굴을 넋 놓고 올려다보는데, 갑자기 파찌가 내 엉덩이를 빵 걷어찼어. 

 

“야! 우리 이럴 시간 없어. 지금 자기네 서방한테 알람 왔잖아, 시간 얼마 안 남았다고.”

 

파찌는 가운데 콧구멍을 훌쩍여서 심부름 AI한테서 날아온 알람 메시지를 나에게 보냈어.

 

커넥터 사정으로 결제하신 시간이 불가피하게 단축되었습니다.

커넥터의 일정상 시간 연장은 불가하오니, 양해바랍니다.

심부름 프라이빗 콜 규정에 따라 결제 금액의 70%를 환불해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아차, AI 추천으로 1시간짜리 프라이빗 콜 두 개를 더 잡았었지.

 

“아무리 시간이 돈이라지만, 자기네 서방 너무 빡빡하게 돌리는 거 아냐? 다음 콜 취소할 수 없어?”

 

파찌가 눈을 흘기며 입을 삐쭉였어.

 

“미안, 프라이빗은 취소하기 힘들어, 패널티가 좀 세서···. 대신 오늘은 내가 정말 잘 할게.”

 

파찌를 달래가며 그 어느 때보다 몸의 동작들에 집중했어. 파찌의 몸이 너울거리기 시작했어. 나는 파찌와 리듬을 맞춰가며 온전히 몸으로만 몰입하려는 척, 베개에 고개를 파묻고 가운데 콧구멍으로 숨을 몰아쉬면서, 파찌 몰래 다음 경로와 고객 요청사항을 확인했어.

 

다음 픽업까지 1분 남음.

···

커넥터님께 : 조심히 안전하게 와주세요 :)

 

도무지 취향을 알 수 없는 심부름의 디폴트 메시지뿐. 제길, 이 페이스대로라면 배달이 밀릴 수밖에 없어. 프라이빗은 첫인상인데. 연락이라도 되면 사정을 설명하거나 선물 같은 인간적인 서비스로 무마할 수도 있을 텐데. 프라이빗 모드에서 고객과 커넥터는 절대로 직접 연락할 수 없어. 무조건 심부름 AI를 거쳐야 해. 인간적인 일에서 인간적인 관계를 최대한 배제하는 것, 그게 바로 포주가 하는 일이잖아. 어쩔 수 없지, 여길 최대한 빨리 끝내고 또 뛰는 수밖에. 나는 베개에 코를 박고 더더욱 격렬하게 엉덩이를 들썩였어.

 

픽업 예정 0분 지남.

픽업 예정 1분 지남.

픽업 예정 2분 지남.

···

 

키드득.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비어져 나왔어. 무언가 뒤통수가 간지러운 느낌. 나는 누워있는 파찌를 봤어. 파찌는 입을 틀어막고 키득거리고 있었어. 

 

“왜···”

 

파찌는 웃음보를 빵 터뜨리며 침대 위를 가리켰어. 고개를 들어보니 벽에 걸린 내 얼굴이 나를 빤히 내려다보며 히쭉거리고 있었어.

 

“헉!”

 

벽에 걸린 얼굴은 개구진 표정을 머금은 채 눈알을 굴리며 딴청을 부렸어.

 

“뭐야, 저거 살아있는 거야?”

 

파찌는 스르르 몸을 빼며 손사래를 쳤어.

 

“오늘은 안되겠다. 너 지금 너무 급하잖아.”

“아니 그런데, 저거 지금도 눈동자가 돌아가는 것 같은데. 저 봐봐. 지금은 웃는데. 아까 웃는 소리도 들렸다고.”

“그건 내 목소리야. 저건 소리를 제대로 못 내, 아직 얼굴 밖에 없어서.”

“아직?”

“응. 발성기관이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며칠 더 걸린대. 그러면 서로 얘기를 주고 받을 수도 있겠지?”

 

파찌는 설레는 표정으로 얼굴을 올려다보며 싱글거렸어. 얼굴은 나를 내려다보며 기분나쁜 미소를 지었어. 쉐에쉐에 바람빠지는 소리가 났어.   

 

“저거 당장 갖다 버려.”

“싫어. 저거 나름 돈 많이 들인거야. 벽까지 뚫었다고.”

“뭐, 벽을 뚫어?”

 

파찌가 궁금하면 보란 듯이 옆방을 가리켰어. 옆방으로 가 보니 정말로 얼굴 아랫부분이 벽을 뚫고 걸려있는 거 아니겠어. 저건 대체··· 뻘겋고 뭉글뭉글한 고깃덩어리가 브로콜리 모양으로 뭉쳐있는 거야. 

 

“와, 벌써 이만큼 자랐네.”

 

파찌는 벽 아래 놓인 화초 분무기를 집어서 고깃덩어리에다 칙칙 뿌렸어.

 

“이렇게 골고루 성장제를 뿌려주면 줄기하고 가지가 아래로 조금씩 자란대. 얘 완전 편리해. 먹을 거 없이도 잘 자라고, 그것도 잘한다. 히히.”

 

파찌는 혀를 날름 내밀어 입맛을 다셨어.

 

“뭐야, 이 고깃덩이랑 그짓까지 한다고?”

“응, 점점 더 잘하는 것 같아. 얘 되게 빨리 배워.”

 

나는 뜨악하게 굳어서 파찌를 쳐다봤어.

  

“뭐 어때. 어차피 그냥 고깃덩이라며. 화난 건 아니지?”

 

우리 대화를 엿들으면서 웃는 건지 고깃덩어리가 위아래로 꿈틀거렸어. 그러더니 덩어리 한쪽이 뽀글거리며 망울 같은 게 부풀어 오르는 거야. 으아, 뻘건 브로콜리에 따개비 같은 살점이 송이송이 돋아나고 있었어. 

 

“아직은 소화기관이 없어서 이렇게 성장제로 키우지만, 다 자라면 음식도 먹을 수 있을 거래. 그러면 얼굴케이크를 시켜 줘야지.”

 

파찌는 흐믓한 표정으로 고깃덩어리를 팡팡 도닥였어. 그러고는 내게 쌩한 목소리로 말했지.

 

“빨리 가, 다음 배달 늦었다며.”

 

*

 

패널티를 감수하고 배달 두 개를 취소한 다음, 한달음에 마캉달네 가게로 쳐들어갔어.

 

“봤구나.”

 

마캉달은 헉헉대는 내게 손짓을 하며 앞장을 섰어. 나는 마캉달을 따라 가게 지하로 향했어.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갈수록 으스스한 한기가 더해졌어. 층계참에 이르자 마캉달이 고개를 돌려 희뿌연 눈빛을 건넸어.

 

“발밑 조심해.”

 

층계참 아래는 사방을 가늠할 수 없는 암흑이었어. 바닥은 갯벌처럼 미끄덩해서 발을 딛을 때마다 참방거렸어.

 

“으 추워. 여기가 어디야?”

 

나는 목을 오싹 움츠린 채 눈으로만 두리번거렸어. 마캉달이 무언가를 당기자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틈이 벌어졌어. 어슴푸레한 마캉달의 뒤를 따라 틈 사이로 들어가자 안팎의 경계를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속으로부터 새들의 지저귐 같은 게 자글자글 들끓어 올랐어. 

 

지이잉.

 

마캉달이 무언가를 건드리자 암흑 여기저기서 찰나의 광파들이 무작위로 번쩍였어. 빛을 머금은 희붐한 공간의 결 사이사이로 괴이한 색채와 윤곽들이 번득거렸어.

 

나무? 꽃?

 

빛이 사방으로 풀어지면서 시야가 트였어.

 

“저건···”

 

얼굴들이었어. 어른 키 높이의 지지대 위에 놓인 수십 개의 얼굴들이 이 열로 마주보고 재잘거리고 있었던 거야. 

 

“얼굴들이··· 말을···”

“배양인간들이야. 배양인육에서 배양했지.”

 

몸통은 제각각이었어. 파찌네서 봤던 내 얼굴처럼 브로콜리 단계가 제일 많았어. 그 다음은 팔다리처럼 보이는 흐물흐물한 선홍빛의 단백질 줄기들이 넝쿨처럼 지지대를 칭칭 휘감고 내려오는 단계. 개중에 몇은 거의 완성된 발로 땅을 딛고 팔이 자라길 기다리며 꿈틀대고 있었어. 모두 살아 있었고, 어딘가가 자라나고 있었어. 그곳은 말 그대로 ‘단백질의 정원’이었어. 

 

“세포에서 배양한 배양인육으로 얼굴을 조립하고, 얼굴에서 몸이 자라도록 한 거야. 위에서 아래로, 중력의 방향으로, 식물과는 반대 방향으로 자라는 거야, 얼굴이 뿌리인 셈이지. 이렇게 하면 별도의 화분 없이도 독립형으로 어디든 옮겨서 키울 수 있어.”

 

정원 중간쯤에 이르자 마캉달을 발견한 배양인간 몇몇이 지지대에 걸쳐진 얼굴을 격하게 들썩이기 시작했어. 몸통 아래로 막 돋아난 허벅지가 허공에서 버둥거렸어. 

 

“알았다, 알았어. 그만 칭얼대, 이것들아.”

 

마캉달은 나긋한 목소리로 달래가면서 그것들의 몽실몽실한 허벅지에 성장제를 칙칙 뿌려줬어. 버둥거림이 잦아들면서 얼굴들이 편안한 표정으로 까무룩 눈을 감았어.

 

“도대체 이런 걸 왜 키우는 거야?”

 

마캉달은 얼굴들을 살피면서 답했어. 

 

“내가 앨리로 들어오다 귀인을 만났다고 했지?”

“응.”

“그 귀인은 구세주였어.”

“구세주? 비트의 성인?”

 

마캉달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 얼굴에게 다가가 삐져나온 잔가지를 똑똑 꺾기 시작했어.

 

“그분 덕에 나는 죽다 살아났어. 우리는 앨리까지 동행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지, 특히 이 27번 가상계의 미래에 관해서.”

 

마캉달이 잔가지를 꺾을 때마다 연결된 얼굴의 입이 쩍하고 벌어지면서 끔찍하게 일그러졌어. 하지만 흉부가 없는 발성기관에서 나는 비명이라고는 나지막히 우아우아 웅얼거리는 게 다였어. 마캉달은 무덤덤히 가지를 오독오독 분지르면서 말을 이었어.

 

“27번 가상계는 물리지구와는 별개의 독자적인 가상의 좌표계를 근간으로 해. 물리지구의 뉴턴 식으로 말하자면 가속도는 시간의 변화에 따른 속도의 변화야.”

 

들어 본 것 같다. 가속도=속도 변화/시간 변화 

 

“이 가상의 좌표계에서 결국 우주 공간이라는 건 시간과 위치 변화의 알고리즘이야. 그래서 커넥터들의 위치와 속도를 알면 단백질이 배달되는 시간을 알 수 있는 거지.”

 

그래, 그래서 내가 항상 시간에 쪼임을 당하지.

 

“구세주는 여기에 한 차원을 더했어. 바로 단백질이야.”

 

단백질?

 

“시간과 위치의 변화에 따른 단백질 비트의 배양속도를 계산하는 방식이야. 앞으로는 심부름 AI가 커넥터의 위치와 시간 뿐만이 아니라, 단백질이 자라나는 시간과 위치까지 학습하게 되는 거야.”

“뭐하러?”

“확장이야. 주문하고 먹을 사람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거지.”

“확장?”

“고기에서 사람이 자라나고, 그것들이 또다시 단백질의 소비자가 되고, 소비자들의 세포가 또 다른 고기의 씨앗이 되는 거야.” 

“그렇다면 이 얼굴들은···”

“고기로 먹히거나 고기를 먹는 소비자가 되겠지, 너처럼 커넥터가 될 수도 있고. 맛도 좋고 일도 잘해. 같은 얼굴 여러 개를 배양해서 복제인간으로 쓸 수도 있고. 그러니까 이건 고기가 아니라 나무인 거야, 단백질 나무.”

 

마캉달이 얼굴의 어깻죽지로 이어진 굵은 가지 하나를 우두둑 부러트렸어. 얼굴은 세차게 도리질하며 눈물을 쏟았어. 마캉달을 쏘아보며 하악질을 했지만 공기의 진동은 미미했어. 마캉달은 부러진 가지를 다듬어 가며 성장제를 뿌렸어.

 

“구세주는 인간의 번식 방식을 바꾸기로 한 거야, 유성생식에서 배양으로. 이렇게 세포로 만든 배양육에서 무성의 인간을 배양하면 버려지는 세포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잉여 단백질을 줄여서 잉여 존재를 최소화 하는 거야. 게다가 이것들은 모두 합성 단백질이야. 비트의 성위 구세주는 2억여 개의 단백질이 결합할 수 있는 거의 무한 개의 결합 방식 중에서 열역학적으로 가장 안정된 단 하나의 단백질 구조를 뽑아 낼 수 있어. 그 결합이 계속 일어나면서 몸이 자라나는 거야. 완벽한 인간들을 무수히 생산하는 거지. 단백질 확장을 위한 완벽한 선순환이야. 프로틴 그린 에코 시스템이랄까.”

 

한마디로 인간으로부터 고기를 만들고, 그 고기로부터 그걸 소비할 인간을 만든다는 거였어. 매끈하게 다듬어진 얼굴의 어깻죽지가 부글거리면서 송알송알 새 살이 돋아나고 있었어. 마캉달이 기진맥진에 눈물범벅으로 엉망이 된 얼굴의 양 뺨을 슥슥 훔쳐내면서 말했어.

 

“알잖아, 이 또한 급속진화의 한 과정이야. 구세주가 물리지구와는 또 다른 진화의 방향을 잡은 거지. 물리지구가 겪었던 자본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자는 거야.”

 

딩동. 마음이 부릅니다. 심부름.

단백질의 정원 : 맞춤형 얼굴케이크 : 30,000코인

 

파찌네로 가는 주문이야. 그런데 고객 요청사항을 보니 프라이빗 콜이 아닌 것 같네.

 

커넥터님께 : 벨 누르지 말고 문 앞에 두고 가세요.

 

파찌는 어떤 얼굴을 시켰을까? 얼마 전에 가게랑 계약했다는 아이돌 얼굴? 가상인간? 일반 커넥터 콜을 받은 나야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 얼굴은 아닐 거야. 내 얼굴은 이미 파찌네 방에서 나보다 더 완벽한 나의 모습으로 자라나고 있을 테니까.

 

흠.

 

나는 얕은 숨을 내쉬어 거절 버튼을 누르고 돌아서서 정원을 나왔어.

 

*

 

“죄송합니다. 먼저 갈게요.” 

 

배달로봇처럼 친절한 멘트를 날리며 맞은 편에서 커넥터 하나가 쌩하고 나를 스쳐 지나갔어. 커넥터는 내 얼굴을 하고 있었어. 요즘 내 얼굴들이 자주 보여. 나뿐만이 아냐. 많은 이들이 누군가와 꼭 닮은 얼굴들을 키워. 고객을 닮은 고객들이 사람고기를 더 시키고, 커넥터를 닮은 커넥터들이 사람고기를 더 배달하고, 작가를 닮은 작가들이 더 많은 글을 쓰고, 연예인을 닮은 연예인들이 더 많은 콘텐츠에 출연하고,  정치인들을 닮은 정치인들이 더 많은 뉴스를 퍼뜨리고, 지지자를 닮은 지지자들이 더 많은 댓글을 달고, 환자를 닮은 환자들이 더 많이 병에 걸리고, 의사를 닮은 의사들이 더 많은 환자를 받지. 닮은 얼굴이 늘어난만큼 닮은 소비와 닮은 생산이 끝없이 늘어나는 거야.

 

딩동. 마음이 부릅니다. 심부름.

 

누군가의 얼굴을 전달하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려는데 또 다른 커넥터가 헐레벌떡 달려와서 엘리베이터를 잡았어.

 

“고맙습니다.”

 

이번에도 내 얼굴이야. 나보다 크고 비율도 잘 빠졌어.

 

딩동. 마음이 부릅니다. 심부름.

 

가운데 콧구멍을 열었어. 배차 메시지에서 흰독말풀 달인 내가 났어.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내 옆에 선 내 얼굴을 흘끔거리며 계속 되뇌었어. 여긴 가상계고 난 캐릭터다. 여긴 가상계고 난 캐릭터다··· 여긴 물리지구를 본뜬 27번 가상계고, 어쩌면 물리지구 역시 어딘가의 가상계의 가상계일지도 몰라. 나는 그 가상계의 가상계의 가상계의 캐릭터고 나노봇이야. 난 지금 잠깐 나노봇 퀘스트를 수행하는 거야, 심부름 AI에 경로 데이터를 제공하는 단백질 역할인 거지. 내 본체는 분명 따로 존재할 거야. 지금 내 가운데 콧구멍으로 전해지는 픽업송도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야.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을 친다. 역시 음악은 물리지구라니까.

 

물리지구의 음악 3

 

딩동. 마음이 부릅니다. 심부름.

 

또 다른 콜이야. 확실히 요즘 들어 콜 수가 늘어난 느낌이야. 이상한 건 30분 걸리던 배달 시간이 20분, 10분, 5분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거야. 내가 빨라진 게 아냐. 시간이 늘어나고 있어. 마캉달이 그랬어, 가상계의 단백질량이 늘수록 단백질 비트의 중력으로 가상계 공간이 휘고 시간이 늘어난다고. 앨리시티가 5배속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하루가 닷새로 늘어난 거라고. 하루에 15끼를 먹고, 물건도 5배가 필요한 세상이 되었으니 단백질도 5배로 늘어난 것이라고. 앨리는 비오톱이야. 아주 빨리 변하지. 도시에는 단백질 나무가 자라고, 새 생명이 피어나고, 시간은 점점 늘어나는 비오톱. 

 

딩동. 마음이 부릅니다. 심부름.

 

단백질이야말로 플랫폼이야. 존재의 플랫폼. 세포에서 조직으로, 조직에서 기관으로, 기관에서 개체로. 우리는 DNA라는 코드로 짜여진 단백질 플랫폼에서 벗어날 수 없어. 

 

딩동. 마음이 부릅니다. 심부름.

 

그래, 9층 버튼을 누르면 9층에 내리게 돼. 결국 현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짜여졌어. 너나 내가 어딜 가겠어. 소비자든 노동자든 매한가지야. 뛰어 봤자 플랫폼이지.


 

O.S.T. - 뛰어 봤자 플랫폼


 

댓글 2
  • No Profile
    전기장판 21.06.23 13:57 댓글

    소울샘플님의 글은 항상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그저 현실을 비유한 것 처럼 보인'다는 누군가의 평은 와닿지 않습니다.

    그 비유가 오히려 글의 힘이니까요. 

    더구나 그 누군가가 파악한 현실과 위 글이 비유한 현실이 같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불만이 있다면 그 현실을 드러내는 방식이 너무 급작스럽다는 겁니다.  파찌의 등장이 그렇듯이요. 

    내 얼굴을 한 커넥터들이 그렇듯 어쩌면 너무 노골적이고요.

    취향의 문제를 괜히 왈가왈부했습니다. 

    소울샘플님 글은 독창적이고, 재미있으며, 문장과 그 문장이 만드는 장면은 이미 경지라는 말을 하고싶었는데요.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전기장판님께
    No Profile
    글쓴이 소울샘플 21.07.04 10:23 댓글

    재밌게 읽으셨다니 기쁘고 힘이 납니다.
    단편초보라 아직은 이런저런 고민이 많아요.
    좋은 말씀, 응원, 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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