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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다 죽어버려 1

2021.03.14 02:2903.14

"내가 다 죽일 거야."

 

A는 그렇게 말하곤 하였다.

 

내가 다 죽이고 다닐 거야!

 

큰 소리로 노래를 하듯 온 거리와 병원, 학교로 쉴틈없이 지껄이는 A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고개를 저어도 보았다. 그가 나를 돌아보지만 금방 고개를 돌리고는 소리치고 다닌다. 그 애는 대체 무엇을 죽인다는 걸까.

 

"전부 다."

 

학교가 끝마치고 그 애를 불러다 물었고 그 애는 저런 대답을 하였다. 내가 어찌 할 수 있을까. 저렇게 자유분방한 아이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반과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은 그 애를 보고 무심한 얼굴로 대하였다. 그러든 말든. 무엇을 말하든. 마치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만약 그가 걱정된다면 그건 가식일까.

 

"물론 허식이지."

 

둥근 몸을 말며 노란 꼬리를 혀로 핥는 야옹이 씨가 태연하게 답하였다. 걱정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야옹이 씨는 그런 나를 웃고 있지만 걱정이 담긴 눈으로 짚어주었다.

 

"네가 걱정하는 게 정말 그 아이냐~옹?"

 

물론이다. 그런 해괴한 말을 하고 다니면 아무도 돌아봐 주지 않는 걸. 참고로 내 말은.....

 

"안다옹, 알아."

 

야옹이 씨가 노란 점박이 몸을 비틀며 기지개를 핀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그런 흔해빠진 이야기가 아니란 거."

 

야옹이 씨를 따라 등허리를 피고 크게 하품을 하였다. 야옹이 씨가 나를 보고는 내 머리 옆으로 나는 나비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 아이가 걱정스러운게 아니라옹."

"그 애가 저지르게 될 걸 걱정하는게..."

 

나비가 위로 날아오른다. 야옹이 씨는 때를 놓치지 않고 뒷발을 크게 치켜든다. 그가 날으며 앞발을 뻗지만.

 

"야옹!"

 

잡지 못한다. 바닥으로 데구르르 구른 야옹이 씨의 빈 앞발이 나를 향하여 주억거린다. 언제나의 그 무사태평한 얼굴을 한 채로 얼버무린다.

 

"아니냐옹?"

 

내가 걱정하는 것. 빈 하늘이 지난다. 내가 불안해 하는 것.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내가 취하고 노리고 있는 것. 빙 앞발을 장난치듯 휘적이는 그에게 길가로 뜯은 강아지풀을 쥐어주었다. 그래. 그래.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다.

 

 

 

 

"내가 다 죽일 거야!"

 

언제나의 목소리. A라 하면 모두가 아는 그 목소리. 얇고 허공에 뜬, 어딘가 아니, 무척이나 가벼운 목소리. 나는 즐겁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복도를 가로지르는 그 애를 붙잡아 화장실로 끌고 갔다.

 

"변태."

 

음흉한 미소로 나를 보는 A. 나는 장난칠 시간이 없다. 정말 그 애가 뭔 짓거리를 하면 난 미쳐 돌아버릴 테니까. 나는 가장 먼저 물어봐야할 것들을 물었다.

 

"어떻게 죽이느냐고?"

 

그래. 네가 그렇게 떠벌거리며 자신있어 하는 죽음이라는 게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 참으로 궁금하단다. 저기 있는 모두를 죽이려면 적어도 커다란 폭탄 같은 게 있어야 하지 않겠니.

 

"음....."

 

고민하는 얼굴. 면전에 대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참으로 어설픈 연기이다. 고민하는 척을 사람들은 왜 하는 걸까. 안다면 불면 되는 것이고, 모른다면 잡아떼면 될 것을.

 

"그냥 소원만 빌면 되는데."

 

........

 

"대단한 건 없어."

"그냥 신께 기도 드리는 거야."

"나에게 힘을 주세요, 하고 말이야."

 

그래서 그 다음은?

 

"끝!"

 

아.

 

"됐지?"

 

유유히 화장실을 빠져나가 복도를 다시 가로지르는 A. 저애가 무슨 잘못이 있을까. 혹여 하는 망상이나 찝쩍거리고 혹시하는 꿈이나 우물거렸던 내가 바보이지. 참으로 화가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참으로, 참으로.

 

"병신!"

 

복도를 통과하는 새된 비명. 공허한 어딘가 아니, 무척이나 가벼운 그 공기 빠지는 목소리. 그 비명은 거대한 남자아이의 주먹으로 가려져 무척이나 서글프게 울고 있었다.

 

"뭘 죽여, 우릴 죽인다고?"

"이 새끼 완전 장애인아냐!"

 

와하하하. 웃음들. 복도 한 가운데로 넘어져 훌쩍이는 A를 둘러싼 이들이 다 함께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와하하하. 와하하하. 와하하하.

 

기분 좋게. 하늘을 날아갈 듯이. 언제고 어른들이 발갛게 취해 노래를 부르는 그 비틀거리는 걸음처럼. 어딘가로 가버려 사라져 버릴 것마냥.

 

와하하하하.

 

나는 아이들 사이를 비집어 바닥에 넘어져 울고 있는 그 애를 잡아 일으켰다. 복도에서 그 애를, A를 끌고 나오면서 까지도 나는 알 수 없게, 아주 모르게 울분을 삼키고 있었다. 왜 화가 나는 거지?

 

"악!"

 

그 애를 잡고 바닥으로 넘어뜨렸다. 병신같은 짓이 마음에 안 들었나. 어쩌면 그 애들처럼 이 A가 거슬렸던 걸까. 그 애의 배를 올라타 목을 졸랐다. 너는 대체 왜 그렇게 즐거운 듯이 말하는 거지. 대체 무슨 이유로 노닐며 그런 속된 말을 지껄이는 거지. 나는 토하듯 소리 질렀다.

 

"그 씨발 병신 같은 말 그만하고 말해!"

 

억하고 숨이 끊어질 듯 토하고 또 토했다.

 

"어떻게 죽인다는 거야, 말해!"

 

거품. 엄지로 하얀 침 거품이 몽글몽글 맺혀 간지러웠다. 나는 놀라 손을 거두고 몸을 일으켰다. A는 거칠게 콜록거리며 버둥거렸다. 순간 겁이 났지만 -겁이 나서도 안되었는데- 그 애는 금방 몸을 일으켜 나를 마주 보았다. 즐거운 듯이 지껄이는 멍청한 얼굴이 사라지고 공허한 무언가만이 남아 있었다.

 

"이게 내 이야기야."

 

A는 그렇게 말을 맺었다.

 

 

 

나는 행복하고 즐거운 가정에서 태어났어. 정말 따사롭고 그림에 그린듯한 가정에서 말이야.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그 검은 개를 만났지. 검은 개는 한시도 쉬지 않고 날 쫓아왔어. 지금도 내 곁에 있어. 크지 않지만 밤만 되면 온 세상을 덮을 듯 내 눈앞을 가린단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었어. 분명 행복하고 즐거운데. 분명 만족하며 살고 있었는데. 나만 이렇게 되 버린거야. 그 날 이후로 난 아주 작은 먼지가 되었단다. 아주 작은 장난감이 되었어. 아주 작은 음표나 글씨가 되기도 했단다. 그러고서 아이도 없이, 악보도 없이, 종이도 없이, 날 받을 무언가도 없이 그렇게 지내온게 다야.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서 내가 무슨 말을 해야할까. 참으로, 참으로. A가 다시 미소를 짓는다.

 

하.

 

그래 그 애들이 이야기했지.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이나 지껄이고 있었다고.

 

"병신."

 

학교 뒷편에서 나와 교정을 걸으며 손톱을 잘근 씹었다. 결국 얻어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정말 없었나옹?"

 

그래요, 아무것도 없었죠.

 

"참 실망했겠구나옹."

 

별로.

 

"그러냐옹?"

 

기대도 안했다. 입에 발린 것이라고 멋대로 지껄이는 녀석에게 무언가를 바라다니. 혹여나 했는데. 바보가 된 것은, 그 병신이 된 것은 다름아닌 나 자신이었다. 골목에서 강아지풀로 야옹이 씨를 간질이고 있었다.

 

빠앙-!

 

트럭 한 대와 경적소리. 빗발치는 빛과 멀리 한쪽 팔을 뻗는 A. 차들이 지나는 보도로 빨갛게 물이 든 신호등. 그 새된 비명소리가 들리지도 않게 끔 입을 앙 다물고서 발을 내딛는 그 아이. 아이, A. 그 아이. 트럭이 크게 돌아 사람을 빗겨가며 욕을 하였다. 나는 일어나 그 애를 보았다. A는 나를 보지 못한 채로 다시 골목을 내달렸다. 나도 그 아이를 따라 뛰었다.

 

골목에서 보도로. 보도에서 상가로. 상가에서 강가로. 강가에서 다리로. 다리에서. 나는 숨을 헐떡이며 그 아이를 노려보았다. 언젠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을 죽이겠다며 떠드는 그 아이가 높은 둑을 올라, 비가 오지 않아 메말라 있는 강바닥을 주시하였다. 나는 울분이 일었다. 고작 한다는 방법이 그거냐. 고작 하겠다는 방법이 그게 다야?

 

A의 고개가 살짝 돌아간다. 나에게로. 내 눈으로. 나의 품으로. 

강의 아래로 뛰어 내리는 그 아이를 나는 붙잡아 함께 떨어졌다.

 

 

 

 

 

눈이 떠졌다. 한참이나 지난 것 같았는데. 아직 저녁도 오지 않았다. 내가 강가로 뛰어든 그 망할 녀석을 붙잡고 뛰어내린 푸른 하늘이 눈 앞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녀석도.

 

흐흑.

 

A는 내 곁에서 눈물 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주저앉아 조금씩, 조금씩. 들키지 않으려는 듯이. 이건 분명 빚이다. 내가 널 살렸으니까. A가 내 말에 놀란 토끼 눈으로 웅얼거린다.

 

"아니 네가 나한테 빚을 진거야."

 

뭐?

 

"간신히 얻어낸 힘이었는데."

 

고작 그게, 그 따위 게? A가 무서운 표정을 짓는다. 눈물 방울을 눈가로 흘리며 소매를 잡아 벅벅 닦아낸다.

 

"이건 충동적이거나, 아무 생각없이 하는 게 아니야!"

 

녀석도 저렇게 소리를 지를 수 있었구나.

 

"얼마나 계획했는데, 얼마나 고민하고 또 고민한건데!"

 

몸을 일으켰다. 애 하나를 잡고 바닥을 굴렀으니 몸이 성치 않을만 했지만.

 

악.

 

이건 너무 갔다. 부러진거라도 있는 걸까.

 

"날 왜 방해한 거야?"

 

A가 묻는다. 바보같아서. 대답을 들은 그 애가 다시 뾰루퉁한 얼굴을 한다. 나는 그 애의 말이 나오기 전에 먼저 내 얘기를 풀었다.

 

"그러니까 내가 먼저 죽으면 안 돼."

 

나는 그렇게 내 얘기를 맺었다.

 

 

 

 

언제부터 였지. 아마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부터였나. 처음엔 목욕탕에서 좋게 좋게 날 구슬리려 했어. 나한테 뭐가 그리 좋은 게 있다고 착 달라붙어 뭐라뭐라 꼬드겼지. 기억은 안나. 그게 뭐라고 한건지. 허벅지랑 종아리를 만져 대었지. 그렇게 발갛게 부푼걸 본 건 또 처음이라 당황하고 있는데. 자기를 도와달라고 하는거야. 난 시키는대로 했고 밤으로 함께 살을 대고 자기도 했어. 불편했지만 뭐 어때, 처음이니까. 그런 건 처음 겪었으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했지. 중학교에서 겨울 방학은 내 최악의 계절이야. 그때 당했거든. 내 첫 경험.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도 수치스러워서 그냥 방에 쪼그리고 앉아 울기만 했어. 밤이 새도록 말이야. 그러다 널 만난거야. 온 사방으로 사람들을 죽이겠다고 소리를 지르는 너를.

 

그러니까 난 절대 죽어선 안 돼.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그 새끼가 먼저 죽는 것도 안되지.

 

"그럼 어떻게 하게?"

 

A의 물음. 나의 대답.

 

"나도 그 힘이란 게 필요해."

 

네가 이 높은 낭떠러지로 뛰어내릴 수 있는 힘. 신께 기도하면 생긴다는 그 힘. 나의 희망에 찬 물음으로 A는 천진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 애가 답한다.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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