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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카메라 찍기

2021.03.12 00:1803.12

정은 아침부터 공원으로 나와 예사롭지 않은 한 者를 눈여겨보았다. 분명 그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자신보다 언제부터 였을지 모를 시간으로 한참이나 앞서서 벤치에 눌러 앉은 저 者.

 

정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카메라를 들어 무언가를 찍기 시작하였다. 은밀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교묘히. 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者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가 낮게 겁을 주었다.

 

“뭘 찍는 거요?”

 

사람들이 수많이 지나는 공원의 가운데로 카메라 렌즈를 떨구는 그 者가 정은 눈꼴이 시려웠다.

 

“거 좀 봅시다!”

 

필시 자신에게서 벗어나 난동을 부릴 것이다. 냅다 도망이나 가고 뒤로 가 욕이나 줄창 하겠지. 한껏 뛸 자세를 하려는 정에게 그 者는 대뜸 사람들을 찍고 있던 카메라를 주었다. 건네받은 것을 정은 꺼림칙한 눈으로 흘기어 보며 카메라를 뒤적거렸다. 예전 모델의 닳고 닳은 표면. 필름을 넣는 방식이 아니라, 찍은 다음 디저털화 하여 칩 카드에 보관하는 방식이었지만 모델이 너무 낡고 예전의 것들이었다.

 

“이게 다 뭐요....!”

 

닳고 닳아 색이 변한 버튼을 눌러보던 정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여자들의 다리 사진들을 보고 역시 변태로 생각해 경찰을 부를까 하였지만, 그 다음의 사진들도 전부 다리들이 찍혀 있었다. 노인과 청년, 아가씨에서 소년소녀. 심지어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는 아기들의 다리 사진까지.

 

기계의 부품을 따로 빼어 찍어 둔 것 마냥 신체의 다리 부분만을 찍고 보관해둔 그 者에게 정은 고개를 저으며 사과의 말을 덧붙였다.

 

“거 그런 취미가 있으실 줄은.....”

 

그 者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를 대단찮은 몰카범으로 몰아 신고를 할 수 도 있겠지만 그의 사진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찍고 있지 않은가. 정은 께름칙하였지만 그 者를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고약한 취미를 가진 별난 인간쯤으로 치부하며 정은 제 집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의 날과 날도 그 者가 똑같은 자리에서 카메라로 무언가를 찍고 있다. 정은 그를 남몰래 감시하며 그의 이상 행동을 미연에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정의로운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거 찍은 것 좀 검사하겠소!”

 

저 者의 악취미를 아는 건 나뿐이다. 그러니 나만이 그를 감시하고 심판 할 수 있다. 정은 투철한 봉사 정신을 기꺼이 사용할 줄 아는 선량한 시민이었다.

 

그 者가 카메라를 건네어 준다. 반질반질한 버튼을 누르며 찍은 것들을 확인한다. 하얀 팔뚝과 검게 태닝한 남자의 팔, 유모차에 단긴 아기의 팔과 풍선을 들고 가는 아이의 팔. 이번 사진 보관함에는 팔 사진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대체...”

 

아연한 그의 표정으로 그 者가 손을 내민다. 정은 그에게로 카메라를 돌려주며 숨을 삼켰다. 저번엔 다리, 이번엔 팔. 혹시.

 

“혹시 다른 사진들도 있소?”

 

검사해야 한다. 지금 이 者의 악행과 말로를 알고 있는 것은 자신뿐이지 않는가. 막을 수 있는 일은 막아야 한다.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은 방지해야 한다. 정은 자신 스스로에게 검사관이라는 완장이라도 채워줄 심산으로 그 者에게 무턱대고 손부터 내밀었다.

 

“내주시오.”

 

그 者가 가만히 정의 얼굴만을 보더니 칩 하나를 주머니에서 빼어 정의 손바닥 위로 올려둔다. 그 者가 처음으로 먼저 자리를 뜬다. 매번 정의 관찰이 끝나는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저 알 수 없는 者가 일어나 유유히 멀어져 간다.

 

정은 제 손에 든 칩을 들고서 서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정은 은근한 기분이 들어 말을 할 수 없었다. 무엇이 들어있을까. 자동차 부품처럼 신체 일부만을 기록하는 남자의 파일 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정은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컴퓨터를 두들겼다.

 

 

머리

다리

종아리

어깨

허벅지

가슴

엉덩이

팔과 발꿈치

 

 

 

정은 탐독하듯 파일들을 훑어 내려갔다. ‘머리’ 파일을 누른다.

 

​춘천

부산

보성

경기

울산

.

.

.

.

 

더 내려가 보니 해외 쪽 지명이 나왔다. 일본과 중국의 도시들을 훑던 정의 눈이 유럽 국가들의 도시 이름들에 멈춘다. 파일을 누른다. 전 세계의 갖은 머리와 두상들이 즐비하게 나열된다. 남자와 여자부터 어린아이들과 노인에까지. 사진은 족히 수 천 장은 되어 보였다.

 

“이게 대체.”

 

팔이라 적힌 파일과 다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온갖 국가들과 대륙들을 덮은 여러 색의 인종들이 가진 신체 부위가 전시되듯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다. 정은 파일들을 넘기고는 가슴과 엉덩이 파일에서 손을 멈추었다. 남자라는 단순한 생물적 호기심이었는지. 오래된 연애 경험의 멸종으로 인한 외로움이었는지. 정은 바지춤을 잡고서 파일을 눌렀다.

 

남자와 노인들의 병든 피부가 눈으로 닿는다. 수술을 받지 못해 부패한 살점들이 들이닥쳤고 전쟁 중에 찍힌 사진들처럼 가슴과 엉덩이로 총알들이 박히고 폭탄 조각에 맞아 너덜거리는 살점들을 비추이고 있었다. 정은 버티지 못하고 뒤로가기를 눌렀다. 다른 파일을 누른다. 깨끗한 피부의 어깨가 나오고 진물들이 터져 나오는 종아리가 나온다. 어떤 순서로 분류가 된 건지 모르지만 순서가 엉망이었다.

 

“어떤 파일은 정상적이고 어떤 파일은 끔찍하고...”

“대체 근거가 뭐냔 말이야!”

 

불평어린 소리를 내었지만 모든 사진을 볼 때까지 정은 한시도 눈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새벽이 끝나가는 시간이 되어서야 정은 지쳐 쓰러져 잠에 들고 말았다.

 

 

 

정은 공원으로 나갔다. 점심이 지나 오후가 된 시간이었다. 아침마다 그를 보아 이미 떠나고 없는 줄 알았지만 그 者는 태연히 벤치에 앉아 같은 카메라로 무언가를 열심히 찍고 있었다.

 

“오늘은 무얼 찍는 겁니까, 팔 아니면 머리?”

 

칩을 그 者에게 건넨다. 그 者는 받지 않는다. 정은 그의 옆으로 앉아 머리를 기울였다.

 

“대체 저의가 뭐요?”

 

카메라 버튼이 눌러진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것들을 찍어서 무얼 하는 거요?”

 

者가 대뜸 카메라를 정에게 건네어 준다. 정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 者는 아무 말도, 아무 반응도,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 그가 사진을 들여다본다. 찍힌 여러 장의 사진은 사람들의 배 부분이 담겨 있었다.

 

“이번엔 복부요?”

“말해보시오, 이런 신체 사진들을 모아서 인종 뒤섞기 놀이라도 할 심산이오?”

 

정이 카메라를 건네어 주나 그 者는 받지 않는다. 정의 어리둥절한 얼굴을 두고서 그 者는 홀로 불쑥 일어나 떠나버리고 만다. 카메라와 남겨진 정은 멀어지는 그 者의 뒤를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의 날과 날에서도 그 者는 나타나지 않았다. 카메라를 붙잡고서 정은 거리로 나가 셔터를 눌러보았다.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그 기계는 소리 하나 남기지 않았다. 제 멋대로 장난치듯 찍고 있던 정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별일은 아니고.”

 

“바쁘냐?”

 

“잠깐 통화할 시간도 안 돼?”

 

“그냥 이상한 일이 있어서.”

 

“만약 어떤 카메라에..”

 

“아니 카메라, 키메라가 아니라.”

 

“그래, 그래.”

 

“카메라에 사람들 사진이 찍혀 있어.”

 

“아니 내 얘기는 아니고.”

 

“그러니까 들어봐!”

 

“카메라를 주웠는데 거기에 사람들의 신체 사진만 찍혀 있다면..”

 

“몰카범 이야기냐고?”

 

“몰카범은 몰카범인데!”

 

정은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고하였다. 친구는 그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다시피 하였으나 정은 정성스레 천천히 사건들을 짚어 주었다. 정의 해괴한 이야기로 친구가 준 대답은 하나였다.

 

"인류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신체를 찾으려는 거겠지."

 

낡은 고서점의 먼지 덮인 그저 그런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답한 친구의 싸구려 답안에 정은 흥미가 동하였다. 그래 흥미가 동하였다.

 

 

정은 하루의 낮 하나를 빌려 찢어 놓은 공책 한 페이지에 목록을 써두었다.

 

<최고의 신체 각 구성 목록>

 

정은 고심하였다. 인류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신체 부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운동선수가 먼저 떠올랐다. 건강하고 건장하며 신체적 능력이 탁월한 신체가 최고의 신체 부위이지 않을까. 미스코리아를 떠올린다. 보기에 가장 아름다운 신체가 최고의 신체 부위일까. 그는 헬스장과 대학로를 거닐며 예닐곱 장의 사진들을 기록하였다. 근육이 다부진 남성의 사진들과 이쁘장하게 생긴 여자들의 사진들이 생겼지만 정은 성에 차지 않았다.

 

정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인류가 가진 숨은 난제를 만난 기분. 오직 자신만이 풀 수 있는 장대한 서사시를 만난 기분. 정은 들뜨고 있었다. 인류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신체 부위라니. 악취미를 가지고 남의 몸 사진이나 몰래 찍던 변태의 그 者가 자신에게 내려온 한 현인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정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갖은 피트니스 클럽과 요가 수업. 수영장과 욕탕을 들락거린다. 소리가 나지 않는 카메라 덕에 들키지 않았지만 정은 점점 더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소득이 없다. 아무리 몸 좋은 인간들의 사진을 찍어도 부족함을 느꼈다. 정은 허덕였다. 더 많은 의미와 상징이 있어야 한다. 정은 퍼뜩 정신이 깨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의미와 상징이야.”

 

예전 그 현인에게 받은 칩에서 차마 다 둘러보지 못한 가슴과 엉덩이 파일을 열어 밤이 새도록 탐독하였다. 질병과 기근, 전쟁에 부딪혀 떨어져 나가고 썩어 부패했으며 가죽들이 들러붙은 사진들을 눈에 담은 정은 아침이 고개를 드는 이른 시간으로 고개를 올렸다.

 

“이거야!”

 

정은 답을 찾은 듯 하였다.

 

 

 

공장의 앞으로 붉은 혁대와 띠를 두른 노동자들이 노조를 이루어 소리를 지르고 있다. 구호가 메아리 치고 사람들이 행렬을 이루어 파도를 만든다. 노동자들은 앞으로 걸아나갔다.

 

“이 이상 앞으로 오면 발포하겠습니다.”

 

노동자들이 분을 참지 못한다. 그들이 검은 방탄복을 착용한 전경들과 부딪혀 병을 깨고 죽창을 들어 찌른다. 피가 튀고 진압봉으로 뼈가 부러진다. 날카로운 장대에 방탄복이 뚫려 전경이 쓰러지자 노동자들이 소리를 질렀고 진압 방패로 노동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전경들이 군화 발을 굴렀다.

 

정은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셔터를 눌러대었다. 깨지고 피가 튀기는 투쟁으로 정은 신이 나게 셔터를 눌렀다. 팔과 다리와 으깨진 안면과 피멍들이 가득한 몸들을. 정은 다음 곳으로 갔다.

 

 

 

아이들이 굶주려 쓰러진다. 6평짜리 독방을 만들어 아이들을 가둬둔 고아원으로 중계차들이 득달같이 몰려든다. 정이도 그곳에 있었다. 그는 아이들의 사진을 찍기 위해 악을 지르고 몸을 버둥거렸다. 만류하는 시설 관계자들을 정이 뚫자 기자들도 줄을 이어 발을 구르고 아이들을 불렀다. 파리와 오물들이 벽지 가득 찐득하게 너절거리는 6평짜리 방으로 빛과 셔터 소리가 가득 들어찬다. 카메라 세례에 겁을 먹은 아이들을 관계자들이 감싸며 버틴다.

 

기자들의 틈바구니로 정은 똑같이 소리쳤다.

 

“사진 찍게 저리 비켜요!”

 

카메라를 두들겨 맞는 관계자의 통통하게 오른 신체의 사진도 찍는다. 정은 모든 것들을 담으려 하였다. 눈을 때리는 셔터와 기자들의 추궁에 오줌을 지리는 한 사내아이의 오들오들 떠는 겁마저 정은 전부 기록하려 하였다. 정은 다음 곳으로 갔다.

 

 

 

한 소녀가 재판에 서있다. 참고인으로 나온 누군가가 말한다. 변호인이 소리치고 판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소녀의 얼굴이 다 지우지 못한 눈물 자욱들로 엉겨 붙어 있다. 재판과 사회의 사람들로 목소리들이 외친다. 정은 셔터를 눌렀다. 소녀의 얼굴과 몸을 담기 위해 누르고 또 눌렀다.

 

“원고는 강간을 당했음을 시인합니까?”

 

소녀가 내몰린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한 여자아이에게로 돌려진다. 모두가 보고, 모두가 듣고 있다. 정은 상징이 필요했다.

 

“원고는 자신이 강간을 당했음을 정말 시인합니까!”

 

모두가 보고, 모두가 듣고 있다. 재판으로 엄숙한 결과를 기다린다. 원고인 소녀의 어깨로 손가락들이 분노하며 일침을 날리고 시선들이 소녀의 목소리를 일갈한다.

 

“원고!”

 

소녀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다. 정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사람들도, 전 세계의 모든 죄악들도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쌓이고 쌓이는 것을 세상은 모르나 죄들만큼은 알고 있을 것이다. 제 스스로 얼마나 많은 이들의 어깨와 등으로 짊어져 있는지. 정은 개의치 않아 하였고 세계의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녀의 연약하게 떨리는 몸을 찍고 그녀의 울고 있는 얼굴까지 찍고서 정은 카메라의 기록을 확인 하였다.

 

정은 다음 곳으로 갔다.

 

 

 

 

 

정은 상징과 의미가 있는 곳이면 어디로든 갔다. 아이와 노인, 여자와 남자 할 것 없이. 손가락질을 받는 소수성애자들의 사진도 찍었고 장례식의 상주들의 얼굴들도 담아왔다. 하지만 그 마저도 정에게는 탐탁치 않았다. 그는 더 많고, 더 크고, 더 막연한 것들을 꿈꾸고 바라고 있었다. 이보다 더 강렬한 무언가.

 

그가 찾고 있던 인류의 최고 신체 부위 찾기는 그 공책의 누런 변색처럼 세월을 따라 갈변하기 시작하였다. 언제고 만났던 현인의 얼굴도 정은 기억나지 않았다. 애초에 왜 이런 여정을 해야 하는지 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바랐다. 갈망하였다. 허덕였고 굶주리고 만다. 더 크고 많은, 그 허황된 것들을 그는 좇기로 하였다.

 

 

 

 

한밤중 아기를 품에 안고 누군가를 마중 나가던 아이 아빠의 뒤를 누군가 좇았다. 돈이 목적이었는지, 개인적인 원한이었는지. 아기를 안고 있어 저항을 하지 못하던 아이 아빠는 몸을 굴려 아기를 지키기 위해 몸을 웅크렸다. 누군가는 칼을 들어 남자의 등을 수 십 여 차례 찔렀고 아기를 가로채기 위해서였는지 팔을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누군가는 아기를 끌어안은 채 쓰러진 아이 아빠를 내려다보았다. 칼을 들어 팔 부분을 자른다. 피부를 찢고 뼈를 부순다. 아기가 울음을 울며 고성을 지른다. 피로 범벅이 된 아기를 너덜거리는 시체의 틈에서 찾아 길바닥에 내려놓는다.

 

그 누군가가 살해당한 아이 아빠와 그 곁에 뉘인 채 울음을 우는 아기를 찍어 댄다. 사진을 찍고 또 찍어 댄다.

 

아빠가 마중 나가려 했던 한 소년이 아기의 목멘 소리를 들었고 골목으로 제 아빠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소년은 아빠의 시신 위에서 사진기를 들고 선 그 者를 보았고 달려가 주먹을 휘둘렀다. 사진기를 든 그 者는 소년의 주먹질과 악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이가 부서지고 코뼈가 짓뭉개져도 그 者는 단말마 하나 내지 않았다.

 

소년이 신음을 내며 울음으로 제 아빠를 부둥켜안을 때 그 者는 주머니에서 목록 표를 꺼내 기록하였다.

 

‘희생’ - 한 아버지의 갸륵한 희생과 헌신의 모습.

‘복수’ - 한 아이의 분노로 가득한 상실의 모습.

 

사진기를 들고 셔터를 누르려 하였다.

 

“아, 오랜만에 뵙는 군요.”

 

그 者의 위로 언제고 공원에서 만났던 현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者를 내려다보며 현인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제가 찾으려 했습니다.”

“당신이 찾으려 하던 걸 찾으려 하였습니다.”

 

쿨럭.

 

“당신이 줄곧 이끌던 것들을 제가 맞추려 하였습니다.”

 

쿨럭.

 

“답이 나왔습니까, 어떻습니까?”

 

쿨럭.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습니까?”

 

현인은 아무 답도 주지 않았다.

 

“왜 그리 멍청히 서있기만 하십니까?”

 

현인은 울음을 우는 사내아이를 두고서 그 者의 옆에 널브러진 카메라를 주웠다.

 

“말을 하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현인이 카메라를 제 손에 들고서 그 者를 본다.

 

“이제 이 정도면 되었습니까?”

“대답만 해주시죠.”

 

현인이

그를 향해

셔터를

누른다.

 

“내가 한 게 정답이 맞았습니까?”

 

현인이 카메라를 두르고서 휙 등을 돌린다.

 

“제가 한 게 정답입니까!”

 

멀찍이 뚝 거리를 떨어뜨리고 현인은 비척비척 걸음을 옮기었다.

 

“제가 정답이지 않습니까!”

 

머리 꼭대기가 지평선에서 아래로, 아래로 자취를 감춘다.

 

“대답해, 내가 정답이야!”
“이게 정답이라고!”

 

경광등 불빛을 따라 순경들이 골목을 둘러싼다. 그 者의 고함과 고성이 밤으로, 밤으로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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