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경비견 (3. 24. 수정)

2021.03.22 14:4203.22

 

버려진 마을에 모래가 휘날렸다.

푸올로는 정면으로 날아오는 모래 알갱이 앞에 저도 모르게 눈을 찌푸렸지만, 곧 자신이 고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을 크게 떠보니 문짝이 떨어지거나 외벽 마감재가 떨어져 나온 1층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때 사람과 차가 다니는 길이었을 곳에는 1~2 센티미터 정도의 모래가 쌓여 있었다. 폐허 특유의 쓸쓸함이 느껴지긴 했지만 고대 유적같은 고풍스러움과 품위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지렁이를 피하다 보니 오게 된 곳일 뿐, 별로 관심을 가지거나 수색할 만한 것이 있을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푸올로의 교관은 다르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교관은 꼼짝도 않고 자기 눈 앞의 텅빈 거리를 응시했다. 훈련 채점을 하는 교관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던 푸올로는 어쩔 수 없이 자기도 그 옆에 앉아 마을을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마을에 원래는 없던 신기하고 가치있는 것이 생겨나지는 않았다. 푸올로가 대체 여기서 뭘 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할 무렵, 마침내 교관이 말없이 엉덩이를 바닥에서 떼고 마을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다른 무엇을 고려하는 눈치 없이 가장 가까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는 것이 마을 전체를 수색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푸올로도 수색을 함께 하기로 마음 먹고 그 다음 가까운 건물로 들어갔다. 대체 뭘 찾는 건지도 몰랐지만, 뭐라도 눈에 띄는 게 있으면 교관을 부를 생각이었다.

현관문 바로 안쪽에는 작은 거실이 있었다. 이런 사막 마을의 땅값이 비싸지도 않을 텐데, 건축비 감당도 힘들었던 모양이라고 푸올로는 생각했다. 원래 푸올로가 알기로 사막 마을이 경제적으로 풍족했던 시기는 없었다. 거실 바닥에는 모래가 가득했다. 길거리만큼 두껍게 쌓이지는 않았지만 딛는 곳마다 발자국이 남을 정도는 되었다. 가구는 탁자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푸올로는 텅 빈 탁자를 피해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도 진열장 한 개 말고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아무래도 집주인은 제대로 이삿짐을 챙겨서 이 곳을 떠난 모양이었다. 그때 푸올로의 예민한 귀에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이라면 집안에 들어와서도 듣지 못할 만큼 작은, 게다가 정확히 무슨 소리라고 말하기 어려운, 굳이 말하면 스피커의 잡음에 가까운 소리였다. 푸올로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따라 방에서 나와, 복도 끝으로 다가갔다. 소리는 그 옆에 있는 문 안에서 나고 있었다.

머리로 문을 밀어 여는 순간 푸올로는 방 안이 깨끗하고 가구들이 남아있는 것에 놀랐다. 물론 오랫동안 쓰지 않은 방이라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모래는 없었다.  침대는 푸올로의 정강이 높이였고 옷장의 손잡이도 푸올로의 입이 닿기 딱 좋은 위치였다. 소리의 근원은 아무래도 옷장 안쪽 같았다.

푸올로는 오른쪽 앞발을 들어 옷장 문손잡이에 걸쳤다. 물론 입을 사용하는 게 훨씬 편했지만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면 옷장 문이 열리는 순간 그 내부가 시야에 들어오게 할 필요가 있었다. 푸올로는 심호흡한 뒤 강하게 문을 잡아당겼다.

옷장 안에는 오랜 시간 사막에 나갈 때 필요한 덮개옷, 신발, 그리고 푸올로의 가슴에 달려있는 것과 같은 모양의 기계 장치가 하나 있었다. 수색견의 뇌파 신호를 해석하여 음성으로 조합해 내보내는 스피커였다. 별다른 입력을 받지 못하는 그 스피커가 어찌된 일인지 전원은 여태까지 남아서 잡음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버려진 작은 마을에서 수색견의 흔적을 발견하다니, 흔히 있을 만한 일은 아니었다. 푸올로는 더 수색하기 전에 교관을 불러오기 위하여 몸을 돌리려 했지만, 스피커에 써 있는 어떤 글자가 푸올로의 눈길을 붙잡았다.

우연히 일치할 수도 있는 흔한 단어였지만, 곧 수색견이 될 푸올로의 직감으로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푸올로가 고개를 좌우로 돌릴 때, 뒤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물론 푸올로의 교관은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발소리를 죽일 수 있는 개였다.

"아, 썬더 교관님."

푸올로가 뒤로 돌아 그의 교관 썬더를 아는 척 했다.

"이 방을 찾아냈군요. 일부러 이 집으로 안 들어왔는데."
"역시, 이 곳을 알고 계셨습니까."

푸올로는 그렇게 말하며 뒷걸음질로 썬더의 오른쪽으로 물러났다. 썬더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푸올로가 살피던 스피커에 썬더의 시선이 고정됐다. 스피커에는 사람 손가락 한 마디 크기 정도의 글씨로 'LIGHTNING(라이트닝)'라고 적혀 있었다.

"교관님 이름과 비슷하네요?"
"그런 식의 이름이 한 때는 흔했죠. 그런데 이 스피커의 주인은 실제로 제가 아는 개가 맞습니다."

썬더가 푸올로를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푸올로는 주변을 인식하기를 잊은 듯한 썬더의 모습에 더 이상 말을 걸지 못했다. 그렇게 거의 1분이나 서서 아무 말이 없이 스피커를 응시하던 썬더가 마침내 고개를 돌린 건, 푸올로가 엉덩이를 바닥에 붙여 앉을 때였다.

"앉아도 될 정도로 안전이 확보됐는지 확인했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감점이라고 생각한 푸올로는 곧바로 일어나 부르르 몸을 떨었다. 썬더와 푸올로는 동일하게 유전자조작을 받아 인간 중에서도 똑똑한 축의 지능을 가졌지만, 썬더는 이미 10년 넘게 수색견으로 활동한 베테랑이었고, 푸올로는 수색견이 되기를 지망하는 훈련생이었다. 긴장한 푸올로를 보며 썬더는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시겠죠."
"네, 사실 그렇긴 합니다."
"원래 사막 돌파를 하다 보면 꼭 이런 회상과 추억의 시간이 생기더군요. 보통은 해가 진 뒤이긴 하지만 지금은 해를 가려주는 지붕이 있으니, 일단 둘 다 앉죠."

푸올로가 맑은 눈으로 빤히 썬더를 쳐다보다 썬더가 다시 말했다.

"이곳의 안전은 제가 이미 확인했습니다."

푸올로는 그렇게 말하며 풀썩 앉는 썬더를 계속 억울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결국 따라 앉았다. 썬더는 못 본 척 스피커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푸올로가 자리를 잡는 소리가 멈춘 뒤에야 썬더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수색견 경력 초기에 여기 왔었습니다. 그리고 제 경력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의뢰 완수에 실패했죠. 아마 지금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푸올로는 썬더가 그 말을 진심으로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요, 절대로 그렇게 안 합니다."

 

***

 

"이 새끼가 대체 내가 뭘 했다고!"

썬더가 뒷발을 힘껏 차며 외쳤다. 물론 허파에서 공기를 밀어내며 성대를 울려야 소리를 낼 수 있는 다른 동물 같았다면 썬더도 조용히 달리는 데에만 집중했을 것이다. 지금 썬더의 뒤를 쫓고 있는 건 썬더가 본 중 가장 큰 지렁이였다. 아직 그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내는 소리로 봐서는 돌연변이 지렁이, 아니 한 때는 돌연변이였지만 이제는 사막 생태계의 포식자로서 지배적 위치를 점하게 된 우세종인 지렁이의 평균 몸길이인 11미터를 한참 상회할 것 같았다.

썬더는 사막신발도 신고 일부러 울퉁불퉁한 길로 다녔다. 지렁이의 주의를 끌 어떤 행동도 한 적이 없었다. 그가 생각으로 스피커를 울려 저런 소리를 외치고 있는 이유였다. 썬더는 대지렁이 폭탄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싶었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폭탄으로 지렁이를 해치려면 근처에 있는 썬더도 함께 중상을 입을 판이었다. 그 외에 지렁이를 물리칠 방법은 없었다.

아니, 폭탄을 지렁이의 몸 안에 넣고 터뜨린다면 그 신체가 폭발력을 감쇄하여 썬더가 무사할 수도 있겠지만 폭탄을 넣을 방법이 문제였다. 결국 썬더는 자신의 빠른 발을 믿고 달리는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사막에서 살도록 진화한 지렁이의 지구력을 이길 수는 없겠지만, 그 전에 지렁이가 더 흥미로운 놀잇감, 혹은 더 맛있어 보이는 먹잇감을 찾길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지렁이는 썬더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결국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으로 겨우 3초의 타이머를 설정해두고 폭탄을 바닥에 떨어뜨리려는 참이었다. 

"그만 두십쇼."

썬더는 자신에게 말한 자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어디선가 들려오는 수색견 스피커 특유의 강한 저음을 느꼈다.

"계속 뛰기나 해요."

저 거대한 지렁이 앞에서 썬더는 자신과 같은 목소리를 지닌 자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잠시 후 폭음이 들렸다. 자신이 쓰는 것과 같은 수색견들의 대지렁이 폭탄 소리는 아니었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리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지렁이의 괴성이 땅을 뒤흔들었다. 썬더는 달리면서 뒤를 돌아보았다가, 그대로 제자리에 섰다.

지렁이가 사막에 쓰러져 있었다. 썬더가 알고 있는 대로 그냥 지렁이가 크기만 커진 모양이었지만, 이 놈은 특히 많이 커져서 직경이 2미터는 족히 돼 보였다. 그 큰 몸통 중 정확히 어디에 상처가 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쓰러진 모양으로 봐서는 크게 다친 것 같았다. 썬더는 잠시 지렁이의 상태를 지켜보았다.

"멍청아, 계속 뛰랬잖아!"

썬더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0.5초 후, 그 말은 단지 자기 말을 안 들은 것에 대해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다시 뛰어 도망가라는 의미였음을 깨달았다. 지렁이 쪽으로 시선을 돌리려던 썬더는 그 전에 지렁이가 몸을 일으키는 소리를 들었다. 지렁이의 반대방향으로 허리를 틀며 뒷발을 찬 썬더는, 공중에 그 발이 붙잡히는 것을 느꼈다. 뭔가 날카로운 것에 붙잡힌 것 같았지만 통증을 느낄 틈조차 없었다. 지렁이에게 붙잡힌 경우에 대한 일반적인 대응책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썬더는 무의미하게 몸부림쳤다.

그때 다시 한 번 아까와 같은 폭음이 들렸다. 지렁이가 고개를 휙 돌리자 썬더의 몸뚱아리가 너덜거렸다. 그리고 세번째 폭음과 함께, 썬더의 다리를 잡고 있는 힘이 풀렸다. 썬더는 4미터 아래 모래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이거, 우리 마을에 누구 찾으러 온 건 아니겠죠?"
"......"
"아, 이거가 아니라. 이 수색견."
"판단할 근거가 부족합니다. 일단 깨어나면 물어봐야죠."

썬더는 자기가 아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수색견 스피커를 제조하는 회사는 몇 되지 않았지만 소리의 톤과 어조, 억양은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으므로 목소리로 충분히 그 스피커의 주인을 구분할 수 있었다. 썬더가 옆으로 누운채 살짝 고개를 들자 다른 수색견이 말했다.

"일어났군요."
"아, 여기가 어딘지......"
"마을의 이름은 마빈입니다."
"마을이요? 저는 분명히 사막 돌파 중이었는데......"
"여기는 자유균형마을입니다."

썬더의 눈이 크게 떠졌다가 감겼다.

자유균형마을. 무법자들의 소굴. 세상 모든 죄악과 병균, 그리고 그것들이 묻은 돈이 흘러들어 고이는 사막의 구정물 오아시스. 그것이 일반에 알려진 자유균형마을의 이미지였다. 물론 썬더의 지식은 그보다 나았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자들이라는 의미에서의 무법자라면, 무법자들의 소굴이라는 말은 맞다고 할 수 있었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대신 법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곳이 곧 자유균형마을이었다. 썬더는 옆으로 들었던 고개를 다시 내렸다.

"눈치를 보아하니 우리 마을에 대해서 아는 모양인데......"

이번에 말한 쪽은 아까 썬더를 '이거'라고 칭했던 사람이었다. 썬더의 개침대 옆에 서 있으면 눈높이가 맞았던 다른 수색견과 달리 50대 정도의 남성으로 보이는 그 사람은 1.8미터 높이에서 썬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썬더는 그대로 누운 채 대답했다.

"네, 대충 어떤 곳인지 알고 있습니다."

자유균형마을의 주민들은 대개 범죄전력이 있거나 체류자격이 없어서 정부의 기본소득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들이 사막으로 나온다고 도시에서 안 주는 정부소득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들을 국외인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배제할 수 있었다.

"그럼 우리 쪽에서 질문을 해도 될까요?"
"수색 작전 중이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수색견의 의무상 작전 내용은 말씀드리면 안 되고요. 그런데 사막에서 지렁이의 갑작스런 추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아마 여러분께서 저를 도와주신 것 같네요."
"혹시 우리 마을에 볼 일이 있어서 왔어요?"

어미를 지나치게 올리는 주민의 말투가 어색했다.

"원칙적으로 그것도 말씀드릴 수 없는 부분입니다만, 도와주신 데 대한 보답이라고 치죠. 제 수색작업은 마을과는 무관합니다. 이상행동을 보인 지렁이만 없었다면 제가 마을 근처에 올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수색을 위한답시고 거짓말 할 수도 있잖아요?"
"그만 하시죠."

수색견의 목소리였다. 사람은 갑자기 입을 다물고 입술을 축였다.

"제 이름은 라이트닝 대시입니다."

썬더처럼 어린아이가 지어준 것이 분명한, 1세대 수색견의 이름이었다. 처음 수색견이 세상에 등장할 때 수색견을 기른 업체들은 홍보의 일환으로 그 성장과정을 대중에 공개하며 어린이들을 상대로 이름을 공모했다.

"썬더라고 합니다."

썬더가 고개를 살짝 들어 대답했다. 라이트닝은 그 이름을 듣자 작게 코웃음을 쳤다. 같은 세대를 만나 반갑다는 의미였을까.

"작전 이야기는 그만하고, 제가 본 몸 상태로 말하자면 응급치료 결과 큰 문제는 없어보입니다만 며칠 회복기는 필요할 거 같습니다. 괜찮으시면 여기서 쉬시죠."
"뭐? 아니, 네? 아니......"

주민이 반문하자 라이트닝이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돌려 주민을 곁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는 제 집이죠?"
"그렇긴 하지만......"
"제 집에서 다친 개를 돕는 게 문제가 되겠습니까?"
"문제는요! 그렇게 하시죠. 물론이요. 그럼 전 이만."

그렇게 주민은 뭐가 마려운 사람처럼 방을 떠났다. 라이트닝이 주민이 나간 방문을 보며 말했다.

"제가 마을에 지낸지 2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수색견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군요. 그래도 제가 확실히 말했으니 더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겁니다. 당신을 치료해준 사람이기도 하고요."
"저 사람이 치료해줬다고요?"
"마을에 의사가 없어서, 도시의 동물병원 보조원 출신으로 주민들의 의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묘한 일이죠."

물론 여기서 '우리'란 라이트닝과 썬더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하며 라이트닝은 콧구멍을 조금 벌름거렸다. 일종의 미소였다. 썬더도 나쁘지 않은 의미로 '푸르르'하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나니 라이트닝에 던질 또 다른 질문이 있었다.

"그런데 자유균형마을에서 2년 넘게 지내고 있다고요?"
"아, 도시 체류자격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이 마을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았을 뿐이죠."
"사막으로 사라져버리는 사람이 많은가 보군요."
"제 주업은 수색이 아닙니다. 대충 아시는 거 같지만 자유균형마을인 마빈의 주민들은 도시 경찰력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보호를 위하여 무력을 사용하려면 직접 무장하거나 무력을 가진 자를 고용해야 하지요."

말하자면 라이트닝은 수색견이 아니라 경비견으로 일한다는 거였다. 도시에 사는 썬더로서는 들어본적 없는 일이었다.

"약탈단은 이미 10년 전에 다 소탕된 줄 알았는데 이 근처에 그 잔당이라도 있는 겁니까? 사막 마을에서 상설병력을 고용하다니."

전투 훈련을 받고 무장한 수색견은 유격전이나 게릴라전 상황이라면 혼자서 인간 보병 1개 소대와도 싸울 수 있다는 게 통설이었다. 즉, 단 한마리의 수색견이라도 충분히 '병력'이라고 불릴만 했다.

"지렁이가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그렇군요. 분명히 생태 구역도에 따르면 지렁이가 없어야 하는 곳인데 추격을 당해 저도 놀랐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막의 생태가 있는 모양입니다."

썬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몸이 회복될 때까지 편하게 지내십시오."
"고맙습니다."
"그럼 쉬시기를."

썬더는 인사한 라이트닝이 방에서 나가기도 전에 다시 잠이 들었다. 안전이 확보됐다고 판단하면 순식간에 잠드는 것 또한 수색견이 갖춰야 할 덕목이었다.

 

 

"썬더도 라이트닝처럼 빨리 달릴 수 있어요?"
"라이트닝이 얼마나 빠른지 몰라서 대답을 못하겠습니다."
"엄청 빨라요! 완전 쓩~! 우주선보다 더 빨라요!"

어린이는 그렇게 말하며 양팔을 벌리고 흙바닥길을 달려갔다. 한참을 달리던 어린이는 선회하는 비행기처럼 팔을 오른쪽으로 기울이며 돌아 다시 썬더의 앞으로 왔다.

"어때요?"
"저는 그렇게 빨리는 달리지 못할 것 같군요."
"그렇죠? 라이트닝은 세상에서 제일 빨라요. 그 다음은 나!"

이렇게 자기 능력에 자신있는 어린이가 자기보다 더 빠르다고 인정하다니. 라이트닝은 비록 마을사람들에게 고용된 관계라고 하더라도 상당한 신뢰를 받는 모양이었다.

"라이트닝이 무슨 일을 할 때 그렇게 빨리 달리던가요?"
"라이트닝이 일하는 건 못 봤어요. 라이트닝은 지렁이랑 싸우는 전사잖아요. 지렁이가 나오면 위험하니까 라이트닝이 사람들은 절대 가까이 못오게 해요. 하지만 뛰는 걸 저한테 보여준 적이 있는데 진짜 빨랐어요."
"그럼 라이트닝 혼자서 지렁이를 잡는단 말입니까?"
"잡는게 아니라 쫓아내는 거예요."
"지렁이를 쫓아내는 방법이 있습니까?"
"네!"
"어떻게 하는 건데요?"
"몰라요. 라이트닝이 그건 비밀이래요."

썬더는 회복차 마을의 어린이 하나와 함께 가볍게 산책 중이었다. 그런데 수색견과 걸으려니 그러는 건지, 원래 라이트닝의 팬인지는 몰라도 어린이는 계속 라이트닝 얘기 뿐이었다.

"아, 제 이름은 이한이에요."
"썬더입니다."
"알아요."

그리고 몇걸음 걷던 이한이 갑자기 근처에 있는 주택 벽으로 뛰어갔다. 벌레라도 한 마리 찾아낸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한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유심히 바닥을 쳐다볼 뿐 벌레를 잡거나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썬더는 벌레 좋아해요?"

수색견의 활동에 대해서 아는 사람에게는 우습게 들릴 만한 질문이었다. 사막 돌파나 기타 장기 수색 작전 중에 단백질원을 찾던 썬더가 어디까지 입을 대보았는지는 썬더 자신도 다 기억할 수 없었다. 결국 썬더는 짧은 대답을 하기로 했다.

"네, 좋아합니다."
"저도요! 벌레는 움직이는 게 신기하잖아요."
"그렇죠."
"저는 집 앞에서 개미도 키웠어요. 그런데 집이 엄청 커져서 아빠가 개미집을 없애버렸어요."
"안 됐군요."
"아니에요. 아빠가 우리 집을 지키려면 어쩔 수 없댔어요. 원래 공격하는 것보다 지키는 게 진짜 어려운 일이래요."
"네."

그때 바닥만 쳐다보던 이한이 고개를 들어 썬더를 보면서 물었다.

"썬더도 라이트닝처럼 우리 마을을 지켜줄 거죠?"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썬더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자기도 모르게 이한을 보며 살랑살랑 흔들던 꼬리도 그 자리에 멈췄다. 전혀 마빈 마을을 지킬 생각이 없던 썬더는, 특별한 기대감이나 흥분조차 보이지 않는 이한의 여상한 표정에 오히려 더 마음이 쓰였다. 이한은 썬더의 능력과 선의를 조건 없이 신뢰하고 있었다. 이 어린이에게는 라이트닝이 마을을 지키는 영웅이고, 썬더도 그의 동료로 보였던 것이다.

"네."

상황에 따라서요. 예를 들어 내가 마을 근처에 있다가 지렁이의 공격을 받거나 하면 지렁이와 싸울 수도 있겠죠. 썬더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정말로 이한을 지키고 싶다는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한의 순수한 신뢰에 대한 반응인지, 수천년간 인간의 친구였던 개의 본능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썬더의 대답을 들은 이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다시 자연탐구에 매진했다.

멍하니 아이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던 썬더의 귀에 갑자기 어떤 소리가 들렸다. 벌레 같은 작은 동물이 내는 소리는 아니었다. 아직 거리가 멀어서 크게 들리지는 않지만 그것은 분명, 땅을 뒤흔드는 소리였다.

썬더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정확하게 잡기 위해 이한이 달려간 건물 바로 옆에 있는 다른 건물의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아직 회복이 덜 된 옆구리가 시큰했다.

지붕에서 자세를 다시 잡고 소리에 집중해보니 지렁이는 북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이한에게 산책이 끝났다고 알리려고 할 때 또 다른 소리가 썬더의 주의를 교란시켰다. 동물의 살가죽이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에 부딪히고 있었다. 썬더는 지렁이 위험 지역을 지날 때에는 결코 신발을 벗지 않는다. 불가피하게 신발을 벗는다면 발걸음 간격을 불규칙하게 만든다. 지금 저 소리는 마치 지렁이를 일부러 끌어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소리를 내는 근원은 썬더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이제 산책은 그만합시다. 집으로 돌아가세요."
"갑자기 왜요? 여기 공벌레가 있단 말이에요."

썬더는 라이트닝에 대한 신뢰도 좋지만 어린이가 지렁이의 위험성도 충분히 잘 교육받았기를 바라면서 말했다.

"지렁이가 오는 것 같습니다."
"지렁이?"

이한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마을 중앙 쪽으로 뛰어갔다. 다행히도 마빈 마을 어른들의 위험 교육은 확실한 것 같았다. 썬더는 지렁이를 불러들이는 정체불명의 존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며 꼬리를 수평으로 세우고 수색을 개시했다.

들려오는 소리로는 불과 수백미터 거리로 생각되었다. 썬더의 시력으로 보지 못할 먼 거리는 아니었다. 즉, 이름 모를 지렁이의 친구는 일부러 마을 사람들한테서 몸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썬더는 적대적 존재를 상정하고 발소리를 죽여 천천히 걸었다. 아직 회복도 끝나지 않았는데 전투를 벌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썬더는 잠시 라이트닝을 부를까도 생각했지만, 인간주민들은 몰라도 경비견인 라이트닝은 이미 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중일 것이다. 썬더는 코를 킁킁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썬더가 걷는 거리를 측정하기 시작하고 나서 230미터를 걸어왔을 때 마침내 사막과 같은 색의 위장복을 입은 자가 나타났다. 인간이 그 모습을 목격했다면 정체불명의 적이 엎드려서 손으로 바닥을 두드리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썬더의 후각은 다른 정보를 알려주었다. 썬더는 빠르게 생각했다.

이제 썬더의 결론은 저 지렁이는 적어도 마을에 대해서는 위협이 되지 않는 거였다. 문제는 썬더였다. 지금은 바람이 썬더 쪽으로 불어오고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그 방향은 언제 바뀔지 몰랐다. 그럼 저쪽도 썬더의 존재를 알아차릴 것이고, 그가 어떻게 대응할지는 전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썬더는 사구 뒤로 몸을 숨긴 채 천천히 발을 떼었다. 지렁이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지렁이가 접근할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는 택지를 조성할 때부터 물리적, 화학적으로 지렁이에 대한 여러가지 조치를 미리 취해 둔다. 그러나 마빈 마을은 누구의 지도에도 지렁이 위험구역으로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원래부터 땅을 파고 다니는 지렁이라면 얼마든지 마빈 마을의 여러 집안 내부에도 접근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럴 것까진 없지 않나, 하는 게 썬더의 생각이었다. 그들 사이 대화 내용으로 봐서는 지렁이 경고를 받은 것임이 분명한데도, 몇 명의 주민들이 집이 아니라 길거리에 나와 가만히 서 있었던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썬더가 오는 것을 보고 말했다.

"아니, 벌써 끝났어요? 이젠 진짜 점점 빨라지시네."
"야, 그 개 아니야. 그, 사막에서 다쳐서 쉬고 있다는, 뭐라고 했더라......"

썬더는 상대방이 말을 마치도록 가만히 기다렸다.

"수색견 맞죠?"
"수색견 썬더입니다."

고민 끝에 썬더를 수색견이라고 정확하게 불러준 사람은 겉보기 나이는 30대 정도에 긴 머리를 기른 여성이었다.

"아, 맞았다. 크릴은 수색견을 경비견하고 헷갈린 거예요."

그러니까 이한처럼 라이트닝을 특별히 좋아하는 경우 말고 보통의 마을 사람들은 그를 '경비견'이라는 일반명사로 부르는 모양이었다. 썬더가 수색업무를 수행하면서 수백번 들은 '이봐'나 '바둑아'보다는 훨씬 나았다. 물론 '개새끼'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그럼 혹시 경비견은 못 봤어요?"

여성한테서 크릴이라고 불린 남자가 썬더에게 물었다.

"다들 지금 지렁이가 나타났다는 건 아시는 거죠?"
"네, 우리는 경비견의 경고를 받고 알았으니 경비견이 지금쯤 처리하지 않았을까 해서요."
"경비견을 굳게 믿으시는군요."
"2년 동안 지렁이가 몇번이 나타나도 잘 물리쳤으니까요?"
"그래서 경비견은 봤어요?"

이번에는 다시 썬더를 제대로 알아본 여성의 물음이었다.

"아, 보지 못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몸이 정상이 아니라, 지렁이 소리를 듣고 저도 피하는 중이었습니다."
"잘 했어요. 경비견이 알아서 잘 할 거예요."
"혹시, 이한이라는 어린이는 어디로 갔는지 아는 분이 계십니까?"
"이한이는 자기 집으로 갔어요. 아까 길에서 봤어요."
"다행이군요."

그리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원래는 자기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지만 불청객 썬더가 나타나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여성이 다시 말을 꺼냈다.

"아, 나는 쇼우예요."
"네."
"그런데 수색견이면, 경비견하고 비슷한 건가요?"
"질문의 의미가 애매하지만, 여러가지 능력 면에서는 선천적으로도 거의 비슷하고, 훈련도 동일하게 받았을 겁니다. 다만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서로 다른 직업을 선택한 거죠."
"그렇군요. 우리 경비견은 정말 대단해요. 지금까지 지렁이가 열번도 넘게 나타났는데 한 번도 마을 사람이 다친 적이 없어요. 물론 경비견도 무사했고요. 내가 다른 수색견에 대해서 잘 알진 못하지만 이 정도면 어느 기준으로 봐도 대단한 것 같은데, 맞죠?"

썬더는 살짝 콧김을 내뿜었다.

"저는 '대단하다' 같이 평가적이고 모호한 개념은 잘 쓰지 않습니다."
"어, 어어. 라이트닝만 그런 게 아니었네."
"네?"
"그렇게 엄청 사람처럼 말하는 거요. 아니, 오히려 웬만한 사람보다 더 말을 잘해서 가끔 놀란다니까요."
"인간은 보통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양육을 받고 또래 인간들과 친구가 되지만, 저희가 인간과 관계를 맺는 것은 대부분 업무 때문이니까요. 항상 전문가로서 말을 하니까 그렇게 들릴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래요. 거래 관계."

그리고 쇼우가 더 이상 뭐라고 말을 이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썬더가 말했다.

"어쨌든 라이트닝이 지렁이를 구축해내는 능력에 대해서 비교하실 만한 사례를 알려드리자면, 저는 지금까지 사막에서 지렁이를 만난 게 세 번입니다. 그 중 보호가 필요한 일행이 있는 상황에서는 다리에 부상을 입으면서 겨우 제압했고, 일행이 없었던 나머지 두 번의 상황에서는 모두 싸움을 피해 달아났죠. 아무런 피해 없이 지렁이를 쫓아낸 적은 없었습니다."

그제야 쇼우는 다시 얼굴이 펴졌다.

"거 봐요, 진작 그렇게 말할 것이지! 아니, 그러니까 수색견이 다치거나 도망친 건 안 된 일이지만, 아니, 내 말 뜻은 알죠?"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압니다."
"아, 저기 온다. 경비견!"

크릴의 목소리가 두 개와 사람의 어색한 분위기를 깼다. 북쪽을 바라보니 라이트닝이 길을 따라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크릴, 쇼우, 랜스."

라이트닝이 길에 나와있던 세 사람의 이름을 불러 인사했다. 쇼우가 라이트닝에게 말했다.

"지렁이는 쫓아냈어요?"
"네, 일킬로미터 이상 멀어졌습니다. 한동안은 돌아오는 일 없을 겁니다."
"이번에도 수고 많았어요. 어떻게 매번 이렇게 금방 일을 해결하는지."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그래요, 영업비밀이라는 거죠? 나도 물어본 거 아니에요. 여기 수색견한테서도 들었어요. 아무리 훈련받은 개라고 해도 지렁이를 쫓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던데."

그 말을 들은 라이트닝이 썬더를 보았다. 하지만 썬더는 남들끼리 대화하는 동안 자기 옆구리 냄새를 맡고 있을 뿐이었다.

"그랬군요. 지금 수색견은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라, 제가 이만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래요, 가서 쉬어요. 그리고 일 없으면 저녁은 우리 집 와서 먹는 게 어때요?"
"음, 수색견도 같이 가도 좋다면요."
"그야 물론이죠! 그런데 그건 수색견한테도 물어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이번에는 그곳에 있는 모두가 썬더를 바라보았다. 썬더는 갑자기 시선을 느낀 것처럼 고개를 들더니, 라이트닝과 쇼우를 차례대로 쳐다보았다.

"저도 좋습니다."
"그래요, 있다가 봐요!"

 

 

"지렁이가 오는 소리를 들었죠?"

썬더에게 묻는 라이트닝의 목소리에는 어떤 모서리가 서 있었다. 날이라고 할 만큼 예리하지는 않지만 단단한 각이 느껴졌다. 수색견 스피커가 화자의 감정을 담아내는 기능은 이렇게 미묘한 뉘앙스까지 잡아낼 정도로 강력했다. 그의 꼬리도 마치 쇠로 된 심지라도 선 것처럼 뻣뻣이 펴져 있었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썬더는 뭐 빤한 걸 묻느냐는 투로 여유있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자기 옆구리를 보며 천천히 오른쪽으로 돌았다. 두 마리 개는 라이트닝의 집에 돌아와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지렁이가 물러가자 각자의 일과로 복귀했다. 그리고 모든 가구가 개의 눈와 어깨 높이에 맞춰진 라이트닝의 집에서, 두 마리 개는 바닥에 서 있었다.

"그럼 지렁이를 쫓아내는 건?"
"그건 보거나 듣지 못했습니다. 이 몸상태로는 현장에서 빨리 벗어나는 게 당신을 돕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지렁이가 왜 마을에 접근했는지는 알겠습니까?"
"글쎄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썬더는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능청스레 뒷발로 귀 뒤를 긁었다. 라이트닝의 입술이 아주 잠깐 들렸다가 내려갔다.

"없죠, 그런 건."
"더 하실 말 없으면 저는 들어가 쉬어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남의 집에 신세를 지는 주제에 뻔뻔한 말투였지만 라이트닝은 그에 대해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방에 들어와 개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누운 썬더는 지금 자기들이 눈치게임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라이트닝이 스스로 지렁이를 불러들이고 쫓아내는 자작극을 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지렁이 서식지의 조건에 맞지 않는 이 지역에 지렁이가 지속적으로 출몰하는 것, 그 지렁이를 손쉽게 쫓아내는 것, 경비견이라는 새로운 업종이 탄생한 것 모두가 쉽게 설명되었다. 지렁이를 손쉽게 쫓아내는 방법이 무엇인지가 문제였지만, 이한이나 쇼우의 말마따나 썬더 자신이라도 그런 방법을 알아냈다면 아무에게나 공유할 것이 아니라 비밀로 지키며 자신의 영업 포인트로 삼았을 것이다.

라이트닝도 지금쯤 썬더가 진실을 눈치챘음을 짐작하고 있으리라. 애초에 라이트닝이 인간 감각의 투미함을 이용해서 이런 연극을 해온 바에야, 수색견인 썬더를 마을에 들인 것 만으로도 그에게 사실을 털어놓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수색견과 경비견의 동업자 의식이라도 기대한 걸까? 별다른 사정만 없다면 라이트닝이 마을에서 경비를 서든 사기를 치든 썬더가 상관할 일이 아니기는 했다. 그러나 역시 라이트닝의 입장에서 보면 썬더를 구한 것은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지렁이 앞에서 위기에 빠진 동족을 구한 것일까? 이 눈치 게임의 다음 수를 두고 장고하던 썬더는 결국, 되도록 빨리 마을을 떠남으로써 고민을 끝내기로 했다. 떠나겠다고 말하면 라이트닝이 보이는 반응도 있을 것이었다. 썬더의 꼬리가 바닥을 느린 속도로 탁탁 쳤다.

 

 

"말도 안 돼요!"

썬더의 떠나겠다는 말에 먼저 반응한 것은 그와 라이트닝을 저녁에 초대한 쇼우였다.

"우영이 수색견을 피투성이로 이고 온 지 이틀밖에 안 됐다고요."

알고보니 쇼우는 썬더를 치료한 동물병원 보조원과는 같은 집에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이 우영인 모양이다.

"그때 우영 옷에 묻은 피냄새가 아직도 코밑에서 나는 거 같아요. 그렇게 심하게 다친 사람, 아니 개를 치료도 다 안 하고 우리 마을에서 나가게 할 수는 없어요."

썬더는 식탁과 같은 높이로 만들어진 특별한 식탁의자 위에 서 있었다. 평소에는 라이트닝 전용이지만 오늘은 손님에게 양보하고 라이트닝 자신은 인간용 식탁의자 팔걸이에 판자를 걸쳐 그 위에 올라간 것이었다. 그래서 쇼우와 눈 높이가 맞은 썬더는 자신을 쏘아보는 눈길를 피하여 시선을 내렸다. 쇼우의 말이 끝나자 썬더는 괜히 우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 때문에 그런 고생을 하신 줄은 몰랐습니다. 늦었지만 고맙습니다."
"경비견이 그렇게 하라니까 한 거지, 고마워할 거 없수다."

말하는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기는 우영도 마찬가지였다. 첫 만남에서 썬더를 '이거'라고 칭하거나 거짓말 하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따진 게 바로 어제였다. 그때 받았던 인상에 비해 염치가 있는 사람 같았다.

"거기 둘 딴 얘기 하지 말고. 그래, 우영 당신이 말해봐요. 저 개가 지금 혼자 마을을 떠나도 되겠는지."
"아니, 내가 무슨 환자의 생명을 책임지는 의사도 아니고......"
"딴 얘기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역시나 쇼우의 목소리에는 사람과 개를 기죽게 만드는 권위가 있었다.

"딴 얘기가 아니라...... 그러니까 내가 본 대로만 말하자면, 아직 저 수색견이 사막 여행을 할 정도로 회복됐다고 보긴 어렵지요. 만약 혼자 여행을 한다면, 며칠 가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쇼우는 썬더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들었죠? 겨우 마을에서 걷는 거나 하지 사막 여행은 절대 안 돼요. 엉뚱한 생각 말고 붙어 있어요. 대체 이렇게 급하게 나가려고 하는 이유가 뭐예요?"
"저는 고용된 근로자가 아니라 자유계약자라서 말입니다. 돈을 받았으면 기한 내에 의뢰인에게 수색 결과를 보고해야 합니다."
"돈을 버는 것도 살아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썬더가 죽어요?"

어느새 쇼우의 현관 문간에 이한이 서있었다.

"이한?"
"썬더가 죽냐고요!"

다들 이한이 왜 갑자기 나타난 것인지가 궁금했지만, 굳게 다문 채 곧 터질 것처럼 흔들리는 아이의 입술을 보고 자기 궁금한 것부터 물어볼 만큼 몰상식한 어른은 그곳에 없었다.

"안 죽습니다. 치료 잘 받고 있으니 걱정할 거 없습니다."
"그, 그렇죠?"

그러나 계속 입술을 삐죽삐죽하던 이한은 결국,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으헝엉"
"이한아, 미안해. 썬더 안 죽어. 걱정 마. 누나가 장난으로 말한 거야."
"엉엉엉"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여기 우영이 치료를 아주 잘 했습니다."
"그래, 맞아. 아저씨가 이래봬도 개 수술만 백 번을 했어."

모두가 진땀을 흘리며 이한을 달랬다. 이한은 '개 수술'이라는 말을 듣자 울음을 그쳤다. 그러나 이에 안심한 것은 썬더의 실수였다. 살을 뜯고 헤치는 행위에 대한 공포감이 새로 사귄 친구를 잃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대체한 것이다. 이제 이한은 억눌린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썬더가 의자에서 뛰어내렸다. 가서 이한에게 몸을 치대든 할 생각이었다. 그때 무언가 생각하고 있던 라이트닝이 말했다.

"썬더는 나만큼 강합니다."

이한을 포함한 모두가 라이트닝을 쳐다보았다. 라이트닝도 의자에서 뛰어 내려 천천히 이한에게 걸어왔다.

"그 정도 상처나, 사막의 지렁이 따위는 우리한테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한의 눈은 여전히 붉고 코를 훌쩍이고 있었지만,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크게 뜨인 눈과 살짝 벌어진 입을 보면 이한이 자기 영웅의 말에 설득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썬더는 안 죽을 겁니다."

이제 이한은 완전히 진정했다. 아직 식탁에 앉아 있던 두 사람도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이한에게 다가가려던 썬더는 멋쩍게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내 말을 믿죠?"
"믿어요, 라이트닝."
"그래, 내가 걱정말라고 했잖아."

쇼우가 덧붙였다.

"그럼, 우리 집에 왜 온 건지도 말해줄래?"
"아, 맞아요."

이한이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는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쇼우에게 내밀었다. 쇼우는 의자에서 내려와 가방을 받았다. 안에 든 것은 뼈가 그대로 붙어있는 익히지 않은 소갈비였다.

"엄마가 라이트닝과 썬더에게 고맙다고 하랬어요. 고기는 사람들이랑 나눠 드시고요."
"아, 엄마한테 꼭 고맙다고 전해드려. 그럼 라이트닝하고 썬더에게 인사해야겠구나."
"네, 고맙습니다."

이한이 썬더와 라이트닝에게 차례로 허리를 꾸벅꾸벅했다.

"아니, 오히려 내가 고맙습니다. 이한이 바로 마을로 달려가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려준 덕분에 다들 무사했던 겁니다."

라이트닝의 대답이었다.

"그럼 이한이도 같이 앉아서 저녁 먹을래?"
"엄마가 고기만 전해드리고 바로 오라고 했는데......"
"괜찮아, 엄마한테는 내가 말씀드릴게."

이한은 엄마의 명확한 지시와 자신의 영웅들의 식사자리에 참석할 기회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제 자리에서 좌우로 허리를 몇 번 돌리던 결국 결심한 듯 말했다.

"그럼 누나가 나 꼭 여기서 먹어야 한다고 말해줘요. 왜냐면 라이트닝이 저한테 고맙다고 했으니까."

아마도 이한은 라이트닝이 이한에게 감사를 표하며 간곡히 저녁식사에 초대해서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엄마에게 말하고 싶은 것 같다. 마을을 지키는 능력 뿐 아니라 엄마를 설득할 권위까지 라이트닝에게 있는 것이다. 썬더는 이한의 말을 듣고 있는 라이트닝의 눈길을 살폈다. 수색견, 혹은 경비견 특유의 형형한 눈동자가 아이를 쏘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위협이 담긴 시선은 아니었다. 이 경비견과 마을 주민들 사이의 단단한 신뢰는 상호적인 것이다. 거짓에 기반한 신뢰란 게 문제였을 뿐. 썬더는 만약 이들이 라이트닝의 진실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쇼우가 이한의 보호자에게 연락하기 위해서인지 잠시 식탁을 떠났다. 우영은 이한이 앉을 수 있게 어른용 식탁 의자 위에 쿠션을 올렸다. 마찬가지로 의자 위에 판자를 얹어 식탁에 임한 라이트닝과는 닮은 꼴이었다. 쇼우가 돌아와 이한에게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하자 이한은 라이트닝과 마주보며 비로소 활짝 웃었다.

함께 저녁을 들던 중 우영이 말했다.

"그런데 경비견, 혹시 내가 전에 말한 문제 기억해요?"
"어떤 문제죠?"
"우리 마을이 도시에서 11킬로미터 선에 걸쳐 있어서 원래 지렁이 출몰지역이 아니라는 거. 그 뒤로 나름대로 조사를 좀 해봤거든요. 그런데 다른 곳은 지렁이 출몰지역 분포가 틀리는 일이 없대요. 도시 사람들이 자기네 가까이 사는 지렁이는 싹 소탕을 했고 나머지 지렁이는 그 생태가 충분히 다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 마을에 지렁이가 몇년에 한 번쯤이면 몰라도 이렇게 계속 나타나는 건 말이 안 된대요."
"그렇습니까."

라이트닝은 앞발로 고기를 잡고 입으로 뜯으면서 대답했다. 말을 입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썬더로서는 조금 의외였다. 지금 우영과 눈을 마주치지 안고 스피커로 대충 대답하는 라이트닝의 태도는 자신없어하거나 미안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내가 대체 왜 이런 거냐고 물어봤더니, 그 사람, 그러니까 그 동물병원장 하는 말이 어떤 고약한 사람이 일부러 마을로 지렁이를 보내는 건 아니겠느냐 해요. 그래서 말이 되느냐, 이 세상에 지렁이를 오라가라 하는 사람이 있느냐 하니까, 지렁이를 쫓아내는 게 어렵지 유인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럼 지금 어느 미친 놈이 우리 마을을 찍어서 괴롭히고 있단 거예요? 이런 씹어먹을 도시 놈들! 우리가 지들에게 무슨 피해를 준다고 이런 짓까지 해."
"아니, 누가 일부러 그런다는 게 확실한 건 아니고......"
"아니면 뭐겠어요! 심지어 지렁이 출몰지역에서도 이렇게 매달 꼬박꼬박 공격받는 일은 없는데, 안 그래도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무슨 말이에요, 누나? 악당 이야기에요?"
"어, 맞아. 아주 나쁜 악당. 정말 생각할 수록 열받네. 마침 지렁이가 처음 온 날부터 경비견이 마을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그동안 마을 사람들 몇 명이 죽었을 지도 모를 일을!"

쇼우의 분노 앞에 괜히 말을 꺼낸 우영마저 주눅들었다. 이한은 음식을 씹는 것도 멈추고 어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새로운 악당의 출현 소식에 오히려 흥분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내막을 알고 있는 썬더와 라이트닝은 묵묵히 자기 앞의 고기를 계속 뜯었다.

"어떤 놈인지 찾아내야겠어."
"어떻게요?"

쇼우의 굳은 목소리에 우영이 되물었다.

"어떻게든 찾아야죠. 우리 목숨이 달린 일인데."
"하지만 어떻게 말이에요."
"으으"

그때 낑낑대는 쇼우를 보고 이한이 말했다.

"썬더한테 맡기면 되잖아요! 썬더는 사람을 찾아주는 수색견이라면서요. 물론 라이트닝도 찾을 수 있겠지만 라이트닝은 마을을 지켜야 하니까, 우리 썬더에게 부탁해요."
"뭐? 수색견, 정말 그런 것도 할 수 있어요?"
"의뢰만 하신다면야 해볼 수는 있습니다. 비슷한 경험도 있고요. 하지만......"
"아, 그래요. 비용이 만만치 않겠죠."

사실 썬더가 쇼우의 집에 처음 들어오던 순간 깨달은 것은, 집이나 가구가 모두 라이트닝의 것보다 값싸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무장한 수색견이 보병 1개 소대에 대항할 전투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그만큼 몸값이 나간다는 것을 뜻했다. 마을 사람들과 라이트닝의 생활 수준으로 볼 때 라이트닝이 인간 40명치의 급여를 받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을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을 것은 분명했다. 거기에 수색견 썬더까지 고용하는 것은 마을을 파산 상태로 이끌지도 몰랐다.

"내가 직접 도시에 가서라도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건지 알아내야겠어요. 우리 마을을 싫어하는 놈들부터 붙잡고 조, 아니 따져봐야지."
"하지만 우리 마을에 그런 걸 같이 해줄 사람이 없을 거 같은데, 혼자서 할 수 있겠는가요?"
"우영한테 같이 가달라고 안 할테니 걱정 마세요."
"저요, 제가 같이 갈게요!"

이한이 손을 번쩍 들었다.

"너는 안 돼. 물론 이한이는 마을에서 최고로 용감한 사람이지만, 도시 경험이 많지 않아서 조금 어려울 거야."
"아니에요, 도시 사람들 제가 다 주먹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어요!"

썬더는 그 사람들에게 모두 쓸 데 없는 고민이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같은 수색견 출신인 라이트닝에게 동업자 의식이 없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 자유계약자의 입장에서 볼 때 업계의 신용을 갉아먹을 수 있는 라이트닝의 행위는 엄청난 리스크였다. 끝까지 아무도 진실을 밝히지 못한다면 업계의 신용이 깍일 일은 없겠지만 그것은 요행이 따라줘야 하는 일일 뿐더러, 이렇게 라이트닝을 믿는 주민들에게 미안함과 부채감을 느낄 일이기도 했다. 결국 썬더는 나중에 후회할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 화내고 적극적으로 뭘 알아보실 필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무슨 뜻이죠?"

쇼우의 흥분한 목소리가 공격적으로 들렸지만 정말 궁금한 내용을 물어보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일단 지렁이와 관한 일이니까 제 일로 하죠.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라이트닝이 썬더의 말을 끊었다.

"하지만 경비견은 마을을 지켜야 하니까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 하잖아요."
"그래도 알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게요, 쇼우의 말대로 수색견 최고의 무기는 예민한 감각인데 마을 안에서 그걸 얼마나 발휘하시려는 건지 저도 궁금합니다."

썬더가 말하자 라이트닝은 아주 작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사람들은 듣지 못할 소리였다. 부상을 입은 썬더로서는 그 소리에서 이미 명백한 힘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마을을 떠나는 건 둘째치고, 이제 썬더는 이 저녁자리를 더 견디기 힘들었다. 조금만 더 있다가는 라이트닝과 싸우거나, 모든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거나, 둘 다 하게 될 것 같았다.

"그럼 다들 식사하시는 중에 갑자기 죄송합니다만, 먼저 자리를 떠도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긴 시간 외출이 아직 몸에 힘이 드네요."
"아, 그래요, 수색견. 휴식이 중요하죠."

썬더는 의자에서 뛰어내렸다.

"죄송합니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잘 가요, 썬더!"

이한이 인사했다. 우영은 썬더에게 고개만 끄덕였다. 라이트닝은 조용히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아직 오래 달릴 체력이 되지 않는 썬더는 보통의 걸음걸이로 마을에서 멀어져갔다. 지렁이만 만나지 않는다면 도시까지 돌아갈 물과 식량은 충분했다. 밤에 사막의 기온이 내려가는 것 또한 다용도 스피커의 체온조절 기능 덕에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지금은 어서 이 마을에서 떨어져, 도시의 의뢰인에게 돌아가는 것이 중요했다.

라이트닝의 행위에 대해서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예상일 수도 있지만, 현직 수색견인 썬더가 먼저 라이트닝의 사기행각을 공적으로 밝히면 업계 자정작용의 예로 작용하여 오히려 수색견의 신용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지도 몰랐다. 그러나 역시 지나치게 낙관적인 예상 같다는 게 문제였다.

공적으로 밝히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한 사람에게는 이에 대해서 알릴 필요가 있었다. 썬더는 지금까지 자기 탓으로 의뢰에 실패한 적이 없는 수색견이었다. 그 평판을 유지하려면 이번 일이 정말 중요했다.

썬더는 느리지만 꾸준하게 발을 옮겼다. 사막신발을 제대로 착용하고 천천히 걷는다면 그 때문에 지렁이를 끌어들일 일은 없었다. 물론 그저께는 지렁이를 만났지만 그 지렁이를 부른 것은 썬더의 발걸음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느껴지기 시작한 땅의 진동 또한, 썬더가 불러들인 것이 아니었다.

썬더는 욕설을 내뱉고 걸음을 멈췄다. 라이트닝이 지렁이를 조종해서 쫓아온 것이라면 지금처럼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도망쳐봤자 지렁이를 따돌릴 가능성은 전무했다. 대신 썬더는 스피커의 출력을 최대로 해서 외쳤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지렁이가 땅을 울리는 소리 속에 개의 발소리가 섞여들기 시작했다. 썬더를 향해 달려오던 그 소리는 둘의 거리가 줄어들자 차차 느려졌다. 마침내 어둠 속에서도 사막의 별빛에 의지하여 서로를 시각으로 확인할 정도의 거리가 되자 라이트닝이 대답했다.

"당신이야말로 어쩌자는 겁니까. 내 영업 비밀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릴 생각이었어요?"
"지렁이를 유인하거나 쫓아내는 방법은 영업 비밀이겠지만, 일부러 지렁이를 마을로 유인하고 경비견 고용료를 받는 것은 사기입니다."
"뭔가를 숨기는 게 저만은 아닌 거 같습니다만."

썬더는 다리가 후들거린 것이 라이트닝의 낮은 목소리 때문인지, 말의 내용 때문인지, 아니면 썬더의 등 뒤에 나타난 지렁이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사실은 이 역시 눈치게임의 일환에 불과했다. 

"당신이 우리 마을 옆을 지날 때, 사막신발을 신은 것은 물론이고 최대한 발소리가 묻히도록 모래가 불규칙한 높이로 쌓인 길을 골라서 가고 있었지요. 이는 지렁이를 피하는 일반적인 사막행 지침이지만, 도시의 지도 상에서 마빈 마을 주변은 지렁이 출몰지역이 아닙니다."

썬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당신이 지렁이에 대한,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죠. 그리고 도시 사람들은 이 주변에 지렁이가 2년째 나타나고 있는데도 이를 모를 정도로, 마빈 마을에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마빈과 도시의 교류는 오로지 마빈 주민의 도시행을 통해서만 이뤄집니다. 이렇게 누구도 볼 일이 없고,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지렁이의 위험까지 있는 마을에 수색견이 나타났다면, 비상식적인 지렁이 출현 자체가 임무와 관련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썬더도 라이트닝도 서로 상대가 아는 것을 다 아는 빤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썬더는 이 근처에 지렁이를 조종하는 능력자가 있는 것 같으니 그에 대해 알아보라는 의뢰를 받고 온 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이 모든 상황이 눈치게임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수색견은 변호사와 탐정들로부터 물려받은 직업윤리 때문에 그 내용을 자기 스피커로 직접 말할 수 없었다. 라이트닝이 썬더에게 말했다.

"이해합니다. 계약상 의뢰 내용은 비밀로 되어 있겠죠."
"하지만 수색견의 비밀엄수 의무가 깨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썬더는 몸을 한 번 푸르르 턴 후 이어서 말했다.

"의뢰 자체라 불법적인 내용일 때지요. 예를 들어 당신이 수행하고 있는 그런 의뢰요."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는 게 어디가 불법적이란 말입니까?"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하는 것이 용인되는 경우는 상황이 긴급하고 누군가를 보호할 다른 방법이 전혀 없을 때 뿐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명백한 범죄입니다."

라이트닝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었는지 갑자기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아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거, 아무래도...... 저도 똑같은 대답 밖에 못 드리겠네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도시에서는 항상 지렁이를 수백마리는 끌어들일 소음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시 주변 11킬로미터 이내 사막에서는 지렁이의 씨를 말렸죠. 그리고 도시가 사막으로 뻗어나가는 걸 최대한 억제했지만, 소음이 커지는 것은 막을 생각을 못 했습니다. 결국 11킬로미터 바깥 구역의 지렁이까지 도시의 소리에 끌려오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소음은 계속해서 더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렁이의 출몰은 단 3회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별도의 소탕작전 없이도요."
"그럼 잘 된 일 아닙니까?"
"결과적으로 잘 된 일이지만, 어찌 된 사정인지 궁금해할 사람은 있겠죠. 예를 들어서, 도시를 지키려는 누군가가 개 몇 마리를 고용해서 지렁이가 도시에 너무 가까이 오기 전에 다른 곳으로 유인하고 있다는 식의 상상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유인한 지렁이를 대체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 질문들에는 앞으로도 대답을 얻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라이트닝은 대답 대신 등 뒤에 있던 지렁이를 쏘아보냈다. 그러나 썬더 또한 쇼우의 집을 나설 때부터 라이트닝과의 교전을 예상하고 있었다. 썬더가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자 이미 라이트닝을 겨누고 있던 레이저총의 총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라이트닝이 몸을 피함과 동시에 총이 발사되었다. 썬더가 제 자리에 있었다면 움직이는 라이트닝의 움직임과 동기화된 총구가 끝까지 라이트닝을 겨누었겠지만, 썬더가 지렁이를 피해 달리면서 동기화가 깨져 레이저는 라이트닝의 뒷다리를 스쳤다.

그 사이에 지렁이의 입은 썬더가 있던 자리를 덮쳤다. 썬더는 옆으로 몸을 피한 뒤였지만 바로 옆에서 지렁이가 땅을 들이받는 소리에 귀가 멀 것 같았다. 썬더가 일시적으로 균형을 잃으며 비틀거리자 라이트닝이 다시 지렁이에게 신호를 보냈는지 지렁이가 그대로 고개를 왼쪽으로 흔들어 썬더의 몸통을 쳐냈다. 썬더는 거의 10미터를 날아가서야 바닥에 떨어졌다. 축 늘어진 썬더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걸로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썬더의 몸통이 다시 땅바닥에 고정되면서 레이저총의 동기화 모드가 켜졌다. 라이트닝은 수색견 스피커와 레이저 총대를 연결하는 기어 특유의 소리를 듣고 옆에 있는 모래언덕을 향해 뛰면서 지렁이를 앞으로 불렀다. 레이저는 지렁이의 등 쪽을 관통해 모래언덕에 꽂혔다. 지렁이가 고통에 몸부림 치자 모래가 사방으로 피어오르며 공기가 뿌얘졌다.

이번 레이저는 라이트닝에게 닿지는 않았지만 라이트닝은 먼저 입은 상처에 모래 알갱이가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지만 더 큰 문제는 가슴에서 나는 냄새였다. 라이트닝은 레이저가 자신의 스피커에 맞았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라이트닝이 말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각종 무기를 통제할 수 없음을 뜻했다. 그리고 지금 그 무기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은, 레이저를 맞은 고통에 사막의 지형을 국지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지렁이였다.

라이트닝은 모래언덕 뒤에서 벗어났다. 사방에 날리는 모래에 시각의 효용은 저하되었고, 썬더의 레이저총 기어 소리를 확인하려 했지만 이 또한 지렁이가 내는 소음에 파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라이트닝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지렁이를 왼쪽으로 크게 우회하여 썬더가 내던져진 곳으로 접근했다. 썬더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기어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지렁이와의 싸움 끝에 결국 고장난 모양이었다.

갑자기 썬더와 지렁이가 라이트닝의 시야에 들어왔다. 라이트닝은 어느새 모래먼지와 지렁이의 소음이 가라앉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렁이가 통증에 적응한 것인지 땅 위로 몸을 세운 채 윗부분을 구부려 입으로 썬더에게 겨누고 있었다. 라이트닝은 자기도 모르게 지렁이에게 물러나라는 지시를 했지만 망가진 스피커로는 어떤 명령도 전달되지 않았다. 라이트닝은 3년 만에 처음으로 크게 짖는 소리를 냈다.

익숙하지 않은 소리에 지렁이가 멈칫하는 것 같았다. 라이트닝은 계속 짖었다. 썬더의 고개가 들렸지만 일어날 힘은 없어보였다. 라이트닝은 지렁이의 행동을 예측해보았다. 라이트닝의 명령 체계가 망가진 이상 지렁이가 보기에 둘 중 썬더와 라이트닝 중 자기에게 위협이 될 녀석은 이미 레이저를 쏜 적이 있는 썬더였다. 게다가 지금 당장은 썬더가 쓰러져 있어서 더 공격하기 쉬운 상대이기도 했다. 아직 뒷다리의 작은 상처 외에 다친 데가 없는 라이트닝이라면 지렁이가 썬더를 공격하는 사이에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렁이가 마지막 공격을 장전하는 듯 썬더가 누운 쪽 반대편으로 살짝 머리를 당겼다. 라이트닝이 그 틈을 타 달리기 시작했다. 지렁이의 머리가 그야말로 장전된 화살처럼 썬더에게 발사되었다. 라이트닝이 지렁이를 향해  도약한 직후 오른쪽 앞발로 가슴을 쳐 기계식으로 작동 가능한 유일한 무기인 스피커 내장 폭탄의 기폭장치를 켰다. 스피커가 라이트닝의 가슴에서 지렁이의 목으로 떨어졌다.

마지막 무기의 폭압에 라이트닝의 몸뚱이가 하늘로 쏘아올려졌다. 몸 아래쪽이 땅속에 박혀있던 지렁이는 그런 식으로 나가떨어질 수는 없었다. 지렁이의 목에 직경 60센티미터 가량의 구멍이 생겼다. 결국 그 입은 썬더를 삼키지 못했다. 3초 후 라이트닝이 가벼운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썬더가 정신을 차린 것은 한낮의 열기에 두 시체가 마르기 시작할 때였다.

 

***

 

"그것이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의뢰를 완수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숨죽여 이야기를 듣던 푸올로가 뜻 밖의 말을 듣자 반문했다.

"왜요? 수색견의 의뢰는 보통 목표를 찾아내는 것으로 끝이지 않습니까? 라이트닝이 죽었다고 하더라도 그냥 사실을 보고했으면 됐을 텐데."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대체 왜요?"

푸올로는 이야기의 결말을 궁금해하며 자기도 모르게 꼬리를 탁탁 치고 있었다. 쉽게 대답해주지 않는 썬더를 보며 푸올로는 아까 썬더가 이미 바깥의 안전을 확인하고서도 푸올로가 바닥에 주저 앉은 것을 질책한 때를 떠올렸다. 원래 사막돌파 훈련에서 이 정도는 생도를 놀려주는 건가. 푸올로의 꼬리가 바닥을 열한번째 쳤을 때 마침내 썬더가 말했다.

"이제 그만 가죠."
"네?"
"밖에 손님이 와 있습니다."

그제서야 푸올로는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과연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평균체중으로 치자면 십대 후반 남성 정도에 해당하는 것 같았고, 몸놀림도 가벼운 것이 역시 젊은 사람으로 판단되었다.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두 마리 수색견에게 폭력으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푸올로는 버려진 마을에서 사람을 마주치게 된 사실에 잔뜩 긴장해 꼬리를 낮추고 귀를 세웠다. 그러다가 썬더의 꼬리가 올라가 살살 흔들리는 것을 본 푸올로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교관님?"
"네."
"경계 태세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

썬더는 꼬리를 멈췄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저는 밖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군요. 아마 적대적이지는 않을 겁니다."
"네?"
"한 번 나가 보죠."

그렇게 말하더니 썬더는 옷장에 있던 라이트닝의 스피커를 입에 물고 방을 나갔다. 푸올로는 앞서 나가는 썬더의 뒤를 따랐다. 어쨌든 썬더는 10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베테랑이었다. 수색견은 생활습관을 관리하고 수의사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말 못하는 자연견과 달리 평균 수명이 30년은 되었다. 지금 썬더는 경험과 체력을 모두 갖춘 개이기 때문에 푸올로도 그를 믿은 것이다.

썬더는 일부러 집의 현관문을 세게 밀어 소리를 냈다. 맞은 편에서 무슨 도구로 바닥을 긁고 있던 소년이 일어나 뒤로 돌았다. 두 마리 개를 본 소년의 눈이 커졌다.

"어, 수색견? 여기는 무슨 일이죠?"
"저희는 사막 돌파 훈련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우연히 버려진 마을을 발견해서 훈련 삼아 수색 중이었습니다."

썬더가 스피커를 입에 문 채로 대답했다.

"버려진 마을이 아닌데......"
"원래 이 마을의 주민이셨죠?"
"네, 그건 맞아요."
"이 스피커를 받으시지요."

썬더가 소년에게 다가갔다. 스피커를 받아든 소년의 눈이 더욱 커졌다.

"라이트닝."
"당신이 그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이한."
"네? 저를...... 이럴 수가."

썬더는 천천히 꼬리를 흔들며 말했다.

"스피커 덮개 안에서 종이와 잉크 냄새가 났습니다. 제 생각에는 라이트닝이 이한, 혹은 마을 사람들에게 뭔가를 남긴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한은 다급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덮개 뚜껑을 열었다. 과연 그 안에는 겹쳐서 서툴게 두 번 접힌 종이 석 장이 들어 있었다. 이한이 스피커를 내려놓고 종이를 펼쳤다. 아직도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이한의 크고 맑은 눈망울에 마을의 모습이 점점 더 뚜렷이 비치기 시작했다. 이한이 눈을 꼭 감았다 뜨자 눈가에 맺혀 있었던 마을이 아래로 떨어져 모래바닥에 작은 점을 남겼다.

썬더는 스피커 안에 들어 있던 또 다른 물건의 냄새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것은 썬더가 라이트닝과 교전할 때 사용했던 것과 같은 레이저총의 냄새였다. 그 날 라이트닝은 지렁이를  격퇴할 때 필요한 폭탄을 소지했을 뿐, 정작 썬더를 상대하는 데 필요한 무기는 챙기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깨닫고 나자 썬더는 라이트닝이 남긴 편지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모든 것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내용일까. 작별을 고하는 것이었을까. 마을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된 견생사가 적혀 있을까. 어느 쪽이든 썬더가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이 이별의 시간은 라이트닝과 이한의 것이었다.

썬더는 조용히 이한한테서 등을 돌렸다. 푸올로도 더 이상 썬더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두 마리 수색견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걸을 줄 알았다. 모래바닥에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지만, 그 소리를 듣고 달려와 소년의 눈물을 핥아주는 개는 없었다.

마침내 다시 불기 시작한 모래바람이 소년의 발 밑에 생긴 점들을 지웠다. 날빛이 황혼으로 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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