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1.

“안 내면 진 거, 가위바위보!”

여덟 개의 가위 사이에 유일한 주먹은 순아였다.

점심식사 후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홍보팀 사람들까지 끼인 탓에 9명의 커피 값이 걸린 대승부였던지라 모두 오금을 저려 했지만 순아는 그렇지 않았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가위바위보에서 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특별한 방법이나 이유는 몰랐다. 그저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남은 과자 부스러기를 서로 먹겠다고 승부를 갈라야 했던 유년기 때도, 떡볶이값을 몰아주던 학창 시절 때도 순아는 한 번도 무엇을 내야 할지 고민하지 않고도 당연한 승리를 얻었다. 여럿이 가위바위보를 하는 경우에는 이기는 여럿 중 끼어있어 눈에 덜 띄기도 했고, 가위바위보가 아닌 엎어라 뒤집어라, 제비뽑기, 사다리 타기 같은 선택지가 있는 내기에서는 되려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편이었기에, 가위바위보 승부가 잦은 학창 시절 내내 순아 스스로도 자신의 특별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운이 좀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대학교 신입생 때였다.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내야 하는 폭탄주 게임에서 계속해서 이기는 바람에 홀로 취하지 않게 된 날이었다. 집이 같은 방향이라 늘 함께 돌아가다 보니 마음에 두게 된 남학생이 택시 안에서 한껏 취한 말투로 물었다.

“안 졌지? 가위바위보.”

“뭐?”

“너 안 졌어. 내가 너 걸리면 흑기사 하려고… 근데 안 지더라. 한 번도.”

“그랬나?”

“어떻게 매번 이기는… 우욱.”

그날 택시와 길거리에서 연신 오바이트를 해대던 남학생의 등을 두드리다가, 순아는 자신이 정말 이제껏 단 한 번도 가위바위보에서 져본 적이 없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혹시 그런가? 정말 그런가? 싶은 마음에 집 가던 길에 취기를 빌려 편의점 알바에게 괜히 가위바위보를 제안해보기도 했다. 물론 삼세판 모두 이겼다. 이후로도 며칠간 저마다 다른 상대들과 백 번가량 가위바위보를 진행해 모두 이긴 순아는 이렇게 계속해서 '우연히'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 보았다. 한 번 이길 확률을 3분의 1, 대략 33퍼센트라고 가정했을 때 연달아 백 번을 이길 확률은 무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9403252174%였다.

어찌나 강력한지, 손이 아닌 발로 해보거나, 온라인으로 해보는 경우에도 늘 이겼다. 심지어 일부러 지고 싶어도 지지 못했다. 이쯤 되니 순아는 자신의 능력이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능력일지 저주일지 모를 일이었다. 이를 조금이나마 눈치챘던 짝사랑 남학생은 필름이 끊겼었는지 순아의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이는 순아 혼자만의 비밀이 되었다.

졸업 후 한동안은 이 기이하고 하찮은 능력을 어떻게든 써먹어보려고 고민해본 적도 있었다. 영화에서 보면 이런 능력으로 라스베가스 같은 데서 돈을 따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가위바위보로 돈을 딸 수 있는 도박은 어디에도 없었다. 괜히 까불었다가 또 다른 영화에서처럼 이름 모를 국가기관에 잡혀가 인체실험을 당하는 될 수도 있었다. 한번은 이력서 특기란에 '가위바위보'라고 썼다가, 승부욕 강한 회사 상무님을 내리 17번이나 이기는 바람에 융통성 없다고 면접에서 떨어진 적도 있었다. 핀란드에서 열린다는 가위바위보 세계대회에 참가하여 우승 상금을 노려보는 것도 생각했지만, 우승 상금이 거기까지 가는 비행기 값과 별단 다르지 않다는 것과 마침 준비하던 취업 면접 일자와 겹치는 바람에 포기하였고, 그 면접에 붙어 지금의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굳이 유일한 업적이라고 한다면 핸드폰으로 하는 가위바위보 게임에 익명으로 참여하여 500연승을 거둔 것이 전부였다.

가위바위보에 이기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순아의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질 리 없는 것이었다. 가위바위보로 취직을 시켜주거나, 연봉을 더 주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의 순아에게 가위바위보 능력이란 그저 아까처럼 회사원들의 커피 내기에서나 빛을 발했다.

분명히, 오늘 퇴근 전까지는 그랬다.

 

 

 

2.

2022년 3월 1일 19시 57분 12초. 하와이 마우나케아산에 위치한 국제천문연구원 소속 크리스토퍼 박사 연구팀은 인류 최초로 외계에서 온 신호를 포착했다. 그전까지는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분명하고 명확한 신호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가위]

'가위 프로젝트(Scissor Project)'라는 이름이 붙여진 극비리의 연구는 하루 만인 3월 2일 같은 시간에 두 번째 신호가 포착되자 더 이상 숨길 수만은 없게 되었다. 두 번째 신호는 다음과 같았다.

[바위]

온갖 추측이 난무하며 긴가민가했던 것들이 자명해졌다. 적어도 가위와 바위 다음이 무엇일지는 누구나 아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프로젝트의 이름이 'RPS 프로젝트(Rock, Paper, Scissors Project)'로 바뀐 것이 이를 증명했다. 또 다른 추측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연구진 중 한 명이, 20년 전 이와 관련된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다가 철저하게 무시당했었던 한 과학자를 기억해냈다. 그는 현재는 사망했다고 알려진 민홍구 박사였다.

민박사의 논문인 '고대문명 속 가위바위보에 대한 고찰'은 가위바위보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면서 시작된다. 한국말로는 '가위바위보', 중국어로는 '스토우 지앤다오 뿌(石头剪刀布)', 일본에서는 '쟌켄퐁(じゃんけんぽん)', 스페인어로는 'Piedra, papel o tijera', 영어로는 'Rock, Paper, Scissors', 독일어로는 '슈니크, 슈나크, 슈누크' 등으로 알려진 이 게임이 그 기원을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되었다는 것이었다.

식상하게도 피라미드나 성경 등을 예시로 들고 있는 2000페이지짜리 연구조사 논문 결과를 몇 줄의 문장으로 축약하자면, 우리가 알고 있는 가위바위보는 대략 기원전 5,000년, 고대의 인류가 외계인들로부터 전해받은 게임이며, 당시 외계인들의 지배를 받던 인류가 투쟁 끝에 외계인과 가위바위보 대결을 하게 되었고, 인류가 승리함으로써 외계인들이 잠시 물러나게 되었지만, 언제든 그들이 다시 찾아와 재대결을 요청할 것이라는.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연구진들이 이를 무시할 수만은 없었던 것은, 그의 논문 마지막 장에 적혀있는 재대결 예측시기가 바로 정확히 2022년 3월 3일, 바로 내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소오름."

연구진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하루 간의 혼돈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3월 3일이 되었지만, 대처 방법에 관한 의견은 여전히 엇갈렸다. 연구진들은 물론 이를 알게 된 전 세계의 정상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이들은 민박사의 논문에 따라 가위바위보 대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지만, 대다수의 이성적이고 제대로 된 연구진은 이를 허황된 이야기로 치부할 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되자 세 번째 신호가 도착하였다. 예상대로였다.

[보]

연구진과 각국 지도자들은 잔뜩 긴장했다. 뭔진 몰라도 가위바위보가 모두 나왔으니, 본격적인 다음 수순이 있을 거라 예상했던 것이었다. 외계인의 등장과 이어지는 무리한 요구 혹은 협박, 그리고 전쟁까지 생각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 무렵 누군가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저기!"

어두운 하늘에 달이 보였다. 다만 우리가 흔히 아는 달의 모습과는 달랐다. 가위였다. 달이 가위 모양이 되어 있었다.

곧이어 또 다른 신호가 도착했다.

[1 대 0]

"대박적."

연구진 중 누군가가 또 중얼거렸다.

 

 

 

3.

이후의 사람들이 '그날'이라고 부르게 된, 그날은 공교롭게도 금요일 밤이었다. 야근의 연속이었던 한 주를 마친 순아는 퇴근길 버스를 타고 마포대교에 멈춰있었다. 버스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아니 거의 모든 차량들이 멈추어 선 채로 가위 모양이 된 달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란 게 있다면 이런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30분 남짓 동안, 세상에 큰일이 나긴 났구나 싶을 정도로 온갖 추측과 음모들이 온·오프라인을 뒤덮었다. 갑작스러운 전 지구적 사태에 대해 설명해줄 만한 대답이 필요했다. 오래지 않아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정상들은 긴급한 성명을 공동발표했다.

“친애하는 지구 인류 여러분...”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성명문은, 비장하고 엄숙하며, 무엇보다 전 세계 SF팬들이 기다리고 기다렸을 만한 문장이었다. 내용은 달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고 현재 그 원인과, 지구에 미치게 될 파장, 그리고 대책에 대해 인류 최고의 과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다는 것이었다. 납득할만한 대답은 아니었기 때문에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새벽까지 온라인상의 온갖 썰 들에 대해 검색해보느라 잠을 자지 못하고 있던 순아는 민홍구 박사의 논문과 관련된 썰도 보게 되었다. 외계인과 가위바위보 대결이라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갈 때까지 갔구나 싶은데.

현관벨이 울렸다. 벌써 왔는가, 닭발?

야식을 주문했었다. 닭발과 맥주. 모처럼의 금요일 밤인데, 이어지는 뉴스속보들로 드라마도 예능도 모두 결방이었다. 비상상황에도 배는 고팠고 배달 또한 건재하게 접수 되었다. 이 나라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면 좀비를 피해서라도 배달 올 나라였다.

별 생각없이 문을 벌컥 연 것이 잘못이었다. 배달부라기엔 너무 차려입은, 검정색 정장 차림의 남녀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임순아씨 맞으시죠? 청와대에서 나왔습니다. 급한 일입니다."

두 요원이 동시에 청와대 배지를 내밀며 말했다. 순간적으로 고객유치를 위한 닭발집의 새로운 배달 이벤트인가 생각하면서 뱃지를 살폈지만 어디에도 닭발이라든지, 이벤트라든지하는 글씨는 없었다. 청와대? 새벽에? 우리집에? 왜? 정말 닭발 아니고?

"청와대요? 그, 대통령...?"

"맞습니다. 같이 좀 가셔야겠습니다. 지금 바로."

고양이가 그려진 하늘색 잠옷을 입은 채 검정색 정부 차량을 타고 청와대로 향하는 동안, 두 요원들에게 들은 말은 '도착하면 설명해주실 겁니다'뿐이었다. 살면서 딱히 큰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잊고 있었던 온갖 죄스러운 일들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쳤다.

초등학교 때 문방구에서 깜빡하고 계산 안 했던 일부터, 고등학교 때 친구의 애인과 살짝 썸을 탔던 일, 회사 카드로 몰래 파스타 먹었던 일, 아차, 그러고 보니 무슨 세금 내야 된다고 독촉증 같은 게 왔었던 것도 같은데 그걸로 청와대에서 올 거 같진 않고, 굳이 관련 있는 거라면 정부의 부동산정책 관련한 뉴스에 '싫어요' 한 번 눌렀던 적 있었는데 그걸까?

"최강zi존@91 맞으시죠?"

회의실에 둘러앉은 이삼십여 명의 정부 기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유치뽕짝 게임 아이디가 불려지자 크게 당황한 순아는 뭐라 답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아, 그게... 중학교 때부터 쓰던 아이디라서 별 생각없이..."

어쩐지 변명을 하고 있던 순아의 말을 끊으며, 질문했던 국가위기관리센터의 김차장이 말을 이어 나갔다.

"아시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긴급한 상황이다 보니, 익명이셨던 아이디를 저희가 수소문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앉으시면 상황설명 드리겠습니다."

순아는 자신과 비슷한 표정과 잠옷 차림으로 멀뚱히 앉아있는 세 사람의 옆으로 안내받았다. 모르긴 몰라도 이들도 순아처럼 아닌 밤중에 날벼락을 맞고 이곳까지 온 게 분명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대통령님 오십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정쩡하게 따라 일어난 순아의 눈에 회의실로 급히 들어오는 대통령이 보였다. 정말, 진짜 TV에서 보던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은 순아를 비롯한 네 명의 어중이떠중이를 보고는 고개를 숙여 간단히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회의실 불이 꺼지면서 프리젠테이션 화면이 켜졌다.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가위바위보 긴급사태에 따른 대한민국 인력 선발 상황]

 

 

 

4.

"지금부터 말씀드릴 부분은 매우 긴급한 실제 상황이며, 조금의 거짓이나 과장도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말씀드립니다."

장내를 조용히시킨 국가위기관리센터 김차창은 이들이 이곳에 모이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최초로 포착된 외계에서 온 ‘가위’ 신호에서부터, 외계인이 몇 천년 만에 가위바위보 재대결을 걸어왔으며, 첫판이 이미 진행되었고 외계인들이 달을 이용해 가위를 내는 동안 인류는 아무것도 내지 않아 현재 1대0이라는 내용이었다. 발표는 차분하며 엄숙했고, 그래서 이상했다.

신종 몰래카메라 프로그램인가 싶어 두리번 대는데, 대통령이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이제 무얼 해야 합니까?"

현재로썬 예언서에 가까운, 민홍구 박사의 논문에 의하면 이 승부는 삼세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두번째 승부의 시작을 의미하는 또 다른 '가위' 신호가 이미 포착되었으며, 따라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두번째 승부가 내일 모레 열릴 것이었다. 순아를 비롯한 가위바위보 고수들을 이처럼 긴급하게 소집하게 된 것도 바로 이를 위해서였다. 지금 바로 각국의 대표를 뽑아 내일 하와이 천체관측단지에서 열릴 인류대표선발대회에 내보내야 하는 것이었다. 인류 대표를 뽑는데 달랑 이틀이라니, 동네 통반장도 이렇게 급하게 뽑지는 않을 것이었다.

순아의 곁에 앉아있던 세 명은 이른바 가위바위보 고수라는 호칭에 걸맞는 인물들이었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하여 가장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60대 신사는 한국가위바위보협회 대표인 '박만세'였다. '협회가 있었어?' 순아는 속으로 생각했지만, 그럴 만한 것이 박만세가 대표이자 유일한 회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옆에서 자신만만하게 앉아 있는 순아 또래의 30대 남성은 놀랍게도 몇 년 전 순아가 참가하려다 포기한 가위바위보 세계대회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참가하여 8강까지 오른 적이 있는 '정종철'이었으며, 마지막으로 이제 막 성인이 된 것 같은, 성난 표정의 남학생은 순아가 한때 열심히 했던 핸드폰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20813승 10426패로 한국종합랭킹 1위에 올라있는 '이만수'였다. 마지막으로 순아의 프로필이 사람들에게 소개되자, 나머지 셋은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수군거렸다.

"최강zi존@91...? 정말이오? 전설의 그?"

갑자기 등장해 500승 0패라는, 가위바위보로써는 기적에 가까운 승률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린 '최강zi존@91'인 것이었다. 순아에겐 '맞아. 그런 일이 있었지, 참'하는 정도의 일이었지만, 이쪽 가위바위보계에서 그의 존재는 레전드 오브 레전드나 다름 없었다.

네 명에 관한 간단한 소개가 끝나고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그 자리에서 바로 열린 4강 토너먼트에서 순아의 첫 상대는 협회 대표인 박만세였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다르지. 암, 협회를 대표해서 진짜 가위바위보가 뭔지 보여주지."

외계인의 존재와 고대문명, 지구의 멸망, 인류의 존속 등의 믿을 수 없는 발표내용이 아직 소화되지 않아 얼떨떨 하기만한 순아와 달리, 상대는 오로지 눈앞의 가위바위보 대결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3판 2선승제의 승부가 시작되기 직전에, 박만세가 말했다.

"난 주먹을 낼거요."

도발이었다. 자신이 낼 것을 미리 말할 경우, 상대는 무의식적으로 이에 지는 것을 내게 되는 것이었다. 이를 가위바위보계에서는 '선전포고 전법'이라 불렀다. 주먹을 내겠다고 선전포고하고 실제로 주먹을 내면 이길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청와대에 긴장감이 흘렀다.

가위, 바위, 보!

박만세는 주먹을, 순아는 보자기를 냈다.

첫판을 졌지만 박만세는 당황하지 않았다. '승유패변의 법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겼을 때 똑같은 걸 내고 싶어하고, 졌을 때는 다른 걸 내려 한다는 법칙이었다. 이에 따르면 순아는 이번에도 보자기를 낼 것이었다.

가위, 바위, 보!

박만세는 가위를, 순아는 주먹을 냈다.

2대0, 순아의 완승이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암튼 높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지는 결승전이 준비되었다. 창밖에는 공항으로 향할 전용 헬기가 우승자를 데려기가 위해 내려 앉고 있었다.

순아의 결승전 상대는 이만수였다. 또 다른 4강 전의 승부처에서 정종철과 27번이나 같은 수를 내며 명승부를 펼쳐 관계자들에게 박수까지 받았던 그였다.

같은 게임의 랭킹 1위인 이만수에게 순아는 늘 눈엣가시였다. 자신이 아무리 잘해도 유저들은 '그래도 최강zi존@91만큼은 안된다'며 비아냥댔던 것이었다. 승부 전 악수를 하던 이만수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흥! 500연승은 말이 안되지, 관리자가 만든 먼치킨 계정이나 해킹 계정일거라고 유저들이..."

"저 이번에 이기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바로 가는 건가요?"

순아가 이만수의 말을 끊으며 심판에게 질문했다. 끊었다기보다는 건성으로 들은 것이었다. 순아에게 이만수나 승패여부는 관심 밖이었다. 어차피 이길 것이었다. 그보다는 한국대표가 되면 어떻게 되는 건지가 궁금했다. 정말 이대로 잠옷 입고 하와이로 직행해서 인류의 존속을 위해 싸워야하는건지, 직장에는 뭐라고 대신 말해주는지, 닭발 값은 물어주는지, SNS에 자신의 상황에 대해 올려도 되는 건지, 국가대표가 되면 월급도 나오는 건지, 이도저도 아니라면 사례금이라도 제대로 주는지. 묻고 싶은 게 산더미였다.

"질문은 경기 이후에 받겠습니다."

순아는 그제야 승부를 위해 이만수를 쳐다보았다. 어쩐지 잔뜩 화가난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이만수가 외쳤다.

"각오해라!"

"저요??"

연달아 가위를 낸 순아의 2대0, 승리였다.

 

 

 

5.

"이렇게 국가대표가 되다니..."

하와이는 생각보다 멀었다. 전용기를 타고도 9시간이나 걸렸다. 순아는 대한체육협회에서 제공한 국가대표용 공식츄리닝으로 갈아입고 퍼스트 클래스에 앉아 있었다.

국가대표 월급이 이렇게 작은 줄 처음 알았다. 직장에는 정부에서 알아서 잘 둘러 대준다고 했는데, 도대체 뭐라고 할지 영 걱정이었다. 그래도 닭발 값도 물어주고, 인류대표 여부와는 상관없이 사례금은 두둑이 주겠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인 건가? 단기간에 벌어진 수많은 일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던 순아는, 피곤이 몰려온 탓에 어느새 침까지 흘리며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잠든 사이에 외계에서 두 번째 '바위' 신호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왔다. 이제 결전의 시간까지 딱 하루가 남았다는 뜻이었다.

잠에서 깼을 때는 이미 하와이 상공이었다. 와이메아-코할라 공항은 이미 자국의 가위바위보 챔피언들을 데리고 온 각국의 전용기들로 가득했다. 하와이 하면 떠오르는 새파란 바다와 서핑족들, 알록달록한 과일들과 야자수 같은 건 없었다. 천체관측단지까지 가는 황량하고 텅 빈 도로에는 어떻게 알고 찾아온 방송국의 차량들만 가끔씩 보였다.

순아는 청와대의 공식 통역관, 수행요원과 함께 인류 대표 선발전이 열리는 천체관측단지 인근 방문객센터에 도착했다. 인종, 국적, 나이, 성별이 다른 각국의 대표 가위바위보 선수들 200여 명이 건물 곳곳에 모여 가위바위보를 연습 중이었다. 진풍경이었다. 그중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는데, 커다란 눈과 팔 하나가 달린 인간형 로봇이었다.

"RPS 2.0이에요."

덥수룩한 금발의 중년 라틴계 여성이, 약간은 어색한 한국어로 말을 이어갔다.

"가위바위보 하려고 만들어진 AI 로봇, 하지만 전혀 몰라요?"

"네. 제가 잘... 근데 누구세요?"

"저는 브라질 대표 마리아입니다. 한국 챔피언이죠? 만수에게 얘기들었습니다."

마리아는 순아의 국가대표 츄리닝 등판에 대문짝만하게 그려진 태극기를 가리키며 친근함을 표했다.

"만수?"

순아가 그게 누군지 모른다는 표정으로 난감해하자, 곁에서 듣고 있던 통역관이 결승전 상대였다고 말해주었다. 마리아가 웃었다.

"하하! 기억 안 날 정도로 상대가 안되었나 봐요. 나는 만수 친구, 그리고 선생님. 한국에서 잠깐 살았어요. 그때 내가 만수 가위바위보 가르쳤어요. 물론 이긴 경험, 내가 훨씬 많아요."

싱글싱글 얄밉게 웃는 마리아의 양어깨에는 가위바위보와 함께 BTS 멤버들의 얼굴이 그려진 타투가 있었다.

"그럼 이따가 만나요. 만수의 복수. 기다려. 안녕히 계세요."

마리아가 인파 사이로 걸어가자,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몰려들어 싸인을 받으려 했다. 통역관이 순아에게 다가와 말했다.

"세계 챔피언이래요. 저 사람."

그는 10년 연속 가위바위보 세계 챔피언 '마리아 다 실바'였다.

예선전이 시작되었다.

당장 지구가,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데 가위바위보 승부에만 미쳐있는 사람들이 여기 다 모여있었다. 그에 비하면 순아는 모든 게 얼떨떨했다. 가위바위보 이긴다고 인류 대표가 되는 것도, 진다고 멸망하는 것도 말이다. 아무나 잡고 "저기, 지금 이거 나만 이상한가요?" 물어보고 싶었다.

얼떨떨하다는 소감과는 별개로 순아의 능력은 진짜였다. 단 한 번의 무승부도 없이 2대0 승리들을 이어갔다. 파죽지세였다. 순아 입장에선 뭐든 내면 이기니 긴장감이라 할 것도, 고민할 것도 없이 싱겁기만 한 승부들이었다. 마리아 또한 대단했다. 세계 챔피언다운 압도적인 기술과 능숙함도 있었지만, 놀라운 쇼맨쉽으로 대국을 즐겁게 만들었다. 특히 주먹을 연달아 세 번 내는 '산사태' 전법과, 주먹들 중간에 보자기를 내는 '지폐 쥔 바위' 전법은, 그녀를 긴 기간동안 왕좌에 앉게 해준 전매특허였던 만큼, 이 전법이 펼쳐질때마다 지켜보던 다른 선수들도 어느새 관객이 되어 환호했다.

예선전이 끝날 무렵, 순아에게 싸인을 해달라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다크호스였다. 싸인이라고는 카드 긁을 때 했던 싸인이 전부였던 순아에게 이런 관심집중은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함께 온 통역관과 수행비서는 이러한 상황을 빠르게 본국으로 전하기 바빴다. 그리고 마침내 순아의 준결승전 상대가 정해졌다.

RPS 2.0이었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동체 시력일 것이다. 손을 뻗기 직전,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내고자 하는 손모양을 준비하게 된다. 가위를 내려 한다면 검지와 중지가 살짝 열려있게 되고, 보자기를 내려 한다면 주먹에 비해 아주 조금 헐거워진 모양이 되는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미세하게 생기는 변화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이를 얼마나 잘 포착해내느냐가 중요한 승부처였다.

이러한 포인트를 극대화한 것이 바로 RPS 2.0의 주요 기능 중 하나였다. 한계가 분명한 인간의 시력과는 달리 초고속 카메라가 장착된 기계 눈을 이용해 순간적이고 미세한 상대방의 움직임과 떨림까지 포착해냈다. 그리고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다음 동작을 예측하여 반응하는 이 최첨단 기술들은, RPS 2.0이 가위바위보의, 가위바위보에 의해, 가위바위보를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자, 우승 후보임을 부정할 수 없게 했다.

가위! 바위! 브으으ㅇ...

보가 외쳐지기 시작하고 순아가 손을 내미는 그 찰나의 순간, RPS 2.0은 초당 수천 장의 사진을 찍어 빠르게 분석했다. 처음엔 평범한 주먹 같던 순아의 손 모양은 점차 검지와 중지가 벌어지고 있었다. 각도, 속도, 간격, 총 99.9%의 확률로 가위를 낼 때의 손 모양이었다.

브으ㅇㅇ... 오!

RPS 2.0은 주먹을 냈고, 순아는 보자기를 냈다.

누구보다 당황한 것은 RPS 2.0 자신이었다. 분명 가위였는데 보자기가 나왔다. 참(true)인데 거짓(false)이고, 0인데 1이었다. 이런 경우는 없었다. 물리적인 측정량의 오류가 있다고 생각한 RPS 2.0은 이번엔 통계적인 방법으로 상대하기로 했다. 총 10억 번가량의 가위바위보 승부 결과가 입력되어 있는 통계였다. 인종, 국적, 나이, 성별, 시간, 장소, 온도, 습도 등에 따라 어떤 조건에서, 어떤 인간이, 어떤 걸 내게 되는지 확률로 나타낸 것이었다. 추가적으로 이번 대회에서 순아가 냈었던 기록들까지 더해져 완벽에 가까운 결과를 도출할 것이었다.

가위! 바위! 보!

RPS 2.0은 작동하지 않았다. 그에게 도출된 결과는 놀랍게도 '이길 수 없음'이었다.

 

 

 

6.

결승전의 막이 오르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주변으로 다른 대표선수 200여 명이 관람을 위해 둘러싼 모습이었다. 먼저 결승 무대에 올라선 마리아가 짧게 성호를 그으며 기도를 하자, 긴장감에 숙연함까지 더해졌다. 떠밀리듯 내키지 않는 표정의 순아가 무대에 올라왔다. 막상 결승전까지 와버리니 심정이 더욱 복잡헸다. 이번에도 이겨버리면 진짜 인류 대표가 되어버린다. 그게 무얼 의미하는 것인지 순아는 아직 실감하지 못했다.

대결 직전 마리아가 말을 걸었다.

"나, 마리아 다 실바. 태어나면서부터 가위바위보 하면서 태어났어요. 의사 이겼어요, 간호사 이겼어요, 엄마 이겼어요! 아임 갓 오브 가위바위보."

마리아가 착한 사람 같긴 하지만, 친해지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한 순아는 대답 대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악수를 나눈 두 선수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심판이 나와 가운데에 섰다.

결승전 시작이었다.

"첫 번째 판 시작하겠습니다. 가위, 바위, 보!"

"우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마리아 다 실바, 10년 연속 세계 챔피언이 첫 번째 판에서 진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마리아 본인도 놀란 듯이 자신이 낸 주먹과 순아의 보자기를 번갈아 보며 중얼거렸다.

"지져스."

10년간 가위바위보계의 왕좌를 지켰던 세계 챔피언의 승부수도, 순아의 하찮지만 대단한 가위바위보 능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순아는 이미 우승 이후를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이 로봇에게도 통하고 세계 챔피언도 통한다면, 외계인에게도 통할까? 정말 이대로 내가 세상을 구하게 될까? 엄마가 내 태몽으로 높은 산에서 딸기를 땄다고 했었는데, 혹시 외계인이 딸기처럼 생긴 걸까?

"두 번째 판 시작하겠습니다. 가위, 바위, 보!"

비겼다?

바위였다. 자신의 주먹과 마리아의 주먹을 멍하니 번갈아 보던 순아는 갑자기 비틀거렸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심판이 빠르게 부축하지 않았다면 주저앉았을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 겪은 무승부였다. 외계인의 가위바위보 침공이나, 지구 멸망도 이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다. 비길 수 있다니...! 비길 수 있다는 것은 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갑자기 온 몸에 두려움이 퍼져나갔다. 이전처럼 아무렇게나 느낌대로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무얼 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더 혼란스러워졌다. 상대인 마리아가 맹수처럼 느껴졌다. 가위바위보로 갈기갈기 찢길 것만 같았다.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한기가 엄습했으며, 토할 것만 같았다. 승부에 대한 걱정, 초조함, 부담감. 당연히 이기던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순아의 능력이, 지지 않는 가위바위보 능력이 사라진 것이었다.

"바위 상태에서 이어가겠습니다. 가위, 바위, 보!"

마리아가 가위를 냈다. 아무것도 내지 못해 바위 상태로 머물고 있던 순아의 승리였다. 이긴 게 이긴 게 아니었다.

"좆됐다."

순아의 중얼거림이 함성소리에 묻혔다.

인류의 대표가 선발된 순간이었다.

 

 

 

7.

"오~ 필승 임순아! 오~ 필승 임순아! 오~ 필승 임순아! 오! 오레, 오레!"

2002년 월드컵과 촛불 집회 때보다도 많은 인파가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고 했다. 뉴욕의 타임스퀘어에 모인 200만 명의 인파가 순아의 이름 스펠링에 맞춰 단체 춤을 췄다. 이슬람 사원 앞의 1,000만 명은 순아가 있는 하와이 방향을 향해 절을 하며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천안문 앞에도, 붉은 광장과 앵커리지 시내에서도 그랬다. 마다가스카르에선 맨발의 아이들이 순아의 이름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뛰어다녔다. 언제 어떻게 새어나간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세계는 이른바 순아 신드롬이었다.

30분 뒤에 있을 외계인과의 가위바위보를 준비하기 위해 홀로 대기실에 앉아 있던 순아가 아무리 TV 채널을 돌려봐도 모조리 '순아', '순아'뿐이었다. TV를 끄기 전 마지막 채널에서는 순아의 직장동료들이 나오고 있었다. 순아가 프라푸치노를 좋아했다는 둥, 모두가 가위를 낼 때 혼자 주먹을 냈다는 둥, 쓰잘데기 없는 증언들이 속보와 특집으로 방영되고 있었다.

순아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이 생각뿐이었다.

'도망쳐야겠다.'

순아는 대기실 문을 살짝 열고 밖을 살폈다. 복도에는 수십 명의 다른 선수들과 연구진들이 곧있을 출전을 응원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뭐 필요하신 거라도?”

문 앞에 있던 수행요원은, 뭐든 말만 하면 다 해줄 테니, 가위바위보만 이겨달라는 듯한 간절하고 친절한 표정으로 순아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 아닙니다."

도로 들어와 어쩔 줄 모르던 순아에게 대기실 한 켠에 마련된 화장실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화장실 안에 있는 작은 창문이 보였다. 분명히 작긴 했지만 시도해볼 만 했다. 머리부터 창밖으로 빼내 보니 밖은 이미 어두운 새벽이었다. 팔과 가슴까지는 어떻게든 빠져나갈만 했다. 문제는 배였다. 아랫배가 끼어버렸다. 세 달짜리 끊고 달랑 이틀 나갔던 헬스장의 트레이너가 거 보라며 비웃을 것만 같았다.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순아? 거기서 뭐 해?

마리아였다.

"당신 혹시, 도망?"

대기실 밖에서 수행요원이 순아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순아 선수~ 이제 가셔야 됩니다!"

다급해진 순아는 아랫배를 창문에 걸친 채로 말했다.

“나 대신 마리아가 해라! 외계인이랑 가위바위보!"

"왓? 무슨 소리야. 순아가 챔피언이야. 인류 대표! 자신감 가져."

마리아의 격려에 애써 참던 억울함과 후회가 물밀 듯이 몰려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청와대 사람들이 집에 찾아왔을 때 쫄아서 덥썩 따라가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핸드폰 게임만 안 했다면 들키지 않았을 텐데, 나는 왜 가위바위보 같은 걸 잘하는 바람에! 아니, 그보다 외계인들은 왜 하필 가위바위보로 지구를 정복하려 하냐? 다른 것도 많잖아. 사다리 타기도 있고, 제비뽑기로 정할 수도 있는데. 무엇보다 왜 하필, 지금, 갑자기 능력이 사라진거야? 평생 쓰잘데기 없을 때는 잘만 이기더니, 지구의 멸망이 걸린 이렇게 중요한 때에 왜? 어째서?!

"마리아가 몰라서 그래, 나 가위바위보 능력을 잃어버렸어. 지금 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구!"

"능력?"

마리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느새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순아에게 마리아가 다정하게 말했다.

"순아, 가위바위보는 그냥 세 개 중에 하나 고르는 거야. 나, 순아, 외계인, 다 똑같아. 평등해. 그래서 아이 러브 가위바위보."

마리아가 순아의 머리통을 다시 창 안으로 밀어넣는 동안, 순아가 엉엉 울면서 외쳤다.

"아이 헤이트 가위바위보!!!!!"

천체관측단지는 마우나케아산 정상에 위치해 있었다. 봉우리들마다 돔 형태의 거대한 천문대들이 아이스크림을 퍼둔 듯 하나씩 올려져 있는 모습이었다. 특별제작된 '가위바위보 신호 송신장치'는 그중 한 천문대를 개조하여 만든 것이었다. 순아가 낼 가위바위보 결과를 우주 저 멀리에 있는 외계 신호의 발신지로 쏘아 보내도록 고안된 장치였다.

그곳에 인류의 대표 순아가 도착해 있었다. 한참을 울고 털어버렸는지 마른 눈물 자국이 볼에 남아 있었다. 고개를 들자 지붕처럼 펼쳐진 드넓은 밤하늘에,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별들이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상한 일들로 가득했던 이틀의 마지막에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이라니!

모니터에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이길 수도, 비길 수도, 질 수도 있었다. 가위바위보를 처음 해보는 사람처럼 불안하고 두렵기도 했다. 순아는 그 어느 때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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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구하는 순아의 가위바위보가 우주 저 멀리로 쏘아 올려졌다.

당시 있었던 두 번의 승부는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고궤도 위성이 촬영한 사진 속에서 지금도 확인해볼 수 있다. 이 인공위성은 현재 'SoonA-0303'으로 개명되었으며, 흐릿한 흑백사진 속에는 가위 모습의 달과 주먹처럼 둥근 지구의 모습이 나란히 담겨져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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