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고양이] 고양이의 노래

2008.03.19 00:0103.19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한 모자신사가 비를피해 골목길에서 시가를 태웠다. 자욱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안에 많은 것들을 담아서 내보내려고 했다. 인간이라는 존재다. 신사는 지나가던 한 사람을 보더니 빨던 시가를 길바닥에 버려두고 그를 향해 달려갔다. 까만 우산을 들고있던 신사였는데, 아마 시가를 빨던 남자의 친구인 모양이다. 둘은 이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곧이어 폭우가 그들을 가렸다.



골목길에서 새까만 물체가 슬금슬금 기어오고 있었다.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신사가 버린 담배에 다가가 담배향을 맡았다. 글쎄, 무언가 잘못된 것일까 고양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뒤를 돌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언제 있었는지 뚱뚱한 고양이가 쓰레기통위에 있었다. 그의 털은 전체적으로 주황빛을 내뿜다가 군데군데 흰털이 박힌 요상한 색깔이었다. 어쩐지 고급스러워 보였다.

"베라, 그런것은 먹는게 아냐."

뚱뚱한 고양이가 까만 고양이를 보며 말했다.

"배가 고프다."

베라가 말했다. 베라라는 이 고양이는 몇일 못먹었는지, 몸이 쇠약하고 눈에 힘이 없었다. 그러나 늘씬한 다리와 목이 베라의 각선미를 뽐내고 있어 마른 것이 눈에 거슬리지는 않았다.

"왜 항상 고양이들의 식사도 많은데 인간들의 것을 넘보는거야?"

베라의 친한 친구인 뚱보 고양이, 푸카차가 물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쓰레기통에서 내려왔다. 베라는 말없이 푸카차를 지나쳤다.

"어디 가는거야."

이번에도 대답이 없었다. 푸카차도 베라의 뒤를 따랐다. 좀더 깊은 골목으로 들어설때쯤, 갑자기 베라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하늘을 보며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했다. 푸카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베라 앞으로 갔다.

"푸카차. 왜 인간들은 우리의 심장을 노리는 걸까?"

갑자기 베라가 질문을 던졌다.

"그야… 우리의 심장은 인간에게는 값진 보석이니까."

푸카차는 황당하다는 듯이 코웃음을 한번쳤다.

"그렇다고해서 우리의 목숨을 아무렇게나 앗아가도 되는걸까?"

푸카차도 베라의 눈길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안되지.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물어? 다 아는 사실이면서."

푸카차의 말이 끝나자 마자 하늘에서, 아니 담장에서 하얀 고양이가 뛰어내렸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베라와 푸카차는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자네들, 뭐하고 있나? 자네들은 참전하지 않을 것인가?"

베라가 하얀 고양이를 보자마자 다리와 고개를 꼿꼿이 세웠다. 그는 정보원 대장인 미헬이었다.

"아닙니다. 우리도 참전합니다."

미헬이 매서운 눈빛으로 베라와 푸카차를 번갈아보았다. 푸카차도 겁에질려 굵은 다리를 꼿꼿이 폈다.

"그럼, 지금 당장 기둥C-14로 오게. 회의가 열리고 있으니까. 다른 고양이들을 보

면 전해주게."
기둥C-14 는 뒷골목에 놓인 커다란 전봇대를 말하는 것이었다. 미헬은 이렇게 말하고는 담벽을 뛰어넘어 사라졌다.

"푸카차. 가자."

둘은 기둥C-14를 향해 달려갔다. 비에 적셔진 더러운 땅들이 고양이의 다리에 짓밟히면서 물을 튕겨냈다. 그 소리가 좁은 골목에 울려퍼졌다.



엄청난 수의 고양이들의 모여있었다. 그러나 잘 훈련받은 군대처럼 줄이 척척 맞고, 부동자세로 누구하나 움직이는 고양이가 없었다. 베라와 푸카차도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커다란 쓰레기통위. 왼쪽 뒷다리가 없고 오른쪽 눈도 찢겨나간 한 고양이가 쓰레기통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가 이 마을의 고양이 총대장 데시카였다.

"고양이 전사들이여, 우리는 인간들에게 아무이유 없이 핍박 받았다. 놈들 때문에 나의 눈알이 뽑혀나가고 다리가 찢어졌다. 우리가 왜 이렇게 당해야만 하는가? 왜 태어날때부터 가지고 있는 이 심장, 이 보석 때문에 많은 고양이들이 죽어 나가야 하는가?"

때를 잘 맞춰서 고양이들의 함성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다시 잠잠해졌다.

"우리의 잘못이 무엇인가? 고양이로 태어난 것이 잘못인가? 인간들은 무엇이 그리 대단한가? 무슨 권리로 우리를 죽이고 심장을 빼어가는가? 어째서 자기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피해받아야 하는가!"

늙은 데시카의 목은 점점쉬어갔다. 하나밖에 없는 눈은 습기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우리가 왜…. 왜 당해야 하는지,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지, 지금 왜 싸워야 하는지도…"

결국 데시카는 목이매어 말을 잇지 못하고 빗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슬프게 흐느꼈다. 베라도, 푸카차도, 여기에 있는 모든 고양이도 그의 마음을 느꼈다.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의 목소리를, 그의 신념을 느꼈다. 데시카 아래에서 그를 지키고 있던 미헬도 차마 부하들에게 눈물을 보일 수 없어 뒤를 돌았다. 베라도 고양이들의 비참한 현실을 직시하고 강해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잠잠하던 데시카의 마른 목소리가 울려펴졌다.

"그래서, 우리는 싸워야 한다. 여태까지는 평화적으로, 우호적으로 해결하려고 했
지만 뜻대로 되질 않았다. 놈들은 강하다. 우리보다 몸집도 훨씬크고 힘도 세다. 하지만, 우리도 보여줄수 있다. 우리의 힘을 보여주잔 말이다!"

이렇게 말하고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쪽 팔을 들어올렸다. 주먹을 꽉쥐고 있었다. 그 주먹안에 마지막 희망을 담았다. 고양이들의 엄청난 함성이 울려퍼졌다. 모두다 주먹을 번쩍 들어 그들의 기세를 보였다. 인간들은 고양이들의 함성을 들었을까? 데시카의 열변에 모두 흥분한 상태였다. 겁이 많던 푸카차도 이 정도 기세라면 놈들을 완전히 박살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 끓어 올랐을 때쯤, 함성의 뒤편에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고양이들 한마리, 한마리씩 그를 발견했다. 점점 함성은 줄어들었다. 경계자세를 취한 고양이도 있었다. 찬물을 끼얹은 이는, 귀족 개인 달마시안 이었다.

"안녕하시오."

달마시안 게리는 고양이들과 대화하기 위하여 겸손하게 꼬리를 내렸다. 모두의 시선이 게리에게 집중되었다.

"내 한가지만 여쭙겠소. 그 일이 현재 상황을 더 나아지게 할 것이라고 보오?"

그의 물음에 데시카는 쓰레기통에서 뛰어내렸다. 고양이 특유의 음산한 걸음으로 천천히 게리에게 다가왔다.

"무슨 뜻이지?"

게리는 수많은 고양이들을 둘러보았다.

"나도 한때는 인간들이 미웠지. 놈들은 동물을 무시하고 학대하니까. 그래서 우리
도 힘을 합쳐 인간에게 대항 하기로 했소. 우리는 엄청난 수였지. 이길수 있을거라 생각했소. 전면으로 파고들었지. 그리고 어떻게 됐을거 같소?"

데시카가 무슨말을 해야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참패였소. 더 나아지는 커녕 개들은 최하위권으로 몰락했다오. 우리들은 인간앞에 한없이 나약했소. 처음에는 우리도 강하게 밀어붙쳤지만 갈수록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지. 남은건 널부러진 시체들과 살아남은 몇몇의 개들. 결국 용맹함을 잃고 지금은, 고양이들을 감시한다는 조건하에 그나마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소. 아, 물론 겉으로 고양이들을 감시하는 척만 하는것 뿐이니 안심하시오."

게리는 데시카보다 더 강한 목소리로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크게 말했다. 데시카의 입술이 떨려왔다.

"우리는 게릴라 작전을 쓴다. 모두가 흩어져서 그들에게 대항하는 거지. 치고 빠지는 작전으로 큰 피해를 감수할 수 있다. 어차피 지금 이대로라면 소용없어. 조금의 희망이라도 걸고 싸우는거다."

데시카는 이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홱돌려 다시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좋소. 내 말리지 않겠소. 그러나 이거 한가지만 기억해두시오. 상황이 더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소. 아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피해가 클 것이오. 내 말을 명심하는게 좋소."

데시카는 잠시 서성거렸다. 그러나 게리의 말이 끝나갈때 쯤 그의 말을 뒤로한채 고양이들 앞에 우뚝섯다. 게리는 말을 끝마치고 다시 홀연히 사라졌다. 데시카가 어떤말을 할지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그러나 게리의 말의 완전히 머릿속을 떠나지는 않았다.

'개소리야. 개소리일 뿐이야. 고양이들은 개들과 달라. 훨씬 영리하고 빠르지.'

"자! 그럼 당장 출발하자 전사들이여. 우리는 모두함께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건 몰살을 부르는 지름길이지. 각각 흩어져서 모든 가게, 지나가는 행인들, 어린이를 덮쳐라. 덩치가 지나치게 큰 사람이나 군인 등은 피해라. 가자!"

고양이들이 승리의 함성을 고했다. 동시에 고양이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그중에는 베라무리도 있었다. 팀은 따로 정해지는게 아니었다. 그냥 방향이 맞으면 같이 공격을 하는 것이었다. 빗길을 차박차박 뛰어갔다. 모두가 흥분되고 한편으로는 겁이났다. 그러나 지금 되돌아 가는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베라와 무리들은 한 빵집을 습격했다.


"푸카차, 넌 일단 문앞에서 대기해. 많은 사람들이 오거나 한다면 즉시 신호를 보내라."

푸카차가 큰 임무를 맡고 빵집 문턱에 앉았다. 베라와 뛰어난 도둑고양이 세르마 텀 톨드는 먼저 주방으로 갔다. 주방장이 보였다. 다리를 할퀴었다. 주방장은 빵을굽다 깜짝놀라 악 소리를 냈다. 주방장이 무기를 들고 공격하기 전에 베라와 세르마 텀 톨드는 황급히 주방을 빠져나갔다.

"가게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자구."

세르마 텀 톨드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베라도 여기저기 빵을 찢고 의자를 넘어뜨리고 게시판을 떨어뜨렸다. 그러다가 문뜩, 여동생이 좋아하는 롤빵이 보였다.

'롤빵을 조금 가져가자. 우선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베라가 생각했다.

"베라! 세르마 텀 톨드! 놈들이 오고있어, 어서 내려와. 나가야 한다구."

망을 보고있던 푸카차가 말했다. 베라는 그의 말을 뒤로한채 롤빵 봉지를 뜯었다. 맛있는 롤빵의 속살이 드러났다. 롤빵의 반쯤을 손톱으로 잘라냈다.

"뭐하는거야, 빨리오라구."

세르마 텀 톨드는 이미 푸카차와 함께 문턱에 서있었다. 베라도 서서히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빵을 들고 달려갔다. 손이 미끌어졌다. 빵이 저만치 날아가버렸다. 베라가 다시 달려갔다. 빵을 들고 다시 문턱을 향해 달렸다. 그런데, 푸카차가 쓰러져있었다. 이미 놈들에게 당해서 등이 커다란 칼에 찔려있었다. 푸카차의 눈이 부르르 떨리며 마지막까지 베라를 바라보았다.

'아차. 내가 지금 무슨짓을 한거지.'

그제서야 베라는 빵을 뒤적거린게 후회되었다. 사람들이 들어왔다. 저마다 칼을 한자루씩 들고있었다. 그들의 칼은 고양이의 손톱과는 비교되게 날카로왔다. 2명은 이리저리 갈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세르마 텀 톨드를 쫓았고 남은 한명이 베라에게 주저없이 다가왔다.

'야옹- 야옹-'

베라가 울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이제 고양이에겐 죽음의 직감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위협적으로 계속 울었다. 그러나 그의 울음소리는 인간에게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노래였다. 그의 외마디 비명이 고양이의 노래였다.



그 뒤로 그들과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

메일로 보낸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해서..
일단 여기에 올려봅니다.
anmi-
댓글 2
  • No Profile
    야키 08.03.21 22:34 댓글 수정 삭제
    캐츠&독스 라는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

    뭔가, 아쉽습니다. 풍자적인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스펙타클하게 전개되는 것도 아니고, 소박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시려고 애쓴듯한 흔적이 있는데 그게 글 위로 떠오르지가 않군요.

    마치 기름칠을 안해 조각난 찰흙작품 같다고나 할까요. 별로 맞지 않는 비유일지도 모르겠지만, 우선은 그 조각난 틈새를 이어주는 매끄러운 요소들이 절실할 때입니다.

    예를들자면, 위트함이라던가.

    예를들자면, 섬세함이라던가.

    예를들자면.....저보다 더욱 깊은 통찰력으로 글을 읽어줄 수 있는 독자가 필요함 시점이겠죠.

    잘 읽다갑니다 건필하십시오
  • No Profile
    anmi- 08.03.22 09:47 댓글 수정 삭제
    야키 //

    이 글의 요지는 풍자적인 요소인데..(그걸 모르면 이게 무슨내용인가 알기가 어렵죠)
    그게잘 전달이 못된것 같군요.

    아무튼, 정말 감사합니다.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1077 단편 야수 세이지 2008.04.03 0
1076 단편 그림, 솔직 유쾌한 이야기.1 2008.04.03 0
1075 단편 <b>고양이 앤솔러지 작품 공모 마감합니다. </b> mirror 2008.04.02 0
1074 단편 [고양이] 콘월의 고양이 crazyjam 2008.04.01 0
1073 단편 [고양이] 고양이 소리1 노유 2008.03.31 0
1072 단편 [고양이] 내일 꿈꿨던 세계 야키 2008.03.31 0
1071 단편 [고양이] 고양이 JU 2008.03.29 0
1070 단편 [고양이] 슈뢰딩거의 고양이2 김몽 2008.03.25 0
1069 단편 [고양이] 용은 우리 마음속에 정희자 2008.03.23 0
1068 단편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마지막 목소리 티아마트 2008.03.22 0
1067 단편 그대에게 고합니다 티아마트 2008.03.22 0
1066 단편 [고양이]우리는 울지 않는다. Lm 2008.03.21 0
1065 단편 송쿠그. (아침선문답)1 라퓨탄 2008.03.19 0
단편 [고양이] 고양이의 노래2 anmi- 2008.03.19 0
1063 단편 무기여 잘 있거라(본문 삭제)7 Inkholic 2008.03.17 0
1062 단편 번역의 오류3 유리나무 2008.03.15 0
1061 단편 발걸음2 Sky導 2008.03.15 0
1060 단편 단...단... 너무나도 단 커피..3 유나고양이 2008.03.06 0
1059 단편 대한민국 또는 나이키 운동화를 위하여1 전경남 2008.03.02 0
1058 단편 고양이와 마녀3 늑대늑대 2008.02.26 0
Prev 1 ... 89 90 91 92 93 94 95 96 97 98 ... 14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