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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발걸음

2008.03.15 15:1903.15

어느 날엔가 눈이 녹았다.
울퉁불퉁한 돌계단에 가득 쌓였던 눈을 뚫고 자란 두 송이의 노란 풀꽃이 소담스럽도록 포근한 어느 아침, 아이는 어리다는 이유만으로도 여전히 역사를 배우지 않아도 될 허락을 재차 받았으며, 과거는 현재의 어머니였으나 모든 어머니가 그러하듯 과거 역시 현재보다 중요하다고 우기지는 않을 적막한 시간 속에서 아이는 쭈그리고 앉아 가만히 풀꽃을 들여다 보았다. 눈에 무겁게 묻혀 흔들리지 않을 풍경소리와 멀리서 뽀드득거리며 올라올 발소리를 좋아했었는데 왜 하필 이 녀석이 눈을 먹어 치운 것일까.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꽃을 사랑해야 한다는 순박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억지다. 알면서도, 굳이 꽃보다 눈을 더 사랑해야 할 이유같은 것은 만들어내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보면 또 다시 눈을 뜨는 어느 날엔가는 이 풀꽃도 말라버릴 무더운 여름이 산사를 뒤흔들고 있을 것이다. 댓잎을 울리는 먼 바람과 세상이 그리 떠나갈 듯이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 새벽에는 여전히 죽은 듯이 잠들어 있을 세상이지만 여명도 없이 어느덧 밝아버린 날들은 아이에게 키만큼 가진 나이만큼 그다지 짧거나 어렴풋하지도 않은 기억들을 마구 떠올렸다. 언제부터 였던가. 갑자기 적막해져서 마치 아무도 이 길로 올라올 것 같지 않은 이곳에 남아버린 때가- 암자의 역사처럼 이어지는 흐름으로 기억될 것은 아니었으나 맥이 끊긴 순간순간의 장면들은 그 때부터 끝없이 맴돌아 망막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 하나하나의 기억들은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선택할 수 없어.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흔한 얘기잖아?
그러나 아이로서는 겨울보다 봄을 좋아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꽃보다 눈이 좋은 것인지 알지 못했다. 반대로 눈보다 꽃이 아름다운 것인지도 생각하지 않았다. 꽃은 꽃이고 눈은 눈이다. 누구의 편을 들지 않아도 눈은 녹고 꽃은 핀다. 그러고 나면 언젠가는 여름이 찾아올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들이 피고 지며 내리고 사라진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었건만, 먼 옛날 이무기를 사랑하여 떠난  이름모를 비구니 이야기라던가 엊그제께에 파계해버린 담월 스님의 발자취의 이야기는 어째서 불가해야만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럴 나이이니 아직 역사를 배우기엔 어리구나, 하고 꼬마에 대한 가르침을 뒷전으로 미룬 게으른 주지의 눈은, 그러나 분명히 꿰뚫고 있었다. 천살은 더 먹고도 성에 차질 않아 떠나지 못하는구나! 그만 썩 물러가지 못하겠느냐! 라고.
아이는, 약간 그렁해진 시선을 떨어뜨렸다.
서럽다거나 하는 감상으로 수긍이나 반박을 날리고 싶었음이야 그 앞에서도 오죽한 심정이었을까마는, 그렇게 생각해보면 승려들의 무관심이나 관심에 기뻐하거나 슬퍼할 이유같은 건 특별히 염두해두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건 주지의 관점이고 먼 옛기억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의 관점은 그들의 가르침과는 사뭇 달랐다. 세상을 평등하게 사랑하라는 그들의 불문율은 모순이다. 실은, 어느 것에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철없이 머리를 깎고 목탁을 두드리겠다고 떼를 쓰는 웬 다섯살자리 계집아이와 달리 대답도 없이 자리를 물러났던 것은 그 이유다. 덧붙여, 그 계집아이의 행실이 옳은지 그른지조차 알지 못했다. 판단하지 않겠다. 그럴 수 있는 권리는 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관점은 있는 법이다.
아이는 다시 한 번 꽃잎을 세었다.
선명한 노란색이 눈에 아프도록 똑바로 파고들 때까지 아이는, 재차 그것을 살폈다. 언젠가 시들고 말라버려도, 혹은 지나가던 산토끼가 뜯어먹고 뿌리만 남는다 하여도 이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처럼, 천 년 전의 꽃잎도 잊지 않을 것이다. 구백구십구년 전의 꽃잎도, 구백구십팔년 전의 꽃잎도, 그리고 구백구십년 전과 팔백구십년 전, 칠백구십년 전의 꽃잎도- 모든 시간을 훑고 지나간 이 붉은 동공에 천 년은 훨씬 담아둔 먼 기억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리라, 고집스럽게 입술을 깨물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탓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였다. 천년이 지났어도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의 이야기는 결코 거짓이 아니다. 전설의 범주는 허구의 것이나, 모든 허구만에서 전설이 흘러나오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그런 이무기가 되어 수백 여년 전 파계한 마음 여린 비구니를 얻은 것처럼 차라리 전설이 되기라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누가 작달만한 아이를 돌부처라고 할까.

실은, 그런 증거는 전혀 없다. 어쩌면 이 기억마저 꾸며낸 거짓일는지도 모르겠다. 웃기는 이야기다.

눈이 아프도록 노려보았던 어느 때에 바람이 살랑거리며 꽃대를 흔들었다.
멀리서 올라오는 발걸음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기억에 없는 소리였다. 그러나 그저 멍하니, 돌계단에 앉아 꽃잎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조금은 부석거리는 소리와 함께 힘들게 올라와 앞을 지나가려다 말고 네모난 안경을 바싹 들이밀었다.
"아무래도 너인 모양이지?"
그는 가볍게 아이를 한 번 들어올렸다가 내려놓았다.
그다지 무겁지는 않았으리라 짐작하지만, 그리고 불쾌하거나 유쾌할 이유도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아이는 별 반응 없이 말없이 꽃잎을 내려보는 것을 계속하였다. 마땅히 그의 얼굴을 볼 생각도 없었을 뿐더러, 그가 왜 이곳을 찾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별안간에 계집아이가 머리를 깎겠다고 조르던 것과, 주지와 고승들이 나를 불러 앞에 두고 역사를 어쩠느니 하며 한숨을 짓던 것들이 이 사람으로 말미암았는지도 모르겠으나, 그가 이곳에 온 것은 아마 처음이었으리라 그저 기억에 남겨두는 것이 고작 할 수 있는 일일 뿐이다.
그의 날카로운 턱선은 먼 옛날 이 앞을 지나 암자를 태우러 달려들었던 어떤 왜인과 닮았으며, 가끔씩 땔나무를 짊어지고 드나들었던 순박한 청년의 입매도 조금은 닮았다. 때때로 찾아드는 방문객의 말씨나 차림과도 비슷한 감도 있었으나, 어린 아이에게 그것조차 먼 옛날의 꿈 속의 기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애물단지라며 일찍이 산사에서 내치기라도 했더라면 그리 많은 것들을 재차 되새기며 이 자리에 앉아있지 않아도 되었겠지 싶어 아이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아이에게 갈 곳이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수수방관되어 그 훗날에 어떻게 될지는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는 아이를 들여다보며 싱글 웃었다.
"얼마나 여기에 있었니?"
"......."
"누군가를 찾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게 너였는지도 모르겠구나."
하고 머리를 툭 한 번 쓰다듬고 지나가는 발걸음에 미약한 바람이 훅 일었다. 꽃잎이 아주 약간 흔들렸다.
풍경이 아주 작게 울었다.
그래. 봄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겨울이 지나면 이 적막한 암자에도 제법 사람의 발걸음이 드나들 시기다. 워낙 음습한 곳에 있는지라 그 천여 년의 역사만 아니었더라면 누구도 이 암자를 찾고자 하지 않았을 것은 뻔한 일이라고, 언젠가 사람의 마음을 얻은 이무기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그도 어느 때부터인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 또한 눈에 각인된 저주받을 먼 옛 이야기다. 그것이 일곱살 먹은 꼬마의 키와 비슷한 아이에게 그 이상의 시간의 무게를 부여하기엔 힘들 일이다. 혹여 이것이 세간에 알려진다면 아이는 산사를 떠나야 할 것이고, 사람들은 앞다퉈 아이에게 역사를 물으러 올 것이다. 그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과거다. 그러나 현재가 여기에 있는데, 왜 현재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냐고- 아이는 되묻고 싶었다.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한 거지."
이무기의 말에 비아냥은 없었다.
"배가 고프면 당장이 문제야. 하지만 부유해지면 위대한 과거가 문제가 되는 것이지."
"과거 운운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인가요?"
"역사가 어쨌는지 전래가 있었으니 없었으니 하는 것들 말이지. 그러다 보면 현재를 보기보다는 과거에 맞추어 악행을 답습할 수 밖에 없고, 그런 미래는 영원한 과거의 되돌림일 뿐이야. 앞날을 위해서라면 현재를 직시할 필요가 있는데."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니었나요?"
이무기는 쓸쓸한 듯이 웃었다.
"용이 되기 위해 그녀를 버리라는 말이구나."
"당신의 오랜 숙명일 테니까."
"그건 달라, 꼬마 부처님."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건 다른 길을 선택한 거야. 나는 하난데 길은 두 가지라면 한 길밖에 택할 수 없는 거겠지. 그리고 선택에 있어서 비중을 두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란다."
아이는 고개를 숙였다.
"둘 다 가질 수 없는 것인가요?"
"어려운 것을 얘기하는구나."
밤을 울리는 조용한 삐꺽거림과 함께 문주에서 작은 그림자가 살짝 모습을 비껴냈다.
이무기는 고개를 돌리며 일어났고, 행복한 듯이, 그리고 괴로운 듯이 웃었다. 그리고 떠났다.
아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용이 되지 못할 거야.


당신은 용이 되지 못한 거야.
아이는 생각했다. 이것조차 먼 이야기. 말을 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모른다. 그저 전래되고 전래된 짧은 옛이야기로만 어린 아이들에게 들려줄 뿐, 이무기가 실은 어떤 생각이었는지 어떤 말을 읊조렸는지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전래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무기는 전설이 되었으며, 그것을 알고 있는 자신은 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말해지지 않은 역사는 역사이되 진정한 역사는 아니다.
뎅-.
타경이다. 곧 목탁소리가 울리며 낭랑한 읊조림이 시작될 것이다. 불경이 가진 의미를 하나같이 배우는 저들이 옳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실은 그렇다. 불경 역시 눈이나 꽃과도 같아서 사람에게마다 각자 다른 의미로 해석될 법한데, 왜 하나같이 모여 한 가지로만 해석되는 전해지고 전해지는 과거를 답습하는지, 아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자신은 아이인건가, 아이는 생각했다.
한 시진이 지나고, 그는 산문을 나왔다.
그는 아까처럼 아이에게 얼굴을 바싹 들이밀고는 좋지 않은 시력을 모아 찬찬히 바라본 뒤, 빙긋 웃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이무기처럼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이 깊었으나, 이무기와 달리 그는 다시 이곳을 찾을 것을 어째서인지 알았다. 그리고 뒤따라나온 주지가 전에 없이 덜 게으른 눈빛으로 아이를 내려다보고는 한 번 푹 한숨을 쉬었다.
"여기는 정갈해야 할 곳이다. 시끄럽게 할 거면 떠나거라."
그러나 아이는 자신이 언제 시끄럽게 굴었는지 알지 못했다.
묵묵히 꽃에 눈길을 떨군 사이에 주지는 휘적휘적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안에서 조용한 불경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파계는 저울질이다. 파계하지 않을 영역과 파계로 인식될 영역 중에 비중을 두고 한쪽에 치우치는 것이니 그 중심에 마음을 두고 위태롭게 옮기는 걸음이 자연스럽게 갈지之자로 휘어지며 몇 번인가 계단을 굴렀다. 술기운이었다.
이무기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음에도 그의 눈빛은 어딘가 생소했다. 그것은 괴로움이었다.
용은 되지 못했으나 사랑을 얻은 그는 결국 사람인 늙어버린 아내를 잃었고, 잃을 수 밖에 없는 시간의 흐름과 남겨진 자신과 이루지 못한 꿈에 허황된 생각들로 묻혀 제가 갔던 길을 되돌아온 것이 어딘가 무척 무거워보였다.
그는 아이의 앞에 무릎을 꿇고 목을 놓아 울었다.
"왜 너는 그대로인 것이냐! 왜 너는 그대로인 것이냐! 너만 그대로인 것이냐!"
그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길을 걸었기에 시간을 보냈지만, 아이는 변모한 그가 오히려 이상하였다. 당신은 왜 여인을 사랑했고 용이 될 길을 사랑하지는 않았는지?
그러나 아이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풀꽃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파계할 사람이 한 명 더 있는 모양이야."
이무기는 아이를 쏘아보았다.
아이는 말없이 입을 다물었다. 눈보다 꽃을 사랑하지는 않고 꽃보다 눈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꽃보다 눈을 싫어하지 않고 눈보다 꽃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무게를 둘 건 없다. 그러나 측은해지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한없이 가엾은 눈동자에 아이는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어떤 말이든 소용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세상을 구하는 것은 부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인 것을 이 천년 묵은 이무기가 모르지는 않을 것이라.
삐걱.
누군가 어둠 속에서 문을 열었다. 이 시간이면 이미 수행과 노동에 지쳐 꿈도 꾸지 않고 잠들었을 법한데도, 이상한 일이다. 이무기는 놀라 사라락 풀숲으로 기어들어갔다. 결국 그는 이무기인 셈이며, 아이는 기억만을 가진 채로 어디에도 치우치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일뿐.
비구니였다. 음영 속에서 아이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았다. 언제나 세상이 증오스러운 듯 아랫입술을 깨물고 다니는 사람은 아이의 기억에는 볼목하니밖에 없었다. 이 비구니는 볼목하니여서 볼목하니인 것이 아닌, 그저 누구나 하는 일이고 또 누가 해도 볼목하니인 볼목하니일 뿐이지만, 그녀가 왔던 시간 속에 그녀의 모습에는 허탈과 좌절로 가득 찬 공空의 세계가 아닌 것을 마음에 품고 왔었다.
그것이 주지의 눈에 밉상일 리는 없었다. 주지 또한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주지는 부처를 경배하지 않는다. 그러 바라볼 뿐이다. 그것만으로 마음을 텅 비운 사람이니만큼 이러하여서 누구를 힘든 볼목하니로 부리고 이러하여서 누구를 일 쉬운 다모로 시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의 마음은 늘 불만이었고, 그만큼 세상에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었다. 이 사람 또한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며 시간을 타고 흐르는 사람이다. 따라서 이곳에 있어서는 알될 법한 사람의 유형이기도 하였으나.
"너만 아니었다면!"
그녀의 증오가 자신에게 있음을 아이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아이를 지그시 노려보다가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아이의 머리를 밀었고,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로 기우뚱 기울어 계단을 데굴데굴 굴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곧은 길은 아니어서, 어느 정도 비스듬하게 구른 후 다행히 풀밭에 처박히기는 하였으나, 아이는 아프기에 앞서 자신이 왜 그런 일을 당해야하는지 어리둥절하였다.
그녀는 회심히 미소를 지었다. 지은 것 같았다. 그리고는 보라는 듯이 쿵쿵 소리가 나도록 돌계단을 뛰어내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는 그녀의 풀잎 사이로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나 보지 않았다. 다만 눈 앞에는 또 다른 풀잎이 이리도 조용히 흔들리고 있음을 진작에 알지 못했을까.
꺾인 풀에 엎드려 사랑하지도, 그렇다고 증오하지도 않은 그저 허망한 마음으로 꽃잎을 셌다.
아아. 역시 다섯 잎이구나.
아이는 빙그레 미소지었다.


훗날이라는 것은 막연한 시간이다. 미래가 아니다. 그저 현재가 만들어낸 답습물이며, 단지 공간적 의미가 아니라 시간적 의미가 가해진 것 뿐이다. 별 의미는 없다.
그럼에도 의미를 두건대, 훗날에야 알았지만, 안경을 쓴 그는 이무기와 사뭇 닮은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훗날에야 알았지만, 암자를 도망친 비구니는 이무기와 떠난 여인의 뒷모습과 닮아 있었다.
훗날에야 알았지만, 세상에는 더 이상 이무기가 용이 되었다거나 용이 되지 못했다는 새로운 전설 따위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훗날에야 알았지만, <천 년의 어린 부처상, 하루 사이에 깨진 채로 발견되다>라는 신문기사와 함께 발견자이자 고고학자인 안경을 쓴 그의 사진과 아이는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아무래도 그는 이런 시끄러움을 만들기 위해 고고학을 택하고 그의 그녀를 버린 모양이었나 보다.


암자가 시끄러웠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무기가 침울한 눈빛으로 유리 너머를 응시하였을 때, 아이는 깨진 목을 접합한 어긋난 모습으로 그를 향해 비로소 말했다.
"결국 나도 그대로일 수는 없는 법이지."
목이 깨진 돌부처는 천년 만에 처음으로, 웃었다.








* 이곳에 무언가를 올린 것은 처음입니다.
그리고 이번 것은 그다지 환상적이지는 않은 소재입니다만-- 뭔가 '제대로 된 악평'을 들어야만 이 슬럼프가 극복되겠다는 각오로 올렸으니, 사양 마시고 가차없는 악평을 부탁드립니다. (눈물을 쏙 빼게 해주셔도 괜... 괜... 괜찮아요! ㅠ.ㅠ)
참고로 Sky導는 개인적으로 무언가를 쓰고 있는 생물이며, 대부분의 타닥거림에서 그다지 좋은 의미나 좋은 내용이나 좋은 필체라는 등의 말은 들은 적이 없는 듯하며, 무언가 하나 남는 거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늘 가지고 있지만 결과는 언제나 제로에 가까운 것밖에 없는 생물입니다. 많은 비평 부탁드리겠습니다.(꾸벅)
댓글 2
  • No Profile
    야키 08.03.15 23:07 댓글 수정 삭제
    한국적인 분위기에,

    신세대적인 문체,

    뭐, 아직도 제게는 설렁탕 그릇을 내던지며 욕을 퍼붓는 김첨지의 아련한 모습이 머릿속 그득히 담겨있기는 하지만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한가지 비평을 원하신다면.

    약간 사건과 사건사이의 연관성이 부족해 딱딱 끊어진다는 느낌을 줍니다.
    마치 끝이 완벽히 맞아 떨어지지 않은 종이학처럼 세련되고 완벽한 글을 위해서는 그런 개연성 같은 부분들을 철저하게 고칠 필요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 No Profile
    Sky導 08.03.16 09:47 댓글 수정 삭제
    야키님 / 비평 감사합니다. 야키님. 확실히 연관성 및 스토리의 이음매에 대한 부분의 취약성에 대해서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맞아 떨어질 수도 있고 고고학자인 '그'가 처음에 만났던 '그'와는 다른 인물일 수도 있는 가능성도 언뜻 보이기 위해 맞아 떨어지지 않게끔 하는 애매한 부분도 있었습니다만, 역시 의도를 들어내기는 힘든 데다가 전달의 부분에서도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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